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찬가 대우고전총서 49
알폰소 현왕 지음, 백승욱 옮김 / 아카넷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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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보호자가 되소서. 신실한 믿음으로 인해

당신은 축복을 받아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분이 앉은 권좌에 당신이 함께 계시기에

우리가 절실할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소서.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여인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500


 알폰소 10세 데 카스티야(Alfonso X de Castilla, 1221~1284)의 <성모 마리아 찬가 Cantigas de Santa Maria>는 불멸과 필멸, 영원과 순간을 잇는 중개자로서 성모(聖母) 마리아(Maria)가 행한 것으로 전해지는 기적을 다룬다. 중세 이후 가톨릭 신앙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다른 천사와 성인과는 다른 '상경(上敬)'의 예를 받이왔는데, <성모 마리아 찬가>에는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어머니께 전구(轉求)를 청하는 이유와 당대인들의 간절함이 담겨있다.


주님이 그 안에 들어가서

육신을 얻기 위해

당신의 어머니로 택하신

성모 마리아님에게 우리는 

큰 사랑을 빚졌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348


주님은 당신의 권능을

나누거나

감추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는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육신을 갖고 태어나셨으며

게다가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죽음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묻고 요청하시는

모든 것을 들어드리겠습니다.

어머니의 요청을 아들인 제가 이행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입니다.

훌륭한 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은

뭐든지 아들이 들어야 하니까요.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383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작품 속에서 완전한 신과 불완전한 인간 사이를 오가며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돕는 중재자이다. 이 중간자 역할은 죄악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자상한 성모 마리아의 도움 없이 완전한 존재에 다가서기 쉽지 않다는 내용을 전제로 한다. 13세기 당시 서구 사회에서 발생했을 법한 수많은 불행한 개인사들이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통하여 기적적으로 해결된다는 내용이 모든 세부 가요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서문 , p12


 그렇지만, 본문 속에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수동적인 중재자의 위치에 한정되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악(惡)과 죄(罪)에 맞서는 모습에서 소식을 전하는 중개자로서의 대천사 가브리엘(Gabrielus)의 모습과 함께 대천사 미카엘(Michael)의 역할을, 아픔을 치료해주는 역할에서는 대천사 라파엘(Raphael)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분명히 말하노니,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시고

인간의 형태로 나타나 그분의 능력을

불려받으셨으니 성모 마리아도 

이러한 기적을 행사하실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원하실 때

병자가 낫고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186


악마는 그녀가 어느 기사를 

열렬히 사랑하게 만들었고

마음의 평화를 갖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결국 그녀가 수도원을 떠나는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


기사가 그녀를 데리고 

떠난 후에

아들딸을 낳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자비의 성모 마리아는

방종을 결코 비난하지 않으시고

기적을 일으켜

그 소녀가 과거에 살던

회랑이 있는 수녀원을

그리워하고

다시 돌아오게 만드셨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207


 8월 15일 가톨릭력으로 성모승천대축일을 맞이해 찾아 읽은 <성모 마리아 찬가>는 이와 같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믿음이 가져다 준 불행으로부터의 벗어남을 다룬다. 그같은 전구가 청하는 이들에게 비록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지는 못할지라도, 목마른 갈증을 풀어주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을 해본다. 그리고, 어쩌면 죽음 뒤의 삶을 체험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불행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을까.


 <성모 마리아 찬가>의 저자는 에스파냐 국왕 에스파냐 국왕 알폰소 10세다. 현왕(el Sabio)으로 불리는 그가 이같은 치유(治癒) 문학, 종교 문학을 가 직접 주관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성모 마리아 찬가>의 서문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1252년에 등극한 스페인 국왕이자 동시에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꿈꾸던 강력한 권력자 알폰소현왕이 이 엄청난 분량의 대작을 직접 주관하며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성모 마리아의 기적을 참신한 문체로써 재구성하여 그녀의 초자연적인 행적들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중간자적 역할을 자청함으로써 자신이 책과 독자 사이에 지적/영적 지도자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서문 , p14 


모든 여인 중 당신은 축복을 받으셨기에

당신으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절실할 때,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여인이여,

우리에게 임하소서.


주님이신 당신의 아들을

모욕하는 사람만큼

동정녀를 그토록 슬프게 

하는 이는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그렇게 한다면

그 공격이 오히려 자신에게

돌아갈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나는 이 내용과 관련한

성모 마리아의 한 위대한 기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귀를 기울이기시기 바랍니다.

동정녀를 그토록 슬프게

하는 이는 없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533


 생전에 톨레도 번역가 학교를 설립하여 라틴어, 아랍어, 히브리어의 문헌을 이베리아어로 번역하는 등 문화적으로 이베리아반도를 하나로 묶고자 했던 그는 <성모 마리아 찬가> 같은 작품을 바탕으로 정신적인 통일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신성로마제국의 제위까지도 노렸다는 것이 역자의 설명이다. 근대 이후 유럽에서 형성된 민족주의가 언어에 기반했음을 생각한다면, 알폰소 현왕은 시대에 앞서 민족주의의 본질을 꿰뚫어본 통치자라 생각되지만, 자신을 '중재자의 관찰자'로서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신의 이름을 빌려 강력한 절대왕정을 희망했던 중세의 국왕의 면모도 함께 볼 수 있다.


 알폰소 현왕의 문화업적은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를 통해 조선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했던 조선의 세종(世宗, 1397 ~ 1450)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생전 아들 세조(世祖, 1417 ~ 1468)의 반란을 않아도 되었던 세종과는 달리 둘째 왕자 산초의 반란을 겪어야 했고, 신성로마제국 황위에도 못오르는 등 정치적으로 실패했다는 점에서 알폰소 현왕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는 성모의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와 후세왕으로부터 시작된 레콩기스타(Reconquista)는 처음으로 세계 패권을 허락하는 듯했으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그의 제국은 신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이었을까. 빠르게 붕괴되고 말았다. 한편, 알폰소 현왕은 자식의 반란 소식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아들의 반란 소식을 들었을 때, 아들 아도니야의 반란을 접한 이스라엘 왕 다비드를 떠올리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작품 중 이브(Eve)와 아베(Ave)를 대조한 아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아베 신조를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당연하게도 여기서는 '아베(마리아)'를 지칭한다. 성경 최초의 여성 '이브'와 성경 최고의 여성 '마리아'에 대한 대조는 최초의 남자 '아담'과 최고의 남성 '예수'와 대조한 <로마서>의 내용을 떠올리게 하기에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글의 마지막은 <성모 마리아 찬가>를 읽으며 떠올렸던  영화 <Sister Act>의 <Oh Maria>로 갈무리한다. '신의 어머니'로 존경받는 이의 모습보다 친구처럼 불행한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노래의 힘을 통해 어쩌면 성모가 희망하는 찬미는 이같은 것이 아닐까...


이브(Eve)가 비록 우리에게서

천국과 하나님을 빼앗아갔지만

아베(Ave)는 우리에게

그것을 돌려주었습니다.


비록 이브는 우리를

악마의 사슬에 묶이도록 했지만

아베는 우리를 그로부터

해방시켜주었습니다.


이브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의를 상실하게 했지만

아베는 우리가 그것을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이브는 우리에게 하늘 문을 

잠그고 열쇠를 버렸지만

마리아는 "아베"라고 말하며

그 문을 부수고 열었습니다. _ 알폰소 현왕, <성모 마리아 찬가> , p395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_ <신약성경> (로마 5:12-15)



성모 마리아 이외 여인들의 미모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그들이 가진 매력은 그분과 비교할 때
딸기 한 알만도 못합니다.
그분의 사랑은 지속적이고
절대 실패하지 않으며
항상 커져만 갑니다. - P428

그후 성모 마리아는
그가 잠든 사이에
당신의 손을
그의 다리 근처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며
당신의 재빠른 손가락으로
환자이 살을 치료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우리를 위해
아름답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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