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낙원
세스 노터봄 지음, 유정화 옮김 / 뮤진트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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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생인 노터봄이 일흔한 살이던 2004년에 발표한 소설.

  한 평생 신나게 산 작가인 것처럼 보인다. 내가 그 속을 어떻게 안다고 92세의 노인더러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런 것처럼 보인다는 걸로 충분하지. 나는 사는 게 지옥이었는데 노터봄은 낙원 속에서 살았을 리가 없잖은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이이가 세상 천지에 안 가본 곳이 별로 없을 만큼 신나게 돌아다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세상을 다닐 수 있나 어디? 농사 질 땅이 변변치 않아 뭐 해 먹을 게 없어서 예부터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장사해 먹고 산 네덜란드 사람이니까 몇 가지 외국어에 능통한 거야 뭐 그럴 수 있어도, 주머니가 좀 넉넉해야 비행기를 타던, 배를 타던, 기차를 타던 멀고 먼 장거리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이고, 세상 천지에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객지를 돌아다닐 용기도 제법 갖추어야 할 터인데 그것마저 별로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었으니 그나마 행운의 별이 노터봄의 정수리 위에서 반짝이긴 했던 모양이다.


  이 소설도 ‘나’가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3국 국경에 위치한 보덴제 호수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프리드리히샤펜(Friedrichshafen, 책에서는 “프리드리샤펜”)에서 베를린의 뎀펠호프 공항으로 비행하는 작고 아담한 비행기 대쉬Dash 8-300 비행기에 오르며 시작한다. 이게 본문은 아니다. 프롤로그.

  작은 비행기라서 조종석에 앉은 조종사를 탑승객이 볼 수 있다. 아직 비행기의 엔진도 켜지 않은 상태. 시간이 남아서 그런지 ‘나’의 옆 좌석이 비었다. 실내를 둘러봐도 빈 자리가 무척 많다. 이 노선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글쎄, 한 50대 후반 정도의 남자. 그런 것처럼 보인다. 좀 지루했는지 ‘나’는 의자 등판에 꽃아 놓은 기내지를 꺼낸다. 늘 보는 항공사 광고와 ‘나’가 탄 작은 항공사가 운행하는 베를린, 빈, 취리히에 대한 정보가 조금 실렸고, 이어서 자유기고 기사가 두 꼭지 있다.

  기사 하나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그곳 선주민에 관한 것이다. 암각화와 화려하게 채색된 돛배 사진. 다른 하나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관한 기사. 지평선을 따라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부자들의 고급 주택가가 있는 반면, 이에 못지 않는 그림 같은 초라한 판자촌, 도시 빈민가도 보인다. 물결 모양의 함석지붕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은 판잣집들, 거기에서 사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에 관한 장방형 프레임. 당연히 ‘나’는 프레임 밖의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이미 그곳을 다녀와본 적이 있으니까. ‘나’의 입장에서는 이런 사진은 너무 오래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껏 떠났던 모든 여행을 여차하면 데자뷔 비슷한 비현실적 느낌이 들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미인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여성이 비행기 기내로 들어왔다. ‘나’는 옆좌석이 비어 있어서 당연히 이 여성이 옆에 앉았으면 좋겠지만, 희망은 늘 배신하는 속성이 있는 것이라 그이는 앞 좌석 창가에 앉는다. 카키색 바지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 아래로 살며시 흔들리는 젖가슴을 바라보는 게 짜릿하다. 그녀는 진홍빛 포장지에 스카치테이프로 포장된 책을 꺼내 읽다가 잠시 후에 그냥 의자 위에 엎어 놓는다.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러다가 여자도 기내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고 상파울루를 달리다가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 그림들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한참을 더 써야겠지만 아직도 프롤로그이니 결론만 말하자. 이 여성 승객이 가지고 타서 읽어보려 포장을 뜯은 책은 지금 내가 읽으려고 하는 세스 노터봄의 <잃어버린 낙원>이다. 그러니 화자 ‘나’ 역시 세스 노터봄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기는 한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엄연하게 픽션이니까.

  무엇보다, 이 프롤로그에서 독자가 책을 읽으며 보게 될 장소가 다 나와 있다는 것. 첫째가 브라질 상파울루요, 두번째가 오스트레일리아 남서부의 대도시 퍼스와 황량한 호주 사막. 마지막으로 프롤로그의 화자 ‘나’가 갔던 것처럼 보이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부근의 알펜호프라고 부르는 스파.


  만일 프롤로그의 화자 ‘나’가 세스 노터봄이라고 한다면, 물론 아니겠지만, 그가 본 기내지 두 곳, 상파울루와 오스트레일리아 퍼스, 그리고 알펜호프 이야기는 기내지에서 기사를 보고 자신이 구상한 이야기인 것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많다. 상파울루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젊은 여성 이야기만 해보자.

  상파울루의 여름밤. 자르뎅이라는 부촌. 이곳 주민들은 밤외출을 하지 않는다. 해가 지면 이 동네 집안에서 하녀, 가정부, 요리사, 정원사로 일했던 노동자들이 대중교통 차량을 타고 두 시간 동안 지친 몸을 버텨내야 도착하는 집에 가기 위하여 어둠 속 그림자로 거리를 메운다.

  그러나 이날, 알마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엄마의 세컨드 카를 빌려타고 한밤중에 차고를 나섰다. 소형차는 상파울루 여기저기를 배회하다가 금지된 구역인 파라이소폴리스, ‘낙원의 도시’라는 이름을 가진 상파울루에서 가장 열악한 빈민가이자 언제라도 피가 튀는 범죄가 발행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지역으로 진입했다. 여름밤의 무드 때문에 충동적으로 밤 드라이브를 선택한 알마. 하늘은 알마에게 무드 대신 고난을 주기로 결심했는지, 엄마의 세컨드 카가 낙원의 도시에 진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푸르륵, 작은 신음과 함께 엔진을 멈추고 말았다. 거의 완전한 어둠. 아무도 없는 공포. 하지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알마는 자기를 원처럼 둘러싼 검은 그림자들을 보았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림자들의 잊혀지지 않을 웃음소리. 그들 목소리에 한없이 깊숙하게 깔린 증오와 분노가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 삼켜버렸다. 몇 명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마치 쓰레기라도 되는 듯 내버리고 가버린 그림자들. 가장 끔찍했던 것은, 차와 알마의 가방 속 모든 것이 없어진 것도, 몇 명인지도 모르는 그림자들이 자신을 윤간한 것도 아니라, 자기를 내버려두고 가버린 것이었다.


  키가 크고 금발의 미인 알무트. 알마의 가장 친한 친구. 알무트가 경찰에 신고했고, 산부인과에도 함께 가주었다. 기골이 장대한 미인이라 브라질 남자들은 알무트만 보면 사족을 쓰지 못했다. 이걸 잘 알고 있는 알무트는 자신을 보탄의 딸, 부륀힐트라고 불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마와 알무트는 부르주아 딸들이 전공하면 가장 어울리는 과인 미술사를 공부하고 싶어 했다. 알무트는 윌링 드 쿠닝, 뒤비페 같은 현대미술, 알마는 라파엘, 보티첼리, 지오토 등의 르네상스 미술. 둘은 열다섯 살 시절부터 암스테르담, 드레스덴, 피렌체, 파리 같은 곳을 순례하며 실물 명화를 직접 보기도 했다. 보통 부자가 아니다.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이들 할아버지 둘 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독일에서 브라질로 건너와 자신의 과거에 대하여는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은 인물이다. 아버지들도 자기 아버지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독일어를 배울 생각도 없었다. 아하, 그렇구나.

  두 미술사 전공 아가씨들 눈에 들어온 것이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땅이었다. 시간과 기억 이전의 시대, 세상이 편평했고 텅 비어 있었으며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땅. 그리고 사람들. 그들도 없던 곳의 드림 타임.

  상파울루에서의 사건 이후 집안의 자기 방에서 두문불출하던 알마에게 알무트가 오스트레일리아 행 저렴한 항공권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가져온다. 선주민이 인간 최초로 만들었던 예술품들. 벽화와 암각화, 그리고 지금의 선주민들의 회화. 시드니를 거쳐 선주민의 낙원인 시크니스 드리밍 플레이스에 갈 수 있을 것이다.

  두 아가씨는 여행지에서 돈을 벌 수 있게 물리치료사 과정 수료부터 완료한다. 그래야 식당이나 술집에서 접시닦이, 홀 서빙, 애 보기 같은 허드렛일을 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물리치료사를 고집하는 것은 정작 물리치료 또는 마사지시술로 돈을 버는 건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알펜호프이기 때문이다. 그럼 호주에선 뭘 해 돈을 버냐고? 천사가 나타난다. 정말이다. 천사.

  2백쪽에 불과한 분량. 읽기 편하겠지? 아마도 아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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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멜랑콜리의 묘약 레이 브래드버리 소설집 1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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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읽는 SF의 전설, 레이 브래드버리. 1959년에 발표한 소설집. 벌써 6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이와 비슷한 연배에 유독 눈에 띄는 SF 작가들이 제법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스타니스와프 렘. 1920년 부근에 갑자기 태양 흑점 폭발이 심했었나? 그래서 상상을 초월하는 방사능을 지구에 쏟아부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거명한 사람들과 브래드버리를 구별하게 만드는 건, 브래드버리는 시를 쓰기도 해서 그럴 것 같은데, 번역문을 읽으면서도 문장이 여간 고급진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독자를 유혹하는 힘이 있다. 게다가 SF, 즉 과학소설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그로테스크 또는 고딕과 (결코 귀신은 아니지만)귀신 비슷한 것도 출몰한다.

  이 소설집 《멜랑콜리의 묘약》은 SF라기보다 고딕과 그로테스크 소설을 더 많이 실었다. 외계생명체와 우주여행을 주제로 하는 건 두세 작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긴 이 두세 작품을 영향이 다른 비슷비슷한 고딕/그로테스크 작품에 비하면 훅, 하는 무게감이 상당하지만.


  모두 열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다. 이 책을 고르면서 조금 캥겼던 것은 이이의 다른 (우리나라에서 유명한)단편집 《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과 겹치는 작품이 있을까, 하는 거였다. 독자라면 당연히 의심하는 것일 텐데, 걱정하지 마시고 그냥 읽으시라. 한 편도 안 겹친다.

  이 책은 1959년판 《A Medicine for Melancholy and Other Stories》를 두 권으로 분책에 옮긴 첫 권이다. 다른 한 권은 《온 여름을 이 하루에》라는 제목의 소설집으로 같은 출판사에서 찍었다. 그냥 한 권을 한 권으로 만들면 안 되었을까? 합하면 7백쪽에 조금 못 미치는 분량이라 책이 팔리지 않을 거 같아 그랬을까? 뭐 그냥 장삿속이었겠지. 출판사도 돈 벌어야 하는 기업이니 우리가 이해하자.

  이 책, 어제 읽었다. 지금 목차를 보면 그래, 이거, 이거, 이것은 어떤 이야기였지. 재미있었어. 이렇게 떠올릴 수 있지만 일 주일 있다가, 더 멀리, 이 독후감이 업로드 된 날에도 여전히 기억할 수 있을 지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 제일 앞에 배치한 <어느 잔잔한 날에>.

  미국인 부부 조지와 앨리스 스미스는 여름 한낮에 남서 프랑스 해변인 비아리츠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남편 조지는 대단한 예술 애호가. 그중에서도 회화를 좋아하고 파블로 피카소를 추앙하다시피 한다. 문제는 해변에서 조금,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어촌의 별장에 하필이면 때를 맞춰 피카소가 와 있다는 것. 조지는 괜히 기분이 들썩들썩. 카라바지오의 과일 정물, 맹인조차 이글거리는 화사한 해바라기 꽃을 그린 고흐도 좋지만 지브롤터 전역에 한여름의 소나기를 퍼부며 수평선 위로 우뚝 솟아오른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도 같은 <거울 앞의 소녀>와 <게르니카>의 창조자인 파블로 피카소만큼은 아니다. 그런데 그가 조지한테 얼마 머지않은 곳에 있다. 실물의 피카소가.

  바다에 첨벙 몸을 담그고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멀리 힘을 다해 수영을 해봐도 그를 그저 한 번 보기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해변엔 저녁이 다가오고, 오래 수영을 해 진이 빠진 조지와 다른 한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훌쩍 떨어진 저쪽에 조지 스미스보다 키가 작고 머리를 각지게 자른 한 남자가 홀로 고요한 대기 속을 걷고 있었다. 이렇게 해안선 무대가 마련되었고 몇 분 후 두 남자는 마주칠 운명이었다.

  낯선 남자는 주위를 흘끔거리더니 자신이 혼자 있는 걸 확인하고 잠깐 몸을 돌려 모래 위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들었다. 라임 맛 아이스크림을 꽂았던 가느다란 막대. 그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며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더니 몸을 숙이고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그가 제일 잘 하는 일을 지금 모래 위에서 시작하는 거였다.

  모래 위에서 태어나기 시작한 굉장한 형태들. 금세 자신의 작업에 완벽하게 심취하여 몽혼의 상태에 이른 짧은 머리의 남자. 두번째, 세번째 형체에 이어 계속 이어지는 사물의 모습.

  해변을 따라 걷던 조지 스미스의 저 앞쪽에 남자의 숙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니까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까맣게 그은 몸을 한 남자가 몇 살이나 되었을까? 예순다섯? 일흔? 어쩌자고 모래밭에 저토록 거친 그림을 마구 펼치고 있을까? 어떻게….

  한 발자국 그림에 더 가까이 접근한 조지. 그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편편한 모래밭에는 그리스 사자와 지중해 염소, 금가루 모래로 살집을 만든 처녀, 손으로 깎은 뿔피리를 부는 사티로스, 바닷가를 따라 꽃을 뿌리고 춤을 추는 아이들, 하프와 리라를 연주하며 깡충깡충 뛰는 악사들, 젊은이와 유니콘. 님프와 나무 요정들이 이삼십 미터가 넘는 길이로 펼쳐지고 있었다. 도무지 해석할 수 없는 상형문자 또한. 모래는 녹아내린 구리색이 되어 어느 시대, 어느 인간이 읽어도 오래오래 음미할 수 있는 영원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였다.

  그러다 허리를 펴고 눈길을 든 늙은 화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는 천진한 모습. 어깨를 으쓱하는데 마치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한 짓을 보시오. 어린애 장난 같지 않소? 누구나 한 번은 바보가 되는 법이라오. 당신도 그럴 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이 바보 같은 늙은이를 용서해주시오. 아무렴. 아무렴.”

  늙은 화가는 발길을 돌려 갈 길을 갔다. 조지 스미스는 넋을 잃은 채 황금 가루로 그린 바닷가의 대작, 칠 팔미터를 훌쩍 넘는 대작 중의 대작을 보느라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어둠이 내리는 지도 몰랐다.

  숙소로 돌아온 조지 스미스.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너무 배가 고파서 먼저 식당으로 내려가 밥을 먹었다. 함께 식당 테이블에 앉은 부부. 조지가 메뉴를 집어들고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리고.

  “들어봐.”

  아내는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안 들려?”

  “응. 무슨 소린데?”

  “그냥 파도 소리.” 그는 잠시 눈을 꼭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어.”


  아오, 정말 좋지 않나? 뭐 열일곱 편 가운데 하나를 좀 자세하게 소개했다고 줘어박지는 않겠지.


  이것 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다락방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다가 정말로 그 세계로 가버린다는 <사르사 뿌리 음료수 냄새>도 즐겁게 읽었고, 외계 생명체 이야기인 <번데기가 된 사나이>도 흥미진진했다. 사람이 번데기가 돼? 그럼 다음 단계는 성충이다. 사람이 변태하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날까? 눈이 서너개 더 달릴 수도 있고, 몸의 피부가 뼈만큼 단단한 갑각으로 바뀔 수도 있다. 혹시 모르지 가슴 근육이 완전 빵빵해지고 등 뒤로 날개가 달려 인간 드론으로 변할 지도. 더듬이까지 생길 수 있다. 빽빽하게 공중을 메우고 있는 모든 전파를 잡아낼 수 있는 더듬이, 영어로 하면 안테나. 어떻게 변하는 지는 안 알려드리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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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4-13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가의 책을 사악한 것이 온다 한권 읽었는데요. 너무너무 별로였어요. 화무래도 첫 책을 잘못 잡은듯..... 대표작인 화씨451을 읽어봐야할까요? 그럼 좋아질까요? 아니면 이 단편집을 읽으면 좋아질까요? 저는 이 시대 sf들 좋아하거든요.

Falstaff 2026-04-13 16:51   좋아요 1 | URL
<화씨 451>은 읽은 지 10년이라 별로 기억에 있지 않습니다. 만일 추천한다면 그래서 현대문학에서 나온 단편집을 선택하고 싶은데, 아이고, 책임지지 않습니다. 저는 451이 그리 좋다, 생각했던 적이 없었던 걸로.... ㅎㅎ
 
목욕탕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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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와다 요코는 일본 출생이면서도 살기는 독일에서 산다. 독일어로도, 일본어로도 작품을 쓴다. 두 언어 모두 자주 번역해 다른 나라에서도 팔리는 국제어 가운데 하나임에도 그런다.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걸 뭐라 할 수 없지.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시라.

  근데 나는 특히 다와다의 독일 체류.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일본인이 독일에서 ‘작가로’ 살며 언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나름대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게 조금 야릇하다. “야릇하다”라는 형용사를 선택하기 위해 머리를 좀 굴렸다. 처음엔 ‘우습다’로 시작해서 ‘못마땅하다’를 거쳐 좀 더 순화된 표현이 없을까 고르다가 내 나름대로 애써서 쓴 단어가 ‘야릇하다’인 걸 고백한다. 물론 나름대로 고충이 있고, 그것도 작은 고충이 아니겠지만 뭐 그 정도 가지고 유난을 떠는지.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시인, 작가들. 알제리에서 알제리 언어를 버리고 “적국의 언어”인 프랑스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아시아 제바르 같은 인물에 비하겠느냐는 말이다. 프랑스는 그래도 프랑스어로 프랑스의 잔인한 정복행위와 통치와 독립전쟁에서의 학살을 비난했던 아시아 제바르를 프랑스 아카데미 종신회원으로 만들어주기라도 했지, 다와다 요코의 모국인 일본 정부가, 일본어로 일본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비난한 글을 썼다면 비슷한 생각을 꿈에서도 못했을 것이다. 당장 불령선인으로 몰아 감옥에서 죽여버리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을.

  다와다여, 내 말을 아니꼽게 여기지 말라.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의 후손이 당연히 따져볼 수 있는 문제이니.


  <목욕탕>은 1989년에 발표한 독일어 작품. 상상 이상으로 널찍한 자간, 행간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간신히 100쪽을 넘긴 분량의 짧은 작품이라 2018년에는 같은 책에 독일어와 일본어가 동시에 실린 새 판본으로도 출간했다고 역자 최윤영이 을유에서 ‘책읽는수요일’로 넘어가며 새로 고친 해설에 쓰여 있다. 다와다 요코가 세상이 다 알아주는 환경주의자, 반핵주의자인데 이 책 편집을 실물로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다와다의 문학작품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소개한 기념할 수 있는 책인데, 1989년까지 다와다는 아직 반핵운동가도 환경주의자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책 속에서 비슷한 내용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이이의 다른 책에서는 한 권도 빼지 않고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임에도.

  대신 소위 Hiruko 삼부작에서 이야기하는 일본의 건국신화 속 거머리 공주처럼 일본의 옛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의 산골짜기 작은 마을에 임신한 여자가 물고기 한 마리를 보고 하도 배가 고파 마을사람들과 나눠먹지 않고 혼자서 그걸 날로 다 먹어버렸다. 아들을 낳고 나중에 보니 아들 말고 엄마의 몸에 비늘이 돋기 시작해 커다란 물고기가 되었다. 이제 산에 살 수 없어져 강으로 가서 혼자 외롭게 살았고, 아들은 마을의 외로운 할아버지가 키웠다. 동네 아이들이 다툴 때마다 아들더러 네 엄마는 비늘 짐승이라고 흉을 보아 할아버지한테 비늘이 뭐예요, 라고 물어 엄마에 대해 알게 된 아들. 어떻게 엄마를 다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논이 없는 마을에 바위를 깨서 흙을 만들면 농사를 제대로 지어 마을이 잘 살 수 있게 만들 수 있겠다, 그러면 엄마를 다시 데려와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강에 찾아가 엄마한테 이 얘기를 하니까 엄마는 그때부터 자신의 몸을 바위에 부딪혀 바위를 깨 흙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마나 바위에 몸을 부딪혔는지 정말로 산골 마을에 논이 생겼을 땐 엄마의 몸에서 비늘이 벗겨져 다시 사람이 되는 대신 온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버리고 말았다.


  Hiruko 3부작의 거머리 공주 이야기는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7번, <지구에 아로새겨진>에 소개했으니 그걸 참고하시고, <목욕탕>에서는 주인공 화자 ‘나’의 얼굴에 비늘이 생기는 걸로 시작한다. 비늘은 얼굴에만 돋은 것이 아니라 잠옷의 단추를 열어보니 가슴과 팔에도 고등어 냄새가 나는 비늘이 자라 있다.

  흠. 보이는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지? 혹시 그거 땟가루 아냐? 하도 때를 밀지 않으니까 각질이 두껍게 쌓였다가 겉 각질이 푸스스 부스러진 상태. 거 솔직하게 말한다고 누가 뭐라 하나? 어차피 픽션이라서 다와다 몸에 땟가루 앉았다고 흉볼 사람도 없는데.

  그래서 <목욕탕>을 처음 읽어 나가며 이 책은 일본의 구전 전설이나 옛이야기를 현대 독일에 맞춰 다시 설계한 것이겠다, 이렇게 예상했었는데, 아니다. 이제부터 다와다 요코 특유의 정신없는 횡보를 시작한다. 다분히 포스트 포스트모던한 작품.

  목욕을 끝내고 화장도 마친 ‘나’의 집에 독일인 애인 크산더Xander가 라이카 카메라 세 대를 들고 찾아온다. 여행사 광고 포스터에 삽입할 ‘나’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렇다고 크산더가 사진가는 아니란다. 독일어 강사. ‘나’에게 독일어를 가르쳐준. 그러다 눈이 맞아 애인 사이가 되었다.

  ‘나’ 역시 여행사 광고 포스터의 모델로 크산더가 원하는 대로 다시 메이크업을 하고 포즈를 취하지만 (이건 또 뭐야!) 그렇다고 ‘나’가 모델인 건 아니다. 통역사. 독일어-일본어 통역. 이 날도 호텔 컨퍼런스 룸으로 일본, 독일 상사간 회의가 있어 통역을 하러 가야 하고, 정말로 간다. 오전 회의가 끝나고 하필이면 오늘 아침에 비늘이 돋은 걸 발견했는데 점심식사로 커다란 생선이 통째로 한 마리 나온다. 대표 셰프가 큰 칼을 들고 여자의 허벅지처럼 생긴 생선살을 발라 참석자 열한 명의 분량으로 사이 좋게 나누어 준다. 비록 ‘나’는 최고급 와인을 마시며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생선을 먹다가 콱 막혀 화장실에 가서 까무러쳤지만.


  그럼 오후 회의는 어떻게 해? 이거 사람 인심이 이렇게 야박해서야. 통역사가 화장실에서 까무러쳤는데 지금 회의가 문제야? 그렇다. 회의가 문제다. 아무도 와보지 않는다. 대신 화장실 청소 담당하는 마흔살 전후의 청소부가 ‘나’를 구원해준다. 호텔의 잡역부 쉼터에서 쉬게 하다가 급기야 자기 집으로까지 데려다 준다. 여자는 몸의 반이 심한 화상을 입었다. ‘나’는 생선 먹을 때부터 입이 콱 막혔다. 혀가 없어져버린 모양이다. ‘나’가 좋아하는 혀가자미 요리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먹지도 않았는데 왜 혀가 없어졌을까?

  정신없지? 나중에 알고 보면 이 화장실 전속 청소부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전에 화재가 나서 불타 죽은 여자 아닌가 싶다. 어떠셔? 더 들어보실래? 관두자. 책이 끝날 때까지 이렇게 정신 사나운 이야기가 좌르륵 나열되어 있다. 별로 흥미롭지 않은 언어 이야기, 언어를 발음할 수 없는 혀가 사라진 이야기 등등. 하여간 이 사람, 은근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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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4-1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약간 손이 안 가는 작가 중 하나입죠... ㅎㅎㅎㅎ

Falstaff 2026-04-10 15:4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럼 별 수 있간디요, 그냥 패스 해버려야지요. 쇤네도 이젠 끝 비슷한 기분입니다.
 
유랑극단 사계절 1318 문고 77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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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렌츠의 소설을 읽었다. 그간 10년 세월이 훌떡 지나갔네. 민음사세계문학 40, 41번 <독일어 시간>. 오래 전에 읽었고, 그리 인상깊지도 않아 새까맣게 잊은 줄 알았더니 도서관 서가에서 렌츠, 이름을 보는 순간 팍 떠오르더군.

  렌츠가 1926년에 나서 2014년까지 88년을 살다 갔는데 <유랑극단>은 2009년, 그의 나이 여든세 살 때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독일어 시간>과 <유랑극단> 사이에 42년이라는 세월이 놓여 있다. 말 그대로 노익장이다. 독후감을 쓰려고 <독일어 시간>을 찾았더니, 아이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베란다에 따로 모아두었는데 <독일어…>도 거기 자빠져 있다. 손에 먼지 묻히기 싫다. 그냥 넘어가자. 독후감 써 놓은 것도 없는 거 보니까 또 틀림없이 쐬주 한 잔 걸치고 지워버렸나 보다. 성질 하고는 참.


  <유랑극단>은 제목하고 달리 함부르크 부근에 있는 걸로 보이는 가상의 “이젠뷔텔 교도소” 수감자들 이야기다. 부조리 소설로 봐야 마땅하다. 주인공이자 1인칭 화자는 전직 교수 늙은이. 이름은 클레멘스. 수감자들은 ‘나’를 ‘교수양반’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쓰겠다. ‘나’를 타이핑할 때 작은 따옴표 붙이기가 귀찮다.

  이 늙은이 교수로 말할 거 같으면 이제 2년을 복역해서 자기 형량의 절반가량을 채웠다. 이이가 왜 들어왔는지 재미있으니 주목.

  교수 시절에 전공이 독일 문학, 이 가운데서도 “스트룸 운트 드랑 Strum und Drang” 우리 말로 “질풍노도”였다. 교수가 쓴 스트룸 운트 드랑 관련 저서는 독문학계에 널리 알려지고 권위 또한 떠르르한 책으로 웬만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 흔히들 그러하듯이 이 교수 양반도 자기 수업에 자기 책을 교재로 해 강의를 한 건 당연한데, 이게 문제가 아니라 졸업시험에서 사달이 났다.

  교수 양반이 필립 로스의 여러 책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주커먼 교수하고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자기 수업을 듣는 여학생 몇 명과 잤다. 그리고는 작품 중에서는 두 명만 나오지만 하여간 이 학생들 한테 최고점을 주었다. 팔이 안쪽으로 굽으니까. 근데 공부 열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에 불만이 있는 다른 학생들이 생각하니까 이게 샘이 나거든. 진짜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1920년대생 작가가 보기에 샘이 난 거 같아서, 그걸 학교 당국에 고발해버렸다. 독일에서는 이게 형사범죄인지 그리하여, 교수 양반이 보기에 자신한테는 전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사랑이 웬수지) 징역형을 받아 들어온 거다.

  이건 이해가 가는데 도무지 왜 그랬을까 싶은 이 비슷한 사건도 있지? 조너선 프렌즌의 <인생 수정>에 등장하는 칩 램버트 교수. 멜리사라는 여학생이 교수를 꼬여 모텔에 가서 한 번 하고 난 다음에 리포트를 좀 봐달라고, 써달라는 게 아니라 써 놓은 것을 한 번 봐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주었더니, A학점을 받고도 그걸 학교에 신고해서 교수를 해고당하게 만든 이야기. 거 참. 조심 좀 하지 다른 것도 아니고 그런 혐의로 걸리면 평생 크게 쪽팔린데 말이야.


  어쨌든 교수 양반이 머물고 있는 감방이 2인실인 모양이다. 여기에 새로 하네스라는 수감자가 들어온다. 교도소 신참은 아니고, 이미 두 번의 탈옥 미수 경력이 있는 화려한 묵은지. 교도소 안에서 하네스의 정보망을 벗어나는 수감자, 간수, 간부들은 한 명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네스는 천진함이 묻어나는 신선한 얼굴을 한 전직 사기꾼. 뭐든 입에 가져다 붙이면 그 말을 듣고 솔깃한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그건 짐승뿐일 정도. 비가 오기만 하면 훔친 경찰복을 받쳐 입고 경찰 지시봉까지 챙겨 함부르크 외곽의 도로에서 과속이나 난폭운전 등의 교통단속을 전담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 오는 날 단속에 나서는 경찰이 없어 사고의 위험이 배가 되는 것 같으니 하네스 말대로 지극한 희생정신에 입각해 한 일이다. 그저 작은 문제는 갓길에 위반 차량을 세워놓고 과태료를 물린 다음 직접 집행까지 했다는 사소한 일이었다. 운전자가 원하면 당연히 수첩을 북 찢어 영수증까지 써 주었는데도 세게 걸렸다. 하필이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복 경찰의 차를 세운 게 재수가 없었지 뭐.


  이젠뷔텔 교도소에 유랑극단이 찾아왔다. 파란 칠을 한 버스를 타고 식당에다 조잡한 무대를 설치했다. 그저 박스와 궤짝을 가슴 높이로 올려 굽을 길을 묘사했다. 무대 위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고. 식당에 모인 수감자 관객들 사이에, 어라, 무슨 신호가 왔다갔다 하는 걸 감지하는 교수 양반. 이 교도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수상한 작업은 거의 대부분 총명한 사기꾼 하네스에 의하여 기획, 집행되는데, 이번에도 뭔가 음습한 공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검지와 약지를 써서 신호가 오고간다. 서로 경고하고, 약속을 상기시키고, 인내와 각오를 요구하는 듯한.

  눈치 없는 교도소의 카를 타우버 소장이 먼저 무대에 올라 한 마디 한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것은 당신의 일일 수도 있습니다. 연극을 통해 당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와 대면해 보십시오.”

  소장의 연설을 들은 교수 양반은 씁쓸하다. 자기 책 <스트룸 운트 드랑>에 나오는 말이다. 염병할 놈. 연설하기 전에 나 한테 먼저 말해주었으면 오죽이나 좋아? 그럼에도 자기 책에서 따온 것이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다. 이젠 교수이기 전에 한낱 수감자 신세라서.

  유랑극단의 프루겔 단장이 뒤를 이어 한 마디.

  “연극은 타인의 삶을 즐거운 방식으로 알게 만드는 것이며 세계를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는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요. 오늘 공연은 <미로>라는 작품입니다. 여섯번째 동방여행에서 행방불명된 함부르크 출신의 작가 헨리 발터만의 작품입니다.”

  무대위에 쌓인 박스와 궤짝 사이의 길. 그것이 미로이다. “생긴 건 볼품없지만 저 안에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무대에는 나이든 여배우 두 명이 등장하고 이어 경찰 한 명이 나오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을 시작한다. 첫번째 실종자가 발생해 경찰이 찾아온 거다. 실종자는 정원사이며 네 아이의 아버지라나?

  미로. 모든 사람이 출구를 찾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간혹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있는 곳. 그게 지금 무대 위에 있을까, 없을까? 경찰이 직접 미로 속으로 들어가 사건을 파헤쳐 보겠다고 선언하고 정말 박스와 궤짝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그러자마자 관객석에서 교수 양반 한 명을 뺀 모든 수감자들이 열렬하게 박수를 치며 외치는 것이, “잘 가, 안녕!”

  두 여배우가 대사 한다.

  봤지? 미로는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언니, 우리 손에 아주 진귀한 물건(미로)이 들어왔어. 필요할 때나 원할 때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 우리한테, 아니 남들한테도 근심을 끼치는 것을 없애 버리는 거야.

  듣고 있던 하네스가 도무지 들어줄 수 없는 모양이다. 엉덩이를 들썩들썩 하더니 때 맞추어 휴식시간 15분. 하네스가 교수 양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며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내더니 슬그머니 일어나 식당 밖으로 나가버린다. 우리의 교수 양반도 못 이기는 척하고 슬쩍 따라 나간다. 하네스가 교수 양반더러 교도소 마당에 서 있는 버스에 타라고 한다. 맞다 파란색 페인트 칠한 유랑극단 버스. 그래서 어떻게 해? 당연히 탔지. 안 타면 소설이 안 되는 걸?

  이제부터 하네스가 대장이다. 그가 말한다. 전원 대가리를 의자 아래로 처박아.

  운전대는 거인 같은 덩치에 쾌활해 보이는 전직 축구 심판, 뭄페르트가 앉아 아무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 교도소 밖으로 버스를 몰아간다. 안단테, 안단테 소스테누토. 그러나 정문을 빠져나오자마자 오르막길은 당연하고 내리막길이 나와도 끝까지 악셀러레이터를 밟아 조지는 뭄페르트. 이들이 어디에 도착했느냐 하면 그뤼나우 시. 패랭이 꽃이 유명하고 마침 지금 패랭이꽃 축제가 한창인 곳에. 교도소 수감자 옷을 입은 채? 그럼. 옷 갈아입을 새가 어디 있었나? 시장을 비롯한 모든 시민은 이들의 복장이 유랑극단이 연극을 공연하기 위한 것으로 지레 짐작을 한다.


  근데 우리의 교수 양반은 형기의 절반을 채웠는데 꼭 나가야 했을까?

  좀 견뎌 낼 수는 없는 것이었을까? 사람은 누구나 견뎌 내야 하는 법.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고, 가끔은 타인도 견뎌내야 할 터인데. 뒤 돌아보라. 결국 사는 일이 견디고, 견디고 또 견디면서, 그렇게 견뎌내는 거 아니었나? 물론 쉽지 않지. 쉬우면 그게 사는 일이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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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4-0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렌츠의 <독일어 시간> 저는 되게 좋았습니다. 헌데 렌츠의 단편집은 정말 끝내주더군요. 렌츠의 단편집이 번역이 안 돼 있어 그렇지 단편집만 읽고 싶네요..<루드밀라>보고 렌츠의 단편집을 찾았는데 없더라구요..^^;;

Falstaff 2026-04-09 16:46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독일어 시간> 읽은 게 10년이 훌쩍 넘어서 전혀 기억에 없는데 야무님 핑계로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흠....
 
드라운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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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쓴 유색 미국인? 이게 딱, 떠올랐다. <오스카…>가 21세기 100대 서적 안에 들었다고 읽었다가 많이는 아니고 조금 실망한 책. 작품의 무게와 별개로 소설을 재미있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젖은 요즘 미국 작가들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서 그게 실망이었지, 도미니카 현대사와 뉴욕으로 이민해온 이주민들의 각박한 삶은 분명히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그래서 딱 골라 읽었다.

  희망도서 신청한 책이 내 이름으로 세 권, 아내 이름으로 세 권, 아이 이름으로 세 권, 합이 아홉 권. 이게 도서관 예산 집행 관계로 한 방에 들어올 예정이란 걸 알고서 촉각을 바짝 세우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빠지직…. 늙은 바퀴벌레의 안테나에서 방출되는 노란 방사능 보이시지? 희망도서 한 방에 들어오면 그걸 보름 동안 다 읽고 반납해야 하는데, 아이쿠, 이번엔 기한 안에 설 연휴가 끼어 있다. 하여간 그런 부담 속에 고른 디아스의 소설집이 기특하게 가벼운 분량이기도 하네? 큼직한 글씨체로 280쪽. 서슴없이 골랐다.


  화자이자 주인공의 이름이 낯익다. 유니오르. <오스카…>에서 얘기했듯, 유니오르Junior가 누구냐 하면, 작가 주노 디아스의 이름 주노Junot를 살짝, 아주 조금 바꾼 것. 주노 디아스는 1968년생으로 1974년에 미국으로 이민해 뉴저지에서 살았으니 그때가 여섯 살이었다. 그러니 굳이 《드라운》의 유니오르를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지만 작가가 브루클린 도미니카 이민들의 커뮤니티에서 듣고 본 동족 가운데 또래의 모습을 유니오르를 통해 보여주었다는 건 뭐 말을 안 해도 삼천리다.

  이 책은 놀랍게도, 하여간 나는 놀랐는데, 주노 디아스가 이렇게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가인 줄 몰랐기 때문이 첫번째요, 《드라운》이 이이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두번째, <오스카…>처럼 지극한 말장난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 세번째였다.

  책은 어린 시절, 소년 시대까지 도미니카 시골에서의 삶.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는 유니오르의 유년기때 돈 벌러 맨손, 맨발로 미국에 가고, 미국 가서 돈을 벌기는커녕 다른 도미니카 출신 여자하고 살림을 차렸고, 엄마는 이걸 알고 속을 썩여가며 아빠 미국 가는 차비 보태 준 외할아버지와 형, 이렇게 4인 가족의 헐벗은 생활을 그린다.

  드디어 엄마와 형 그리고 유니오르가 미국에 도착해 보낸 청소년기. 보잘것없는 마약 판매로 돈을 긁어모은 청소년 유니오르의 사랑과 허망한 탕진도 나오고, 청년이 되어 부잣집 전용 가구점의 운송 및 설치 기사로 일하는 모습도 나온다. 이 책을 보면 이런 청소년, 청년기를 거친 유니오르가 비록 시간이 나면 같은 호 몇 권의 교양잡지 <플레이보이>를 훔쳐 읽기도 하지만 나중에 소설가가 되리라는 건 꿈꾸기 힘들 거 같은데, 하여간 <오스카…>의 유니오르와 달리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이렇게 소년, 청소년, 청년기의 유니오르와 가족 이야기가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나열되어 있는 소설집. 그래서 굳이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으로 읽어도 괜찮고, 그냥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으로 읽어도 전혀 문제없는데, 진짜 문제는, 이 책이 데뷔작으로는 의외적일 정도의 찬사를 받았다 해도, 다른 이들은 모르겠고, 내가 읽기에는, 읽어주기에는, 아이고, 이걸 어쩌나, 도통 재미가 없더라는 것.

  하긴 읽으면서도 아홉 권의 희망도서가 언제 들어오나, 탐색하느라 너무 열심히 더듬이만 더듬더듬 더듬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재미없다고 이렇게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래, 지금 절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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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4-08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토해야겠다. 세상에 비밀이 어디있어?
˝안테나에서 노란 방사능˝은 최승자의 제목 잊은 시에서 나오는 귀절이다. 그이의 싯귀에서 가져온 건데... 그이가 맞을 거다. 하여간 내 머릿속에서 나온 귀절은 아니라는 뜻이다.

망고 2026-04-08 11:54   좋아요 1 | URL
바퀴벌레의 안테나에서 방출되는 노란 방사능. 이 표현 너무 재밌고 기발해서 읽으면서 감탄했는데 시에서 따온 거였군요ㅋㅋㅋ내내 기억할만한 재밌는 표현입니다😆 나도 나중에 써먹어야지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4-08 14:49   좋아요 1 | URL
아휴, 저는 안테나의 노란 방사능 같은 건 도저히 떠올릴 깜냥이 되질 못합니다. ㅎㅎ
평소에 신땡숙 흉이나 안 보고 다녔으면 모른 척할 텐데 그냥 넘어가기가 영 캥겨서 걍 고백해버리고 말았습니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