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보편백과전서 Encyclopaedia universalis>의 1973년도 네 번째판의 광범위한 ‘근대성Modernite‘ 항목은 ‘근대적‘ 개념의 세 번째 의미가 언어규범 속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확인해준다.
이 항목은 마지막 현재로 우리의 근대성을 과거와 질적인  단절을 통해  규정하는  작업을  시도하지  않는다. 근대성은 오히려 운동 범주로, "변화에 대한 표준적인 도덕 morale canonique du changement"으로 정의된다. 변화의 필연성은 미래를 향한 과도기로 일시적인 현재에 대한 의식의 결과이다. 이러한 의식은 문명 타입의 토대로 전통에 대한 순응과 정반대로 대치된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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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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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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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삶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태반이 이 중요한 행복의 요소를 매우 불완전하게 향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한 접근이 아예 봉쇄되고 있다. 그런 것이 없다 보니 많은 여성들의 삶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성공하는 모든 남성들의 삶 뒤편에는 실패에 신음하는 여성들의 삶이 있다. 사회가 아직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와 같은 실패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사회가 그런 실패를 더 키워서는 안 된다. 부모는 무지하고 젊은이들 자신은 경험이 부족해서 또는 마음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외부 기회가 없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 수많은 남성도 마지못해 그런 일을 하면서, 결국 무능한 존재로서 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_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은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에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여성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남성에게도 좋지 않다는 점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밀은 <여성의 종속>에서 어떤 근거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가?


 먼저 사회 전체적인 불이익 문제는 <여성의 종속>에서 인류의 절반이 자신이 불행하다는 감정을 갖고 산다는 것이 사회 전체 이익에 맞지 않는다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관점에서 설명된다. 또한 남성에 대한 불이익의 경우 여성의 불평등은 자신의 덕성(德性)에 해롭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점을 말한다. 간략하게,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능력이 부족한 남성의 지배를 받는 부조리한 상황은 결국 그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리주의에 기반한 밀의 주장의 근거는 대체적으로 추상적인 윤리 위에 놓인다.


 이에 반해,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은 <자본론 Das Kapital>을 통해 남여간의 불평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산업자본재의 발달로 노동의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남성이 여성으로, 여성이 어린이로 대체되는 과정은 '동일임금 동일노동'이라는 원칙이 깨졌을 때 생겨나는 중산계급의 붕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남여 간 임금격차의 불평등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갖게 되는가는 <자본론>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능력을 가진 저렴한 노동력(여성)이 있다면 왜 굳이 남성을 써야 하는가? 결국 끊임없이 실질임금 하락의 상황에 몰린다는 것이 <자본론>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밀과 마르크스가 사회를 바라보는 접근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을 통해 불평등 문제의 현실 인식과 개선방향을 조명이라는 큰 틀에서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불평등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시기적으로 하루 늦었지만, 어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불평등의 문제가 직접 당사자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우리의 문제임을 생각한다. 당장 남성들의 어머니, 아내, 자매, 딸로서 관계를 맺는 이들이 불행하게 느낀다면 가족으로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월평균 가구 소득이 줄어든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들지 않더라도 불평등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 뿐 아니라, 연령, 인종, 종교, 성 정체성 등 여러 문제로 차별받는 이들이 사회에 없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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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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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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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3-09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장에서 밀이 말한 ‘행복=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추구’는 ‘공리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결론이 마르크스와 같을지라도 본질은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생각듭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9 19:36   좋아요 1 | URL
동감입니다. 밀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생존에 대한 처절함보다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 기록은 처절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에서 다소 이론적이고 당위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지향해야할 평등과 불평등이 가져온 비극이 밀과 마르크스의 차이 중 하나는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바람돌이 2021-03-09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의 얘기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공감을 받기는 좀 어려워보여요. 그럼에도 머나먼 19세기에 평등에 대한 논의를 저만큼 제기할수 있었던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훨씬 더 와닿지만요.

겨울호랑이 2021-03-09 19:3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밀의 주장을 들으면서 조금은 진부한 논리 전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비참한 마르크스의 기록이 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이론과 현실의 차이는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존 스튜어트 밀 선집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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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 선집에는 <공리주의 Utliltarianism>, <종교론 Three Essays on Religion>, <자유론 On Liberty>, <대의정부론 Considerations on Representative Government>, <사회주의론 Chapters on Socialism>,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등이 실려 있는데,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핵심은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를 중심에 놓고, 공리주의가 지향하는 사상의 정점을 <종교론>에서, 공리주의 실현의 전제가 되는 사회 계약을 <자유론>에서, 이를 실현하는 정체 체제는 <대의정부론>에서 말한다. <여성의 종속>에서는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여성)이 행복한 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이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님을 말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 사상의 연장선에 놓인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쾌락이야말로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며, 바람직한 모든 것은 그 자체에 들어 있는 쾌락 때문에, 또는 고통을 막아주고 쾌락을 늘려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핵심 명제다.... 결론적으로 공리주의 철학은 일반 행복을 해치지 않고 그것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도 안에서 사람들이 습득하는 다른 욕구들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일반 행복을 달성하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을 최대한 사랑하며 쌓을 것을 명령하고 요구한다._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中

밀은 경제적으로는 시장주의자이면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자다. 그가 민주주의 특히 대의민주정치를 강조하는 것은 ‘교육‘에 의한 ‘이성 질서의 확산과 문명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반이 되는 사상이 ‘공리주의‘인 것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바라봤을 때, 밀이 전통적인 사회주의에 비판적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단순한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즉, 사회주의에서 제시한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해결은 시장에서의 자율적인 해결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수정 자본주의‘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런 전체 구도를 가지고 선집 안에 실린 각론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리뷰, 페이퍼를 통해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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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1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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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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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3-07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스튜어트 밀은 알듯 하면서도 좀 이상한 사람인듯 합니다.
하긴 대부분 모든 사람이 그렇기에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평범한 사람인 듯도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7 17:27   좋아요 1 | URL
나름 조기교육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라 자타공인 하는 인물인데 북다이제스터님 평가가 다소 박하십니다 ㅋ 그래도 같은 영국사람이라 그런지 흄에게 상당히 우호적이고, 칸트에 대해 비판적인 면이 있는 것을 보면(「공리주의」, 「종교론」)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완전히 이해못할 사람은 아닐 것 같아요^^:)

북다이제스터 2021-03-07 17:56   좋아요 1 | URL
절 넘 단순하게 보셨습니다. ㅋㅋ
밀이 이상한 건 아상한 것이고 흄이 탁월한 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어떤 측면은 몹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7 18:1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말씀처럼 흄과 밀은 다른 사람이지요. 다만, 밀이 흄의 관점을 많이 인정했다는 면에서 이들 사이에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생각했을 뿐입니다. 북다이제스터님의 생각처럼 이들의 사상에 차이점도 물론 있을 것이고, 이 지점을 크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07 18:26   좋아요 1 | URL
후대 사상가가 이전 사상을 일정 부분 계승하겠지만, 밀이 흄 어떤 사상을 정확히 계승했는지 제 공부가 짧습니다.
하여튼 제 느낌으론 밀이 자신 처지 때문에 애매모호한 이론을 펼쳤다면, 흄은 틀리던 맞던 자기 입장을 확고히 명확하게 밝힌 사람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8 00: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도 밀이 흄의 어느 부분을 인정하고 계승했는지, 이들이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났는지 비교해 보면서 더 공부해봐야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3-07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어지는 리뷰 페이퍼를 기다립니다. 솔직히 제가 이 책을 읽을거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겨울호랑이님 글이라도 읽으면 이 무지가 좀 나아질 거 같아서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03-07 22:34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나름대로 밀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을 것이기에 자칫 잘못된 정보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제 글을 읽으시고 관심있으면 직접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도 오해가 없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noomy 2021-03-08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 공리주의에 관심이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진 사상이면서 가장 많은 공격과 오해를 받는 사상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돼서요. 윤리학에서 공리주의 비판은 뭐 공식과도 같은거라서. 어쨌든 화이팅입니다~^^;; (부담갖진 마시길)

겨울호랑이 2021-03-08 14: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noomy님. 제가 공리주의에 대해 다 정리하기에는 분명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이나마 이웃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
 

중심추가 포식 쪽으로 기울게 된 것은 점진적인 현상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육식동물이 대대적으로 등장한 것은 실제로 59 4,300만 년 전이었다. 갑자기 포식이 그저 먹이그물 내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를 갖춘 생활양식이 된 것이다. 선캄브리아 시대 포식자들이 수동적이었다면, 캄브리아기 초에 바다를 휩쓸었던 두 번째 파도의 포식자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능동적이었다. 눈을 가진 최초의 동물은 삼엽충 - 최초의 삼엽충이었다.  최초의 진정한 삼엽충은 포식자이기도 했다. 팔로타스피스, 네오코볼디아, 시주디스스 같은 눈을 가진 모든 삼엽충들은 캄브리아기 초, 캄브리아기 폭발이 시작될 무렵의 대표주자이기도 했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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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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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1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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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1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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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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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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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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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3 - 권력과 정치 3.1운동 100주년 총서 3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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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게 군대는 해외 침략의 선봉대이자 식민지 지배의 최후 보루였다. 의병투쟁에 대한 탄압이 전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면, 3.1운동은 후자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186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에서는 3.1운동 전후 시기 식민통치의 주체와 이들에 대항하는 세력의 주체에 대해 말한다. 일본 육군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1868)을 성공시킨 두 세력인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 출신들이 장악하는데, 그중에서도 조슈번 출신들이 조선, 대만, 사할린 등 여러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이들 식민지를 발판 삼아 대륙으로 뻗어나갈 속내를 갖고 있었기에, 식민지와 본토 일본을 구분하는 정책을 취했고, 불평등한 처우는 식민지 내 상황을 악화시켰다.

법령들은 일본에서 시행되는 법령과 내용상 유사하거나 일본의 제반 제도에 상응하게끔 조정된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조선에만 ˝특수하게 존재한다˝고 인정된 상황에 맞추어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동화주의 측면이 우선적이고 차별주의 측면이 부차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체계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조선에는 일본 헌법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국민에게 부여된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나 참정권 등 기본권이 조선인에게는 보장되지 않았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62

이에 반해, 하라 다카시(原 敬, 1856 ~ 1921)로 대표되는 문인(文人) 출신 정치가들은 궁극적인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추구하면서 조선인을 황국신민화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3.1운동의 결과는 조선에 대한 압도적이었던 조슈파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하라 다카시는 구미의 식민지와는 달리 조선을 식민지로 생각하지 않고 일본에 동화시킬 대상으로 간주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조선을 오키나와나 훗카이도처럼 일본의 일부로 삼고자 했다. 이러한 동화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에 일본과 같은 교육과 지방제도를 실시하는 등 일본의 법률과 제도를 식민지에서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46

1919년의 식민지 관제 개정은 제1차 야마모토 내각 시기 식민지 개혁의 연장선에 있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하라 내각은 추진 중이던 ‘식민지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3.1운동을 계기로 총독부 관제 개정에 착수한 것이 아니었지만 3.1운동이라는 민족적 저항이 없었다면 육군 조슈파의 반발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슈파는 타이완총독을 양보하는 대신 예비역이었던 사이토를 현역으로 복귀시켜 조선총독에 취임시킴으로써 문관총독의 임명을 막아 조선총독부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45

이에 대항하는 조선 민중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지배세력에 대항해 나갔다. 해외에서는 유학생을 중심으로, 국내에서는 종교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저항을 이어나갔고,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 공동체로 이어지면서 들불처럼 번져갔다.

독립선언의 계획과 준비는 상대적으로 정형화된 조직을 가진 종교계나 체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학생층이 주도했다. 당시 국내에서 집단행동을 계획할 수 있는 조직을 보유한 곳은 종교계뿐이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논문은 천도교계와 개신교계에 의해 독립선언이 준비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p192)... 3월 중순 이후 3.1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주된 참여자는 농민들이었다. 이들은 마을이라는 전통적 공동체에 강하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참여에 대해서는 ‘공동체적 동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193

또한, 친일세력들 역시 3.1운동 직후 그들의 활동을 본격화하며 제국 내에서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대표적인 단체가 국민협회(國民協會)다. 이들의 생각이 참정권 획득을 통해 제국 내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고, 단결된 힘을 통해 새로운 혁명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한 이들의 생각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좌절되면서 시들해지고 만다.

1919년 3.1운동은 일제하 민족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던 한편, 친일세력들에게도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통치 방식이 교체되며, 무단통치 시기에 금지되었던 단체 결성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3.1운동이 친일세력들에게 본격적 활동의 기회를 열어주었던 것이다.(p262)... 국민협회는 내지연장주의라는 새로운 지배 전략과 친일세력의 정치적 욕구를 참정권 청원운동에 흡수하여 1920년대 최대의 친일단체로 성장한 정치세력이었다... 그러나 국민협회의 성장을 가능케 했던 요소들은 곧 국민협회가 통치당국과 충돌하는 원인이 되었다. 참정권 확보를 통해 완전한 제국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원론적으로는 내지연장주의에 부합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식민지배세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기 때문이었다. 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295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에서는 3.1 독립항쟁이 가져온 일본과 조선의 권력 구조 변화가 상세하게 묘사된다. 약속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했다가 민중이 두려워 태화관에 숨어 있던 민족대표라는 이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3.1 독립항쟁이 가져온 변화는 분명 큰 것이었고 명암(明暗)은 분명했다. 이후 해외 지역에서 무장독립투쟁이 본격화된 것과 함께 친일파의 양산도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3.1 독립항쟁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 여겨진다.

본래 리뷰는 여기까지이나 요즘 우리 현실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가 나오는 대목이 있어 옮겨본다. 우리 사회의 나쁜 문제점의 기원을 찾는다면 일단 일제때부터라고 말하고 근거를 찾으면 대충 맞을 듯하다...

일본 형사소송법에서 예심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검사가 함부로 기소하는 것을 방지해 피고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검찰이나 사법경찰관은 현행범 등 극히 제한된 경우가 아니면 독자적인 강제수사를 할 수 없었다. 이같이 인권 보호를 위해 시행된 예심제도가 조선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위해 변용되었다. 조선에서는 예심판사가 아니라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등 수사기관이 예심판사에 준하는 강제처분권을 갖고 있었고, 이로 인해 예심제도는 원래의 목적인 인권 보호가 아니라 인권 탄압을 위한 제도로 변용되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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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21-03-06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다보니 복거일, 「비명(碑銘)을 찾아서」가 떠오르네요. 복거일이라는 작자가 영어공용화를 주장하는등 보수꼴통 발언하기로 유명하지만 이 책 만큼은 훌륭합니다. 재미도 있습니다. 이 작품을 구상한 상상력도 뛰어나구요. 영화로도 나왔어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영화는 별로구요. 각색도 많이 됐습니다. 게다가 주연이 발연기 장동건이니 기대하기 어렵죠.

일본에서 유학하고 직장생활도 했던 선배에게 이 책을 권했더니 등장인물들 일본식 이름도 어설프고 뭔가 허술하다더니 다 읽고 나서는 저하고 독서토론하자고 하더라구요. 그게 벌써 십년도 훨씬 전이지만요.

겨울호랑이 2021-03-07 08:09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봤던 기억이 납니다. 도입부에 축구선수 이동국이 일장기를 달고 선수로 뛰고, 한국이 일본에 완전히 종속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던 영화로 기억에 남네요. 그 모든 것이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

samadhi(眞我) 2021-03-07 12:4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그 아찔한 가정이 참신했죠. 그럴 법하다 생각했어요. 출간된지 30년 넘은 소설이라 지금은 그렇게 놀랍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조지 오웰, 「1984」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한국인에게 너무나 암울한 상황이.

겨울호랑이 2021-03-07 12:53   좋아요 1 | URL
^^:) 개인적으로는 그 영화를 보던 때에는 참 암울하게 느껴졌습니다만, 지금은 그 때만큼 암울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지금 분명 있고 넘어야할 산도 높습니다만 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 긴 시간이 지났음을 실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