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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ㅣ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4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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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을 다 읽었다. 3년 반 걸렸다. 이젠 제일 먼저 읽은 <가을>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곤혹스러웠던 느낌만 남았을 뿐. 다행히 이후 <겨울>, <봄>, <여름>은 훨씬 재미있고 수월하게 읽었다. 계절 4부작에 들어와서 앨리 스미스는 브렉시트, 난민 수용과 구치custody, 환경 등 정치 문제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초기 작품에서 읽었던 발랄한 엽기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좀 아쉽다.
<여름>이 제일 재미있었다. 별점을 준다면 넷 반이 적당할 듯. 차마 다섯까지 올리지 못하겠지만 넷은 많이 아쉽다.
본문을 시작하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 이렇게 쓴다.
“불과 몇 달이 지났을 뿐이다. 이 나라에서 평생 또는 생의 대부분을 산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추방 협박을 받아 추방되기 시작한 그때로부터.
그리고 결과가 바란 대로 나지 않자 정부가 의회를 폐쇄해 버린 그때부터.
많은 이들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거짓말을 한 사람들에게 투표하여 권좌에 앉혀놓은 그때로부터.
어떤 대륙은 불타고 어떤 대륙은 녹아내린 그때로부터.
전 세계의 권력 쥔 자들이 종교, 민족, 섹슈얼리티, 지적능력, 정치적 입장 등의 잣대로 사람들을 가르기 시작한 그때로부터.”
다음 장chapter로 가면 구체적인 시점이 나온다. 브렉시트 시행 1주. 나는 헷갈린다. 1주週 7일? 1주周 365일? 헷갈림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좋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
생의 대부분을 산 사람들을 체포, 추방하기 시작하고, 의회를 폐쇄하고, 오스트레일리아는 불타고, 북극의 빙하는 녹아내리지만 많은 사람들은 라디오, 텔레비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말했다. ‘그래서So what?’ 앨리 스미스는 통탄한다.
“역사가 확증해 주었듯 우리가 무관심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정치적 무관심의 배양이 어떤 결과를 낳는 지에 대해 각종 사실을 나열해가며 이야기하고 출처와 그래프와 사례와 통계를 사용하여 예증하는 데 평생을 바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부인하고 싶다면 누구나 단숨에 일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힘센 한 마디로… ‘그래서?’” (p.15)
백기완이 노랫말을 쓴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한 소절,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가 퍼뜩 생각났다. 무서운 말이다. 투쟁을 위해 내가 앞장선다. 대열에 서지 않은 자, 너희들은 모두 죽은 자, 시체들이라는 웅변.
앨리 스미스가 말하는 무관심의 배양과 ‘산 자여 따르라’의 공통점은 자신과 다른 의견은 전혀 받아들일 기미가 없는 것. 오직 자기 뜻만이 유일한 진실이고 가야 할 길이라는 주장이다. 합의 불가능의 최고선임을 선언하는 모양새인데, 의도는 알겠다. 일단 넘어가자.
“이 나라에서 평생 또는 생의 대부분을 산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추방 협박을 받아 추방되기 시작한 그때” 라고 했는데, 이게 오늘 이야기해야 할 제일 큰 주제이다. 이들이 누구일까?
1.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유입한 난민
2. 노턴과 북동부 지역에서 브라이턴으로 집단 이송된 수많은 노숙인
3. 중국인들이 뱀이든가 천산갑을 잡아먹어 발생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
이래서 <여름>의 큰 주제는 수용 또는 격리이다. 잉글랜드 현대사에서 격리가 브렉시트 또는 COVID-19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때도 2차 세계대전 때도 있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얽히고설켜 서로 안면을 트고 좋은 관계를 지니게 되는 건 <봄>의 경우와 마찬가지고 같은 플롯인데, 이 작품 속에서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잉글랜드에서 낳고 소년시절까지 자란 후 독일로 돌아가 조금 지내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백 살이 넘은 대니얼 씨. 이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이 지원 입대하려 했으나 해군 당국으로부터 깨끗하게 거절당하고 대신 이곳 저곳의 수용소를 거쳐 마지막으로 서남부 섬에 집단 수용된다. 이때 잉글랜드 병사는 이들에게 적대감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시내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고 오다가 무겁다고 병사가 소총을 건네고 자기는 맨몸으로 잠깐 걷기도 했을 지경이었으니. 길지 않은 수용기간을 끝낸 1943년에 대니얼은 다시 해군에 입대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한다.
전쟁 전부터 영국에서 살던 모든 독일인이 다 대니얼처럼 영국을 조국으로 알고 산 건 아니다. 간혹 정말 스파이도 있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켄 폴릿이 쓴 액션 스릴러 소설 <바늘구멍>이 대표적이다. 대니얼과 그의 아버지는 가장 널럴한 등급인 3등급으로 분류되어 그나마 편한 수용소로 간 듯.
근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수용소는 주로 휴양소에 있는 대규모 위락시설을 변조하여 만들어, 물론 당사자들이야 불편하겠지만 그나마 쾌적한 장소와 편리한 위생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201X~202X년의 난민 수용소나 노숙인 숙소 같은 곳은 <겨울>, <봄>에서도 봤듯이 다양하게 골 아프다. 작품 속에서 수용시설을 주관하는 민간 기업은 꾸준하게 AS4S. <겨울>에서는 저작권 감독 회사로 <여름>에선 민간 전력회사의 외양을 갖추었다.
여기에 새로이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COVID-19 격리수용이다. 초기 단계에 영국 정부는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해서야 감염자 자가 격리를 주문했는데, 전세계와 마찬가지로 마스크나 검진 장비 부족으로 주로 노인들이 집단적으로 사망했나 보다. 사람들은 열이 조금 나고 몸살 기운이 있으면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 지도 모르고 스스로 알아서 끙끙 앓다가, 지독히 개인적인 유럽인들인지라 혼자 죽어도 아무도 모른 채 며칠이고 지나갔으니, 그것 참. 하여간 이런 의미에서 자가 격리도 수용의 일환으로 보고 이 목록에 오른 것.
브라이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그란로 가족이 살았다. 엄마 아빠가 대판 싸우고 아빠가 자진해서 집에서 나가버렸다. 빈집을 구하러 왔다갔다 하다 보니 처자식이 사는 집의 바로 옆집이 매물로 나와 있어서 그 집에 들어갔다. 이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안 한 거 같은데, 아내에게 열쇠 하나를 복사해 주었다. 이거 별거 맞아? 하여간 이렇게 3년 살다가 아빠 제프리는 웨일스 출신의 공부하는 여성 애슐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고, 애슐리와 이쪽 집 사람들, 전처와 딸 사샤와 지독한 사춘기의 절정에 달한 아들 로버트와 소 닭 보듯 하며 살다가 갑자기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겠지만 애슐리의 학문적 내공도 대단한 거 같다.
사샤도 똑똑하긴 한데 사샤가 속으로 무척 사랑하지만 겉으로는 맨날 다투기만 하는 동생 로버트는 가히 영재 수준이다. 이런 아이들이 영국의 공립학교에서는 주로 왕따를 당하는 법. (실제 생활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독한 린치를 당하고 견디지 못해 전학을 했건만, 다니던 학교 아이들이 이쪽 학교 애들한테 토스를 해주는 바람에 똑 같이 왕따를 당해 학교에 취미를 딱 작파해버린 상태이다. 사샤가 밤 늦게까지 에세이 숙제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 학교에 들어서려는 순간, 로버트가 문자를 보낸다.
“지금 십 스트리트로 꼭 좀 와줄 것. 3분쯤 도움 필요함.”
명색이 누나에, 정확하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실감나지 않을 터인데, 부탁하는 것이 어쩐지 좀 애절해보여 친구한테 대리 출석 부탁하고 달려갔다. 로버트가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더니 누나 손을 잡고 자기 품으로 가져간다. 그러더니 그거 있지? 유리로 만든 타이머 용 모래시계. 그걸 순간접착제로 누나 손가락 몇 개에 찰싹 붙여놓고 도망간 거다. 유리, 얇은 유리. 남매 사이가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침착한 누나. 이 와중에도 농담한다. 마침 옆으로 온 커플 샬럿과 아서에게 (손가락을 쓸 수 없어서) 전화기를 건네주고 문자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례적인 유대(bonding)의 경험을 하게 해줘서 고맙구나.”
이 선한 커플은 사샤를 병원에 데려가 사샤의 손가락에서 모래시계 유리를 떼 내고 피부를 꿰맨 다음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커플은 엄마, 사샤, 로버트와 함께 저 북쪽 노퍽, 일찍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머물렀던 곳까지 여행을 떠난다. <봄>에서도 본 거 같은 장면이지?
하나만 더. 앨리 스미스는 환경론자이다. 그의 주장은 그린로 가족의 엄마 그레이스의 신념으로 확고해지는데, 엄마는 화석연료를 태워 움직이는 운송수단을 거부한다. 그러면 자전거와 전기자동차 말고 없다. 당연히 선한 커플이 운전하는 차 역시 전기차. 그래서 노퍽까지 함께 갈 수 있었던 것. 이 노퍽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 경험이 있는 대니얼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있어 보러 간 길이다. 엄마 그레이스는 이정도 수준이고, 똑똑한 딸 사샤도 우상이 그레타 툰베리. 음.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이게 답이다. 그러나 전기는 무엇으로 만들어야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도 전기의 혜택을 계속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이제 이것 좀 궁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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