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우리는 지금 뒤뚱거리는 ‘반동의 시대‘에 발꿈치를 올리고있다. 여기서 ‘반동‘(réaction)이라 함은, 혁명사에서 흔히 봐온 혁명 이후의피비린내 나는 그 반동만을 말하는 게아니다. 조세정의(租稅正義)의 원칙을무시한 채 수십억 원에 달하는 ‘똘똘한집‘을 가진 특정지역 부유층을 위해 부동산세를 확 줄여주고, 코로나 시대에도 사상초유의 실적을 거둔 기업들을위해 법인세를 끌어내렸다.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인플레이션을 앞세워 기업을 두둔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의 주범‘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기업의 이윤확대가 인플레이 션의 주범‘이라는 논리가 더 큰 정당성을 가진다.  - P5

하지만 이토록 무력한 국가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일을해낼 수 있었을까? 스스로 팔다리를 잘라 내 아무런 통치수단도 남아 있지 않은 국가가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이 마법은 대체 뭐란 말인가?
그 힘의 근원은 다름 아닌 위기를 활용한 통치다. 위기에 의한 통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 P14

위기에 처한 국가는 화학적으로 순수하게 신자유주의국가와 시장 개입주의를 표방함에도 일시적으로 행동 방침을 조정해 기능을 중앙에 집중시킨다. 하지만 국가의 목적은 한계를 극복하는 것일 뿐이다. 2020년 3월부터 시행된공공지원과 경기부양책에 들어간 비용은 1,570억 유로에달한다. 2019년 교육·생태·국방·경찰·사법 예산의 총합보다도 많다.  - P16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모든 다자주의적 수단이무용지물이 돼버린 듯한 세상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언급되는 것이 국제법이다. 그런데 유엔 헌장은 정확히 어떤내용을 담고 있는가? 유엔 헌장은 국가의 주권과 영토보전권 그리고 민족의 자결권이라는 잠재적으로 모순적인 두 원칙에 기초한다. 실제로 유엔은 탈식민지 과정을 지원했으며유엔 헌장 제11장은 ‘신탁통치지역 및 비자치지역‘이라는특정 범주를 명시하고 있다.  - P18

2차 세계대전 종식 후 IMF는 세계은행과 함께 국가 간경제 불균형으로 인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창설됐다. 이기구의 주 역할은 전후 재건을 위해 통화 정책을 조율하고회원국들이 납입하는 공동 기금으로 외화 부족 사태가 발생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이 기관은 거대해 지면서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변질됐다. 관리 감독을 조건으로 요구하는 민영화, 규제완화, 긴축재정과 같은 개혁은의료, 교육, 의식주와 같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국 이 기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항의를 받는 기관 중 하나가 됐다. - P27

 중국은 이제 독립적으로 경제 위기를 겪는 나라에 자금 지원 조건을 결정할 수도 있다. 이상황을 지켜보는 미국의 표정이 어둡다.
2000년 미국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IMF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확산시켰다고 비난하면서 "IMF의 목적은 금융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내세웠지만 사실 이들의 활동은 모순적이고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고 한탄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IMF는 여전히 금융 공동체를수호하고 있지만 이제 다른 나침반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바로 선진국의 지정학적 우선순위다. 이를 지키려다보니IMF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 P33

1982년 이전에 발행된 미국 우표를 연구하는 것은 미국 역사의 다른 측면은 교묘하게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미국의 영웅주의, 미국의 독창성, 미국의 제도, 미국의 건축, 미국의 야생동물, 미국의 여러 장소,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 지도자들의 고귀함에 대해 끊임없이 피상적인 주장을 늘어놓는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
개척도시의 설립. 저명한 정치가들. 주요 발명품. 국립공원,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거둔 승리. 각 주의 깃발, 각 주의회 의사당, 각 주의 새, 각 주의 모토, 각 주가 미연방에 가입한 일자. 전문협회, 명문대학, 철도, 댐, 운하, 여러 부대.
우주 탐험. 또다시 영국을 상대로 거둔 수많은 승리 등이 미국 우표를 장식하지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산토도밍고상륙을 기념해 제작된 16부 기념우표 세트에는 콜럼버스가원주민에게 저지른 끔찍한 만행은 빠져 있다. - P37

본질적으로 농촌에 기반을 둔 FARC는 반세기 동안 지속된 전쟁의 참상, 자신들을 마약 테러리스트로 매도하는담론을 퍼트린 언론, 도시-시골 간 인구 이동으로 일부 국민들과 단절됐다. 위계적인 조직이 해체되자 게릴라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분열이 심화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됐다. - P46

이런 모순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호한 입장을 잘 보여준다. 사우디는 예멘 영토 내에서는 알이슬라와 상호의존관계에 있지만, 지역적으로는 아랍에미리트와 전략적 동맹을맺고 있다. 즉, 알이슬라를 필요로 하는 동시에 거부하는 처지다. 이 같은 정세는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의 주도로 2015년부터 시작돼 현재에 이른다. 몇 주 내에 후티 반군과 결판을 낼 목적이었지만 군사적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동맹은 약화돼 불완전한 사우디-에미리트 연합만이 남았다.  - P59

프랑스 사회에서 이민자 2세 청년들의 존재감은 점점커졌다. 대중매체나 정치인의 연설에서 이들은 소도시 범죄와 연관된 ‘문제아‘로 등장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온전히 프랑스에 기반한 삶을 살았으나 프랑스 사회와 분리된집단으로 취급받았다. 다양한 계층이 섞인 동네에 거주했으며, 의무교육이 도입되자 공교육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중견직이나 관리직에도 진출했다. 이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하며 시위했다. 알제리 정부도이주민 가족, 특히 프랑스에서 태어난 2세들의 프랑스 영구정착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 P70

 결국 논쟁의 초점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대립으로 흘러갔다. 냉전이 후진국으로 확산되고 탈식민지화가 여전히 진행되는 가운데,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긴장이 팽팽했다.
후진국은 서구 강대국의 인종차별과 제국주의를 지적하며,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경제 질서가 자국의 경제발전을막는다고 강력하게 맞섰다. 후진국은 선진국의 환경에 대한우려를 믿지 않았다. 오히려, 쓰레기 및 오염에 대한 규제가자국의 경제발전을 저해할 것을 걱정했다. 재활용 때문에원자재 소비량이 감소하면, 자국 수출도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 영국을 비롯한 과거의 식민지배국은후진국이 환경을 빌미로 재정원조를 얻어내려 한다고 의심했다. 후진국의  근심은 점점  커졌다.  - P74

이 보고서는 "무역과 환경 문제가 충돌할 경우 GATT체제를 활용해서 문제를 완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특히 생산조건에는 개입할 수 없다는 자유무역주의 입장을 취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경계해야 할 중대한 위험은, 환경을 위한 논거가 보호조치 확대를 위한 논거로 변질되는것이다. 품질에 대한 우려가 생산환경에 대한 우려로 확대된다면, 이는 최악의 보호무역주의가 시작된다는 신호이므로 전 세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 P79

자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를 옛 침략국 정부 대변인이테러리스트라고 공언했는데도 한국 사회가 별다른 반응도없이 지나간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스가가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공언한 것은 동아시아인 2천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범국가인 군국일본과 지금의 일본이동일체라는 생각에 추호의 의심도 해본 적이 없는 정신상태를 반영한다고 볼수밖에 없다. 이토 히로부미와 아베 신조는 그렇게 연결돼 있었다.  - P101

그런데, 문제는 영동의 와인 재료인 달콤한 과일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영동의 복숭아, 자두, 베리,
포도는 2040~2050년까지 재배가 늘다가 이후 계속 줄어들것으로 예측됐다. 재배지가 강원도 이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한라봉 재배지가 제주에서 전남 고흥과 나주 등으로 북상하고, 사과 주산지가 대구에서 훨씬 북쪽인 강원 영월과평창 등으로 대체됐다. 조만간 북한에서 사과나 포도를 수입하는 시대를 맞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점차 사라지는 과일의 자리를, 열대 작목이빠르게 채우고 있다. 용과는 물론이고 파파야, 구아바, 애플망고, 파인애플, 바나나, 패션프루트, 아테모야, 아보카도 등의 열대 과일을 한국 농부들이 키우고 있다. 제주는 올리브노지 재배에 성공했고, 남북회귀선에서나 볼 법한 커피나무까지 하우스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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