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 서광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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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신에 대하여


스피노자는 [정의]를 바탕으로 신(神)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신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다.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은 모든 것에 내재한다.  신은 생산하는 자연(Natura naturans)이며, 사물은 이로부터 생산된 자연(Natura naturanta) 이고, 신의 능력은 본질 그 자체다.


[정리 14] 신이외에는 어떤한 실체도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파악될 수도 없다.

[정리 15]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도 또 파악될 수도 없다.

[정리 18] 신의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이지 초월적 원인은 아니다.

[정리 19] 신 또는 신의 모든 속성은 영원하다.

[정리 20] 신의 존재와 신의 본질은 동일하다.

[정리 24] 신에서 산출된 사물의 본질은 존재를 포함하지 않는다.

[정리 29] 사물의 본성에는 어떤 것도 우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게끔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정리 31] 현실적 지성은 유한하든 무한하든 간에 의지, 욕망, 사랑 등과 같이 생산하는 자연이 아니라 생산된 자연에 포함된다고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정리 34] 신의 능력은 신의 본질 자체이다.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유일하다는 것, 오로지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서만 존재한다는 것, 만물의 자유 원인이며 또한 어떤 의미에서 자유 원인인가 하는 것,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하며 신 없이는 존재할 수도 파악될 수도 없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은 신에 의해서 예정되어 있다는 것, 더욱이 그것은 의지의 자유나 절대적 재량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절대적 본성이나 신의 무한한 힘(potentia)에 의한다.'(p68)


스피노자는 신의 본성을 '능동성'으로 해석하며, 사물 생성 조건을 형상인(形相因), 질료인(質料因), 목적인(目的因), 운동인(運動因)으로 구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인론을 비판하고 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능동적이며 긍정적인 자연 그 차제다.


'그러므로 지금, 자연은 자신에게 아무런 목적도 설정하지 않고 또한 모든 목적인은 인간의 상상에 지나지 않음을 밝히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목적에 관한 이 이론은 자연을 전적으로 전도시킨다.... 이 이론은 최고의 가장 완전한 것을 가장 불완전한 것으로 만든다.'(p71)... 


'따라서 우리들은 대중이 자연을 설명하려고 사용하는 모든 개념은 오직 표상의 양식(樣式)일 뿐이고 사물의 본성을 표시하지는 않으며, 단지 표상의 상태를 표시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안다. ... 나는 이것을 "표상의 유(entia imaginationis)"라고 부른다.'(p76)


제2부 정신의 본성과 기원에 대하여


'데카르트(Rene Descartes)도 적지 않게 이 견해에 기울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영혼이나 정신은 "송과선(松果線, glandulae pineale)"이라는 뇌의 어떠한 부분과 특히 결합되어 있다는 것, 정신은 이 선(線)에 의해 신체 안에서 생기는 모든 운동과 외부의 대상을 감각한다는 것, 또한 정신은 오직 의지하는 것만으로도 이 선을 여러 가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p330)


데카르트에 따르면 정신과 신체는 각각 개별적으로 인식되는 실체이며, 이들이 '송과선'에서 통합적으로 지각되는 반면, 스피노자는 정신의 속성인 사유(cogitato)와 신체의 속성인 연장(extensio)은 모두 신에게 속한다. 


또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가 단순한 사실에 불과하며, 자유의지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오류는 손상되고 혼란스런 관념이 포함하는 결핍에만 있다. 그러므로 거짓된 관념은 그것이 그릇된 한에서 확실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거짓된 관념에 만족하여 전혀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우리들이 말할 때, 그것은 그 사람이 그것에 대하여 확실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나지 않는다.(p140)'


'첫 번째 반론에 대하여 ...만일 사람들이 지성을 명석하고도 판명한 개념으로만 이해한다면, 의지가 지성보다 범위가 넓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의지가 지각이나 사유 능력보다 범위가 넓다는 것은 부정한다.'(p143)


'두 번째 반론에 대하여 나는 판단을 보류하는 자유로운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부정함으로써 답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판단을 보류한다고 우리가 말할 때, 그것은 그가 사물을 타당하게 지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 판단의 보류는 지각이지 자유 의지가 아니다.'(p144)


<에티카> 제2부에서 데카르트의 방법론과 실체관(물심이원론)에 대한 비판을 가하면서,  스피노자는 정신의 본성과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정신에 의해 지각되며, 관념의 대상은 오직 신체일 뿐이다. 또한, 타당한 관념과 마찬가지로 부당하고 혼란스러운 관념 또한 필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스피노자의 견해다.


[정리 1] 사유는 신의 속성이다, 또한 신은 사유하는 것이다.

[정리 2] 연장은 신의 속성이다, 또는 신은 연장된 것이다.

[정리7] 관념의 질서와 결합은 사물의 질서와 결합과 동일하다.

[정리9]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물의 관념은, 신이 무한일 경우에 한해서가 아니라  신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른 개물의 관념으로 변용한 것으로 고찰되는 한에서 신을 원인으로 소유하며, 이 관념도 역시 신이 또 다른 제3의 관념으로 변용한 한에서 신을 원인으로 소유하고,,, 이처럼 무한히 진행된다.

[정리 12]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인간 정신에 의하여 지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또는 정신 안에는 이 사물의 관념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만일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이 신체라면, 신체 안에는 정신에 의하여 지각되지 않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리 13] 인간 정신을 구성하는 관념의 대상은 신체이거나, 또는 오직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연장의 양태일 뿐이다.

[정리 19] 인간 정신은 오직 신체가 받는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만 인간 신체 자체를 인식하며 또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

[정리 20] 신 안에는 또한 인간 정신에 대한 관념이나 인식이 있다. 이것들은 인간 신체의 관념이나 인식과 같은 방식으로 신 안에 생기며, 같은 방식으로 신에게 귀속된다.

[정리 26] 인간 정신은 자기 신체의 변용의 관념에 의해서만 외부 물체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정리 36] 부당하고 혼란스러운 관념은 타당하고 명석 판명한 관념과 똑같은 필연성을 가지고 생긴다.

[정리 39] 인간의 신체와 인간의 신체가 자극받기 쉬운 약간의 외부 물체에 공통적이며 고유한 것, 그리고 이들 각 물체의 부분이나 전체에 똑같이 있는 그러한 것의 관념도 정신 안에서 타당할 것이다.


제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정신의 수동 상태라고 불리는 정서는 혼란된 관념인데, 그것에 의하여 정신의 자신의 신체나  신체의 일부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크거나 작은 존재력을 긍정하고, 정신은 그것의 소여에 의하여 어떤 것을 다른 것보다 한층 더 많이 사유하도록 결정된다.'(p236)


스피노자에 따르면 정서는 "정신의 수동 상태"로서 신체와 정신의 상호 작용을 받는다. 이러한 상호 작용에서 능동은 타당하며 긍정적인 반면, 수동은 타당하지 않고 부정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정서의 이러한 속성는 현재 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관점은 '영원의 상'이라는 초월적 시간관과 연결된다.)  


[정리 1] 우리의 정신은 어떤 점에서는 작용을 하지만, 어떤 점에서는 작용을 받는다. 즉 정신이 타당한 관념을 갖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작용하고 타당하지 못한 관념을 갖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작용을 받는다.

[정리 2] 신체는 정신을 사유로 결정할 수 없으며, 정신도 신체를 운동이나 정지로 그리고 (만약 다른 어떤 것이 있다면) 다른 어떤 것으로 결정할 수 없다.

[정리 3] 정신의 능동은 오직 타당한 관념에서만 생기지만, 수동은 타당하지 않은 관념에만 의존한다.

[정리 8] 각 사물이 자신의 존재 안에 지속하고자 하는 노력은 유한한 시간이 아니라 무한정한 시간을 포함한다.

[정리 12]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을 가능한 한 표상하고자 한다.

[정리 15] 모든 사물은 우연에 의하여 기쁨이나 슬픔 또는 욕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정리 18] 인간은 현재의 사물의 표상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과거 또는 미래의 사물의 표상에 의해서도 동일한 기쁨과 슬픔의 정서로 자극된다.


사물의 본질은 완전성이며 이것은 신의 본성과 같다. 사물의 실재성을 긍정할 때 보다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성'의 안내를 통해 긍정을 하게 되며 신의 본성으로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즉, 정신은 그것에 의하여 자신의 신체나 신체의 일부에 대하여 이전보다 더 크거나 작은 존재력을 긍정한다... 그리고 정서의 형상을 구성하는 관념은 신체 자체나 신체의 어떤 부분이 가지는 활동력이나 존재력이 증대하거나 감소하거나 촉진 되거나 방해받음에 따라서 신체나 신체의 일부가 표시하는 상태를 지시하거나 표현하지 않으면 안된다.'(p236)


'정신의 본질은 자신의 신체의 현실적 존재를 긍정하기 때문에 또한 우리들은 완전성을 사물의 본질 자체로 이해하기 때문에 다음의 결론이 나온다. 즉 정신이 자신의 신체 또는 그 일부에 대하여 이전보다 크거나 작은 실재성을 포함하는 어떤 것을 긍정할 때면 언제나 정신은 더 크거나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한다. 그러므로 정신의 사유 능력이 증대하거나 감소한다고 앞에서 내가 말했을 때, 그것은 오직 정신이 자기의 신체나 그 일부에 대하여 이전에 긍정한 것보다 크거나 작은 실재성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관념을 형성한다는 것을 뜻할뿐이다.'(p237)


제4부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정신의 수동 상태인 정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스피노자는 '예속'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절대적인 '선(善)'과 '악(惡)'을 부정하면서 완전성을 사물의 본질로 인식한다. 절대악(絶代惡)을 부정하는 스피노자의 선악관은 악을 '선의 결핍(缺乏)'으로 해석한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354 ~ 430)를 연상시킨다.


'정서의 통제와 억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한다.'(p241)


'선과 악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것들 또한 우리들이 사물을 그 자체로 고찰할 경우 사물에 있어서의 아무런 적극적인 것도 지시하지 않으며, 사유의 양태나 우리가 사물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되는 개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고 악일 수 있으며 또한 양자와 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p244)


'나는 이미 말한 것처럼 일반적으로 완전성을 실재성으로 이해한다. 즉 각각의 사물이 특정한 방식으로 존재하며 작용하는 한, 완전성은 그 사물의 본질이다.... 사물의 본질은 아무런 특정한 또는 결정적인 존재의 시간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p245)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신)의 일부이고, 정서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는(또는 더 강한) 정서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는 정서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우리의 본성에 따라 '신'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리 4]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인간이 오로지 자기의 본성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변화, 곧 자신이 타당한 원인이 될 만한 변화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리 7] 정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정서, 그리고 억제되어야 할 정서보다 더 강한 정서에 의지하지 않고는 억제될 수도 없고 제거될 수도 없다.

[정리 8] 선과 악의 인식은 우리들이 그것을 의식하는 한에서 기쁨이나 슬픔의 정서일 뿐이다.

[정리 10] 우리들은 빨리 나타나리라고 표상되는 미래의 사물에 대해서는 그 출현 시간이 현재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다고 표상될 때보다 한층 더 강하게 자극받는다.

[정리 18]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다른 사정이 같을 경우,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보다 강하다.

[정리 19] 각자는 자기가 선이나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을 자신의 본성의 법칙에서 필연적으로 욕구하거나 또는 피한다.

[정리 24] 참으로 덕으로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기초로 행동하고 생활하며 자기의 유를 보존하는 것일 뿐이다.

[정리 28] 정신의 최고의 선은 신의 인식이며, 정신의 최고의 덕은 신을 인식하는 것이다.

[정리 31] 어떤 사물은 우리의 본성과 일치하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선이다.

[정리 65] 우리들은 이성의 명령에 따라 두 가지 선에서 더 큰 것을 그리고 두 가지 악 중에서 더 작은 것을 따를 것이다.

[정리 68] 만일 사람들이 자유롭게 태어났다면, 그들이 자유로운 동안에는 아무런 선과 악의 개념도 형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것 그리고 우리들이 인간의 참다운 자유에 대하여 제시한 이와 유사한 것들은 용기, 즉 정신의 강함과 관대함에 관계된다... 말하자면 미움은 사랑에 의하여 정복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성에 따라 인도되는 각자는 자기를 위하여 욕구하는 선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욕구한다는 것에서 쉽게 증명된다....정신이 강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참다운 인식의 장애들, 즉 미움, 분노, 질투, 조롱, 오만과 우리들이 앞에서 주의한 여러 가지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p314)


제5부 지성의 능력 또는 인간의 자유에 대하여


스피노자는 '정신'을 통해 신의 관념에 연관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인간의 정신은 '개별 사물'을 통해 '영원한 상' 아래에서 실체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성적 행동을 통해 우리는 쾌락을 멀리하고 지복(至福)에 이르게 된다.


[정리 6] 정신은 모든 것을 필연적으로 인식하는 한에서 정서에 대하여 더 큰 힘을 가지거나 정서의 작용을 덜 받는다.

[정리 14] 정신은 신체의 모든 변용 또는 사물의 표상상을 신의 관념에 연관되게끔 할 수 있다.

[정리 16] 신에 대한 사랑은 정신을 가장 많이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리 17] 신은 수동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어떠한 기쁨이나 슬픔의 정서에 의해서도 작용받지 않는다.

[정리 23] 인간의 정신은 신체와 함께 완전히 파괴될 수 없고 그 가운데 영원한 어떤 것이 남는다.

[정리 24] 우리는 개물(個物)을 많이 인식하면 할 수록 신을 더 많이 인식하다. 또는 신에 대한 이해를 그만큼 더 많이 가진다.

[정리 29] 정신은 영원한 상 아래에서 인식하는 모든 것을 신체의 현재의 현실적 존재를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체의 본질을 영원한 상 아래에서 파악하는 것에 의해서 인식한다.

[정리 30] 우리들의 정신은 자신과 신체를 영원한 상 아래에서 인식하는 한에서 필연적으로 신에 대한 인식을 소유하며, 자신이 신 안에 있으며 신에 의해서 파악된다는 것을 안다.

[정리 36] 신에 대한 정신의 지적 사랑은, 신이 무한한 한에서가 아니가 영원한 상 아래에서 고찰된 인간 정신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는 한에서 신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신의 사랑 자체이다. 

[정리 40] 각 사물이 완전성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것은 활동적이고 작용을 덜 받는다. 반대로 각 사물이 활동하면 할수록 그것은 완전하다.

[정리 42] 지복은 덕의 보수가 아니라 덕 자체이다. 우리들은 쾌락을 억제하기 때문에 지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복을 누리기 때문에 쾌락을 억제할 수 있다.


지복에 이르기 위해 스포노자는 다음과 같은 현자의 삶을 제시한다. 스피노자가 제시하는 현자(賢者)의 모습에서 우리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삶을 실천하는 선비(士)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현자는 현재로서 고찰되는 한에서 거의 영혼이 흔들리지 않고 자신과 신과 사물을 어떤 영원한 필연성에 의해서 인식하며, 존재하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고 언제나 영혼의 참다운 만족을 소유한다.'(p367)


<에티카>에 나타난 스피노자의 사상은 세계를 이원화시켜 판단한 기존의 서양철학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고, 이러한 스피노자의 독창성이 <에티카>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그렇지만, 스피노자의 철학은 동양사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동양적 관점에서  스피노자를 이해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에티카>만의 독특한 용어와 구조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한 장애를 걷는다면 '이성을 통해 본성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라'는 말을  <에티카>에서 발견하게 된다. 길었던 <에티카> 리뷰는 마지막 문장으로 마친다.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Sed omnia par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ps. [페이퍼] 수록 용어 해설.


1. 용어 해설(출처 : 책세상)

2. <에티카>의 구조(構造)

3. 아리스토텔레스 4원인론

4. 데카르트의 실체관 :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

5, <에티카>의 정의 (출처 : 서광사 版)

6. 영원의 상(相) 아래서 (sub specie aeternita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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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3-27 1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피노자도 그렇고, 톨스토이도 그렇고.

책을 읽지 않으면, 또는 그들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면 착각하게 만드는 구절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7 13:51   좋아요 2 | URL
아직 톨스토이 작품을 읽지 않아 잘 모르겠습니다만, <에티카>의 경우 마립간님 말씀처럼 구체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스피노자의 사상을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스피노자가 생각하는 ‘정의‘에 대한 선파악 후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립간 2017-03-27 14:59   좋아요 1 | URL
스피노자나 톨스토이에 관한 제 경험이 단편적이라 ... ; 혹시 제 글에 오해가 있을까하여 추가 댓글을 남기면

경험을 말씀들이면 ; 개신교에서 톨스토이 책을 많이 (또는 자주) 추천합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현재 개신교 신앙에서 이단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많이 주장합니다. 스피노자도 비슷하구요.

겨울호랑이 2017-03-27 15:02   좋아요 0 | URL
^^: 네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비록 <에티카>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 베드로의 경험 등이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만 근원적인 부분에서 기독교 사상과 양립하지 못하는 것을 저도 확인했습니다. 통스토이도 그렇군요. 나중에 톨스토이를 읽을 때 유념하겠습니다. 마립간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AgalmA 2017-03-27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티카>를 완독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 말이 경솔할 수도 있지만 그간의 공부, 겨울호랑이님의 성실한 리뷰를 통해 이런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의외로 부정적으로 남아 저도 슬프네요...

ㅡ일원론 속에선 당연히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스피노자는 이성을 강조하는데 그의 정의에 따르면 의지는 감성의 속성이니 더욱 그렇죠. 일원론 속에선 많은 것은 불완전하고 일시적으로 보여 그것들을 종속할 상위를 설정하게 만듭니다.
가령 ‘판단 유보‘에 대해 스피노자는 지의 부족으로 설명하는데, 그것은 양립할 수 있는 결과의 가능성을 고려한 현명함, 포괄성으로 고려할 수도 있죠. 이 부분은 비트겐슈타인이 잘 설명해주지 않을까 싶은데요^^;
ㅡ완전한 상태 지복(이를테면 안분지족)을 최고의 가치로 환원한다는 것. 이 세계는 카오스도 중요하며, 생성과 소멸이 약동하는 이 세계에서는 코스모스와 카오스가 동등할 정도로 공존합니다. 사실 이것은 가치로 판단할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선과 악처럼 끊임없이 오가는 것과 같아서. 상대성 문제이기도 하죠.

이러저러 반론이 많이 생각났는데 읽다가 많이 까먹었어요^^;
올해 안에 <에티카>도 읽고 제 이런 인상도 어찌 처리해야 될 문제로 남았네요. 서재오면 늘 일거리만 더 생기는 거 같아 괴롭군요ㅜㅜ

겨울호랑이 2017-03-27 14:56   좋아요 1 | URL
^^: <에티카>를 통해 스피노자의 사상이 표현되겠지만, 스피노자의 사상 전체는 아니겠지요...유일하게 존재하는 실체로서 신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으로서 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모든 것에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부분과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며,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정리된 것이 <에티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이 부분이 세계의 창조나 생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아직 생각을 못해봤습니다. 이러한 연결은 개인의 배경지식과 연관되어 취사선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Agalma님께서는 이런 고민을 즐기시는 듯한데, 괜한 엄살로 보이는 군요^^:

AgalmA 2017-03-27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성의 속성에 대한 스피노자의 논의엔 공감해요. 그걸 세계관으로 통합할 때 다른 가능성을 쳐내는 부분에 있어서 수긍하기 어려운 점들이 보인다는 거죠. 겨울호랑이님 말씀처럼 각자의 취사선택과 해석의 문제가 있으니...

즐긴다기보다 세계가 이런 식으로 규획되고 정의되는 것에 대한 반발, 아니다라고 말할 이성적 용기 혹은 어리석은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하고 싶네요ㅎ;

겨울호랑이 2017-03-27 15:07   좋아요 1 | URL
사실 스피노자가 만든 <에티카>라는 건축물은 [정의]라는 주춧돌 위에 세워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정의]에 대해 독자가 동의하지 않는 경우 <에티카>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점에서 ‘변형된 삼단논법‘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에티카> 역시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Agalma님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자유의지라기 보다 세상을 보는 또다른 Agalma님만의 시각인 것 같네요.

마립간 2017-03-27 16:14   좋아요 2 | URL
≪ 에티카≫는 ≪원론≫의 형식으로 글을 쓴 대표적인 책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7 16:53   좋아요 1 | URL
^^: Oren님의 글을 읽다보니, 스피노자에게 있어 자유의지 문제는 중요한 문제라 생각되네요..Agalma님의 글을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답을 쓴 것 같습니다. 다음에 재독할 때 또는 독일 관념론 철학 공부 시 Agalma님이 던진 화두를 고민해야겠습니다.^^:

갱지 2017-03-27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니 말씀은 길고 머리는 짧아서 더는 못따라가겠어요-후후, 쉽지않은 고전 위주로 계속 올려주시니, 덕분에 뇌가 호강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3-27 16:22   좋아요 1 | URL
<에티카>의 내용이 스피노자의 독특한 사상에 기반한 책이라 내용만 간추릴 경우 내용의 비약이 일어날 듯하여 가능한 책의 내용을 옮기다 보니 길어졌네요..ㅜㅜ 부족한 제 글보다 직접 읽으시면 훨씬 쉽지 않은까 생각하게 됩니다.. 갱지님께서 읽기 좋은 글 못드려서 아쉽습니다..

oren 2017-03-27 16: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이 철학자를 볼 때마다 ‘스피노자의 기교‘와 ‘데카르트의 혼동‘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쇼펜하우어의 글을 떠올리고, 그 대목들을 다시 찾아 읽어본답니다. http://blog.aladin.co.kr/oren/5847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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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기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는 그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특정한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원인은 존재하는 사물의 고유한 본성과 정의 안에 포함되어 있거나, (그 원인은 그 사물이 존재하려는 본질 자체에 속하므로) 사물의 외부에 주어져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주목되어야 한다.˝(《에티카》1부 정리8 주석2). 후자의 경우에서 스피노자는 다음에 밝혀지듯이 하나의 작용하는 원인을 의미한다. 반면 전자의 경우에서 그는 단지 하나의 인식이유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동일시하고 이를 통해 신을 세계와 동일시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위한 사전작업을 한다. 하나의 주어진 개념의 내부에 놓여 있는 하나의 인식이유를 외부에서 작용하는 원인과 혼동하고 이 원인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스피노자의 기교이다. 그리고 그는 이 기교를 데카르트에게서 배웠다. (29쪽∼30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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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의 혼동

데카르트는 《제일 철학에 관한 성찰》의 ‘ 두 번째 반박에 대한 답변‘, 공리 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허용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신에게조차 이 물음이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이 존재하기 위해 어떤 원인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의 본성인 무한성이 곧 원인 혹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기 위해 아무런 원인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신의 무한성을 신이 아무런 원인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도출하는 인식이유라고 말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둘을 섞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가 원인과 인식이유 사이에 놓여 있는 큰 차이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러나 데카르트가 이 둘을 혼동한 것은 원래 그 자신이 의도한 바이다. 말하자면 그는 인과법칙이 원인을 요구하는 여기서 원인 대신에 인식이유를 슬쩍 써넣는다. 왜냐하면 인식이유는 원인이 그렇듯이 또다시 계속 찾아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데카르트는 바로 이 공리를 통해 신의 현존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길을 개척한다. (25쪽∼26쪽)

- 쇼펜하우어,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中에서

겨울호랑이 2017-03-27 16:50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Oren님 쇼펜하우어는 데카르트와 스피토자의 원인과 인식이유에 대해서 위와 같이 비판했군요. Oren님께서 소개해주신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어보니, ‘의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군요. 이에 반해 자유의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스피노자가 쇼펜하우어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칸트, 쇼펜하우어등 독일 철학에 대해 들어가기 전인데, Oren님 덕분에 ‘의지‘라는 다른 포인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7 1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에 훌륭한 댓글이 많아 제가 감히 말 보탤 수 없습니다만, 원전이 아닌 해제로 읽길 잘 했다는 생각듭니다. ㅎㅎ 원전은 넘 어려운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3-27 19:07   좋아요 2 | URL
제가 원전을 이리저리 잘라서 어렵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ㅜㅜ.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원전을 보시면 새로운 것을 많이 느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기회되시면 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셨으면 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7 20:29   좋아요 2 | URL
말씀에 용기내어 <에티카> 해제 읽은 개인적 감상평을 말씀드리면, 스피노자는 현실의 일상적 그리스도교가 사회 복종과 순응에 가장 큰 일익을 담당하고 있어 그 잘못된 역할에 개탄한 듯 합니다.
우리 모두 현 종교체계를 벗어나 눈 뜨길 기원하는 듯 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3-27 20:26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스피노자가 비판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교회-황제‘로 대표되는 이원론적 지배체제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스피노자의 사상을 체제 개혁적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북다이제스터님 덕분에 새로운관점을 보게됩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3-27 20:34   좋아요 2 | URL
그리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단 스피노자 주장은 요즘 뇌과학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단 주장과는 약간 다르게 인간은 이데올로기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단 관점에서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ㅎ

겨울호랑이 2017-03-27 20:40   좋아요 2 | URL
^^: 그렇군요.. 저는 스피노자 이론을 자연과학과 법칙면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사회과학적으로도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 스피노자가 정신과 신체를 하나의 관점에서 파악한 일원론자임을 감안했을 때 더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서니데이 2017-04-01 1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4-01 14: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혹시 오늘도 열공이신가요? 일주일에 하루는 reset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