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상 동문선 현대신서 178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동문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롤랑 바르트(Roland Gerard Barthes, 1915 ~ 1980)의 <사랑의 단상 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은 사랑, 정확하게는 젊은 연인(戀人)들간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사랑의 단상>에서 묘사되는 사랑의 모습은 '욕망'에 다름아니다. 내가 느끼는 '욕망'과  이를 채워주지 못하는 ''현실'. 이를 인식하는 '결핍한 욕망의 주체'로서 나와 이를 채워주는 상대로서의 ''난 널 사랑해 Je-t-aime'의 '너', 그리고 욕망을 매개하는 언어(sinifiant). 이들의 관계가 <사랑의 단상>의 배경이 된다.


 마음은 욕망의 기관이다. 마치 상상계의 영역 안에 사로잡혀 마술에 걸린 것처럼, 사람들은 혹은 그 사람은 내 욕망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걸까? 바로 거기에 마음의 모든 움직임이, 마음의 모든 '문제점'이 집결되는 불안이 있다.(p85)... 내가 실제로 충족될까 하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그럴 가망이 전혀 없다 해도 괜찮다). 오직 파괴될 수 없는 충족에의 의지만이 찬연히 빛난다.(p89) <사랑의 단상> 中


 욕구불만의 문형은 현존일 것이다.(p34)... 그런데 부재는 결핍의 문형이다. 나는 동시에 욕망하며 욕구한다. 욕망(desir)이 욕구(besoin)에 짓눌린다. 바로 거기에 사랑의 감정의 집요한 사실이 있다.(p35) <사랑의 단상> 中


 사랑을 욕망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사랑하는 나'는 '욕망의 주체'가 될 것이고, 상대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욕망의 주체와 대상은 <사랑의 단상>에서 언어(言語)를 통해 연결된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담긴 언어 행위를 통해 사랑은 이루어지기도, 깨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은 다음과 같은 원칙에서 출발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단순히 어떤 증세가 있는 환자로 환원시켜서는 안되며, 오히려 우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비실제적인 것, 다시 말하면 다루기 힘든(intraitalbe) 것을 들어야 한다는 원칙 말이다. 이렇게 하여 사례를 들지 않고 오로지 일차 언어의(메타 언어가 아닌) 행위에만 의존하는 '극적인' 방법이 선택되었다.(p13) <사랑의 단상> 中


 이런 담론의 파편들을 우리는 문형(fingure)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보다 생동감 넘치는, 즉 휴식을 취하는 상태가 아닌 행동하는 상태에서 포착된 몸짓이다.(p14)... 우리를 스쳐가는 담론 속에서 우리가 알아차릴 수 있는 어떤 것, 즉 언젠가 읽고 듣고 느꼈던 것에 의해 문형은 차려진다... 문형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감정이라는 안내자 외에는 그 무엇도 필요치 않다.(p15) <사랑의 단상> 中


 언어의 힘, 나는 내 언어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으나, 내 몸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내가 내 언어로 감추는 것을 몸은 말해 버린다. 메시지는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그럴 수 없다. 내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든간에, 그 사람은 내 목소리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p74) <사랑의 단상> 中


 <사랑의 단상>에서 낱말이 중요하지 않다. 낱말과 낱말이 모여 만들어낸 문장. 그리고, 문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언어 행위의 시간 속에서 오가는 감정을 저자는 세밀하게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분석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등과 같은 고전의 지지를 받는다.


 부재에는 항상 그 사람만의 부재만이 존재한다. 떠나는 것은 그 사람이며, 남아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그 사람은 끊임없이 출발, 여행의 상태에 있다.(p30)... 하나의 (고전적인) 단어가 육체로부터 우러나와 부재의 감동을 말해 준다. 즉 갈망한다(soupirer)란 단어가, 그런데 그것은 '육체의 현존을 갈망하는' 것을 뜻한다. 남여양성겸유자(androgyne)의 두 반쪽은 서로를 갈망한다. 그리스어에는 욕망에 대한 두 단어가 있다. 부재하는 이에 대한 욕망에는 '포토스(Pothos)'가, 현존하는 이에 대한 욕망에는 보다 격렬한 '히메로스(Hiimeros)'가.)(p33) <사랑의 단상> 中


 육체의 모든 주름(plis)에 대해 나는 '근사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근사해란, 그것은 유일하기 때문에 내 욕망이야란 뜻이다... 그렇지만 내 욕망의 특이함을 느끼면 느낄 수록 이름짓기는 힘들어진다. 과녁의 정확함에 이름의 흔들림이 대응한다. 욕망의 속성은 부정확한 언표만을 만드는 데 있다.(p41) <사랑의 단상> 中


 <사랑의 단상>은 연애와 관련한 여러 모습이 담겨 있다. 떠난 이에 대한 아쉬움, 사랑하는 이에 대한 감정과 상황. 만남에서 헤어짐에 이르기까지 연애의 과정에서 중심은 내 자신이며, 사랑은 '욕망'으로 표현된다. '욕망'을 통해 연애의 사랑을 쫓아가는 <사랑의 단상>의 접근법은 연애 경험이 있는 또는 연애중인 이들에게 추억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면에서 <사랑의 단상>은 매우 훌륭한 책이다. 그렇지만, 만약<사랑의 단상>의 사랑에 대한 접근법에 동감하는가를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나는 충족시키고(충족되고), 축적한다. 그러나 결핍을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의 여분(trop)을 만들어 내며, 바로 이 여분 속에서 충족이 내도한다.(p87)... 모든 '만족감(satisfaction)'을 뒤로 한 채, 과음(soul)이나 포식도 하지 않은 채 나는 포만의 한계를 넘어서서, 역겨움, 구역질, 취기 대신에 일치(Coincidence)를 발견하게 된다. '지나침'이 나를 알맍은 것으로 인도한다.(p88) <사랑의 단상> 中

 사랑하는 나에게는 새로운 것, 방해하는 것은 모두 사실의 범주가 아닌, 해석해야만 하는 기호로 받아들여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사실은 이내 기호로 변형되며, 그리하여 결과론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결과론적인 것은 사실이 아니라 기호이다.(p97) <사랑의 단상> 中


  사랑을 기호학적으로 해석한다면, 다음과 같이 첫 고백 이후 모든 언어 행동은 무의미하다. 이미 '사랑'의 뜻은 전해졌으니까. 그렇지만, 반드시 그럴까.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상대에게 확인받고 싶기에, 항상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또한, 말을 하는 이 역시 '사랑해'라는 말을 통해 일종의 '자기 강화'를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언어를 단순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동의하기 어렵다. 


 첫번 째 고백을 하고 난 후의 '난 널 사랑해 Je-t-aime'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텅 빈 것처럼 보이기에 약간은 수수께끼 같은 과거의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그 말을 그것의 관여성(pertinence) 여부에는 개의치 않고 그저 되풀이할 따름이다. 그것은 언어에서 나와 어디로 배회할 것인지?(p214) <사랑의 단상> 中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랑의 행위를 통해 내가 체득하게 되는 지혜는, 그 사람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러나 그의 불투명함은 어떤 비밀의 장막이 아닌 외관과 실체의 유희가 파기되는 명백함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미지의 누군가를,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 있을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신비주의자적인 움직임 : 나는 알 수 없는 것의 앎에 도달한다.(p197) <사랑의 단상> 中


 또한, 우리가 사랑할수록 더 모호함에 빠진다는 저자의 주장도 생각해보자. 연애를 하면서 우리는 상대에 대해 알아가지만, 또한 우리의 편견이 깨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연인의 이데아(idea)를 깨나가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그 모습이 처음의 모습과는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과정에서 보다 성숙해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짝과 더 가까워지는 경험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사랑할수록 자기 자신을 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분명함에 빠진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내면에 있는 비밀이 사랑을 통해 외부로 드러나는 체험을 한다. 비록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체험이겠지만.


 정보 제공자는 나에게 별 대수롭지 않은 정보를 넘겨주면서 하나의 비밀을 드러나게 한다. 이 비밀은 심오한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며, 나에게 감추어졌던 것도 바로 이 사람의 이 외부이다. 막은 거꾸로 열린다. 내밀한 장면이 아닌 관중석에서, 그 정보의 내용이 무엇이든간에 그것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p203) <사랑의 단상> 中 


 사랑의 인내심은 그 출발부터 자체 부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것은 어떤 기다림이나 자제력, 속임수,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 격심해도 닮지 않는 그런 불행이다.(p204) <사랑의 단상> 中


 사랑이 아름답다면 그것은 사랑이 좋은 결실로 연결되었기 때문이 아닐것이다. 변하지 않고 바래지 않는 '영원한 다이아몬드' 같은 사랑을 욕망하고 그것을 얻지 못해 좌절하거나, 그것을 가질 수 있어서(욕망의 충족) 행복하다는 것은 말그대로 사랑의 단면(斷面)이라 여겨진다.


 질투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네 번 괴로워하는 셈이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질투한다는 사실에 대해 자신을 비난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내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한다. 나는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p213) <사랑의 단상> 中


 나와 맞지 않은 사람과 이루어지지 않아 한 편의 추억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사랑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아니면,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통해 더 좋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면, 헤어짐 역시 완성된 사랑을 위한 과정이 아닐까.


 나는 더 이상 해석을 믿지 않으려 한다. 나는 그 사람으로부터 오는 말은 모두 진실의 기호로 받아들여, 내가 말할 때 그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지 어떤지는 의문시하지 않으련다. 바로 여기서 선언의 중요성이 비롯된다... 무엇가가 알려지려면 말해야만 하고, 또 그것은 일단 말해진 이상 일시적이나마 진실이 되는 것이다.(p307) <사랑의 단상> 中


 마지막으로, 내가 지금 말하는 '사랑해'라는 말은 검증되지 않는 약속이다. 이 말에 담겨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의 무게는 현재가 아닌 미래(未來)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바라본다면, 연인들이 말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진정한 사랑을 알고 말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유한한 인간 삶을 통해 궂은 일, 좋은 일을 함께 겪고 '영원(永遠)의 상' 아래에서 비로소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의 단상>이 대상으로 하는 시간은 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림] Prince and princess(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50665564531992133/)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해서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대부분의 동화가 위와 같은 말로 끝나지만, 현실은 '결혼식 이후'부터 시작된다. 아쉽게도 <사랑의 단상>은 사랑의 기나긴 여정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꿈과 환상이 가득한 세계에서의 사랑과 욕망. 이것이 이 책이 가진 범위의 한계라 여겨진다.


 사람과 관련한 많은 예술 작품이 있지만, 그 안의 어느 작품도 온전하게 사랑을 담지 못하고, 담아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의 단상>에서 묘사하는 사랑 역시 그런 점에서 사랑의 일부일 수 있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 않지만, '사랑'에 대해 일관점 관점에서 논리를 전개시키고 오랜 추억으로부터 사랑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사랑의 단상>은 좋은 책임을 확인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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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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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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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16: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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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6 08: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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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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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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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5 09: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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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단상 동문선 현대신서 178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동문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때 당시에도 알 수 있을까? 사랑은 우리의 아픈 이별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백시킨 다른 표현이 아닐런지... 사랑에 대한 여러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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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4-14 1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정독한 사람입니다. 페이퍼로 쓰기도 했죠.

아마도 이별하고 나면 정확히 상대에 대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러나 이건 또한 착각일 수 있죠. ㅋ

겨울호랑이 2019-04-14 18:33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페크님 말씀처럼 많은 것이 불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만은 명확해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19-04-14 16: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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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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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9: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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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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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기와 투자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요즘이다. 얼마전에는 국회의원의 부동산 관련 투기와 투자 문제가 한창 시끄러웠는데, 요즘은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주식 투기와 투자가 새로운 이슈가 되는 모양새다.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잠시 투기와 투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투자운용이란 철저한 분석에 기초하여 원금의 안정성과 만족할 만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운용으로 이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운용은 투기이다.(p82)... 투자에서 추구하는 "안정성"은 절대적이거나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 말을 제반 정상적 또는 합리적 가능성이 있는 조건이나 변화에 대응하여 얼마나 손실을 막아주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안전한 주식은 개연성이 낮은 불의의 사태를 제외한 어떤 겨우에도 지불한 가격의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되는 주식이다.(p83) <증권분석> 中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가치투자자 중 한 명인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 ~ 1976)은 그의 주저 <증권분석 Security Analysis>을 통해 위와 같이 '안정성'을 중심으로 투기와 투자를 구분했다. 그렇다면, 안전성이란 개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위험 관리(risk management)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이고 나면, 위험을 측정하고 수치화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주어진 위험 수준에서 우리는 기대 수익을 최대화하기를 원한다.어떤 거래가 다른 위험을 상쇄시킨다면, 그 거래는 수익을 증가시키면서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가지는 다른 위험에 의해 상쇄될 수 있는 위험을 다양화할 수 있는(diversifiable) 위험이라고 부른다.(p405) <The Princeton Companion to Mathematics 2> 中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투자에 있어서 위험은 손실에 대한 위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상치못한 이익에 대한 위험 역시 관리해야할 대상이 된다. 높은 이익이 위험이라는 말은 다소 비상식적이지만, 위험을 적정하게 통제하는 것이 '안정'이라 본다면 비상식적인 이익 또한 위험관리 대상이다. 시장에서는 위험을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수많은 파생상품(派生商品, derivative)이 개발되고 실무적으로는 이를 조합해서 수익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주식 시장(market)에서 거래되는 주식의 가격은 우리의 노력과 기대 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의 수많은 참여자들 외에 시장 외 요인은 위험요인이 되는데,  그레이엄은 이 지점에서 기본적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안정성이란 개념은 증권을 매수하는 사람의 심리보다는 보다 더 유형적인 어떤 것에 기초할 경우에만 실질적인 유용성을 보장받는다.(p81)... 시장은 현재가격이 제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그 가격을 유일한 가치척도로 받아들임으로써 제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그 가격을 유일한 가치척도로 받아들임으로써 점진적으로 새 기준을 설정에 나간다. 무비판적 접근에 기초한 어떤 안전성 개념도 환상에 불과하고 분명 위험으로 가득찰 것이다.(p82) <증권분석> 中 


 그레이엄이 말한 안정성의 개념은 후에 워렌 버핏에 의해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 )'의 개념으로 보다 구체화된다. 여기에서 경제적 해자는 기업의 이익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진입장벽 또는 경쟁우위를 말하는데, 장기보유로 유명한 워렌 버핏도 경제적 해자가 손상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지체없이 매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워렌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는 2015년 POSCO 지분을 전량 매도했는데, 이는 MB 정부 집권을 거치면서 POSCO의 경제적해자가 손상되었다는 일종의 판단이라 여겨진다. (후에 버핏은 비야디 BYD로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식의 위험요인은  기업 내부 요인 외에도 시장의 위험 요인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기술적 분석가들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시장이 비이성적이어서 버블(bubble)이 발생했거나, 일반적인 추세선(trend)를 벗어난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시장상황을 분석하는 기술적 분석가들은 주로 그래프를 통해 매도와 매수를 결정하는데, 추세선의 붕괴는 결정적인 매도 사유 중 하나이며,  이 경우 위험의 정의를 생각해본다면, 추세선의 붕괴는 반드시 하한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정리하면, 가치투자자 또는 기술적 분석가 등 투자자 유형과 관계없이 주식이 적정가치(투자자의 기대) 이상으로 올랐거나, 내렸을 때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이익을 실현하거나, 손절매를 해야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막대한 이익이 발생했을 경우 우리는 투기라고 부르지 않고, '시장에 대한 승리'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버블을 인지했을 때 뒤로 한발 물러나 관련 회사와 부문에 투자하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운 좋게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주가가 폭등할 때 주식을 갖고 있다면, 즉시 현금화하고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팔아버린 주식의 주가가 버블 붕괴 전께자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결정을 매우 잘한 것이다.(p112) <투자의 미래> 中


 추세선의 붕괴 : 이것은 가장 유용한 조기 시장참가 또는 철수신호 중의 하나이다. 추세가 변하였거나 기존 포지션을 정리해야 한다는 기술적 신호에 따라 새로운 포지션을 취한다면 일정한 추세이탈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항상 다른 기술적 요인들도 고려되어야 한다. 추세선들이 지지선 또는 저항선 역할을 할 때 시장참가시점을 찾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주상승추세선에 대한 매수 또는 주하락추세선에 대한 매도는 효과적인 시점선택전략이 될 수 있다.(p426) <금융시장의 기술적 분석> 中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많은 이익을 벌어들었다는 사실로 부당거래로 판단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운용하는 대한민국의 주식시장에서는 무리한 일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침에 뉴스를 듣고 투자와 투기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다...


PS. 이와는 별개로 내부정보를 이용하여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법에 의해 강력하게 처벌받아야 하고, 강력한 처벌이 필요했던 불법적인 내부거래의 대표적인 사례는 1999년 에버랜드 CB(전환사채)의 3자 발행 사건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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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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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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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4: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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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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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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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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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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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2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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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4-12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지 돈이 많다는 이유로 고위직에 임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그 어떤 사회에서도 법제화된 적도 없고, 결코 통용될 수 없는 논리이겠지요. 최근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를 읽다 보니, 고대 로마에서는 원로원 의원들에 대해서도 한때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아니면 아예 선출 자격조차 없었을 때도 있었더군요.

그런데, 국가의 중요한 요직에 앉힐 사람 가운데 많은 재산을 보유한 경우, 혹여나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건 아닌지 ‘합리적으로 의심될 만한 경우‘에는 특별히 매우 ‘엄격한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저는 이번 사례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부동산 투자든 주식 투자든 ‘투자와 투기의 경계‘ 자체도 매우 모호할 뿐만 아니라, ‘합법과 불법의 경계‘ 또한 모호한 게 사실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테크건설과 삼광글라스 투자 건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만 보더라도 ‘내부자 거래‘로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너무 많이 보인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내부자 거래‘의 범위가 과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엄격한데, 이번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경우에도 금융감독기관에서 해당 주식 거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검증을 거친 이후에 ‘기용 여부‘를 판단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돈이 많으니 적으니, 주식을 처분하느니 마느니, 논점을 흐리며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과연 재산증식 방법이 ‘적법하고 정당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게 우선이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헌법재판관 후보자라면요.

겨울호랑이 2019-04-12 18:02   좋아요 1 | URL
oren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내부 거래 정황이 있다면 당연히 부정한 행위이고, 이것을 용납해서는 안되겠지요. 공직자에게 청렴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청렴의 기준은 정권에 따라 달라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관 후보자와 가족의 경우에도 예외없이 부당거래 정황이 있다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하고, 수사를 받아야겠지요. 그렇지만, 단순히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하는 것은 지나치다 생각합니다. 이번 헌법 재판관 후보자는 대통령 지명권으로 후보자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문회에서 의혹을 제기하고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이상으로 문제를 키우는 것은 ‘무조건 반대‘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문제 삼지 않는 일부 국회의원의 모습을 보면서 반발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세상은 서로 다른 색이 어울어져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럴 때는 때론 답답하기도 합니다.^^:)

oren 2019-04-12 21:35   좋아요 1 | URL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게 돈이 좀 많으면 어떻고, 재산 가운데 유독 주식이 좀 많으면 또 어떻습니까. 저도 그런 건 하등의 문제가 될 리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후보자 검증 과정‘에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무리한 ‘후보 추천 강행‘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후보자가 특정한 주식을 굉장히 자주 매매했고, 그 회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회사의 재판까지도 관여했다면, 이건 십중팔구 ‘직무 관련성‘이 있고, 자본시장법상 ‘부당 내부자 거래‘일 가능성이 다분합니다.(주식 매매에 있어서 ‘직무 관련성‘에 대한 판단은 자본시장법에서도 아주 엄격하게 적용하는 법규 가운데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증 과정‘에서 미리 금융감독원이나 증권거래소에 얼마든지 ‘정밀 검증‘을 해 볼 수 있었을 테고, 응당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후보자 추천‘을 해야 옳았다고 봅니다.

당연한 ‘검증 절차‘를 일부러 소홀히 했는지, 그런 정도는 별 문제가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임명권자의 의중‘이 확고하니 ‘후보 추천‘을 강행했는지, 그 속사정이야 잘 모르겠으나, 그런 빌미를 제공한 것부터 저는 잘못이라고 봅니다. 물론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고 정쟁으로 몰아가는 것도 꼴사납고, 문제 해결에 별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만, 임기 6년짜리 한 나라의 ‘헌법 재판관 후보‘가 이 정도의 후보밖에 없는 것일까 싶은 생각도 떨치기 어렵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금융감독기관의 정밀한 조사와 검증 절차를 거쳐서 ‘합리적인 결론‘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주식을 매각했느니 안 했느니 하는 엉뚱한 얘기로 논란을 회피할 게 아니라요. 후보자의 주식 투자 과정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왜 떳떳하게 ‘금융감독기관의 조사‘를 자청하지 않는지 그것도 의문입니다. 내 주식은 이미 다 팔았고, 헌법재판관에 임명된다면 남편 주식까지도 몽땅 다 팔겠다는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도 ‘헌법재판관의 자질‘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이고요.

겨울호랑이 2019-04-12 21:58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이제는 높아진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직자가 임명될 때라 생각됩니다. 일전 과기부 장관 후보건을 비롯해 최근 청와대의 인사 검증에 의문을 갖게 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만큼 국민을 납득시키려는 노력이 더 절실한 때라 여겨집니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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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히 발달된 언어 및 사유 능력을 가진 현재의 인류는 유전적으로만 보면 아프리카 인류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한가지, 우리의 유전적 뿌리는 중요한 유전 정보를 꼐속 후세에 전달한 여성 조상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담이 최초의 인간이 아니고 이브, 정확하게 말하면 아프리카의 이브가 최초의 인간이다.(p42)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루츠 판 다이크(Lutz van Dijk)는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Die Geschichte Africas>에서 많은 이들이 잘 모르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설명한다. 일반에게는 식민지, 노예, AIDS, 굶주림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되는 아프리카에 대해 저자는 이곳이 최초의 인류 발생지임을 강조한다.


 같은 언어 뿌리를 가진 여러 민족이 기원전 800 ~ 500년 사이에 새로운 정착 지역을 찾아 먼저 서쪽과 동쪽으로, 나중에는 남쪽으로 출발했던 것이다. 그들은 '반투(Bantu)'라 불리는데, 이것은 '인간'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맨 먼저 자기가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p79)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또한, 저자는 모계 사회(母係 社會) 전통을 유지한 아프리카의 전통이 서기 1500년경부터 가속화된 유럽의 침략으로부터 파괴되었다고 분석하며, 특히 노예무역을 위한 '인간 사냥'이 아프리카 비극의 가장 주요한 요인임을 지적한다.


 노예 매매 시절에는 아랍과 아프리카와 유럽의 상인들 사이에 아주 분명한 공조 체제가 있었고 수많은 아프리카 지도자들도 잔혹한 이익을 함께 취했던 반면에, 이제는 이런 협동 작업이 거의 필요 없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제국주의에서는 오로지 잃어버릴 것밖에 없었음이 아주 분명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 사람들은 1500년 무렵에는 갖지 못했던 두 가지 이점을 확보했다.1850년 의약품 키니네가 나와서 마침내 말라리아를 예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밖에도 새로운 무기들이 (예를 들면 1884년 이후에 나타난 기관총 같은) 개발되었다.(p137)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아프리카에서 행해진 체계적인 인간 도둑질(노예)이 가져온 파괴적인 결과가, 유럽의 식민 지배자를 쫓아낸 다음 이루어진 현대 아프리카 국가들의 형식적인 독립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끔찍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p103)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포르투갈인들이 주도한 노예 무역은 이후 영국이 새로운 강자가 되면서 점차 쇠퇴하게 된다. 그것은 영국인이 포르투갈인보다 인도적이어서가 아니라 필요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농장 노동력으로서의 노예보다 생산품의 소비자가 필요했던 자본주의 시대에 아프리카는 본격적으로 과학, 종교, 군사력이 결합된 제국주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가난해지고 권리를 잃어버리면, 선교사가 와서 유럽 사람들의 양심의 가책을 달래주고 동시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가난할 뿐만 아니라 가난함 속에서도 평화를 지니고 살도록 도움을 주었다.(p150)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이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아프리카의 대부분 국가는 1960년대까지 해방되지만, 이들의 종속적 위치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독일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 ~ 1898)은 1884년에 유럽 열강 지도자들을 베를린으로 소집하였다. 그리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분할이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유럽 사람들이 스스로 그토록 강하다고 느끼고 이후 수십 년 동안 아프리카에 공포와 빈곤을 퍼뜨렸지만, 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현실에 깊게 새겨져서 오늘날까지도 눈에 보이게 남았다.(p105)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옛날 식민 지배자는 '품위 있게' 퇴장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어린 나라들'에게 기꺼이 독립을 '주려' 하였고, 마지막 말을 갖고 있었으며, 이제 자기들이 뒤에 남긴 '문명의 성취'에 대해 고마움이 담긴 작별 인사를 받기 원했다.(p175)... 식민 지배라는 모험이 너무 값비싸고, 이미 오래전부터 비용이 많이 드는 식민 지배와 군사 기구를 동원한 것보다 더 쉽게 경제적인 의존(종속)을 통해 새로운 약탈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만은 가능한 한 피하였다.(p176)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아프리카는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저자는 책에서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 ~ 2013)를 비롯한 여러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개혁노력을 소개하면서 변화하려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소개하는데, 이를 통해 아프리카가 결코 '죽음의 땅'이 아님을 독자들에게 알런다.


 아프리카 안에서는 너무나 오랫동안 나라마다 개별적인 수출 생산품에 주력하면서 그를 통해 세계 시장에 치명적으로 종속되었다. 커피나 설탕의 국제 가격이 떨어지면 아프리카에서 국민 경제가 붕괴한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에서 지속적으로 원료를 가공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절박한 일자리와 생산과 수송을 위한 인프라를 만들어낼뿐만 아니라, 가공품은 훨씬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p277)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의 역사는 우리에게 생소하다. 세계사(世界史)라는 이름으로 유럽사를 배우며 자란 우리들에게 아프리카는 낯설다. 그렇지만, 유럽에 의한 침탈, 해방 이후의 극심한 혼란의 시기로 기록된 아프리카의 역사는 해방 이후 한국사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우리는 아프리카인들의 어려움에 쉽게 공감하게 된다. 


  줄루족 지도자들을 가능한 한 잔인한 인물로 묘사하고, 그들이 죽였다는 사람의 추정치를 제시하며, 그들의 목숨을 잃게 만든 뻔뻔스런 범죄들을 서술하라. 그러면 이 책을 더욱 포괄적이고 흥미로운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p127)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그림] 줄루전쟁 (출처 : 위키백과)


 줄루전쟁 당시 줄루 지도자들을 야만인으로 매도하라는 영국 기자의 수첩 안에서 '보도지침'을 연상되는 것은 (잊고 있었지만) 우리 역시 식민지배의 아픈 시기를 겪었기 때문이리라. 경제적으로는 국내산업이 발달하지 못해 수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는 점에서 또한 우리는 아프리카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여겨진다.이와 같이 여러 면에서 우리는 아프리카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에, 아프리카 역사 속에서 바로 우리의 아픔을 찾는 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아프리카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라 생각한다.


 <처음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다룬 책으로, 역사서라고 하기에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진 않지만, 보다 독자들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개론서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부족 의식에 담긴 아프리카 정신을 옮기며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흙의 원소는 우리를 땅과 결합시켜주고, 우리의 정체성과 함께 서로를 먹이고 뒷바라지하는 능력을 준다. 물은 평화, 집중력, 지혜, 화해 등을 준다. 돌은 삶의 목적을 기억하게 하고,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게 하며,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해준다. 불은 꿈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과 결합되어 있고 또 조상들과도 결합되어 있음을 알게 하고 우리의 비전들을 유지하게 해준다. 자연은 우리의 참된 자아에 충실하고, 큰 변화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이겨내도록 해준다. 그것은 우리에게 마법과 웃음을 가져다준다.(p77)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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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16: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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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16: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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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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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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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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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1>은 역사를 중심으로 논술과 철학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책의 앞부분은 한국 현대사의 대강이 다루어지는데, 이 중에서 4.3 제주민중항쟁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옮겨본다. 


 1. 제주  4.3


[사진] 제주 4.3 (출처 : https://www.ytn.co.kr/_ln/0103_201804031304184899)


 저자는 본문에서 제주 4.3이 일어난 배경으로 육지와 고립되었지만,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지식인들의 비중이 높았던 제주만의 특징을 언급한다. 해방 이후 여운형(呂運亨, 1886 ~ 1947)의 주도하에 조직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활동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곳이 제주도였다.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덕분에 미군정의 지배가 직접적이질 못했고 인민위원회가 상대적으로 뿌리를 깊게 박아 1948년까지 섬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주도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일본 본토문명과 매우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했으며 상당한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이주하여 재일교포사회를 형성했다. 일제 시대를 통하여 농민들의 자립도가 비교적 높았으며, 분화된 직업구조가 본토의 문화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으며 적색농민조합의 조기 형성은 해방 후 인민위원회의 성장에 이상적 환경을 제공했다.(p79)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이러한 환경에서 서북청년단이 제주도 내에 들어오면서 제주도민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이후 초토화((焦土化; Scorched eart) 작전을 통해 제주도는 철저하게 파괴되기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제주에서의 유혈참극은 한국전쟁 종료 후인 1954년 9월까지도 계속되는데, 그 사이 기간 일어난 사건이 바로 여수,순천 사건이다.


 2. 여수, 순천 사건과 박정희


 이러한 제주도의 인민위원회를 뿌리뽑기 위해 전후 아시아에서 가장 잔인하고, 지속적이며, 철저한 소탕작전이 감행되었던 것이다. 그것의 직접 도화선이 된 것은 서북청년단의 학살만행이었다... 서북청년단의 이유없는 양민학살에 대항하여 제주도 인민들은 6년 6개월에 걸친 끈질긴 항쟁을 계속했다.(p80)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제주 4.3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명령을 받은 14연대는 항명(抗命)하게 되고, 이를 통해 군대 내 남로당(南勞黨) 조직이 있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군대 내 남로당 조직의 숙청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박정희(朴正熙, 1917 ~ 1979)'다. 


 여순항명사건이란 바로 제주도 민중항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여수 주둔 14연대의 반란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도 약 1만 명의 양민 희생자가 났고, 여수읍의 절반이 소실되었고 인근 지역의 수백 개의 마을이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p80)... 14연대의 반란은 남한의 군대 내에 엄청난 공산당 조직이 침투되었다는 사실이 청천백일 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국군 내에 거대한 숙군의 회오리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p81)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3. 이어지는 폭력과 5.18 민주화 운동


 박정희 소령은 전남 광주의 여순항명토벌사령부로 갔다가, 1948년 11월 11일 남로당 가입등의 죄목으로 군 수사당국에 체포되었다... 그의 구명 운동에 앞장 선 사람은 백선엽 육본 정보국장이었다... 박정희는 군조직 내 좌익세포들의 상세한 명단을 제공했다. 같은 조직의 동료들의 죽음의 대가로 그는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p82)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박정희는 이 사건으로 사형에 처해질 뻔 했으나, 남로당 간부들의 명단을 제출하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의 만주군(滿州軍) 출신 인맥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여겨진다.


 박정희의 생애의 최후 일단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삶의 폭력성이다. 우적인 전향이 오직 이 땅의 경제도약을 위한 몸부림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경제발전이 그의 유신치세기간의 모든 폭력성을 정당화할 길은 없다.(p93)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저자는 박정희의 비극을 그의 '폭력성'에서 찾는다. 인간 박정희의 비극은 대통령이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 않았다. 10.26에 의해 그가 사망한 후에 그 폭력성은 후계자 '전두환'으로 이어졌고, '광주'에서 그 폭력은 잔악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5.18 광주민주항쟁은 그 기나긴 폭력의 역사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가장 악랄하며 가장 의도적이고 가장 조작적인 사건이었다. 그 폭력의 주체는 소위 박정희의 정군운동의 맥을 잇는다고 자부하는 신군부였으며, 신군부의 대표주자는 전두환이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라는 역사적 개인의 모든 가치관의 역사적 화신이었던 것이다.(p94)<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사진] 5.18 민주화운동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22633539)


 한미연합사령관은 20사단의 작전통제권 이양을 요청하자,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Your request is approved). 미국의 허락없이는 움직일수 없는 20사단을 광주코뮨분쇄작전에 사용한 것은 미국의 한국이해의 전형적 한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것은 해방 후 인민위원회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미군정의 행동패턴과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다.(p97)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논술과 철학강의 1>에서는 위와 같이 제주 4.3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관계를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연결시킨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저자의 최근작인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 4.3과 여순민주항쟁>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논술과 철학강의 1>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 논술책이라는 한계로 더이상의 현대사를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의 짧은 요약본만으로도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을 잡기에는 무리없는 내용이라 여겨져 이를 정리해서 옮겨본다. 덧붙여, 저자의 입장이 너무 편향되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는 이들에게, 같은 책에 있는 북한 비판 내용도 함께 소개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나 도올이 생각하기에, 6.25 한국전쟁이 저지른 최악의 죄악은 독립을 향한 20세기의 찬란한 거족적 항일투쟁의 모든 가치를 무화(無化)시켰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에 있다.(p58)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그토록 피눈물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일본민족과 싸웠던 조선의용군과 광복군들이 관동군이 아닌, 바로 해방의 주체인 자신의 동포혈육을 찔러 죽여야만 했던 역사를 과연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김일성은 1953년 7월 28일 평양광장에서 "조선인민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그것은 실질적으로 "조선인민 전체의 전면적 패배"였다.(p59)...1950년 6월 25일부터 전개된 역사에 대하여 김일성은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다. 그는 분명 성급했다.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정확한 판단능력을 결했다.(p61)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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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5: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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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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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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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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