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년 3 - 권력과 정치 3.1운동 100주년 총서 3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에게 군대는 해외 침략의 선봉대이자 식민지 지배의 최후 보루였다. 의병투쟁에 대한 탄압이 전자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면, 3.1운동은 후자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186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에서는 3.1운동 전후 시기 식민통치의 주체와 이들에 대항하는 세력의 주체에 대해 말한다. 일본 육군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1868)을 성공시킨 두 세력인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 출신들이 장악하는데, 그중에서도 조슈번 출신들이 조선, 대만, 사할린 등 여러 지역의 총독으로 부임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이들 식민지를 발판 삼아 대륙으로 뻗어나갈 속내를 갖고 있었기에, 식민지와 본토 일본을 구분하는 정책을 취했고, 불평등한 처우는 식민지 내 상황을 악화시켰다.

법령들은 일본에서 시행되는 법령과 내용상 유사하거나 일본의 제반 제도에 상응하게끔 조정된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조선에만 ˝특수하게 존재한다˝고 인정된 상황에 맞추어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동화주의 측면이 우선적이고 차별주의 측면이 부차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체계는 심각한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조선에는 일본 헌법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국민에게 부여된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나 참정권 등 기본권이 조선인에게는 보장되지 않았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62

이에 반해, 하라 다카시(原 敬, 1856 ~ 1921)로 대표되는 문인(文人) 출신 정치가들은 궁극적인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추구하면서 조선인을 황국신민화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3.1운동의 결과는 조선에 대한 압도적이었던 조슈파의 영향력이 크게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하라 다카시는 구미의 식민지와는 달리 조선을 식민지로 생각하지 않고 일본에 동화시킬 대상으로 간주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조선을 오키나와나 훗카이도처럼 일본의 일부로 삼고자 했다. 이러한 동화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에 일본과 같은 교육과 지방제도를 실시하는 등 일본의 법률과 제도를 식민지에서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46

1919년의 식민지 관제 개정은 제1차 야마모토 내각 시기 식민지 개혁의 연장선에 있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하라 내각은 추진 중이던 ‘식민지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3.1운동을 계기로 총독부 관제 개정에 착수한 것이 아니었지만 3.1운동이라는 민족적 저항이 없었다면 육군 조슈파의 반발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슈파는 타이완총독을 양보하는 대신 예비역이었던 사이토를 현역으로 복귀시켜 조선총독에 취임시킴으로써 문관총독의 임명을 막아 조선총독부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45

이에 대항하는 조선 민중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지배세력에 대항해 나갔다. 해외에서는 유학생을 중심으로, 국내에서는 종교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저항을 이어나갔고,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 공동체로 이어지면서 들불처럼 번져갔다.

독립선언의 계획과 준비는 상대적으로 정형화된 조직을 가진 종교계나 체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학생층이 주도했다. 당시 국내에서 집단행동을 계획할 수 있는 조직을 보유한 곳은 종교계뿐이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수많은 논문은 천도교계와 개신교계에 의해 독립선언이 준비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p192)... 3월 중순 이후 3.1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주된 참여자는 농민들이었다. 이들은 마을이라는 전통적 공동체에 강하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참여에 대해서는 ‘공동체적 동원‘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193

또한, 친일세력들 역시 3.1운동 직후 그들의 활동을 본격화하며 제국 내에서 자신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데, 대표적인 단체가 국민협회(國民協會)다. 이들의 생각이 참정권 획득을 통해 제국 내에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고, 단결된 힘을 통해 새로운 혁명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을 조국으로 생각한 이들의 생각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좌절되면서 시들해지고 만다.

1919년 3.1운동은 일제하 민족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던 한편, 친일세력들에게도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통치 방식이 교체되며, 무단통치 시기에 금지되었던 단체 결성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3.1운동이 친일세력들에게 본격적 활동의 기회를 열어주었던 것이다.(p262)... 국민협회는 내지연장주의라는 새로운 지배 전략과 친일세력의 정치적 욕구를 참정권 청원운동에 흡수하여 1920년대 최대의 친일단체로 성장한 정치세력이었다... 그러나 국민협회의 성장을 가능케 했던 요소들은 곧 국민협회가 통치당국과 충돌하는 원인이 되었다. 참정권 확보를 통해 완전한 제국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원론적으로는 내지연장주의에 부합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식민지배세력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었기 때문이었다. 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295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에서는 3.1 독립항쟁이 가져온 일본과 조선의 권력 구조 변화가 상세하게 묘사된다. 약속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로 했다가 민중이 두려워 태화관에 숨어 있던 민족대표라는 이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3.1 독립항쟁이 가져온 변화는 분명 큰 것이었고 명암(明暗)은 분명했다. 이후 해외 지역에서 무장독립투쟁이 본격화된 것과 함께 친일파의 양산도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3.1 독립항쟁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 여겨진다.

본래 리뷰는 여기까지이나 요즘 우리 현실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가 나오는 대목이 있어 옮겨본다. 우리 사회의 나쁜 문제점의 기원을 찾는다면 일단 일제때부터라고 말하고 근거를 찾으면 대충 맞을 듯하다...

일본 형사소송법에서 예심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검사가 함부로 기소하는 것을 방지해 피고인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검찰이나 사법경찰관은 현행범 등 극히 제한된 경우가 아니면 독자적인 강제수사를 할 수 없었다. 이같이 인권 보호를 위해 시행된 예심제도가 조선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위해 변용되었다. 조선에서는 예심판사가 아니라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 등 수사기관이 예심판사에 준하는 강제처분권을 갖고 있었고, 이로 인해 예심제도는 원래의 목적인 인권 보호가 아니라 인권 탄압을 위한 제도로 변용되었다._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3.1운동 100년 : 3. 권력과 정치>, p7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madhi(眞我) 2021-03-06 2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다보니 복거일, 「비명(碑銘)을 찾아서」가 떠오르네요. 복거일이라는 작자가 영어공용화를 주장하는등 보수꼴통 발언하기로 유명하지만 이 책 만큼은 훌륭합니다. 재미도 있습니다. 이 작품을 구상한 상상력도 뛰어나구요. 영화로도 나왔어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영화는 별로구요. 각색도 많이 됐습니다. 게다가 주연이 발연기 장동건이니 기대하기 어렵죠.

일본에서 유학하고 직장생활도 했던 선배에게 이 책을 권했더니 등장인물들 일본식 이름도 어설프고 뭔가 허술하다더니 다 읽고 나서는 저하고 독서토론하자고 하더라구요. 그게 벌써 십년도 훨씬 전이지만요.

겨울호랑이 2021-03-07 08:09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봤던 기억이 납니다. 도입부에 축구선수 이동국이 일장기를 달고 선수로 뛰고, 한국이 일본에 완전히 종속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던 영화로 기억에 남네요. 그 모든 것이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시작되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

samadhi(眞我) 2021-03-07 12:4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그 아찔한 가정이 참신했죠. 그럴 법하다 생각했어요. 출간된지 30년 넘은 소설이라 지금은 그렇게 놀랍게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조지 오웰, 「1984」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한국인에게 너무나 암울한 상황이.

겨울호랑이 2021-03-07 12:53   좋아요 1 | URL
^^:) 개인적으로는 그 영화를 보던 때에는 참 암울하게 느껴졌습니다만, 지금은 그 때만큼 암울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지금 분명 있고 넘어야할 산도 높습니다만 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 긴 시간이 지났음을 실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