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 묘보설림 18
펑탕 지음, 문현선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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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에 인도네시아 화교 출신 아버지와 몽골족 어머니 사이에서 난 소설가, 시인, 부인과 의학박사이자 사모펀드 투자수석전무인 동시에 방송인, 서예가, 수필가까지 겸한다니 이게 사람이야, 귀신이야? 열아홉에 베이징연합의과대학에 입학해 8년만에 임상의학과 부인종양학 박사를 따고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에모리대학에서 MBA를 따고, 의사를 할까 경영을 할까, 고민 한 번 없이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맥켄지에 들어가 글로벌 매니징 파트너까지 승진했단다. 2014년에 중국으로 돌아와 1년간 자원voluntary의료를 떠났다가 다시 도미, 위에서 얘기한 사모펀트 투자수석전무를 하고 있다는데, 위키피디아 정보를 마지막 업데이트한 게 작년 크리스마스였으니 지금도 연봉 수백만 달러를 받는 전무님으로 있을 것 같다.


FengTang, 2022


  이 책 <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는 애초에 2005년(으로 짐작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 <주상>이라는 중편소설을 써서 인터넷 주관 문학작품 공모대전에 네 명 수상하는 3등 상을 받은 것을 2010년에 장편소설로 발전시킨 책이다. 원래 무대가 되는 80년대 후반 베이징에 개발을 위한 철거 붐이 있어서 제목을 “철거” 어쩌고저쩌고 라고 지을 예정이었지만 출판사 언니 오빠들이 너무 평범한 제목이라고 해서, 분명하게 얘기하지 않았으나 행간을 보면, 그 언니 오빠들이 지어준 제목인 듯하다.

  그런데 몰랐지? 중국에서는 먹혔을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선 일단 제목이 심히 구려 책방 독자서평 하나 없는 비인기 책으로 등극, 2024년 10월 말일에 출간된 책이 2026년 5월 9일 현재 세일즈포인트가 123점에 불과하다. 즉 돈 내고 책 사 읽은 독자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네이버 블로그를 검색해봐도 독후감은 두 편만 뜰 뿐이다.

  하지만 이 책, 괜찮다. 아, 미리 말할까? 나, 출판사 글항아리 사장하고 인맥, 지연, 학맥 기타 등등 관련 있는 거 하나 없고 하다못해 만원도 꿔준 거 없다. 그래도 이 책은 괜찮다. 물론 인생 살면서 리비도가 가장 왕성한 시절, 성호르몬 과다분비로 교실에서 책상 모서리에 슬쩍 닿기만 해도 불뚝 발기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의 일종의 성장소설이긴 하지만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색다르다.


  이 독후감을 읽는 여성분들은 사춘기를 지나는 남자 청소년들이 얼마나 성적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는 줄 모를 것 같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열세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를 시간적 공간으로 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는 불쾌감을 가질 수 있는데, 만일 그런 준비가 완비되신 분은 이 독후감과 책을 읽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 상 좋다. 실제로 지금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풋풋한 남자 중고딩, 특히 중딩들은 아주 미칠 지경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내가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 우라질 사춘기를 또 겪기 싫어서라는 건 몇 번 이야기한 것 같다.

  (한 단락 통째로 검열, 삭제 판정)

  남자들 인생 살면서 딱 그때는, 그때가 아니면 두 번 다시 발휘되지 않는 투시력이 생겨 지나가는 모든 가임 여성을 한 번 척 보기만 해도 그냥 알몸이 훤히 보인다(이순원 작 <19세> 독후감 참조). 정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어. 그것도 모르고 청소년 소설에 여자애와 남자애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대개 아련하고 풋풋하고 상큼하고 평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추억이니 뭐니 하는데, 천만의 말씀. 이런 의미에서 펑탕의 제목이 드러운 소설 <열여덟, 소녀를 내게 줘>는 청소년 남자애들의 실제 모습과 많이 흡사하다.


  화자 ‘나’이자 주인공 추수이. 베이징판 8학군 가운데서도 으뜸인 중학교에 다니다가, 시험을 봐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졸업을 바로 앞둔 시기까지.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그랬다. 제일 좋은 중학교가 경기중. 졸업하고 대부분 경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래도 남는 인원을 다른 중학교 출신들이 머리 터지게 공부해서 입학하는 거였는데 딱 그거 생각하시면 된다. 추수이하고 친한 친구들도 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성공한다. 걔네들 이름이 훗날의 성공한 영화감독 장궈둥, 크게 사업을 벌여 신흥 갑부의 반열에 올랐으나 자기 소유의 호텔에서 일찌감치 칼 맞아 세상 뜨는 류징웨이, 그냥 아버지 하던 사업을 물려받아 여유롭게, 그래도 부자로 사는 덜 중요한 조연 쌍바오장.

  여학생이 빠지면 섭섭하겠지? 추수이가 사는 동네에서 과거 100년간, 지역 10리 안팎을 통틀어 가장 예뻤던 엄마를 둔 주상. 5년 전에 상 받은 작품 <주상>의 주상이 바로 이 주상이다. 추수이가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 막 헛갈려하는 애. 근데 시절을 지낸 내가 보기에 그건 사랑이야. 이 주상을 연모하는 애가 또 있으니 원래 주상의 옆자리에 앉았던 쌍바오장과 장궈둥 추수이는 자기가 주상 옆에 앉고 싶어 쌍바오장에게 동서양의 포르노잡지 두 권을 주고 기어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쌍바오장은 그 잡지를 빌려주고 대여료를 챙기는 부업에 나섰다가 훗날 학교에서 크게 벌점을 먹고, 잡지의 원천지인 추수이 역시 빠른 전학을 전제로 제적을 면하는 벼락을 맞는다. 그리고 장궈둥. 얘는 추수이가 주상을 좋아하는지 뻔이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자기가 주상을 좋아하니 네가 걜 좋아하지 않으면 나하고 좀 엮어달라고 청탁한다. 그러니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추수이가 어찌 양보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 하지만 주상은 장궈둥을 그리 좋게 보지 않는다. 추수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의 낮은 건물에 엄마하고 사는데, 추수이는 바람에 휘날리는 흰 바탕에 분홍 꽃무늬가 프린트된 주상의 팬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해한다. 근데 그게 재미야? 아닐 걸? 그것도 일종의 애가 타는 그리움일 걸?

  외모로 보면 주상보다 더 예쁘고 쭉쭉빵빵한 취얼. 추수이도 취얼을 좋아하지만, 그건 주상이 추수이의 사랑의 신호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아서 생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취얼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노숙한 남자를 선호해서 중학교 다닐 때는 고딩 남학생과, 고등학교 다닐 때는 대학생과 사귀더니 훗날 무지하게 부자이며 늙어 꼬부라졌지만 뇌심혈관 계통에 문제가 있는 미국인과 결혼해, 계산대로 일찌감치 과부가 되어 큰 부자가 된다. 이후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의 왕자와 결혼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데 그건 당연히 이 작품이 끝나고 10년이 더 흘러야 한다. 일찌감치 몸과 마음의 사랑에 달통한지라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정기적으로 추수이의 방을 찾아와 몸의 갈증을 해소한다. 주상을 향한 추수이의 마음을 놀려 먹으면서. 그만큼 취얼도 추수이를 좋아한다는 의미겠지. 평생을 함께 할 마음은 눈꼽 만큼도 없지만.


  추수이가 중학교 다닐 무렵, 얘한테 최고의 인생 스승이 있었으니 쿵젠궈라는 이름의 늙은 건달. 말인 즉, 남자라면 일생에 오직 한 사람만이 온 힘을 사라지게 하는데 그이를 찾으려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고, 찾았으면 가서 해버려야 하는 거라고, 그게 패기이고 상남자라고 가르친다. 스승의 말씀을 결코 놓치지 않는 추수이는 결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상과 일생을 보내기로. 빵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우유부터 벌컥벌컥 들이켜는 거다. 늙은 건달 쿵젠궈야말로 추수이의 빠싹 말라붙은 삶의 한줄기 빛인 듯 섬겼단다.

  쿵젠궈는 정말 건달 짓을 하고 살다가 이제 나이 들어 백수 상태이고 단칸방에서 형과 형수, 이렇게 세 명이 살다가 형수가 못 살아, 못 살아, 하는 바람에 무허가로 방을 하나 덧대 주었더니, 이게 웬일? 동네 중딩들이 모여 밤이 깜깜해질 때까지 존경하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는 거 아닌가.

  이 아이들은 당연히 다른 학교 아이들과 패싸움을 벌인다. 서로 마주치면 무조건 쪽수 많은 쪽이 이기는 건데, 지는 편은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복수혈전을 준비한다. 고딩 시절의 추수이, 그가 보는 앞에서 자가용에서 내린 대학생 남자 둘이 주상을 차에 태워 놀러 가려 하고, 주상은 싫다고 할 때, 추수이는 사이다병을 자기 이마빡에 퍽 부딪혀 깨버리고, 다른 사이다병으로 대학생 한 몀의 머리통을 으깨버린다. 뭐 이런 식이다. 시절이 80년대 중후반이었을 테니 이 정도의 폭력 행사는 중국에서, 비록 마오쩌둥의 큼지막한 사진이 천안문 광장에 걸려 있더라도 그저 큰 일 없이 지나가버리던 무협시대. 그 시절을 견뎌낸 사춘기 남자 아이들의 좌충우돌.

  후진 제목 때문에 머뭇거릴 필요 없다.

  내가 읽기로는 세계사나 곰 출판사에서 찍었지만 지금은 절판된 이순원의 <19세>가 훨씬 재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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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의 개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2
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외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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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교유서가에서 펴낸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선” 세 권을 다 읽었다. 취향에 맞는 독자들은 열광할 수 있는 작가. 나처럼 취향은 아니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내기, 도박, 사기, 엽기 이야기들.

  이번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역자 가운데 한 명인 정영목이, 자신이 교수로 있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제자 박종윤, 손명희, 이혜정, 정해영, 최희영, 이렇게 다섯 명한테 작업을 시켰다는 점. 정영목 자신도 역자 제일 위에 이름을 박았으니 뭔가 작업을 하긴 했겠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것 가지고 시비냐고? 지금 시비하는 거 아니다. 오해 말라. 눈에 띈다고 했을 뿐.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 근데 스승과 제자 다섯 명의 문장이 구분이 가지 않는다. 거 참 잘 배웠네. 다만 좋은 스승한테 배웠으면 청출어람의 미덕을 보여야 하건만 마치 한 명의 글을 읽는 것 같아 좀 그랬다는 거다. 책 뒤에 습관적으로 싣는 “역자해설” 또는 “역자의 말” 같은 것을 달고, 그 속에서 어느 작품을 누가 번역했다는 표시를 왜 하지 않았을까? 아예 “역자해설” “역자의 말” 같은 건 있지도 않다. 이거 큰 건 아니지만 조그만 반칙 아냐? 네 명의 제자들도 섭섭하겠네. 기껏 작업해 놓았더니 내가 무슨 작품을 번역했는지 표시도 안 해주고. 당연히 받았겠지만, 번역비는 두둑하게 챙기셨지, 들?


  《클로드의 개》는 로알드 달의 전매특허인 크고 작은 내기, 도박, 사기는 별로 없고 대신 그로테스크한 엽기 소설이 많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을 보면, 크게 《클로드의 개》라는 타이틀 속에 다섯 편의 단편소설이 있고, 따로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제작이 1953년 발표작이니 당시 출판 관행으로 보면 《클로드의 개》 다섯 편의 단편으로 책 한 권을 찍었을리 없지만, 그래도 요즘 독자는 혹시 그러했고, 여기다가 일곱 편의 작품을 보태 우리나라에서 한 권으로 편집한 것인지, 아닌지 궁금하기도 하다. 뭐 중요한 건 아니다. 신경쓰지 마시라.


  《클로드의 개》는 주인공 가운데 좀 덜 주인공인 화자 고든과, 고든이 운영하는 중고차 판매점과 주유소에서 일하는 고용인이자 진짜 주인공인 클로드, 두 명이 자기들이 살고 이는 그레이트 미센든 주변에서 벌이는 일종의 도둑질, 사기도 있고, 동네 사람들이 저지르는 엽기도 있다. 끽 해야 달의 소설집 두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처음 읽은 달인 《맛》이,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워낙 감명깊어 달, 하면 기발한 내기와 도박 이야기이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었다.

  《클로드의 개》의 첫번째 작품 <세계 챔피언>은 도둑질. 달스럽다. 두번째 <피지 씨> 딱 이런 걸 기대했는데 사기fraud 그리고 사기 위에 또 사기. 역시 달스럽다. 그런데 세번째 <쥐잡이 사내>는 돈 걸고 내기해서 겁나게 큰 쥐를 깨물어 죽이는 사내. 이렇게 그로테스크 또는 엽기를 시작한다. <러민스>는 지미 씨가 동네에서 사람 좋기로 이름이 났지만 술꾼인 러민스 씨를 건초 작업 중에 살해해버리고 건초 속에 숨겼다가, 날이 흘러 건초를 해체하는 작업 중 지미의 아들 버트가 건초 절단용 전기톱으로 이미 죽은 러민스 씨를 토막내는 이야기 역시 엽기. 아, 장소는 영국이다. 전기톱 나왔다고 B급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상하지 마시라. 마지막 <호디 씨>는 주인공 클로드가 애인 클라리스 호디의 아버지 집에서 결혼 승낙을 받는 촌극. 클라리스한테 장가만 들면 손 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다가, 자기가 구상중인 혁신적인 아이템의 사업 이야기를 하는데, 그 빌어먹을 혁신 아이템이 낚시꾼들에게 미끼용 구더기를 길러 판매한다는 것.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나? 그저 뚜껑 절단한 드럼통 두 개와 썩은 고기 몇 덩이, 양머리 하나만 있으면 똥파리들이 알아서 알을 까고 토실토실한 구더기가 몽글몽글 기어다닐 거란다. 이건 코믹 그로테스크 맞지?


  그리고 《클로드의 개》 아래 붙인 일곱 단편도 거의 그로테스크 또는 엽기 작품이다.

  갖난 딸이 분유를 통 먹지 않아 배배 마르기 시작하자 양봉업자 아빠가 로열 젤리를 먹여 아이가 가슴에 솜털이 돋는 등 점점 꿀벌의 외양을 갖추기 시작한다는 것도 있고, 하여간 여러가진데, <윌리엄과 메리>가 제일 엽기였다.

  외모에 자신이 없는 옥스포드 교수 윌리엄은 두뇌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살다가 덜컥 암에 걸렸다. 길어야 몇 달 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데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친구인 랜디가 방문한다. 그리고 곧 고인이 될 환자를 살살 꼬드긴다.

  죽으면 뇌에 인공심장을 달아 피와 산소를 공급해 보관하자고. 그러면 길면 4백년 정도 아무 삶의 고통 없이 당신의 지적 사색이 가능하게 될 것이니 허락을 해달란다. 뇌에 유일하게 연결할 수 있는 감각기관은 시각. 즉 볼 수만 있고, 말, 청각, 촉각 즉 신체적 고통, 감각 즉 정신적 고통 없이 유일하게 뇌에 연결되어 있는 눈을 통해 몇 백 년 동안 책을 읽으며 지식을 확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그렇게 한다.

  윌리엄이 1950년대 보수적인 옥스포드 교수였던 만큼 아내 메리한테 완벽한 가부장적 독재를 펼쳤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기타 등등. 그래 자기 사후 처리에 관해 메리한테 서신을 통해 죽고 일곱째 날에 알게 해, 메리는 윌리엄이 지시한대로 의사 랜디에게 전화해 죽은 자기 남편 윌리엄의 뇌가 아크릴 세수대야에 담겨 동동 떠 있으며 눈알 하나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현장에 가서 직접 목격한다. 당신 같으면 어떻겠어? 징글징글하니 정이 똑 떨어지겠지?

  메리는 어땠을까? 안 알려드린다.

  읽기로 했던 달의 세 권을 다 읽었다. 앞으로 그의 책을 더 읽는 일이 생길까? 있을 수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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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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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솔뫼. 데뷔 17년. 짧은 장편 <을>로 제1회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타 등단. 우와, 벌써 마흔한 살. 세월 빠르다. 또래 우리나라 작가들 가운데 눈 여겨 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 <을>과 《사랑하는 개》를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박솔뫼니까 이 정도면 팬을 자처해도 좋겠지? 그런데 이 두 권의 책을 당신한테 추천하는 건 아니다. 독자마다 호오의 차이가 심할 것 같아서. 다행히 나는 딱 맞아, 특히 《사랑하는 개》가 내 취향이라 이이에게 좀 집중하게 됐다.


  《우리의 사람들》 표제작 <우리의 사람들>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두 번 읽었다. 이 작품에 집중해보자. 첫 대목에 나오는 문장.


  “사진작가가 주카이숲에 간다고 하여 모두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일정은 새벽 두시에서 오후 여섯시까지였고 전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에 밤을 새우고 출발할 수 있을까 그 상태로 여섯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그렇게 다들 갈까 말까 하다가 결국 그냥 안 가기로 하였고…” (p.9)


  주카이숲에 따라가기로 했다가 그냥 안 가기로 한 사람은 화자 ‘나’의 친구들.

  이어서 같은 문단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나’가 등장한다.


  “나는 나대로 혼자 방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숲에 가지 않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차를 마시다 커피를 마시다 쏟아지는 햇빛을 보다 그러나 친구들이 숲에 갔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p.9~10)


  이어서 ‘나’는 친구들이 들어갔다가 여차하면 길을 잃을 정도로 깊은 숲인 주카이숲을 간 친구들을 연상 또는 상상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싱글이지만 만일 ‘나’가 부산 중구에 산다면, 이라고 가정하고 그랬다면 결혼을 일찍 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애도 두 명”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한다.

  다음 문단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밤을 온양관광호텔에서 보내는 것이 좋았다.”로 시작한다. 부산은 박솔뫼의 여러 책에 등장하는 장소. 온양도 서울, 부산 다음으로 박솔뫼가 애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부산 골목골목 거의 다 아는 것이 부산의 매력에 단단히 빠진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다른 소설집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산과 부산 지리, 부산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사랑하는 개》에 실린 <여름의 끝으로>에서도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는데, 만일 사람이 동면冬眠한다면, 하는 가정. 《우리의 사람들》에서는 두 번 나온다. 인간의 저 먼 조상들이 동면을 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을 들었지만 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좀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추운 걸 견디기 힘들고 더운 여름을 좋아해서. 그럼에도 부산, 온양, 동면은 연이어 읽는 것이 이 책을 읽을 때 특별한 거치적거림을 주지는 않는다.


  화자 ‘나’가 친구들이 사진작가와 더불어 주카이숲으로 가는 상상을 하는 분량, 그러니까 ‘나’의 상상이 만만치 않다. H와 사진작가가 번갈아 운전하는 차를 타고 주카이숲을 향해 가다가 담배를 피우기 위하여 차를 멈추고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붉은 털을 가진 짐승을 발견한다. 늑대라는 말도 있고 들개, 여우가 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지만 절대로 곰은 아닐 거라는 데 모두 의견을 같이 한다.

  드디어 주카이숲에 도착해 깊은 숲 속으로 떠난다. 이때 친구 가운데 하나인 ‘하나’의 눈에 자꾸 붉은 털의 여우가 들어온다. 이게 정말 붉은 여우인지, 아니면 하나의 생각, 상상, 아니면 환각인지는 끝까지 모른다.


  그러니까 박솔뫼는 확실하게 정해진 것을, 그 반대로 되었다면이라는 가정 또는 상상을 해서 마치 그게 진실인 양 스토리를 만들었다.

  자신이 만일 부산에 살기로 결정하고, 정말 부산에 살았다면, 이라는 가정/상상도 재미있다.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를 아산에 있는 온양관광호텔에서 묵으며 아산시장에 들러 칼국수를 먹고(이 집 진짜로 유명한 집이다. 나는 안 가봤지만), 시장 안의 헌책방에 가서 책 구경한 다음에, 떡볶이, 튀김을 사 전철을 타고 서울로 오는 일정을, 매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더니 알고 보면 그것도 아니다. 올해에는 연극연출가 사쿠라이 다이조와 그의 극단인 “야전의 달” 멤버를 만나기 위해 일본 후지노에 갔다. 그래서 친구들이 주카이숲에 가는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것.

  이렇게 막 헝클어진 구성의 작품을 읽다가 만일 독자가 조금 다른 생각을 하면 그 순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척 헷갈리게 된다. 저절로 그렇게 된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시라. 이게 진짜 박솔뫼의 매력이다.


  일본 후지노에 가면서 ‘나’는 책 한 권을 가지고 간다. 로제 마르탱 뒤 가르가 쓴 <티보가의 사람들 1>. 이 작품의 1권을 우리는 흔히 <회색 노트>라고 하고, 이 1권만 번역해 단행본으로 나온 것도 상당히 많다. 뒤 가르의 모든 작품이 저작권 시효가 만료되어 번역물이 많다. 그러나 만일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으려면 1부만 읽고 치우지 말고 5권까지 다 독파하는 것이 훨씬 좋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 <우리의 사람들>에서 <티보가의 사람들 1>이 어떤 스토리와 연결이 되는지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냥 그 책을 가져가서 다 읽지 못했으며, 작중 주인공 자크의 형 앙투안느(전편을 읽으면 당연히 자크 못지 않은 주인공이다. <회색 노트>에 국한하면 “주인공의 형”이 맞다)이 티보의 친구 다니엘의 어머니 테레즈 혹은 퐁타넹 부인에게 호감을 갖는 장면을 특히 강조한다.

  <화색 노트>를 읽는 독자들은 흔히 자크의 청소년기/사춘기의 열정과 방황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여간 박솔뫼가 특이하기는 하다. 이 <티보가의 사람들 1>은 뒤에 붙은 다른 단편에서 <회색 노트>로 다시 등장한다.

  내가 <티보가의 사람들>을 좋아해서 길게 썼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에서 박솔뫼는 유난히 다른 작품과 책의 내용을 인용하여 그것과 연결되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탐색하고 자기 주장을 한다. 이건 내가 전에 읽은 책에 국한해 말해 《겨울의 눈빛》의 한 단편에서 고리 원자로 사건에 관한 부산주민들의 불안을 묘사하는 것을 연상하게 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확실히 이런 모습은 내가 좋아했던 박솔뫼의 다분히 포스트모던한 초기 작품과 다르다. 즉 박솔뫼의 작품이 변하고 있다는 뜻. 그런데, 그런 작품은 다른 작가도 쓸 수 있고, 쓰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이이의 <을>과 《사랑하는 개》, 특히 《사랑하는 개》 같은 작품을 좋아하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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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6-07-09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면서 이 소설집을 구매한 것 같아 찾아보았는데 구매했더군요. 표제작을 읽다 멈춘 것 같아요. 근데 또 박솔뫼의 소설집 <영릉에서>를 샀습니다. ㅠ.ㅠ

Falstaff 2026-07-09 15:16   좋아요 0 | URL
뭐 인생입죠. ㅋㅋㅋ
저는 다른 분께 박솔뫼 추천하지 않는답니다. 이이야말로 독자하고 뭔가 맞아야 읽지 안 그러면 참 곤란하겠더라고요.
 
일광유년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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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번째 옌롄커. 이제 물리기 시작한다.

  <일광유년>의 무대는 옌롄커의 작품 속에서만 등장하는 바러우 산맥의 깊숙한 산골마을. 때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옌선생의 소설 속 시간과 장소가 거의 대동소이하다. 심지어 등장인물, 이라기보다 무대가 되는 마을의 촌민들도 어째 비슷하다.

  <레닌의 키스>는 촌 구성원들 거의 대부분 장애인. <딩씨 마을의 꿈> 마을 사람들은 비위생적인 주사바늘을 사용해 매혈을 하는 바람에 거진 에이즈 환자, <해가 죽던 날>에서는 집단 몽유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일광유년>은? 주민들이 오랜 세월 물속 불소함량이 규정보다 17배 이상 높은 물을 마셔서 40세 생일 이전에 목구멍 막힘 현상이 발생해 조기 사망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아마도 근대 중국에서 한 번 있었던 일을 옌롄커가 바러우 산맥 속 가상 마을 산싱촌에 적용했던 거 같다.

  <레닌의 키스>, <직렬지>, <사서>는 1950년대의 극심한 한발로 고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일광유년>에서 산골마을 산싱촌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시작한 전대미문의 한발을 극복하는 일과 주민들의 수명을 마흔 이상, 쉰, 예순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게 만드는 과업이다.

  작품의 주인공들도 비슷하다. <물처럼 단단하게>의 가오아이쥔, <작렬지> 밍량, <사서>의 주인공 아이, <레닌의 키스>는 류잉췌. 이들 모두 출세 또는 아무리 보잘것없는 권력이라도 그것을 얻기 위한 일이라면 눈이 뒤집힌다. <일광유년>의 쓰마란(司馬藍)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쓰마샤오샤오(司馬小小)를 필두로 역대 산싱촌의 촌장들은 자신이 촌장이 되기 위하여 별의 별 쇼를 다 한다. 쓰마란은 이럴 적부터 사랑해마지않던 연인 란쓰스 대신 현직 촌장의 비쩍 마르고 못생긴 딸 두주추이와 혼인한다.

  그러니까 옌롄커의 바러우 산맥 속 작은 산골마을을 무대로 하는 작품의 특징이 <일광유년>에 다 들어 있다는 말인데, 옌렌커 소설 읽기에 열심이었던 독자는 바로 그것 때문에 <일광유년>이 중국 근현대사의 궁상스러움에 관한 한 종합선물세트 정도로 읽혔다는 말씀.

  또 있다. 옌롄커와 비슷한 연배의 중국 작가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작품들 거의 대부분, 예컨대 찬쉐 같은 골 아픈 포스트모더니스트와 츠쯔젠처럼 서정적 여성 작가들 말고는 어쩌면 그렇게 소재와 스토리와 등장인물이 비슷비슷한지, 내가 지금 옌롄커를 읽고 있는지, 류전윈인지, 또는 거페이나 위화, 쑤퉁인지 막 헷갈리는 거였다. 당연히 건국 이후 기근과 문화혁명을 소년기에 거친 영향 때문에 그렇겠지만 중국 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 인기있는 작품 좀 읽었다 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제 물린다. 그리하여 젊은 중국 작가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세계관과 시각을 갖고 작품을 쓰며, 옌롄커 시절의 작가들과 비교해 조금도 꿀리지 않는 필력을 보이고 있어 나름 부러웠다.

  <일광유년>은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1년, 1년이 뭐야, 한 2~3년 담고 있다가, 그래도 옌 선생인데 싶어 읽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옌롄커 소설의 종합선물세트인 줄은 몰랐고, 960쪽에 달하는 속칭 벽돌책이라 어느 날인지 모르게 보름에 한 번 희망도서가 쏟아져 틈새 독서로는 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이제 독후감 써 놓은 것도 많아 이 책을 비롯해 벽돌 또는 두 권짜리 장편도 읽어야겠다, 싶기도 했고. 문제는 술이다. 술을 덜 마시니까 시간이 남아 좀처럼 주체하지 못하고 책만 파게 된다. 아무래도 꾸준하게 알코올을 들이켜야 책 읽는 것도 적당하게 할 수 있을 거 같다.

  이거 뭐야, 아직 작품 이야기 시작도 안 했는데 서론이 이렇게 길었다고? 좋은 얘기 하나도 없으면서? 그럼 시작해보자.


  역시 바러우산맥 속 깊숙하게 자리한 인구 2백명가량의 작은 마을 산싱촌. 우리말로 하면 삼성촌(三姓村)이다. 란, 두, 쓰마(藍, 杜, 司馬) 이렇게 세 성씨로 구성된 씨족마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첫 촌장이 두과이즈. 이후 쓰마샤오샤오, 란바이수이로 이어진다. 즉, 두, 쓰마, 란 씨 집안에서 돌아가며 촌장을 맡았는데, 란바이수이 다음 촌장이 책의 주인공 쓰마란이다. 두씨 집안은 쓰마란의 윗대 두옌이 별 볼일 없지만 촌에서 기중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아 촌의 상급 단위인 현의 주방장으로 진출해 이른바 공직에 오른다. 일이 바쁘지 않으면 현과 산싱촌 사이의 통신원 역할도 하게 되어 촌 사람 입장에서는 촌장에 아주 조금 미치지 못하는 권세를 틀어쥐기 시작해, 그의 아들 두바이에게 통신원 자리를 물려주어 굳이 촌장 자리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을 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했듯이 상신촌의 가장 중요하고 절박한 이슈는 기근 탈출과 주민들을 마흔 살 너머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

  최초의 처방은 두과이즈 촌장 시절에 쓰마샤오샤오가 얻어온다. 지나가는 길에 명 짧은 산싱촌에 거쳐 간 꼬부랑 할아버지가 동네 아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 그렇게 늙게까지 산 사람이 없어 아이들은 옛이야기로만 듣던 흰 수염의 산신령을 닮은 쪼글쪼글한 노인을 처음 보는 거라 몽땅 몰려나가 구경을 하고, 한 아이 쓰마란이 동네로 뛰어가 아버지한테 이를 전했다. 쓰마샤오샤오가 곧바로 노인을 쫓아가서 묻기를, “노인장은 어떻게 이리 오래 사십니까?” 흰 수염의 노인이 답하기를 “잘은 모르지만 집안 대대로 유채꽃을 키워 유채 나물, 잎, 유채기름을 늘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 듯하오.”

  쓰마샤오샤오가 이 말을 촌장 두과이즈한테 전해, 유채꽃 심기를 권유했지만 두존장의 나이 벌써 서른여덟, 얼마 가지 않아 꼴딱, 죽어버린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도 촌장이 되고 싶은 마음에 두과이즈의 딸과 혼인한 쓰마샤오샤오는 촌장이 되자마자 유채 심기를 독려했다. 음식이 약이고 독이다. 유채 열매와 기름을 먹기만 하면 마흔을 넘어 쉰, 예순은 물론이고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치며 들판 가득 유채를 심게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거대하고 거대한 메뚜기 떼가 바러우 산맥 일대는 물론이고 산둥 일대를 휩쓸어버리는 바람에 주식인 옥수수는 물론이고 유채까지 몽땅 거덜이 났다.

  이때가 두옌의 말에 의하면 갑자년이라는데(p.762) 좀 이상하다. 20세기의 갑자년은 1924년하고 1984년이라 전혀 맞지 않는다. 아무래도 허구같다. 중국의 메뚜기 습격으로 시작한 기근이 펄 벅의 <대지> 1부에서 보듯이 1920년대에 확실히 있었지만 <일광유년>의 시대적 배경하고는 맞지 않는다.

  하여간 그리하여 유채로 만수무강은 다음으로 하고 당장 생존하는 것이 크고 큰 위협이라, 읽기 참혹한 장면이 마구 등장한다. 어린 아이 가운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내다 버리고, 이 아이들이 굶어 죽어 까마귀 밥이 되고, 어른들이 까마귀를 잡아 포식을 해 크게 배탈이 나서, 소금을 얻기 위하여 현의 화상병원으로 가 돈 많은 환자에게, 장가든 남자 어른의 허벅지 피부를 도려 파는 것 등등. 질린다.

  쓰마샤오샤오는 결국 기근을 극복하고 목구멍에 죽음의 그림자가 덥쳐 서른 후반의 나이로 죽는다.


  이어서 촌장이 된 란바이수이는 촌민들의 조기 사망 원인을 땅의 악한 기운으로 자란 곡식으로 보고 400무畝(약 400마지기, 약 8만평)의 계단식 전답을 개간하려 한다. 근데 기근에 살아남은 촌민이 다 합해 백명 조금 넘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쓰마란의 꾀를 빌어 현의 루주임에게 별의 별 아부와 성접대를 통해 현 주민들을 대거 투입해 2백무 정도의 계단식 전답을 만들기는 한다.

  그러나 개간한 땅에 심은 곡식을 먹어도 주민들은 여전히 마흔이 되기 전에 죽어버려, 란 촌장의 야심찬 프로젝트는 실패로 마감한다.


  마지막 촌장이 주인공 쓰마란.

  쓰마란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곡식이 아니면 물이다. 물을 갈아 마시면 마흔을 넘어 일흔, 여든까지 살 수 있는 게 확실하다. 이렇게 믿었다. 주민들도 어릴 때부터 싹수가 보이던 쓰마란 촌장이 하는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고,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럴듯하다.

  하지만 돈이 없다. 그래서 쓰마 촌장은 산싱촌 남자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남자들을 모아 허벅지 피부를 팔게 했더니 도시로 나가 피부를 팔고, 도시 구경을 한 남자들은 촌의 수로 공사를 위해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 식구들을 위해 촌장의 요구를 무시하고 방 셋짜리 기와집을 올려버린다.

  이에 낙담해 세월을 죽이다가, 서른아홉 살이 되어 곧 죽을 처지에 달했을 때, 다시 주민들을 소집해 인정사정없이 수로 공사를 재개한다. 이번에도 돈이 없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첫사랑 란쓰스에게 땅에 고개를 박으며 부탁한다. 도시에 가서 인육장사를 해달라고. 인육장사? 매춘을 말한다. 이 장면도 옌롄커 세대의 인기있는 작가들이 많이 사용해 질리는 건 마찬가지. 하여간 쓰스는 도시로 진출, 터미널 근처에 방을 얻어 맹렬하게 몸을 팔고, 에초 자기와 약혼했던 촌장에게 돈을 보내 소규모 운하에 필요한 각종 기구와 폭탄 같은 것을 살 수 있게 한다.

  가진 고생과 역경과 주민의 희생을 무릅쓰고 촌장 쓰마란의 나이 서른아홉살도 막바지에 이른 날, 드디어 수로 공사를 완공, 링인천의 물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지만, 어떻게 됐을까? 안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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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불운 - 2024 공쿠르 단편소설상 수상작
베로니크 오발데 지음, 이세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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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로 보면 파리 중심가에서 오른쪽 마른 주의 르페뢰쉬르마른에서 1972년에 태어난 편집자 겸 소설가. 2000년에 데뷔했다니 연륜이 짧지 않다. 문학상도 숱하게 받았고 특히 《한낮의 불운》으로 2024년 공쿠르 단편소설상을 받아 상금 10유로를 챙겼다.

  단편소설 여덟 개를 실은 책. 다 재미있게 읽었다. 공쿠르-단편소설상을 받을 만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정치하고 치밀한 문장이나 특정한 주제를 던지는 무게감 있는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주로 비극인데 그리 큰 비극도 아니고, 비극마저 경쾌하다.


  예를 들어 제일 앞에 실린 <오귀스트 바라카가 겪은 낭패들>을 보자. 원래 이름은 오귀스트 팔랑캥. 오귀스트의 아버지는 장거리 항해하는 선장, 스스로 자기를 선장이라고 말하는 대신 장기 노선 파일럿이라 한 걸로 봐서, 그리고 오귀스트야말로 훗날 장거리 노선의 선장이 되었으면 좋다고 한 걸로 봐서, 선장은 아니고 그나마 중요한 뱃사람 가운데 한 명이었던 듯하다. 아버지는 한 번 항해를 나갔다하면 몇 달씩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느라 집을 비웠고, 이런 남편을 견디고 사는 여자도 그리 많지 않은 법이라서, 오귀스트의 어머니는 아프리카에서 바다에 접하지 않은 나라 잠비아로 날라버렸다. 그러면서 오귀스트를 데려갔느냐? 아니다. 그래 오귀스트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세계만방의 많은 도시에 있는 숱한 학교를 1년 이상 머문 적 없이 하여간 뭉개고 다녔다. 그래서 사회성이라고는 1도 없는 우울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고착되어 오직 하나 큰 관심을 둔 건, 사물의 소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늘 작은 녹음기와 마이크를 들고 별의 별 것을 다 녹음하며 즐거움을 찾았던 것.

  장소가 어디인지는 밝히지 않았는데 오귀스트의 열여덟 번째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가 정말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았다. 단편소설이라 그게 어떤 식인지는 말해드리지 않는다. 하여간 그랬고, 성인이 되는 열여덟 번째 생일날 아버지를 장사 지냈으며, 이제, 여태 잠비아에서 산파학을 가르치는 어머니는 아들 오귀스트가 열여덟 살, 성인이 된 만큼, 다시는 잠비아에 와서 함께 살자는 말을 농담으로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돈을 좀 보내주긴 했다. 조금이 아니라 적지 않은 현금을.

  아버지가 가히 우화 비슷한 죽음을 맞이한 다음에 음향기사 국가고시를 쳤다. 근데 떨어졌다. 우연히 오귀스트 팔랑캥이라는 동명이인이 있어 사실은 우리의 주인공이 합격했건만 합격처리가 이름 같은 작자한테 넘어가 이를 올바르게 돌려놓는 데만 반년이 걸렸다는 거 아닌가. 하여간 그렇게 기사 자격증을 땄다. 이때 우울증 비슷한 것이 도져 마음의 평정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가 현지 등산객들과 술집에서 한 잔 하다, 불운의 여신은 결코 오귀스트를 배신하지 않아서, 잔뜩 술이 취해 오줌을 누기 위해 밖에 나가 묘지의 비석에다 몸을 기댄 순간, 묘석이 넘어지면서 오귀스트의 발가락을 짜부라뜨려 이 가운데 두 개를 절단해야 했다. 하여간 가지가지로 잘 안 되는 인간이다.

  아버지 역시 주식과 채권을 약간 남겨주었다. 근데 아버지가 게을러 팔지 않았던 것이 연일 상한가를 기록해 지금은 결코 작지 않은 돈으로 바뀌어 있었고, 이 돈과 어머니가 보내준 아프리카 돈을 합해 자신의 음향 스튜디오를 하나 꾸미려 마음먹었다. 이때 만난 사람이 부동산업체에서 가장 양심적인 중개인인 에바 코파. 딸과 살고 있는 돌아온 싱글이며 오귀스트보다 한 예닐곱 살 정도 많다. 에바가 오귀스트의 마음에 딱 맞아 떨어지는 파리 시내의 한 섬 같은, 그럴 정도로 조용한 사무실을 소개했다. 에바는 별로 돈이 많지 않다. 딸도 키워야 한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실적 부족으로 늘 쫑코를 먹기도 한다. 그러나 오귀스트를 탁 보니까 에바 눈에 짠하게 보인다. 오귀스트가 오히려 이렇게 좋은 집을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다니 이렇게 운이 좋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왜 에바 코파가 계약서 내밀기를 머뭇거릴까, 좀 의아할 정도.

  에바가 마침내 표준 계약서를 내밀고 내일 만나서 최종적으로 사인을 하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오귀스트는 결국 계약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자마자, 자기가 집을 본 날이 하필이면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한 날이었음을, 원래대로라면 2분에 한 번씩 지하철이 지나가며 지축을 흔드는 진동과 소음에 진저리를 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세상이 늘 그런 거라고 여기지 말자.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에바와 오귀스트도 장차 이 일을 그런 식으로 얘기할 것이다. 몇 년 후에, 둘이서 손을 꼭 잡고, 꽃가지 무늬가 있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웬일로 단편소설의 결말을 다 알려주느냐고? 이유가 있지. 다음 순서의 단편 <당신은 성공으로 빛나고 있네요>의 주인공이 이번에 에바 코파다. 운전면허 없이 사는 파리 여성. 그래 지하철 파업의 와중에, 지하철 파업인 줄 알았더니 이게 총파업이라서 버스 운전수들도 파업을 하는 바람에 극히 적은 인력의 대체근무자들이 평소에 비하면 아주, 아주 드문 운행 간격으로 운행하는 만원,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 타고 집에 가는 에바 코파. 아직 앞에 실린 단편의 결말부처럼 꽃가지 무늬의 거실 소파에 앉아 오귀스트와 손을 잡고 무드까지 잡을 시절은 아니라서, 버스가 급정거할 때마다 다른 승객의 가슴팍에 코를 문대야 한다.

  어릴 적에는 포뮬러 원 경기장에서 깃발을 흔드는 레이싱 걸이나 풍선에 바람을 넣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결국 결코 무대에 올리지 못할 희곡을 쓰는 덜 떨어진 극작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딸을 낳고, 그와 헤어진 다음에 한 푼도 딸의 양육비도 못 받아 부동산 중개일을 해야 하는 처지. 원래는 술을 마시지 않던 에바는 남자를 따라 저녁마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좀 지나서는 낮에도 한 잔씩 했으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는 오전에도 마셨다. 신의 가호가 있어 남자와 헤어진 다음에 에바는 그 순간부터 술을 딱, 끊었다. 장하다, 에바.

  이렇게 시작해, 더 어린 과거에 고사리를 연구하던 아버지 이야기 등등 시시콜콜한 것이 나오다가 드디어 딸 이야기가 나온다. 그럼 척, 알겠지? 다음 순서에 실릴 작품의 주인공이 에바의 딸이 되리라는 것을? 그건 그거고, 하여튼 딸이 공부는 애저녁에 글러먹었다는 것을 이미 유치원 다니던 시절부터 알아챘다. 그래도 다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딸이 중학교 다닐 때, 갑자기 딸 스스로 자기가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고, 만들기만 하면 온갖 잡다하기만 했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을 섞어 만든 것이 제법 맛있다는 걸 알고,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요리 특성화 학교, 그것도 파리에서 제일 좋으니까 세계에서도 굴지의 요리학교라고 알려진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딸의 이름은 마르그리트. 근데 중학교 다닐 때 자기는 마르그리트가 싫다고 ‘보브’라는 남자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에바는 싫은데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싫지 않거나 관심 없는 눈치다. 하다못해 아이의 빌어먹을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마르그리트건 보브건 간에 딸이 실습실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던 중에 상급 남학생이 성추행 같은 쪽이 아니라, 도무지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아는 버릇을 고친다는 핑계로 동선, 즉 보브의 길을 막기도 하고 뭐 그랬는데, 이 보브가 참다 못해 귀싸대기를 날려, 그만 학교에서 잘려 버렸다.

  허, 참. 오귀스트도 그렇고 에바도 그렇고 어떻게 엎어져도 코가 깨지는 대신 뇌진탕이냐는 말이지.

  이렇게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전부 조금씩 연결되어 있는 재미있는 책. 크게 바라지 않을수록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며 주목할 것은 이야기 속 삶의 우중충함이 신록의 잎사귀에 떨어지는 봄 햇살처럼 파박거린다는 점. 다 제쳐두고 그것에만 관심을 두고 읽어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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