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혁명의 시작 - 신분제 국가에서 국민국가로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3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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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혁명이 대중의 힘 또는 폭력과 함께 추진력을 얻는 것이라 할지라도, 늘 새로운 헌정질서를 창조하는 민주적 절차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날마다 각 분야의 전문위원회들이 연구한 안을 토론하고 심의를 거쳐 헌법으로 확정하면서도, 새로 일어나는 사건에 대응하려고 예정에도 없던 시간을 할애해 토론하고 상대를 설득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프랑스 혁명의 본질적인 측면이 바로 여기에 있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12/364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3권 <진정한 혁명의 시작 - 신분제 국가에서 국민국가로 Liberte>에서는 입법기관인 국회에 의해 앙시앵 레짐을 대신한 새로운 법질서의 틀을 보여준다. 기존 삼부회(三部會, Etats generaux)에서 세금을 납부할 의무만 있을 뿐,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던 제3신분이 주도하는 국회는 신분제 질서를 타파하면서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냈다.

국회의원들이 할 일은 기본적으로 재정문제를 해결하고 헌법을 제정하는 두 가지였다. 헌법을 제정해 새 체제를 만들면 그 법을 시행할 기구도 만들어야 했다. 앞으로 보겠지만 고등법원을 폐지하는 일도 새 체제에 맞는 법질서를 구현하려는 준비작업이었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165/364

왕에게 한시적인 거부권을 주면서도 단원제 의회를 만들고, 미숙련 노동자의 평균 임금 3일치를 세금으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수동시민으로 규정해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게 되는 사람들이 1789년의 국회에서 가장 발언권이 셌다. 그들은 부르주아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대주교 샹피옹드 시세, 대주교 부아즐랭, 시에예스 신부, 미라보 백작, 타르제, 카뮈, 투레 같은 법률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새로운 프랑스를 건설하려고 노력했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120/364

‘대표 없는 곳에 세금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미국독립혁명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투표권을 납세 능력과 연결시켰다는 점에서 국회의 다수 세력인 부르주아 계층의 영향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국회의 절대다수가 부르주아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제3신분의 대표성을 약화시킨 반면, 국회 내의 동질성을 강화시켰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 되었다.

모든 회의체는 신분이 아니라 개인으로 구성하도록 했다(10월 26일). 그러나 유권자와 피선거권자를 결정할 때는 납세액을 기준으로 삼았다. 9월 29일부터 10월 29일까지 논의한 결과, 프랑스인으로서 각 선거구에 1년 이상 산 25세 이상의 남성 가운데 3일치 임금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권을 주었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159/364

국회에 다수 가난한 민중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아 이들의 삶이 혁명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은 부정적인 측면이었지만,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춘 이들은 자신과 동료 의원들의 이익을 위해 신분제 특권을 폐지했고,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개편하는 성과를 올렸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혁명이 투기업자에게는 기회를 주었지만 대다수 가난한 국민에게는 늘 물가고를 안겨주었기 때문에 국회와 왕, 그리고 종교인이 예전처럼 사회적 불안요소인 극빈자, 특히 떠돌이들을 도와 국가에 이로운 인구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더라도 항상 힘에 부쳤다. 인구는 많은데 일거리는 언제나 부족하고, 만성적자에 시달리던 재정문제를 하루아침에 고치지 못하는 한, 구빈문제는 혁명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현실적 불만 때문에 혁명/반혁명의 과정에 쉽게 동원되었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147/364

제1신분인 성직자와 제2신분인 귀족들의 특권의 폐지는 교회의 재산을 국가로 환수하고 귀족의 작위를 공식적으로 없애는 형태로 구현되었다. 제3신분이기는 하지만 일반 대중들과 살롱(salon) 문화를 공유한 자신들을 구분한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일시적‘이고 ‘중앙집권적‘으로 운영되던 과거에서 벗어나 법에 의한 ‘영속‘과 지방분권, 탈신분제의 첫걸음이라는 면에서 혁명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마침내 7월 12일에는 시민헌법 최종안이 나왔다. 새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교회를 국가 밑에 두어 주교나 대주교의 수를 줄이는 동시에 로마 교황청과 관계를 끊도록 하는 데 있었다. 그리하여 종교인의 사법적/정치적 간섭을 배제하고 오로지 종교적인 일만 하도록 했다(p220)... 계몽주의자 가운데 볼테르의 주장만큼 혁명에 확실하게 반영된 것은 없으리라. 볼테르는 틈만 나면 가톨릭교를 비판하고더 나아가 종교적 자유를 주장했는데 이제 그 길이 확실히 열렸던 것이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225/364

시민들이 주역이 되는 연맹제가 공화주의의 분위기를 한껏 드높일 때, 국회는 귀족작위를 폐지하는 문제로 한바탕 토론을 벌였다. 수많은 소책자에서 이미 귀족 작위 폐지문제를 거론했고 국민주권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에 6월 19일에 국회가 실천하려는 일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사실 지난해 8월 4일부터 일주일 동안 귀족 의원들이 특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열 달이 지난 시점에 실제로 귀족 작위를 폐지하는 문제가 나오자 저항하는 의원이 많았고, 이튿날인 일요일(20일)에 항의서를 써서 국회에 보낸 사람들도 많았음을 볼 때, 전국연맹제를 앞두고 국회는 또 한 번 높은 산을 넘었다고 말할 수 있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293/364

다른 한편으로, 혁명 세력에 의해 강제적으로 교회의 특권 페지, 튈르리 궁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던 루이 16세와 혁명 이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실력자로 서려 했던 라파예트 간의 대립이 서서히 격화되고 있었다. 혁명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혁명가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준 루이 16세와 이러한 루이 16세를 혁명세력으로부터 보호하려 했지만, 정작 라파예트 자신은 왕에게 라이벌로 인식되는 상황.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3권 <진정한 혁명의 시작>은 혁명에 의한 새로운 질서의 수립과 함께 새로운 시대의 갈등을 함께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해결되지 않은 민중들의 어려움은 혁명을 더욱 격렬하게 몰아갔고, 지도층의 보이지 않는 알력은 여기에 기름을 부으며 전혀 예상치 못한 역사의 흐름으로 이들을 몰아간다...

라파예트는 요크타운이 함락된 뒤 야전사령관이 되어 싸우다가 1785년에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이미 ‘두 세계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라파예트 후작은 새로운 사상에 물들었고 네케르와 친하게 지냈다(p55)... 국민방위군의 목적이 귀족의 음모, 민중의 분노와 조급함에 맞서는 한편, 혁명의 역동성 때문에 생기는 강력한 현상을 제한하는 데 있으며, 모든 시민으로 하여금 무장하게 하는 것 자체가 시민의 세력화를 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들을 지휘하는 라파예트의 의지는 혁명의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변수였다(p56)... 라파예트는 공화정신에 물든 왕정주의자였다. 한마디로 그는 왕과 혁명가를 화해시키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57/364

왕은 전국연맹제에서 자신이 라파예트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13일에 직접 점검에 나섰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충성심은 받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바치는 사람의 몫이다. 왕은 구시대의 상징으로 아슬아슬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역사의 주역이 여기저기서 마구 두각을 나타내는 격변기였으니 왕으로서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으리라.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342/364

이렇게 해서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상징하는 7월 14일의 전국연맹제는 무사히 끝났다. 그것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먼저 그것을 진정한 국민의 잔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중 또는 다중이 진정한 우애를 느끼고 새로운 관계를 열렬히 환영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행사가 끝난 시점에 냉정한 사람은 과연 그날의 주역이 누구였는지 돌이켜보았다. 행사장에서는 분명히 왕이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문화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에 왕보다는 라파예트가 더 돋보였다. _ 주명철, <진정한 혁명의 시작> , p347/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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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젊음이 우리 안에서 죽을 때 어떤 충격도 느끼지 못하지만 사실 그 죽음이야말로 쇠약해진 생명이 완전히 죽어 버리는 죽음, 노년의 죽음보다 본질적으로 사실상 더 가혹한 죽음이다. 비참한 존재에서 비존재로 떨어지는 것은, 한창 꽃핀 감미로운 존재에서 고생스럽고 괴로운 존재로 떨어지는 것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것은 지속적인 고통거리, 도저히 헤어날 길이 없는 고통거리일 것이다. 죽음은 어디에서고 닥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위험한 고장에서처럼 끊임없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 한다.

죽음이 어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어디서나 죽음을 기다리자. 죽음에 대해 미리 숙고하는 것은 자유를 예비하는 것이다. 죽을 줄 알게 된 사람은 예속을 모른다. 죽는 법을 아는 것, 그것이 우리를 모든 종속과 속박에서 해방시킨다. 생명을 잃는 것이 불행이 아님을 잘 알게 된 사람에게는 인생에 불행이란 없다

필멸의 존재들을 탄생시키는 작업을 홀로 영원히 수행해 가는 이 기관에만 자연이 어떤 특권을 주었다고 해도, 그것이야말로 자연이 행한 합당하고 나무랄 데 없는 작업인 셈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생식을 신성한 행위로 보았고 사랑은 불멸을 향한 욕망으로, 그리고 불멸의 다이몬 그 자체로 여긴 것이다.

요컨대 내 생각으로는 습관이 하지 않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세상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들은 바대로 핀다로스가 습관을 세상의 여왕이요 여제라고 부른 것은 온당한 일이다.

습관의 권능이 가진 가장 강력한 효과는, 우리가 그것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습관의 명령이 합당한지 따지고 판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를 낚아채서 장악한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잔인성과 포악함, 그리고 배신의 진정한 씨앗들이고 뿌리인 것이다. 그런 것들은 거기서 싹이 튼 뒤 이윽고 거침없이 줄기를 뻗으며, 습관의 손 안에서 무성하게 자라난다. 그러니 아직 어려서 그러는 것이라거나 별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못된 습벽들을 접어 두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교육 방식이다. 우선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천성인데, 천성의 목소리는 아직 가녀린 까닭에 더욱 순수하고 분명한 법이다. 두 번째로 속임수는 금화 한 닢이냐 바늘 하나이냐의 차이에 따라 그 추함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가 추해서 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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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도널드 서순 지음, 유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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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때 위기는 생겨난다. 이 공백기에 다양한 병적 징후가 나타난다. - 그람시 -


 그람시가 묘사하는 위기 국면은 잠재적인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 '병적 징후'들로 가득한 '공백기'였다. 그람시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가는 상황을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성의 비관주의'와 반대되는 '의지의 낙관주의'를 품은 채 이런 병적 징후들이 진보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를 기대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 놓인 공백기의 주요한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오래된 강둑이 뒤에 있지만, 반대편은 아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물살 때문에 뒤로 밀려서 빠져 죽을 위험도 있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공포에 짓눌린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1/177


 도널드 서순 (Donald Sassoon, 1946 ~ )의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위기에 빠진 21세기 세계의 해부 Morbid Symptoms: Anatomy of a World in Crisis>은 21세기 들어 쇠퇴하는 유럽의 보편적 가치 - 사회주의, 민주주의 - 대신 미국, 영국 중심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극우포퓰리즘의 대두를 지적한 책이다. 인용된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의 글로부터 우리는 전체적인 책의 논조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소멸한 '낡은 것'의 정체를 확인하기는 비교적 쉽다. 사라져가는 낡은 것은 1945년 이후 30년간 서구를 지배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합의,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 Soziale Marktwirtschaft다. 두 세계의 가장 좋은 것을 합쳐놓은 체제를 가리키는 독일어 표현이다. 탄탄한 경제 성장과 나란히 모든 사람을 위한 복지 확대와 실패한 이들을 위한 맞춤형 보호가 이루어진 복지자본주의 caring capitalism를 말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44/177


 추운 겨울에 세균과 해충의 번식이 억제되는 것처럼 냉전(冷戰)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냉전 이후 자본주의 일방의 독주 속에 전통적인 가치들은  그 의미를 상실했고, 새로운 가치들이 냉전 이후 사회의 보편기준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와 함께 사회의 중심이슈가 정치에서 경제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되었다.


 가치는 변화를 겪는다. 유럽적 가치는 일정한 가치를 장려하고 다른 가치들은 '비유럽적'인 것이라고 깎아내리려고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구성물이다. '유럽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통일된 일련의 원리와 가치라는 개념은 실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강령으로서 지식인들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통일된 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21/177


 과거 카르타고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사라진 이후 로마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지중해를 제국의 호수로 만들었듯 공산주의가 사라진 세계에서 자본주의는 자유주의의 돛을 달고 급속도로 팽창해나갔다. 바야흐로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비용절감과 이윤극대화를  위한 무한경쟁 시대에 맞춰 유효수요창출보다 효율성을 위한 최소한의 개입이 강조(Laissez-faire)되면서 정책의 우선순위도 바뀌게 되었고, 비효율적인(?) 복지비용이 축소되기 시작했다.


 복지국가는 비록 그 성원들이 여전히 소득과 부와 교육 수준에서 불평등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종류의 사회체제의 삶보다 선진 자본주의의 삶을 더 낫게 만들 만큼 충분히 응집력이 있는 민족공동체를 창출한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처럼 거의 일반화된 통합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무너지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20년간에 이르러서야 전통적인 중도좌파와 중도우파를 약화시킴으로써 전후戰後 정당체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회의 위기가 정치의 위기로 바뀌고 있다. 병적 징후들이 넘쳐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58/177


 이처럼 서순은 공산주의 붕괴 이후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경제적 요소'로 변화하고, 이같은 기준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정치 또한 변화되었다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경제우선주의 사상이 사회보편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정치부문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세금을 억누르면서 복지 지출을 높게 유지하는게 점차 어려워짐에 따라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과거 우파의 특권이었던 영역을 점유해야 했다. '현대화', 즉 신자유주의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국유화의 시대, 경제를 기업가 계급에게 맡겨두기보다는 직접 운영하려 한 '온정적 가부장' 국가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시장이 거침없이 활개치게 놔두고 거기서 생겨나는 돈으로 저소득층을 돕는 게 필요했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55/177


 국가주도의 부의 재분배가 아닌 시장 주도의 자율적인 부의 순환이 강조되면서 조세정책은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반시장정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념과 상관없이 모든 정당의 위치가 우경화(右傾化)되었다. 중도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중도확장을 꾀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정당들은 자신들만의 고유색깔을 잃어갔다.


 정치인들은 투표의 의미와 중요성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챙기면서 어쨌든 마음 내기큰 대로 해석한다. 유권자들은 투표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일단 표를 던지는 순간, 자기가 가진 권한과 목표, 바람을 자신이 믿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정치인에게 넘겨주는 셈이다. 투표는 불가피하게 권력을 포기하는 행위다. 권력은 불가피하게 소수에게 집중된다. 문제는 이 소수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분명한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은 당원보다 유권자에게 더 신경을 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글이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아는 주된 통로는 여론조사다. 정치인들이 접촉하는 유권자들은 보통 불만이나 망상, 대의명분에 사로잡힌 이들이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는 실패로 치닫는 중이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47/177 


  대신해서 뚜렷해진 것은 보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극우(極右)움직임이다. 저자는 유럽의 경우 이민자와 무슬림에 대한 적대적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우경화 현상은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짙어가는 병색임을 지적한다.


 민족과 민족주의 둘 다 유럽 프로젝트에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세다. 실제로 유럽연합의 모든 문서는 더욱 응집력 있는 공통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할 때면 언제나 파편화와 혼란, 충돌을 피해야 하고, 응집과 연대, 보완과 협력을 달성하고 회원국들에서 현존하는 민족 정체성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나는 유럽의 정체성을 가르칠 수 없다고 본다. 유럽을 민족국가들의 민족국가로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28/177


 서순의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에서 우리는 냉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를 통해 복지의 쇠퇴와 이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의 확대라는 병적 징후에 더해 이를 치료할 정치수단마저 상실한 암담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보다 개방적인 가치관과 폐쇄적인 가치관의 대립 속에서 보편가치가 퇴색하는 현상 속에서 깊어가는 우리시대의 병색. 이러한 위기감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어쨌든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우리의 삶이 좋아졌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무리 시대가 병들었어도 계속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간 사람들 덕분이다. _ 도널드 서순, <우리 시대의 병적 징후들> , p155/177


 저자인 서순이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모습은 결코 밝지 않다. 병적 징후는 완연하지만 차도는 없는 상황에서 깊은 답답함을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해야 할까. 당연하게도 그렇지는 않다. 자유, 평등, 우애(Liberte, Egalite, Fraternite). 프랑스 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표어 속에서 우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상호 충돌할 수 있는 가치가 '우애'를 통해 조화되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소수의 경제적 자유를 위해 부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우리 시대의 질병은 우리의 판도라 상자에 남은 마지막 '희망'을 우애에서 놓지 않을때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있다. 이런 패배 가운데 어느 것도 특별히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좌파 정당이 우파의 의제를 그렇게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다. 대다수 사민주의 정당은 조만간 긴축 정책을 받아들이고, 임금이 정체하고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했다. 또한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용인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수혜자들에게 과감하게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한 것처럼,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 새로운 고성장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론은 철저하게 불신받고 있다."_ p60/177



사실상 모든 보주주의자와 심지어 일부 좌파도 표명하면서 승리를 거둔 사고는, 유럽에서 경제진보를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과도한 사회복지이며,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어느 정도까지 기회를 확대하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 시각이 유럽 주요 정당들의 경제 담론에서 굳건하게 중심을 차지했다. 이 시각은 진정한 자유는 시장에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중심적인 전 지구적 서삭 되었다.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워싱턴과 런던에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이르기까지 세계 금융 시스템의 패권적 행위자들이 장려했기 때문이다. _ p134/177

오늘날의 병적 징후들은 앞선 수십년간 이루어진 성장과 번영에 연결되어 있다. 대체로 현재의 불만은 환멸, 희망의 상실과 밀접히 관련되며, ‘담대한 희망‘ 같은 슬로건으로도 희망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오늘날 ‘국제적인‘ 것은 ‘인류‘가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이다. 그리하여 대기업과 소수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나라끼리 싸움을 붙이는 한편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정부 간섭을 비난하면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 각국이 다른 나라에게서 투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경쟁이다. _ p155/177

우파는 승승장구했지만 ‘극‘좌파는 그만큼 선전하지 못했다. 심지어 오늘날 ‘극좌파‘라는 표현 자체가 1945년 이후 30년간 주류 사회민주주의의 일부였던 입장까지 아우를 정도로 확장되고 있다. 극좌파는 마치 새로운 세력처럼 행동하지만 이 신좌파가 구사하는 언어는 대부분 낡았다. 압도적 다수, 즉 야비한 1퍼센트에 맞서 99퍼센트를 대변한다는 포퓰리즘적 주장을 펴는데, 마치 99퍼센트 자체가 계급과 젠더, 정치, 종교, 교육, 지역, 연령에 따라 나뉘지 않은 듯 행세한다. _ p92/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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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10 22: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냉전의 핵심이 체제경쟁이었으니 특히 자본주의 체제는 공산주의 체제와의 대결에서 우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가지 복지정책을 추진할 수 밖에 없던 면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박정희가 의료보험체계를 유럽식으로 가져온것도 순전히 북한과의 체제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었으니까요. 대결하던 한 체제가 무너지고 난 이후 자본주의의 극단인 신자유주의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자본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네요. 어쩌면 그람시의 저 말이 현재의 위기에 대한 직관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새로운 것은 무엇이고 그것은 언제가 될지 고민이 많아지기도 하네요.

겨울호랑이 2022-08-10 22:18   좋아요 3 | URL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체제간 대립이 격심하던 시기에 약자들에 대한 복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복지제도가 반드시 예산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과연 갈등과 대립이 모든 이에게 나쁜 것이며, 평화가 모든 이에게 좋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던지게 되네요. 이런 면에서 본다면 향후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신냉전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바람돌리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8-10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궁금했었습니다.
좋다고 하시니 장바구니로!

겨울호랑이 2022-08-10 22:51   좋아요 3 | URL
우리 시대의 문제점에 대해 통찰력있게 짚어 준 책이라 생각됩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과거에 갖고 있던 믿음을 내려놓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뻔한 속임수를 알기 쉽게 설명해줬을 때도 그러하니,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닐까? 나는 이제 내가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대신 내 논리를 최대한 명확하게 밝히고, 상대방이 앞으로도 계속 충분한 정보와 대안적인 설명을 접한다면 언젠가는 훌륭한 증거로 뒷받침되는 설명을 받아들일 거라고 바랄 뿐이다.

나는 교육과 인내 그리고 정직함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중 무엇도 빠른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요약하자면 항성처럼 살아 있지 않은 물질은 자연 법칙 외에 과학이 감지할 수 있는 그 어떤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단기적 목적을 실제로 가지고 있다. 바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목적은 특정 물리적 분자와 세포 복합체 그리고 신체에 한정되어 있으며, 장기적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 유기체의 진화가 가져온 결과다. 한 유기체의 생존과 번식은 수천 세대 앞의 미래를 내다보며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형이상학적 목표, 목적, 운명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경험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는 없다.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은 소설 《모비 딕Moby Dick》의 에이햅Ahab 선장을 통해 운명이란 개념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에이햅 선장은 자신의 인생이 운명에 의해 통제되며, 흰 고래 모비 딕을 잡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 고래를 사냥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고 믿는 듯 보인다.

목적론적 믿음을 갖는 사람들 중에는 종교를 통해 그렇게 된 사람이 많지만, 일부 사람들은 우주 그 자체가 어떤 신비로운 방식을 통해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미리 예정되어 있는 어떤 최종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기도 한다. 초기의 일부 진화론자들은 진화를 미리 운명 지워진 경로를 따라 펼쳐지는 과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 믿음의 핵심적인 요소는 이렇게 진화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결국 인간이 무대에 등장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다는 것이었다. 목적론은 본질적으로 목적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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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덕성도 그렇지만 용맹에도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넘는 순간 우리는 어느덧 악덕의 길 위에 서 있게 된다. 이 한계를 잘 알지 못하면 용맹에서 무모함, 고집불통, 어리석음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연약함에서 비롯된 과오와 악의에서 비롯된 과오를 엄격히 구별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연이 우리 내면에 새겨 놓은 이성의 법칙을 의식적으로 거스르는 것이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바로 그 자연을 우리 쪽 증인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 그 같은 결핍과 결함을 넣어 준 장본인으로 말이다.

공포는 참으로 기이한 정념이다. 의사들은 어떤 정념도 공포만큼 빠르게 우리의 판단력을 평정 상태에서 몰아내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사실 나는 공포 때문에 분별을 잃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아무리 침착한 사람이라도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끔찍한 혼란을 겪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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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9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0 0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