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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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라스의 1955년 출간 작품. 책 뒤에 실린 뒤라스의 연표 상 1958년에 출판하는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바로 앞 작품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마르그리트 튀라스는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기점으로 작품이 많이 바뀌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바로 직전 발표작인 <동네 공원>도 읽기에 그리 쉽지 않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면, 역자 김정아는 연세대 영문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까지 하고, 비교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이후 전문 역자로 활약하고 있는 듯하다. 제인 오스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에밀리 브론테, D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등 주로 영어 작가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런데 올해 4월, 발터 벤야민의 독일어 작품과 더불어 뒤라스가 프랑스 말로 쓴 <동네 공원>도 출간했다. 그러면 김정아가 영어, 불어, 독어, 그리고 우리말, 이렇게 네 개 언어를 상호 번역할 정도로 언어의 천재가 있을까, 아니면 불어(또는 독어)-영어-우리말 중역일까? 이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서울대 노문과와 미국에서 러시아어 박사를 하고 우리나라에서 특히 도스토옙스키 번역에 이름을 낸 김정아도 있다. 이 김정아와 그 김정아는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까탈을 잡는 건, 번역에 약간의 불만이 있어서 그렇다.

  작품의 98퍼센트는 공원에서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은 여자와 남자의 대화로 되어 있다. 여자는 보름 전에 스무 살이 된 젊은이이고 남자는 마흔, 적어도 삼십대 후반인데, 두 등장인물의 대화가 서로 존칭을 쓴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서로를 “그쪽 분”이라 호칭한다. 우리말의 경우 서로 존칭을 쓰더라도 나이 차이에 따라 적절하게 어울리는 존칭이 조금 다르다. 세계 다른 어느 나라와도 구별이 가능한 섬세한 디테일이 있을 것이지만, 김정아의 번역문에서는 이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여자가 하는 말인지, 남자가 하는 말인지 구별이 힘들 때가 잦다. 물론 외국어를 직역하면 이런 현상이 벌어질 수 있겠다. 그들의 존칭은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투박하니까. 대신 우리말에 투박한 것이 그쪽에서는 섬세할 수 있으니 이런 것을 적절하게/매끈하게 보완해주는 것도 역자의 역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아직 뒤라스를 읽는 내공이 부족해서 초중기작품임에도 읽기가 그리 수월하지 않아 괜히 까탈을 잡고 있는 지도 모르니 역자나 역자 주위에 계신 분이 이 어쭙잖은 독후감을 읽더라도 그냥 웃고 지나가면 좋겠다.


  1955년 작품이지만 책을 열면 1989년 겨울에 뒤라스가 쓴 서문이 제일 앞에 실려 있다.

  파리역. 하차한 가정부들. 수천명의 브르타뉴 여자들과 행상이 역을 가득 메운다. 이들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살아가는 것이란다. 굶어 죽지 않는 것. 지붕이 있는 잠자리를 마련하는 것이고, 이들도 가끔 무작정,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말을 나누기도 한단다.

  뒤라스는 1989년 겨울, 세상을 뜨기 6년 반 전에 이렇게 서문을 달았다. 나는 1989년에도 숱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로망의 도시 프랑스 파리가 이런 세월을 겪었다는 말인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1955년 이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1955년 이전의 파리. 역에서 내린 브르타뉴 출신 스무 살 여자는 남의 집 하녀로 들어갔고, 늙어 자기 힘으로 일어나지 못해 침대에서 지내며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건만 성질은 더러운 노파의 시중도 들고, 집안의 잡일도 하고, 무엇보다 오후에 아이 도시락을 싸서 함께 공원에 가서 누가 아이한테 해코지하지 않는 지 감시도 해야 한다. 목요일, 이날도 여자는 아이가 먹을 샌드위치를 싸서 공원에 나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뒤라스의 말대로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무작정 말을 나누기도 하는데, 마흔 또는 마흔에 육박한 삼십대 후반의 미혼 남자이자 좋은 말로 세일즈맨, 낮춤말로 행상을 해 먹고 사는 뜨내기였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3.8 따라지들끼리 만나 뜻이 통해 말까지 통하는 순간이다.

  네 시 반. 아이 간식시간이다. 잼 바른 빵 두 조각을 자크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아이는 빵을 대충 먹어 치우고 다시 모래밭으로 뛰어가 놀기 시작한다. 같은 벤치에 앉은 남자가 여자의 아이는 아니지요, 묻는다.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자기 애로 보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대답한다.

  남자는 아이가 없다. 가질 수도 있었지만 이대로 만족한단다.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하니까. 쉴 때를 빼고 늘 여행중이란다. 심지어 국경을 넘어까지 기차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온다. 행상이다. 품목도 매번 바뀐다. 물건을 떼다 노천시장을 떠돌며 좌판을 펴 놓고 판다. 중간 크기의 짐가방에 다 들어갈 정도만 취급하니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가끔은 조금 빠듯하지만 불평할 정도는 아닌 수입이라고 생각한다.

  여자가 묻는다. 쭉 그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살 생각인지, 아니면 언젠가 그만 두게 될 거라 생각하는지. 남자는 모르겠다고 대답하는데 진심이다. 언젠가는 멈추고 싶을 수밖에 없겠지만 이 직업을 왜 버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게 됐을 뿐인 것을. 남들과 다름없이 별 수 없이 이 직업을 선택하고 굳이 다른 직업으로 바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싫증 났다고까지 말하면 지나치겠지만 (직업을 바꿀)의욕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자기 생각으로는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란다. 사람들 가운데 변하는 거 없이 사는 데 적응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그런 거 같다고.

  여자는 다르다. 계속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생활은 당연하게도 조만간 끝나야 한다. 여자 팔자 뒤웅박이다. 결혼을 기다리고 있다. 남들도 다 하는 결혼을 나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결혼하면 이런 하녀 처지와는 영영 이별이다. 여자는 앞에서도, 뒤에서도 스무 살이다. 91쪽에 스물한 살이라고 주장하는 걸 빼면. 젊고 건강한 여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대부분의 남자가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의 여자 가운데 한 명이다. 즉 이 여자가 마음먹고 유혹하면 많은 남자가 당장은 아니더라도 넘어간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의 유전자 속에는 가장 조건이 좋은 남자를 선택하는 인자가 들어 있다. 그런 남자를 고르기 위하여 일요일마다 열리는 공원의 야외 댄스 파티에 참석하고 있다.


  이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남자는 직업이 너무나 보잘것없고, 하찮고, 제대로 된 직업도 아니어서 일인분, 반인분도 못하는 걸 알다 보니 삶이 그런 식으로 단번에 개선되리라는 건 한 순간도 상상이 안 된다. 시간이 없다는 건 앞 일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일 뿐, 다른 것을 생각할 시간은 있다. 직업을 바꿀 기회가 생긴다면 즉시 그 기회를 잡겠지만 적극적으로 전직을 도모할 생각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늘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보따리 행상이 좋기도 하다. 여행과 행상 일을 통해 예전에 비해 사리에 좀 더 밝아진 느낌도 든다.

  여자는 이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벗어날 생각을 항상, 계속해서, 전심전력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번 맞는 말이다. 언젠가는 누군가 나를 위해 울어줄 것이다. 늘 혼자라서 외롭지만 이런 (하녀)직업을 가지면 적어도 굶을 일 없고, 굶기는커녕 좋은 먹거리를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통통하고 튼튼해지면 좋겠다. 더 괜찮은 여자로 보일 테니까. 더 나은 조건의 남자가 접근해올 확률이 높으니까.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아 맹목적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3.8 따라지들.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어느 새 땅거미가 지고 여자가 돌보는 아이 자크도 놀다 지쳐 돌아와 어서 집에 가자고 조른다. 이제 여자와 남자는 헤어져야 마땅하다. 근데 은근히 그 새 정이 든 거 같다.

  일요일 댄스 파티에 오실 수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갈 수 있으면 갈게요.

  여자도 알고 남자도 안다. 오지 않을 것임을. 그러나 혹시 모른다. 벌써 아이와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많이 지났다. 둘은 길을 나누어 떠난다. 여자가 걷다가 뒤를 돌아본다. 남자는 그냥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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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6-09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 별. 반 별도 있었으면 좋겠다.
 
방앗간 공격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3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빛소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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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라의 단편소설 다섯 편을 실은 작품집.

  아무래도 졸라,하면 루공-마카르 총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쓴 작품을 저울질하는 기준도 당연히 총서라는, 보통 작가들은 이 가운데 절반도 쓰기 힘들 높은 잣대를 들이댈 것인데, 《방앗간 공격》 같은 작품집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서 독자는 총서를 읽을 때와 비슷한 드라마틱과 삶의 난장판을 기대하게 된다. 단편을 쓰던 188X년 시절의 졸라는 단편소설 속에서도 장편과 거의 유사한 스토리 라인을 유지하고 있어서 이런 기대감은 나름대로 이해할 만하다 하겠다. 이 책 속 개별적 작품들마다 독특한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이야기 상호간의 연관성을 촘촘하게 엮어, 졸라 특유의 질주, 미친 질주를 첨가한다면 충분히 그럴듯한 장편소설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이야기들이 그리 참신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어서 이 책에 실린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했어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은 의심스럽지만.

  하긴 지금 188X년의 작품을 202X년에 읽고 내용의 참신함과 스타일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서 공평하지 않기는 하다.

  그렇다고 지금 나는 이 책의 단편소설들을 폄하하려 하지 않는다. 충분히 졸라스러워서 인간의 속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아쉽게도 작품을 쓴 작가가 에밀 졸라라서 독자는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보통 이상의 기대치를 갖고 첫 페이지를 넘기게 될 뿐.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고 읽기 시작해도 역시 졸라를 읽는다는 셈법이 애초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별 넷이 좀 과하다. 셋 반이면 적당할 텐데, 졸라의 이름값으로 반 더 쳐줬다. 내 맘이잖여? 그잖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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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노라마섬 기담 / 인간 의자 대산세계문학총서 15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단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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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대산세계문학총서 151번에 빛나는 중단편집. 정말 빛나냐고? 흠. 캐묻지 마시라. 엔간한 대산총서는 얼추 다 읽었는데 2018년에 찍은 책을 이제 읽었을 때는 뭔가 있는 거다.

  에도가와 란포는 순서대로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 갑오경장이 있었던 1894년에 일본왕국 미에현 나가군에서 군청 서기 해 잡숫던 히라이 시게오의 장남으로 태어나 히라이다로(平井太郞)이란 이름을 갖는다. 훗날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에도가와 란포로 바꾼다. 이이의 롤 모델이 ‘에드가 앨런 포’여서 일본 사람들은 ‘드’ 발음을 하기 힘들어 ‘에도가’로 하고 앨런을 ‘와란’인데 ‘와’와 ‘란’을 한 칸 떼고 ‘포’를 가져다 붙였다. 그리하여 에도가와 란포.

  이름 얘기가 나오면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포 선생을 어떻게 추리소설 작가로 보느냐, 당연히 고딕 작가로 봐야 하는 거 아니냐, 하고 시비할 수 있다. 맞다. 이후에 이이의 책을 또 읽을 거 같지 않아서 시간을 써 검색해본 건 아니고 책 뒤의 붙은 연보로 추측을 해보면 에도가와 란포도 시작은 그로테스크한 고딕으로 했고, 이 책에 실린 두 편도 마찬가지로 그로테스크한 엽기, 잔혹한 고딕 소설로 이이의 초기작으로 구분할 수 있는 1926년과 25년 작품인데, 193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 <괴도 20면상>, <소년 탐정단>, <요괴박사>로 대중문학 쪽에서 도쿄의 종이값을 지붕 위까지 올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에도가와 란포 하면 추리, 탐정 소설의 권위, 뭐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겠느냐, 라고 추측한다. 다시 말씀드립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연보 내용을 읽고 아는 거 하나도 없으면서 추측하는 거니까 다른 곳에 옮기지 마시라. 여차하면 개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중편소설 <파노라마섬 기담> 한 편만 싣기가 아무래도 분량에 문제가 있어 보여 단편 <인간 의자>를 서비스 차원에서 붙인 거 같다. 그래 당연히 독후감 역시 <파노라마섬 기담>을 이야기해야 마땅하다. 하긴 이거나 저거나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허구 중의 허구지만, 세상에 만화 한 번 안 보고 사는 사람 있나? 그러니 책을 열기 전에 먼저 소설 말고 글로 된 만화 읽는 기분을 장착하는 편이 속이 좋다.


  1920년대 도쿄 대학가 하숙촌에 히토미 히로스케라는 남자가 있었다. 본인은 철학과, 금속공학과 아니다, 철학이다, 필로소피, 철학을 전공했다고 주장하는데, 이이의 성격을 먼저 말하자면 쓸데없이 관심분야만 무지 다양하고 쉽게 싫증내는 성향이라서 도무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1도 없다. 이런 인간 가끔 있다. 사실은 나도 이 부류에 속하는 거 같다. 히로스케는 도가 좀 심해서 학교를 졸업하고도 자기 밥벌이하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아직도 대학가 하숙촌을 떠나지 못하고 빌빌 거리는 중이다. 대개 이런 인간들은 대학 고시반에 있으면서 파면당한 우리나라 전임 대통령처럼 재수, 3수… 장수, 심지어 9수에 도전하는 게 보통이지만, 히로스케는 그것도 아니고 그냥 하숙집에 철퍼덕 자빠져 자신의 이상향을 설계하는 몽상에 빠지기 일쑤였다. 이상향. 유토피아. 율도국. (이 책에서는)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그럴듯하게 설계하면서, 만일 나한테 “평생 써도 모자랄 정도의 많은 돈”을 손에 넣는다면, 광대한 땅을 사서, 수백 수천 명의 사람을 부려 내가 늘 꿈꿔온 지상낙원이자 미의 나라, 꿈의 나라를 만들어 보일 텐데. 이런 잡생각만 열라 했던 거다.

  (“평생 써도 모자랄 정도의 많은 돈”으로는 턱도 없지요? “평생 써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많은 돈”이 맞는 말 아닌가요? 무한자뻑 문학과지성사도 요런 실수는 하는군요.)

  그래도 하여튼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가족들이라고는 에도가와 란포 스스로도 집안이 폭삭 망해버려 결혼도 힘들게 한 인간이라서, 사면팔방을 봐도 비비적거릴 데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번역일을 하청받아 하는 것으로 시작해, 동화도 쓰고 드물게는 성인소설도 써가며 먹고는 살았다. 물론 간혹 진지한 중단편소설을 써 잡지사나 출판사에 송고한 적도 있지만 모두 신통치 않은 반응만 받아 스스로 문학의 길은 포기하고 말았다.

  함부로 문학을 하네, 책을 쓰네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게 한 번 쓰면 어디인가 자국이 남는다는 데 있다. 나도 작품 초기에 나오는 히토미 히로스케가 변변치 않은 소설 나부랭이를 보내고 전혀 쓸만한 반응을 받지 못했다, 했을 때는 (한 마디로 찌질이란 얘기군, 하는 거 말고)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가, 이게 저 뒤 결말부에 가서 아이고, 얼마나 세게 뒤통수를 치는지 거 참. 더 자세한 건 알려드리지 않겠다. 하여간 그렇다는 거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아주 가끔은 있다. 히토미 히로스케가 대학에 다닐 때 고모다 겐자부로라는 동급생이 있었다. 둘이 그냥 아는 사이로 눈이 마주치면 간단하게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로 결코 친하지 않았다. 둘이 다른 점은, 겐자부로는 검정 턱수염을 길렀고 뇌전증, 예전 말로 간질병이 있어서 간혹 심한 간질경련을 겪는다는 거. 히로스케는 근시가 있어서 안경을 쓰고 다닌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오, 놀라운 클리셰. 아주 똑같이 생겼다. 우연히. 생긴 건 작품 목적상 말할 필요도 없고 키도, 체격도, 목소리도. 물론 옷에 감춰진 신체 각 부위에 관한 상세한 건 아무도 모른다. 아, 한 명 빼고. 돈이 없어 장가도 못 든 히로스케와는 달리 겐자부로는 M현의 최고 부자인 고모다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라서 무지하게 어여쁜 귀족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

  이것이 히로스케한테는 어마어마한 행운이 될 지 누구도 몰랐다. 기괴하면서 동화처럼 매혹적인 행운이라고 란포는 말하지만, 더 읽어보면 한 사이코패스의 짧은 편집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대학 동창들은 겐자부로와 히로스케가 닮은 걸 떠나 완전히 똑같이 생겨 농담 비슷하게 겐자부로가 쌍둥이 형, 히로스케가 쌍둥이 동생이라 할 정도였는데, 쌍둥이 형이 나이 마흔도 되지 않아 치명적인 간질 발작을 일으켜 숟가락 놨다고 중앙 신문에 뜬 거다.

  이 정도면 스토리는 대강 맥이 잡힐 듯.

  히로스케는 절호의 찬스를 잡은 거다. 만일 자신이 겐자부로의 대역으로 살 수 있다면 고모다 가문의 돈으로 자신의 평생의 몽상, 꿈, 환상인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을 건설하지 못할 이유도 없는 거였다. 히로스케가 꿈군 절대 지상낙원은 그러나 역사상 주로 폭군이었던 옛 제왕들의 눈부신 업적 속에서만 조금 눈에 띈 적이 있었을 뿐이다. 20세기 자본주의 시대에 옛 시절의 폭군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은 부르주아, 이제 권력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문제였다. 때가 온 것.


  이제 본격적으로 그로테스크와 엽기, 잔혹.

  일본 장례문화는? 옙. 화장입니다. 근데 소설이 되느라고, 일본 M현에서 태평양 쪽으로 T만이 펼쳐진 S군에서는 특이하게도 매장이 습속이란다. 그래 겐자부로는 죽고나서 흰옷으로 염을 해잡숫고 관에 들어가 땅에 파묻힌다. 사전에 꼼꼼하게 준비한 히로스케는 당연히 야심한 밤에 겐자부로의 묘를 파헤치고 관을 부수어 이미 경직도 다 풀려 부패가 상당히 진행한 겐자부로의 시신을 꺼낸 다음, 흰색 수의를 벗겨, 시신유기를 해야 하는데 짧은 밤 시간에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겐자부로의 할아버지 묘를 파고 뼈만 몇 조각 남은 할아버지와 함께 구겨 넣고, 다시 할아버지 묘에 흙을 덮고 (떼도 입혔을까?) 시체 썩은 물이 축축한 건 물론 극약 같은 냄새가 충분하게 밴 겐자부로의 수의를 자기가 입은 채 근처 사람들 눈에 뜨일 만한 장소에 쓰러진 척하며 새벽을 맞는다.

  이렇게 고모다 가문의 전재산을 한 손에 움켜쥔 히로스케. 그는 S군 남단 태평양 쪽으로 뚝 떨어진 외딴 섬, 그래도 직경이 8킬로미터는 되는 가문 소유의 섬에, 엽기발랄한 그로테스크 고딕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탐미적 제국을 만든다. (과하게 일반화한 것 맞지만)하여간 일본 사람들이라니. 이렇게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구비한 섬을 거의 다 완공하는데, 나는 이 섬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작품에서 옷 입고 등장하는 여성이나 남성은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우짜? 혹 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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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6-05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빛납니다.........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06-06 06:1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아시네!

재미감동다있어야 2025-06-06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글도 기대할게요

Falstaff 2025-06-06 10:1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아시아 문학선 13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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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전윈의 전작 <말 한 마디 때문에>를 읽고 쓴 독후감에서 몇 달 후에 후속작인 <만 마디 말을 대신하는 말 한 마디>를 이어서 읽겠다고 했다가, 세월이 이렇게 빨라, 빨라도 너무 빠르고, 세월이 갈수록 더 빨라져, 몇 달이라고 했건만 그게 2년이 되어서야 겨우 읽었다. 그러니 이 책 읽은 건 밀린 숙제를 한 것과 조금은 비슷하다. 물론 안 해가면 손바닥 맞는 학교 숙제와 달리 전편이 재미있어 자발적으로 후편도 읽겠다고 작정해 스스로 만든 숙제이니까 즐겁게 읽었다.

  먼저 전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간략하게.

  후난성 옌진땅 두부장수 집에 둘째 아들 양바이순이 살았는데, 바이순은 식초 행상을 하며, 취미 수준을 넘는 초상집 관리, ‘함상장이’도 했다. 후딱 말해야겠다. 사연까지 쓰면 너무 길어진다.

  함상장이 하려 집을 빈 채로 두고 30리 멀리 있는 초상집에 갔다 오니 집에 양 한 마리가 도망가버렸다. 열받은 아버지한테 엄청 두드려 맞고 쫓겨나서, 이발사와 돼지 도살꾼의 도제를 거쳐 나중엔 천주교 신부의 도제가 되고 만다. 그리하여 이름이 양바이순에서 양모세로 바뀌게 되고. 양모세는 동네에서 만터우 장사를 하는 과부 우샹샹의 데릴 남편으로 들어가 이번에 성도 ‘우’로 고쳐 애초 양바이순이 ‘우모세’가 되어버린다. 우샹샹은 이웃의 남편과 진한 사이라 모세와의 결혼으로 이른바 연막을 친 것뿐이었다. 결국 우샹샹은 이웃 유부남과 야반도주를 해버려 우모세는 우샹샹의 착한 딸 차오링과 그냥 사이 좋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난리 치기를, 이웃 남자와 바람이 나 도망한 아내를 잡아 둘 다 죽여버리지 않으면 풍기와 도덕이 무너질 터이니 당장 그것들을 찾아 나서라 한다. 그리하여 우모세와 차오링은 어쩔 수 없이, 애초에 잡것들을 잡을 생각은 1도 없이 두 명의 부덕자들을 찾는 시늉을 하며 전국을 떠돌기 시작한다.


  1부와 2부 사이에 있던 속 끓고 사연 많은 이야기는 이제 많이 늙어 손주들까지 생긴 아명 차오링, 정식 이름 차오칭어趙靑娥가 둘째 아들, 원래 둘째 아들이 부모 사랑 못 받고 사는 자식이라 평생 나몰라라 하다가, 나이 들어 외로워지니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둘째 뉴아이궈한테만 들려주는데:

  아버지 우모세의 손을 잡고 엄마 우샹샹을 찾으러 가다가 신샹의 누추한 여인숙에서 쥐약장수이자 부업으로 유괴범을 하고 있는 랴오요우한테 납치당해 서쪽 지위안에 도착했다. 거기서 쥐약장수는 행상 라오사를 만나 은화 10대양에 팔아 넘겼고, 본격적인 인신매매범이었던 라오사는 손찌검을 해가며 데리고 다니다가 산시성 위안취에서 은화 20대양을 받고 라오비엔에게 넘겼다. 라오비엔은 너무 비싸게 주고 산 거다. 게다가 돈이 떨어져 험한 잠자리만 골라 잔 터에 차오링이 고열에 시달리는 병이 생겨 이제 난감한 꼴을 당하게 됐다. 이때 샹위안현 원쟈좡의 지주 라오원의 마차꾼 라오차오가 마침 부부사이에 후손이 없는 집이라 차오링을 은화 13대양을 주고 딸로 입양을 해 드디어 정착을 하게 된 것. 라오차오의 정식 이름은 차오만창曹滿倉. 말이 없는 남자로 애초 차오링을 입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수다꾼이자 집안 살림을 장악하는 아내의 뜻에 의하여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지역 풍습이 만일 딸이건 아들이건 후사가 없으면 동생의 큰 아들을 양자로 들여야 했단다. 아내는 그게 싫어 마침 차오링이 성도 같은 데다가 생긴 것도 예쁘장하고, 바지런하기도 해 썩 마음에 들었다.

  차오링의 지난 이야기를 죽 들은 만창의 처는 딸로 입양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앞으로 옌진을 생각해서도 안 되고, 새아빠(우모세)를 보고 싶어해도 안 돼.”

  차오링이 나이가 차자 양부모는 차오링을 몇 백리 떨어진 뉴쟈좡(우씨촌)의 뉴슈다오에게 시집보냈다. 나름대로 귀하게 키운 딸이라 고르고 골랐는데, 마침 라오차오와 새 지주 샤오원이 좋은 관계를 맺은 라오뉴의 집안 장남과 혼담이 오갔고, 신랑감 뉴슈다오가 그리 좋은 신랑감은 아니었지만 아가씨 집에 오기 전에 숱한 리허설을 거쳐 몸에 익힌 제스처와 말씨를 훌륭하게 시전해 단박에 점수를 따 성사된 혼인이었다. 그리하여 몇백리 떨어진 뉴쟈좡으로 시집 가 이제 차오칭어가 되어, 순서대로 아들-딸-아들-아들을 낳았고, 이 가운데 세번째, 둘째 아들이 작품의 주인공 뉴아이궈牛愛國이다.

  고진감래라고 늙은 차오칭어가 행복하게 살았을 거 같지? 남편 뉴슈다오가 드디어 삶을 다 살고 늙어 죽었다. 땅을 파 묻고나서 여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차오칭어가 땅바닥에 주저 앉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땅을 치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차오칭어를 달랬다.

  “너무 많은 걸 생각하지 말아요. 운다고 떠난 사람이 돌아오진 않아요.”

  차오칭어는 눈물을 그치지 않고 말했다.

  “그 개새끼 때문에 우는 게 아니라 나 때문에 우는 거예요. 내 한평생이 그 놈 손아귀에서 망가졌단 말이야.”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그 개새끼 또한 당신 때문에 한 평생이 망가졌는지도 모르지. 서로 상처주고, 상처받는 게 결혼생활이잖아. 좋은 건 표가 안 남고, 흉한 것만 표를 내거든.


  차오칭어의 둘째 아들 뉴아이궈는 부모한테 아무 정도 받지 못하고 살았다. 그렇게 믿었다. 그나마 아이궈한테는 누나 아이샹이 있어 살면서 처음엔 자잘한, 대가리 굵어지면서는 중요한 일을 상의할 의지가지나 있었지, 누나 아이샹 역시 부모한테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살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직 첫째와 막내만, 첫째는 아버지한테, 막내는 어머니 정을 듬뿍 받고 자랐다. 이런 유복한 아이들은 주인공 반열에 오르기 쉽지 않으니 이름도 밝힐 필요가 없다. 그래, 나도 둘째 아들이다. 샘나서 그런다, 왜?

  누나는 우체부와 연애를 하다가 개자식이 양다리를 걸치는 바람에 헤어지고, 여러 번 후속 연애를 했지만 결국 전부 실패를 해, 거의 마지막인 열번째 연애까지 실패로 끝나자 농약을 벌컥벌컥 마시고 죽으려다고 병원에 실려가 위세척과 관장을 동시 상영한 끝에 살아났다. 대신 훗날 담배를 피우기 전까지 심한 딸꾹질을 자주 했으며, 목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도무지 똑바로 펴지지 않는 후유증을 겪었다.

  아이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진학에 실패하자 그냥 놀 수도 없고, 집구석이 지긋지긋하기도 해서 군대에 지원 입대했다. 운전병 모집이라 당시엔 운전도 기술, 그것도 나쁘지 않은 기술이어서 군대 가면 운전은 기본으로 배울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실하게 운전병 교습소에 가서 운전을 배워, 딱 자대 배치를 받아보니 저 북쪽의 고비 사막. 부대에는 정작 차가 없다. 어쩔 수 없어 아이궈는 취사병을 하다 제대했다. 친구 두칭하이만 사귀고. 두칭하이는 보병으로 입대했지만 자대에 차가 있어서 운전병으로 복무한 것이 둘 사이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었다. 

  세월이 더 흘러 뉴아이궈는 서른다섯이 됐다. 진한 연애 경험이 있는 아가씨 팡리나와 혼인해 예쁜 딸 바이후이도 낳고 살았지만 결혼 두 해 만에 부부는 서로 지극하게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팡리나가 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진관집 아들 샤오장과 바람이 나버리고, 처음엔 그렇구나, 덤덤하게 여기고 넘어가려던 아이궈한테 샤오장의 아내가 쳐들어와, 너는 소갈딱지도 없는 졸장부냐, 나 같으면 두 연놈을 다 칼로 찔러 죽인다, 어쩌구저쩌구 하는 바람에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고 고민하다가 35세 당시의 가장 소중한 친구 셋과 상의한 끝에 바람 난 아내를 극진하게 모시면서 살기로 작정을 했다. 샤오장이 이혼하지 않고 자기 아내와 더욱 깨가 쏟아지는 제2의 신혼을 만든 모습을 보면서. 그러나 몇 해가 지나자, 팡리나는 이번엔 자기 형부와 얄짤없이 야반도주를 해버렸고, 이제 뉴아이궈는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할아버지 우모세처럼 딸 바이후이를 데리고 넓디넓은 중국땅을 두 연놈 찾아 복수를 하기 위하여, 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알게 하기 위해 시늉만 내는 수준으로 그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하여튼 가슴에 칼을 품은 척하면서 떠돌아다녀야 할 신세였던 거디었다.

  이렇게 해서 70여 년 전에 양바이순이었던 우모세가 자기 수양딸 차오칭과 함께 부정한 아내를 찾기 위해 옌진을 떠나 산천을 떠돌아야 했던 것처럼, 뉴아이궈는,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차오칭은 학교에 다녀야 해 결국 나이 많은 남자의 재취로 들어간 누나 아이샹의 순둥이 남편한테 부탁하고, 홀로 젊은 시절의 친구들을 찾아 떠돌다가, 우연히 만난 사내들의 고향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니 그곳이 바로, 또 옌진이었던 거다. 무려 70여 성상이 지나 거의 비슷한 이유로 옌진으로 돌아온 양바이순 또는 우모세의 어쨌든 손자 뉴아이궈.

  사람도 많고 땅도 많으니 사연도 많을 수밖에.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곰의 가랑이엔 털도 많은 법.




  그날이 오면 또 통음을 해야 하나?

  오늘은 4월 28일. 이 독후감을 업로드하는 날이 6월 3일. 21대 대통령 선거일일 것이다. 국민들, 아파트 주민, 친척, 심지어 가족 사이에서도 식칼로 두부 자르듯 똑 잘라내어 서로를 꼬나보게 만든, 어느 쪽에 투표하든 서로 상대에게 상처 입히는 방향으로 사용하던 투표. 너와 나, 우리편과 네편으로 갈라져 기어이 서로가 서로를 저주의 대상으로 삼았던 지난 십수년의 투표가 반복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깟 1찍과 2찍의 다름이 뭐가 대수랴. 어차피 평생 서로 쳐다보고, 의지하고 아주 가끔은 사랑하고 살았고, 살고 있을 터이고,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할 같은 시민, 주민, 친척, 가족이 아닌가 말이지. 투표를 즐기지는 못하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향한 조소와 질시와 경멸을 이제는 멈추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편을 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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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끼 2025-06-0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의합니다.. 다만 편을 가르고 싶어서 가르는 게 아니라, 당신 의사결정에, 이 문명의 의사결정에 정치적 생명이 아니라, 정치적 의사결정엔 반영되지도 않는 삶이, 생존이 왔다갔다 하는 존재들에겐.. 어떻게 편가르지 않는 것만으로 생존을 도모할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편가르기 자체가 나쁜게 아니라고, 편가르기 대상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예 배제하는 이 문명에 문제제기하고 싶습니다.

Falstaff 2025-06-03 12:08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잘못 썼네요. 하고 싶은 말은 ˝질시와 경멸을 멈추었으면 좋겠다.˝이었는데, 사족을 너무 단정적으로 썼군요. 읽으시는 데 혼란을 드려 미안합니다.
 
바비의 분위기
박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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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서울생. 중앙대 문창과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석사 수료. 이후 계속 소설을 쓰고, 직장생활은 안 한 거 같다. 그랬다는 게 아니라 짐작이다. 여러 상을 받았다. 요즘엔 최우수상 혹은 대상 말고 여럿한테 주는 우수상 같은 것도 있어서 누구나 다 받는 거 같은데, 문학동네 주최 젊은작가상은 확실하게 대상을 받았다. 다른 상에 관해서도 검색해보려다 말았다. 하긴 소설 쓰는데 무슨 상 받은 게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바비의 분위기》가 내가 처음 읽은 박민정이다. 단편소설 일곱 편이 실린 소설집이다. 작품이 골고루 마음에 든다. 오히려 내가 놀란 것은 문학평론가 송종원이 쓴 해설 “괴물과 사실, 그리고 앎의 장치로서의 소설”의 앞부분이다.


  “박민정의 소설은 어딘가 다르다. 실험성이 강하다는 표현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하나의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지금까지 읽어온 소설과는 확실히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이 다른가. 이 작가의 소설은 어딘가 좁은 길을 복잡하게 걷는 듯한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 (p.240)


  음. 내가 여태 우리나라 현대 소설에 적응하지 못한 것을 잘 설명해주는 문장들이다. 나는 박민정의 소설이 매우 익숙하다고 느꼈던 건데, 이게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소설이 “어딘가 좁은 길을 복잡하게 걷는 듯한 행보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던 거다. 즉 스토리들이 하나의 길을 따라 최후의 순간을 향해 똑바로 진행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지금 소설을 읽는 독자들한테는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 같다. 이것을 세월 탓, 세대 차이라고 해도 불만 없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러나 박민정의 소설을 같은 이유로 올드하다고 판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책에 실린 일곱 작품 모두, 내가 (미안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걸 용서해주기 바라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한 어미의 배에서 나온 씨 다른 자매, 형제 같다고 한 적 있지만, 박민정은 그렇지 않다. 읽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으나, 박에게 다른 작가들한테 흔히 보이는 섬세한 디테일, 그러나 한결같이 이거나 저거나 비슷해 보이는 시선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핏줄 같거나 거미줄처럼 보이는 세밀한 감정의 떨림 같은 거, 이런 거 기대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좋다.

  이 책 읽고 3일 정도가 지났고 사이에 다른 책도 읽는 바람에 작품들의 내용이나 감상이 많이 흐트러져 자세하게 쓰지는 못하겠지만, 사회의 다양한 실제 모습에 근거하여 문제점과 폭력의 결과를 드러낸다. 물론 이것들의 해석에 집중하느라 해결에 관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읽히지만.


  작가의 나이가 이제 마흔.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한 좋은 시절이다. 앞으로 더 낫고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기 바란다. 처음 읽어봤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물론 아마추어가 잘 읽었을 뿐이라서 작가가 그리 기뻐하지는 않겠지만.

  아무쪼록 건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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