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2
한국교부학연구회.하성수 지음 / 분도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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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주님께서는 자캐오와 레위, 마태오, 부유한 사람들과 세리들 집에 손님으로 머무르셨으며, 그들에게 부를 포기하라고 명하시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분은 다만 부를 공정하게 사용할 것을 요구하시고 부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시면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라고 선포하십니다.

14.1.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이웃들에게 유익할 수 있는 재산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소유할 가치가 있기에 ‘소유물‘이라고 불리며, 어떤 것을 할 능력이 있고 유익하며 인간에게 유익하도록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재산‘이라고 불립니다... 3. 부의 본질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봉사하는 것입니다. 4. 따라서 우리는,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기에 책임이 없는 것에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것을 선하게 또는 악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이에게만 선택에 따른 책임이 있습니다. _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 p33 - 35

교부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는 「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에서 부자의 구원에 대해 논한다. 교부는 ‘부‘는 가치 중립적인 수단이기에 적절한 활용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하느님과 이웃을 지향하고, 선행의 수단인 ‘부‘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 교부의 글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발견한다.

31.9. 우리는 요청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하며, 그런 다음에 우리의 나눔에 대한 매우 큰 상, 곧 영원한 거처를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32.1. 얼마나 멋진 거래입니까! 얼마나 거룩한 사업입니까! 당신은 돈으로 불멸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라지는 것들을 주고 그 대신 하늘에 영원한 거주지를 받습니다. 2. 부자여, 당신이 지혜롭다면, 이 시장을 향하여 출범하십시오. _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어떤 부자가 구원받는가?」, p64

반면 만약, 카이사르의 것을 카이사르에게 돌리지 않고, 부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생각하는 길을 걷고 있다면 그가 걷고 있는 그 길은 결코 좁은 문으로 향하는 길이 아닐 것임은 너무도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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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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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19: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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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19: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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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2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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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2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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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4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행과 자선 / 인내의 유익 / 시기와 질투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3
한국교부학연구회 지음, 최원오 엮음 / 분도출판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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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인내는 선을 지킬 뿐 아니라 악을 물리치기도 합니다... 마음에 인내가 튼튼하고 안전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정의의 순수함은 기만이라는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을 것이며, 성체를 받아 모신 손이 킬과 피로 더러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15. 사랑은 형제애의 끈이고, 평화의 토대이며, 일치의 튼튼하고 굳건한 고리입니다. 사랑은 희망과 믿음보다 더 위대하며, 선행과 순교보다 뛰어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하며, 하늘 나라에서도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사랑에서 인내를 제거해 보십시오. 인내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_ 키프리아누스, 「인내의 유익」, p73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 카이킬리우스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의 문헌. 저자는 ‘인내 없는 사랑‘을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고 말한다. 사랑의 온전한 실천은 인내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교부의 외침은 스스로 심판자, 정의의 십자군이 되어 이웃 사랑의 정신을 외면하는 그릇된 이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11. 그대는 왜 끊어 버렸던 악마에게 되돌아갑니까? 왜 그대는 카인을 닮아 갑니까? 자기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자는 누구든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요한 사도는 자신의 서간에서 말합니다. _ 키프리아누스, 「시기와 질투」, p101

10. 하느님의 것은 무엇이든 우리가 공동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분의 은혜와 선물에서 그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온 인류가 하느님의 선하심과 너그러우심을 공평하게 누려야 합니다. _ 키프리아누스, 「선행과 자선」,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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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에 진입해서도 임차 가구의 문제는 '집 없는 설움', '치솟는 전/월세값', '정부 정책 시급' 등의 키워드로 신문 기사에 수없이 등장했다. 이에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 되는 주택의 전세 가격은 시장 기능에 맡겨 자율화하는 대신, 소규모 전/월세 입주자에 대해서는 과도한 보증금 인상으로부터 보호해 주도록 임대 가격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전세금 융자를 확대해 주거비 부담을 덜어 주는 방안, 주택의 공급 물량을 대폭 늘려 주택 수급을 원활히 하고 주택 임대 사업을 활성화하는 방안, 장기적으로 아파트 분양가를 자율화해 주택건설을 유도하고 주택건설업체에 대해 일정 비율의 소형 주택건설을 의무화하는 방안, 재개발 이익 환수제, 매입 임대 주택 방안 등이 제시되었다. 또한 임대차 사이에 발생하는 분쟁을 줄이기 위해 1981년 최초로 제정된 임대차 보호법이 1990년대를 거치면서 수차례 개정되었다. _ 전남일 외 3인, <한국 주거의 사회사>, p351


 얼마전 임대차 3법이라 불리는 법안 통과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고 있으며, 세입자가 더 힘들어졌다는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불행히도(?) 12월 달에 이사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몇 주간 부동산 시장을 샅샅이 살펴보게 되었고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사는 수도권 남부 지역 상황에 한정되겠지만, 수요자 입장에서 살펴본 시장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부동산 시장에 매물이 없는 것은 기존 계약들이 계약갱신청구권 행사로 시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고, 그 결과 부동산 공급건은 급감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신규계약건도 줄어들었다.

2) 또한, 2+2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대상 건이 아닌 부동산의 경우에도 매매가 잘 되지 않는다. 이는 향후 4년동안 기대 이익을 계약 초기에 실현하려는 임대인의 생각이 공급가격을 상승시킨 반면, 전월세 수요자에 해당하는 세입자들은 향후 2~3년 후에는 신규 공급 물량 확대 등으로 가격 하락을 예상하기에 이동을 최소화하고  관망세에 있기 때문에 거래가 되지 않는다. 또한, 물량을 내놓았던 이들도 주변의 눈치를 보며 기왕에 내놓았던 임대인들마저 물건을 거둬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격을 받는 이들은 누구일까?


 우선적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의 행사 등으로 재계약 건수 증가가 부동산 신규 계약을 위축시켰으며, 이로 인해 매해 높은 임대료 인상으로 이익을 보던 임대인과 재계약 수수료보다 높은 신규계약 수수료 수익을 얻던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일차적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으로, 이동을 불가피하게 해야 하는 세입자들도 높아진 가격 부담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타지에 자신의 집이 있는 이들은 자신의 집으로 옮겨가거나, 아니면 보다 저렴한 비용의 주변으로 나가는 선택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장의 혼란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 어느 날을 생각하면서 이러한 혼동이 정리될 것임을 기대해 본다. 


 2004년 버스 전용차로제와 버스 노선 개편이 시작되었던 첫 날이었다. 바뀌어진 교통정책으로 교통체증이 심해서 을지로에서 강남역까지 3시간 넘게 걸렸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렸고, 인터넷 게시판에는 새로 도입되는 버스 색깔인 Green/ Red/Yellow/Blue의 앞자리를 따서 이 정책을 GRYB(지랄염병)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결국 이 정책은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당시 서울시장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한 축이 되었다.(다른 축은 청계천 사업)...


 이러한 역사를 생각해봤을 때 누가 또 알겠는가. 이 정책이 YS 의 금융실명제 이후 최대의 경제개혁으로 평가될런지.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PS. 조금 고생했지만, 다행히 아내와 아이가 다니는 학교 근처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이가 친구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되었고, 집에 있는 차 한대를 정리할 수 있게 된 점을 생각한다면, 오늘 집값 이상을 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신승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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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3 2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보다 아이에게 투자(?)가 더 큰 수익률(?)... 더 적당한 단어가 안 떠오르는 건 제가 자본주의에 찌들어서...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3 23:17   좋아요 0 | URL
^^:)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 살지 않기에 수익률을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체제 안에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ㅋㅋ
 
작은 집
르 코르뷔지에 지음, 이관석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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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면이 대지 위에 자리 잡았다. 마치 손에 장갑을 끼듯이 꼭 들어맞았다. 호수는 창문에서 사 미터 앞에 있었고, 도로는 문 뒤로 사 미터 떨어져 있었다. 다뤄야 할 면적은 삼백 제곱미터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평선들 중 하나인, 건물 때문에 망쳐서는 안 될, 비길 데 없이 훌륭한 전망을 제공한다.(p13)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은퇴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준비하는 호숫가의 작은 집 이야기. 제한된 예산으로 큰 집을 지을 수는 없지만, 대신 작은 집에 큰 자연을 담는다. 오늘날 규격화된 상자와 같은 곳에서 거주하며 역세권으로부터의 거리가 거주 가치의 척도인 우리들에게, 대가는 건축과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집 안으로 들어선다. 십일 미터 길이의 창 문이 집에 품격을 준다! 이것은 창문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고안된 구조상의 혁신이다. 집의 구성체이자 가장 중요한 특징이 되는 것이다.(p34)

작은 집에 자연을 담아낸 대가처럼, 외부와 단절 대신 마음의 창인 눈을 통해 이웃과 소통하는 삶을 꿈꾼다는 것은 어쩌면 시대에 뒤쳐진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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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3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르 코르뷔지에가 이런 책도 썼네요.
역시...
근데 그가 말한 창으로 자연을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국내에서도 건축가들이 너도나도 따라하여 이젠 좀 흔한 창인데요. 그 창을 통해 보신 적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3 21:46   좋아요 1 | URL
^^:) 아쉽게도 그런 창이 있는 집에 가보질 못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약 할 수 있다면)창을 통해서 자연을 시각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도 좋겠지만, 한옥처럼 자연을 온전히 끌어들이거나, 아니면 문 밖으로 자연을 밟고, 숲냄새와 바람의 느낌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집에 살았으면 합니다... 집 안에서 바라본 자연과 문 밖의 자연은 분명 차이가 있더군요...

북다이제스터 2020-09-03 21:51   좋아요 1 | URL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르 코르뷔지에 창은 성에 차지 않는 창이라고 느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요...
왜 다들 그의 창을 대단하다고 칭송하고 따라하는지 이해되지 않아서 그냥 여쭤봤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3 21:58   좋아요 1 | URL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양문화의 자연에 대한 태도와 동양문화의 자연에 대한 태도 차이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서양문화에서 자연을 대상화하고 이로부터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에 오감 중에서 시각을 충족하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문화에서는 물아일체의 측면에서 촉각, 후각까지 고려하는 사고가 건축 철학에 드러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9-03 22:03   좋아요 1 | URL
곧 집 지으실 때 큰 도움되실 책이었다고 짐작됩니다. ^^
곧 이루어지실 것으로 느껴집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3 22: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일단은 살 도시 아파트 구하느라 발품을 팔았지만요..ㅋㅋ 꿈을 놓쳐서는 안되겠지요.

초딩 2020-09-04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고 읽었던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좋은 평을 듣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것‘을 꼬집어 비판 한 것 같습니다. 유교수의 지론처럼 자연과 동화되는 것은 그 속에 - 원래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니 - 있는 것이지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에서도 우리는 이미 ‘본다는 것‘으로 본연의 경험을 차단하고 또 ‘왜곡‘ 해버린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9-04 19:3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르 코르뷔지에가 서양에서는 건축대가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서양 전통인 ‘관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들의 자연환경과는 다른 우리 환경에 맞는 건축 철학, 생활 철학이 필요함도 함께 느껴봅니다.^^:)
 


<오뒷세이아>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했던 영웅이, 바다를 떠돌며 모험을 겪은 후 20년 만에 집에 돌아와, 자기 아내에게 구혼하면서 자기 집 재산을 먹어치우고 있는 횡포한 무리들을 처단하는 걸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것이 <오뒷세이아>의 중심 주제 두 가지이다. 하지만 작품을 펼치면 독자들은, 대개는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인물과 마주치게 된다. 바로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다....  <오뒷세우스> 첫 부분의 핵심은 텔레마코스라는 젊은이의 성장이다. 그는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아버지의 모험을 축소해서 겪고, 그것을 통해 어른이 된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오뒷세이아>의 세 주제이다._ 강대진, <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 p43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 분노 사건을 그리면서 트로이아 전쟁 전체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중심적인 주제는 '분노'이고, 부차적인 주제는 '전쟁'이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분노' 주제는 '전쟁'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단 '전쟁' 주제가 두드러지고, 뒤로 갈수록 '분노' 주제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_ 강대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읽기>, p45

 

 <오뒷세이아>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모험을 떠나 작은 시련을 겪고 어른으로 성장한 한 소년. 치열한 삶의 전장에서 돌아와 안식을 위한 귀환을 하는 노년. 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일리아스>에서 그려진 청년 아킬레우스의 혈기 왕성함과 자신의 책임과 가정,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중년 헥토르의 모습을 맞춘다면, 우리는 오이디푸스가 풀었던 수수께끼의 답(答)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연어와도 같은 우리의 삶. 추상적인 인생(人生)이라는 주제는 <일리아스>에서 신(神)에 의해 무구(武具)에 새겨지면서 구체화되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으로 실현된 운명을 볼 수 있다.

 

 라이오스가 통치할 때 큰 재앙이 테바이를 엄습했다. 헤라가 스핑크스(Sphinx)를 보냈기 때문이다. 스핑크스의 어머니는 에키드나이고 아버지는 튀폰이었는데 그녀는 여자 얼굴과 사자의 가슴과 발과 꼬리, 새의 날개를 갖고 있었다. 그녀는 무사 여신들한테 수수께끼를 배운 뒤 피키온(phikion) 산에 앉아 테바이인들에게 그 수수께끼를 냈다. 그 수수께끼란, 목소리는 하나뿐이지만 처음에는 발이 네 개인데 그 다음에는 두 개가 되었다가 그 다음에는 세 개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는 그것을 듣고 수수께끼를 풀었으니 그의 말인즉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린아이 때는 사지로 기니까 발이 네 개고 어른이 되면 두 발로 다니고 늘그막에는 그 밖에도 지팡이를 셋째 발로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_ 아폴로도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제3권 8, p210


 <일리아스>에서 헤파이스토스가 아킬레우스를 위해 만들었던 방패. 그 안에 구체적으로 새겨진 인생의 모습. 이는 우리의 삶이 인생에 형상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또한, 아킬레우스와 함께 전장(戰場)으로 가는 방패와 그 안에 새겨진 삶은 바로 삶이라는 전쟁터로 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런지. 이 시점이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나간 복수전이라는 점에서 이 무구에 새겨진 삶은 가치를 잃고 번민하는 인생의 좌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아킬레우스 사후에 이 방패를 갖게되는 오뒷세우스의 귀환과 함께 삶이라는 전쟁도 끝나는 것은 아닐까. 시인(詩人)이 실제 <오뒷세우스> <일리아스>를 통해 삶의 치열함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격랑에 시달리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요즈음에는 이런 모습으로 다가온다. 언젠가 다시 <일리아스> <오뒷세이아>를 읽는다면 분명 다른 의미를 주겠지만...





[사진] Shield of Achilles(출처 : 위키백과)


 거기에 그는 대지와 하늘과 바다와

 지칠 줄 모르는 태양과 만월(滿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별들을,

 플레이아데스와 휘아데스와 오리온의 힘과

 사람들이 짐수레라고도 부르는 큰곰을 만들었다.

 큰곰은 같은 자리를 돌며 오리온을 지켜보는데

 이 별만이 오케아노스의 목욕에 참가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는 또 필멸의 인간들의 아름다운 두 도시를

 만들었다. 한 도시에서는 결혼식과 잔치들이 벌어졌는데

 사람들이 휘황한 횃불 아래 신부들을 방에서 인도하여

 도성 안으로 데려가고 있었고, 축혼가(祝婚歌)가 높이 울려 퍼졌다...


 거기에 그는 또 부드러운 묵정밭을 넣었는데

 세 번이나 갈아엎은 넓고 기름진 밭이었다.

 그 안에서 여러 농부들이 소를 몰고 이리저리 돌고 있었다.

 그들이 밭의 경계에 이르러 돌아서려고 할 때마다

 한 남자가 다가가 각자에게 달콤한 포도주가 든 잔을

 손에 쥐어주곤 했다....


 밭이랑을 따라 곡식이 줄지어 한 아름씩 땅에 쓰러지면

 묶는 자들이 그것을 새끼로 한 단씩 묶었다.

 세 명의 묶는 자들이 곁에 서 있었다. 한편 아이들은

 베는 자들의 뒤를 뒤따라가며 곡식을 주워 모아 한 아름씩 안고 와서

 그것을 묶는 자들에게 쉴 새 없이 건네주었다....


 포도밭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포도 따는 자들은 수확기가 되면 이 길로 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처녀 총각들은 신이 나서

 엮은 바구니에 꿀맛 같은 과일을 담아 나르고 있었다... (이하 중략) _호메로스, <일리아스>, 제18권 483 ~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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