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유라시아 견문 2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유라시아 견문 2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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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인식된 이슬람 문명의 이미지는 ‘한 손에는 코란, 다른 한 손에는 칼‘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 이슬람 경제에 대한 일반의 이해 역시 ‘이자 없는 은행‘ 정도가 전부 아닐까. 공급과 수요, 저축과 소비로 인간 경제 활동을 설명하는 현재의 경제학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슬람 경제를 독특한 종교 문화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의 새로운 대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슬람 은행의 목표는 인간의 복리 증진에 있습니다. 그 복리에는 물질적 만족도 포함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과 행복입니다. 따라서 생산의 최대화, 소비의 극대화가 이슬람 은행의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정신의 건강함과 생활의 경건함, 사회적 공정과 공평의 실현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즉 이슬람 경제는 경제적 고려를 도덕적 고려에 종속시킵니다. 이자 없는 은행이라는 특수성에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 기층에 깔려 있는 이슬람적 가치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은행의 활동마저도 결국은 알라의 뜻을이 땅에 실현하는 것, 지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궁극의 목표인것입니다.
-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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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어쩌면 오늘 죽을 지 모릅니다. 쌍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소년병 이우근의 일기(포항여중 앞에서 전사)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5>, p68


 <인천상륙작전 4>에서 시작된 한국전쟁은 무섭게 남북측 모두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비극으로 던져 넣는다. 한국 민중의 삶을 대변하는 주인공 두 형제와 이들의 가족들 또한 이로 인해 가슴아픈 일을 겪으며 작품은 마무리된다. 


 (1950년 부산 임시정부) 당시부산의 풍경은 두 가지였다. 하루 한끼를 겨우겨우 해결하는 극빈층의 삶과 전쟁 중에도 방종한 생활을 하는 사회 지도층 또는 유지층의 삶이 그것이었다. 한국 유엔대표단이 외교적으로 어떤 수고를 감내하고 있는지, 이제 겨우 제 나라를 찾은 약소국의 외교관이 머나먼 타지에서 어떤 고초를 겪으며 국제원조를 끌어내려 노력했는지 댄스홀의 그들은 알 턱이 없었을 것이다.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5>, p55


 <인천상륙작전>에서는 두 세계가 교차된다. 일반 민중의 삶과 지배층의 삶. 두 형제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일반 민중의 삶은 고되지만, 짧은 서술로 표현되는 당시 국내외 정세와 지배층의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가 설정한 이러한 구도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결정사항이 실제의 삶을 좌우하는 모습을 연상시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한국 전쟁의 비극을 더 잘 전달한다. 


 인천 앞바다에 떠다니는 배들 본 적 있어요? 돛대에 빨간 천 매달고 다니잖소. 그게 다 우린 빨갱이 편이오~라는 표식이오. 근데 그중에 진짜 빨갱이가 몇이나 되겠소? 솔직히 고기 잡는 것밖에 모르던 우리가 뭘 알아서 누구 편을 들겠냐고?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5>, p84


 영화 <남부군>을 보면 과거 1940년대 말 지리산 일대에는 아침에는 국군이, 밤에는 빨치산이 점령하면서 그 사이에 놓인 힘없는 이들이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많은 피해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오는 보도연맹 학살 사건과 같은 비극은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이들이 엮은 비극이 잘 표현된다. <남부군>의 문제가 <태극기 휘날리며>에서처럼 전국으로 확대된 것이 한국전쟁의 어두운 면이자 최대의 비극임을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다시 생각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천상륙작전 1>에서 작가가 제기한 물음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우리는 해방을 했는가? 또는 해방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중 9번 째 주제인 '해방'을 바그너(Richard Wagner)의 정의에 따라 생각해보자.


 '해방'은 운동이자 목표의 개념이며, 결국에는 성취의 개념이 되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우선] 그것의 의미가 펼쳐진 두 가지 의미 축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과거와의 단절과 해방이 강조되거나, 아니면 미래 지향성과 목표, 즉 자유에 집중했다... 둘째로 이 개념은 항시 해방을 실행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위상을 지녔다. 말하자면 해방은 승인되거나, 쟁취될 수 있었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9 : 해방> , p44 


 해방이 일본의 직접 통치로부터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면 1945년 일제의 정치적 지배로부터 우리는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우리가 1940년대의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우리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면 그때에도 우리가 해방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와 같이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의 해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PS. <인천상륙작전 6>에는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죽은 딸과 죽어가는 아내를 바라보는 참혹한 심정을 어떻게 노래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참 마음이 아프다...


 미아리 고개의 원래 이름은 '되너미 고개'. 병자호란 때 되놈들이 넘어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공동묘지가 생기며 사람이 죽으면 이 고개를 넘으니 이별을 상징한 고개가 되었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창자를 끊는 듯한 생이별의 고통을 받아야 하는 통곡의 고개가 되었다. 1956년 반야월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라는 곡을 발표한다. 홀로 피난길을 떠났다가 돌아와 보니 아내는 영양실조로 누워 있고 네 살 난 딸은 죽어 있었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6>,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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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2-24 1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헬로키티 얼굴을 하시구선 이런 슬픈 글을 올리시다니 ㅠㅠ소년병. 단어만으로도 정말 슬픕니다. ㅠ

겨울호랑이 2021-02-24 18:2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인천상륙작전> 안에는 소년병들의 나이가 징집 대상 연령 미만인 15 ~17세이고, 3,000 여명 중 2,400명이 전사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있는데 참 마음이 아픕니다..ㅜㅜ

레삭매냐 2021-02-24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해방이 다시는 전제주의적
군주제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
게 되었다는 차원에서 하나의
해방은 성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어진 분단으로 인해 새로
운 단절을 낳게 되지나 않았나 싶
요.

대단한 해석과 적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관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네요.

기회가 된다면 가서 빌려다
보고 싶어지네요.

겨울호랑이 2021-02-24 18:39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 의견에 동의하면서 동시에 ‘해방‘이라는 주제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우리의 근현대사와 관련해서는요. 레삭매냐님께서도 <인천상륙작전>을 읽으신다면 보다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질서란 무엇을 뜻하는가? 진보라는 것은 한눈에도 그 뜻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우리가 인간 사회의 부족한 것 중의 하나로 진보를 말할 때 이는 개선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정도면 그 뜻이 어느 정도 분명하다. 그러나 질서라는 말은 경우가 다르다... 질서를 가장 좁게 정의하자면 복종이라는 말과 통한다... 진보만이 가진 독특한 정신 요소, 그 진보를 절정에 이르게 해주는 본질적인 요소는 바로 독창성이나 창의력이다. _존 스튜어트 밀, <대의정부론>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의 표현 처럼 진보(進步, progess)를  개선(改善, frformation)으로 바라보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전에 나오는 같은 의미를 갖는 독일어 Fortschritt 역시 동일하다고 볼 것인가?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시리즈를 읽으면서 얻은 점은 이에 답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같은 뿌리를 갖는 언어권 내에서도 미묘하지만 분명한 의미 차이를 알게 되면서, 특히 '개념어'에 해당하는 언어 사용과 번역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다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일부 개념어(예를 들면, 문화 kultur / 문명 civilisation)들은 다른 유럽어권 언어와 다른 의미를 갖지만, 다행히 '진보'라는 단어에는 심하게 다른 요소는 없어 보인다. '진보'가 문화권의 영향보다는 서구 사상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단어이기 때문일까. 


 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von Aquin의 이론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해도 진보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비슷한 틀 안에서 움직였다. "자연의 완성은 사실 세상의 시작에 내재해 있었다. 진정한 영광의 완성은 세상의 종말에 있을 것이다. 또한 영광의 완성은 시작과 끝을 매개하는 중간자다. 그래서 예수는 세상의 한 가운데로 온 것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39

 

 중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 ~ 1274)의 말 속에서 우리는 신에 의한 창조된 세계, 피조물로서 자연과 인간의 법칙이 하나이며 순환적 세계관  -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요한 묵시록 22:13)" - 을 발견한다. 중세의 진보가 신의 절대적/영속적 시간 속에서 이뤄진 발전을 의마한다면, 근대 이후 '이성 理性'을 가진 존재로서 역사의 주체인 인간의 진보는 방향성과 영속성 면에서 차이가 있다.


 진보 개념의 관철에서 척도가 된 것은 이성과 현세적 시간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의 지양이었다. 이성의 사용이나 이성을 통한 발견과 새로운 고안들은 시간과 함께 증가되었다. 결국은 이성 자체가 시간성을 띠게 되었다. 노화가 이전에는 노쇠의 진행 현상에 비유되었다면 이제는 이성의 사용의 확장으로 이해되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52


 신의 시간이 영원(永遠)이라면 그 자체로 완성(完成)을 의미하기에 중세의 진보는 신이 만든 세계 내에서의 순환을 의미하겠지만, 시간의 한계를 갖는 인간에게 진보는 보다 직선적이고 상향(上向)의 의미를 갖는다. 이런 면에서 '진보'는 시대에 따라 다른 방향성을 갖는다는 사실과 함께, 순환적인 자연의 법칙과 비순환적인 인간의 법칙의 차이를 발견한다.


 홉스 Thomas Hobbes는 자연과학에서의 진보와 이를 좇지 못하는 도덕 간에 벌어진 괴리를 정확하게 묘사했다. 그는 도덕론에서 기하학적 정리처럼 규칙성과 예측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학문적 발전과 이에 상응하지 못하는 도덕적 수준의 비대칭에서 생겨난 이러한 요구는 이후에 진보에 대한 논의에서 단골 주제가 되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91


  비순환적인 인간의 법칙에서도 '진보'에 대한 문제는 계속된다. 홉스(Thomas Hobbes,1588 ~ 1679)의 지적처럼 과학으로 대표되는 학문의 진보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윤리의 문제는 일반적인 '진보'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다. 또한, 개별 사건에서 발견되는 역사의 퇴보는 또한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진보'를 바라보자는 시각이 새롭게 제시된다. 개별 사건으로는 퇴보가 되었을지라도, 보다 큰 흐름 속에서 개선된다는 역사의 법칙은 여전히 유용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진보는 이중의 역사 해석을 필요로 했다. 개별 사건이나 역사적 사실은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일 수 있다. 하지만 진보의 관점에서는 위기와 혁명 자체도 크게 봤을 때 개선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쉽게 얘기 하자면 현재에 나쁜 일로 타격을 받는 운명을 겪더라도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이다.(p102)... 역사의 이중 해석이 개선과 합리적 발전이라는 가설을 성립하게 했다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 과정에서 시간 경험의 차이가 또 다른 명제를 이끌어냈다. 가속화의 명제가 그것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03 


 이로써 모두에게 공통적이었던 진보의 경험은 이제 관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어야 했다. 종종 내걸던 진보의 법칙은 경험적으로는 결코 공통분모를 가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진보의 행위자나 관련자는 시간상 서로 다른 단계에 있다고 평가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개인을 초월한 경험적 명제는 부분적으로만 확인될 수 있었고 보편적 증거라는 것도 그때그때 다양한 관점에서 본 것이었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23 


 아마도, 이러한 보편적 역사의 법칙으로서 '진보'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 ~ 1903)의 <진보의 법칙과 원인 Progress : Its Law and Cause>에 잘 나타난 듯하다. 그는 자연법칙의 진화(進化 evolution)를 인간 사회로 가져오면서 보편 법칙으로서 사회적 진화를 말한다. 엔트로피(entropy 무질서도) 증가 속에서도 일어나는 진화, 그리고 진보. 20세기 대부분의 시기를 지배한 사회적 진화론의 논리를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한다.

 

 현재의 모든 사건에서 그러한 것처럼 태초로부터 모든 작용력들이 여러 힘으로 분해되어 영속적으로 더욱 복잡성을 창출한다는 것도 예상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복잡성의 증가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진보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고, 인간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유익한 필수과정이다._ 허버트 스펜서, <진보의 법칙과 원인>, p90


 코젤렉은 책의 마지막에서 '진보'라는 개념에는 언제나 정치적인 논리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A보다 B가 더 나은 상태이니,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진보의 가치판단이라면, 그 근거는 정치적인 것일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런 면에서 '진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코젤렉이 서두에서 말한 진보의 포괄적 개념을 마지막으로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과거에 있었던 진보를 통해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새 시대를 향해 질문을 던지게 되지만 과거를 돌아보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어떤 관점이든 관계없이 진보의 개념에는 예측의 잠재력이 내재하고 이것은 언제나 정치적 입장을 띨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 : 진보>, p144


ps. 밀은 <대의정부론>에서 '질서 = 복종' 이라고 했는데, 스펜서의 복잡성 증가는 복종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진보가 일어난다는 답도 포함된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진보는 스스로 역사의 주체가 된 보편적 인류와 관련된 개념이 되었고, 때로는 개별적인 영역 혹은 구체적 행위 일체와 관련되었다... 진보 자체는 주체적 개념으로 가끔 더 나빠지는 것을 표현할 때도 있지만 보통 개선을 향한 움직임을 뜻한다. 또한, 진보는 비순환적 진행을 가리키며, 종종 가속화 Beschleunigung 를 의미한다. 진보의 목표는 유한한 범위 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그 목표를 무한하게 연기하는 사이에서 동요한다.(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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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선발대의 도착 소식은 한국인들에게 흥분을 안겼다. 소시민들은 그들대로의 기대감이, 돌연한 사이에 삶의 지향을 바꾼 이들에겐 두려움과 설렘이, 지배계급에겐 힘센 '내 편'의 출현이란 기쁨이 밀려왔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1>, p109


 <인천상륙작전>에는 형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시민을 대표하는 철구 아버지와 친일파에서 우익으로 과거를 세탁하고 변신한 철구 삼촌. 지배계급이 아닌 이들에게 닥친 해방 전후는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길과 같았다.  


 치솟는 물가, 범죄와 부정부패는 해방 직후 민생을 괴롭힌 주요 문제였다. 해외 동포들의 귀환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경제 파탄이 가속화되었고 장치는 과잉되어 있었으나 민생을 돌볼 틈이 없었다. 물가 불안의 주된 이유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떠나기 직전 화폐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재한 일본인들의 귀국 자금을 마련하려고, 당시 통화량의 70% 정도에 해당하는 화폐를 만들어 뿌렸다. 일제가 퇴각하는 순간까지 화폐를 찍어내는 등 수탈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일본인이 각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2>, p55


 패전 직후 화폐를 남발한 일제의 금융정책 농단과 미군의 쌀가격 통제로 인한 실물경제의 실패는 경제적 불안을 가져왔고, 좌우 이념 대립은 정치적 불안을 깊게 했다. 여기에 미군정의 상황 인식과 대처는 해방 이후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대와는 달랐기에 갈등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미군정이 생각할 때, 해방은 조선인이 한 게 아니죠. 조선의 해방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로 얻어진 수확이지, 전쟁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인공'이다 뭐다 해서 주권이란 이름으로 나대니 미군정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미군정은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겠죠. 그런데... 조선인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 도리어 패배했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 근대화된 일본, 또는 그 아류에게 더 시선이 가지 않을까요?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1>, p158 


 이같은 정치경제 배경 하에서 1950년을 전후한 미국의 대외정책 변경과 한국정부의 무리한 북진 정책 추진은 북측에 충분한 전쟁의 빌미를 주었음을 알게 한다. <인천 상륙 작전 4>에서 한국 전쟁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1 ~ 3권을 통해 그 이전 이야기를 일반 시민의 삶을 통해 보여주면서 <인천상륙작전>은 보다 생생하게 당시를 증언한다. 다만, 인천을 고향으로 둔 형제를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연결시켜 보여주기에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은 아쉽지만(철구 아버지의 고향은 인천, 철구 어머니의 고향은 팔미도라는 설정, 철구 아버지가 한강 인도교 폭발로 실종되고, 철구 삼촌이 도피하면서 노근리를 지난다는 설정 등)흥미와 역사적 교훈 전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있는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을 일반인의 눈 높이에서 이보다 잘 그리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쟁으로 향한다...


 남한은 이승만의 허풍에 가까운 북진통일론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전쟁에 무방비 상태였다. 당시 남한의 병력은 정규군 6만5천, 해안 경찰대 4천, 경찰 4만 5천 명이었다. 탱크와 기갑차량은 전무했고 여섯 대의 항공기가 전부였다. 15일 동안 국방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보급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13만 명의 지상군(실전 경험자 포함)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3>, p164


 육군 정보국에서 북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군은 바로 그날 비상경계를 해제했다. 때는 주말.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 외출한 상태였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2시.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파티에는 전방부대 사단장들까지 초청되어 밤새 술판이 벌어졌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4>, p23




미군정이 생각할 때, 해방은 조선인이 한 게 아니죠. 조선의 해방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로 얻어진 수확이지, 전쟁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인공‘이다 뭐다 해서 주권이란 이름으로 나대니 미군정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미군정은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겠죠. 그런데... 조선인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 도리어 패배했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 근대화된 일본, 또는 그 아류에게 더 시선이 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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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2-21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만 해방
을 인식해 왔었는데, 저자의 말처럼
미군정을 실시하던 미군들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방 정국의 리더들이
너무 안이하게 광복과 자주 국가 건설
을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이 얼마나 컸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1 17:31   좋아요 1 | URL
그럿습니다. 우리의 독립항쟁에 대해 태평양 건너의 미국은 거의 알아주지 못한 반면, 함께 항일연군을 구성했던 중국 또는 일본과 적대했던 소련은 이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듯 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있었기에,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들 지식인들이 ‘빨갱이‘란 명분으로 몰렸던 것이 해방 이후 인재 부족의 원인 중 하나였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정기 구독으로 받은 <비판 인문학 100년사>. 1900년 니체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20세기를 지나 2000년 이후 21세기 초반까지 인문 사상사의 주요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서구 근대화의 꽃이 활짝 피었던 시기이자 동시에 극심한 정치/경제 이데올로기 대립의 시대였던 20세기. <비판 인문학 100년사>는 각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들의 주요 사상과 저서들을 훑어 준다는 면에서 장점을 갖는다.


 이미 책을 읽었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책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과 의견 등에 더해 책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적 의의를 알려준다는 점이 책이 가진 장점이라 여겨진다. 지도에서 위도와 경도를 통해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반면, 이는 해당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독자들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약 250페이지에 20세기의 주요 사상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빠듯하기에, 깊이 있는 사상 설명은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때문에, 인문학 입문자들에게는 입문 안내서의 의의를 갖지 않을까 여겨진다. 


 책에는 어떻게 사상들이 소개되어 있을까. 마침 얼마 전 읽은 <수용소 군도>에 대한 내용이 책에 담겨 있어 해당 내용을 옮겨본다. 

 

 1974년 프랑스에서는 러시아 체제에 저항했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솔제니친은 소비에트연방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이 책은 서구세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프랑스에서 굉장히 큰 방향을 일으킨 것은 몇십 년 전부터 대다수 프랑스 지식인층이 마르크스주의에 동조해왔으며, 역사적으로 구현된 형태인 소비에트연방을 어느 정도 인정해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이 책의 성공은 정치참여 및 사상 면에서, 즉 전체주의라는 정치체제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사회학 이론에 대한 급격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전체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현상은 서로 연결됐지만, 그 본질은 달랐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부르주아들의 위선으로 치부됐던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주제가 제일선으로 되돌아왔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189


 위의 내용처럼 서술되기에 책을 읽은 이들은 책의 영향과 역사적 의의에 대해 알게 되어 깊이를 더할 수 있겠지만, 읽지 않은 이들은 책을 통해 내용적으로는 크게 얻는 바가 없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대신 좋은 책 안내서로서 기능하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비평 인문학 100년사>는 독자별로 다른 느낌을 줄 책이라 생각된다.


 소련 체제의 베일 속 진실이 밝혀지면서 지식인들의 공산당 편향은 점차 종말을 맞이한다. 1956년에 발표된 흐루쇼프의 '20세기 소련 공산당 대회' 보고서는 과거에는 파시즘과 제국주의 간의 갈등이라고 회피했던 사건들에 비판적 시각을 부여하면서 스탈린의 전횡을 만천하에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6년 사르트르는 프랑스 공산당에 더는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51년에 탈당한 에드가 모랭은 1959년에 <자기비판>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같은 지식인들의 공산당 외면은 프라하의 봄 이후 솔제니친 효과로 더욱 심화됐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120


  개인적으로 <비평 인문학 100년사>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사상가가 있다면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1952 ~ )다. <역사의 종언>을 통해 자본주의와 미국 민주주의의 최종 승리를 선언한 것으로 알고 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에는 종래의 입장을 번복하고 미국의 쇠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마치 전기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이 다르듯, 후쿠야마의 사상도 달라졌기에 그의 최근 저서를 담아둔다.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보고, "역사는 종언했다"고 말했다.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1992)>. 그는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하고 인류사회의 궁극적인 체제로서 정착하는 최후의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빠른 속도로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어 갔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223


 심지어 냉전 붕괴 후, "역사가 미국식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승리로 귀결된다"고 주장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마저 이번엔 중국을 편들고 있다. 그는 2011년과 2014년 잇따라 펴낸 <정치 질서의 기원 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과 <정치질서와 정치쇠퇴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라는 두 권의 책에서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밝힌다. 일찍이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강대국의 흥망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에서 1980년대 미국의 쇠퇴 대신 1990년대 일본의 부상을 예상했지만, IT혁명으로 미국의 쇠퇴가 연기되면서 일본의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대 정치 질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는 국가와 법치, 민주 책임제다. 이상적인 경우는 이 삼자가 평형을 이룰 때다. 그리고 정치질서 건설에서 우선순위는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는 게 첫 번째고 이어 법치, 그리고 마지막이 민주 책임제다. 법치와 민주 책임제가 정부 권력을 견제헤야 하지만 국가각 능력을 상실하면 이는 재앙이다. 시리아/이라크에서처럼 사회는 대혼란에 빠지고 만다. 중국의 성공은 강한 정부 구축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반면 정부 권력이 약화된 미국은 현재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_성일권, <비평 인문학 100년사>,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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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my 2021-02-26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로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후에 자신의 이론을 철회하는 솔직함도 보여 주었지요.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그 점은 대단한거 같아요. 그건 비트겐슈타인도 마찬가지고요. 언급하신 책 <비판 인문학 100년사> 목차를 보니 흥미롭네요. 보관함에 담았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6 13:02   좋아요 0 | URL
자신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알려준 주장이나 책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비트겐슈타인 모두 대단한 석학이라 생각됩니다. noomy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

scott 2021-03-05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달의 당선!
추카~추카~
오늘 태어난 개굴군 🐸 놓고 가여 ㅋㅋ

겨울호랑이 2021-03-05 21: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코로나19로 예년같이 않은 요즘이라 이번 해에는 경칩이 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