구약 성경의 지혜서 중 하나인 코헬렛서는 목적이 없어 방향 감각을 상실하거나 계속되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는 코헬렛서를 통해 인생이 각자가 경험하는 작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모자이크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삶의 순간들을 잃어버리기 전에 이해하고, 놓치기 전에 누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_ 조앤 치티스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p17/152 


 올해 첫영성체 교리를 듣고 있는 연의. 외워야 할 기도문도 많고, 성경 필사도 해야 하고, 평일미사도 가야하기에 예전보다 교리 이수 조건이 까다로워졌음을 실감하게 된다. 부모도 예외는 아니어서, 부모 교육도 별도로 진행되고 독후감도 제출해야하는 등 부모 역시 신경쓸 부분이 없지 않다. 그리고, 오늘 페이퍼는 제출할 과제 도서에 대한 내용이다.


 과제 도서인 조앤 치티스터 (Joan D. Chittister, 1936 ~ )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구약성경><코헬렛 Ecclesiastes>서의 내용을 현대인의 시각에서 재음미하는 영성서적이다. 태어날 때, 잃을 때, 사랑할 때, 웃을 때, 전쟁의 때 등등. 우리의 삶 전체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과 사건 안에서 저자는 그 의미를 발견하고 독자들과 나눈다. 저자가 발견하는 '때'의 의미는 또한 <코헬렛> 저자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_ <구약성경> <코헬렛> 3:1~9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적극적으로 잡아야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곳을 의식하고, 거기에 몰두하며, 기민하게 행동하는 것이 삶을 알차게 사는 비결이고 배워야 할 교훈이다. 우리 앞에 존재하는 지금 현재를 어떠한 요령 없이 보는 것이야말로 삶의 중요한 방식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이 문제는 인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끊임없이 말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_ 조앤 치티스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p15/152 


 <코헬렛>의 저자로 알려진 솔로몬은 모든 것에 때가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여기에 바탕을 두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에서는 삶에서 현대인들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 나눔한다. 삶의 매 순간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의 본문 내용은 하나의 지혜 문학으로서 우리에게 잠언(箴言)으로 다가온다. 잔잔하게 영혼을 적시는 책의 내용은 편안하게 다가오지만, 페이퍼에서는 경구보다 조금 다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인용한 <코헬렛> 3장 9절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


 이 한 문장으로 <코헬렛>의 '때'에 대한 코헬렛의 이야기는 반전으로 다가온다. '지혜의 왕'이라 불리던 솔로몬은 모든 것에 대한 때를 말한다. 현명한 그는 때의 의미를 깨닫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처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부와 영광을 부렸던 그가 말하는 '허무'의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보람의 의미를 묻는 그의 물음과 이로부터 느껴지는 허무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코헬렛> 1장의 첫 구절로 이끈다. 때에 맞춰 인간으로서 최선의 삶을 살았건만, 그로부터 남겨진 것이 허무라면, 솔로몬의 마지막 깨달음은 절대적인 시간에 대한 인간의 무기력과 상대적으로 유한한 인간의 시간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 곳으로 서둘러 간다. _ <구약성경> <코헬렛> 1:1~5


 이와 관련하여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CE 354 ~ 430)는 <참된 종교 De Vera Religione>에서 <코헬렛>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신의 섭리에 의해 주재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상대적으로 유한하고 한계가 많지만, '헛됨'을 벗어날 수 있다면 유한함에서 벗어나 절대성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교부의 해설 속에서 신의 절대성과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한 허무를 극복할 하나의 방편을 발견하게 된다. 초월(超越. transcendence).


죄와 그 벌에서 유래하는, 영혼의 이 도착倒錯으로 말미암아, 육체를 지닌 모든 사물이, 솔로몬의 말대로, 헛된 인간들의 헛됨이여. 세상 만사 헛되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여기서 '헛된 인간들'이라는 말이 괜히 덧붙여진 것이 아니다. 헛되게 만드는 인간들이 제거된다면, 즉 맨 마지막 것들을 맨 처음 것처럼 추구하는 인간들이 없다면, 육체를 지닌 사물이 곧 헛됨 그 자체가 되지는 않으며, 비록 미약하더라도 아무런 결함이 없는 자기 나름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것이다. _ 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21.41


 사람에게 위험한 바로 그 섬광들을 경험한 다윗은 자신의 모든 희망을 하느님의 이름에 두는 이가 행복하다고 옳게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은 헛된 것과 어리석은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항상 그리스도를 향해 노력하며 늘 자신의 내적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라는 코헬렛의 말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입니다. 따라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을 초월하십시오. 먼저 여기에서 달아나지 않으면, 지금도 존재하고 늘 존재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암브로시우스, <세상도피> 1,4) _ <교부들의 성경주해 9 - 잠언, 코헬렛, 아가>, p295 


 이러한 연결점은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의 본문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매 순간에 머물면서 우리는 새로워지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도 피해가지 못했던 허무함에 빠지지 않을 좋은 조언이 된다. <대학 大學>의 '苟日新(구일신) 日日新(일일신) 又日新(우일신)'과도 통하는 본문의 내용 속에서 인간의 한계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지만, 절대성에 수렴해가는 삶의 자세에 대해 우리는 생각할 수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이 즉시 일어나는 것을 막는 자연의 방법이다." 이 말은 영혼을 잠시 진정시키고 잠깐 멈추게 하는, 영적 성숙의 시간적 단계가 있음을 가르쳐 준다. 시간은 차례차례 인생의 어느 순간에서 순간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가 그 시간 안에서 모든 상황을 겪게 한다. 그러나 인생한 할당된 일수를 채웠는지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았는지로 평가된다. 이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_ 조앤 치티스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p148/152 


 <코헬렛>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에서는 흐르는 시간 안에서 인간의 유한성이 드러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현재로서 절대적인 시간의 미분(微分)이라면, 과거-현재-미래의 절대적인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적분(積分)이라 할 수 있겠다. 미분의 차원(次元)과 적분의 차원이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시간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현재'로 존재하는 '때'에만 관여할 수 있다. 여기에 절대적인 가치를 담으려 노력하는 자세에 대해 옛 지혜문헌들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접점을 갖는다.  


 차라리 시간은 셋인데 과거에 대한 현재, 현재에 대한 현재, 미래에 대한 현재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이 셋은 영혼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고 다른 곳에서는 이것들이 안 보이며, 과거에 대한 현재는 기억(記憶)이고 현재에 대한 현재는 주시(注視)이며, 미래에 대한 현재는 기대(期待)다.(11권 20,26)...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기대에 해당하는 영역은 짦아지고 기억에 해당하는 영역은 길게 연장된다. _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권 28.38, p456


 기나긴 시간이란 동시에 펼쳐질 수 없는 수많은 순간瞬間들에 의해서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슨 수로 알아듣게 하겠습니까? 영원에서는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고 전체全體로서 현전現前합니다. 어느 시간도 전체로서 현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과거는 미래에 의해서 밀려나고 모든 미래는 과거에 의해서 뒤쫓기며, 모든 과거와 미래는 항상 현재하는 것에 의해서 조성되고 전개된다는 사실을 누가 알아보게 하겠습니까? 누가 인간의 마음을 붙들어 세워 멈춰 서서 바라보게 만들고, 영원이 어떻게 정지한 채로 미래 시간과 과거 시간을 결정하는지, 그러면서도 영원 자체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님을 바라보게 만들겠습니까? _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1권 11.13, p431


 제자가 스승인 랍비에게 물었다. "저처럼 미천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모세처럼 살 수 있습니까?" 스승은 제자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가 죽을 때, '너는 왜 모세처럼 살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네. '너는 왜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받을 걸세." 그렇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때가 있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때가 왔다. 지금이 바로 우리의 때다. _ 조앤 치티스터,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p152/152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가 유한한 시간에서 담아야 할 절대적 가치를 말한다면, 시간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이번에는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에서 출발해보자. 객관성과 주관성, 영원과 찰나의 대조로 상징되는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에 무게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우주(宇宙)에 대한 해석방향이 달라지고,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는 내용은 리 스몰린(Lee Smolin, 1955 ~ )의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에 담겨있다.


 '흐로노스 chronos"는 우리가 잘 아는 베테랑 할아버지, 시간의 아버지 Father Time, 즉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반면, "카이로스 Kairos"는 완전히 반대의 예측 불가능한 주관적인 시간이다. 객관적인 시간이라는 것은 바로 아이작 뉴턴이 얘기하는 시간의 특징 aquabiliter fluit - 즉, 강의 물이 항상 일정하게 흐르듯 영원히 고정된 시간이 바로 흐로노스이다.(p35)... 그에 반해서 주관적인 시간 "카이로스"는 흔히 "기회 opportunity"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는 일정하게 아주 "적절한 때 right timing"을 의미한다. 흐로노스가 신적인 우주의 영원한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인간세상의 찰나, 즉 짤막한 현재의 시간이다. _ 김승중, <한국인이 캐낸 그리스 문명>, p37 


 절대적인 시간의 세계가 수리(數理)적 질서로 마치 정밀한 시계와 같은 구조로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면,  리 스몰린은 흐르는 물과 같은 시간에 대해 말한다. 이는 시간 안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관계주의적 관점과 시간 밖에서 시간을 관조(觀照)하는 절대주의적 관점은 시간을 하나의 변수(變數)로 보는가, 주어진 조건으로 보는가의 차이이기도 하다. 시간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이야기의 방향은 다르지만, 책의 내용  중 수학을 통해 시간(時間)을 또 다른 공간(空間)으로 이해하는 뉴턴적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 안에서 우리는 <고백록>, <코헬렛>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 첫 영세 교리 과제로 주어진 도서에 대한 내용이 어느새 산으로 와버렸지만,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많이 쓴 듯하다. 이 페이퍼 중 아우구스티누스 선에서 적당히 재편집을 해서 제출해야겠다...


 시간 안에서 생각하는 것과 시간 밖에서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인간 사고와 행위의 여러 측면에서 명백하게 나타난다. 우리가 기술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접근법이 절대적이고 이미 존재하는 범주들의 집합으로서 결정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시간 밖에서 생각하는 것이다(p12)... 시간 안에서 생각하는 것은 상대주의가 아니라 일종의 관계주의 relationship다. 관계주의는 어떤 것에 대한 가장 참된 기술은 그것이 속한 계의 다른 부분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이다. _ 리 스몰린,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 p13/302


 세계를 동역학적 부분과 배경(동역학적 부분을 둘러싸고 있고 우리가 이것을 기술하는 용어들을 정의하는)으로 나누는 것은 분명 뉴턴적 패러다임의 천재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이 패러다임을 전체 우주에 적용하는 것을 적절하지 않게 만든다. 과학을 우주 전체의 이론으로 확장할 때 우리가 마주치는 도전은 정적인 부분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하며, 우주 밖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_ 리 스몰린,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 p116/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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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개혁가이기는 했지만 급진주의자는 전혀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당원이었다. 1956년 스타브로폴 지구 공산주의청년동맹 제1서기를 시작으로 1970년 지역의 국영농장위원회 서기를 거쳐 최고 소비에트 의원에 이르기까지 당을 통해 성장했다. 새로운 지도자는 그 세대 공산주의자들의 많은 정서를 대표했다. 고르바초프는 당이나 당의 정책을 절대로 공개리에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곧 흐루쇼프 시대의 오류에 환멸을 느꼈고 이후 브레즈네프 시절의 억압과 무기력에 실망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런 의미에서 고전적인 개혁 공산주의자였다. _ 토니 주트, <전후 유럽 1945 ~ 2005>2 , p144/465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 ~ 2022)가 어제(8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후반  글라스노스트(glasnost)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정책을 펼치면서 이후 탈(脫)냉전시기를 이끌어낸 지도자로 당시 세계인의 찬사와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그를 기억한다. 비록, 정권 말기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고, 그를 대신하여 쿠데타에 맞선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1931 ~ 2007)에게 밀려나 이후 다시 정계에서 쓸쓸하게 사라지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의 죽음 소식을 들으며, 한 시대가 끝났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다만, 그의 죽음으로 진정한 냉전의 시대가 끝났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탈냉전의 시기가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신냉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깊이 체감하게 된다. 


 개혁의 본능은 절충에 있었다. 다시 말해 관료적 병폐에서 해방되고 원료와 숙련 노동력의 확실한 공급을 보장받은 소수의 인기 있는 사업을 실험적으로 (위로부터)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러면 이러한 사업이 다른 유사한 사업에 성공적인 모델의 기능을, 나아가 이윤을 내는 모델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목적은 통제된 현대화, 가격 결정 과정에 대한 점진적 적응, 그리고 수요에 부응하는 생산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그 작동의 전제 때문에, 다시 말해 당국이 행정상의 허가를 통해 효율적인 사업을 설립해야 했기 때문에 실패가 예견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경제와 씨름하면서 두 발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소련의 경제적 난제만 따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경제적 난제는 더 큰 문제의 증상에 불과했다. 소련은 중앙 통제경제의 정치적/제도적 기득권을 지닌 자들이 운영했다. 소련 특유의 작은 모순들과 일상의 부패는 권위와 권력의 원천이었다. 당이 경제를 개혁하려면 우선 당 자체를 개혁해야 했다. 그래서 총서기(고르바초프)는 당 기구의 장악력을 깨부수고 경제재건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글라스노스트(공개)에 의존했다. _ 토니 주트, <전후 유럽 1945 ~ 2005>2 , p146/465


 고르바초프에 대한 평가는 사뭇 갈린다. 새시대를 연 세계적인 지도자로 바라보는 시선과 그의 정책으로 결과적으로 동유럽과 소련이 개방의 길로 접어들면서 겪은 혼란상으로 인해 실패한 지도자로 바라보는 관점. 그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역사가 내릴 테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으로 20세기 후반 가장 큰 사건인 '탈냉전'은 이제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고르바초프의 초기 시도 중 거의 어느 것도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경제는 단순한 권고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정부 자체의 경제정책, 특히 재정정책은 예산 부족과 물가 상승을 초래했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행정부와 그것의 우유부단하고 혼란스러운 방향 때문에 경제는 브레즈네프 치하에서 가졌던 응집력을 상실하기 시작하면서도, 그 시대를 대체할 만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p897)... 이것은 전적으로 위로부터의 혁명도 아니었고, 전적으로 일관성 있는 혁명도 아니었다. 고르바초프는 더 이상의 급진적인 조치를 앞두고서도 계속해서 머뭇거렸다. 그는 중도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시도하면서, 당의 급진파와 제휴할지 보수파와 제휴할지 오락가락 하다가 결국 양쪽 모두와 소원해졌다. 아무튼 당은 점점 더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갔다. _ 니콜라스 V.랴자놉스키 외, <러시아의 역사 -하- > , p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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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31 2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르바초프,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갔네요. 평가는 갈리겠지만 어쨌든 역사에서 큰 전환점을 만들었던 것 만큼은 분명한 인물이지요.

겨울호랑이 2022-08-31 23:00   좋아요 1 | URL
네... 정말 20세기를 대표하는 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순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마무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파리의 풍경 1 파리의 풍경 1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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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파리는 너무 크다. 파리는 나라라는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같다. 대도시는 전제적인 정부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이런 정부는 대도시에 사람들을 몰아넣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쓴다. 사치와 향락이라는 미끼로 대지주들을 끌어들인다. 군중을 목장 속의 양떼처럼 몰아넣어서, 양떼를 지키는 개들의 역할을 하는 공통의 법이 더 쉽게 다스리도록 한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10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1 Tableau de Paris>에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본문에는 제목 그대로 18세기 파리의 생활상이 담겨있다. 중세 이래의 비위생적인 도시의 모습은 근대 프랑스 왕국의 중심지 파리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를 많이 저버린다. 우리가 기대한 바로크의 화려함은 왕과 그를 따르는 귀족과 함께 베르사유(Versailles)로 옮겨가버렸기에,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의 상황을 보다 실감나게 관찰할 수 있다.


 공기는 건강 보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부터 바로 치명적이 된다. 그런데 건강은 사람들이 가장 무관심한 재산이다. 좁고 잘못 난 길들, 너무 높고 공기의 자유로운 순환을 가로막는 집들, 푸줏간과 생선가게, 하수구, 묘지들 때문에 대기가 나빠지고 불순한 입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이 폐쇄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90


 수많은 마차가 끝없이 덜컹거리면서 끊임없이 내뿜는 철의 입자들로 가득한 파리의 진흙은 더러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부엌에서 나오는 오수가 더해져 악취가 난다. 막대한 양의 유황과 아질산염이 함유된 이 진흙은 외지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긴다. 이 진흙 얼룩이 묻으면 천이 타버릴 정도이다. 화차가 진흙과 쓰레기를 수거하여 가까운 들판에 쏟아 버린다. 이 더러운 하치장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불쌍할 뿐이다. 진흙 수거는 헐값에 하청을 준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156


 200년 전에는 성에서 살던 귀족들이 대도시로 나오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그들이 시골에서 거주하던 성채를 떠나게 만들려고 온갖 수를 다 썼다. 귀족들은 때대로 자의적인 명령을 무시하기도 했다. 그들은 지체가 높은 집단이었다. 그러나 베르사유에서만 군주가 하사하는 은급을 받을 수 있고,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가운데 점 하나가 정해지면서 귀족들은 오래된 성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들은 폐허가 되고 영주들의 힘도 사라졌다(p16)... 농업의 쇠퇴가 두드러졌다. 왕권은 더욱 빛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국가의 재산은 축이 났다. 대도시들이 형성됨으로써 나라는 상당한 손해를 입었지만, 몇몇 개인은 엄청난 특혜를 보았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17


 <파리의 풍경>에서 우리는 왕과 귀족들의 사냥터에 의해 둘러싸인 파리를 만나게 된다. 사냥터의 동물들에 대한 권리는 오직 왕과 귀족들에게만 있으며, 이들은 사냥을 당하기 전까지 법에 의해 엄격하게 보호된다. '왕의 짐승'만도 못한 파리 시민들. 이러한 법의 체계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대혁명의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파리 주변 8~10리외에서는 총을 쏠 수 없다. '국왕 전용 사냥터'와 왕족들의 토지가 모든 사냥권을 밀어내 버렸다. 이에 관해 만들어진 법은 왕국의 다른 법들과는 대조적으로, 잔인하다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가혹하다. 자고새 한 마리 죽이면 중노동형에 처해진다(p14)...  산토끼가 농민의 양배추를 먹어버리거나 비둘기가 수확을 망치고 잉어가 풀밭에 물을 대주는 강을 거슬러 올라오더라도, 잉어를 건드리지 말고 지나가게 하고 산토끼와 비둘기가 농작물을 먹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사슴을 죽이면 교수형을 당한다. 그처럼 끔찍하고 가증스러운 죄는 거의 유례가 없으며, 존속살해보다 훨씬 더 드물게 일어난다. 수렵재판소의 법규는 아주 특이하고, 우리 시대의 다른 법 중에서도 괴상하다. 실제로 그런 법규들은 존재하며, 모두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지나치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56


 한편, 파리는 주변을 둘러싼 사냥터에 의해 엄격하게 팽창이 제한된다. 제한된 면적의 파리는 그 안의 사람들을 양분화시킨다. 한 편에는 대규모 자금을 유통시키는 은행가들과 무위도식하는 금리생활자들이 있다면, 다른 한 편에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노동을 팔아 처절하게 살아가는 다른 계층이 있다. 


 지난 반세기 이래 어음 교환, 회수, 무수한 대부 등의 은행 업무가 신중하고 합리적이며 조심스런 법제를 대신해왔다. 행정 업무는 끝없이 계속되는 투기가 되어버렸다. 은행가들이야말로 프랑스의 지배자들이다. 그들은 돈을 들어오게 하고 나가게 한다. 그들은 유럽 끝에서부터 돈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또 사라지게 만든다. 그들은 위험한 마법사들이자 대담한 세계인들이다. 금을 수은 비슷하게 만들고 국고를 단번에 파산시켜 버리는 교묘하고 무시무시한 그 게임의 결과는 무엇일까? 돈의 빠른 유통은 적어도 우리에게 활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착각이 계속되면 더욱더 그렇지만 우리는 끝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87


 부자가 그 높은 집들에 기어올라가 금 조각을 몇 개 주고, 아직 무명이라서 먹고 살기에 급급한 젋은 예술가의 작품들에서 상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부자는 탐욕에 이끌려 노동자를 고생시키는 궁핍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유익할 수가 있다.... 한 여인이 모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먹을 것을 두고 다툰다. 불행한 남편의 노동은 가혹하기 짝이 없는 세금이 부과되는 식료품을 사기에 부족하다. 반쯤 열린 지붕 밑에서 울려 퍼지는 가난뱅이의 절규는, 근처에서 공기를 진동시키다가 사라지는 공허한 종소리와 비슷하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8


  파리라는 같은 물리적 공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심리적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평등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정책은 중단되었고, 제1신분 성직자와 제2신분 귀족의 권리와 신분은 계층 내에서 순환할 뿐이다. 파리의 순환되지 않는 대기보다 더 심각한 계층의 불평등은 사회적 공기마저 험악하게 만들었음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거리의 집들에 번지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유용한 활동은 중단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러나 대문들은 기록자가 번지수를 매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사실 판사, 징세청부업자, 주교의 저택에 어떻게 비천한 번호를 부과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그 저택의 위풍당당한 대리석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구도 로마에서 2인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390


 주교들은 음모와 아첨의 결실을 기다리며, 은밀히 공직에 오르려고 애쓴다. 그들은 끊임없이 막후에서 일을 꾸미고, 옛날에 예언자들이 격분했던 바빌론에 못지않게 죄가 많은 새로운 바빌론의 한복판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처럼 고위성직자들은 전적으로 세속적인 일에 전념한다. 순수한 도덕을 함양하고 지칠 줄 모르는 자선, 말하자면 사도다운 자선의 본보기를 보여줄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13


 고등법원 법관이 되는 데에는 징세청부업자가 되는 것보다 더 높은 지식이 요구되지 않는다. 변호사증을 구입한 사람은 박식한 것처럼 여겨진다. 변호를 맡을 거리는 많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재판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사람이 변론을 하면, 다른 사람은 앉아서 그 변론을 듣는다. 돈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사법관직을 판 초기의 군주들은 우리의 왕국을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상태로 망가뜨렸던 것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55


 앙시앵 레짐 체제 아래에서 짐슴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이들이 유일하게 대접받는 경우는 이들이 세금을 낼 때 뿐이다. 권리없이 의무만 부담하는, 왕의 사냥터에 둘러싸인 베르사유의 곳간 파리를 우리는 <파리의 풍경 1>에서 목격하게 된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피폐하고 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가운데 작은 불꽃이 도화선이 되어 대혁명으로 발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너무 결정론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의 풍경 1>에서 우리는 서유럽의 중심도시 파리의 화려함 대신 18세기 말의 어두운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속에서 역사의 진보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가난뱅이만 세금을 낸다. 가난뱅이에게는 모든 즐거움이 면제되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의무는 면제되지 않는다. 군주는 마음만 먹으면 도시를 굷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선량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새장에 가두어 놓고, 화가 나면 그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야 한다. 생명보존이 최우선 법칙이다. 이 도시는 번창하고 있지만, 그것은 국가 전체를 희생시킨 덕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11


 모든 자리, 즉 고위직, 민간직, 장교직, 성직은 돈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부자와 나머지 시민들 간의 거리는 나날이 커져 간다. 가난뱅이의 눈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치의 놀라운 발전 때문에 가난은 더욱 참기 어려워진다. 증오의 골은 깊어가고, 국가는 두 계급으로 나뉜다. 탐욕스럽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과 불평하는 사람들, 땅을 잘게 쪼개고 재산을 작게 나누는 방법을 찾아내는 입법자는 국가와 주민에게 크나큰 봉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몽테스키외가 "두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결혼이 이루어진다"는 아주 적절한 표현에 의해 밝힌 풍요로운 사상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9


소수에 집중된 부는 즐기는 사람에게나 시샘하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위험한 사치를 낳는다. 이 부가 덜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면, 호사가 야기하는 파괴적인 독 대신에, 노동의 근원이고 가정적인 미덕의 원천인 여유가 생겨날 것이다. 사람들의 재산이 거의 같은 수준인 국가는 모두 평온하고 행복하며 단결된 모습을 보인다. 오늘날 스위스가 그렇다. - P29

은행권, 다시 말해서 지폐만이 수도의 수많은 필요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지폐는 팔리지 않은 물건만큼 많은 기호를 만들어낼 것이다. 필요한 것이 많으면 기호도 그만큼 많아져야 한다. 우리 시대에는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은행권을 현명하고 절제된 비율로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은행권은 정부의 감독하에 유통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국립은행을 가동시키는 장치에 손을 대지 않고 공적인 부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 P32

누군가 말하길, 부는 쌓이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이미 있는 곳에 또 모인다는 것이다. 부는 쌓이면 쌓일수록 더 많아진다. 루소는 처음의 1에퀴가 나중의 100만 에퀴보다 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수도에서 실감할 수 있다. 이 모든 부자들은 재산을 가지고 뭘할까?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중요한 것, 유익한 것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이 부자들은 남는 시간에 하찮은 일을 쫓아다니느라 애쓴다. - P127

국고에 쌓아둔 거금을 앗아가는 손쉬운 재빠른 속도는 15만 명에 달하는 서기들의 고되고 끝없는 노력과 대비된다. 이들은 한 손에 검을 들고 다른 손에 붗을 들고 폭력적으로 조그만 조각들을 요구한다. 이 조각들은 엄청난 양의 주화 더미를 이루게 되지만, 저수 탱크 바닥에 쌓이자마자 녹거나 사라져 버린다. 압축의 빨펌프가 중단 없이 격렬하게 작동해도 저수 탱크는 거의 언제나 말라 있다. 그래서 국민은 극도로 지쳐서 무기력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쓰러질 지경이다. - P177

현재의 학습 진도표는 매우 잘못되어 있어서, 아무리 우수한 학생이 10년을 공부해도 모든 분야에서 배우는 것이 별로 없다. 문인들을 보면 참으로 놀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독학으로 배운 것이다. 먼저 한 언어를 철저하게 알아야 다른 언어를 잘 배울 수 있는데도, 많은 현학자들은 아동들이 모국어를 알기도 전에 라틴어를 가르치려고 한다. 우리의 모든 교육체제에서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는지! - P188

(샤를마뉴시대의) 그 훌륭한 정부의 균형상태가 카페 왕조의 초기 왕들에 의해 파괴되고 민족이 광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거대한 봉토를 강제로 왕실에 통합시키는 과정이 단지 인민을 적대적인 두 세력으로 분열시키는 데 그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삼부회 소집은 오랫동안 절대권력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서서히 절대권력이 발전했다. 카페 왕조, 발루아 왕조, 앙굴렘 가는 클로비스에 의해 시도되었다가 그 민족에 의해 강력하고 단호하게 분쇄되었던 바로 그 계획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때부터 민족은 눈부신 순간을 맞이했으나,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 P236

한편으로 나는 프랑스가 국가의 모든 사업을 수행할 만큼의 충분한 통화(通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가 재정을 영국의 수준으로 올려놓기에는 통화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프랑스는 다른 국가들보다 재정이 취약하다. 홀란드인은 프랑스인보다 5배 더 부유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명목화폐와 실물화폐를 결합시킨 국가들의 정책을 찬양하고 싶다. 자금의 이동이 늘어날 것이고, 은행을 통해 국가에 존재하는 현금 기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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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8-29 2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래 본 조사자료 중에 전세계에서 역사적, 문화적 등 모든 면에서 남한과 가장 유사한 나라가 일본, 대만, 중국, 북한 바로 다음 다섯 번째로 프랑스라는 말을 듣고 크게 충격받았지만, 한편으론 그럴 듯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8-29 22:24   좋아요 3 | URL
^^:)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유럽에서 우리나라와 유사점이 많은 나라를 찾는다면 저도 프랑스보다는 이탈리아가 더 생각나긴 합니다만, <파리의 풍경>안의 내용을 생각해본다면 프랑스에서도 적지 않은 공통점을 발견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08-29 22:23   좋아요 3 | URL
저도 이탈리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단 풍문 들어 눈여겨 찾아 보니 30번째 이상이었습니다. ㅋ
오히려 위에 말씀하신 네덜란드와 폴란드가 우리나라와 유사성이 더 많았습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2-08-29 22:28   좋아요 2 | URL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와는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그런 듯 합니다. 평판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하루 마무리 잘 지으세요!
 
왕의 도주 - 벼랑 끝으로 내몰린 루이 16세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5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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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6월 21일 밤 1시경 루이 16세는 가족과 함께 변장한 뒤 튈르리 궁을 몰래 빠져나가 뤽상부르(룰셈부르크)쪽 국경을 향해 달려갔다가, 결국 밤 11시에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 바렌에서 붙잡혔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10/380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5권 <왕의 도주 - 벼랑 끝으로 내몰린 루이 16세 Liberte>는 불과 하루 남짓한 루이 16세의 도주 배경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절대군주에서 입법(入法)권을 국회에 넘겨주고 프랑스를 위해 절대군주에서 입헌군주로 내려오겠다고 선언했던 루이 16세. 그러나, 파리에서 몰래 빠져나가고 남겨놓은 <왕이 파리를 떠나면서 모든 프랑스인에게 보내는 성명서>는 그간 입헌군주로서 자신이 행한 행위가 강박에 의한 것으로 무효임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정치적 유서가 되버렸다.

루이 16세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형편없게 되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겉으로는 혁명에 동조했지만, 절대군주제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글로 남겼다. 2년 동안 자신이 받아들이고 승인했던 수많은 법을 한순간에 부정했다. 게다가 그는 국회가 전보다 더 신뢰를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1791년의 현실을, 1,400년간 번영했던 군주제가 아니라 온갖 정치 클럽의 전제정 또는 무정부상태라고 진단했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305/380

그렇다면, 그는 어째서 입헌군주로서 자신을 부정하고 사실상 혁명을 부정했던 것이었을까. 혁명 이후 루이 16세의 몸은 튈트리(Tuileries)에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베르사유(Versailles)에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정신은 궁정사회의 질서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절대군주인 자신을 정점으로 형성된 커뮤니케이션의 장, 사교계에 익숙한 그에게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 ~ 1990)가 <궁정사회 Die ho"fische Gesellschaft>에서 강조했던 '결합태(Figuration)의 중심'에서 '국회의 배경'으로 전락한 상황은 마치 중세인들이 '지동설'을 받아들여야 했던 충격처럼 다가가지 않았을까. 루이 16세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도주라는 길을 택한다.

국회는 세습적 군주제와 대의정부를 합친 형태의 헌법을 채택했고, 입법부는 상설기구이고 종교인, 행정관, 판사들을 인민이 선출하는 체제를 만들면서 입법권을 구고히가 가지며, 법의 승인권을 왕이 가지도록 했다. 국내외의 공권력도 똑같은 원리 위에 조직했고 삼권분립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 새 헌법이라고 하면서, 왕은 이 헌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사실을 각국 대사가 외교활동에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혁명이란 수세기 동안 쌓인 수많은 폐단을 척결하는 일이며, 그 같은 폐단은 인민의 잘못이나 대신들의 권한남용 때문에 쌓인 것이지 왕들의 권한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p243)... 무모랭이 대변했듯이, 왕이 생각하는 프랑스 혁명은 혁명세력이 생각하는 것과 원칙적으로 같았다. 그러나 과연 왕은 진심으로 그 사실을 인정했던 것일까? _ 주명철, <왕의 도주> , p244/380

그렇지만, 혁명에 대해 위선적이었던 것은 루이 16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혁명에 대한 (좌파)의원들의 태도다. 이들은 국왕을 이용해 왕당파를 무마하고, 적대적이었던 외국(특히 오스트리아 제국)과 국내의 반혁명의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낮추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위선적이었다. 그들이 외치는 '국왕 만세'는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인질을 안도하게 하려는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면에서 본다면, 루이 16세 도주사건 직전까지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은 '궁정사회의 무도장'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자신의 진의를 가면으로 애써 감추고, 설사 알더라도 미소로 적당히 무마하며 넘어가는 사교장과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그들의 정치적 기만속에서 여러 법률들이 제정되어 나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루이 16세 뿐 아니라 프랑스 혁명 자체가 '궁정예법'의 패러다임에서 움직이는 앙시앵 레짐의 유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앙시앙 레짐의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말하는 개혁은 한계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결국 혁명의 완성은 과거에 대한 완전한 기억의 소멸로 끝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루이 16세의 도주 사건 후 분명해진 것은 가면 속에 진의를 숨겼던 왕이 본모습을 드러내면서, 국회 역시 더 이상 가면을 쓸 필요는 없어졌다는 점이다. 혁명의 파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다...

이처럼 4월 하순에 왕이 진심을 드러내기보다는 혁명에 동조하는 듯한 말로 쓴 편지는 좌파 의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좌파 의원들은 그것이 왕의 진심인 줄 알았을까? 비록 진심이 아닌 줄 알았더라도, 그들은 왕이 혁명에 동조한다는 편지를 전국에 알려 왕의 행동을 더욱 제약하고, 왕당파에게도 훌륭한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속내가 다르더라도 마지못해 맹세하는 행위는 장래의 행동을 규제하기 마련이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247/380

.그 뒤(루이16세의 도주사건과 귀환) 여론은 왕을 폐위하라고 난리였다. 그러나 국회는 여론을 외면했다. 정치가들은 왕이 순진하게 꾐에 빠져 납치당했다고 하면서 도주의 혐의를 벗겨주었다. 대중은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압박했고, 파리 시장은 계엄령을 내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해 여남은 명이나 학살했다.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이나 옛 프랑스의 왕을 모두 피해자로 둔갑시키려는 세력이 있고, 대중은 거기에 속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권력을 쥔 사람들은 대중의 의견을 존중하고 타협하는 척하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국을 이끌려고 노력한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10/380

루이 16세가 감행한 30시간의 모험은 완전히 실패했다. 루이 16세가 다스리던 왕국은 이제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었음을 오지 마을인 바렌이 증명했다. 그것은 프랑스 왕국이 이제 국민국가로 거듭 태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1790년 7월 14일의 전국연맹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 연대감을 읽을 수 있다. 신분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왕의 군대가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연맹의 정신을 구현하는 국민방위군 앞에서 맥을 못 추는 현실에서 이 사건이 갖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사건이 끝난 뒤에도 왕이 자리를 유지하긴 해도, 그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고, 수동시민들의 정치무대에 뛰어드는 일이 잦아지면서 혁명이 급진화하게 된다. _ 주명철, <왕의 도주> , p337/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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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and Japan court disaster 한국과 일본 법원의 참사


Yoon Suk-yeol has historic ambitions for his country’s relationship with its neighbour Japan. On August 17th South Korea’s president said that the two countries’ enmity, stemming from Japan’s colonial rule over Korea from 1910 to 1945, could be swept aside “amicably and promptly”. His enthusiasm is understandable - a bit of bonhomie could make both countries richer and more secure, especially in the face of rising tensions in the region.


 윤석열은 이웃 일본과의 외교관계에 대한 역사적 야망이 있다. 8월 17일 한국  대통령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통치에 기인한 양국의 적대감을 "우호적이고 신속하게" 해소될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열정은 이해할 만하다. 특히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이는 현상황에서 작은 친밀감이라도 이들 나라를 더 부유하고 안전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His optimism makes less sense. The path to rapprochement is long and treacherous, and the journey could end almost before it has begun. In 2018 South Korea’s courts approved the seizure of assets from certain Japanese companies, on the basis that Koreans had been forced to toil on their behalf during the second world war. The liquidated assets would be given to the victims. The companies refused to pay, but the court’s final decision may come as early as Friday. Forcing the firms to pay up will enrage Japan, and will probably put pay to Mr. Yoon’s aspirations.


 (그렇지만) 그의 낙관주의는 타당하지 않다. 관계 회복의 길은 멀고 험난하며, 그 여정은 채 시작되기도 전에 끝날 수 있다. 2018년 한국 법원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한국인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이유로 일부 일본 기업의 자산 압류를 승인했다. 청산된 자산은 피해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회사는 지불을 거부했지만 법원의 최종 결정은 빠르면 금요일에 나올 예정이다. (일본)기업들에 대한 배상 강제는 일본을 화나게 할 것이며 아마도 윤 대통령의 열망을 잠잠하게 만들 것이다.


 아침에 본 <The Economist>의 오전 briefing 기사. 빠르면 오늘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예정인 가운데 국내 언론들은 사안의 엄중함보다는 한일관계 개선과 일본의 우려를 집중조명하며 법원에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중이다. 광복절에 일본과 관계회복을 경축사로 내보내는 대통령과 일본정부의 입을 자처하는 언론들 속에 우리들의 사법주권은 지켜질 수 있을까. 어설프고 역사의식 없는, 외신보다도 사안에 대한 파악이 안되는 대통령과 정부의 행태에 피해자들의 권리와 마음이 짓밟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두워지는 금요일 아침이다... 


 공탁이란 채권자가 채무금 수령을 거부할 때, 수령이 불가능할 때, 채무자가 채권자를 확정할 수 없을 때 이루어지는 민법상의 행위이다. 공탁되는 순간 채무자는 해당 채무와 관련하여 법적 의무에서 해방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일본 민법 제494조, 정령 제22호에 의해 공탁하도록 일본 정부가 지시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_ 허광무 외, <전시 한인 노동력 동원> , p578/734


 미불금 공탁은 일본 기업의 채무 책임을 면해 주는 데 기여했을지언정 조선인 노무자의 권리 구제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조선인 미불금은 공탁하지 않더라도 제도적으로 이를 규제할 수 없었는데, 오히려 조선인 미불금을 축소/은폐하여 적립금에 포함시킴으로써 기업이 전쟁손실에 보전하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다. 공톽되지 않은 수많은 조선인 노무자의 권리 구제는 어떡할 것인가. 한/일 양국이 해결하지 못한 숙제이자 피해자 권리 구제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이다. _ 허광무 외, <전시 한인 노동력 동원> , p59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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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9 08: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사의식 없는...어설픈데,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ㅠ

겨울호랑이 2022-08-19 09:14   좋아요 4 | URL
네... 앞만 바라보고 정신승리하면서 검찰까지는 그럭저럭 갈 수 있었습니다만, 보다 폭넓은 식견과 투명함이 요구되는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서는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생각됩니다. 대통령으로서 능력의 한계는 대기업 사장 출신 전직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짐작못할 바는 아니없습니다만... 패거리 정치의 전례는 과거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공신 숙청에서 유사함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나마 한고조는 생전에 공신을 숙청하고 사후에 여태후가 실권을 휘둘렀습니다만, 취임 100일도 안 되는 시점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참담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9 09: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늘 강제징용 판결 참 걱정입니다...ㅠㅠ 우리는 꿇릴 것이 없는데 정부가 저자세로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없이는 온전한 해결법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9 09:17   좋아요 3 | URL
네 그렇습니다.... 스포츠 한일전의 결과에는 그렇게 민감하면서도, 대리인의 친일성향에 대해서는 아파트 가격만큼의 중요성으로 판단하지 않은 대가를 우리가 지불하는 것이겠지요... 정말 우리가 무엇에 더 무게중심을 두어야 하는가를 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만, 그러기에는 피해자분들의 희생이 너무 컸다는 점이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마음 아프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