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p20)
<대통령 박근혜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며, 이를 통해 지난 2017년 3월 10일 11시 21분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는 파면되었다. 대통령의 파면 선고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르케이 및 케이디코퍼레이션 지원 등과 같은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하였습니다...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p19)
위의 선고문을 살펴보면 헌법재판소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이하 박근혜)가 헌법 제7조, 제66조, 제69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근거하여 파면을 선고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해당되는 법조문은 아래와 같다.
[헌법 제7조]
①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헌법 제66조]
②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
[헌법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탄핵 인용 선고를 통해 대통령 파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탄핵이라는 결과에는 차이가 없겠지만, 세월호와 관련한 선고에 대해서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월호 관련 선고 결정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또한,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 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헌법 재판소는 이미,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p14)
위의 선고 결정문을 요약하면 '"성실(誠實)"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사법적 판단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위의 사유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선고는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 준다. 법전문가들은 세월호 조사에 대해서 충분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常識)과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은 전혀 근거없는 감정적인 판단이기만 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판단근거는 있고, 우리는 이를 우리의 전통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
孟子曰:“人皆有不忍人之心。先王有不忍人之心,斯有不忍人之政矣。以不忍人之心,行不忍人之政,治天下可運之掌上。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皆有怵惕惻隱之心,非所以納交於孺子之父母也。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非惡其聲而然也。由是觀之,無惻隱之心,非人也;惻隱之心,仁之端也;凡有四端於我者,知皆擴而充之矣,若火之始然,泉之始然。苟能充之,足以保四海;苟不充之,不足以事父母”
'맹자가 말했다. “사람에게나 누구나 차마 타인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선왕들에게 차마 타인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차마 타인을 어쩌지 못하는 정치가 존재했다. 차마 타인을 어쩌지 못하는 정치를 펼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움직이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차마 타인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사람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얼핏 보고는 누구나 깜짝 놀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한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좋은 명성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며,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점을 보건대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사람에게 이 네 가지 단서(四端)이 있는 것은 사람의 몸에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나에게 있는 네 가지 단서를 확충할 줄 안다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고 샘이 처음 솟아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것들을 확충할 수 있다면 천하를 보전할 수 있지만, 그것들을 확충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부모조차 섬길 수 없을 것이다." <孟子>, 公孫丑上, 황종원 譯,p132
[성실(誠實)]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성(誠)함은 하늘의 도요, 성(誠)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도다. 성(誠)한 자는 힘쓰지 않아도 표준에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으며, 자연스럽게 도에 부합되니, 그는 성인(聖人)이다. 성(誠)하고자 하는 자는 선을 가려 그것을 굳게 붙잡는 자이다.'
<中庸> 第20章 황종원 譯 p105
이에 근거하여 거칠게 나마 선고문을 쓴다면 다음과 같이 쓸수 있지 않을까. (물론 여기에 헌법수호의지 부족도 추가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박근혜는 국가의 통수권자로서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당시 사람으로서 당연한 '惻隱之心'에 맞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惻隱之心'을 확충할 수 없다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텐데, 하물며 국가의 수반으로서야. 또한, 국가 수반으로서 선(善)을 가려 그것을 굳게 붙잡으려는 성(誠)을 행하지도 않았는데, 이 역시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 판단된다. 피청구인의 언행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에 근거하여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우리의 헌법(憲法)에는 이러한 우리의 정서가 담겨있지 않다. 1948년 제헌 당시 세계 각국의 헌법을 참고하여 가장 좋은 덕목을 모아 만들었다는 우리의 헌법에는 정작 우리의 정서가 제대로 담겨있지 않았고, 나는 이번 <대통령 박근혜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을 통해 그러한 점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개헌(改憲)문제가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비록, 시기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가 있지만 헌법개정이라는 대전제에는 국민적 합의에 이른듯 하다. 언제 개헌이 되더라도 제7공화국의 헌법안에는 우리의 상식이 녹아들어있는 상식적인 헌법이 되길 기원해본다.
ps.
리뷰를 쓰기 위해 헌법을 찾던 도중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헌법에 근거한 '청렴의 의무'는 국회의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 적어도 조문상으로 대통령과 대법원장에게는 '청렴의 의무'는 주어지지 않는다. 국회의원만 부패할 수 있다는 이런 조문 내용 또한 일반 상식과 맞지 않는다. 이에 대한 보완도 이번 개헌 때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헌법 제46조]
①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③국회의원은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