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글 바로 쓰기 3 우리 글 바로 쓰기 3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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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은 버리고 남의 것만 따라다보니 우리 것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무식한 사람이나 쓰는 것이 되고, 그래서 그것은 보잘것없는 것, 희망이 없는 것, 부끄럽고 욕된 것이 되어버렸다. 바로 이것이 우리 역사의 벽이다.(p91)

아이들이 아이들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삶을 잃었기 때문이다. 삶을 잃은 것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아이들은 죽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인 것이다.(p111)

우리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6.25의 참변을 겪고, 아직도 세계에 단 하나 분단국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본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신대‘ 문제만 해도 물질로 갚아주는 노릇조차 싫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주장을 해왔던가. 생각할수록 서글프다.(p132)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우리 말을 찾아 쓰는 일도 어디까지나 일반 백성들이 해야 할 몫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말치고 깨끗한 말은 별로 없다.(p149)... 모든 것을 백성들이 스스로 하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민주주의도 되고 책도 읽게 된다. 무엇이든지 힘으로 끌어가려고 하면 한 가지도 되는 것이 없다. 말과 글이 병드는 것도 그렇다.(p183)

요약하면, 중국글말을 덮어놓고 쓰니까 아무 소용이 없는데도 자꾸 쓰게 되고, 그래서 앞뒤가 안 맞고, 겹으로 쓰게 되고, 그 말소리가 괴상하게 나고. 이래서 우리 말은 말법에 어긋난 병신 같은 말이 된다.(p232)

말을 살리는 길은 글을 비판하고 책을 비판하는 길이요, 삶을 찾아 가지는 길이다. 말을 살리는 길은 책과 글 속에 빠져 있는 병든 삶에서 벗어나 참된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책과 글 속에 묻혀 있도록 하는 그릇된 교육을 비판하고 바로잡는 길이다.(p242)

도시라는 곳은 사람을 밑뿌리부터 죄인으로 만들지만, 도시라는 틀 속에 갇혀 있으면 그렇게 해서 자연과 목숨을 죽이는 짓을 아주 예사로 여기면서 도리어 그 학대, 학살 행위를 즐기게도 된다.(p256)

서양말이고 일본말이고 중국말이고 무슨 말이든지 남의 나라 말을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나라 말 공부부터 먼저 해야 하고, 자기 나라 말을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제 나라 말은 잘 모르면서, 제 나라 글은 쓰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 말을 배우게 되면 외국을 숭배하게 되어 반민족의 길을 걸어가게 마련이다.(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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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1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번 5번 문단은 정말 울림이 크네요.
새겨 들어야할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7-21 22:42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우리 글 바로쓰기>는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잘 알려줍니다. 그런데, 우리 말을 잘 살려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쓰기 위해 한 차례 고민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반성합니다...

2019-07-21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1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2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5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김경미 옮김 / 책세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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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혼이 존재하는 한 오로지 어머니 쪽의 혈통만이 입증되며, 따라서 오로지 모계만이 인정된다. 이것은 실제로 모든 야만 종족에, 그리고 미개의 낮은 단계에 속하는 종족의 경우에 그랬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것이 바로 바호펜의 두 번째 위대한 업적이다(p68)

남편은 식량을 조달하고 그에 필요한 노동 수단을 만들었고, 이에 대한 소유권은 그에게 있었다. 이혼을 하게 되면, 아내가 가재도구를 보유하듯 남편은 이 노동 수단을 차지했다. 당시 사회 관습에서 남편은 새로운 식량의 원천인 가축을 소유했고, 후에는 새로운 노덩 수단인 노예의 소유자가 되었다... 부가 일단 가족의 사적 재산으로 급속히 늘자 대우혼과 모권적 씨족에 기초한 사회는 강한 타격을 입었다(p87)

가족 내에서 남편은 부르주아고, 아내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대표한다. 그런데 산업 세계에서는 자본가 계급의 모든 법률적인 특권이 제거되고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트 두 계급이 법률적으로 완전히 동등해진 후에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트를 억누르는 경제적 억압의 특성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난다... 남편과 아내가 법적으로 온전히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될 때 비로소 현대 가족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지배가 가지는 특성, 그리고 부부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을 수립할 필요성과 방법이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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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7-21 1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독서를 하고 계십니다. 저도 한때 책세상 문고의 팬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7-21 15:50   좋아요 0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책세상 책과 지만지 책들은 문고본으로 고전을 접할 수 있어 틉틉이 읽을 수 있어 좋은 시리즈라 생각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하게 보내세요!^^:)

cyrus 2019-07-22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3쪽에 있는 엥겔스의 주장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발전하지 못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어요. 사회주의자들은 여성해방보다는 계급 철폐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봤으니까요.

겨울호랑이 2019-07-22 09:2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마르크스, 엥겔스가 제기한 문제는 당대 현실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이니만큼 후대 사상가 입장에서 한계가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여겨집니다.^^:)
 
캘리번과 마녀 -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아우또노미아총서 31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김민철 옮김 / 갈무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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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클로저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했던 것처럼 마녀사냥은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했다. 따라서 신체는 노동의 생산을 위한 기계로 전락하지 않게 막아 주던 모든 예방장치에서 ˝해방되었다˝(p272)

자본주의의 핵심에는 임금계약 노동과 노예화 간의 공생적인 관계가 있으며, 이와 함께 노동력 파괴와 축적의 변증법이 있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신체, 노동, 생명을 매개로 값비싼 대가를 치러 왔다.(p41)

노예제가 폐지된 상황에서도 부르주아의 레파토리에서는 마녀사냥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식민화와 기독교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확장으로 인해 식민화된 사회의 신체에 획실히 이식되어 피식민 공동체 스스로 자신들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박해를 실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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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책 - 인간의 심리와 악의 본질을 꿰뚫는 범죄의 실체 세상의 모든 지식 6
샤나 호건 외 지음, 김성훈 외 옮김 / 지식갤러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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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허구인 형사소설과 범죄 드라마, 영화로부터 타블로이드지, 신문, TV 뉴스에 등장하는 중독성 살인까지 온갖 범죄에 왜 그토록 매혹되는 것일까?

나는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한 가지 정답이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많은 경우를 설명하는 답은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답은 우리의 유전자가 생존에 힘쓰도록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변하지 않을 인간 본성의 한 가지 측면이 있다.(p9) - 서문- 중

「범죄의 책」은 왜 보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특히 무덥고 습한 여름 오싹한 공포는 아니지만, 사건 기록을 통해 전쟁과 더불어 수많은 범죄가 우리와 함께 해왔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브리핑된 여러 사건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범죄의 사회적 측면에 대한 분석은 부족하여 다소 아쉽다. 분량의 제한때문이겠지만, 사건에 대해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범죄인의 개인 특성 뿐 아니라 당시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를 위한 독자 개인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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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2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2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마전 부산 출장을 마치고 밤늦게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때마침 내리는 많은 비로 잠시 쉬어가게 된 경부고속도로 언양휴게소. 매장 한 편에서 반구대 암각화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비가 오는 늦은 밤. 갈 길을 멀었지만 잠시 커피를 마시면서 반구대 암각화 자료를 감상했습니다. 비록, 실제 자료의 모사품이었지만, VOD 자료까지 갖추고 있어 암각화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번 페이퍼는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한국 미술의 역사>에서 찾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사진] 언양 휴게소 반구대 암각화 1


[사진] 언양 휴게소 반구대 암각화 2

 

 선사시대의 미술 중에서 회화적인 표현체로서 먼저 주목되는 것은 바위의 표면에 새겨서 나타낸 암각화(岩刻畵), 즉 바위그림이라 하겠다... 1970년에서 1972년에 걸쳐 경남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川田里)와 언양면 대곡리 반구대(般龜臺)의 태화천 냇가 두 군데 암벽에서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바위그림이 발견되었다.(p31)... 대곡리 반구대에 있는 바위 그림에는 각종 동물, 사람, 배 등이 새겨져 있어서 이곳이 어로사냥과 관련된 제사 장소였음이 분명하며, 성격은 시베리아에서 발견되는 선사시대 바위그림과 같다. 반구대 그림은 크게 좌/우 두 부분으로 갈라지는데, 왼쪽 부분은 고래, 돌고래 등 바다짐승의 전체 모습을 쪼아서 나타낸 실루엣 그림인데 비해 오른쪽 부분은 호랑이, 사슴, 멧돼지, 개, 곰, 산양, 여우 등 짐승을 선각화(線刻畵)로 나타낸 것이어서 이곳 주민들이 바다 짐승 사냥에서 들짐승 사냥으로 옮겨갔고, 그림 양식이 영화(影畵)에서 선각화로 바뀌어 갔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신석기시대 이래의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며 상징적인 전통과 함께 새로이 사실적 경향의 미술이 등장하여 두 가지 계보를 이루며 병존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p32) <한국 미술의 역사> 中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난 그림에서 사냥감이 바다 동물에서 육상 동물로 바뀌었다고 보는 근거는 심리학 측면과 미술사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왼쪽'에 대한 부정적 원형(原形)이 심리학 측면의 근거라 여겨집니다.

 

 Left 왼쪽 : 보통 왼쪽은 사물의 불길함, 어둠, 서출 庶出, 달이 의미하는 내향적인 면을 뜻하며 과거를 나타낸다... 크리스트교에서 최후의 심판 때 어린양들은 신의 오른쪽에 있고, 염소는 왼쪽에 서 있다... 중국에서는 반대로 왼쪽은 약함과 음(陰)이며, 명예로운 쪽이다. 그래서 오른쪽은 양과 강함을 나타내며, 폭력적인 경향이 있어 자멸하는 경향을 나타낸다.(p194)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中


 고대 중국의 노자(老子)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왼편을 부정적, 과거의 것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왼편을 과거로, 오른편을 그 이후라고 보는 추론이 가능할 것입니다.  사냥감의 종류가 바다 동물에서 육상 동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우연히도, 왼편의 고래의 진화가 육지에서 바다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반대로 이루어져 작은 발견의 즐거움(?)을 가져 봅니다.

 

 내가 가장 흔히 받는 질문은 고래가 왜 물로 들어갔느냐는 것이다... 고래는 매우 정교하게 완성된, 육상생활에 적응된 몸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약 800만 년 만에, 대양에 완벽하게 조율된 몸으로 바꾸었다... 작은 너구리만 한 우제류들이 꽃과 이파리를 뜯어먹다가, 위험을 피해 물속에 숨었다. 이들의 후손들은 포식자로서 물속에 숨어 먹잇감을 정찰하며, 물속에 머물렀다. 뒤이은 후손들이 빠르게 헤엄치는 법을 알아냈고, 새로운 먹잇감을 쫓았고, 땅 위에서 돌아다니는 능력을 조금씩 잃어버렸다. 다양한 방식의 헤엄을 실험한 뒤, 이들은 마침내 자신의 몸을 미끈한 유선형으로 바꾸었다. 따라서 육지에 대한 모든 유대가 끊어졌다.(p266) <걷는 고래> 中


  보다 정밀한 시대 구분은 미술 기법의 차이를 통해서 잘 뒷받침됩니다. 왼편의 그림들보다 오른편 그림들이 보다 정밀한 기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추론 이상의 명백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왕 선각화 기법이 나왔기에, 조금 더 나아가 선각화의 특징이 잘 담겨진 '농경문청동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반구대의 암각화에 보이는 선각화의 전통은 뒤에 청동기 편에서 소개할 농경문 청동기를 비롯한 일부 청동기 문양에서도 볼 수 있다.(p32) <한국 미술의 역사> 中


[사진] 농경문 청동기(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농경문청동기 農耕紋 靑銅器는 외곽선을 따라 거치문 鋸齒紋을 새겨서 전체적인 틀을 만들고 가운데에 격자무늬 기둥을 세워 좌우로 공간을 마련했는데, 왼쪽 공간에는 머리에 깃을 꽂은 인물이 새를 잡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그 앞에는 배부분이 볼록하고 몸 전체에 그물모양의 무늬가 새겨진 그릇이 놓여있다.... 제사 의식에 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청동기의 일부로, 윗면이 기와집의 지붕 모양을 닮았다. 윗 부분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여섯 개의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아마도 끈을 꿰어 다른 기물과 연결하여 사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p26) <회화 1> 中


 "반구대 암각화"와 "농경문 청동기"는 기법상으로 선각화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 외에 등장 인물에 있어서도 공통점을 가지는데, 바로 벌거벗은 남자 무당의 모습을 통해서 입니다.


  "반구대 암각화"의 왼쪽 맨 윗부분에는 발기한 성기를 노출하고 합장하고 있는 남자 무당 그림도 있다. 일본에서는 산으로 사냥하러 들어갈 때 산신 앞에 벌거벗고 제사지내는 풍습이 현재까지 남아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없어진 고대수렵의식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p32) <한국 미술의 역사> 中


 인물은 간략한 선으로 골격만을 묘사하였는데, 순간적인 동작을 포착하여 묘사한 상징적인 표현이 매우 뛰어나다. 인물의 성기를 노출시킨 점이나 몸 속까지 투과하여 표현하는 X-레이 기법을 사용한 점에서는 대곡리 암각화와 기법상 유사함을 엿볼 수 있다.(p26) <회화 1> 中


 수렵 시대(狩獵時代)에 많은 사냥감을 얻기를 기원하며 하늘에 그 뜻을 올리는 남자  무당의 모습을 통해 고대 무녀(巫女) 역시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고대 문명에서 땅에서의 소원을 하늘에 알리는(誥)역할을 남자 무당이 했다면, 하늘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역할을 여자 무당이 수행한 것은 아닐까. 양(陽)의 기운을 가진 하늘에 대한 기도는 남성(陽)을 통해서, 음(陰)의 기운을 가진 땅에 대한 답은 여성(陰)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을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에도 제례(際禮)를 주관하는 이가 대부분 남성인데 반해, 미래를 점(占)치는 이들은 여성임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하고 연관도 지어봅니다. 동시에 가톨릭에서 사제직 계승이 남성 중심으로 이어진 것은 이러한 고대의 전통에 기반한 것일까하는 몇 가지 질문을 암각화 안의 인물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의 기원은 예술로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는데, 간절한 자신과 공동체의 표현이 어떻게 후대의 '예술(藝術 art)' 로 발전했는가는 <건축 강의 Lectures on Architecture 1>에서 잘 설명됩니다.

 

 예술들은 기운에 있어 자연적 욕구들로, 만족을 얻기 위해 인간 영혼의 특정한 본능들에 종속되는 형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이 본능들은 오랜 관찰에 의해 규칙들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진작부터 말과 기호들이 그의 영혼이 가진 모든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충분치 않음을 인식했습니다... 인간은 예견하고 희망하고 기억하며, 인간의 음성은 그의 의지에 따라 그가 자신의 동류와 소통하고자 하는 감정들을 표현합니다.(p32)... 예술은 전적이고 완전하게 존재합니다. 우리의 원시 영웅이 죽자 그의 가족은 바위에 그의 유해를 보관할 감실을 파내고 그 위에 사자와 싸우는 남자의 모습을 새깁니다. 남자의 형상은 거대하고 사자는 왜소할 것입니다. 망자의 친지들은 행인들이 재현된 그들의 아버지 혹은 남편을 보고 그가 막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p34) <건축 강의 1> 中


 우리는 예술 작품에서 감동(感動)을 기대합니다. 큰 울림을 주는 예술작품을 걸작(傑作)이라 부르고, 위대한 예술가를 존경하는 것은 예술의 기원 자체가 간절한 기도(祈禱 pray)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 합니다...

 

 종교의 실천적 요구와 종교적 경험은 개인들을 초월하여 그 사람에게 끊임없이 연속적 형태로 그와 그의 관념들에게 친근한 광대한 힘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통해 충분하게 충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은, 그 힘이 우리가 의식하는 자아들보다 더 광대하고 다른 존재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향한 충분한 신뢰를 주기에 충분할 만큼 더 광대한 존재라면, 어떤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것은 무한할 필요도 없고 유일할 필요도 없다. 상상컨대, 단지 더 광대하고 더 신 같은 자아이다. 그 자아의 현실적 자아는 다각적 표현일 따름이다.(p614)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中


 PS. 윌리엄 제임스의 글 속에서 스피노자의 향기를 느낀다면 너무 예민한 것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유리 렌즈 냄새같지는 않지만, '영원의 상(相)'의 모습이 이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S2. 암각화 속의 고래 사냥을 보니, 최근 일본에서 고래 조업을 다시 시작한다는 기사가 생각납니다. 이와 함께 한국에서 호랑이가 멸종된 것도 일제(日帝)시대였다는 것도 떠올린다면, <축소 지향의 일본인>에서 말하는 넓은 공간 또는 큰 것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가 호랑이와 고래 등의 남획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여겨집니다...


[관련기사]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882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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