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복종 b판고전 19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지음, 손주경 옮김 / 비(도서출판b)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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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악덕, 이 불행한 악덕은 무엇이란 말이냐?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들, 부모들, 아이들, 심지어는 자기만의 삶을 버리고 학대당하게 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군인들에 의해서도 아니고, 자기 피와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맞서야 할 야만의 군대에 의해서도 아니고, 헤라클레스나 솔로몬 같은 자도 아닌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많은 경우 그 나라에서 가장 비열하고 가장 유익하며, 전쟁의 화약을 결코 마셔보지도 않고, 결투의 모래바닥을 조금도 밟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휘하는 데 뿐만 아니라 가장 가냘픈 여인네마저도 만족시킬 능력이 없는 인간 같지도 않은 한 사람에 의해서 탈취와 방탕과 잔혹함을 겪에 되는 이것은 무엇이란 말이냐?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8

에티엔 드 라 보에시(Etienne de La Boetie, 1530~1563)는 <자발적 복종 Discours de la servitude volontaire>에서 물음을 제기한다. 왜 민중들은 폭군(暴君)에게 복종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가진 단 한 사람에게 복종하는 상황이 다수에게 불행이라면, 왜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일까? 보에시는 이러한 상황이 가능한 이유를 '자발적 복종'에서 찾는다.

우선 당장은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마을들이, 많은 도시들이, 많은 국가들이 단 한 사람의 폭군을 때때로 지지하게 되는지 만을 생각해보자. 이 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준 권력 말고는 다른 권력을 갖지 않는다. 이 자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준 권력 말고는 다른 권력을 갖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견뎌내기를 원하는 만큼 그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하기보다는 스스로 참고 견디는 것을 더 바라지 않는다면 그는 그들에게 어떤 해도 끼칠 수 없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4

한 명에 의해 많은 이들이 구속되어 있는 상황은 자발적 복종이 아니라면 설명되기 어렵다. 힘이 부족해서 일시적인 복종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힘의 크기가 현저한 상황에서 지속적인 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가 가능한 것은 자발적 복종이 일어나기 위한 전제가 충족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자유(自由)망각' 때문이며, 자유망각은 '관습'에 의해 복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 보에시의 분석이다.

사람들이 복종을 당하자마자 자유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 자유를 다시 얻기 위해 깨어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보는 일은 믿기지 않는 일이다. 나서서 섬기고, 그것도 기꺼이 섬기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단지 단지 자유를 잃은 것이 아니라 복종을 얻었다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이다. 처음에는 힘에 의해 억압을 당해 굴복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후에 사람들은 후회도 하지 않고 복종하며, 자기네 선조들이 강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일을 자진해서 해낸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47

모든 영역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관습은 무엇보다도 복종을 배우게 만드는 관습이며, 독약에 길들여진 끝에 목숨을 잃었던 미트리다테스 Mithridates가 전해주고 있는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복종의 독이 쓰디쓰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그것을 자진해서 들이키도록 가르쳐주는 것보다 더 힘이 센 것은 없다.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48

보에시에 따르면 관습은 우리에게 사회를 살아가는 덕목들을 가르쳐 주지만, 관습이 지향하는 수많은 덕(德 vertu)에는 '자유'가 포함되지 않는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찬양받는 미덕(美德)에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되지 않기에, 전승되는 관습에 무비판적으로 따를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깨닫지 못하고 소수의 다수 지배라는 시스템에 자발적인 복종을 하게 된다.

용감한 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려 깊은 자들은 어떠한 고통도 물리치지 않는다(p26)...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들이 욕망하지 않는 단 하나의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극히 위대하고 감미로운 자유이다. 그것이 상실되면 모든 악덕이 이어지고, 자유 뒤에 놓여 있던 다른 모든 행복들은 굴종으로 인해 썩어버려서 맛과 풍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오직 이 자유, 그것을 인간들만이 유일하게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27

이러한 상황에서 결론은 자연스럽게 '계몽(啓蒙)'으로 흘러간다. 자기 스스로 관습을 깨치고 관습을 벗어날 수 있도록 잘 배우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 구체제(Ancien Regime)의 모순을 극복하자는 결론이 <자발적 복종>의 구조이며 결론이다. 보에시가 말한 자유는 단순한 개인의 의지를 말하지 않는다. 보에시가 말한 자유는 '상호 보조'를 위한 것이며, 지배를 위한 것이 아니고, 인간 사이의 연대(slidarite)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인간 이성(理性)에 기반한 자유를 통해 깨닫고, 연대를 통해 체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현재의 '자발적 복종'을 넘어선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저자의 생각을 파악할 수 있다.

<자발적 복종>의 마지막 주장은 계몽시대의 교과서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에 자칫 식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다수로부터 권력을 받은 1인 혹은 소수에 의한 지배라는 상황을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관점에서 합리화하지 않고, 개선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현실에서 <자발적 복종>이라는 모순된 제목의 책은 씁쓸함과 유용함을 현대의 독자들에게 함께 전달한다...

그러니 배우도록 하자. 잘 행동하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우리의 명예 혹은 우리의 미덕에 대한 사랑을 위해, 아니 더 나아가 우리의 행동을 충실히 증명해주시고 우리의 잘못을 심판하시는 전지전능한 신의 명예와 사랑을 위해서 눈을 떠서 하늘을 바라보자. 폭정보다 선량하고 자유로운 신에게 대항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 신은 폭군들과 그들의 공모자들을 위해 몸소 이 땅에 어떤 특별한 몫을 남겨두었다는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03

우정 l'amitie이라는 공동의 의무가 우리 인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 때문이다. 미덕(vertu)을 사랑하고 훌륭한 행동을 높이 평가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들의 명예와 이득을 더하기 위해 때때로 우리 자신의 행복을 줄이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다. _ 에티엔 드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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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3-14 01: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많이 드는 생각이네요.
다만 이러한 자발적 복종이 계몽에 의해서 바뀌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을 절감하는 요즘이라서요. 어렵네요.
주말이 끝났는데 다음주도 힘내서 화이팅하세요. ^^

겨울호랑이 2022-03-14 07:43   좋아요 2 | URL
<자발적 복종>을 읽으며 보에시가 말한 ‘자발적 복종‘과 이에 대한 계몽은 ‘상태에 대한 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자신이 자발적 복종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몽은 영화 <Matrix>에서 진실을 알게 하는 ‘빨간 약‘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 수단을 통해 현실을 파악한 뒤 사람들은 또 저마다의 선택을 하겠지요.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것인가... 행동 이전에 무엇이 진실인가를 끊임없는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어쩌면 1회성 숙제가 아닌 평생에 걸쳐 해내야 할 과제라고도 생각되네요... 바람돌이님께서도 한 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

. 2022-03-14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사람은 복종하도록 길러진다.
2. 자신과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을 위한 행위
3. 그냥 관심이 없다.
4. 두려움
5. 복종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다.
6. 그것이 법과 질서라고 믿는다.
7. 독재를 찬양한다.

사람들이 독재에 저항하지 못 하는 이유이겠죠..

겨울호랑이 2022-03-14 07:51   좋아요 3 | URL
현실에서 독재에 저항하는 행동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 다른만큼 다양하게 나타나거나, 혼합되어 나타나겠지요. 논리야놀자님께서 구체적으로 나열해 주신 이유들도 이들 안에 포함되리라 여겨집니다. 보에시는 <자발적 복종>에서 말씀하신 독재에 저항하지 못하는 구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자유‘를 가졌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자유가 ‘방종‘이 아닌 ‘이성‘의 발현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구조적 모순을 알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읽힙니다. ‘독재‘라는 문제를 낳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처하는 모습도 다를 수 있겠습니다만, 구조에 대한 고민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보에시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논리야놀자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4-09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4-09 08:18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이하라 2022-04-09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4-09 08:19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꼬마요정 2022-04-09 0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22-04-09 08:19   좋아요 0 | URL
꼬마요점인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
 

따라서 우정은 인간들이 서로 형제임을 밝혀주는 힘이고, 형제로 만드는 힘이며, 모두가 자연스럽게 자유로운  존재라는 증거이다. 우정은 인간의 자유를 지켜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서로 사회적 관계를 맺도록 허용하는  정당성도 부여해준다.
탐욕에 의해 복종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개인은 고립된, 즉 파편화된 존재일 뿐이며, 인간들이 상호 관계를  통해 만들수 있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자이다. 각자의 개인적 가치를완전하게 존중하는 우정은 공동체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정치적 형태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우정이 파괴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부여된  자연성이 파괴된 것과 다르지 않다. 바로 여기에서  폭군의  등장이 가능해지고, 복종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오류가 발생한다. 우정이 파괴된 자리에 폭군을정의하는 요소인 탐욕이 언제나 개입하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복종한 인간에게는 자연에 의해 각자가 우정으로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 P153

이것이 민중의 복종에 내재된 신비이다. 라 보에시는 폭군의 등장은 민중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어떤 면에서는 민중이 폭군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지적한다. 이 점에서 그는 민중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지니고 있다. 군주가 폭군이 되기 위해서는 다수의권한과 힘을 자신의 권한과 힘으로 몰수해야 한다. 달리 말해 폭군은 민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민중은 자발적으로 복종을 선택하는 자연적  성향을  띠고 있다. 폭군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근거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폭정은  인민정부(gouvernement populaire)와 구분될 수 없다. 즉 민주주의와 폭정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기능을 지닐 수 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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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근대주의자들’은 옳다. 고유한 ‘민족’정서는 서유럽에서 15세기 말이나 16세기보다 조금 앞선 시기부터 찾아볼 수 있지만, 이데올로기와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는 18세기 후반으로부터 시작되는 현상이다. 정치적 규범으로서의 ‘민족 - 국가’도 아주 근대적이다. 유럽의 국가 시스템이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부터 생겨났다면, 이런 국가들이 ‘민족 - 국가’로 전환하기 시작했던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민족’과 그것의 ‘민족성’도 근대적으로 보일 것이다. ‘민족성’에 따라 주민을 나누고 공통의 정체성을 소유한다는 것이 유럽의 교육받은 계급들에게 널리 퍼진 것이 유럽에서 근대 초(정확히 17세기 말)에 이르러서였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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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 어깨를 감싸쥐다가 임이는 발딱 일어섰다. 그리고 상근이 멱살을 잡았다. 뼈뿐인 손이 상근의 뺨을 갈겼다. 상의가 달려들었다. 상조도 달려들었다. 삼 대 일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상조는 임이 손등을 물었다. 그야말로 소리 없는 격투였고 늙은 고모와 어린 조카들이 뒤엉킨 광경을 비극이라 해야 할지 희극이라 해야 할지, 어쩌면 가장 원시적인 것이었는지 모른다. 두 아이와 함께 보따리를 들고 들어온 호야네가 겨우 뜯어말렸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임이는 임이대로 두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임이는 말을 못하고 입술만 실룩거렸다. 그러더니 드디어 두 다리를 뻗고 통곡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음산한 겨울 해는 졌다.(P179)... 지갑을 꺼낸 상의는 돈을 다 털어냈다. "고모 이거 받아요." 어리둥절해하는 임이 손에 돈을 쥐여준 상의는. "고모 미안해." 하면서 눈물을 닦고 급히 달려나왔다. _ 박경리, <토지 17> , p206/572


  <토지> 독서챌린지 33주차. 이번 주에 읽은 <토지 17>에서는 홍이와 보연 부부는 보연이 사두었던 금(金)으로 인해 체포되어 끌려가는 고초를 겪게 되었다. 한순간 엄마와 아빠를 잃어버리게 된 아이들은 임이를 의심하고, 결국 임이와 조카들은 몸싸움을 벌인다. 큰 불행 앞에 생겨난 내분은 가족 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가족이기에 이러한 갈등이 물에 씻은 듯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외삼촌 삼화가 나타나자 안심을 하고, 오랫만에 만난 외삼촌을 어떤 의심도 하지 않고 따라나선다. 오랜 친분보다 앞서는 혈연(血緣)을 <토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천일 부부는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지만, 진화심리학의 관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아이들의 선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들 얼굴에는 이미 생기가 돌아와 있었다. 생명이란 얼마나 신비스런 것이다. 삶에의 의지는 영악하고 핏줄을 당기는 힘은 불가사의하다. 천일이 부부가 혼신으로 아이들을 감싸왔지만 저토록 스스럼없지는 않았다. 신뢰하고 의지하면서도 아이들은 엄청난 사건을 겪은 뒤 두려워하며 자신들을 숨기려 하고 방어하려는 기색이 늘 있었다. 그랬는데 한두 번 본 외삼촌에게 모든 긴장을 풀며 기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솔직히 말해서 천일 부부는 다소 서운했다. _ 박경리, <토지 17> , p199/572


 데이비드 M. 버스(David M. Buss)의 <진화심리학 핸드북The Handbook of Evolutionary Psychology>에는 유기체들이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한다는 사실로부터 정서적으로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이 담겨있다.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 또한 평상시가 아닌 위기 상황(비용이 큰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가까운 친척들에게 의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졸지에 부모를 잃게된 홍이 부부네 아이들의 선택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천일부부의 서운함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생물종으로서 우리의 생활사에는 혈연선택이 강력한 힘으로 작용해왔다. 혈연선택은 미성년 양육, 값비싼 투자, 식량과 노동의 배분, 정치, 일상의 사회적 상호작용에서부터 유언과 유서를 통해 유산의 수혜자를 지정하는 최후의 이타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거의 모든 사회 영역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가친척은 근연도에 따라 감정적 근접감을 느끼고, 다른 이의 안녕을 염려하며, 큰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그들을 돕고자 한다. _ 데이비스 M. 버스, <진화심리학 핸드북1> , p847 


 현대의 환경에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필요한 지원을 친구들에게 의존하면서 균형을 엄격히 유지하지만, 비용이 클 때는 친족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때는 반드시 균형을 맞추거나 보답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많은 연구가 밝혀냈다. 사람들은 비용이 적고, 만성적이고, 쉽게 추적 가능한 이타주의에 대해서는 상호 이타주의를 활용하는 반면에, 비용/이익이 큰 이타주의의 경우에는 혈연선택을 활용한다고 결론지어도 무방할 것이다. _ 데이비스 M. 버스, <진화심리학 핸드북1> , p848


 주디스 리치 해리스(Judith Rich Harris, 1938~2018)는 <양육가설 The Nurture Assumption>에서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받는 영향보다 또래집단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또래집단을 단순한 친구들이 아닌 공적  영역으로 확장시켜 본다면 오랫동안 함께 봐온 천일부부도 아이들과 관계를 맺어온 집단의 소속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 부부의 서운함 또한 자연스러울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친척으로부터 느끼는 아이들의 안도감과 소속집단의 일원으로 천일부부가 느끼는 서운한 감정. 모두 독자로서 공감가는 부분이다. 


 양육가설은 아이들이 하얀 백지 같은 뇌를 갖고 태어나며 부모들은 그 백지를 멋진 그림으로 채울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로부터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알아야 할 것의 대부분은 후천적으로 학습하는데, 몇 가지 진화론적 사실ㄷ르은 부모가 학습을 독점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_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 p299/1096


 집에서 획득한 지식과 기술, 의견이 또래집단이 선택 사항으로 간주하는 영역이 있다면, 즉 동질성이 강요되지 않고 개별성이 허용되는 영역에 있다면 아이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계속 유지할 것이다... 공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집에서 배울 수 없다. 이런 것들은 또래집단에서 배운다. _ 주디스 리치 해리스, <양육가설> , p763/1096


 친족 비유의 메세지는 간단하다. 사람들을 대할 때 피를 나눈 가족들처럼 친절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 밑에 깔린 전제를 이해한다. 친족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지만, 비친족에 대한 사랑은 그렇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친족들은 비친족들보다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그래서 유전자가 유기체로 하여금 친족에게 유익한 행동을 만들면, 자기 사본에게 이익을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이득 때문에 친족을 돕는 유전자들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개체군 내에서 증가하기 마련이다. _ 스틴븐 핑거,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p662


 이와 함께, 현대 진화심리학은 '혈연 이타주의는 아래로 흐른다'는 사실을 밝혀내며 '내리사랑'을 과학적으로 입증한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큰 것 또한 당연하겠지만, <토지>에서는 이와는 반대되는 무정한 부모의 모습 또한 함께 그려낸다. 인실의 아이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다.


 자신이 받은 지원을 적합도로 전환하는 수혜자의 능력은 이타주의 배분의 결정적 인자다. 현재와 미래의 필요성, 표현형의 질, 다른 친족의 투자 활용 능력, 번식 가치 등 많은 요인이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연령은 번식 가치를 드러내는 대략적인 지표로, 연구자가 연령을 고려할 때마다 지원은 연상의 개인으로부터 연하의 개인을 향해 흐르는 것으로 나타난다. _ 데이비스 M. 버스, <진화심리학 핸드북1> , p849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오가타와 자신과의 핏줄을 버리면서 인실은 자기 자신을 땅속에 묻어버렸다. 깡그리 묻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두만강을 건너면서, 새로이 태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용정, 해란강 강가에서 중학교에 갓 들어간 밤송이 같은 소년들이 강물에 돌을 던지며 모래밭을 뒹굴며 목이 터져라 부르던 선구자의 노래였다. 인실을 오늘 존재하게 한 것은 항상 죽음과 맞선 시간 때문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7> , p228/572 


 오가타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버리고 떠난 인실. 본능(本能)에 앞선 인실의 선택은 바로 민족(民族)이라는 감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게 된다. 어머니에게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는 본능에 앞선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관념 - 민족 - 을 과연 근대(近代)라는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생각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또한 유기체가 아닌 문화적 존재로서 또하나의 유전자 - 밈 Meme - 로 읽어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생명보다 중한 것, 그것은 단순히 여자의 순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찬하는 알았다. 인실에게 생명보다 더한 것이란 조국과 내 겨레를 배신했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7> , p260/572


 우리는 전근대 시대, 심지어 고대 세계에서도,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지 않거나 그들의 도시국가 출신이 아닌 사람들을 보는 방식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누비아인과 아시아인들을 보는 방식에서, 서로 다른 '백성들' 사이에 그어진 메소포타미아와 성서에서의 구분에서, 민족정체성과 민족성이라는 '근대적' 개념과 아주 비슷한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민족들과 민족주의를 순전히 근대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정말 정당화되는가? 그렇지 않다면 민족적 유대와 정서는 '역사의 질료이고 인류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오래된 견해로 되돌아가야만 하는가? _ 김원중, <민족주의와 역사> , p415/927


 근대적인 민족단위 및 정서들과 스미스가 '족류(공동체)'라고 이름 붙인 이전 시대의 집단적 문화단위 및 정서들 사이에 차이와 유사성이 존재함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분석의 필요성이 도출되고, 그와 같은 분석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들이 형식/정체성/ 신화/상징/커뮤니케이션 기호체계라고 주장한다. _ 김원중, <민족주의와 역사> , p416/927


 인실은 '민족'의 관점에서 아이 문제를 고민하고 결단했지만, 그 마음까지 정리하지는 못한다. 어머니로서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 이것은 인실이 봉인(封印)한 본능이다. 찬하가 자신의 아이를 키워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실의 마음은 격류에 둑이 무어지듯 허물어져 가고 비로소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현실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다. 또 추상적인 것 현상적인 것에 비하여 물질이 가시적이며 확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가시 밖을 생각하면, 확실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눈앞에 있는 것은 하나의 점(點)에 불과해. 시간 역시 정체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의 시간들은 한순간에 불과한 거고, 한 점에다가 한순간을 붙잡아서 아무리 견고한 성을 쌓아도 그게 뭐겠어? 가시 밖을, 불확실한 것을 탐구하고 과거와 미래가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만이 창조는 가능해. 창조는 생명이야. 창조 없는 곳에선 파괴뿐이고 사람이 짐승으로 전락하지. _ 박경리, <토지 17> , p37/572


 정지된 시간 속에서 인실이 내린 결단은 흐르는 시간 속에 무너져 가고, 시간 속에서 인실의 굳은 마음도 풀려가면서 새롭게 생명을 얻는 것은 아니었을까. 인위적인 제도나 관념에 따른 선택이 아닌 물 흐르듯 본능에 맡긴 자신의 감정 속에서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는 인실. 이러한 인실의 모습을 읽으면서 생물의 본성(本性)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요. 자기 자식을 눈앞에 두고 친구의 자식이거니 생각하고 있는 오가타를 볼 때 나는 과연 인실 씨하고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지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내 이성이 마비된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것은 죄악이다! 하고 생각하곤 하지요. 그간 세월이 많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_ 박경리, <토지 17> , p220/572


 그 순간 인실은 막연했던 것이 손에 꽉 잡히는 것을 느낀다. 고아원에도 가지 않았고 이름 모를 남의 손으로 건너가 생사조차 모르게 되지도 않았고 조찬하가 아이를 길러주었다는 사실, 그것이 얼마만 한 축복인가를, 인실의 눈에서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살아 있다는 것도. _ 박경리, <토지 17> , p261/572


 이와 함께 아이를 보지 않기로 한 오가타의 선택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선택 또한 본성에 반(反)하는 결정이다. 단순히, 부성(父性)이 모성(母性)보다 진하지 않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것은 모성과는 다른 '부성의 발현'으로 읽힌다. 자신과 인실 사이의 아이를 다시 거둬야겠다는 마음과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내려진 오가타의 선택은 인실과는 또 다른 선택이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뒤로 미루는 모습. 아이를 안 본다는 점에서는 인실과 같지만, 과정에서는 자신의 본성보다 아이의 양육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접었다는 점에서 오가타는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준다. 이러한 오가타의 선택을 통해 단순히 인간을 생물/유기체로만 해석할 수 없음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어젯밤 꼬박이 생각했습니다. 아이의 앞날을. 그 아이를 만주까지 끌고 와서 홀아비인 내가 기르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감정으론 그 아이와 헤어져 있고 싶지 않아요. 나는 이제부터 삶을 진지하게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감정 내 인생이지...... 그 애는 다정한 부모와 누나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것을 파괴할 권리가 내게 있는가. 내일을 알 수 없는 떠돌이같은 아비를 따라서 겪어여 하는 새로운 세계, 물론 이와 같은 전시가 아니라면 나는 결코 그러진 않을 겁니다. 산카상이 원한다면 성장하기까지 그대로 두는 게 어떨까 싶어서."  _ 박경리, <토지 17> , p316/570


 포유류 번식의 생물학적 특징을 고려할 때, 전 세계에서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녀에게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자녀와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번식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많은 아버지들이 직간접적으로 자녀에게 일정 수준 이상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_ 데이비스 M. 버스, <진화심리학 핸드북1> , p878

 

 이번주 독서 챌린지를 통해 홍이네 아이들과 천일 부부, 인실과 오가타의 아이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을 단순한 유기체, 또는 시스템 어느 일방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없다는 정리를 하게 된다. 인간이 유기물들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 육체와 함께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사회문제를 바라볼 때 함께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닐까. 물리적 흐름에 역행하는 생명의 약동(Elan Vital)이 있다면, 이러한 '생명의 약동'에 저항하는 또다른 움직임 - 밈 Meme 등 - 이 인간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복합적임 힘으로 함께 작용하기에 이들을 한데 묶어 또다른 통일장(unified field)에서 하나의 이론이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유기체의 작용으로 해석하는 환원주의나 사회적 구조의 산물로 생각하는 사상 모두를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글을 갈무리한다...


 "모든 특성은 유전적이다"는 약간은 과장되었지만 그리 크게 과장된 말은 아니다. 물론 가정이나 문화가 제공하는 내용에 의존하는 구체적인 행동 특성들, 가령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가, 어떤 종교를 믿는가, 어떤 정당에 가입하는가 등은 유전과 전적으로 무관하다. 그러나 기본적인 재능과 기질에 반영되는 행동 특성들, 가령 언어에 얼마나 능숙한가, 얼마나 종교적인가, 얼마나 자유주의적인가 또는 보수주의적인가 등은 유전적이다. _ 스틴븐 핑거, <빈 서판> , p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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