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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인의 노래 1 - 서부의 목소리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7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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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메일러. 소설가인 건 확실한데 이이의 작품을 읽어보면 이게 소설인지, 논픽션인지, 저널리즘 기사인지 헛갈린다. 이 책이 내가 읽은 세 번째 메일러의 작품인데, 다른 것들의 소감도 마찬가지였다. 1923년생인 메일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하기에 딱 좋은 나이였다. 하버드를 우등졸업해 애초 장교 임관이 가능했으나, 전쟁에 관한 실화 같은 소설을 쓰기 위하여 스스로 사병 입대를 지원해 태평양 전쟁에 참전, 수십 차례 작전에 투입된 바 있고, 승전 후 일정 기간 동안 일본에 주둔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이이의 초기 대표작 <나자裸者 와 사자死者> 즉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이때 메일러의 나이 스물다섯. 이 책이 뉴욕의 종잇값을 치솟게 만들 정도로 히트를 치는 바람에 젊은 메일러는 일찌감치 돈벼락을 맞아 버렸다. 그래서 평생 여섯 번 장가드는 게 가능했을까?
1968년, 마흔다섯 살 때에는 1967년에 있었던 반 베트남전 시위, 펜타곤까지 행진을 다룬 책을 써서 퓰리처 상을 받았고, 1979년 쉰여섯 살에 오늘 독후감을 쓰는 <처형인의 노래>로 두번째 퓰리처 상을 받았다. 이게 내가 읽은 메일러의 전작인데, 이것 말고도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와장창 있지만, 이 세 편을 읽을 소감으로 말씀드리자면, 소위 저널리즘 픽션 또는 논픽션 소설이란 장르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해 이제 메일러는 그만 읽기로 결정했다. 다큐멘터리면 다큐멘터리고, 소설이면 소설이지, 논픽션 소설이 뭐 말라빠진 장르야? 대개 이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
근데 이건 전적으로 내 취향에 입각한 의견일 뿐, 당신 입맛에 맞으면 메일러 만큼 현장 취재를 실감나게 소설 형식으로 쓰는 작가도 별로 없으니 그냥 꾸준히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메일러가 “게이 탈레즈, 트루먼 카포티, 헌터 S. 톰슨, 조안 디디언, 톰 울프와 함께 사실 저널리즘에서 문학 소설의 스타일과 장치를 사용하는 장르인 '창작 논픽션' 또는 '신저널리즘'의 혁신가로 평가받고” 있다는데, 다른 작가들은 별개로 하고,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은 ‘톰 울프’를 예의 주시하시압. 우리나라에 번역해 나온 소설은 <허영의 불꽃> 한 편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것도 절판. 하지만 아휴, 진짜 타의 모범이 될 만큼 재미있는 B급 대중소설이니 우연히 눈에 띄면 주저하지 마시라.
작품의 주인공은 개리 마틴 길모어. 역시 실재 인물이었다. 포틀랜드에서 출생해 유타 주 프로보 시에 살았다. 길게 말고 짧게. 개리는 어디에서도 길게 살아본 적이 없다. 한 군데 빼고. 교도소. 열세 살 때, 이땐 엄마 베시 길모어와 함께 포틀랜드에 있을 때였는데, 처음 소년원에 들어가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은 이후 그의 주민등록초본은 주 소년원에서 오리건 주립 교도소와 일리노이 메리언 교도소 주소로 진화,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사촌 여동생 브렌다. 브렌다가 여섯 살 때 사과나무 꼭대기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이때 나무 아래에서 일곱 살 게리 오빠가 떨어지는 브렌다를 붙잡아 무사한 적이 있어 가까이 지냈다. 브렌다가 매사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대는 성격이었던 반면, 게리는 조용하고, 정중했고 이후에도 사촌 누이가 곤경에 처하면 기꺼이 도와주었다는데 어떤 일로 어떻게 도와주었다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게리가 오리건 교도소에 있을 때 브렌다가 편지를 썼다. 답장에서 게리가 말하기를, 자기 때문에 가족이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되어 마음이 아프다며, 출소하면 조직 폭력배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 자기 꿈이라고 했다. 중학교 졸업의 학력이지만 교도소 안에서 상당한 독서를 한 듯 어려운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했으며 편지지 여백에 작은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했다. 사실 게리는 어릴 적부터 그림에 상당한 소질을 보였지만 아빠도 교도소를 이웃집 다니듯 했기 때문에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의 소질을 계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게리한테 편지가 왔다. 이번에 가석방이 있을 예정인데 브렌다하고 다른 한 명이 연대보증을 서 주면 자기도 가석방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였다. 어릴 때부터 게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온 브렌다는 자기 친동생 토니도 설득해 연대보증을 서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별 생각없이 인감도장을 찍어준 후에야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30년 가까이 만난 적 없는 남자의 보증인이 되었다는 것.
그러나 때는 늦었다. 게리는 악명높은 일리노어의 메리언 교도소에서 나와, 예정대로라면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솔트레이크를 거쳐 프로보로 와야 하건만, 그간의 오랜 교도소 생활을 벌충이라도 하듯 비싼 비행기를 타고 도착했다. 술을 약간 마신 상태로.
일단 교도소라는 우물 안에서 나왔으니 당장 먹고 사는 게 문제다. 김선우의 “폴짝인” 운운하는 시에서 내가 말한 적 있다. 개구락지가 우물에서 뛰쳐나와 넓은 세상을 보고 “빌어먹을, 하늘이 저렇게 커다랬어?” 놀라면서 세상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가기 시작했을 때, 황새, 너구리, 뱀 같은 포식동물이 그걸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지 몰랐느냐고. 머리통이 커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는 바람에 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아주 사소한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하거늘, 세상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게리 역시 일일이 《공통수학의 정석》 첫 장부터 열어볼 생각도 없다.
하여간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하니, 기껍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흔쾌하게 손을 내민 사람이 제화점을 하는 큰이모부 벅. 구개파열 수술 자국이 남아 있는 강골의 사나이 아주 강한 사람이라서 오히려 늘 온화할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구개 수술 흉터를 놀리는 아이하고는 무한 싸움을 불사했다. 벅이 게리한테 자기 제화점에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일단 자신의 집에서 아내이자 게리의 큰이모인 아이다와 함께 셋이서 살자고 제안해 그렇게 한다.
게리의 교도소 기간이 너무 길었다. 정상적이 아니고, 일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한 절제와 조심 같은 것이 전혀 몸에 익숙하지 않다. 주급을 받으면 거의 전부 맥주 마시는 데 사용하고, 벅 이모부한테 따로 돈을 요구하여 냉장고에 맥주를 쟁여 놓고 상습적으로 들이켠다. 벅의 제화점이 말이 제화점이지 구두수선을 주업으로 하는 작은 점포에 불과하여 게리의 식대와 용돈을 대기가 힘든다. 게다가 술이라는 것이 비록 크지 않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사로를 치게 만든다. 절제를 모르는 게리가 치는 사고는 좀 더 크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차근차근 기초공통수학의 정석부터 풀 수밖에.
게리에게 애인이 생겼다. 아이 둘이 있는 이혼녀 니콜. 어린 시절에 아빠 친구한테 성폭행 당한 상처가 있어 그게 살면서 마음의 흉터로 남은 것처럼 보이는 스무 살 미인. 게리는 서른 다섯. 둘은 서로에게 빠진다. 빠져도 심각하게 빠진다. 게리가 숙소를 번의 집에서 니콜의 집으로 옮긴다. 화르륵 타버리는 사랑. 니콜이 견디지 못하고 엄마 집으로 간 사이, 여러가지로 갈등에 싸인 게리는 정신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니콜의 여동생 에이프릴과 함께 무리를 해서 산 소형 중고 트럭을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가 주유소에 가서, 별 생각 없이 총을 들고 사무실에 진입해 현금 수납기를 털고, 당번 중인 20대 건실한 유부남을 화장실로 끌고 가 엎드리게 한 다음, 뒤통수에 대고 두 발을 쏴 그 자리에서 죽여버린다.
신발과 바지에 피를 묻힌 상태로 차를 몰고 에이프릴과 함께 모텔로 가서, 다시 모텔을 지키고 있던 또다른 20대 건실한 유부남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한다. 현장을 빠져나오다 권총을 풀숲에 던져 버렸는데, 워낙 예민한 자동권총이라 관목에 걸렸는지 격발이 되어 게리 역시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총을 맞는다. 이 살인강도 행위의 직접적 원인은 중고 소형트럭의 잔금을 지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런 방법 말고는 게리의 생각으로 돈이 생길 구멍이 없으니까. 트럭을 사지 않으면 되는데 그것 역시 생각이 닿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근데 직원 두 명은 왜 죽였을까? 돈만 가져 나오고 그들을 꽁꽁 묶어 두면 안 됐을까? 그냥 죽인 거다. 정말로 이렇게 진술한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다른 사람, 죽은 자와 죽은 자의 가족들한테는 전혀 관심이 닿지 않으니까 별 생각 없이 죽일 수 있었겠지.
게리는 당연히 체포당해 사형 선고를 받는다. 여기까지가 1부. “서부의 목소리들.”
나는 2부 “동부의 목소리들”에서는 다른 사건이 등장해서 서로 먼 연결고리가 있을 줄 알았다. 근데 아니다. 2부로 접어들면 이제 미국내 사형제도와 사형집행을 둘러싼 법정 다툼과 10년 만에 재현하는 사형집행을 두고 저널리즘 사이의 추한 비즈니스 다툼, 사법부 내의 복잡한 의사결정 같은 것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상세해도 너무 상세하게. 그래서 읽는 독자는 숨 넘어갈 정도로 지루하게 만든다. 두 권 합해서 1,760쪽이 넘어가는 길고 긴 장편 소설. 노먼 메일러는 그의 주특기 답게 처음부터 끝까지 별의 별 등장인물을, 거의 전부 실명이라고 하는데 그건 뭐 알 거 없고, 다 등장시켜 인터뷰하고, 녹음한 거 타이프하고,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 사람을 콱 질리게 한다.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다 읽었다. 읽다가 지루해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과하게 상세하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라고 써 놓았으면 아예 읽을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을. 다큐면 다큐고 픽션이면 픽션이지 이게 뭐람.
이 책에 관해 할 말이 많다. 아직 반도 안 했다. 사형 집행 반대의 대의를 외치다 보니, 사이코패스가 틀림없는 게리 길모어를 어쩌면 당연히 과하게 분식시킨 것, 피해 가족이 순식간에 작품에서 실종되는 일 등등.
그리고 생명권.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자기 목숨. 맞지? 게리 길모어는 1심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후 항소를 포기하고 법적으로 명시한 시일 내에 사형이 집행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형 반대 집단은 집행을 멈추기 위하여 갖은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이를 방해한다. 법적으로 사형을 받은 사형수가 법적 하자 없이 죽겠다는데 왜 그걸 말려? 목숨보다 온전히 사적인 것이 어디 있다고? 사형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별적 사람을 뜻하는 자유인들의 생명 포기권, 즉 자살한 권리는 왜 정당하게 취급받지 못하는지 나는 조금 의아하다. 임신중단이 당연히 임신한 사람의 권리이듯, 자기 생명의 포기 권리도 인간의 천부 권리 아닌가 싶다. 자기 생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마감할 수 있도록... 그만 하자. 조금 더 하면 정말 오지게 얻어 터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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