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군주와 신하는 피붙이와 같은 친분이 있는 사이가 아니므로 정직한 방법으로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면 신하는 힘을 다해 군주를 섬긴다. 그러나 정직한 방법으로 안락함을 얻을 수 없다면 신하는 사사로움을 추구해 군주에게 발탁되기를 구할 것이다. 현명한 군주는 이를 알고 있어 이롭거나 해로운 이치를 설정하여 천하에 제시할 뿐이다. 무릇 이 때문에 군주가 비록 [자신의] 입으로 많은 관리들을 가르치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간사한 자를 찾아내지 않아도 나라는 잘 다스려진다.
어리석은 자는 본래 다스려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다스리는 방법을 싫어하고, 모두 위태로워지는 것은 싫어하면서도 그 위태롭게 되는 방법을 좋아한다. 무엇으로써 이를 아는가? 무릇 형벌을 엄하고 무겁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나라가 다스려지는 까닭이며, 백성을 가엾게 여겨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이지만 나라가 위험해지는 까닭이다.
나라가 흥할 것인가 망할 것인가 하는 관건은 반드시 그 나라가 잘 다스리는 것과 혼란스러운 것, 부강함과 쇠약함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는가에 달려 있다.
법도가 세워지는 것은 군주의 보배이며 패거리를 갖추는 것은 신하의 보배가 된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지 못하는 것은 패거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한 치라도 잘못하게 되면 신하는 그 갑절의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나라를 갖고 있는 군주는 그 신하의 도읍을 크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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