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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ㅣ 창비시선 505
권선희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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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강원도 도청소재지 춘천에서 태어나 자라 고등학교까지 거기서 졸업했다. 고2 때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열린 율곡백일장에 시를 쓰는 친구 보조로 따라갔다가 엉겁결에 참가했는데 덜컥 상을 타는 바람에 시 쓰기에 관심을 가졌지만, 책도 별로 읽지 않고 그냥 노는 게 즐거워 팔호광장 부근을 주름잡고 좀 놀았던 듯. 대학입시에서 당연히 전기, 후기 다 떨어지고, 백일장 등등에 상탄 내력을 감안해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으니 1983년 봄. 그러니까 소위 “빠른” 65년생이다. 애초에 공부하고는 담을 쌓던 시인. 권선희가 소싯적에 어떻게 놀았고, 시방은 어떠냐 하면:
청춘 수장고
한 사십년 전쯤으로 세월 되감아
운교동 팔호광장 모퉁이 민속 주점 커튼 틀추면
생애 첫 막걸리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던
단발머리 가시내들
따라만 간 놈은 근신
술잔 받고 안 마신 놈은 유기정학
몇잔 마신 것이 겁나서 도망쳤다 잡힌 놈은
그만 무기정학
근신 받은 놈은 줄창 반성문 쓰다 시인이 되고
유기정학 받은 놈은 용케도 선생이 되고
무기정학 받은 놈은
제법 큰 장례업체 대표 부인이 되어
그날 팔호광장 기념 계 모임 회장까지 등극했는데
새끼가 새끼를 치는 나이에도
3차는 언제나 금기 만발했던 시절로 돌아가
운교동 팔호광장 초겨울 주점 앞 설까진 가시내들
짝다리 신나게 흔들고 있다 (전문. P.78~79)
흠. 그렇군. 권선희가 고등학교 다닐 때 팔호광장 막걸리 집에서 술잔 받기도 전에 선생한테 덜컥 들켜버린 가시내군. 이것들이 아직도 춘천, 아마도 친정 나들이 겸해 만나 2차도 아니고 3차까지 가는데 꼭 막판엔 근신, 정학 기념비가 흑석에 박인 팔호광장 쪽으로 가는군. 말이 광장이지 그게 광장이긴 하니? 좁아 터진 촌구석에서.
어떠셔? 어릴 때부터 좀 삐딱했겠지? 서울예대에 들어가서도, 아마 서울예전에서 서울예대로 바뀌고 한 2, 3년 됐을 때였을 텐데, 시를 가르치는 선생이 자기 시하고 비슷하게 쓰는 아이들한테만 잘 썼다고 했던 모양이지? 그래서 권선희가 이랬단다.
“교수님은 왜 교수님의 시와 비슷하게 쓴 친구들의 시만 잘 썼다고 하시는 겁니까? 잘 썼다고 하는 시들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결과, 시 가르치는 시 수업에서 쫓겨났단다. 원래 문학 하면서 가르치는 선생들이 거의 다 비슷하게 밴댕이 소갈딱지인 걸 어린 권선희는 몰랐겠지. 수업에서 쫓겨난 건 세계일보 인터뷰 기사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다. 시 선생들 밴댕이 소갈딱지 이야기는 내가 지금 하는 거고. 근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이 권선희의 시집 가운데 처음 읽었고, 이전까지 권선희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을 읽어보면 권선희처럼 시를 쓰면, 모르긴 몰라도 신춘문예 같은 거는 사주팔자에 나오지 않는 게 (거의)확실하다. 내 마누라 돈 떼먹고 도망간 춘천 여자 한선희는 마흔이 넘어 결혼했지만, 또다른 춘천여자 권선희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백령도 해병대에 근무하는 장교님한테 시집을 가 아들 낳고 살다가 남편 따라 포항도 갔나 보다. 이때 포항제철이 주최하는 ‘샘물 백일장’에 남편의 권유로 아들하고 나가서 덜컥 장원을 했고, 그래서 잡지 『포항문학』을 발간하는 동인모임에 참여를 했으며, 이 잡지 『포항문학』에 작품을 실은 것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신춘문예나 문학지 추천 아니면 어떠랴, 시만 좋으면 되지. 심통맞게 까탈 부리지 말자.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직업군인 남편이 제대를 하고 군무원으로 있을 때, 권선희는 본격적으로 시를 써볼 요량으로 구룡포를 택했다. 한 3년 정도면 시집 한 권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세상에 여편 이기는 남편 있어? 그래서 구룡포로 기어들어 갔고, 정말로 구룡포 타령만 세 번 했으니, 첫째가 《구룡포로 간다》이고, 둘째가 《꽃마차는 울며 간다》이며, 셋째가 바로 이것이니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춘천여자가 2000년에 구룡포에 들어가 2024년에 셋째 시집을 낳았다. 사는 게 그렇지 뭐.
권선희의 시는 그냥 읽으면 된다. 읽기를 마치는 순간 독자는 시를 다(는 아니겠지만)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시집에 1번으로 나오는 시를 읽어보자. 정말인지 아닌지.
징
굿당 차리고 을매 되지 않을 때였지. 한 날은 경주 안강 사는 노인네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고 내를 부르데. 고추가 빨갛게 야물 때니 가을이었어. 가보이 마 그런 오두막이 조선 천지 또 있겠나. 엉기성기 수숫대에 흙 반죽한 벽은 기울고 변소도 옳게 읎는 외딴집에서 할미 하나가 구르듯이 기듯이 나와 이 굿쟁이를 맞데. 헛간보다 못한 방 윗목에 앉은 영감 반질반질한 골분 단지가 젤로 값나가는 살림 같더라. 방바닥을 베어 물 듯 엎드려 빌고 비는 당달봉사 앞에서 징은 쳤다만, 사실 아무것도 안 보였어. 정처 없는 귀신들 다 불러제끼며 이 불쌍한 인생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죄 없는 눈은 왜 가렸냐고, 목이 쉬도록 따지고 대들어도 답을 안 주시더라 못 주시더라. 무당보다 더한 팔자가 가엾어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 (전문. P.10)
그려, 사는 게 고단해 당달봉사 무당도 되고, 굿판에 앉아 징도 치고, 그 얘기를 듣고 시도 쓰고 그러는 거다. 세상에 어렵지 않은 사람 살이가 어디 있간? 다 그런 거지. 이렇게 권선희는 구룡포로 내려가 과매기나 씹는 대신 거기서 사는 어부, 상인, 해녀, 택시운전수, 무당 등등 주민의 신산한 삶을 그렸다가, 2019년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덜커덕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이때 병실에선 유방암, 위암, 대장암, 침샘암 이렇게 네 명의 암환자가 입원해 있었고,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때마침 펜데믹 시절이어 환자들끼리 더 친밀할 수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역시 암은 암이라서 모두 다 완쾌, 즉 5년 생존하지는 못하고 기어이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었을 터. 시절은 하필이면 세밑이라.
크리스마스이브들
코로나로 면회조차 금지된 크리스마스이브
물 좋기로 소문난 청담동 여성 전용 암 전문 요양병원 13층 복도 끝 방
위암 말기 황.선.희는 밥 못 먹은 지 한달째 모가지만 길어지고
유방암 2기에 림프 전이가 있는 권.선.희는 방사선 치료에 곤죽이 되어 누웠다
똥줄이 불편한 대장암 박.영.이는 비스듬히 걸터앉아 신랑 생일 선물로 스웨터를 짜고
혀 밑 움푹 도려낸 침샘암 이.경.자는 닭발 국물을 데워 마신다
택배 상자 가득 단팥빵이 왔고 옥수수차가 끓는다
박영이가 황선희의 등을 쓸어내린다, 말없이
이경자가 황선희의 부은 발을 주무른다, 말없이
권선희가 커튼을 걷었다
창 너머는 하필 눈발 치는 크리스마스이브
로터리 대형 트리 축복이 온 누리 다 퍼져도 닿지 않는
끝 방, 민머리 이브들 언니와 언니와 언니가 되어
서로의 눈길을 쓸고 있다 (전문. p.46~47)
그리스마스이브의 복수형을 써서 ‘크리스마스이브들’이 제목이면, 크리스마스를 맞은 암 요양병원에 입원한 여성들을 일컫겠지. 앞에서 말한 네 명의 암환자가 실명 혹은 가명으로 등장한다. 서울에서도 제일 물 좋다는 청담동. 창을 넘으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창문 안쪽은 암, 암, 암, 암환자. 위암 황선희가 명을 잇지 못한 거 같다. 이때 오롯한 고독을 나눠진 네 명의 이브 가운데 한 명인 권선희는 한 명의 상실이 PTSD로 작용, 퇴원한 후에도 쌍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세상이 더러워서. 이 고질은 종합병원 정신건강과의 집중 치료를 받고 나서야 사라졌다고.
이렇게 권선희의 시는 삶이다. 시인의 스코프 안에 들어온 사람, 시절, 환경, 과거지사 이야기. 나는 그래도 이런 촌스러운 시가 암호로 가득한 소위 현대시보다 더 좋다. 근데 시집 한 권을(꼴랑 한 권임에도) 내리 읽으니까 금방 지겨워진다. 좁은 지역의 비슷한 스토리가 계속되는 바람에. 그러면 구룡포 시리즈는 이제 더 이상 없는 거지? 그래야겠지? 설마 구룡포만 파먹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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