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엉뚱하지만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은 큰 보름달과「베르세르크」다. 2000년 추석 전날. 신입사원으로 정신없이 보내던 일상에서 벗어나 가을방학(?)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기쁨으로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들른 동네 만화가게에서 생각없이 꺼낸 「베르세르크1」. 그날 앉은 자리에서 그때까지 나온 8권을 내리 읽으며 책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어려서부터 버림받고 용병집단에서 여러 시련을 겪는 주인공 가츠. 태어나면서부터 어둡고 우울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장 크리스토프」의 주인공만큼이나 우울하다. 아니, 더 우울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에게 다가오는 시련이 더 크기 때문이리라. ‘검은 기사‘, ‘어둠의 기사‘ 이미지가 강한 가츠에게 주어지는 압력은 독자들도 압박한다.

 그러다가 잠시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 나오는데 그리피스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여러모로 상반되는 이미지의 그리피스는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되지만,(「은하영웅전설」의 라인하르트-키르히아이스 처럼) 그것도 잠시 ‘빛‘은 ‘어둠‘을 버리고 더 큰 악이 되버리고 만다. 20년 전에 읽은 작품이지만 언제나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그만큼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빛이 어둠을 배신하고, 어둠이 오히려 선에 가깝다는 설정은 내게 파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파격적인 설정과 함께 한 장면도 허투루 그리지 않는 작가의 정성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내게 「베르세르크」는 2000년 이후 추석은 성룡의 영화와 함께 떠오르는 작품이 되었더랬다.

이제는 추석 때마다 성룡 영화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타계하면서 작품의 종결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 미루고 미뤄 두었던 「베르세르크」의 이후 이야기들. 이번 추석에 돌아보는 것도 나름 풍요로운 명절을 보내는 일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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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9-16 19: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 <장 크리스토프> 좋아해요!!! 로맹 롤랑이 베토벤을 모델로 했다는 얘길 들었는데, 읽어보니까 어린 시절은 베토벤 조금, 작곡가로는 완전 쇤베르크더라고요. 중2때 담임 이내수 선생께서 추천하신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읽은 책입니다. ㅋㅋㅋㅋ 그분 아직 살아계실 텐데 연락도 못하고, 이렇게 삽니다. 추석 앞둔 시절에 덕분에 옛 생각 한 번 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9-16 19:11   좋아요 3 | URL
저도 <장 크리스토프>가 인상 깊었습니다. 숨막힐듯한 환경 속에서 결국 자신의 재능을 피워내는 모습에서 ‘미운 오리 새끼‘를 떠올리게 됩니다. Falstaff님께서도 좋아하신다니 더 반갑게 느껴집니다^^:)

mini74 2021-09-16 1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베르세르크. 그림도 대단 내용도 방대하고 재미있지요. 좀 잔인하지만 *^^* 아이는 어릴 땐 저랑 원피스 참 좋아했는데 지금은 기생수를 좋아하더라고요.ㅎㅎ

겨울호랑이 2021-09-16 19:14   좋아요 2 | URL
좀 잔인하긴 하지요... 일본 만화는 잔인한 묘사가 많은 것 같아요. 예전의 「북두신권」, 「시루구이」 같은 작품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꼈던 기억이 나네요. 좋아하는 책은 항상 바뀌는 것 같아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누군가의 명언처럼요^^:)

오거서 2021-09-16 19: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소에도 궁금해 하지만 오늘따라 19금 가려진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

겨울호랑이 2021-09-16 19:54   좋아요 2 | URL
아, 「베르세르크」입니다. 19금 작품이라 안 보이네요.^^:)

오거서 2021-09-16 19:57   좋아요 2 | URL
베르세르크 보이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 보았지만 겨울호랑이 님이 친철하게 알려주시니까 눈 여겨 봐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9-16 20:0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라 오거서님께서도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마음에 드신다면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라 여겨지네요. 편한 밤 되세요!

오거서 2021-09-16 20:06   좋아요 2 | URL
호불호가 극명하다 해도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다면 모험할만 하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21-09-16 20:08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오거서님 좋은 독서 되세요!^^:)

붕붕툐툐 2021-09-17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19세 이상 상품만 계속 뜨네요! 저 19세 넘었는데 좀 보여주시지! 그래도 댓글에서 힌트 얻고 갑니다!ㅎ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1-09-17 07:12   좋아요 0 | URL
북플이 19세 이상만 보게하는 설정이 자동으로 되어있나봐요 ㅜㅜ 아니면 제가 못 찾는 것일수도 있겠네요... 추석연휴기간에 ‘19금‘ 풀기 미션을 해야겠어요^^:)
 

"무릇 일을 논의하는 데는 마땅히 옛 법전의 바른 말에 의거하여야 하는데, 어찌 단지 전례만을 따를 수 있겠소?"(p21/152) - P21


대승정은 어두움을 틈타 성을 넘어 홀로 진격하니, 원최가 이상한 사람이 있음을 눈치 채고 몸으로 원찬을 호위하였으나 대승정이 곧바로 전진하여 그를 찍었다. 원찬이 원최에게 말하였다.
"나는 충신 됨을 잃지 않았고, 너는 효자 됨을 잃지 않았구나!"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죽었다. 백성들이 그들을 애도하며 노래하였다.
"가련하다 석두성아, 차라리 원찬을 위해 죽을지언정 저연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p65/162) - P65

무릇 인군(人君)이 남쪽을 향하여 앉아 있게 되면 아홉 겹 속에 깊숙이 떨어져 있게 되고, 아침저녁으로 모시고 받들게 되니 뜻으로 보아 경사(卿士)들과는 막혀 있게 되어 폐달(陛?)에서의 임무는 마땅히 유사가 갖고 있게 된다.(p72/152) - P72

기뻐함과 온회함을 엿보고, 슬픔과 즐거움을 살피는데 이르러서는 행동으로 주군의 마음에 적합하게 하고 행동거지는 뜻에 어긋남이 없었으니, 인주(人主)는 그들의 신분이 미천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여 권력에서는 중요한 지위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p73/152)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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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앞서 양전자를 발견했던 앤더슨 Carl David Anderson, 1905 ~ 1991이 우주선의 안개상자 사진 안에서 미묘한 입자의 궤적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즉 그 입자는 분명히 전자가 아닌데다가 양자보다 가볍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그 입자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새로운 입자(즉 중간자)라고 생각했다. _ 유카와 히데키,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 p113 


 유카와 히데키(湯川 秀樹, 1907 ~ 1981)의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은 여러 면에서 베르너 하이젠 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 ~ 1976)의 <부분과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에세이다. 물리학을 전공으로 하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전공이야기를 쉽게 풀어 설명하면서 함께 인생에 대해 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제 우리는 핵분열이라는 뜻밖의 과정이 충분히 가능한 것임을 인식했다. 아주 무거운 원자핵의 경우는 외부로부터의 작은 자극만 주어지면 저절로 분열이 일어날 수 있었다. 따라서 원자핵에 중성자를 쏘면 당연히 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전에는 왜 이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_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 p100/284


 과학자들이 물리학을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는 점외에 이들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의 국민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공통점을 갖지만, 책을 읽으면서 받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과학(科學)에 국적은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기 때문일까. 하이젠베르크나 히데키가 각국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책에 담긴 그들의 생각과 두 나라의 다른 전후(戰後) 처리 방식이 비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 가을 힘들게 군복무를 하면서 보니까 주변에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히틀러의 이른바 평화 정책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나면, 독일 국민들이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히틀러와 그의 신봉자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될 거예요. _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 p101/284


 처음에도 말했듯이 중간자 이론은 오늘날 정체 상태에 빠져 있다. 이 난관을 벗어나게 되면 하나의 큰 해결점에 도달할 것이다. 사은 四恩의 첫째는 천황 폐하,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 스승과 벗의 은혜, 중생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단지 사은 四恩을 잃지 않고 연구에 정진할 것을 다짐한다. _ 유카와 히데키,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 p116


 다른 한 편으로, <부분과 전체>는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이론을 도출하고 인정받기 위해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 ~ 1955), 닐스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 ~ 1962)와의 진솔한 토론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것에 비해 히데키의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은 기초를 모르는 신입생에게 강의하는 노(老)교수의 기초 강의록 같은 면을 보인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느낌을 받는다.


 물질로부터 정신으로의 길, 이것이 현재 자연 과학이 추적하고 있는 길이다. 이것은 실로 먼 길이다. 언제쯤에나 완전히 통하게 될지 모른다. 물질의 측면에서는 물질과 화학이, 정신의 측면에서는 심리학이 그리고 그 가운데 생물학과 생리학이 각각의 길을 개척했다. 그러나 그 중간에는 아직도 미지의 광대한 황야가 있다. 우리들은 더 많은 실증적인 사실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밑을 관통하는 법칙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 된다. _ 유카와 히데키,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 p83


 개인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에서 법칙에 대한 히데키의 문장에 시선이 머무른다. '더 많은 실증적인 사실을 통한 객관적인 법칙의 발견'이라는 히데키의 문장 속에서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 ~ 1814)의 이성(理性)을 떠올리게 된다.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을 사물과 일치시키기 위한 이성의 사용. 이성을 활용한 과학의 탐구라는 점에서 하이젠베르크와 히데키는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히데키의 이성은 자기 이익(또는 자기 집단 이익)을 위한 '도구적 이성'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Force의 어두운 측면과도 같은 이성의 서로 다른 면을 가져간 것이 하이젠베르크와 히데키의 사고 차이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객관적 진리란 사물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 사물 자체와 일치하는 것을 뜻하다... 인간의 인식능력으로 사물 자체가 우리의 표상을 통해 실현되거나 우리의 표상이 사물 자체를 통해 실현되거나 할 수 있지만, 두 경우가 서로 긴밀히 얽혀 있어서 명확히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 전리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이성과 상충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표상은 결코 사물 자체와 일치할 수 없다._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계몽이란 무엇인가> <유럽 군주들에게 사상의 자유를 회복할 것을 촉구함> - P156

 

 국가에 봉사하는 '관직'의 의무에 합당하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이성의 '사적' 사용이라 일컫고, 반면 그런 관직의 의무에서 벗어나 단지 '식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것을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 일컫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성의 '사적' 사용은 도구적 이성을 가리킨다. 그런 경우 공동체의 구성원은 '단지 수동적 태도만 취하게 하는 기계적 장치'의 일부로 기능하며, 이성 사용의 보편타당성 여부를 따져서는 안 되고 국가의 명령과 관직의 의무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반면 이성의 '공적' 사용에서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전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_임마누엘 칸트 외, <계몽이란 무엇인가> , 해제, p254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발견> <부분과 전체>를 읽기 전 간략하게 훑어보기 좋은 두 권의 책 소개를 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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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15 17: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지만 어려울 것 같은 ㅠㅠ 울집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네요. 사줘야겠어요. ㅎㅎ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9-15 19:05   좋아요 3 | URL
아이가 과학을 좋아하나 봐요. 어려운 공식보다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전개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미니님 아이와 함께 좋은 시간 되세요!^^:)
 

물질로부터 정신으로의 길, 이것이 현재 자연과학이 추적하고 있는 길이다. 이것은 실로 먼 길이다. 언제쯤에나 완전히 통하게될지 모른다. 물질의 측면에서는 물리학과 화학이, 정신의 측면에서는 심리학이 그리고 그 가운데 생물학과 생리학이 각각의 길을 개척했다. 그러나 그 중간에는 아직도 미지의 광대한 황야가 있다. 우리들은 더 많은 실증적인 사실을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밑을 관통하는 법칙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은 객관적인 (따라서 또 상대적이고 개념적이지 않을 수 없는) 지식이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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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화적 해결책이 나온데에는 끊임없는 싸움에 지친 탓이 컸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양측 진영은 민중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지도부 엘리트들은 그들의 무절제한 폭발력을 두려워했다. 또한 아무리 신앙심이 깊다 하더라도, 장점이라고는 학살에 동원할 수 있는 머릿수가 많다는 것뿐인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재산과 부를 나누어줄 생각은 없었다. 결국 위그노와 가톨릭 양측의 과격함과 폭력은 왕권강화에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국왕만이 진영과 상관없이 모든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p99/906)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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