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이는 노랑이를 쓰윽 훑어봤어. 그리고 말했어. "누군가 우리를 만들었을거야."(p10)... 노랑이가 물었어. "나나 너처럼 복잡하고 완벽한 걸 누가 만들 수 있겠니?...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는 우연이란 말이야. 어쩌다 그냥 생겨난 거라고." _윌리엄 스타이그, <노랑이와 분홍이>, p11
노랑이와 분홍이를 대화를 듣다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바로 감(感)을 잡는다. 윌리엄 스타이그(William Steig, 1907 ~ 2003)의<노랑이와 분홍이>가 진화론과 창조론이야기라는 것을. 마치, 사뮈엘 베게트(Samuel Beckett, 1906 ~ 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 En attendant Godot >에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알지도 못하는 고도를 기다리듯, 두 인형 - 노랑이와 분홍이 - 는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말한다.
분홍이가 말했어. "알았어. 우선은 네 말이 옳다고 치자. 그런데 넌 지금 그런 이상한 일드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일어나서 우리 둘이 생겼다고 하는거야?"(p23)... 노랑이가 대답했어. "왜 안돼? 오 초가 아니라 백만 년이면 똑같은 일들이 두 번도 넘게 일어날 수 있어._윌리엄 스타이그, <노랑이와 분홍이>, p24
작가는 책에서 현대 창조론과 진화론 이론을 인형의 입을 통해 말하기에, 우리는 노랑이에게서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의 모습을, 분홍이에게서는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 ~ 1805)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의 오랜 논쟁이 아니다. 보다 인상적인 것은 텁수룩한 아저씨와 그가 한 말이다.
바로 그때 머리가 텁수룩한 어떤 아저씨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왔어.(p30) 아저씨는 분홍이를 집어서 이리저리 훑어봤어. 그리고 노랑이도 집어서 요리조리 훑어봤지. 그러다 말했어. "잘 말랐군."... 노랑이가 분홍이 귀에 대고 속삭였어. "이 사람 누구야?" 하지만 분홍이도 누군지 몰랐대._윌리엄 스타이그, <노랑이와 분홍이>, p32
텁수룩한 어떤 아저씨와 그가 한 말은 분홍이와 노랑이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분홍이에게 그 아저씨는 자신을 만들어 준 이가 될 수 있었고, 노랑이에게는 아저씨의 말이 노랑이가 생각했던 '충분한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눈 앞에서 조물주(造物主)를 알아보지 못하는 창조론자와 충분하게 축적된 데이터 속에서도 온전한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는 진화론자. 결국 우리 인간들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오랫만에 생각하게 만드는 재밌는 동화를 모처럼 읽었다. 정작 책 주인인 연의는 한 번 쳐다보고 던져버렸지만, 언젠가 연의와 함께 아래의 책들을 읽고 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빠의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PS. 아저씨와 말에 대한 다른 해석도 가능해 보인다. 노랑이에게 아저씨는 자연의 진리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분홍이에게 아저씨의 말은 천지창조 후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창세기>(1:31) 구절로 다가갈 수도 있을 것이다.
PS 2. <노랑이와 분홍이>에서 많은 부분이 노랑이의 주장으로 채워지는데, 분홍이의 주장은 페일리의 <자연신학> 중 시계공 유추(watchmaker analogy)에서, 이에 대한 분홍이의 반박은 <눈 먼 시계공 The Blind Watchmaker>의 주장을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텁수룩한 어떤 아저씨는 사실 분홍이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극단적인 노랑이의 주장은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