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업 묘보설림 20
왕웨이롄 지음, 조은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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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물고기》를 읽고 백일이 지나 다시 왕웨이롄을 읽는다. 인상깊은 작가였나보다. 이이의 이름이 눈에 밟히자마자 서슴지않고 집어 들었다. 그런데 기대가 크면 언제나 기대만큼 미치지 못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거니까. 《책물고기》가 2015년, 《생활수업》이 2022년. 7년 후의 작품들. 그동안 왕웨이롄은 광저우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직업이 있으면 아무래도 긴 작품을 쓰기 힘들겠지. 전작에는 작품이 제법 긴 분량의 단편을 실은 소설집이었던 반면, 이번 책엔 한 편 정도만 분량이 있고 나머지 일곱은 그렇지 않다. 페이지 수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뭐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일 긴 작품 <침묵천사>가 제일 기억에 남고 어제 읽었는데 오늘 새벽에 독후감 쓰려니 <침묵천사> 말고는 기억에 남은 작품이, 아쉽게도, 없다. 다시 뒤적이면 생각이야 나겠지. 하지만 탁, 떠오르는 게 없는 바에 새삼스레 또 뒤적이고 싶지 않다. 그제 읽은 주이현의 소설집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는 미리 페이지 표시를 해둔 인용 빼고 전부 기억이 나 바로 전에, 한 십분 전쯤에 독후감을 썼다. 그러니 왕 선생은 조금 더 분발하셔야겠네. 웃자고 하는 얘기다. 열 받지 마시라.


  <침묵천사>. 대학 다니며 연애를 해, 작가가 말한대로 쓰자면, 섹스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더니 아이가 말을 하지 못한다. 듣는 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발성 기관에 하자가 있는 거 같다. 너무 젊어서 결혼을 하면, 예전 봉건시대야 의무사항이라 이냥저냥 평생 살 수 있었다고 쳐도, 지금 시대는 한 때의 기분 또는 흥분에 좌지우지된 경우가 많고, 이 커플 역시 젊음 특유의 불길을 감당하지 못해 결혼과 출산까지 이른 전형적인 젊은 부부로, 사는 내내 폭풍 같은 부부싸움으로 일관하다가,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 아들이 나온 것에 결정적으로 실망한 아내가, 자기 인감도장 찍은 이혼서류를 내밀고 그냥 나가버렸다. 이래서 홀아비와 어린 아들 둘만 사는 가족과 아파트가 무대.

  작가가 남자니까 이 홀아비의 직업도 글 쓰는 걸 업으로 하는 착해 빠진 남자. 중국은 대부분 맞벌이 부부. 이 집도 부부가 함께 벌어 아파트 융자금을 갚아 나갔다. 그러다 아내가 나가버려 혼자 벌이로 융자금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아파트를 팔까 했지만, 아들 샤오이한테 엄마의 기억이 담긴 집을 지켜주고 싶어 어떻게 할까 궁리하다가, 남는 방 하나를 월세 주기로 했다. 이를 알고 아빠의 절친이 자기 고향 친척 가운데 괜찮은 여성 샤오징을 소개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러면 한 집에 열 살 정도 먹은 사내 아이와, 아이 아빠, 그리고 비교적 젊은 여성이 동거하는 입장. 뭔가 사건이 터질 것 같지? 게다가 아빠는 여지없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점잖고, 예의 바르고, 영낙없는 책상물림에, 떠난 아내 이후에 다른 여자를 안아본 적도 없는 순정파이자, 아이고 모르겠다, 하여간 그렇다. 말 못하는 아이야 제목대로 침묵하는 천사니까 착하기 이를 데 없고, 이런 집에 함께 살기로 절친이 보증한 여성이니 또 말 해 뭐할까, 이하 동문이지. 이 정도면 읽으면서 이들이 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대로, 순서대로, 각본대로 똑바로 간다면 어찌 왕웨이롄일소냐, 하는 심정도 든다. 그렇겠지?


  중국의 저 북서쪽 끝자락 산시성 사람 윌리엄 왕의 솜씨가 좋다. 읽는 맛도 있고 다 그런데, 전작 《책물고기》 만큼은 아니었다. 혹시 모른다. 저번엔 기대하지 않았고, 이번에 기대가 너무 컸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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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인의 노래 2 - 동부의 목소리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8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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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 여 페이지. 허, 참. 무지하게 길고 허무하게 지루하기만 한 이 책을 활자 하나 안 빼고 다 읽은 내가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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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27 20: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안 읽을 거였지먼 왠지 더 뿌듯합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6-05-27 20:41   좋아요 2 | URL
이 책 ˝처형인의 노래 2˝를 읽고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은 민음사세계문학 시리즈 가운데 제일 두꺼운 벽돌을 격파했다는 것 말고는 없을 듯합니다. ㅋㅋㅋ

건수하 2026-05-27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먼 메일러 궁금하지만 읽고 싶진 않았는데 폴스타프님 후기 보니 역시 넘어가도 되겠습니다 :)

Falstaff 2026-05-27 21:41   좋아요 1 | URL
이 양반 책은 민음 세계문학에서 나온 세 권 읽어봤는데요, <밤의 군대들>만 읽어도 괜찮을 듯합니다. 하여간 한 작품 정도는 읽을 만한 좋은.... 작가 말고요, 좋은 기자 혹은 취재인 듯하네요. ㅎㅎㅎ (<죽은 자와 벌거벗은 자>를 쓰기 위하여 장교로 갈 수 있는데도 굳이 졸병으로 자원 입대해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니 골통은 골통인 모양입니다. 취미 생활로 자기 아내 두드려 팼다는 건 잠자냥님 포스트에서 읽은 바 있고요.)

건수하 2026-05-27 21:51   좋아요 1 | URL
<성 정치학>에 노먼 메일러의 작품을 분석한 챕터가 있었는데… 여성에 대한 상징이나 묘사 등이 별로더라고요. <죽은 자와 벌거벗은 자> 랑 <An American Dream> 이었네요.

페넬로페 2026-05-27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지하게 길고 허무하지만,
그것을 견디며 읽어내신 팔스타프님!
격파한 그것만으로도
진정한 독서인이십니다!

Falstaff 2026-05-28 04:58   좋아요 1 | URL
아이쿠,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냥 동네 도서관 첨지 정도랄까요. ㅋㅋㅋ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주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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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이현. 드디어 2000년생, 21세기 출생 작가의 책을 읽는다. 아직 동국대 문창과를 졸업하지도 않았는데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데뷔하더니 벌써 소설집을 냈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에는 데뷔작을 포함해 모두 다섯 편의 중단편을 실었다.

  나는 이 책에서 <보아>를 제일 먼저 읽었다. 네 번째 순서로 실린 작품이다. 2024년 6월 웹진 <비유>에 발표했던 작품이라고 적혀 있다. 이어 다음 날 아침에 데뷔작이자 표제작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부터 순서대로. 일정상 퇴근 시간에 맞추느라 제일 짧은 거 하나만 더 읽고 가자, 싶어서 고른 것이지 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보아>를 읽으면서, 앗, 또 한 명의 문제 작가가 나온 건가? 이렇게 생각했다. 강렬한 문장들. 첫 문단부터 그러했다. 두번째 문단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홀로 먹고 자고 걸을 수 있는 작은 사람이 되었을 때, 너는 이미 기체와 빛으로 존재하기를 그만 둔 뒤였지. 그러는 대신 너는 그늘과 그림자로 존재하기를 택한 것 같았다. 너는 나의 눈이 닿지 않는 먼 곳에서, 일방적으로, 언제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너를 절대로 돌아볼 수 없었어. 그래도 나는 네가 나의 뒷면에, 내 시선의 반대편에, 모든 종류의 사각지대에 늘 머무르고 있음을 알았다.”  (p.256)


  보아?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낸 스타 가수이자 탤런트 보아, 권보아? 그이를 염두에 두고 제목을 지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이해하는 보아는, 화자를 보는 인격이다.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 비슷한 것. 예컨대 내가 거울을 보면 거울 속의 또다른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로부터 ‘보임’을 당할 때, 그 보는 행위를 하는 사람 비슷한 것. 어쩌면 또다른 나. 프레임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무한 공간 속의 나.

  사실 나를 관찰하는 무엇에 관한 생각은 누구나 한 번씩 하는 거 아닌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일단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읽었다. 하지만 조금 더 읽어보면 위 인용문에서 화자 ‘나’가 “홀로 먹고 자고 걸을 수 있는 작은 사람이 되었을 때”는 정말로 젖먹이가 유아로 성장했을 때를 뜻한다. 저 1950년대 장용학 식으로 말하자면 화자 ‘나’에게 이름이라는 속박이 주어져 ‘나’의 행복이 거덜난 순간과 비슷할 수 있다. 그렇게 화자 ‘나’는 유아가 되고, 소년이 되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다. 이때 ‘나’ 앞에 다시 등장한 보아. 이때는:

  “나는 내 주변의 어떤 아이들을, 어떤 어른들을, 나아가 어떤 행인들을 띄엄띄엄 건너다니는 너를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할 지, 어떤 식으로 대해야 할 지, 어떤 식으로 소화해내야 할지 늘 고민스러웠지. 보아, 네가 내게서 떠나 있던 동안, 내가 어떤 시간을 견뎌왔을지 상상해본 적 있어? 없다면 당장 시작해봐. 어땠을까? 나는 슬펐을까? 외로웠을까? 두려웠을까? 반대로 아주 멀쩡했을 수도 있지만, 전부 아니야. 나는 화가 났다. 늘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이렇게 주이현은 자신의 격동하던 학창 시절을 화자 ‘나’와 보아를 통해 이야기한다.


  다음날, 일찌감치 출근한 열람실에서 이이의 데뷔작을 읽는다.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역시 강렬한 문장들. 예를 들어보자.


  “무심코 돌아본 곳에 묽은 액체처럼 엎질러진 자신의 흔적들이 보일 때, 멈추지 않고 한 뼘씩 앞으로, 도 아래로 흘러가는 그것의 궤적을 발견할 때, 가슴속에서 무언가 밝고 따뜻한 기운이 차오르곤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그러나 율은 정작 그런 것들이 궁금한 적이 없었다. 율이 진정 알고 싶었던 것은, 율에 의해 모서리부터 젖어가고 있는 루와 주안의 입장, 생각, 감상 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조금씩 가까워지는 율의 발소리가 그들의 머릿속에서도 제대로 울려 퍼지고 있는가, 들리고 있는가, 눈치채고 있는가, 대비하고 있는가, 무엇이, 바뀌어가고 있는가, 율은 그런 것이 궁금했다.”  (p.80~81)


  한 컷을 중첩에 중첩을 보태 묘사하며 긴 문장 속에 담는다. 긴 문장을 읽으면서 즐거울 수 있는 때는 문장 안에 리듬감이 담겨 있을 때일 경우가 많다. 그러면 문장이 길더라도 독자가 알아서 호흡을 유지하며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의미를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우스개로 자주 말하는 “소설작법”에 의하면 긴 문장은 지옥이다. 그러나 간혹 사실이 아니다.

  하여간 데뷔작이자 표제작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인 P시는, 아마도 작가가 직접 경험해본, 또는 우연히 살던 곳(이나 근처)에서 벌어졌을 수도 있는 땅꺼짐, 싱크홀을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 보이는데, 이제껏 내가 매체에서 읽어보지 못한 정도의 대규모 싱크홀이 발생해 P시의 상당한 부분이 꺼진 땅 속에 함몰되는 광경을 담았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시선은 “설탕조각처럼 부서져 내리는 콘크리트 잔해에 뭉개져 죽어버”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있지 않고, 성별이 확실하지 않은 등장인물 루, 주안, 그리고 율의 이탈離脫에 있다.


  연달아 읽은 이 두 작품에 국한해 말하자면, 나는 주이현에게 반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책을 더 읽었다. 그래서 좀 허탈했다.

  주이현은,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학생이라고 면피하려는 생각이 있었을까? 제일 마지막에 실은 <백야의 문은 얼어붙지 않으며>만 이야기해보자. 데뷔 즉 등단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일단 책을 냈으면, 독자가 그 책을 읽으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이건 곧 프로페셔널, 즉 프로 작가여야 한다는 뜻이다. 주이현도 전업작가로 나선 걸로 아는데, 전업작가가 120쪽에 육박하는 짧지 않은 분량의 “습작”을 독자에게 읽어보라고 내놓으면 안 되지. 프로면 프로답게 전에 쓴, ‘쓴’이 아니고 ‘써본’ 습작 정도는 노트북에서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없었을까?

  길게 썼다가 지웠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독자가 주이현의 작품을 유심히 읽기 시작했다. 또 한 독자가 주이현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고, 다른 또 한 명의 독자가 주이현의 작품을 유심히 읽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런 것도 무겁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건필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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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5-27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딸아이가 2000년생인데
이제 밀레니엄 베이비들이 사회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군요.
왠지 팍팍 응원하고 싶어집니다.

Falstaff 2026-05-27 15:2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 마음 제가 압니다. 저도 아이들하고 같은 나이의 사람들 보면 괜히 더 반갑고 막 그렇더라고요.
 
사랑하는 습관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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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스 레싱을 읽으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작품이 해피엔드로 끝나기 바라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레싱이 심술 사나운 성격이라 그런 건 아니고, 사람의 심상과 마음의 변동, 이에 따른 행동의 이중성 같은 것을 솔직하게 묘사한다. 그게 너무 솔직한 바람에 독자는 자기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박아 놓고 절대 꺼내 보고 싶지 않았던 지나간 실수, 잘못, 악의, 행위 같은 것들을 기어이 들춰내게 만든다. 정말 가차없는 칼날이다.

  나는 레싱을 사십대 말에 읽기 시작했는데 단 한 번도 즐겁게 읽지 못했다. 읽고 난 다음에는 어김없이 어딘가 좀 불편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작가. 독자에게 결코 친절을 베풀려 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작가로 새겨져 있다. 하긴 자신의 일생이 참 다사다난, 다양해서 그럴 수 있겠다.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하여간 그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이 소설집 《사랑하는 습관》을 읽으면서, 일곱 편의 단편과 두 편의 중편 소설을 읽으면서, 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작품들이 대개 그랬다. 등장인물의 감정의 변화, 그걸 변심이라 부르던, 질투라고 하던, 그냥 변덕이라고 여기던 간에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 결국 생각과 행동의 일관을 깨뜨리는 현상, 전에는 아마 이해하기 힘들었던 변화가 이제는 등장인물이 그렇게 바뀔 수밖에 없다고 공감하게 되고, 그래서 슬퍼진 거 같다. 내가 내 마음, 정서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것 같다”라고 하는 심정을 이해해주면 좋겠다.

  레싱의 작품을 읽으면서 우울해지는 대신 슬퍼지는 건, 기본적으로 작가의 시각이 사람 존재를 긍정하는 쪽이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한다. 남자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워도, 여자가 의도적으로 남자에게 상처를 주어도, 레싱은 딱 한 장면을 강조하여 드러난 것만 비난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당사자의 바꿀 수 없는 성향일 수도 있고, 환경 때문에 그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으며, 또한 많고 많은 사람 사는 일에 그런 것도 생길 수 있다고 여긴다.

  사람들이 도리스 레싱을 연상하면 페르시아 출생과 아프리카에서의 성장, 제1,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 결혼, 가정, 모성, 계급, 이데올로기의 진보성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구분 또는 특징지우려 하는데, 이제 나는 이이의 이런 모든 성향을 다 합해 휴머니스트라 말하고 싶다.

  레싱에 대한 내 생각이 이렇게 바뀔 줄 나도 몰랐다. 처음 읽은 이이의 작품이 아마 거의 대부분 독자들과 비슷할 텐데, <다섯째 아이>, 이어서 <런던 스케치> 이런 순서로 읽었다. 하여간 불편한 작품들. 지금 다시 읽어도 불편할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그랬다. 암울하고, 무겁고, 두렵기도 하고, 내가 레싱의 책이 눈에 띌 때마다 읽게 될 줄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을 만큼 거리감이 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레싱에게 휴머니스트라고 하게 됐을까? 여전히 레싱은 비극적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비극 속에서 슬픔을 발견하고, 가끔 슬픈 비극은 아름다움을 만들기도 한다. 혹시 내가 그걸 본 것일까? 설마. 어떻게 불편한 레싱 안에서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인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러나 봤을 것이다.

  이 책은 1957년에 초판 출간한 것을 번역한 것이다. 이후 1979년에 레싱은 다른 작품들을 추가해 《19호실로 가다》라는 제목으로 다시 내놓았다. 문예출판사는 1979년에 추가한 작품들은 따로 골라 《19호실로 가다》로, 이전 초판본은 원래대로 《사랑하는 습관》으로 냈다. 그래서 《사랑하는 습관》의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중이거나 끝나고 얼마되지 않은 1950년대 초반까지가 시간적 공간이다. 런던은 맹렬하게 공습을 받고 있어서 3년간 연애하던 약혼자를 특별한 이유 없이 걷어찬 아가씨의 집에 폭탄이 떨어져 아버지가 산산이 부서져 죽은 이야기도 나오고, 전쟁이 끝나고 독일의 동계 휴양지로 여행간 영국인 연인이 아직 패전의 응결을 해소하지 못한 독일인과의 관계도 이야기한다.

  전후의 불안정한 시대. 뭐든지 다 불안했던 시기. 절정기를 누리기 시작한 아메리카와 달리 전반적으로 가난한 유럽인들, 동쪽에서부터 거침없이 밀려들기 시작한 볼셰비키 물결로 그리 될 수밖에 없었던 냉전의 시작, 스탈린의 죽음을 애도하는 영국 시민들, 젊은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바람에 공급과잉이 되어버린 젊은 아가씨들, 아직도 군데군데 폐허로 남은 옛 시가지, 이 와중에 큰 돈을 번 새로운 부르주아, 아직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옛 귀족 떨거지들. 이런 것들이 모두 레싱의 레이더에 걸린다. 여전히 조금은 암울하고, 무거우며, 전망도 보이지 않지만 삼십대 막바지에 이른 레싱은, 내가 잘못 읽었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일찍 달관했는지 조금씩 휴머니스트가 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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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27 2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폴스타프 님 이 리뷰 읽고 오랫동안 묵혀두기만 했던 이 책 꺼내 읽었습죠… 참 좋았습니다. 전체적으로 전쟁 후 그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어서 더 그런 거 같기도 하고요.

Falstaff 2026-05-28 04:57   좋아요 0 | URL
옙. 단편집에 야박한 쇤네도 오랜만에 주저없이 5별 찍었습니다. ㅎㅎ
 
뜨거운 피 페이지터너스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빛소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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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에 네미롭스키 선집의 1번으로 출간한 《무도회》를 재미있게 읽고 네미롭스키를 더 읽어봐야겠다, 마음을 먹었다가 금세 잊은 적 있다. 이번달에 책을 읽다가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여행 중에 늘 가지고 다니지만 정작 집중해 읽지는 못하는 책이 네미롭스키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아차,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도착 며칠 만에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은 이이를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그리하여 단박 읽기로 결정한 것이 저번에는 소설집이었으니, 이번엔 장편소설 <뜨거운 피>였다.


  주인공 화자의 이름은 실베스트르. 그러나 30년 전쯤 ‘나’를 사랑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내가 이탈리아의 곤돌라 뱃사공을 닮았다고 하면서 붙여준 별명이 ‘실비오’였다. 그래서 이 시골 동네의 별로 친하지 않은 주민들은 ‘나’를 실베스트르라고 원래 이름으로 부르고, ‘나’와 친하게 지내는 이웃과 친척은 대개 실비오라고 한다. 독후감은 실비오라는 3인칭 별명으로 쓰겠다. 나는 3인칭으로 쓰는 게 편하다. 이유는 그것뿐이다. 편해서. 편한 건 거의 언제나 좋은 거니까.

  사실 이 소설의 중요한 스토리 가운데 하나가 누가 실베스트르에게 실비오라는 별명을 지었는지, 이걸 추리하고 맞추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독후감에 입도 벙긋하지 않을 터이다. 이 책, 나는 내 취향에 맞아 재미있게 읽어 오랜만에 별점 만점을 줄 수 있을 정도, 웬만하면 당신도 직접 ‘아리따운 아가씨’가 누구인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럼 이게 추리극일까? 읽기에 따라 그럴 수 있겠다. 혼외 연애를 둘러싼 치정극이라면 그게 제일 재미있는 추리극 아닌가? 그럼 작품 속 이야기를 소개해보자.


  장소는 프랑스 중부의 고집 센 농부들이 모여 사는 농장지대. 주민들은 대개 비사교적이며 형편이 넉넉하다. 자기 땅에서 이웃을 경계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랜 관습으로 굳어져 남의 일에 자신이 끼어들지 않게 매사에 조심한다. 외부인에게 배타적이고, 커뮤니티 안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짓을 저질러 따돌림을 받으면 거의 암묵적 압박을 받아 헐값에 자기의 땅과 시설을 다른 주민들에게 팔아 치우고 타지로 떠날 수밖에 없게 유도한다. 농민들 대다수가 그러하듯이 땅 욕심이 많아 이런 경우가 생길 때마다 새롭게 큰 농장주가 한 명씩 생긴다. 에밀 졸라의 작품 <대지>에 나오는 푸앙 가문 사람들을 연상하면 아마 비슷할 지도.

  실비오는 늙고 가난한데다가 홀아비 신세. 아니, 결혼한 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숲 깊은 허름한 집에서 은둔하며 말년을 보내고 있다. 실비오는 젊은 시절 이 답답한 고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마자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 받아 그걸 차근차근 팔기 시작한다. 젊은 청년이 부동산을 급하게 파는데 그게 제값을 받을 수 있겠어? 그리고 이런 완고한 동네 사람들이 땅을 팔아 현금을 만들어 자기 고장을 뜨려고 하는 청년에게 제 값을 주고 그걸 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관습이었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터이지만, 어머니 정도는 실비오가 얼마든지 구워 삶을 수 있어서 과감하게 그렇게 했다. 실비오는 현금을 가지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에 가서 사업을 벌였다. 구리, 향신료, 금 등. 취급품목은 화려했으나 용기와 배포만 있지 경험은 하나도 없는 초짜 사장은 당연히 탈탈 털려 불과 2년 만에 집에 돌아와, 잠깐 연애를 해 실베스트르 대신 실비오라는 별호를 얻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와 늙어가고 있다.


  그래도 실비오가 성격이 올바라 책을 시작하는 가을 저녁 무렵 그의 작은 집에 사촌 에라르 부부와 아이들이 놀러 와서 불 앞에 모여 가벼운 펀치를 마시고 있는 것으로 막이 올라간다. 프랑수아와 엘렌 사이에 맏딸 콜레트가 있고, 아래로 두 아들과 어린 딸을 두어 2남2녀의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콜레트와 이웃 사람들이 보기에 자기 부모, 프랑수아와 엘렌 부부는 평생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조금의 도덕적 실금도 가지 않은 채 결혼 20여 년이 지나도록 진실한 사랑을 유지하고 있는 모범가족이다. 오늘 모임은 콜레트의 약혼자 장 도랭을 실비오 아저씨에게 소개하기 위한 것.

  실비오가 보기에 사위 후보 장이 장인자리 프랑수아와 비슷한 성격인 듯하다. 예민하고 섬세하며 거의 여성적이고 아내가 지배하기 쉬운 남편 스타일. 매사에 조심스럽고 비사교적이며 수줍음을 타기까지 하는 부류의 남자들.

  이 가족모임에서 콜레트는 습관적으로 자기 부모가 결혼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달라고 조른다. 핑계김에 그걸 요약해보자.


  엘렌의 아버지, 그러니까 콜레트의 외할아버지는 결혼을 두 번 했다. 첫째 아내가 낳은 딸이 엘렌. 두번째 아내도 첫 결혼에서 얻은 딸 하나를 데려왔다. 세실 쿠드레. 세실이 엘렌의 의붓 언니. 계모는 기가 센 여자였던 반면에 세실은 어디가 좀 모자라 보인다는 평을 얻었다. 집에서 결혼시키기 위해 몇 번 맞선 자리를 마련했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해서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하다가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훗날 갓난 여자 아이를 입양해 이름을 브리지트 드클로라고 짓고 나름대로 잘 키우다가 브리지트가 성년이 될 즈음 일찍 세상 떴다.

  프랑수아의 아버지는 프랑수아를 원래 세실과 결혼시키려 했다. 그래 부자가 엘렌의 집에 가보니 뚱한 성격의 세실은 눈에도 들어오지 않아 그냥 돌아가려고 현관문을 열자 눈 오는 날 양 볼이 빨갛게 얼었으면서도 짓궂은 남자 아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생기 넘치고 매력적인 열세 살 소녀가 눈에 띄었다. 사랑은 종종 한 눈으로 결정된다. 프랑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알게 된 프랑수아는 곧장, 지금은 아니지만 아이가 적당한 나이 열여덟 살이 되면 꼭 결혼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일단 공부를 좀 해야할 것 같아 파리로 떠나 열심히 일했다.

  당시 엘렌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늙어 병이 들었고, 계모는 엘렌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아마도 엘렌은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순 살이 넘은 부자 늙은이를 선택해 열일곱 살 때 결혼을 했다. 당연히 둘 사이에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남편은 모르겠는데 아내 엘렌의 마음 속에 사랑은 한 오라기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래도 아내라는 의무는 다 하겠다고 다짐한 엘렌. 이이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가히 홍살문이라도 하나 세워줄 만했다. 결국 심판의 날이 왔을 때, 남편은 엘렌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정도의 유산만 물려주고, 자기가 평생 모은 거의 전부의 재산은 자기 가문의 형제, 조카들에게 유증해버렸다.

  과부가 된 엘렌. 지금 프랑수아가 오면 당장 결혼할 수 있을 터인데 그는 보헤미아에서 교사로 지내고 있어 적어도 1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기다렸다. 젊디 젊은 남녀, 프랑수아와 엘렌. 그토록 먼 거리에서 각자 홀로 지내며 정말 멀리 떨어진 연인만 사랑하고, 생각하고, 서로를 연상하면서 몸을 달래고 있었을까? 이렌 네미롭스키는 이 문제를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럴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사람 사는 일에 집중해, 사람의 본질을 탐구하는 이렌 네미롭스키. 가히 눈이 매섭다.

  엘렌은 이 과정을 뺀 채 조만간 결혼하는 딸 콜레트에게, 그리하여 아빠가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결혼해 너와 세 동생을 낳고 편안하게 살고 있단다, 라고 언제나처럼 이야기를 마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콜레트는 장 도랭과 결혼해 도랭의 집이자 직장인 풍차 방앗간, 물랭뇌프에서 산다. 방앗간 아래로 거품이 이는 녹색의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곳. 실비오도 가끔 그곳에서 송어낚시를 하고 그랬다.

  콜레트. 실비오가 엘렌의 아이들 가운데 제일 아끼는 당조카. ‘당조카’는 북한말이고 당질이 옳은 표현이라는군. 하여간 콜레트 당질은 아빠를 닮지 않아 웃는 눈과 큰 입에 불꽃의 뜨거움을 품고 있는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엄마 아빠의 가정처럼 남편 장 도랭과 즐거운 신혼을 보내던 콜레트. 그렇게 깨를 볶는 신혼을 지내고 있을 거라 누구나 생각하던 시기. 장 도랭은 이틀 예정한 출장을 갑자기 하루만에 마치고 다음날 밤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에서 내려 방앗간 옆을 흐르는 강변의 나무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어느 검은 그림자와 몸싸움이 벌어졌고, 애초 예민하고 섬세하여 완력이 세다고는 할 수 없는 장은, 다리 구간에서 난간이 없는 곳까지 밀려가 강에 빠져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

  이야기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급류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여태까지 이렌 네미롭스키가 숨겨왔던 모든 비밀들이 이제부터 하나씩 베일을 벗기 시작해 사람이 산다는 것의 날 모습이 드러나는데, 허, 그것 참.


  왜 여태 네미롭스키를 잊고 있었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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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6-05-25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도회」참 재미있게 읽고 다른 책도 두 권 사두고 저 또한 잊고 있었네요. 이 책도 ‘읽고 싶은 책‘으로 찜만 해두고...저는 빛소굴출판사 페이지터너스 시리즈도 좋더라구요.

Falstaff 2026-05-25 18: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저도 곧 네미롭스키 전작 읽을 예정입니다. 이 책의 별점이 4.5였는데요, 아무래도 만점을 주기엔 뭔가 캥겨서리... ㅋㅋㅋㅋ 그렇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