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선발대의 도착 소식은 한국인들에게 흥분을 안겼다. 소시민들은 그들대로의 기대감이, 돌연한 사이에 삶의 지향을 바꾼 이들에겐 두려움과 설렘이, 지배계급에겐 힘센 '내 편'의 출현이란 기쁨이 밀려왔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1>, p109


 <인천상륙작전>에는 형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시민을 대표하는 철구 아버지와 친일파에서 우익으로 과거를 세탁하고 변신한 철구 삼촌. 지배계급이 아닌 이들에게 닥친 해방 전후는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길과 같았다.  


 치솟는 물가, 범죄와 부정부패는 해방 직후 민생을 괴롭힌 주요 문제였다. 해외 동포들의 귀환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경제 파탄이 가속화되었고 장치는 과잉되어 있었으나 민생을 돌볼 틈이 없었다. 물가 불안의 주된 이유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떠나기 직전 화폐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재한 일본인들의 귀국 자금을 마련하려고, 당시 통화량의 70% 정도에 해당하는 화폐를 만들어 뿌렸다. 일제가 퇴각하는 순간까지 화폐를 찍어내는 등 수탈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일본인이 각 금융기관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2>, p55


 패전 직후 화폐를 남발한 일제의 금융정책 농단과 미군의 쌀가격 통제로 인한 실물경제의 실패는 경제적 불안을 가져왔고, 좌우 이념 대립은 정치적 불안을 깊게 했다. 여기에 미군정의 상황 인식과 대처는 해방 이후에 대한 한국인들의 기대와는 달랐기에 갈등은 더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미군정이 생각할 때, 해방은 조선인이 한 게 아니죠. 조선의 해방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로 얻어진 수확이지, 전쟁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인공'이다 뭐다 해서 주권이란 이름으로 나대니 미군정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미군정은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겠죠. 그런데... 조선인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 도리어 패배했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 근대화된 일본, 또는 그 아류에게 더 시선이 가지 않을까요?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1>, p158 


 이같은 정치경제 배경 하에서 1950년을 전후한 미국의 대외정책 변경과 한국정부의 무리한 북진 정책 추진은 북측에 충분한 전쟁의 빌미를 주었음을 알게 한다. <인천 상륙 작전 4>에서 한국 전쟁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1 ~ 3권을 통해 그 이전 이야기를 일반 시민의 삶을 통해 보여주면서 <인천상륙작전>은 보다 생생하게 당시를 증언한다. 다만, 인천을 고향으로 둔 형제를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연결시켜 보여주기에 다소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은 아쉽지만(철구 아버지의 고향은 인천, 철구 어머니의 고향은 팔미도라는 설정, 철구 아버지가 한강 인도교 폭발로 실종되고, 철구 삼촌이 도피하면서 노근리를 지난다는 설정 등)흥미와 역사적 교훈 전달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있는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전쟁의 기원>을 일반인의 눈 높이에서 이보다 잘 그리긴 어려울 것이다. 이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쟁으로 향한다...


 남한은 이승만의 허풍에 가까운 북진통일론에 대한 미국의 견제로 전쟁에 무방비 상태였다. 당시 남한의 병력은 정규군 6만5천, 해안 경찰대 4천, 경찰 4만 5천 명이었다. 탱크와 기갑차량은 전무했고 여섯 대의 항공기가 전부였다. 15일 동안 국방작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보급품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북한은 13만 명의 지상군(실전 경험자 포함)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3>, p164


 육군 정보국에서 북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보고를 했음에도 군은 바로 그날 비상경계를 해제했다. 때는 주말. 절반에 해당하는 병력이 외출한 상태였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2시.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파티에는 전방부대 사단장들까지 초청되어 밤새 술판이 벌어졌다. _ 윤태호, <인천상륙작전 4>, p23




미군정이 생각할 때, 해방은 조선인이 한 게 아니죠. 조선의 해방은 태평양 전쟁의 승리로 얻어진 수확이지, 전쟁의 목적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인공‘이다 뭐다 해서 주권이란 이름으로 나대니 미군정이 보기에 얼마나 어이없겠어요? 미군정은 누군가에게 조선을 맡기겠죠. 그런데... 조선인에게? 공산주의자들에게? 도리어 패배했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싸움을 이뤄낸 근대화된 일본, 또는 그 아류에게 더 시선이 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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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2-21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만 해방
을 인식해 왔었는데, 저자의 말처럼
미군정을 실시하던 미군들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해방 정국의 리더들이
너무 안이하게 광복과 자주 국가 건설
을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
이 얼마나 컸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1 17:31   좋아요 1 | URL
그럿습니다. 우리의 독립항쟁에 대해 태평양 건너의 미국은 거의 알아주지 못한 반면, 함께 항일연군을 구성했던 중국 또는 일본과 적대했던 소련은 이에 대한 이해가 있었던 듯 합니다. 이러한 이해가 있었기에,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들 지식인들이 ‘빨갱이‘란 명분으로 몰렸던 것이 해방 이후 인재 부족의 원인 중 하나였음을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