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정으로 가는 길 - 구국위원회와 헌정의 유보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9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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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어서 프랑스가 더욱 불안해진 이유는 벨기에 지방의 전황이 나빠졌다는 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국에 이어 에스파냐에도 선전포고를 한 뒤, 덴마크와 스위스를 제외하고 유럽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월 24일 '30만 징집법'을 통과시켜 전방으로 병력을 보내는 가운데 만만치 않은 반발을 부딪쳤다.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을 굳건히 세워야 하는 시기에 국내외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적들과 싸워야 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113/414

사실상 파리에 밀가루가 부족하지 않으며, 국민공회가 수도의 생필품을 확보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누구나 안다. 국민공회는 이 문제에만 800만~900만 리브르를 쏟아부었다. 이 돈을 원래 목적대로 썼다면 생필품이 부족할 리 없다. 그런데도 파리의 모든 구역에서 새벽 3시부터 시민들이 빵집 문으로 몰려드는가? 대부분의 시민이 동요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도 악의에 찬 사람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소요사태를 조장하기 때문에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40/414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 - 구국위원회와 헌정의 유보 Liberte>는 만만치 않은 과제로 험난한 출발을 하는 국민공회의 모습이 그려진다. 국외적으로는 루이 카페의 처형 뒤 제1차 대프랑스 동맹(First Coalition - Seventh Coalition)이 결성되면서 전쟁 상태로 치닫게 되고, 국내적으로 왕정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식량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민중의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신생 공화국 프랑스는 험난한 출발을 해야 했다.

국민공회는 첫 회의를 시작한 뒤부터 루이 16세를 처형하는 날까지 왕정을 청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처럼 매진했다. 1793년 1월 말부터 국민공회는 국내외의 긴급현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공화국을 설립하는 일이 시급했다. 정부를 조직하고 행정관리와 군대도 정비하며, 국가안보가 걸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생필품과 개인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5/414

보급 물자, 무기, 병력 등 모든 여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훈련과 무장이 잘된 다수의 적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민공회는 시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자발적인 참전을 독려하는 한편, 투기세력이 상품과 화폐를 독점하면서 생겨난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가격통제정책을 통해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점차 가중되는 문제의 심각성으로 공화정의 위기는 심각해져갔다.

도르도뉴의 라마르크 Francois Lamarque가 다른 의원 두 명과 함께 아르덴의 중부군을 시찰한 결과를 보고했다. 1만 5,000명이 9만 명 이상의 적을 막아야 하는데, 탄약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헐벗은 상태로 궤멸 직전이었다. 그래서 파견의원들은 그 사실을 국민공회에 즉시 알렸지만, 국방위원회는 그런 중대한 사실을 경솔하게 공표했다고 파견의원들을 질책했다. 파견의원들은 국민 2.700만 명 가운데 시민 300만 명을 무장상태에 둔 현실에서 위험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국방위원회에 회답했고, 그 뒤에 파견의원들이 바라던 대로 10만 명이 적을 무찌르겠다고 전방으로 달려갔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77/414

모든 생필품의 품귀현상은 아시냐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졌기 때문에 나타났다. 투기와 매점매석이 횡행했다. 국민공회/파리 코뮌/정치클럽에서 '악당 malveillants'이라 부르기 시작한 국내의 반혁명분자들, 그중에서 투기꾼들이 온갖 나쁜 소식을 이용해서 혁명의 성과를 부인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정화 正貨를 빼돌리고, 혁명의 산물인 지폐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정부의 신용을 떨어뜨릴수록 이익을 얻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혁명기에도 그들은 증권거래소와 시장을 오가면서 사재기를 한 뒤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고 되팔았다. 늘 '개미들'만 피해자가 되게 마련이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357/414

이러한 프랑스의 위기는 국외 전제군주정과 국내 왕당파의 범(凡)반혁명세력 때문이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공포정으로 가는 길>에서는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지롱드파와 몽타뉴파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그려진다. 공화국이 직면했던 어려운 상황은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이전 시대의 부채로 인한 것이었지만, 위기에 대한 대처보다는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국민공회 의원들 역시 위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단결이냐, 분열이냐? 국민공회의 지롱드파와 몽타뉴파는 모두 통일성/일체성/동질성을 뜻하는 '위니테 unite'라는 말을 썼다. 여러 요소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국민공회 밖에서도 지롱드파와 자코뱅파는 모두 이 말을 쓰면서 상대방이 분열을 부추긴다고 공격했다. 그러므로 통일성이라는 말에 상반된 뜻이 생겼다. 말에는 고유한 의미가 있지만,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61/414

자코뱅협회에서는 지도자들이 날마다 지롱드파를 규탄하면서 혁명을 이끌어갈 집단을 급진적으로 정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혁명이 폐지한 특권계급 출신에게는 민간이건 군인이건 공직을 맡기지 말자는 제안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론상 절대적 평등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p82)... 2월과 3월 초의 위기를 겪으면서 국민공회는 기존의 모든 법원이 너그럽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공화국을 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특별형사법원'을 빨리 조직해서 혁명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했고, 결국 혁명의 산물인 배심원단을 두는 법을 통과시켰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97/414

결국 1793년 7월 마라(Jean-Paul Marat, 1743~1793)의 사망과 8월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 1794)가 국민공회 의장직에 오른 후에야 정쟁(政爭)은 마무리되었고, 그동안 쌓인 자신들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를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 ~ 1793)를 처형하면서 공포정으로 선회하게 된다.

당초 주명철 교수는 우리나라의 2016년 촛불혁명을 염두에 두고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했음을 밝히고 있다. 혁명을 통해 겪는 여러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역사속의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발견하고 이를 교훈삼아 실패한 프랑스 혁명 대신 성공하는 촛불 혁명이 되길 기원하는 저자의 절절한 마음이 10부작 전반에 묻어나온다.

저자는 9권의 머리말에서 성공하는 촛불혁명의 결과가 이어지는 마음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을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 2022년 시점에서 독자들은 이어지는 혁명의 어려움을 지켜보게 된다. 이전 정부를 부정하고, 외교 정책은 방향을 못잡고, 가속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시행하는 정책은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18세기 말 프랑스 민중들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사 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은 오늘날의 공안정국(公安政局)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를 느낀 급진 상퀼로트 계층에 의한 공포정 요구로 마무리된다. 이로부터 몽타뉴파는 반대편인 지롱드파를 제거와 함께 마리 앙트와네트까지 처형하면서 혁명은 '혁명체제'를 지키기 위해 보수적인 '반혁명'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혁명세력이 개혁을 하지 않고 스스로 보수화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를 깊이 체감하는 현실에서 마지막 10권 <반동의 시대>로 향해가면서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혁명기에 서민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이 삶의 질을 높여주리라고 기대하면서 전보다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을 견뎠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을 실현함에 따라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급기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었던 국미공회와 시 정부에 불만을 표출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들고일어났다.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듯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그들도 경험으로 배우고 행동방침을 세울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욱 효과적인 방식으로 권력이건 재물이건 가진 자들을 압박하고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69/414

수감자 수가 늘어나면서 국민공회가 하는 일이 신속하게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도왔다. 그렇지 않으면 반혁명혐의자가 될 뿐이었으니 달리 외면할 길도 없었다. 예전에는 공무원을 자주 바꾸면 혼란이 발생하고 행정이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사람만 바뀔 뿐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공포의 힘이다. 혁명/반혁명 모두 자신의 자유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40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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