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에 관한 보고는 외계 우주선이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초해서 평가해야 한다. 이는 편협하게 닫힌 마음이 아니라 시간, 항성 간 거리 그리고 가용한 에너지가 항성 간 우주여행에 부과하는 제한조건의 현실성을 직시하는 것이다.

물리학은 속도, 가속도, 힘, 질량, 시간과 같이 기본적으로 관측 가능한 양들에서 유도된다. 이들은 일work의 정의로 결합되고 거기에서 운동에너지 및 위치에너지라는 용어가 나온다. 물리학자는 총에너지 방정식을 세움으로써 물리계를 기술한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서 나온 빛이 결코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것을 ‘과거의 지평선past horizon’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물체의 한계선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서 나온 빛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한계선도 존재한다. 이것을 ‘미래의 지평선future horizon’이라고 한다. 과거의 지평선과 미래의 지평선 사이에 갇혀 있는 우리는 우리가 관찰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주의 한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주에는 우리가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아주 먼 곳에서 우리 지구 대기의 스펙트럼을 측정해보면 아마도 화학적 비평형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구 대기에는 산소와 오존이 메탄과 함께 존재하며, 수증기가 이 혼합물에 윤활 작용을 해준다. 죽은 행성에서는 분자 상태의 산소와 완전히 환원된 탄소(메탄처럼)가 공존할 가능성이 낮다. 이것은 생명의 존재를 말해주는 생명지표다. 생명은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과정인 호흡과 생장을 위한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이런 성분들을 대기 중에 고농도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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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으로 가는 길 - 구국위원회와 헌정의 유보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9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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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어서 프랑스가 더욱 불안해진 이유는 벨기에 지방의 전황이 나빠졌다는 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국에 이어 에스파냐에도 선전포고를 한 뒤, 덴마크와 스위스를 제외하고 유럽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월 24일 '30만 징집법'을 통과시켜 전방으로 병력을 보내는 가운데 만만치 않은 반발을 부딪쳤다.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을 굳건히 세워야 하는 시기에 국내외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적들과 싸워야 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113/414

사실상 파리에 밀가루가 부족하지 않으며, 국민공회가 수도의 생필품을 확보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누구나 안다. 국민공회는 이 문제에만 800만~900만 리브르를 쏟아부었다. 이 돈을 원래 목적대로 썼다면 생필품이 부족할 리 없다. 그런데도 파리의 모든 구역에서 새벽 3시부터 시민들이 빵집 문으로 몰려드는가? 대부분의 시민이 동요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도 악의에 찬 사람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소요사태를 조장하기 때문에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40/414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 - 구국위원회와 헌정의 유보 Liberte>는 만만치 않은 과제로 험난한 출발을 하는 국민공회의 모습이 그려진다. 국외적으로는 루이 카페의 처형 뒤 제1차 대프랑스 동맹(First Coalition - Seventh Coalition)이 결성되면서 전쟁 상태로 치닫게 되고, 국내적으로 왕정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식량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민중의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신생 공화국 프랑스는 험난한 출발을 해야 했다.

국민공회는 첫 회의를 시작한 뒤부터 루이 16세를 처형하는 날까지 왕정을 청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처럼 매진했다. 1793년 1월 말부터 국민공회는 국내외의 긴급현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공화국을 설립하는 일이 시급했다. 정부를 조직하고 행정관리와 군대도 정비하며, 국가안보가 걸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생필품과 개인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5/414

보급 물자, 무기, 병력 등 모든 여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훈련과 무장이 잘된 다수의 적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민공회는 시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자발적인 참전을 독려하는 한편, 투기세력이 상품과 화폐를 독점하면서 생겨난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가격통제정책을 통해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점차 가중되는 문제의 심각성으로 공화정의 위기는 심각해져갔다.

도르도뉴의 라마르크 Francois Lamarque가 다른 의원 두 명과 함께 아르덴의 중부군을 시찰한 결과를 보고했다. 1만 5,000명이 9만 명 이상의 적을 막아야 하는데, 탄약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헐벗은 상태로 궤멸 직전이었다. 그래서 파견의원들은 그 사실을 국민공회에 즉시 알렸지만, 국방위원회는 그런 중대한 사실을 경솔하게 공표했다고 파견의원들을 질책했다. 파견의원들은 국민 2.700만 명 가운데 시민 300만 명을 무장상태에 둔 현실에서 위험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국방위원회에 회답했고, 그 뒤에 파견의원들이 바라던 대로 10만 명이 적을 무찌르겠다고 전방으로 달려갔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77/414

모든 생필품의 품귀현상은 아시냐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졌기 때문에 나타났다. 투기와 매점매석이 횡행했다. 국민공회/파리 코뮌/정치클럽에서 '악당 malveillants'이라 부르기 시작한 국내의 반혁명분자들, 그중에서 투기꾼들이 온갖 나쁜 소식을 이용해서 혁명의 성과를 부인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정화 正貨를 빼돌리고, 혁명의 산물인 지폐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정부의 신용을 떨어뜨릴수록 이익을 얻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혁명기에도 그들은 증권거래소와 시장을 오가면서 사재기를 한 뒤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고 되팔았다. 늘 '개미들'만 피해자가 되게 마련이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357/414

이러한 프랑스의 위기는 국외 전제군주정과 국내 왕당파의 범(凡)반혁명세력 때문이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공포정으로 가는 길>에서는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지롱드파와 몽타뉴파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그려진다. 공화국이 직면했던 어려운 상황은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이전 시대의 부채로 인한 것이었지만, 위기에 대한 대처보다는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국민공회 의원들 역시 위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단결이냐, 분열이냐? 국민공회의 지롱드파와 몽타뉴파는 모두 통일성/일체성/동질성을 뜻하는 '위니테 unite'라는 말을 썼다. 여러 요소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국민공회 밖에서도 지롱드파와 자코뱅파는 모두 이 말을 쓰면서 상대방이 분열을 부추긴다고 공격했다. 그러므로 통일성이라는 말에 상반된 뜻이 생겼다. 말에는 고유한 의미가 있지만,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61/414

자코뱅협회에서는 지도자들이 날마다 지롱드파를 규탄하면서 혁명을 이끌어갈 집단을 급진적으로 정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혁명이 폐지한 특권계급 출신에게는 민간이건 군인이건 공직을 맡기지 말자는 제안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론상 절대적 평등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p82)... 2월과 3월 초의 위기를 겪으면서 국민공회는 기존의 모든 법원이 너그럽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공화국을 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특별형사법원'을 빨리 조직해서 혁명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했고, 결국 혁명의 산물인 배심원단을 두는 법을 통과시켰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97/414

결국 1793년 7월 마라(Jean-Paul Marat, 1743~1793)의 사망과 8월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 1794)가 국민공회 의장직에 오른 후에야 정쟁(政爭)은 마무리되었고, 그동안 쌓인 자신들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를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 ~ 1793)를 처형하면서 공포정으로 선회하게 된다.

당초 주명철 교수는 우리나라의 2016년 촛불혁명을 염두에 두고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했음을 밝히고 있다. 혁명을 통해 겪는 여러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역사속의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발견하고 이를 교훈삼아 실패한 프랑스 혁명 대신 성공하는 촛불 혁명이 되길 기원하는 저자의 절절한 마음이 10부작 전반에 묻어나온다.

저자는 9권의 머리말에서 성공하는 촛불혁명의 결과가 이어지는 마음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을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 2022년 시점에서 독자들은 이어지는 혁명의 어려움을 지켜보게 된다. 이전 정부를 부정하고, 외교 정책은 방향을 못잡고, 가속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시행하는 정책은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18세기 말 프랑스 민중들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사 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은 오늘날의 공안정국(公安政局)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를 느낀 급진 상퀼로트 계층에 의한 공포정 요구로 마무리된다. 이로부터 몽타뉴파는 반대편인 지롱드파를 제거와 함께 마리 앙트와네트까지 처형하면서 혁명은 '혁명체제'를 지키기 위해 보수적인 '반혁명'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혁명세력이 개혁을 하지 않고 스스로 보수화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를 깊이 체감하는 현실에서 마지막 10권 <반동의 시대>로 향해가면서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혁명기에 서민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이 삶의 질을 높여주리라고 기대하면서 전보다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을 견뎠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을 실현함에 따라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급기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었던 국미공회와 시 정부에 불만을 표출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들고일어났다.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듯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그들도 경험으로 배우고 행동방침을 세울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욱 효과적인 방식으로 권력이건 재물이건 가진 자들을 압박하고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69/414

수감자 수가 늘어나면서 국민공회가 하는 일이 신속하게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도왔다. 그렇지 않으면 반혁명혐의자가 될 뿐이었으니 달리 외면할 길도 없었다. 예전에는 공무원을 자주 바꾸면 혼란이 발생하고 행정이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사람만 바뀔 뿐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공포의 힘이다. 혁명/반혁명 모두 자신의 자유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40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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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우리는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미(美)가 무엇인지 모르는 게 사실인 것 같다. 미의 무슨 본래적 형태가 있다면 불이 뜨겁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이 가능할 터인데, 우리는 우리 인간의 아름다움에도 가지각색의 형태를 상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우리 멋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한다.

이 방면의 대가들이 사랑의 열병에 대한 치료제로서, 갈구하는 대상의 몸을 샅샅이 맘껏 보라고 처방하는 것, 애착을 냉각시키려면 사랑하는 것을 실컷 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은 진실로 새겨 볼 가치가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 것으로 여기는 자산이란 공상적이고 허황된 것, 지금은 없는 미래의 것으로,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장담할 수 없는 것들이거나, 이성, 지혜, 명예처럼 사실과 달리 우리 멋대로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들이다. 그러고서 우리는 실제적이고, 사용 가능하고, 구체적인 장점은 동물들 몫으로 돌린다. 평화, 평안, 안전, 순진, 건강, 그렇다,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값진 선물인 건강을 말이다.

우리는 우리 몫으로 불안정, 우유부단, 불확실, 고통, 미신, 죽은 다음까지 포함해 닥쳐올 일들에 대한 불안, 야심, 인색, 질투, 시기, 무절제하고 광포하고 길들일 수 없는 욕망, 전쟁, 거짓, 배신, 비방 그리고 호기심을 갖는다. 끊임없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 헤아릴 수 없는 격정들을 대가로 치르고서 우리가 자랑해 마지않는 이 대단한 이성, 판단하고 인식하는 이 능력을 산 것이라면 정녕 우리는 이상하리만치 과한 값을 치른 것이다.

우리의 행복이란 불행이 없는 것에 불과하다. 바로 그 때문에 쾌락을 최상의 가치로 삼은 철학 학파조차 행복을 단지 고통 없는 상태라고만 정의했다. 불행하지 않은 것, 그것이 인간이 바랄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다.

신앙은 우리가 얻어 낸 것이 아니라 순전히 다른 이의 너그러운 선물이다. 우리가 우리 신앙을 받아들인 것은 우리의 추론이나 이해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밖에서 부과된 권위와 명령에 의한 것이다.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우리 판단력의 힘보다는 허약성이, 우리의 통찰력보다는 우리의 맹목성이 도움이 된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퓌론파의 이런 입장, 즉 판단도 동의도 없이 모든 사물을 받아들이는 곧고도 단호한 태도는 그들을 아타락시아(평정)로 이끈다. 이 아타락시아는 우리가 사물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견해와 지식이 주는 인상이 우리에게 야기하는 동요에서 벗어난, 평화롭고 고요한 생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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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우리는 지금 뒤뚱거리는 ‘반동의 시대‘에 발꿈치를 올리고있다. 여기서 ‘반동‘(réaction)이라 함은, 혁명사에서 흔히 봐온 혁명 이후의피비린내 나는 그 반동만을 말하는 게아니다. 조세정의(租稅正義)의 원칙을무시한 채 수십억 원에 달하는 ‘똘똘한집‘을 가진 특정지역 부유층을 위해 부동산세를 확 줄여주고, 코로나 시대에도 사상초유의 실적을 거둔 기업들을위해 법인세를 끌어내렸다.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인플레이션을 앞세워 기업을 두둔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의 주범‘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기업의 이윤확대가 인플레이 션의 주범‘이라는 논리가 더 큰 정당성을 가진다.  - P5

하지만 이토록 무력한 국가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일을해낼 수 있었을까? 스스로 팔다리를 잘라 내 아무런 통치수단도 남아 있지 않은 국가가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이 마법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 힘의 근원은 다름 아닌 위기를 활용한 통치다. 위기에 의한 통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 P14

위기에 처한 국가는 화학적으로 순수하게 신자유주의국가와 시장 개입주의를 표방함에도 일시적으로 행동 방침을 조정해 기능을 중앙에 집중시킨다. 하지만 국가의 목적은 한계를 극복하는 것일 뿐이다. 2020년 3월부터 시행된공공지원과 경기부양책에 들어간 비용은 1,570억 유로에달한다. 2019년 교육·생태·국방·경찰·사법 예산의 총합보다도 많다.  - P16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모든 다자주의적 수단이무용지물이 돼버린 듯한 세상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언급되는 것이 국제법이다. 그런데 유엔 헌장은 정확히 어떤내용을 담고 있는가? 유엔 헌장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보전권 그리고 민족의 자결권이라는 잠재적으로 모순적인 두 원칙에 기초한다. 실제로 유엔은 탈식민지 과정을 지원했으며유엔 헌장 제11장은 ‘신탁통치지역 및 비자치지역‘이라는특정 범주를 명시하고 있다.  - P18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IMF는 세계은행과 함께 국가 간경제 불균형으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창설됐다. 이기구의 주 역할은 전후 재건을 위해 통화 정책을 조율하고회원국들이 납입하는 공동 기금으로 외화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이 기관은 거대해 지면서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변질됐다. 관리 감독을 조건으로 요구하는 민영화, 규제완화, 긴축재정과 같은 개혁은의료, 교육, 의식주와 같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국 이 기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항의를 받는 기관 중 하나가 됐다. - P27

 중국은 이제 독립적으로 경제 위기를 겪는 나라에 자금 지원 조건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상황을 지켜보는 미국의 표정이 어둡다.
2000년 미국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IMF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확산시켰다고 비난하면서 "IMF의 목적은 금융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내세웠지만 사실 이들의 활동은 모순적이고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한탄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IMF는 여전히 금융 공동체를수호하고 있지만 이제 다른 나침반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바로 선진국의 지정학적 우선순위다. 이를 지키려다보니IMF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 P33

1982년 이전에 발행된 미국 우표를 연구하는 것은 미국 역사의 다른 측면은 교묘하게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미국의 영웅주의, 미국의 독창성, 미국의 제도, 미국의 건축, 미국의 야생동물, 미국의 여러 장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지도자들의 고귀함에 대해 끊임없이 피상적인 주장을 늘어놓는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
개척도시의 설립. 저명한 정치가들. 주요 발명품. 국립공원,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 각 주의 깃발, 각 주의회 의사당, 각 주의 새, 각 주의 모토, 각 주가 미연방에 가입한 일자. 전문협회, 명문대학, 철도, 댐, 운하, 여러 부대.
우주 탐험. 또다시 영국을 상대로 거둔 수많은 승리 등이 미국 우표를 장식하지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산토도밍고상륙을 기념해 제작된 16부 기념우표 세트에는 콜럼버스가원주민에게 저지른 끔찍한 만행은 빠져 있다. - P37

본질적으로 농촌에 기반을 둔 FARC는 반세기 동안 지속된 전쟁의 참상, 자신들을 마약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담론을 퍼트린 언론, 도시-시골 간 인구 이동으로 일부 국민들과 단절됐다. 위계적인 조직이 해체되자 게릴라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됐다. - P46

이런 모순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호한 입장을 잘 보여준다. 사우디는 예멘 영토 내에서는 알이슬라와 상호의존관계에 있지만, 지역적으로는 아랍에미리트와 전략적 동맹을맺고 있다. 즉, 알이슬라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거부하는 처지다. 이 같은 정세는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주도로 2015년부터 시작돼 현재에 이른다. 몇 주 내에 후티 반군과 결판을 낼 목적이었지만 군사적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동맹은 약화돼 불완전한 사우디-에미리트 연합만이 남았다.  - P59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자 2세 청년들의 존재감은 점점커졌다. 대중매체나 정치인의 연설에서 이들은 소도시 범죄와 연관된 ‘문제아‘로 등장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온전히 프랑스에 기반한 삶을 살았으나 프랑스 사회와 분리된집단으로 취급받았다. 다양한 계층이 섞인 동네에 거주했으며, 의무교육이 도입되자 공교육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중견직이나 관리직에도 진출했다. 이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하며 시위했다. 알제리 정부도이주민 가족, 특히 프랑스에서 태어난 2세들의 프랑스 영구정착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 P70

 결국 논쟁의 초점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대립으로 흘러갔다. 냉전이 후진국으로 확산되고 탈식민지화가 여전히 진행되는 가운데,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긴장이 팽팽했다.
후진국은 서구 강대국의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를 지적하며,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경제 질서가 자국의 경제발전을막는다고 강력하게 맞섰다. 후진국은 선진국의 환경에 대한우려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쓰레기 및 오염에 대한 규제가자국의 경제발전을 저해할 것을 걱정했다. 재활용 때문에원자재 소비량이 감소하면, 자국 수출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 영국을 비롯한 과거의 식민지배국은후진국이 환경을 빌미로 재정원조를 얻어내려 한다고 의심했다. 후진국의  근심은 점점  커졌다.  - P74

이 보고서는 "무역과 환경 문제가 충돌할 경우 GATT체제를 활용해서 문제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특히 생산조건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자유무역주의 입장을 취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경계해야 할 중대한 위험은, 환경을 위한 논거가 보호조치 확대를 위한 논거로 변질되는것이다. 품질에 대한 우려가 생산환경에 대한 우려로 확대된다면, 이는 최악의 보호무역주의가 시작된다는 신호이므로 전 세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 P79

자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를 옛 침략국 정부 대변인이테러리스트라고 공언했는데도 한국 사회가 별다른 반응도없이 지나간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스가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공언한 것은 동아시아인 2천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범국가인 군국일본과 지금의 일본이동일체라는 생각에 추호의 의심도 해본 적이 없는 정신상태를 반영한다고 볼수밖에 없다.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는 그렇게 연결돼 있었다.  - P101

그런데, 문제는 영동의 와인 재료인 달콤한 과일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영동의 복숭아, 자두, 베리,
포도는 2040~2050년까지 재배가 늘다가 이후 계속 줄어들것으로 예측됐다. 재배지가 강원도 이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한라봉 재배지가 제주에서 전남 고흥과 나주 등으로 북상하고, 사과 주산지가 대구에서 훨씬 북쪽인 강원 영월과평창 등으로 대체됐다. 조만간 북한에서 사과나 포도를 수입하는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점차 사라지는 과일의 자리를, 열대 작목이빠르게 채우고 있다. 용과는 물론이고 파파야, 구아바, 애플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패션프루트, 아테모야, 아보카도 등의 열대 과일을 한국 농부들이 키우고 있다. 제주는 올리브노지 재배에 성공했고, 남북회귀선에서나 볼 법한 커피나무까지 하우스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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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풍경 1 파리의 풍경 1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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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파리는 너무 크다. 파리는 나라라는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같다. 대도시는 전제적인 정부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다.이런 정부는 대도시에 사람들을 몰아넣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쓴다. 사치와 향락이라는 미끼로 대지주들을 끌어들인다. 군중을 목장 속의 양떼처럼 몰아넣어서, 양떼를 지키는 개들의 역할을 하는 공통의 법이 더 쉽게 다스리도록 한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10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1 Tableau de Paris>에는 18세기 말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모습을 담고 있다. 본문에는 제목 그대로 18세기 파리의 생활상이 담겨있다. 중세 이래의 비위생적인 도시의 모습은 근대 프랑스 왕국의 중심지 파리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를 많이 저버린다. 우리가 기대한 바로크의 화려함은 왕과 그를 따르는 귀족과 함께 베르사유(Versailles)로 옮겨가버렸기에, 우리는 본문을 통해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의 상황을 보다 실감나게 관찰할 수 있다.


 공기는 건강 보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순간부터 바로 치명적이 된다. 그런데 건강은 사람들이 가장 무관심한 재산이다. 좁고 잘못 난 길들, 너무 높고 공기의 자유로운 순환을 가로막는 집들, 푸줏간과 생선가게, 하수구, 묘지들 때문에 대기가 나빠지고 불순한 입자들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이 폐쇄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90


 수많은 마차가 끝없이 덜컹거리면서 끊임없이 내뿜는 철의 입자들로 가득한 파리의 진흙은 더러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 부엌에서 나오는 오수가 더해져 악취가 난다. 막대한 양의 유황과 아질산염이 함유된 이 진흙은 외지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긴다. 이 진흙 얼룩이 묻으면 천이 타버릴 정도이다. 화차가 진흙과 쓰레기를 수거하여 가까운 들판에 쏟아 버린다. 이 더러운 하치장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불쌍할 뿐이다. 진흙 수거는 헐값에 하청을 준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156


 200년 전에는 성에서 살던 귀족들이 대도시로 나오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그들이 시골에서 거주하던 성채를 떠나게 만들려고 온갖 수를 다 썼다. 귀족들은 때대로 자의적인 명령을 무시하기도 했다. 그들은 지체가 높은 집단이었다. 그러나 베르사유에서만 군주가 하사하는 은급을 받을 수 있고, 주위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가운데 점 하나가 정해지면서 귀족들은 오래된 성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들은 폐허가 되고 영주들의 힘도 사라졌다(p16)... 농업의 쇠퇴가 두드러졌다. 왕권은 더욱 빛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국가의 재산은 축이 났다. 대도시들이 형성됨으로써 나라는 상당한 손해를 입었지만, 몇몇 개인은 엄청난 특혜를 보았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17


 <파리의 풍경>에서 우리는 왕과 귀족들의 사냥터에 의해 둘러싸인 파리를 만나게 된다. 사냥터의 동물들에 대한 권리는 오직 왕과 귀족들에게만 있으며, 이들은 사냥을 당하기 전까지 법에 의해 엄격하게 보호된다. '왕의 짐승'만도 못한 파리 시민들. 이러한 법의 체계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대혁명의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파리 주변 8~10리외에서는 총을 쏠 수 없다. '국왕 전용 사냥터'와 왕족들의 토지가 모든 사냥권을 밀어내 버렸다. 이에 관해 만들어진 법은 왕국의 다른 법들과는 대조적으로, 잔인하다고는 말하지 않더라도 가혹하다. 자고새 한 마리 죽이면 중노동형에 처해진다(p14)...  산토끼가 농민의 양배추를 먹어버리거나 비둘기가 수확을 망치고 잉어가 풀밭에 물을 대주는 강을 거슬러 올라오더라도, 잉어를 건드리지 말고 지나가게 하고 산토끼와 비둘기가 농작물을 먹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사슴을 죽이면 교수형을 당한다. 그처럼 끔찍하고 가증스러운 죄는 거의 유례가 없으며, 존속살해보다 훨씬 더 드물게 일어난다. 수렵재판소의 법규는 아주 특이하고, 우리 시대의 다른 법 중에서도 괴상하다. 실제로 그런 법규들은 존재하며, 모두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지나치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56


 한편, 파리는 주변을 둘러싼 사냥터에 의해 엄격하게 팽창이 제한된다. 제한된 면적의 파리는 그 안의 사람들을 양분화시킨다. 한 편에는 대규모 자금을 유통시키는 은행가들과 무위도식하는 금리생활자들이 있다면, 다른 한 편에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노동을 팔아 처절하게 살아가는 다른 계층이 있다. 


 지난 반세기 이래 어음 교환, 회수, 무수한 대부 등의 은행 업무가 신중하고 합리적이며 조심스런 법제를 대신해왔다. 행정 업무는 끝없이 계속되는 투기가 되어버렸다. 은행가들이야말로 프랑스의 지배자들이다. 그들은 돈을 들어오게 하고 나가게 한다. 그들은 유럽 끝에서부터 돈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또 사라지게 만든다. 그들은 위험한 마법사들이자 대담한 세계인들이다. 금을 수은 비슷하게 만들고 국고를 단번에 파산시켜 버리는 교묘하고 무시무시한 그 게임의 결과는 무엇일까? 돈의 빠른 유통은 적어도 우리에게 활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착각이 계속되면 더욱더 그렇지만 우리는 끝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87


 부자가 그 높은 집들에 기어올라가 금 조각을 몇 개 주고, 아직 무명이라서 먹고 살기에 급급한 젋은 예술가의 작품들에서 상당한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부자는 탐욕에 이끌려 노동자를 고생시키는 궁핍에서 이득을 취하려고 함에도 불구하고 유익할 수가 있다.... 한 여인이 모정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먹을 것을 두고 다툰다. 불행한 남편의 노동은 가혹하기 짝이 없는 세금이 부과되는 식료품을 사기에 부족하다. 반쯤 열린 지붕 밑에서 울려 퍼지는 가난뱅이의 절규는, 근처에서 공기를 진동시키다가 사라지는 공허한 종소리와 비슷하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8


  파리라는 같은 물리적 공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심리적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평등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정책은 중단되었고, 제1신분 성직자와 제2신분 귀족의 권리와 신분은 계층 내에서 순환할 뿐이다. 파리의 순환되지 않는 대기보다 더 심각한 계층의 불평등은 사회적 공기마저 험악하게 만들었음을 독자들은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거리의 집들에 번지수를 매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유용한 활동은 중단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러나 대문들은 기록자가 번지수를 매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사실 판사, 징세청부업자, 주교의 저택에 어떻게 비천한 번호를 부과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그 저택의 위풍당당한 대리석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누구도 로마에서 2인자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390


 주교들은 음모와 아첨의 결실을 기다리며, 은밀히 공직에 오르려고 애쓴다. 그들은 끊임없이 막후에서 일을 꾸미고, 옛날에 예언자들이 격분했던 바빌론에 못지않게 죄가 많은 새로운 바빌론의 한복판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처럼 고위성직자들은 전적으로 세속적인 일에 전념한다. 순수한 도덕을 함양하고 지칠 줄 모르는 자선, 말하자면 사도다운 자선의 본보기를 보여줄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13


 고등법원 법관이 되는 데에는 징세청부업자가 되는 것보다 더 높은 지식이 요구되지 않는다. 변호사증을 구입한 사람은 박식한 것처럼 여겨진다. 변호를 맡을 거리는 많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재판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진다. 한 사람이 변론을 하면, 다른 사람은 앉아서 그 변론을 듣는다. 돈이 모든 차이를 만든다. 사법관직을 판 초기의 군주들은 우리의 왕국을 결코 회복될 수 없는 상태로 망가뜨렸던 것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55


 앙시앵 레짐 체제 아래에서 짐슴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이들이 유일하게 대접받는 경우는 이들이 세금을 낼 때 뿐이다. 권리없이 의무만 부담하는, 왕의 사냥터에 둘러싸인 베르사유의 곳간 파리를 우리는 <파리의 풍경 1>에서 목격하게 된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피폐하고 건조한 삶을 살고 있는 가운데 작은 불꽃이 도화선이 되어 대혁명으로 발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너무 결정론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의 풍경 1>에서 우리는 서유럽의 중심도시 파리의 화려함 대신 18세기 말의 어두운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 속에서 역사의 진보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가난뱅이만 세금을 낸다. 가난뱅이에게는 모든 즐거움이 면제되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의무는 면제되지 않는다. 군주는 마음만 먹으면 도시를 굷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선량하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새장에 가두어 놓고, 화가 나면 그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살아가야 한다. 생명보존이 최우선 법칙이다. 이 도시는 번창하고 있지만, 그것은 국가 전체를 희생시킨 덕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11


 모든 자리, 즉 고위직, 민간직, 장교직, 성직은 돈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부자와 나머지 시민들 간의 거리는 나날이 커져 간다. 가난뱅이의 눈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치의 놀라운 발전 때문에 가난은 더욱 참기 어려워진다. 증오의 골은 깊어가고, 국가는 두 계급으로 나뉜다. 탐욕스럽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과 불평하는 사람들, 땅을 잘게 쪼개고 재산을 작게 나누는 방법을 찾아내는 입법자는 국가와 주민에게 크나큰 봉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몽테스키외가 "두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장소에서 결혼이 이루어진다"는 아주 적절한 표현에 의해 밝힌 풍요로운 사상이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 p29


소수에 집중된 부는 즐기는 사람에게나 시샘하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위험한 사치를 낳는다. 이 부가 덜 불평등하게 분배된다면, 호사가 야기하는 파괴적인 독 대신에, 노동의 근원이고 가정적인 미덕의 원천인 여유가 생겨날 것이다. 사람들의 재산이 거의 같은 수준인 국가는 모두 평온하고 행복하며 단결된 모습을 보인다. 오늘날 스위스가 그렇다. - P29

은행권, 다시 말해서 지폐만이 수도의 수많은 필요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지폐는 팔리지 않은 물건만큼 많은 기호를 만들어낼 것이다. 필요한 것이 많으면 기호도 그만큼 많아져야 한다. 우리 시대에는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은행권을 현명하고 절제된 비율로 찍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은행권은 정부의 감독하에 유통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국립은행을 가동시키는 장치에 손을 대지 않고 공적인 부의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 P32

누군가 말하길, 부는 쌓이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이미 있는 곳에 또 모인다는 것이다. 부는 쌓이면 쌓일수록 더 많아진다. 루소는 처음의 1에퀴가 나중의 100만 에퀴보다 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수도에서 실감할 수 있다. 이 모든 부자들은 재산을 가지고 뭘할까?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중요한 것, 유익한 것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이 부자들은 남는 시간에 하찮은 일을 쫓아다니느라 애쓴다. - P127

국고에 쌓아둔 거금을 앗아가는 손쉬운 재빠른 속도는 15만 명에 달하는 서기들의 고되고 끝없는 노력과 대비된다. 이들은 한 손에 검을 들고 다른 손에 붗을 들고 폭력적으로 조그만 조각들을 요구한다. 이 조각들은 엄청난 양의 주화 더미를 이루게 되지만, 저수 탱크 바닥에 쌓이자마자 녹거나 사라져 버린다. 압축의 빨펌프가 중단 없이 격렬하게 작동해도 저수 탱크는 거의 언제나 말라 있다. 그래서 국민은 극도로 지쳐서 무기력하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쓰러질 지경이다. - P177

현재의 학습 진도표는 매우 잘못되어 있어서, 아무리 우수한 학생이 10년을 공부해도 모든 분야에서 배우는 것이 별로 없다. 문인들을 보면 참으로 놀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독학으로 배운 것이다. 먼저 한 언어를 철저하게 알아야 다른 언어를 잘 배울 수 있는데도, 많은 현학자들은 아동들이 모국어를 알기도 전에 라틴어를 가르치려고 한다. 우리의 모든 교육체제에서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 퍼져 있는지! - P188

(샤를마뉴시대의) 그 훌륭한 정부의 균형상태가 카페 왕조의 초기 왕들에 의해 파괴되고 민족이 광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거대한 봉토를 강제로 왕실에 통합시키는 과정이 단지 인민을 적대적인 두 세력으로 분열시키는 데 그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삼부회 소집은 오랫동안 절대권력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서서히 절대권력이 발전했다. 카페 왕조, 발루아 왕조, 앙굴렘 가는 클로비스에 의해 시도되었다가 그 민족에 의해 강력하고 단호하게 분쇄되었던 바로 그 계획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때부터 민족은 눈부신 순간을 맞이했으나,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 P236

한편으로 나는 프랑스가 국가의 모든 사업을 수행할 만큼의 충분한 통화(通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가 재정을 영국의 수준으로 올려놓기에는 통화가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프랑스는 다른 국가들보다 재정이 취약하다. 홀란드인은 프랑스인보다 5배 더 부유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명목화폐와 실물화폐를 결합시킨 국가들의 정책을 찬양하고 싶다. 자금의 이동이 늘어날 것이고, 은행을 통해 국가에 존재하는 현금 기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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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8-29 2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근래 본 조사자료 중에 전세계에서 역사적, 문화적 등 모든 면에서 남한과 가장 유사한 나라가 일본, 대만, 중국, 북한 바로 다음 다섯 번째로 프랑스라는 말을 듣고 크게 충격받았지만, 한편으론 그럴 듯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2-08-29 22:24   좋아요 3 | URL
^^:) 그렇군요.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유럽에서 우리나라와 유사점이 많은 나라를 찾는다면 저도 프랑스보다는 이탈리아가 더 생각나긴 합니다만, <파리의 풍경>안의 내용을 생각해본다면 프랑스에서도 적지 않은 공통점을 발견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22-08-29 22:23   좋아요 3 | URL
저도 이탈리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단 풍문 들어 눈여겨 찾아 보니 30번째 이상이었습니다. ㅋ
오히려 위에 말씀하신 네덜란드와 폴란드가 우리나라와 유사성이 더 많았습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2-08-29 22:28   좋아요 2 | URL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와는 다른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그런 듯 합니다. 평판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하루 마무리 잘 지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