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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만일 생물학적 요인이나 지리적 환경이 각각 단독으로 작용하여 문명이 발생한 게 아니라면 문명은 분명히 둘 사이에 있을 법한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로 탄생한 게 틀림없다... 사회는 발전해나가는 전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문제에 부딪힌다, 또 문제 하나하나의 출현이 구성원들에게는 어떤 시련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도전이 된다.' <역사의 연구 A study of history> - 아놀드 토인비 Arnold Joseph Toynbee(1889~1975) -
역사가 토인비는 문명의 기원을 생물학적 요인과 지리적 환경의 중요성 대신 다른 요인에서 찾고 있으며, 그의 역작 <역사의 연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결론내린다.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는 토인비의 이러한 인식에 대한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의 물음이다. 즉, 지리적 환경의 차이로 인해 문명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p35)는 것이다. <역사의 연구>에서 토인비가 인류의 문명을 21개로 구분하고 각각의 문명들의 특성에서 공통적인 특성을 도출한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러나 다른 결론을 <총, 균, 쇠>에서는 제시한다. 그 결론을 <총, 균, 쇠>의 전체 목차에 해당하는 다음의 그림을 통해 살펴보자.
[그림1] 역사의 패턴을 만들어 내는 근원적 요인 (출처 : http://thedaywith.tistory.com/83) p120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가축화는 크게 2가지 방향으로 역사의 패턴을 만들어 낸다. 하나는 '잉여 식량(잉여생산물)의 창출'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병'의 창출이다. 그 중에서도 '잉여생산물'에 관한 내용은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가 <자본론 Das Kapital>에서 언급한 자본의 축적, 생산체계의 변화, 사회 변화 등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본론>언급된 자본의 제국주의적 모습은 [그림1]에 제시된 '직접적 요인'의 목적에 해당한다.) 이보다는 저자 다이아몬드의 독창적인 안목은 '가축화'로 인한 '인류 주거생활의 변화(정주화)'와 '유행병의 출현'을 설명한 것에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리뷰에서는 해당 내용을 중심으로 <총, 균, 쇠>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가축화와 비가축화
저자는 문명간 차이가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 '야생동물의 가축화'를 들고 있다. '가축화'를 통해 '작물 재배가 가능한가'의 여부는 유목민의 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넘어가는 중요한 선결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대륙보다 빠르게 '가축화'가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유라시아인들에게는 기타 대륙 사람들에 비해 가축화할만한 대형 야생 초식성 포유류가 훨씬 더 많았다. 그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유럽 사회가 대단히 유리해진 것은 바로 포유류의 지리, 역사, 생태 등 세가지 기본적인 현실 때문이었다. 첫째, 유라시아는 그 넓은 면적과 생태학적 다양성에 걸맞게 처음부터 후보종 수가 가장 많았다. 둘째, 오스트레일리아와 남북아메리카는 홍적세 말기에 닥친 엄청난 멸종의 파도 속에서 대부분의 후보종을 잃고 말았지만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거기서 살아남은 후보종 중에서도 유라시아의 경우에는 기타 대륙에 비해 가축화에 적합한 동물들의 비율이 높았다.'(p259)
'가축화' 그 중에서도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는 농업부문에서는 작물 생산 수단의 변화를, 군사부문에서는 전술 수단의 변화(기마 부대의 도입 등)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를 달성한 문명(civilization)은 한 단계 도약하여 농업사회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2. 선제적先制的 가축화, 작물화 preemptive domestication
'농작물이 이리저리 옮겨지고 퍼지는 전파(傳播)의 가능성이 쉬운 편인가 어려운 편인가를 가름하는 난이도가 지리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선제적 가축화, 작물화"라고 일컫는다.'(p263)
가축화를 통한 생산 수단의 변화는 야생 동물만이 아니라, 야생 식물도 '재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지리적 영향은 예외없이 작용한다.
[그림2] 각 대륙의 주요 축 (출처 : http://songhwajun.com/1133) p261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도 똑같고 계절의 변화도 똑같다. 그리고 일치하는 정도는 좀 덜하지만 질병, 기온과 강우량의 추이, 생식지나 생물군계(生物群系, biotic formation) 등도 서로 비슷한 경향이 있다.(p270)... 위도는 기후, 성장 조건, 식량 생산 전파의 난이도 등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p278)
동서로 길게 뻗어 비교적 같은 기후대가 폭넓게 분포하는 유라시아대륙에 비해 남북아메리카 대륙은 위도(緯度, latitude)가 상대적으로 크게 차이나게 된다. 그 결과 이들 대륙에서는 가축화, 작물화에 있어 확산속도가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작물화 속도 차이는 역사적으로도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대제국(大帝國)의 등장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있었음과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사하라 사막 이북(以北)과 이남(以南)이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3. 정주형(定住形) 생활
'가축화'와 '작물화'를 통해 인류는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정착생활을 통해 크게 두 가지가 얻어지며 그 중 첫 번째가 '자본의 축적'이다. '자본의 축적'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물인 정치 조직, 문자, 총, 쇠칼, 원양 항해용 선박 등은 후에 '제국의 시대'로 가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오랫동안 가속화되어 온 발전의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두 차례의 도약이 있었다...두 번째 도약은 우리가 정주형 생활 방식을 채택하면서 일어났다... 그같은 생활을 채택하게 된 것은 대개 식량 생산의 채택과 관련이 있었다. 식량 생산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농작물과 과수원과 저장된 잉여 식량이 있는 곳에 가까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정주형 생활은 기술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러한 생활 덕분에 사람들은 들고 다닐 수 없는 소유물들을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379)
사실, <총, 균, 쇠>에서 제시한 정주형 생활의 영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결과물이라고 생각된다. 저자가 생각한 두 번째 영향은 바로 '대중성 질병의 등장'이다.
4. 가축으로부터 유래한 대규모 전염병
'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들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역설적이지만 유행병을 일으키는 이 세균들은 대부분 오늘날 거의 인간들에게만 감염되고 있다.'(p287)
유목생활을 통해서 전염병은 대중으로 확산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그렇지만, 대규모 정착생활을 통해서 많은 숙주(宿主)를 확보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대중성 질병들은 반드시 대규모의 조밀한 인구 집단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구 집단은 약 10000년 전에 농업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에 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가속화되었다.'(p299)
지리적 환경 차이로 정주형 생활로 미처 이행(移行)하지 못했거나, 이행중이었던 문명(文明)들은 기술과 균에 대한 항체가 있었던 문명을 만났을 때 붕괴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에스파냐군에 의한 남아메리카 잉카, 아즈텍 문명의 붕괴(16세기),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감소(20세기)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p35)
저자는 <총, 균, 쇠>의 내용을 위의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서 토인비에 대한 비판의 말을 덧붙이고 있다.
'토인비는 스물세 종의 발전된 문명의 내적 원동력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단순하고 문자가 없는 사회나 선사 시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토인비는 내가 역사에서 가장 광범위한 경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할 수도 없었다.'(p32)
그렇다면, 저자는 과연 토인비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나는 <총, 균, 쇠>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저자가 말한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다.
<총, 균, 쇠>에서 저자는 문명의 차이를 환경적 차이에서 설명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야생동물의 생물학적 차이(민족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역시 설명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축화되지 않은 생물의 분포가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많았다는 사실은 기후적, 지정학적 차이도 있겠지만, 이 차이는 '야생동물의 생존 적합성'에도 영향을 분명히 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사하라 사막에서는 더위에 강한 생물이 살아남을 것이고, 극지방에서는 추위에 강한 생물이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의 생물학적 차이'는 문명의 차이를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가축의 생물학적 차이'는 문명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처음에 언급한 토인비가 말한 내용을 살펴보자.
'생물학적 요인이나 지리적 환경이 각각 단독으로 작용하여 문명이 발생한 게 아니라면 문명은 분명히 둘 사이에 있을 법한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로 탄생한 게 틀림없다'
토인비는 '생물학적 요인'이라고 했지 '민족의 생물학적 요인'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토인비가 말한 '생물학적 요인'과 '지리적 환경'의 상호작용에 따른 결과로서의 문명 발생은 제대로 논박되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를 통해 문명의 차이를 설명했지만,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이라고 정의한 문명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자세히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토인비에 대한 비판'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물론, 번역상의 차이에서 빚어진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들 내용을 깊이있게 읽기 위해서는 각각의 원서를 읽어야하겠지만 여건이 안되기에 다음의 과제로 넘겨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 균, 쇠>는 역사의 발전이 거창한 시대정신(時代精神) 등이 아닌 '일상의 변화'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제시했다는 면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선물한 책이라 생각한다.
PS. 토인비와 다이아몬드의 역사관 논쟁을 정리하다보니, 생물학계에서의 '창조론'과 '진화론'의 해묵은 논쟁을 떠올리게 된다. 진화론이 생명의 진화에 대해서는 많은 근거를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하지만,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설명으로 인해 창조론자들의 공격을 받는 것처럼, <총, 균, 쇠>에서도 문명의 근원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점에서 '기원(origin)'이라는 문제는 역사학계와 생물학계 모두 오래된 공통 과제인 듯하다..
PS2. <총, 균, 쇠>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차이와 발전을 보여주었다면, <문명의 붕괴 collapse>에서는 문명의 붕괴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문명의 붕괴>로 넘어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