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부재중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박지영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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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읽은 몰리나가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다는 건 벌써 알았는데, 급기야 오늘 읽었다. 혹시 아직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를 모르시는 분이 있으면 냅다 책방에 가서 <폴란드 기병>을 사 읽든지,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라. 책방에 ‘몰리나’를 검색하면 딱 세 작품이 뜬다. <폴란드 기병>, <리스본의 겨울> 그리고 <아내는 부재중>. 이제 나는 번역한 몰리나를 다 읽게 되는데, 그게 아쉬워, 뭐가? 몰리나를 다 읽어서 더 이상 이이의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워 여태 읽기를 머뭇거렸던 거다.

  <아내는 부재중>의 경우, 한 페이지에 열아홉 줄밖에 담지 않은 널럴한 편집에도 불구하고 본문이 134페이지에서 끝나는데,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구성을 감안하면 요즘 우리나라 출판업계에서 즐겨 이야기하는 경장편 보다는 단편소설로 구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독후감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건데, 몰리나 치고 재미가 별로다. 이 책은 어쩌면 다행스럽게 절판이니 뭐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덜 미안하겠지. 정말? 설마. 박하게 이야기하면 속으로는 캥긴다. 어느 경우도 마찬가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중심도시 하엔에 결혼 6년 된 부부가 살았으니 남자가 마리오, 여자가 블랑카. 때가 어느 땐데 여자 이름이 뒤에 가느냐고? 미안하게 됐다. 남자가 당연히 찐따라서 남자부터 먼저 소개하려고 그랬다. 좀 봐주라.

  하엔도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닌데 하엔에서도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하는 산골에서 만날 손으로 빵을 쥐고 수프를 찍어 먹으며 자란 마리오가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하엔에 와 터미널 부근의 식당에서 감자튀김과 달걀 프라이 두 개를 덮은 햄버거 스테이크를 먹을 때 처음으로 양손으로 포크와 칼을 쥐어 봤을 정도로 촌놈이었다. 그래도 공부는 곧잘 했는지 없는 집구석에서 학비와 기숙사비를 대주었을 턱이 없는데 하여간 하엔으로 유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역시 돈이 없어 가지 않았다. 원래는 요즘엔 ‘건축기술사’로 호칭이 바뀐 ‘건축감리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건 4년제 대학을 나와야 시험 치룰 자격이 있어서 대신 건축제도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거의 들어맞지 않는 혈액형 판단법으로 구분하자면 마리오야말로 전형적인 A형 인간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연인 사이였던 자그마한 몸집의 줄리와 우리나라 유행가 제목처럼 “너무 오래 한 연인” 사이를 유지하다가 둘의 사이가 너무너무 덤덤하고 소가 닭 보듯 해 줄리가 질려서 “다른 남자가 생겨” 헤어지자고 일방적인 통보 끝에 갈라섰다. 마리오도 안다. 줄리가 진짜 다른 남자가 생긴 게 아니라 지긋지긋해서 도망간 거라는 거. 하여간 이렇게 다시 싱글이 된 마리오는 직장 상사 라기보다 선배의 총각파티 때 직원들과 몰려가 엄청 시끄러운 재즈 바에서 코카인에 취한 키 크고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니 이 여자가 바로 훗날의 아내 블랑카.

  모범적인 A형 인간. 아침 여덟시에 출근해서 오후 세시 십분 전에 칼퇴근 해 집에 도착하면 12분 걸리니까 보통 세시 2분. 근데 횡단보도 걸리는 날이 많아 대개 세시 5분에서 10분 사이에 집에 들어온다. 회사에서 일곱 시간, 자는 시간 일곱 시간을 뺀 나머지 열 시간 동안 세상 모든 여자를 무시하고 오직 아내 만을 원하고,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남자. 이이의 직업은? 하엔 시청 공무원이다.


  문제가 있다. 역시 비슷한 계급끼리 짝을 짓는 게 장땡이다. 블랑카는 하엔시 기준으로 엄청 부자집 따님. 가시 많은 생선은 물론 바나나도 오직 포크와 칼만 사용해 생선 가시를 바르고 바나나 껍데기를 벗긴다. 절대 손과 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며 아무리 많이 먹어도 잔잔한 숨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요리를 먹을 때 생선가시를 젓가락으로 말끔하게 발라낸다니까.

  어릴 때부터 부잣집 따님으로 생색내는 분야에 빠삭한지라 음악, 미술, 건축 등에 상당한 조예가 있고, 정말로 깊은 조예가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자기 필이 한 번 꽂히면 아무리 무명의 예술가라도 끝까지 뒷받침을 해주려 안달하는 성격을 지녔다. 그리하여 마리오를 만나기 전에 나중엔 ‘지미 앤’이라고 이름을 바꿀 ‘나랑호’라는 화가에게 돈도 주고, 자기 집을 작업실로 내주고, 당연히 마음과 몸도 다 주었으며 그에 대한 대가로 술과 담배와 코카인 중독을 받았다. 이 와중에 착하고 성실한 마리오를 만난 것.

  웃긴 것이 블랑카가 제일 싫어하는 직업이 공무원. 이이에게 공무원이라고 하는 건 똑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사람, 상상력 없이 꽉 막힌 사람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도 살았다. 남편과 수프를 먹으면서 한 숟가락 뜰 때마다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마리오가 수프를 먹을 때 작은 소리를 낼 때마다 눈(깔)을 치켜뜨고 째려보면서, 주요리인 고기 요리는 절대로 자기가 움직이지 않고 마리오더러 가져오라고 열라 눈치를 주면서. 키스를 하더라도 입술을 여는 법이 전혀 없이. 그래도 마리오는 좋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모든 일은 전위예술가 루이스 오네시오가 등장함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졌다. 루이스가 블랑카한테 자기 전시회의 시간제 큐레이터로 고용했고, 블랑카는 전에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프리다 칼로 전시회에 가자고 부탁했다가 마리오가 뺀찌 놓은 것 때문에 삐쳐 있다가, 사라졌다.

  그래서 제목이 <아내는 부재중>.


  마리오가 상심에 젖어 있던 어느 날, 복도 끝에서 마리오를 향해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초록 실크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고, 굽 낮은 신발을 신은 것이 블랑카하고 많이 닮았는데, 그래도 블랑카는 아니다. 마리오보다 키가 더 커서 몸을 약간 숙이며 키스를 했어도 역시 블랑카는 아니다. 블랑카와 나누었던 감미로운 첫 키스하고 입술의 감촉이나 체온은 같지만 하여간 블랑카가 아니다. 블랑카하고 다르게 이 여인은 키스하면서 입을 약간 벌려주었다.

  그거야 뭐 부부간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결정적으로 다른 건 흐트러진 자세로 소파에 반쯤 누워 담배를 피우며 TV를 보고 있다는 것. 맨발을 드러내고 있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심지어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고 발에 가구에 부딪힌 상처도 없으며, 뒤꿈치 각질도 말끔하게 제거했다니, 틀림없이 블랑카는 아니다. 근데 닮기는 참 많이 닮았다.

  이거 무슨 일?

  역자 박지영의 말처럼 “외모만 같고 영혼은 다른 낯선 타인”일까, 아니면 “마리오가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거야 뭐 읽는 사람 마음대로다. 작가 몰리나한테 물어봤자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당신 생각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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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4 0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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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24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3-24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 창비세계문학 6
딩링 지음, 김미란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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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딩링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소피의 일기>와 비교하면 두 권 책의 다름이 실로 하늘과 땅 차이다. 하긴, <소피의 일기>가 1928년.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에 실린 세번째 작품 <발사되지 않은 총알 하나>가 1937년, 두번째 작 <병원에서>가 1938년, 첫번째 표제 작품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가 1940년이다. 이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당연히 전쟁. 국공 내전 말고 항일 전쟁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1960년대에 초안을 쓴 것으로 보이는 1978년작 <두완샹> 과의 사이에는 또 반우파투쟁과 악명높은 문화혁명이 있었다.

  1904년에 하필이면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딩링의 평생 팔자가 참 고단했을 거란 점은 명백한데, 애초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 푸이처럼 일찌감치 모든 자격을 박탈당하고 재교육을 거쳐 평범한 정원사의 삶을 살았으면 기중 (마음이나마)편했겠지만 명백하게 부르주아 소설인 <소피의 일기>를 쓰고 불과 4년 만에 공산당 입당을 해 늘그막까지 그 고생을 하느냐고?

  1932년에 일단 공산당에 입당을 해서, 34년엔 국민당에 체포당해 옥중에서 딸을 낳아야 했고, 당연히 여전히 속으로는 부르주아이면서도 다시는 <소피의 일기> 같은 소설은 써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이젠 적극적인 체제 협조적,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대로 거꾸로 말하자면 정권에 부합하는 어용소설만 죽자사자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솔직히 말해 그래서 나온 것이 <발사되지 않은 총알>이고 <병원에서>이며 이것들이 찬란하게 피어 눈부신 어용소설 <두완샹>이 태어난 것 아니냐는 말이지.


  나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핑계를 대고 숱하게 저지른 혁명, 혁명도 아니고 혁명을 빙자한 장기집권과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숱한 마르크스의 후계자들이 벌인 전략이 너무도 지긋지긋하다. 더 쉽게 말하자면 레닌과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카스트로 등이 주장한 권력장악과 지속을 위한 숱한 재교육, 획일화, 숙청 등등 이런 종류의 단어가 너무도 싫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국토와 삶과 인민의 황폐화밖에 더 있었나? 결국 남은 것이라고는 버킹검. 아무것도 없다. 러시아가, 중국이, 북한에서 혁명 이후에 잽싸게 독재를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래, 역사와 사람과 삶을 망치는 건 결국 권력이다.

  그걸 딩링이 증명해주고 있는 듯. <소피의 일기>가 찬란한 부르주아 소설도 아니면서, 그냥 찌질한 20년대 상하이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소피의 일기>를 쓴 작가가 <발사되지 않은 총알>이나 <병원에서> 그리고, 그리고 <두완샹>을 쓰느냐고! 그렇게 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체제를 위하여 딩링도 당에 가입을 하고, 나름대로 열성 당원으로 일하다가, 반우익운동에 걸려 죽을 고생도 하고, 감방에도 가서 5년 동안 옥고도 겪고, 하여튼 다양하게 죽을 고생을 하다가 저 북간도 멀리멀리 다싱안링 산맥 근처 베이다황까지 가서 노동을 했으니. 춥고 거친 일을 해서 안 됐다가 아니고, 자신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작가를 하지 못한 채 농사일을 했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각 인민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그게 공산주의 국가지, 펜대 들 손과 머리로 밀 농사를 지으라 하면 어떻게 평등 세상이 작동되느냐는 질문에 어찌 대답을 할꼬?

  딩링의 책, 창비세계문학 6번에 빛나는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를 별 다섯 개 만점으로 채점하면, 작품 전체는 빵점. 그걸 작품이랍시고 번역한 김미란이 말끔한 우리말로 바꾼 실력과 노고를 위하여 두 개의 별을 준다. 거의 찾을 수 없는 오탈자 수준을 보여준 창비의 편집부 담당자의 수고도 포함하여. 내가 아무리 돌팔이 아마추어 허접한 독자일지언정, 권력에 아부하는 어용문학에는 단 하나의 별도 주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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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란언니 - 개정판
김은성 지음 / 연극과인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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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곡집 《목란 언니》에는 표제작과 <뻘>, <달나라연속극> 이렇게 세 편이 실렸다.

  이 가운데 <뻘>의 표지에는 “이 대본은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모티브로, 김은성이 1981년 전라남도 벌교를 무대로 재창작한 작품입니다.”라고 쓰여 있고,

  <달나라연속극>의 표지에는 “이 대본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을 모티브로, 김은성이 재창작한 작품입니다.”하고 쓰여 있다.


  먼저 <목란 언니>. ‘목란’은 놀라지 마시라, 북한의 김일성이 만든 단어다. 원래 우리말 이름은 “함박꽃나무”, 정말 탐스럽게 잘 생긴 흰 꽃인데, 하루는 김일성이 꽃을 보고 너무 좋아 이런 꽃의 이름을 조선말로 천하게 지어 놓아 유감이다. 앞으로 “목란木蘭”이라 부르라. 해서 목란이 됐고, 어이없게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국화로 지정되었다는 거다. “목란”을 열라 검색해봐도 요리사 이연복이 운영하는 짬뽕과 탕수육이 맛난 중국집만 나오고 함박꽃나무 이야기는 저 아래, 검색창의 거의 제일 아랫부분까지 스크롤해야 읽을 수 있는 게 이유가 있었다. 나는 ‘목란’ 말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목단’ 그리고 화투패에서 6월 모란꽃을 떠올렸지 뭐야.


함박꽃나무 (목란)


  <목란 언니>에는 등장인물이 스물여섯 명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들 전부에게 이름, 성별, 나이, 직업, 출생지, 거주지, 말씨를 특정해준다. 예를 들어 주인공 조목란. 여, 26세, 아코디어니스트, 평양生, 용인∙서울 거주, 평양말. 그리고 돈만 많은 과부 조대자 씨는 여, 55세, 룸살롱 주인, 부산生, 서울거주, 온갖말. 조대자 씨한테는 아들 삼남매가 있으니 첫째가 36세 먹은 한국사 박사이고 서울生, 서울말. 둘째가 33세의 철학박사로 대학 교수로 있지만 아뿔싸 대학의 학과 정리에 철학과가 포함되는 바람에 실직 위기에 처한 서울生, 서울말. 셋째가 외동딸로 이름이 허태양. 30세의 소설가, 조대자의 막내딸로 서울生, 서울말. 웃긴 건, 어떻게 삼남매 전부 먹고 살기 힘든 문∙사∙철을 시키느냐는 말이지. 일부러 그렇게 하기도 쉽지 않겠구먼.

  여기까지 얘기해도 뭔가 딱 떠오르지? 조목란은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탈북민. 젊고 수더분하지만 야물딱진 여성으로 걱정이 한 가득이다. 5천만원을 모아 브로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아니면 자신이 다시 북으로 가던지. 북에 남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이리 데려오고 싶어서. 조대자 사장께서 탁 보니까 조목란이가 여간내기가 아니다. 그리하여 한국사 박사지만 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 우울증 환자이자 히키코모리인 허태산과 인연이라도 될까 싶어 허태산에게 기타와 아코디언을 가르쳐주게 한다. 허태강은 앞서 얘기한대로 실직이 코 앞이라 이제 시간 강사자리나 지방대학 조교수 자리를 찾아야 하는 신세고, 소설을 쓴 허태양은 소설은 써지지 않아 제법 돈을 받고 그럴 듯한 국회의원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일을 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대개의 작품에서 그렇듯이 태양은 싫다고, 싫다고 자존심 상해하다가 결국 대필을 해야겠지? 아니라고? 글쎄 두고 보라니까.

  허씨 삼남매를 이나마 키운 건 조대자 사장의 억척스런 삶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 그렇지만 아이들은 엄마의 노고를 속으로 고마워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자랑스레 내놓을 수 없으니 오랜 세월 룸살롱 사장을 겪으며 무슨 짓을 안 했겠느냐 하는 것이지. 요즘 조대자 사장의 레이더에 꽂힌 사람이 재미교포, 아니, 한국계 미국인 강국식. 남자, 66세, 사업가, 도쿄生, LA 거주, 영어+일본어+서울말 사용자. 66세와 55세. 11살 차이니까 뭐 연인 비슷할 수도 있다. 정도 정이지만 둘은 떼돈을 벌 수 있는 합작 투자를 구상하고 있다. 아서라, 아서. 누가 “떼돈”을 벌 수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십중팔구가 아니라 백 중의 아흔아홉이 사기다. 거덜나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덥썩 물기만 하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저 뒤로 가면 조대자 여사가 조목단에게 허태산하고 좋은 관계가 되면 주겠다는 5천도 주지 못하고 거덜이 난다. 거덜이 날 정도가 아니라 일단 몸을 피신해야 하는 처지까지. 집안이 폭탄 맞는 거지 뭐.


  이게 한 가지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탈북민 커뮤니티. 해방 이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북청청년단” 같은 반공단체를 만들어 남쪽에서 가장 강력한 우익활동을 한 것처럼, 탈북민들이 남쪽에 정착해 모인 사람들도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단호한 반공단체를 만든 모양이다. 매스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북 삐라 보내는 사람들도 이런 경우겠지.

  바야흐로 유사이래 언제나 멈추지 않았던 한국사의 난장판이 오늘도 벌어지고 있는데, 김은성은 이 난장판의 일부분이라도 한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한 무대에서 스물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올려 한꺼번에, 사실은 순서에 입각해 모데라토, 혹은 알레그로비바체로 각각의 난장을 동시상영하며 막을 올리니, 다음과 같다.

  처음엔 서울의 한 강당에서 열린 [실향민 어버이 연합 큰잔치], 둘째가 대구의 교회 예배실과 북한 해주의 역전 광장, 셋째는 서울 룸살롱 [한류韓流] 당연히 조대자 사장, 다음엔 서울 허태산의 원룸, 서울의 국회의원실(허태양의 자서전 대필 의뢰 건), 북한 청진의 중학교 운동장, 인천 초등학교 교실, 원주 대학교 강의실(허태강의 철학과), 서울의 한 강당 [통일민주연합 청년대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제목이 “난장판 짬뽕.”

  이 가운데 처음부터 등장해 있지만 끝날 때까지 관객석을 등진 채 김일성 초상만 그리고 있는 남자가 있다. 조선호. 남, 55세, 화가, 조목란의 아버지, 평양生, 청진거주, 평양말. 그러니까 목란 언니 조목란이 어코디어니스트로 조대자의 집에 가서 조태산에게 기타와 아코디언을 교습하는 짬짬이 집안일도 도우며 돈을 벌고 있는 거다. 이 아버지를 데려오든지, 자신이 청진으로 돌아가든지 혹은 직접 가서 직접 데려오려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극은 남쪽의 천민자본과 북쪽에서 온 사람들의 극성 우경화 같은 것을 모두 포함시킬 수밖에 없고, 판이 커져 드디어 난장판이 되어 버린다.

  근데 설마 인기 극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은성이 자기 작품을 이렇게 끝까지 정신 사납게 내버려 두겠어? 천만의 말씀이지. 난장으로 시작해 결말은 쓸쓸할지니, 기대하시라.


  <뻘>은 김은성의 출생지 전라남도 보성 근처 벌교를 무대로 1막부터 3막까지는 1980년 봄에서 1981년 여름까지. 3막 후반부터 4막은 1991년 겨울에서 다음해 봄까지. 1980년 봄의 전라남도라면 광주항쟁을 피할 수 없겠지? 맞다. 피할 수 없다. 그것, 항쟁과 관계없이 또는 어느 정도 관련은 있지만 새로운 대중예술을 하고 싶은 청년들과, 이곳 출신으로 잠깐 다니러 간 당대의 가수와 작곡가. 두 세대 간의 갈등도 있겠고, 화해도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결론은 아마도 안 읽으셨겠지만 비엣 타인 응우옌이 쓴 <방관자>와 비슷하다. 뭔지 안 알려드린다.

  <달나라연속극>을 재미있게 읽었다. 옥탑 단칸방에 사는 엄마-아들-딸, 그리고 아래층의 대학생 사이의 관계극. 작품의 주제는 내가 자주 하는 말과 같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

  희곡집이 그리 인기가 많지 않아 사서 읽어보시라는 말은 못 하겠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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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3-20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5별 4별은 과한데 그렇다고 차마 3별은 너무한 것처럼 보여서리...

stella.K 2026-03-20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게 함박꽃나무라니! 예쁜건 아니지만 탐스럽고 후덕하게 생겼다고나 할까요? ㅎㅎ 암튼 우리 남한식 이름이 좋은데 목란이 뭡니까, 목란이가. 이담에 혹시 개를 다시 키우게되면 목란이라 붙여주갔습네다. ㅋㅋ

Falstaff 2026-03-20 15:44   좋아요 1 | URL
맞습네다!
주체사상 울부짖던 인간이 할 얘기임둥? ˝천한 조선말˝이라니 말입지. ㅎㅎㅎ
정말 우리말 좋지 않아요? ‘함박꽃나무‘ 아휴, 목란 이딴거 백만 개하고 절대 안 바꾸겠습네다! ㅋㅋ

:Dora 2026-03-20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뻘을 남산예술센터 에서 봤던 기억이 났네요~

Falstaff 2026-03-20 17:26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까? 아후, 부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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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미 좋아합니다. 맛있....기 바랍니다. 좋으면 연달아 벌컥벌컥 마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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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3-19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숭늉이 아닙니다.

유부만두 2026-03-19 09:20   좋아요 1 | URL
볶은 콩 우린 물입니다

Falstaff 2026-03-19 20: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걍 후루룩 마시면 됩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6-03-19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미 많은 커피 반가워요
구매하러 갑니다^^

Falstaff 2026-03-19 20:03   좋아요 1 | URL
저도 약간 신 멋이 나는 게 좋더라고요! ㅎㅎ
 
강변의 조문객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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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셸리, 하면 당연히 <프랑켄슈타인>. 정말 다양하게 변질된 모습으로 유년 시절부터 경험한 캐릭터라서 오히려 작품을 읽지 않게 되는 명작. 그러나 귀동냥으로 한 번 읽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프랑켄슈타인>을 쓴 작가.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이 작가 또는 독자에게 난처한 허들로 작용할 수 있으니, 독자는 메리 셸리의 다른 작품을 읽을 때에도 당연히 <프랑켄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도 마찬가지.


  《강변의 조문객》은 단편소설 아홉 편을 실었다.

  이 책뿐 만 아니라 메리 셸리를 읽기 전에 독자가 감안해야 했던 것은 이이가 18세기 말에 태어나 19세기 전반을 살다 간 작가였다는 점. 제인 오스틴의 딸 뻘이지만 윌리엄 새커리, 찰스 디킨스, 브론테 자매의 이모 뻘이다. 이걸 감안하지 않으면 작품이 어떨 것 같을까? 당연히 조금 촌스러울 수 있다. 지금부터 2백년 전에 쓴 소설이니 어쩌겠어?

  지금 읽기에는 너무 오랜 스타일이다. 2백년 전에 읽었더라면 재미 있었겠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21세기에는 아니다.

  게다가 머리 속에 들어 앉아있는 <프랑켄슈타인>의 그늘. 이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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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3-19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리 샐리의 최후의 인간을 읽으면서 천재가 몰락하는 걸 보는듯했어요. 프랑켄슈타인을 쓴 어린 천재가 다른 사회적 경험을 모두 차단당했을 때,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만으로는 부족한 인간사의 다양한 디테일을 살려야 할때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차단당한 이가 결국 할 수 있는건 딱히 없구나 싶었어요. 메리 샐리는 지금 태어났다면 정말 역사에 길이 남는 대작가가 되지 않았을까싶어 안타깝더라구요.

yamoo 2026-03-19 09:19   좋아요 1 | URL
프랑켄슈탕인...한 작품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이름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ㅎㅎ
대표작이 넘사벽이면 다른 작품들은 모두 아쉬울 수밖에 없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