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시오노 나나미(?野七生, 1937 ~ )가 저술한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역사서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1997년 처음 <로마인 이야기>를 접한 후 15권이 나올 때까지 매년 읽은 후 별도로 정리하지 않았던 이 책을 최근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의 <몸젠의 로마사>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 ~ 1794)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으며,  로마사를 돌아보던 중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 1권을 통해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와 그녀의 역사관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무기들과 한 전사를 나는 노래하노라. 그는 운명에 의해 트로이야의 해변에서 망명하여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라비니움의 해안에 닿았으나,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하늘의 신들의 뜻에 따라 숱한 시달림을 당했으니 잔혹한 유노가 노여움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에서도 많은 고통을 당했으나 마침내 도시를 세우고 라티움 땅으로 신들을 모셨으니, 그에게서 라티니족과 알바의 선조들과 높다란 로마의 성벽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아이네이스>(제1권 1 ~ 7)


 <로마인 이야기> 제1권은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E 70 ~ BC19) <아이네이스>처럼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공화정 초기까지의 로마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테베레강 유역에서 출발한 로마가 삼니움 족, 에트루리아 왕국, 켈트(갈리아)족의 침입을 극복하고 이탈리아 반도의 맹주로 자리잡는 과정을 시대순으로 그려낸다. 1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로마는 그리스와 어떤 점이 달랐는가?'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시오노 나나미는 이 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로마와 그리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1. 로마는 그리스와 어떤 점에서 달랐는가? : 시오노 나나미


 저자가 생각하는 그리스인들은 모험심이 많으나, 단결심이 부족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단결심이 약한 그리스인들은 정치적으로도 한계를 보이게 된다. 대표적인 그리스 폴리스인 아테네 민주정의 끝은 결국 참주정(독재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대(大) 그리스"라고 부른 이유는 이런 도시들이 급속히 발전하여 단기간에 풍요로운 번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이미 높은 문명을 가진 그리스인이 정착했으니까, 모든 면에서 시행착오가 없다. 급속한 번영의 요인은 지나칠 만큼 골고루 갖춰져 있었다(p35)...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지만, 단결심과는 인연이 멀었다. "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도 서로 힘을 합하여 공동으로 싸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p38)"


 '아테네 정치체제의 변화는 그야말로 정치 교과 그 자체여서, 우리에게 정치체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큰 시사가 되지만, 이 무렵에는 아테네도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와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나르키아 끝은 '티라니아', 즉 독재정치다. 무정부 상태의 혼란과 계속되는 권력투쟁에 지친 아테네 시민들은 질서만 회복된다면 그밖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스스로 실현할 능력이 없는 그들은 한 사람에게 질서 회복의 임무를 맡겼다.(p120)'


  또한, 그리스인들이 개척한 해외 식민지의 경우에도 본국과 거의 단절된 채 발전했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도시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대 그리스"의 그리스인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본국의 그리스인과 정치적 유대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스파르타인의 식민지로 출발한 타렌툼도 군사 국가인 스파르타와는 반대로 아테네적인 통상 국가로 번영해 왔다. 하지만 스파르타인이 건설한 타렌툼도, 코린트인이 건설한 시라쿠사도, 그리스 적인 성향은 그대로 물려받았다. 도시국가로 태어난 뒤에도 계속 도시 국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국가의 중심인 도시와 그 주변을 제외하고, 그 이상의 범위까지 세력을 넓히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p270)'


 이에 반해, 로마는 그리스에는 없는 두가지 장점이 있었다. 켈트(갈리아)인들의 침입으로 인해 로마까지 빼앗겼던 로마는 철저하게 외부의 장점을 모방하고, 자신의 적대 세력까지 포섭하는 정책으로 인해 자신의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고, 이러한 점을 발전시켜 결국 제국(Empire)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켈트족의 로마 점령은 엄청난 큰 사건이었다. 그리스를 비롯하여 이웃 나라들도 로마인의 비참한 패배를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밑바닥에 떨어진 채 올라오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민족도 적지 않다. 로마인은 기원전 390년에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로마인답게 느리면서도 착실하게 다시 기어올라 온 것이다.(p190)...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침입은 로마인에게 철퇴를 가했지만, 그 이후의 로마를 이야기하다 보면 미몽에서 완전히 깨어난 사람의 행동을 추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p191)'


 '그리스 땅에서 폴리스(polis)가 스스로 무너진 과정도 로마인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아테네든 스파르타든 폴리스적인 국가는 단명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로마인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로마인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만 보는 사람들이 모방의 민족이라고 경멸할 만큼 다른 민족한테서 많은 것을 배운 민족이었다.(p196)'


 '로마는 앞으로도 과두정치, 즉 소수 지도체제로 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그리고 공화국 정부의 모든 요직을 평민 출신한테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깊은 통찰력에 뒷받침된 현명한 결단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리키니우스 법"을 입안한 평민 출신의 리키니우스와 그 생각을 법제화하는 데 찬성표를 던진 귀족돌은 계급별 분배가 아니라 전면 개방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p203)'


 '신흥세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새로 대두하는 또 다른 신흥세력을 편입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끌어안기를 영원히 계속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기원전 1세기까지 300년 동안은 이 "끌어안기" 방식이 유효하게 기능을 발휘했다.(p206)'


 결국,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성공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는 단결을 하지 못해 세계 제국으로 도약을 하지 못한 반면, 악조건 속에 있던 로마는 특유의 포용력으로 이 시기 이미 세계 제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제국을 지향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관(世界觀)이기도 하다. 제국을 꿈꾸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관 속에서 과거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를 부르짖던 일본제국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이 지점에서 우리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림] 욱일기를 앞세우고 제국을 꿈꾸는 일본(출처 : http://luckcrow.egloos.com/m/2416330)


 사실, 시오노 나나미의 이러한 세계관은 <로마인 이야기> 이전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동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경합을 벌였던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흥망을 시오노 나나미는 이와 유사하게 해석하고 있다. 개인적인 제노바인들은 결국 도시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한 반면, 유기적인 조직을 갖추었던 베네치아는 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번영할 수 있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은 한결같은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역사를 위와 같은 관점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 문제는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가의 말을 빌려 답(答)을 해보자.


 2. 그리스와 로마는 각각 바라봐야 한다 : 몸젠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은 그의 저서 <몸젠의 로마사>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바라보는 역사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종교와 문학의 통일을 이룩한 희랍인들의 강력한 지적 발전은 그들의 진정한 정치적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국가적 통일에 필수적인 순수성, 유연성, 자기 헌신, 융합 가능성을 상실했던 것이다. 이제 유치한 역사관을 떼어버릴 때가 되었는데 희랍인의 장점을 로마인의 단점에, 로마인의 장점을 희랍인의 단점에 비추어 비교하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 세계가 이룩한 두 위대한 국가를 비난하거나 칭찬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결점을 토대로 자신만의 탁월함을 성취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두 국가가 서로 상이하게 성장한 가장 깊고 궁극적인 이유는, 성장의 시기 동안 라티움은 근동과 접촉하지 않고 희랍은 접촉했다는 것이다.(p252)'


 그리스와 로마를 서로 비교할 것이 아니라, 각각 그 자체로 봐야한다는 몸젠의 관점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몸젠은 <몸젠의 로마사>에서 사실적인 기록과 언어학적인 분석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가 매우 강한 영향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서술하고 있으며, 각각의 문명 그 자체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보다 객관적인 역사책이라 생각된다. <몸젠의 로마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에서 다룰 예정이다. (별로 기다리시는 분은 없겠지만, 그렇게 써둔다.)


  <몸젠의 로마사>를 읽은 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 책 곳곳에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과 적품의 소설적 특징을 보다 깊이 느끼게 된다. 특히,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역사가가 아니니 이런 상상을 해본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던져놓고 다음으로 말을 돌리는 저자의 화법을 우리는 15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로마인 이야기>를 마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로 접근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스를 시찰하기 위해 저 멀리 로마에서 찾아와, 1년 동안 머물렀던 세 명의 로마인이 본 것은 바로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였다.(p156)... 그러나 로마는 이 아테네를 모방하지 않았다. 강대한 아테네도 항상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스파르타를 모방하지도 않았다. 쇠퇴기에 접어든 나라를 찾아가 거기에 나타난 결함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절정기에 있는 나라를 시찰하고도 그 나라를 흉내내지 않는 것은 보통 재주가 아니다.(p157)'


 '만약 이 시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천재와 정열을 동방이 아니라 서방에 쏟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시기적으로는 충분히 성립된다. 만약에 알렉산드로스가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면, 한창 융성의 길로 나아가고 있던 로마와 격돌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테고, 만약 그랬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p248)... 리비우스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알렉산드로스가 상대였다 해도, 최종적으로는 로마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p249)'


  이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 역사를 처음 접하거나, 역사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전체적인 흐름을 잡는 용도로 읽기에 좋은 입문소설(入門小說)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상세 내용과 관련해서는 비판적으로 읽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 BCE 100 ~ 44)를 다룬 제5권과 6권에 서 로마제국의 추종자로 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카이사르는 거의 군신(軍神) 수준으로 그려진다. 저자도 책에서 카이사르의 팬(fan)임을 공언할 정도이다. 전체 15권이 약 1,000여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한 인물에 2권을 할당하는 자체가 이미 이 시리즈의 편향성을 말해준다.) 그래서, 향후 페이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는 버리고, <몸젠의 로마사>, <로마제국쇠망사>를 따르도록 하되, 참고자료 정도로 활용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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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0-02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휴임에도 역시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17-10-02 22:28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밤늦게 놀 수 있어 좋네요 ㅋ

서니데이 2017-10-02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와 체사레 보르자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로마와 르네상스인 걸까요. 읽은지 오래되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역사서 보다는 역사소설 가까운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2 22:31   좋아요 3 | URL
^^: 네 그런것 같네요. 사실 체사레도 라틴어 식으로 읽으면 ‘카이사르‘이니, 아무래도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빠‘인것 같아요.ㅋㅋ 서니데이님 즐거운 연휴 초반기 되세요^^:

2017-10-0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10-02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로 겨우 로마를 이해하고 있는 저로선, 몸젠과 기번의 저작물을 꼭 읽어봐야겠네요.
이거...언제 다 읽어요..ㅠ.ㅠ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0-02 23:41   좋아요 2 | URL
^^: 저랑 같이 가시지요 ㅋ 북프리쿠키님 너무 앞서가시면 반칙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10-02 23:42   좋아요 2 | URL
ㅋ 저야..호랑이님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집니다..ㅠ.ㅠ

겨울호랑이 2017-10-02 23:46   좋아요 2 | URL
제가 알기로 몸젠은 「로마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문학에 관심 많으신 북프리쿠키님께서 보다 즐겁게 읽실거라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17-10-02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이 시리즈를 기를 쓰고 다
읽었었는데, 시오노 할매의 망언을
듣고 나서 기운이 다 쏙 빠져 버렸습니다.

극우인사의 세계관에 참 씁쓸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0-03 06:32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한창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시대를 다룬 다른 작품을 보니 작가의 편향성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균형잡힌 독서의 중요성도 느끼게 됩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수양 2017-10-03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글쿤요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에 홀려 열심히 로마인 이야기를 읽던 중에 이 글을 접하니 갑자기 손에 쥔 책에 경계심(!)이 생깁니다 ㅋ 몸젠의 로마사 리뷰도 기대되요!!! 겨울호랑이님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3 06:36   좋아요 0 | URL
^^: 수양님 감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로마인 이야기」는 소설가 특유의 경쾌한 진행이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장점만 받아들인다면, 「로마인 이야기」역시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수양님. 긴 한가위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독서괭 2017-10-03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 중 한니발편과 카이사르편, 그리고 다른 책 <체사레 보르자>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서야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었죠.. 필력이 너무나 좋은 작가일수록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3 2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체사레 보르자를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서 전국시대의 일본을. 체사레 보르지아에게서 오다 노부나가를 느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긴 연휴네요. 독서괭님 행복한 추석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