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에는 서리가 내려서 농사를 해쳐 견사(繭絲)가 심히 적은데 단지 정세(正稅)를 내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흘러서 옮겨 다닐까 두려운데 하물며 그 위에 빌려준 것을 거론하니 사람들이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애초에, 황제는 이엄을 통하여 촉에 들어가게 하여 말을 가지고 궁중의 진귀한 물건을 사오게 하였는데, 촉의 법에는 비단이나 진기한 보물은 중국으로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고 그 거칠거나 질 나쁜 것은 중국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였는데, 이를 ‘입초물(入草物)’이라고 하였다.

거란이 그들의 강성함을 믿고 사신을 파견하여 황제에게 와서 유주를 요구하고서 노문진(盧文進)을 두겠다고 하였다. 당시에 동북의 여러 야만인들이 모두 거란에게 복속되었는데 오직 발해75만이 복속되지 않았으며, 거란주(契丹主)는 침구할 것을 모의하였으나 발해가 그의 후방을 잡아당길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먼저 군사를 일으켜 발해의 요동(遼東, 요녕성)을 공격하고, 그들의 장수인 독뇌(禿?)와 노문진(盧文進)을 파견하여 영(營, 요녕성 조양시)과 평(平, 하북성 노룡현) 등의 주를 점거하게 하여서 연(燕)의 땅을 소란스럽게 하였다.


신은 한마(汗馬)의 수고로움을 겪은 일이 없이 다만 좌우에서 시종(侍從)하였기 때문에 때로 성스러운 계획에 찬성하여 지위가 여기에 이르러서 항상 스스로 편안하지 아니하였으며, 지금 공훈을 세운 현명한 사람들에게 맡기는 기회를 이용하여 신으로 하여금 정절(旌節)을 풀어 놓게 될 수 있다면 이는 크게 원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오대산(五臺山, 산서성 동북부)의 승려인 성혜(誠惠)는 요망함을 가지고 사람을 현혹시켰는데, 스스로 천룡(天龍)을 항복시키며 바람에게 명령하여 비를 불러 올 수 있다고 말하니, 황제는 이를 높여서 믿고 친히 후비(后妃)와 황제의 동생·황제의 아들들을 인솔하고 그에게 절을 하였으며, 성혜는 편안히 앉아서 일어나지 않으니, 여러 신하들도 감히 절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큰 가뭄이 들자 황제는 업도에서부터 성혜를 영접하고 낙양에 가서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고, 사민(士民)들은 아침저녁으로 쳐다보았지만 수십 일이 되어도 비가 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성혜에게 말하였다.

"관(官)은 사(師)에게 비가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였으나 효험이 없으니 장차 불에 태워질 것이오."

성혜는 도주하여 달아나서는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다가 죽었다.

계미일(15일)에 위국(魏國)부인인 유씨를 세워서 황후로 삼았다. 황후는 가난하고 미미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이미 귀하게 되고 나서도 오로지 재산을 축적하는 데에만 힘써서, 그가 위주(魏州, 하북성 대명현)에 있으면서 땔나무, 채소, 과일 같은 것들도 모두 팔았다.

황후가 되자 사방에서 공헌(貢獻)하는 것은 모두 나누어 둘로 하여 하나는 천자에게 올리고 다른 하나는 중궁(中宮, 황후)에 올렸다. 이로써 보화(寶貨)는 산 같이 쌓였고 오직 불경(佛經)을 베껴 쓰는데 사용하였고, 니사(尼師)에게 나누어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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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성가 161번. 성체를 찬송하세.


   1) 하늘에 별들을 누가 셀 수 있는가

   2) 강변에 모래알 헤아릴 수 있는가

   3) 바다에 물방울 누가 셀 수 있는가

   4) 논밭에 이삭 수 누가 알 수 있는가

   5) 나무에 잎사귀 헤아릴 수 있는가

   6) 영원과 무궁을 깨달을 수 있는가


   후렴 : 이만큼 무수히 성체(聖體)를 찬송하세 


 성가듣기 : https://maria.catholic.or.kr/musicfiles/mp3/2004090161.mp3


 얼마 전 주일학교 개학을 맞아 딸아이와 함께 참여한 어린이 미사 중 들었던 성체성가 <성체를 찬송하세>. 성인 성가로 듣던 음색, 빠르기와는 다르게 경쾌하게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다소 엉뚱하게도 <금강경 金剛經>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끝을 알 수 없는 진리(眞理) 앞에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을 성가와 금강경에서 발견하게 된다. 


어수선했던 2022년의 3월도 다 지나갔지만, 모르는 사이 봄은 우리 곁에 와있었다. 들판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작은 꽃을 보며, 영원(永遠)의 시간 앞에 필멸(必滅)의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無爲福勝分 第十一 제11분 함이 없음의 복이여, 위대하여라!


11-1. "須菩提! 如恒河中所有沙數, 如是沙等恒河 ! 於意云何? 是諸恒河沙 寧爲多不?" "수보리야! 갠지스강에 가득찬 모래알의 수만큼, 이 모래만큼의 갠지스강들이 또 있다고 하자! 네 뜻에 어떠하뇨? 이 모든 갠지스강들에 가득찬 모래는 참으로 많다 하지 않겠느냐?"


11-2. 須菩提言 : "甚多, 世尊!  但諸恒河尙多無數 何況其沙?" 수보리가 사뢰었다 : "참으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모든 갠지스강만이라도 너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그 모래 수이겠습니까?"


11-3. "須菩提! 我今實言告汝. 若有善男子善女人, 以七寶 滿爾所恒河沙數三千大千世界, 以用布施, 得福 多不?" "수보리야! 내 지금 너에게 진실한 말로 이르노니,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여기 있어, 칠보로써 그 모든 갠지스강의 모래수만큼의 삼천대천세계를 채워 보시한다고 한다면, 복을 얻음이 많겠느냐?"


11-4. 須菩提言 : "甚多, 世尊!" 수보리가 사뢰었다 : "정말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11-5. 佛告須菩提 : "若善男子善女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而此福德 勝前福德."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등을 받아 지니게 되어, 그것을 딴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 준다면, 이 복덕은 앞서 칠보의 복덕보다 더 크리라." _ 김용옥,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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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2-03-30 00: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글을 읽으며 저도 한번 생각해보게 되네요. 평화를 빕니다 🙏

겨울호랑이 2022-03-30 00:06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라파엘님께서도 평안한 밤 되세요! ^^:)

페넬로페 2022-03-30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에 성가를 듣습니다^^
성가의 가사를 금강경에 비유하시다니👍👍

겨울호랑이 2022-03-30 00:09   좋아요 2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머리로 생각한 것은 아니고, 그냥 성가를 듣다보니 떠오르더군요... 아무래도 제가 분심(分心)이 많은 듯 합니다... ^^:)
 

그래서 저는 이게 파당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다음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거나 제1당이 되는 사태가 없어야지 그때부터 비로소 합리적인 보수집단이 "아, 이거 수구세력 따라다니다가 우리 망하는구나, 지금이라도 우리가 주도하는 보수진영을 만들고 거기에 합리적으로 재구성된 진보(잡지 게재본에 ‘재구성된 보수’로 나오지만 오식이며 ‘재구성된 진보’라야 맞음)와 힘을 합쳐서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가야겠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전도가 밝아질 것같습니다.

만약 2013년 이후로도 경기침체가 지속되거나 심화된다면 한국경제는 이명박시대와는 비할 바 없이 어려워질 것이다. 거기에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라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제약요인이 더해지고 ‘후꾸시마 이후’의 원전문제?당장의 안전성 확보와 중기적인 원전 축소 및 궁극적인 철폐 문제?마저 겹칠 때, 다음 정부의 곤경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런 가운데도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집권세력의 책무다. 비록 성장에 대한 요구가 자본주의로 잘못 길들여진 대중의 비뚤어진 욕망 탓이라 해도 그러한 욕망의 존재 자체가 엄연한 정치현실인데다, 2013년체제가 기약하는 복지의 확대나 한반도평화체제 수립 등 제반사업을 위해서도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게 마련이다. 게다가 현존 세계체제가 존속하는 한 일정한 성장을 못하면 비참하게 몰락하기 십상인 자본주의사회의 논리를 피해가기 어렵고, 세계체제 변혁의 동력을 마련할 길도 없어지기 쉽다. 그런데도 진보와 변혁을
이야기하는 학자나 정치인일수록 성장담론이 약하지 않은가 한다

나 자신은 87년체제를 낳은 6월민주항쟁이 "남한의 역사에서 아무리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해도 분단 한반도의 절반에 국한된 만큼은 그 ‘획기적’ 성격 또한 제한되게 마련"임을 일찍부터 강조해왔는데, 달리 표현하면 87년체제가 군사정권과 개발독재의 ‘61년체제’를 대체했지만 양자가 공유하는 토대인 ‘1953년체제’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는 말이 된다.

복지의제도 평화, 정의, 생태, 성평등, 민주주의 같은 여타 의제와의 지혜로운 결합이 관건이다. 그 점에서 6·2지방선거에서 크게 부각되어 한때 또 하나의 근본주의로 치달을 위험마저 보이던 복지담론이 점차 세련을 더해가는 현상이 다행스러운데, 먼젓번 글에서 ‘복지국가 모델에 포함되어야 할 것들’을 말한 의도 역시 그런 세련화에 이바지하려는 것이었다. 포함되어야 할 것의 하나로 ‘공정·공평’을 제시했는데, 동시에 그것은 상식이라든가, 교양, 염치지심, 정직과 신뢰처럼 정책의 차원보다 ‘더 기본적인 것들’의 차원으로
설정한 것이기도 했다.

‘민주·평화·복지사회’가 약칭으로 채택되든 않든 2013년체제의 내용이 그 세가지 의제로 국한될 수는 없다. 물질적 불평등의 폐기와 생태친화적 사회로의 전환, 성차별 극복 같은 세계체제 공통의 장기적 과제가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 중·단기적 정책기획이 포함되어야 한다.

반면에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분열하여 총선승리를 놓친다면, 국민들의 분노·불신·경멸은 고스란히 야당들로 옮겨갈 터이며, 차라리 박근혜 후보를 택하는 게 안전하다는 심리가 확산될 것이다.

앞서 ‘보수 대 진보’의 낡은 구도를 넘어서는 첫걸음은 현재 남한의 지배세력이 보수라기보다 수구 또는 수구세력 주도의 수구·보수동맹임을 인식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오늘의 한국에서 흔히 ‘보수’로 일컬어지는 세력은 실제로 대부분이 수구이고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그보다 훨씬 소수다. 여기에 중도보수와 좀더 적극적인 반대세력에 해당하는 중도개혁파, 진보파 등이 포진한 것이 한국정치의 독특한 지형인 것이다.

그만큼 수구세력의 헤게모니를 깨기가 힘든 지형인 것이며, 따라서 이런 현실에서 수구에 가담하는 보수주의자의 수효를 최소화하면서 중도 및 진보 세력을 총집결하는 일이 단일정당(적어도 연합형 통합정당이 아닌 단일정당)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연합정치의 전략적 의의가 바로 거기서 나온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반도의 통일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진행될 장기적 과정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남북연합이라는 1단계와 어쩌면 또다른 중간단계를 거쳐서 진행되기 십상인 과정이다. 오늘의 국지적 현장에서의 실감으로 전체 과정의 성격을 재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남북의 정상들 스스로 2000년에 이미 그 상식을 공유하고 한반도는 국가연합(내지 ‘낮은 단계의 연방’)이라는 중간과정을 거쳐서
통일로 간다는 점에 합의했다. 그리고 이렇게 합의한 순간, 당국자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민간사회가 베트남, 예멘 또는 독일에서와는 다른 수준으로 개입할 공간이 열린 것이다.

한반도문제가 비핵화라는 당면과제에 집중됨으로써 남북연합을 위한 시민운동의 현실주의적 타당성이 오히려 더 확실해진다. 북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하려면 이른바 체제보장에 대한 북측의 요구가 어느정도 충족되어야 할 터인데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 그리고 대규모 경제원조가 더해지더라도 남한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앞에서 지적했다

이렇게까지 검찰이 커지고 막강해진 건 이 정권 아래서지만 그 체질은 사실 87년 이전부터 죽 계속되어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공안기구가 대표적이고요.3) 전·현직 고위장성들도 대부분 그 체질을 그대로 유지해왔습니다. 물론 김영삼정권에서 하나회 같은 정치군인들의 써클을 해체한 것은 군개혁의 중요한 업적이었고 그 덕에 87년체제의 민주화가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로까지 진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군부는 그대로고, 특히 천안함사건 이후 조사과정에서 국방부가 모든 정보를 독점하면서 멋대로 말을 바꾸고 자기들이 부실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하면 고발하고 탄압하는 것을 볼 때,
남쪽에서 이북처럼 ‘선군정치’까지 안 갔는지 몰라도 국방당국의 수구적인 행태가 여전하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또 흔히 조·중·동이라고 말합니다만 거대언론들도 딱히 역주행이랄 것 없이 수구적 행태를 지속해왔습니다.

87년체제가 우리 국민들의 민주항쟁의 결과로 탄생했고 많은 좋은 일을 해냈고 창조적인 동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크게 볼 때 1953년체제라고도 할 분단체제를 허물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전의 독재정권과 마찬가지로 53년체제라는 토대 위에 건설됐기 때문에 민주화나 민주주의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다보니 반민주적 수구세력이 계속 위세를 떨쳐왔고 국가나 사회의 유리한 고지들을 오늘날까지도 점령하고 있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 이걸 좀 다른 각도에서 부연해보면 우리 헌법이 처한 변칙적 상황자체가 반민주세력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시각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헌법은 민주공화국 헌법이지만 분단 때문에 이 헌법이 제대로 실행되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민중의 자치라고 봅니다. 민중 스스로 자신을 다스리는 게 민주주의지, 남의 다스림을 받는데 그 절차를 만들어서 거기에 따라 진행한다고 참된 의미의 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이 어느정도 잘먹고 잘사는 것도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닙니다.

더구나 지금은 이런 원론적인 문제점이 ‘1퍼센트 대 99퍼센트’로 상징되는?이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이후로 널리 알려진 구호인데?그런 극단적인 양극화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속성과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양극화사회에서는 아무리 민주주의적 절차가 잘 규정되었다고 해도 민중자치와는 점점 멀어지게 마련입니다.

87년체제를 극복하고자 할 때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가 되었지만 그것은 분단 한반도의 남쪽에 국한된 사건이었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 그 때문에 발생한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에 가해지는 여러 제약을 시원하게 털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87년체제를 통해 남한의 군사독재를 허물면서도 그 토대를 이루는 ‘1953년체제’ 즉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고 나서 통일도 안되고 평화도 이룩하지 못한 채 휴전상태로 60년 가까이 지나면서 성립된 분단체제를 좀더 안정된 평화체제로 대체하지
못했다. 53년체제의 토대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는 87년체제의 민주화나 남북화해 노력에 커다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2)

북핵문제는 핵문제에만 매달려서는 결코 풀 수 없는 전체 한반도 문제의 급소에 해당한다.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풀기 어려워진 것이다. 비핵화 협상은 그것대로 진행하고, 평화협정 체결도 그것대로 추진하고, 한반도 평화만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 구축작업에도 다시 시동을 걸고, 경제적 지원도 하고, 북미·북일관계를 개선하는 교섭도 진전시키는 등 여러 방면에 걸친 의제들을 정교하게 조율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명박정부가 한가지 확실히 가르쳐준 것이 있다. 미국이 아무리 초강대국이고 중국이 아무리 새로 떠오르는 강국이라 해도 한반도문제에서는 한국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결정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이명박정부가 역설적이지만 잘 보여주었다.

‘한반도식 통일’의 특성 중 하나는 단계적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그냥 점진적인 것만이 아니고 중간단계를 거친다는 것이다. 한반도가 아직도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점도 특이하지만, 통일을 하되 중간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룩하기로 쌍방의 정상이 합의했다는 사실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한반도식 통일’의 또 한가지 특징은 ‘시민참여형’이라는 점이다. 이는 남북관계에 대한 시민들의 관여가 양적으로 얼마나 많으냐는 문제가 아니라, 통일과정의 단계적 진행에 합의한 순간부터 그 과정을 정부당국이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질적인 차이를 뜻한다. 무력통일이든 평화적 통일이든 ‘원샷’으로 통일할 경우에는 민간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다. 그러나 천천히 하고 느슨한 결합을 거쳐서 통일로 간다고 하면, 민간사회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그 과정에 끼어들 여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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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자본주의 체제를 규정하는 핵심요소는 그것이 끝없는 자본 축적의 추진력에 의거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문화적 가치가 아니라  일종의  구조적 필요조건이다. 이 말은, 그 논리에  따라서  움직이는 이들에게는 중기적 차원에서  보상을 해주지만 그것과는 다른 논리들에 따라서 움직이기를 고집하는 이들에게는 (물질적으로)징벌을 가하는 메커니즘들이 체제 내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체제가 유지되려면 몇 가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우선, 기축적 노동 분업이 존재해야 한다. 즉 이윤은 낮은데 경쟁은 매우 치열한(즉 주변부의 필수품들과 이윤이 높고 준독점화된 (즉 중심부의) 상품들 간의지속적인 교환 같은 것이다. 기업가들로 하여금 그 체제 내에서 성공적으로일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효력(힘)의 정도가 서로 다른 의사주권 국가들로 구성된 국가간체제가 추가적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준독점적 이윤 창출 기업들의 항구적인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주기적 메커니즘들이 또한필요하다. 그 결과로 그 체제의 특권적 중심들의 매우 느리지만 끊임없는 지리적 재배치가 생겨난다. 이 모든 것이  근대세계체제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나는 서로에게 외부인 두 지역들의 "평등" 교환과 자본주의 세계정제 내에서의 "불평등" 교환이 결정적인 이론적 차이를 만든다는 느낌을 지을수 없다. 바로 그와 같은 작동 양식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고도의 양극화체제이다. 그것이 이 체제의 가장 부정적인 특징이며, 장기적으로는 이 체제의 치명적 결함들 중의 하나이다.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장기의 16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종류의 체제들과도 매우 다르다. 이 기본적인 현실을 놓치는 것은 분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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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강연효에게 양에서 벌어진 일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양조(梁朝)의 땅은 좁지도 않고 군사의 수도 적지 않지만 그러나 그들의 행하는 일을 추적해 보면 끝내 반드시 패배하여 망하게 될 것입니다. 어째서냐고요? 주군은 이미 어둡고 나약하여서 조암과 장한걸의 형제들이 권력을 멋대로 하며 안으로는 궁액(宮掖)
과 교분을 맺고 밖으로는 재화와 뇌물을 받아들이면서 관직의 높고 낮음은 오직 뇌물이 많고 적음을 보며 재주와 덕망으로 선택하지 않고 공훈과 노고도 비교해보지 않습니다.

"폐하께서는 머리를 감지도 빗질도 못하고 갑옷을 벗지 못한 지도 15년이 넘었는데, 그 뜻은 집안과 나라의 원수와 수치를 씻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미 존호(尊號)를 바르게 하여 하북(河北)에 있는 사인과 백성들은 매일 태평하게 되기를 바라보는데, 비로소 운주(?州, 산동성 동평현)에 있는 한 자와 한 치 정도의 땅이라도 얻었다가 지킬 수 없어 그곳을 버린다면 어찌 중원을 모조리 소유할 수 있겠습니까?
신은 장사들이 해체되고 장래에 식량이 다 떨어져서 무리들이 흩어질까 두려운데, 비록 하(河, 황하)를 그어서 경계로 삼는다 한들 누가 폐하를 위하여 그곳을 지키겠습니까? 신은 일찍이 강연효(康延孝)에게 하남(河南, 황하 이남)의 일을 자세히 물었으며, 자기를 헤아리고 저들을 헤아려서 낮이고 밤이고 그것을 생각해보니 성공과 패배의 기틀은 올해에 결정됩니다.

왕언장이 말하였다.
"나는 본래 필부(匹夫)로서 양의 은혜를 입어 지위가 상장(上將)에까지 이르렀으며, 황제와 더불어 15년 동안이나 교전(交戰)하였는데, 지금 군대는 패배하고 힘은 다하여서 죽는 것이 나 스스로의 몫인데 설령 황제가 불쌍히 여겨서 나를 살린들 내 무슨 면목으로 천하의 사람들을 볼 수 있겠는가? 어찌 아침에는 양의 신하가 되었다가 해질녘에는 당의 신하가 되는 일이 있겠소? 이는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오."

이사원이 말하였다.
"병법에는 신속한 것을 귀히 여깁니다. 지금 왕언장이 사로잡혔는데, 단응이 반드시 아직 이를 알지 못하고 있으며, 바로 어떤 사람을 도주하게 하여 보고하게 한다고 해도 의심하던지 믿던지 간에 오히려 사흘이 필요합니다.

양주는 사람됨이 온순하고 공손하며 절약하여 주색에 빠지는 실수가 없었는데, 다만 조엄과 장한걸을 총애하고 신뢰하여 위엄과 복(福)을 멋대로 하게하고 경상과 이진의 옛 신하를 소외시키고 버려서 그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멸망하기에 이르렀다.

황상이 그를 심히 후하게 대우하면서 조용히 물었다.
"짐이 오와 촉에 군사행동을 하려고 하는데, 두 나라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하겠소?"
고계흥이 촉의 길은 험하여 빼앗기가 어려워서 마침내 대답하였다.
"오의 땅은 척박하고 백성들은 가난하니 그들을 이겨도 이익이 없고, 촉을 먼저 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촉의 토질은 풍요롭지만 또 주군은 거칠고 백성들은 원망하니 그들을 정벌하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촉을 이긴 후에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서 오를 빼앗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좋소!"

황제가 고계흥을 남기려고 하자 곽숭도가 간하였다.
"폐하께서 새로이 천하를 획득하였는데 제후들은 자제와 장좌(將佐)들을 파견하여 들어와서 진공하게 하는데 지나지 않았지만, 오직 고계흥만은 몸소 스스로 들어와서 조현하였으니 마땅히 포상하여서 오는 것을 권고해야 하며, 마침내 얽어매서 남겨두고서 보내지 않은 것은 신뢰를 저버리고 의리를 이지러뜨리는 것이어서 사해(四海)의 마음을 막는 것이지 계책이 아닙니다."
마침내 그를 보냈다. 고계흥이 배나 빠른 길로 떠나 허주(許州, 하남성 허창시)에 도착하여 좌우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이번 행차에는 두 가지 실수가 있었다. 와서 조현한 것이 하나의 실수요, 나를 풀어주어서 떠나오도록 한 것이 또 하나의 실수였다."

또 장좌(將佐)들에게 말하였다.
"새로운 왕조가 백번 싸워서 바야흐로 하남(河南)을 얻고서 마침내 공신들에 대하여 손을 들고 ‘나는 열 손가락 위에서 천하를 얻었다.’고 말하였소.?
자랑함이 이와 같다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공로가 없다는 것이니, 그 누가 흩어져 버리지 않겠소! 또 수렵과 미색에 거칠어져 있으니 어찌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겠소? 우리는 걱정할 것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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