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이란 무엇인가? 피해자가 원하는 해결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사죄는 누가 어떻게 가해 행위를 했는가를 가해국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애매하지 않은 명확한 표현으로 국내 및 세계에 표명하고, 그러한 사죄가 진지한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후속 조치가 수반될 때 비로소 피해자들이 진정한 사죄로 받아들일 수 있다. _ 조윤수, <일본군 '위안부'> , p140/250


  2018년 8월 14일부터 국가 기념일로 지정되어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그렇지만, 요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극우 세력의 움직임은 매우 걱정스럽다.  1993년 고노담화 이후 시간이 갈수록 퇴행되어가는 일본의 역사인식과 이에 편승하는 일본과 한국 극우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맞이한 기념일. 저절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출처] 뉴스타파 : 거리를 뒤덮은 혐오,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사람들 


 고노 관방장관 담화(1993. 8. 4.)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왔으나 금번 그 결과가 정리되었기에 발표하기로 했다. 금번 조사 결과 장기적이고도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되었으며, 많은 위안부가 존재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운영되었으며, 위안소 설치,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대해서는 구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위안부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담당하였으나 그 경우도 감언·강압 등에 의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된 사례가 많으며, 더욱이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위안소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에서 참혹한 것이었다.


 또한 전지로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일본을 제외하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당시 한반도는 일본국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강압 등에 의해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


 어쨌든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하에 수많은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금 출신지 여하를 떠나 소위 종군위안부로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 또 그와 같은 마음을 일본국이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해서는 지식인들의 의견 등도 구해 앞으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역사의 진실을 피하는 일 없이 오히려 이것을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나가고자 한다. 우리들은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와 같은 문제를 영원히 기억해 똑같은 잘못을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 또한 본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소송이 제기되어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어, 정부로서도 앞으로 민간 연구를 포함해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 나가고자 한다. _ 조윤수, <일본군 '위안부'> , p120/250


 올해 기림의 날에는 조윤수의 <일본군 '위안부' - 역사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억하다>를 읽었다.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대중교양서로서 알기 쉽게 내용을 정리하면서도 문제점을 명확하게 짚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책 내용 중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몇년 전 논란이 되었던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의 위안부 관련 내용과 반론을 정리한 부분이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 두 권의 책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문제의 핵심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책이 가진 큰 매력이라 여겨진다.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 군인들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으며 군인을 ‘위안’한다는 사실만으로 삶의 긍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중에는 일본 군인을 동지나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 많은 여성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여성을 전쟁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동원한 일본군과 정부의 책임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위안부’ 피해를 기억하는 것은 그것이 전쟁에 기인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고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벌이지고 있는 피해이기 때문이다. 동지적 관계였다는 시점으로는 현재 세계 각지에서 벌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피해에 대해 어떠한 건설적인 대안도 제시할 수 없다. _ 조윤수, <일본군 '위안부'> , p98/250


 독자들은 일본군에 의한 인권 유린 사안을 전장에서 꽃핀 휴머니즘으로 승화시키고 문제의 본질을 (제국주의)국가 권력에 의한 폭력에서 남녀 가부장제의 모순으로만 치환하는 <제국의 위안부> , 반인권 행위를 법적 정당성 문제로 몰아가는 <반일종족주의>의 문제점을 확인하며, 사안의 문제점을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영훈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당시에는 공창제도가 인정되었고, ‘위안부’는 공창제도를 군이 이용한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1920년대부터 공창제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1924년 1월 와세다대학 교수 아베 이소오安部磯雄 등이 제출한 ‘공창제도 폐지 청원서’를 보면 “공창제도는 사실상 전율스런 인신매매와 참담한 노예제도를 동반하는 벗어날 수 없는 나쁜 제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창제도는 인신매매와 자유구속이라는 2대 죄악을 내용으로 하는 사실상의 노예제도”라는 것이다. 합법이니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공창제하에 놓여 있던 여성들의 대부분은 인신매매에 의해 동원되었고 전차금에 얽매여 업자에게 구속된 사실상의 성노예였다. _ 조윤수, <일본군 '위안부'> , p68/250


 이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얼마 전 읽은 <성모 마리아 찬가> 중 일부를 떠올리게 된다. 제목 그대로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찬미가 중 부부관계 요구를 거절하여 남편에게 폭행당한 여인의 치유와 관련한 시(詩)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군과 위안부의 관계가 작품에서처럼 부부는 아니지만,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폭행은 작품 속 남편의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여러분은 성모 마리아가 소녀를 

어떻게 보호하셨는지 놀라운 일을 듣게 될 겁니다. 

비록 소녀가 남편의 권력 아래에 있었지만

신랑은 그녀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순결한 상태로 남았고

이 일을 이후에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후렴)큰 연민과 자비와 숭고함, 

이 세 가지는 성모 마리아에게 넘칩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일 년을 함께 살았으며

남편은 그 소녀와 부부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소녀에게 큰 폭행을 하게 되었고

그녀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일을 말하기 송구스럽지만, 그는 소녀의 몸 가운데

아주 은밀한 부분을 칼로 잔인하게 찔렀습니다.


이 일을 누구도 묘사할 수 없었고

말로 형용하기조차 힘든 행위였으며

피사에 있는 외과 의사들도

그녀가 입은 상처에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자신이 당한 학대에 대해 항의를 했습니다.

그후 보니파시오라고 불리는 한 주교가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p447

 

 끔찍한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제대로 호소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작품 속의 소녀와 일본군 피해자의 처지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그들의 아픔에 사회가 무관심했고, 공론화 된 이후에도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사회의 현실에서도 작품과 현실은 공통점을 갖는다. 이러한 공통점을 통해 <성모 마리아 찬가>의 도시의 시민들처럼 사건에 괴로워하면서도 진실을 알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은 너무도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는가, 말하기조차 고통스러워 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막았던 것은 아니었는가도 돌아보게 된다.


이 일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에 대해 깊은 연민의 정과

문제의식을 가졌기 때문에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부부간의 문제를 확대하지 않기 위하여

그는 소녀를 남편에게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나의 증인이듯이 그 불한당은

즉시 고열에 시달렸고 심한 증상을 겪었습니다.


도시의 모든 사람이 그 고열로 인해 고통을 받으며

교회로 이주하였습니다. 이곳에 너무 많은 사람이

누워 있기 때문에 그 일부는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결과가 그 젋은 남자가 저지른 

악의적인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p448


 오랫동안 침묵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에도 있었다. 한 여성이 46년 만에 진실을 털어놓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설마 몰라서 그랬을까? 일본 군인과 군속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남성이 3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몰랐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피해 여성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한몫했다. 예전의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일본군에게 강제로 몸을 더럽혔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피해자들은 몸을 더럽혔다고, 민족의 수치라고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피해자임을 내세우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를 소환하여 자신이 당한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세월이 지나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피해를 밝힌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숨긴 채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_ 조윤수, <일본군 '위안부'> , p25/250


 <성모 마리아 찬가>에서는 고통당한 소녀의 절규가 이어진다. 마찬가지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절규에 대해 우리는 성모 마리아와 같이 귀기울여 들어왔는가. 들으려 노력하기 보다는 오히려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들의 목소리를 음해하고 오히려 비난하는 현실 속에서 아픔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남편 때문에 상처를 입은

그 불쌍한 소녀도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열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소녀는 오른쪽 가슴에 큰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교회로 데려갔는데 회색 빛 모직 천에 싸인 채

살아 있다기보다 죽어가는 상태였습니다. 


그녀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울부짖으며 말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님, 제가 당신을 믿었는데

왜 절 도와주시지 않으십니까? 당신이 약속한 것을 

저에게 주시지 않고 고열만 주셨습니다.

그 일이 제게 준 병은 너무 끔찍해서 

내 몸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후렴)큰 연민과 자비와 숭고함, 

이 세 가지는 성모 마리아에게 넘칩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p449


 오늘은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며, 내일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최근 국가 기념일을 둘러싼 논쟁이 될 수 없는 사안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 참 멀게만 느껴지지만, 앞으로 나가는 대신 점차 뒤로 밀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비록 현실과 현실 속의 마음은 어두워 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보다 앞선 이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노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아픔을 겪는 모든 이들의 평안함을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청하게 된다... 


그 소녀가 대답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성모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네 손을 나에게 주어라."

성모 마리아는 소녀를 일어나게 했고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렸습니다.

소녀는 자신의 몸이 화상과 위험한 상처로부터

완전히 회복된 것을 느꼈습니다.

(후렴)큰 연민과 자비와 숭고함, 

이 세 가지는 성모 마리아에게 넘칩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p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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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4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4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22-08-14 1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이 가지고 계신. 제대로 땅에 닿지도 못한 채 들린 발뒤꿈치를 하고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생각납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4 16:52   좋아요 3 | URL
오래전 페이퍼인데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소녀상을 문제삼으며 독일까지 간 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문제해결 방안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게 됩니다... 대체 언제까지 사과를 요구하냐고 따지지만, 사과내용에 맞는 역사교육을 하지 않으며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행태를 감싸는 이들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5 08:10   좋아요 2 | URL
나와같다면님 말씀을 듣고 프로필 사진을 바꾸었네요... 늘 눈 앞에 두고도 미처 떠올리지 못한 소녀상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어떤 이들은 마치 유(類) 아래 있는 종(種)들처럼 이 거대한 세상을 여럿으로 나누어 분류합니다만, 이 거대한 세상이야말로 올바른 관점으로 우리를 알기 위해 들여다봐야 하는 거울입니다.

어떤 동기가 우리를 움직이는지, 우리 안에 있는 그처럼 다양한 충동의 원인은 무엇인지 말해 줘야 합니다. 아이의 오성을 촉촉히 적셔 줄 첫 번째 가르침은 아이의 행동과 감각을 조절해 주고, 자기 자신을 알게 함과 더불어 잘 죽고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을 말해 주고 난 뒤에 논리학, 물리학, 기하학, 수사학이 무엇인지 말해 줘야 합니다. 아이가 어떤 학문을 선택하면, 이미 판단력이 형성되어 있으니 금방 습득할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은 지금 행해지는 교육과는 달리 엄격한 자애(慈愛)로 이끌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글의 세계로 초대하는 대신, 실로 끔찍스럽고 잔인한 모습만 보여 줍니다. 폭력과 강제는 치워 주세요. 내 생각에 좋은 천성을 그보다 더 심하게 퇴화시키고 멍청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매질을 해서 학문을 잔뜩 우겨 넣은 주머니를 아이들에게 주고 잘 간수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학문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아 두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것과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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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은 어릴 때 학대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자기 부모의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통념을 ‘학대의 악순환cycle of abuse’이라 부른다. 아이들은 집에서 보고 배운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학대받던 아이가 자라면 십중팔구 학대하는 부모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사건 A가 결과 B에 선행하면 우리는 A가 B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소급 오류에 빠지기 쉽다. 이 오류를 빈번히 저지른 것으로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 단계에서 발달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면 우리는 연관성이 연속적인 것으로 보여 매우 만족스러운 통찰을 얻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반대로 처음부터 시작해서 그 결과를 예측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한 사건이 그 이전 사건들이 야기하는 필연적인 결과라는 인상을 받을 수 없다."

독감 백신이 사망률을 50% 정도 줄여준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이 거의 분명하다. 하지만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다는 거부하기 힘든 증거가 존재한다. 한 실험에서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들에게 백신의 균주와 일치하는 독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자 96%의 예방률이 나왔다.

크리슬립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독감 백신은 이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독감 백신을 맞을수록 모두에게 더욱 큰 혜택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할머니를 위해 독감 백신을 맞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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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 찬가 대우고전총서 49
알폰소 현왕 지음, 백승욱 옮김 / 아카넷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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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보호자가 되소서. 신실한 믿음으로 인해

당신은 축복을 받아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분이 앉은 권좌에 당신이 함께 계시기에

우리가 절실할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여인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500


 알폰소 10세 데 카스티야(Alfonso X de Castilla, 1221~1284)의 <성모 마리아 찬가 Cantigas de Santa Maria>는 불멸과 필멸, 영원과 순간을 잇는 중개자로서 성모(聖母) 마리아(Maria)가 행한 것으로 전해지는 기적을 다룬다. 중세 이후 가톨릭 신앙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다른 천사와 성인과는 다른 '상경(上敬)'의 예를 받이왔는데, <성모 마리아 찬가>에는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어머니께 전구(轉求)를 청하는 이유와 당대인들의 간절함이 담겨있다.


주님이 그 안에 들어가서

육신을 얻기 위해

당신의 어머니로 택하신

성모 마리아님에게 우리는 

큰 사랑을 빚졌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348


주님은 당신의 권능을

나누거나

감추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는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육신을 갖고 태어나셨으며

게다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죽음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묻고 요청하시는

모든 것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머니의 요청을 아들인 제가 이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입니다.

훌륭한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은

뭐든지 아들이 들어야 하니까요.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383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작품 속에서 완전한 신과 불완전한 인간 사이를 오가며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돕는 중재자이다. 이 중간자 역할은 죄악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자상한 성모 마리아의 도움 없이 완전한 존재에 다가서기 쉽지 않다는 내용을 전제로 한다. 13세기 당시 서구 사회에서 발생했을 법한 수많은 불행한 개인사들이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통하여 기적적으로 해결된다는 내용이 모든 세부 가요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서문 , p12


 그렇지만, 본문 속에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수동적인 중재자의 위치에 한정되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악(惡)과 죄(罪)에 맞서는 모습에서 소식을 전하는 중개자로서의 대천사 가브리엘(Gabrielus)의 모습과 함께 대천사 미카엘(Michael)의 역할을, 아픔을 치료해주는 역할에서는 대천사 라파엘(Raphael)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분명히 말하노니,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인간의 형태로 나타나 그분의 능력을

불려받으셨으니 성모 마리아도 

이러한 기적을 행사하실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원하실 때

병자가 낫고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186


악마는 그녀가 어느 기사를 

열렬히 사랑하게 만들었고

마음의 평화를 갖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결국 그녀가 수도원을 떠나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


기사가 그녀를 데리고 

떠난 후에

아들딸을 낳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비의 성모 마리아는

방종을 결코 비난하지 않으시고

기적을 일으켜

그 소녀가 과거에 살던

회랑이 있는 수녀원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오게 만드셨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207


 8월 15일 가톨릭력으로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이해 찾아 읽은 <성모 마리아 찬가>는 이와 같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믿음이 가져다 준 불행으로부터의 벗어남을 다룬다. 그같은 전구가 청하는 이들에게 비록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지는 못할지라도, 목마른 갈증을 풀어주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그리고, 어쩌면 죽음 뒤의 삶을 체험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불행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을까.


 <성모 마리아 찬가>의 저자는 에스파냐 국왕 에스파냐 국왕 알폰소 10세다. 현왕(el Sabio)으로 불리는 그가 이같은 치유(治癒) 문학, 종교 문학을 가 직접 주관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성모 마리아 찬가>의 서문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252년에 등극한 스페인 국왕이자 동시에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꿈꾸던 강력한 권력자 알폰소현왕이 이 엄청난 분량의 대작을 직접 주관하며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성모 마리아의 기적을 참신한 문체로써 재구성하여 그녀의 초자연적인 행적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중간자적 역할을 자청함으로써 자신이 책과 독자 사이에 지적/영적 지도자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서문 , p14 


모든 여인 중 당신은 축복을 받으셨기에

당신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절실할 때,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여인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주님이신 당신의 아들을

모욕하는 사람만큼

동정녀를 그토록 슬프게 

하는 이는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렇게 한다면

그 공격이 오히려 자신에게

돌아갈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나는 이 내용과 관련한

성모 마리아의 한 위대한 기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귀를 기울이기시기 바랍니다.

동정녀를 그토록 슬프게

하는 이는 없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533


 생전에 톨레도 번역가 학교를 설립하여 라틴어, 아랍어, 히브리어의 문헌을 이베리아어로 번역하는 등 문화적으로 이베리아반도를 하나로 묶고자 했던 그는 <성모 마리아 찬가> 같은 작품을 바탕으로 정신적인 통일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제위까지도 노렸다는 것이 역자의 설명이다. 근대 이후 유럽에서 형성된 민족주의가 언어에 기반했음을 생각한다면, 알폰소 현왕은 시대에 앞서 민족주의의 본질을 꿰뚫어본 통치자라 생각되지만, 자신을 '중재자의 관찰자'로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신의 이름을 빌려 강력한 절대왕정을 희망했던 중세의 국왕의 면모도 함께 볼 수 있다.


 알폰소 현왕의 문화업적은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를 통해 조선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했던 조선의 세종(世宗, 1397 ~ 1450)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생전 아들 세조(世祖, 1417 ~ 1468)의 반란을 않아도 되었던 세종과는 달리 둘째 왕자 산초의 반란을 겪어야 했고, 신성로마제국 황위에도 못오르는 등 정치적으로 실패했다는 점에서 알폰소 현왕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는 성모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와 후세왕으로부터 시작된 레콩기스타(Reconquista)는 처음으로 세계 패권을 허락하는 듯했으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그의 제국은 신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었을까. 빠르게 붕괴되고 말았다. 한편, 알폰소 현왕은 자식의 반란 소식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아들의 반란 소식을 들었을 때, 아들 아도니야의 반란을 접한 이스라엘 왕 다비드를 떠올리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작품 중 이브(Eve)와 아베(Ave)를 대조한 아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아베 신조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당연하게도 여기서는 '아베(마리아)'를 지칭한다. 성경 최초의 여성 '이브'와 성경 최고의 여성 '마리아'에 대한 대조는 최초의 남자 '아담'과 최고의 남성 '예수'와 대조한 <로마서>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기에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글의 마지막은 <성모 마리아 찬가>를 읽으며 떠올렸던  영화 <Sister Act>의 <Oh Maria>로 갈무리한다. '신의 어머니'로 존경받는 이의 모습보다 친구처럼 불행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노래의 힘을 통해 어쩌면 성모가 희망하는 찬미는 이같은 것이 아닐까...


이브(Eve)가 비록 우리에게서

천국과 하나님을 빼앗아갔지만

아베(Ave)는 우리에게

그것을 돌려주었습니다.


비록 이브는 우리를

악마의 사슬에 묶이도록 했지만

아베는 우리를 그로부터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이브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의를 상실하게 했지만

아베는 우리가 그것을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이브는 우리에게 하늘 문을 

잠그고 열쇠를 버렸지만

마리아는 "아베"라고 말하며

그 문을 부수고 열었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395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_ <신약성경> (로마 5:12-15)



성모 마리아 이외 여인들의 미모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그들이 가진 매력은 그분과 비교할 때
딸기 한 알만도 못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지속적이고
절대 실패하지 않으며
항상 커져만 갑니다. - P428

그후 성모 마리아는
그가 잠든 사이에
당신의 손을
그의 다리 근처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당신의 재빠른 손가락으로
환자이 살을 치료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를 위해
아름답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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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생한 국민제헌의회(Assemblee nationale constituante)가 행한 첫 번째 일은 국민 합의에 의한 세금 납부 원칙 공표였다. 프랑스는 세금으로 건설된 나라이며 납세를 할 때 그 사람은 비로소 프랑스의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조세 원칙은 실로 중대한 결정이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함락에 가담했던 시위대의 2/3가 생 앙투안 주민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특권층에 대항해 수백 년간 이어온 민중 투쟁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도시 봉기와는 달리 이번에는 더 이상 절망 가득한 투쟁이 아닌 민중해방운동이었다. 특정 지배계급의 주도에 의해 휩쓸리는 그런 종류의 분노가 아니었다. 반란이라는 기본 형식에 민주주의가 마련한 새로운 방식의 평화적 사회 투쟁을 유기적으로 연계하여 민중의 열기는 전혀 새로운 모험을 향해 나아갔다.

앞에서 본 것처럼 궁중에서 시작되어 살롱으로 확대된 문화(혹은 문명)라는 개념은 문자를 매개로 공공의 장에 편입된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문화를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다른 대륙의 ‘미개인’과 다를 바 없던 일반 대중은 문화인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정치적 사고 방식의 밑바탕에는 보편적인 교육 이상주의가 깔려 있었다. 엘리트들은 언젠가는 모든 미천한 군중이 완전한 시민권을 행사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학교 교육, 언론, 연극을 통해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의 토대를 세우는 막중한 시기에 새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국가 지방 행정의 가장 기본 단위인 4만여 코뮌에 자율성을 얼마나 인정해 줄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시에예스는 코뮌의 자율적 권한에 부정적 입장이었다. 자치권을 확보한 코뮌은 공화국 형태의 무수한 소국(小國)으로 변모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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