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는 이런저런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여전히 집권 중인 스웨덴에서는 살아남겠지만, 이 나라에서도 심각한 곤란에 처해 있다.
한때 극찬받던 스웨덴 모델이 이제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서글픈 광경을 자아낸다면, 스칸디나비아 나머지 나라들은 눈물의 빙산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반유대주의 세력인 자유당이 정부에 들어갈 가능성에 직면한 오스트리아의 유대인공동체는 강력한 어조로 우려를 표명했고, 나중에는 자유당 정치인들이 홀로코스트 기념일 행사에 참석하면 행사를 보이콧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대 국가’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쿠르츠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했다.

오늘날의 정치는 비스마르크의 냉소적인 경구(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다)를 따르면서 모두가 가능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든 의지하는 서커스가 되고 있다. "시험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누구나 원칙을 고수한다오. 그런데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 농부가 슬리퍼를 벗어던지듯이 원칙 따윈 내팽개치지."

1997년 당시 유럽연합 회원국 15개국 가운데 11개국에서 사민당이나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당들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있다. 이런 패배 가운데 어느 것도 특별히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좌파 정당이 우파의 의제를 그렇게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다. 대다수 사민주의 정당은 조만간 긴축 정책을 받아들이고, 임금이 정체하고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했다. 또한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용인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수혜자들에게 과감하게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한 것처럼,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 새로운 고성장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론은 철저하게 불신받고 있다".

한때 신자유주의의 성채였던 국제통화기금조차 과거의 지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펴내는 각종 보고서에서 국제통화기금은 부유층 세금 인하가 생산성을 끌어내리고 불평등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부유층에게 더 많은 돈을 주면 투자와 일자리와 성장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인정한다.

불평등에 맞선 싸움은 분명 사회민주주의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였다. 하지만 사민당들은 그 대신 자신들이 신중하다고 여기는 카드를 선택했다. 지배적인 친시장 이데올로기에 영합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게임에서 졌다.

하지만 결국 유럽 보수 세력은 ‘추잡해졌는데’, 무엇보다 마거릿 대처가 민족주의로 추잡한 부분을 가린 채 보수당을 분명한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재구성한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소득층은 공짜나 밝히는 구걸꾼이 되고 싱글마더는 ‘무책임한’ 여자가 됐으며, 이런 ‘추잡함’에 반대하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물렁한 보수당원’이 되었다.

우파가 부상함에 따라 정치 언어의 퇴행 현상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는 일련의 트윗과 장광설을 통해 술집에서나 하는 거친 조롱이나 귀에 거슬리는 인종차별적이고 남성적인 공격, 그리고/또는 불안한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심술궂은 10대와 관련된 언어를 구사하고 그런 생각을 소리 높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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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주역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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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易은 변화이며, 변화는 우주생명의 창진 創進 Creative Advanced이며, 우주생명의 창진이란 우주를 구성하는 기 氣의 끊임없는 순환을 의미한다. 역은 곧 우주이다. ˝우 宇˝는 사방상하 四方上下, 곧 공간을 의미하고 ˝주 宙˝는 왕고래금 往古來今, 곧 시간을 의미한다. 우주는 시공연속체 Space-time contunuum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공연속체를 동방의 고대인들은 ˝역˝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별도의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역이라는 생성의 변화 속에 얽혀있는 방편이다. 역은 변화이며, 시공이며, 우주이다. 그러므로 우주 속의 어떠한 존재도 시공을 벗어나는 것은 없다. 우주, 그 전체는 역 易 속에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_ 도올 김용옥, <도올주역강해>, p21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불과 몇 달 사이에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요즘 <도올주역강해>는 시선이 머물게 되는 책이다. 그것은 우리 주변 상황이 빠르게 바뀌기 때문만은 아니라, 적어도 국내 정치와 관련하여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무리들이 동양철학을 참칭(僭稱)하여 벌이는 꼴사나운 짓거리 때문이리라. 그들의 옛 것에 대한 그릇된 이해의 정도는 짐작하기 어려우나, 현재 자신의 위치가 불변(不變)할 것으로 보고 벌이는 행태를 보건대 우주의 틀 안에서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기본적인 이해도 갖추지 못한 자들임은 누구의 말처럼 ‘전혀 오해의 소지가 없이 명확하게 이해했다‘.

극심한 혼란의 시기에 이러한 상황도 변화의 과정이라는 <역경 易經>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리라 생각한다. 마침 저자직강의 강의도 시작되어 사이트를 공유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강의 URL : https://www.youtube.com/watch?v=26jbCuItMdw 도올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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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와 금리인상 등으로 경기가 불안정하다. 이어 경기후퇴도 우려된다. 경기가 나빠지면 경제적 취약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게 그간의경험이다. 그런데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물가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며 임금인상 억제를 주문하고 있고, 취약계층 보호에 나서야 할 정부는 자기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한다. 감세를 하면서 건전재정을 달성하고, 어떻게 지출을 줄일지는 밝히지 않으면서 (재정지출이 필요한) 민생은 챙기겠다고한다. ‘좋은 말 대잔치‘다. 좋은 말을 죄다 모아놓았는데, 어째 ‘미션 임파서블‘로 읽힌다. - P3

그러나 ‘인공지능이 의식/지각에 대해 말하는 것‘과 ‘인공지능이 의식/지각을 가진 것‘은 완전히 다르다. 람다가 르모인의 질문에 대해 ‘사람이라면 저렇게 반응할 거야‘라고느껴지는 답변을 내놓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일이 아니다. 람다는 사람들이 실제 세계에서 나누는 천문학적 규모의 ‘문답 데이터‘로 ‘머신러닝‘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을 받을 때 이에 대해 확률적으로 가장 가능성 높은답변을 학습한 데이터 가운데서 선택하고 조합해 내놓으면그만이다.
람다는 ‘의식, 지각, 감각, 감정,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의 소재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확실한 사실은 아직 인공지능이 인간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무식‘하며 이를 장차 극복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 P15

북한의 이중적 지위와 법 테두리의모호한 틈 사이에서 갈등이 생겼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당시 어떤 법률을 적용·검토했든 정치적 판단, 자의적 판단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법 위반 주장에도 반박이 뒤따른다. 현재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논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이유다. 국민의 힘과  민주당이  북송된 탈북 어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선명하게 갈린다.  - P27

당내 새로운 균열이 공식화된 건 7월8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개월 당원권정지‘ 징계를 받은 이후다. 당을 수습하고 새로운 지도체제를 꾸리는 과정에서 이견이 드러났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릴 수 있다. 임시 전당대회를개최해 새로운 당대표를 선출하는 것도당대표가 ‘궐위된 상태여야 가능하다. 당대표가 ‘사고‘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원내대표, 최고위원 중에서 직무를 대행한다. - P28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한 서로의 노력을 인정했기에 양국은 신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일본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을 시정하라는,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요구를 계속 해왔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전수방위와 비핵 3원칙을 내던지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의 기초인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앞으로는 어떻게 구현할지 일본에 물어야 한다. - P33

영업제한 조치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지난 2년간 특정 업종 자영업자들에게오롯이 전가되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지원은 대개 ‘이자가 저렴한 대출을 제공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IMF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2020년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데 들인 재정·유동성 지원 규모는2020년 GDP의 약 16.5%다. 재정 지원은GDP 대비 6.4%, 유동성 지원은 GDP 대비 10.1% 수준이다. 한국은 그나마 돈을아낀 나라다. 전 세계 평균(재정 GDP 대비 18%, 유동성 GDP 대비 12%)에도 못미치는 규모다. 같은 시기 일본은 GDP의약 45%를, 독일은 43.1%를 투입했다. - P35

다만, 아직 이러한 기술들은 인간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뿐새로운 질문을 던지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명령이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답이 가진 한계를극복하기 위한 본질적 질문은 하지 못한다. 금방 인간 기자를 대체할 것처럼 보였던 ‘로봇 저널리즘‘이 최근 들어 유행에서 멀어진 이유와 같다.
인간 기자는 사안에 대한 질문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이면의진실을 찾아가지만, ‘로봇‘ 기자는 보이는 곳의 내용을 바탕으로만 작성하기 때문이다.  - P37

노근리 사건은 한국전쟁 기간 벌어진가장 충격적인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동맹국 미국 군인들이 주민들을 모아놓고발포해 200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사건을 둘러싼 설은 여전히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 첫째, 교전은 없었다. 북한군과 전투하던 도중 발생한 피해가 아니다. 둘째, 오인 사격이 아니라 의도적발포였다. 미군은 주민을 포위한 채, 오로지 그들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 P38

 저임금, 그마저도 삭감된 최저임금 속에서고위험을 부담하며 고통을 감내해온 그들에게 윤석열 정부는또 법과 원칙을 말하고 있다.
이미 너무 오래된 경제이론을 들이대며 ‘자유‘를 강조해온윤석열 대통령이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모두‘의 자유를 실현해야하는 게 대통령과 정치인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이미 존재하는법과 원칙이 누군가에게 특히 약자들에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고통을 가하고 있을 때, 그 고통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게 대통령의 소임이다. - P41

윤석열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이 요직에 배치되고 있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태양 가까이 다가가면 녹는다. 날개에 붙어 있던 깃털이 열기에 녹아서 검찰의 밑바닥이 드러나면국민들이 냉정하게 판단하시겠지. 길게 보려고 한다. 태양은 곧 정점 아닌가 담담하게 일몰을 준비할 거다. 검찰이 바뀔까?
바뀌어야 한다. 결국 바뀔 거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다들 ‘이렇게 갑자기독립이 찾아올 줄 몰랐다‘고 하지 않았던가. 10년, 20년이면 안 바뀌는 듯해도 수십년 뒤에는 바뀐다. 내 인생에서야 10년, 20년 힘들겠지만 역사에서 이 시간은 찰나다. - P45

노인 돌봄 과제를 말하면서 시설과인력에 대해 짚었지만, 사실 핵심은 돈이다. 요양원에 가든 슈피텍스 서비스를 이용하든 돈이 필요하다. 빈곤한 노인은 서비스의 효율성을 따질 선택권조차 없다.
노년기 재정 상황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자리 (은퇴 연령), 다른 하나는 연금이다. 스위스에서도 이 둘을 현실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여러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 P48

BTS학술대회를 주최한 BTS 연구모임(ISBS)의 일원이다. "아시아인보이그룹에 대한 차별과 보이그룹 여성팬덤을 향한 멸시에 대항해 적극적으로투쟁해온 역사가 팬덤 내에 존재한다.
그러한 싸움의 결과, 방탄소년단과아미는 영어·백인남성 중심의 사회에 균열을 가져왔다." 일종의 ‘언더독‘
정서가 케이팝 팬들을 진보적 정치성향으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케이팝이 비주류, 소수자, 다양성정치와 연결되고 소비되는 현상은국내에선 낯설다. 국내 팬들도 자선활동과 봉사에 나서지만, 케이팝 가수와팬덤 모두 ‘비정치적‘일 것을 요구받는다. - P54

수학자인 그는 데이터 처리 과정은 과거를 코드화할 뿐  미래를  창조하지않는다고 강조한다. 어떤 이들은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보다 인공지능(AI)이 더 낫다고,
편견 없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AI의근간인 데이터가 이미차별과 편견에 물들어있고 이를 확대 재생산한다는걸 알면 기술이 더 나은 미래가아님을 깨닫게 된다. 오닐의말처럼, "미래를 창조하려면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그런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가지고 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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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중등학교 입학부터 취업 이후까지
정연태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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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본국과 식민지 한국 사이에서는 법적(제도적) 차별이 주목되었다. 그 결과 식민지 한국은 일제 본국의 이법지대 異法地帶로서 법적 차별을 피할 수 없었음이 밝혀졌다. 이에 따르면, 식민지 한국인은 참정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의무교육제의 대상도 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식민지 한국은 공장법/건강보험법/차가법 借家法 등 각종 사회/복지 입법, 소원법/행정재판법 등의 적용 대상 지역이 되지 못하였다. 반면 일제 본국과는 달리 식민지 한국에서는 헌병경찰(경찰)의 즉결 처분권이 폭넓게 인정되었다. _ 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p19


 일제 하에서 민족차별은 실제하였는가? 정연태 교수의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는 민족차별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일본 본국과는 다른 법제도 적용에 따른 법적 차별도 중요하지만, 저자는 법적 차별과 법적 차별이 낳은 1차 결과물인 구조적 차별이 낳은 관행적 차별에 주목한다.


 식민지 민족차별이 전개되는 층위와 양상은 세 가지로 범주화될 수 있다. 법적 민족차별, 구조적 민족차별, 관행적 민족차별이 그것이다. 법적 민족차별은 명시적인 법 규범이나 제도를 통한 차별을 가리킨다. 그리고 구조적 민족차별은 법적 민족차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명시적인 법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위계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적/사실적 차별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관행적 민족차별은 법적 민족차별,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나 위계관계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편견이나 혐오에 기초한 의식과 문화에 의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정서적/사회적 차별이라 하겠다. _ 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p23


 정연태 교수가 분석한 차별의 층위 - 법적, 구조적, 관행적- 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주장한 3층 구조 - 물질생활, 시장경제, 자본주의 - 를 연상시킨다. 층위(層位)라는 표현에서처럼 이들의 관계는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차이가 있다면, 브로델의 분석 대상인 자본주의는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한 반면, 정연태 교수의 차별의 층위의 분석 구조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관행적 민족차별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말하지 않지만, 차별의 층위는 역(逆)피라미드 형태로 형사화할 수 있을 것이다.


 관행적 민족차별은 식민자의 일상적 언행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법적 영역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식민지 민족차별의 다채로운 양상과 특성을 드러내준다. 예컨대, 관행적 민족차별은 공적 활동영역에서든 사적 생활영역에서든 지배민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피지배민족에 대하여 일상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경멸하는 시선, 무시하는 태도, 모욕적인 언행, 배제와 차별 대우, 심지어 구타와 폭력 등을 통해 표현되었다. 그렇기에 민족 간 정치경제적 불평등성, 법과 구조의 민족차별성은 물론 식민지 민족차별을 정당화하고 근저에서 지탱해주는 식민자 내면의 의식세계까지 보여준다. _ 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p25


 저자는 1920년대 충남 강경에 위치한 강상중등학교에 주목한다. 이 시기 학교 입학과 중퇴, 졸업 및 취업 현황 등의 자료를 통해 교육분야에서 일어난 여러 차별의 유형을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1919년 3.1운동 이후 노골적인 법적 차별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는 대신, 국내 정착 일본인과 한국인들의 경제적 불평등에서 오는 구조적 차별의 모습과 관행적 민족차별을 확인할 수 있다.


 강상 당국은 다른 한/일 공학교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지원 규모에 맞추어 민족별 입학정원을 할당해, 신입생 선발과정에서 노골적인 민족차별을 자행하였다. 그리고 민족 간 합격률의 현저한 격차는 경제력 차이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인 것처럼 호도해, 신입생 선발과정상의 민족차별을 은폐, 부정하고자 하였다. 이런 논리로 민족차별성을 부정하는 것은 당시 조선총독부나 다른 한/일 공학 당국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양태였다. _ 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p49


 법적인 차별이 3.1운동과 같은 집단반발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로부터 민족차별의 양상은 보다 은밀하게 행해졌다. 마치 오늘날 미국에서 공공장소에서의 인종차별적 발언이 강한 법적 제재를 받지만, 미국 사회에는 뿌리 깊은 인종 간 반목이 존재하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는 노골적으로 차별이 이루어졌다.


 경제 사유 중퇴는 한일 학생 모두에서 다수를 차지했지만, 그 비중에서 한국인 학생이 훨씬 높았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보호자인 정正보증인의 직업과 경제력 차이, 구조적 차원에서는 농업 중심의 한국인사회와 상업, 공무자유업 중심의 재한 일본인사회의 정치경제적 격차를 반영한 결과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 사유 중퇴 양상의 민족간 차이는 관행적 민족차별과는 관련성이 별로 없다. 그보다는 한일 민족간 정치경제적 불평등 구조에 의해 초래된 '결과의 차별', 즉 구조적 민족차별의 성격을 지닌다 하겠다. _ 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p248


 강상 중등학교에서 구조적 민족차별의 결과는 경제 사유 중퇴에서 잘 드러난다. 열악한 처지에서 공부해야 하는 한국학생의 중퇴율이 높다는 단순한 결과는 일본학생이 보다 높은 학구열이 있다는 것으로 왜곡하여 보다 많은 입학정원을 허용하는 법적 차별를 합리화시켰으며, 취업과정에는 관행적 민족차별과 연계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이를 통해 저자의 다른 저작 <식민권력과 한국농업>을 떠올리게 된다. <식민권력과 한국농업>이 일제 권력, 일제 자본, 지주, 농민들의 역학관계를 분석했다면,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는 법적 차별, 구조적 차별, 관행적 차별이 단독으로 또는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취업과정에서도 민족차별이 자행되었다. 당시 신입직원 채용의 주요 사정자료는 학교장의 소견표나 추천서였다. 그런데 선발 사정이 이들 소견표나 추천서 작성의 주요 근거자료인 학업(지력)평가와 조행평가의 결과에 따라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인 졸업생이 한국인 졸업생과 비교할 때, 학업평가 결과에서는 월등히 더 나빴음에도 두 분야의 취업률에서는 더 좋았다. 조행평가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보였다. 이들 평가 이외의 다른 변수를 배제하고는 납득하기 어려운 양상이다. 바로 그 외적인 변수란 다름 아니라 일제권력의 식민지배, 일본자본의 압도적 우세, 일본인 교장/교사의 학생 평가/추천이라는 삼중 三重의 민족적 위계구조가 구축된 식민지 현실과 연관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취업과정의 차별은 관행적 민족차별인 동시에 구조적 민족차별의 성격을 동시에 띤다고 하겠다. _ 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p250


  그렇다면, 저자는 왜 관행적 차별에 주목한 것일까. 이는 정치적인 법적 차별과 경제적인 구조적 차별에 비해 차별의 의식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의 구조에서 차별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는 법적 차별과 구조적 차별을 정당화하게 된다는 점에서 저자는 관행적 차별에 주목한다. 그리고, 관행적 차별이 생산되는 교육기관을 분석대상으로 본문을 통해 자세히 들여다본다.


 알베르 멤미 Alvert Memmi의 차별주의론에 따르면, 식민 지배민족은 자신의 특권과 공격, 그리고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피지배민족과의 차이를 발견하고 강조한다. 만약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차이를 날조하기조차 한다. 이때 강조되고 날조되는 차이의 핵심은 지배민족의 우수성, 긍정성과 대비되는 피지배민족의 열등성, 부정성이다. 민족 위계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지배민족은 이러한 실제 또는 가공 架空의 위계적 차이에 대해 결정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그 과정에서 일부 집단의 차이는 민족 전체의 차이로, 한 시기의 차이는 시대를 초월한 차이로, 국부적 차이는 신체, 심리, 사회, 지리, 문화, 역사 등을 포괄한 일반적 차이로까지 간주된다. 이런 점에서 식민지 민족차별은 지배민족과 피지배민족 사이의 기본적 관계를 요약하며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_ 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p22 


 이처럼 정연태 교수의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는 1920년대 한 중등학교의 기록을 바탕으로 민족차별에 대해 분석하기에 언뜻 우리의 삶과 무관해 보인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불평등 문제와 엘리트 세습의 출발이 교육에서 시작된다는 점과 함께 우리 주변의 모든 종류의 차별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틀 - 차별의 3층 구조 - 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리뷰를 마치기 전 식민지 근대화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 여겨지는 내용을 옮겨본다. 아래 내용은 일제 하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무조건 차별받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차별받는 상황에서도 몇몇 소수는 승진하며 보다 높은 지위로 나아간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차별이 없었다, 일본을 통한 근대화의 혜택은 한국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었다는 논지는 당연하게도 무리한 해석일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점은 취업과정에서 민족차별이 자행되는 가운데서도 일제 말기 강상의 한국인 졸업생 가운데 일부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인 졸업생 중 일부는 일제의 전쟁 총동원정책과 일본자본의 대륙 팽창이란 전시상황을 활용해 성장해나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졸업생 가운데 직위 승진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는 점도 간과돼서는 안 된다. 일제 말기 한국인 졸업생의 성장도 그 이전 시기와 비교한 상대적 성장에 불과하였고, 식민지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미약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한국인 졸업생의 성장이란 것도 '일본인=상급관리자, 한국인=하급 실무자'라는 식민지적 위계구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_ 정연태, <식민지 민족차별의 일상사>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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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7-31 0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에서 자신의ㅠ협력자를 찾는건 당연한 일이고 때문에 일부 식민지인들이 출세를 하거나 하는데 이를 근거로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걸까요? 이런 실증적 연구들이 한국사의 내용을 더 풍부하게 해주네요.

겨울호랑이 2022-07-31 08:53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식민지 근대화론은 적은 사례로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일제 식민 시기 이전을 안정기, 이후를 급격한 분화기로 구분하고, 산업화=근대화 도식을 적용하는 식민지 근대화 이론은 학술적으로도 폐해가 심하지만, 최근 독일 소녀상 문제에서도 나타나듯 현실에 있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극우사관이라 생각됩니다... 이영훈으로 대표되는 이들의 출발이 극좌인 점을 생각해보면, 극과 극은 통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원자력발전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문제라 생각된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여부가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인정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전제이니만큼 처분시설 부지 확보와 건설은 미래 에너지원으로 원자력 발전에 필수요소임에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고준위 처리시설을 운영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원자력에 대한 불안감을 씻어 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간신히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부지를 확보하고 2단계 건설을 하는 상황에서 수십년동안 주민들 설득에 실패하고 겨우 5년동안 이름뿐인 ‘탈원전 정책‘에 국내 원자력산업이 폭망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울좋은 핑계가 아닐까.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어도 폐기물 처리는 주어진 과제임에도 주민 홍보 부족과 부지 확보 실패 책임을 지난 정부에 덮어씌운다는 이미지를 받는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제 탈원전 정책이 공식 폐기된 지금, 부지 확보를 위한 주민설득과 건설이 5년 내 개시되겠지. 지켜볼 일이다...






사용후핵연료가 정말로 위험하고 후손들에 항구적인 멍에가 될까요?
만일 그렇다면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부지 확보에 대한 해결책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관한 저의 생각은 원자력안전 전문기관의 객관적이고 철저한 심사 및 검사 하에 사용자가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노화 관리 프로그램 등을 갖추면 미국의 원자력규제기관인 NRC가 발표했듯이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하는 방사성 폐기물은 습식 및 건식 저장으로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 P161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핵심은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과 이행 절차 등을 국민적 공감 하에 여야 합의로 법제화하여 국가차원에서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법제화 대상은 사용후핵연료 저장 · 운반·처분 등에 관한 것이고요. 이와 관련하여 각 원전의 임박한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 포화에 대비하여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을 적기 확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해 보입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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