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역사학자들은 독일이 프랑스나 스페인 같은 국민 국가로 통일되지 못한 이유를 심사숙고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신성 로마 제국의 거대한 땅덩어리가 주권자가 여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을 한 가지 확실한 이유로 들 수 있다.

막시밀리안은 3편의 자서전적 우화를, 개별 지식 분과의 정수를 뽑아내서 여러 권의 백과사전을 만들기 위한 대규모 편찬 사업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백과사전의 각 부에는 요리, 승마술, 매 훈련법, 원예학, 포술砲術, 펜싱, 도덕률, 성채와 도시, 마술(흑마술도 포함된다), 연애 기술 등과 관계있는 모든 지식이 요약될 예정이었다.

막시밀리안의 미래상은 현실과 동떨어졌고, 그럴듯하지도 않았다. 그는 치세 내내 야심에 비해서 수입이 부족했다. 프랑스의 왕들이 매년 수백만 두카트의 수입을 올리던 시절, 막시밀리안은 그의 중앙 유럽 영지에서 겨우 약 60만 두카트를 거둬들였다.

개혁가들은 대부분 신화적 과거를 되돌아보았고, 통치자와 제후들의 공동 지휘 아래에 정의가 지배하는, 신이 정해놓은 상태가 재확립되기를 꿈꾸었다. 반면 막시밀리안은 군대 양성과 자금 확보라는 관점에 입각한 조율에 관심이 있었고, 개혁가들이 꿈꾸는 방식의 권력 분점을 꺼렸다.

카를은 재정적 절박성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돈이 필요했고, 카스티야의 군주로서 의회의 동의 없이 다양한 세금을 징수할 권리가 있었다. 그렇게 거둬들이는 세금은 그의 모험을 뒷받침하는 데에 할당되거나 대출의 담보로 제공될 첫 번째 수입원이었다. 세금 다음으로 그가 기댄 것은 카스티야 의회가 특별히 통과시키는 자금이었는데, 그 돈을 이용하려면 일단 의회를 소집해야 했다.

카를은 정치적 기반도 미리 준비해두었다. 종교 전쟁을 선포하는 대신, 차지할 자격이 없는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며 개신교 제후들을 압박한 것이다. 그러자 적들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났고, 덕분에 카를은 1547년에 뮐베르크 전투에서 주요 개신교 제후들을 상대로 놀라운 승리를 거둘 발판을 마련했다.

카를은 일단 아들인 펠리페가 스페인과 신성 로마 제국의 군주 자리에 오른 뒤에 나중에 페르디난트의 아들인 막시밀리안(훗날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
재위 1564-1576)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 방식을 고집했다.
그 결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이 최고로 커졌을 때조차 가문의 판도는 양분되었고, 스페인 쪽은 카를의 아들인 펠리페가, 중앙 유럽 쪽은 카를의 동생인 페르디난트가 통치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합스부르크 가문은 끊임없이 신화를 수집하고, 영묘를 만들고, 옛 로마인의 방식으로 승리를 과시했지만, 그런 활동은 더 이상 무의미한 자기 선전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기에는 카를이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 말한 바와 동일한 목적(왕가 차원에서 신앙을 수호하는 것)이 점점 더 많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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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보고된 연구에 따르면 종교는 낮은 사망률, 더 적은 수술합병증, 높은 행복감과 상관관계가 있다. 하지만 종교는 정신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종교는 보통 죄책감과 상관관계를 보이며 강박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한 정신병적 망상은 종교적인 양상을 띠는 경우가 많다.

기도는 의학을 대신하는 가장 인기 있는 수단으로 다른 대체요법을 모두 합친 것만큼 인기가 높다.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기도의 효능을 최초로 연구한 사람으로 영국 왕실 가족은 평균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매주 일요일마다 수많은 사람이 교회로 나가 왕실의 건강을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수명은 평균보다 짧은 것으로 밝혀졌다.

영화산업의 성비 불균형은 소비자가 접하는 콘텐츠의 다양성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전체 영화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2014년 미국에서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이 감독, 각본, 제작을 모두 맡은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주연을 맡은 비율은 4퍼센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성이 감독, 각본, 제작 중 어느 하나라도 참여한 경우, 그 비율은 39퍼센트까지 높아졌다.

인공지능 분석 기술은 결국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설계에 편향이 존재할 위험이 있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있어 공학자와 사회 구성원 간의 끊임없는 소통이 중요한 이유다.

질병X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치료제, 백신 개발과 같은 기술적 대응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던 반면, 감시 및 역학, 방역 및 방제와 같이 전염병의 조기 감지 및 신속 대응을 위한 시스템에 관심이 부족했다. 즉, 전염병 대유행 이후 신속히 보급할 수 있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 즉 사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술적 대응에 초점을 맞춰온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에서 완벽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항체가 세포 밖에서 돌아다니는 바이러스를 제거하고, NK세포나 CD8 T세포가 용해 작용을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미생물의 1시간은 사람의 한 세대인 20년에 맞먹는 시간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다양한 면역 회피 기전이 빠르게 진화할 수 있다. 많은 연구자가 이런 기전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면 바이러스의 감염을 방지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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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가문은 과거에 왕을 선출하는 과정에 몇 번 참가했었지만, 새로 정해진 선거인단에서 빠지면서 신성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헌정 문서에서 누락되었다. 카를 4세는 의회의 향후 회합에 대비하여 직접 마련한 좌석 배치도에서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을 선제후들과 고위 성직자들, 제국의 고관대작들 다음인 두 번째 열에 배치함으로써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위가 강등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알브레히트가 오스트리아에 장기간 머문 덕분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당시의 어느 연대기 작가로부터 "오스트리아인들"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오스트리아인들이라는 용어가 합스부르크 가문을 가리키는 데에 쓰인 첫 번째 사례였다. 과거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섭정을 통해서 오스트리아를 다스렸지만, 이제는 슈바벤의 영지 덕분에 총독을 임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돌프의 업적은 한층 더 미묘한 것이었다. 루돌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들에게 역사의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덕분에 그들은 단순한 혈족 집단을 뛰어넘게 되었다. 로마 제국과 오스트리아를 둘러싼 과거를 상상으로 꾸며내고 대공의 관과 대공이라는 칭호를 창안한 데에 힘입어 후계자들 사이에서 연대감과 목적의식이 생겼고, 연대감과 목적의식은 각 세대를 거치는 동안 그들의 마음에 더 깊숙이 각인되었다. 다른 가문 사람들은 당대의 황제 덕택에 선제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겠지만, 합스부르크 가문 사람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힘입어, 그리고 역대 황제들이 몇 세기에 걸쳐 인정해준 특권에 힘입어 높은 지위에 올랐다.

영주의 통치권은 정치적 공동체 의식을 유발했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각 영지에서 피지배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출현했다. 이러한 정치 공동체들은 14세기 말엽부터 의회를 열어서 통치자와 정책을 토론했고, 증세를 둘러싼 권리를 증진시켜달라고 요구했다. 상속권 문제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면 의회는 합의를 종용했고, 당사자들의 주장을 중재하기 위한 위원들을 임명했다.

AEIOU라는 두문자어와 성 게오르크 예배당 서쪽 벽의 문장, 그리고 급성장세의 연대기 문학은 모두 동일한 주제를 가리켰다. 오스트리아는 그저 하나의 지역이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의 통치자들은 위대해질, 그리고 사람들을 다스릴 운명을 타고난 자들이었다. 오스트리아는 바로 그런 땅이었다. 사실, 오스트리아는 땅이 아니라 제국, 사명, 상속, 운명 같은 여러 주제들이 한데 모인 후천적 구성물이었다. 브란덴부르크나 작센처럼 다른 통치자들이 속한 가문의 이름은 주요 영토의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달랐다. 오스트리아는 지리적 요인과는 별개로 성립된 통치 가문을 향한 일련의 믿음이 특징인 곳이었다.

15세기 초엽에 합스부르크 가문은 황제의 옥좌에 도전할 가문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1493년에 프리드리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미 55년 동안 신성 로마 제국의 통치자들로 군림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황실처럼 보였다. 그들은 역사를 자신들의 편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바야흐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통과 신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은 위대함을 향한 열망을 품고 있었다. 1437년, 프리드리히가 세계 제패의 뜻을 담아 비망록에 남긴 AEIOU는 허영심이 묻어날 뿐 아니라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490년대에 이르러 그것은 믿을 만했고, 실현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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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 천상의 음악
존 엘리엇 가디너 지음, 노승림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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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는 칸타타, 모테트, 오라토리오 및 미사곡과 수난곡을 통해서 바흐가 자신의 폭넓은 세계관뿐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과 선호하는 기질(하필 그 가사를 선택한 이유로 들 수 있는)을 얼마나 명확하게 드러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17/518


 존 엘리엇 가디너 (John Eliot Gardiner, 1943 ~ )는 <바흐 : 천상의 음악 Bach: Music in the Castle of Heaven>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휘자인 저자가 바라본 바흐의 생애와 작품들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본문에서 저자는 칸타타와 수난곡에 음악에 담긴 서사와 곡의 감상포인트 등 자칫 놓치기 쉬운 핵심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곡이 연주되는 단조로운 시간 속에서 청각만으로 작곡가가 만든 세계를 시각적으로 떠올린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분명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렇지만, 해당 곡과 함께 작가의 해설을 들으면 어렴풋하게나마 마치 샌드아트(Sand Art)처럼 바흐의 의도가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여전히 뚜렷하진 않지만...)


 <요한 수난곡>에서 즐길 수 있었던 생생한 장면 묘사와 거침없는 극적 추진력이 감소되는 대신 이 <마태 수난곡>에서는 정교하게 의인화된 다양한 '음성들' 드라마 자체(바흐가 주로 대화를 통해서만 진행시키는)에 개입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리아도 부르는 우화적인 요소들과, 생산적인 긴장 상태에서 연속적이면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모든 시간 변화를 유지하는 방식을 즐길 수 있다. 이 같은 통일된 페이스는 <마태 수난곡>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45/518


 작가는 바흐의 음악세계를 소개하면서 결론적으로 바흐의 음악세계를 '변용(變容)'으로 표현한다. 저자 뿐 아니라 바흐의 곡을 가장 독창적으로 잘 소화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 ~ 1982) 역시 다양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주제의식을 바흐음악의 특성으로 꼽는 것을 보면 바흐의 음악특성은 '변화(變化)' 또는 '음악표현의 다양성'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바흐 음악의 대가(大家)들이 말하는 음악표현의 다양성은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그 어느 것도 바흐 음악이 지닌 압도적인 변용의 힘을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할 수 없다. 그의 칸타타가 기독교인과 비신도에게 똑같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힘 때문이다. 우리가 이 음악에 담긴 생각과 감정을 다른 경우보다 훨씬 솔직하고 명료하며 깊이 있게 표현한다면, 이 음악은 커다란 위안을 안겨준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84/518


 글렌 굴드가 말했듯 '그 어떤 작곡가보다도 바흐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위법의 전제조건은 선율적 정체성을 선험적으로 구상하는 능력으로, 이 정체성은 일부 전적으로 새롭지만 완전히 조화로운 윤곽을 가지고 있어서, 순서를 뒤바꾸거나 도치시키거나, 역행하거나, 혹은 리듬적으로 변형이 되었을 때, 그럼에도 여전히 오리지널 주제와 함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80/518


 저자는 바흐 음악에 담긴 변용안에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 ~ 1564)의 정신과 음악론을 발견한다. 루터에 따르면 <성경> 텍스트에 담긴 이성(logos)과 음악이 표현하는 열정(passion)은 인간에게 내려진 신의 두 선물이다. 바흐는 이러한 루터의 교리에 따라 교회 칸타타를 교회 전례력에 맞춰 로고스를 담고, 다양한 기악과 성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열정을 그의 곡에 담아냈다. 글렌 굴드가 말한 다양한 변화 속의 오리지널한 주제는 바로 곡에 담긴 로고스이며, 이것은 수학적이며 절제된 열정으로 음악이 재현되는 순간 청중과 연주자에 의해 매번 다르게 변주될 것이다. 


 루터가 정의하였듯이 음악의 구체적 의무는 성경 텍스트를 표현하고 거기에 감동을 더하는 것이었다. 음표는 언어에 생명을 부여한다(Die Noten Machen den Text lebendig).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선물인 언어와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분의 힘을 구축하며, 텍스트가 주로 지성(뿐만 아니라 열정)에 호소하는 반면 음악은 주로 열정(뿐 아니라 지력)에 말을 건다. 루터는 음악이 없다면 사람은 돌덩어리와 다름없지만, 음악이 있다면 악마를 물리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126/518


 의도적으로 절제된 표현들 속에는 음악 기호가 암시하는 해석상의 문제들이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은 악보에 직접 적어 넣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 음악이 곧 터지기 일보직전의 화성적 잠재력으로 치장되어 있음을, 이러한 표현들의 본질적 뼈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잠재력으로 인해 청중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즉 어떤 화음이 숨어 있는지 몰라서 애태우게 된다. 바흐의 화성적 움직임을 파악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주자와 청중 양쪽 모두가 참여해서 그러한 창조적 행위를 완성시킬 필요가 있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199/518


 물론, 모든 음악이 재현되는 순간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바흐의 음악이 보다 특별하다면, 로고스의 패션의 결합, 언어와 음악의 결합이 다른 음악작품들 보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의 예술을 통한 영원한 작품 세계의 구현, 바흐 작품 목록(BWV; Bach Werke Verzeichnis)으로 이름지어진 개별 곡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전례력과 시간의 순환을 통한 영원한 신의 시간을 만들어낸 바흐의  세계. 그것은 작품 내에서는 대위법(對位法)을 통해 자연스러운 질서로서 표현되면서 청중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존 엘리엇 가디너는 <바흐 : 천상의 음악>을 통해 독자들에게 바흐 음악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정신과 전반적인 특성을 분명하게 각인시켜 준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 ~ 1759)과는 또 다른 면에서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바흐의 음악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면서 리뷰를 갈무리한다...


 바흐의 음악은 내러티브와 해설, 성서 연대기와 신학적으로 형상화된 시적 텍스트가 서로 맞물려 있었으며, 이처럼 정교하게 음악적 깊이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05/518


 무언(無言)의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언어'가 모든 면에서 우세했던 시대에는 볼 수 없는 획기적이고도 새로운 전략이었다. 이것은 바흐가 기악 '언어' 안에 더욱 정확한 로고스(logos)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직감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내재된 기악 언어는 성서나 종교적 언어와 관련된 음악만큼 강력하게 신을 찬미하고 신의 세계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135/518


 언어 그 자체를 표현하는 언어를 흔히 '메타언어'라고 한다. 바흐의 음악 중 사실상 가사에 순응하는 소위 '타협'의 영역과, 가사에 직접적으로 상충하는 '충돌'의 영역 사이에는, 유사한 맥락에서 발터 베냐민이 언급한 '소리와 대본의 이분법'과 비슷한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이 중간 지대에서는 가사를 동등한 입장에서 논하고, 확장하고, 사색할 수 있으며, 그에 동의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 시에 대해 음악은 물감을 한 겹 더 덧칠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즉,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들의 물리적 실재를 더 두껍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음악은 메타포에 상응한다. 음악은 말의 흐름과 암송된 시의 흐름에 제동을 걸고, 서로 다르게 구성된 리듬과 템포 속에 시를 배치한다. 작곡가 자신이 읽어내려가는 언어에 청중이 함께 참여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72/518

지금까지 보아왔듯 바흐는 음악과 언어를 함께 사용하며 기념비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이는 음악이나 언어를 따로따로 다루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음악이 때때로 글이나 말로 표현된 언어를 능가하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한 음악의 힘은 의식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서 사람들의 편견과 유해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원죄와 구원, 악이나 회개에 대한 깨우침을 위해 여전히 그의 칸타타와 모테트에 의지할 수 있다. 사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세상의 모든 추잡함과 공포보다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금언에 더 집중하게 된다. - P400

바흐 성악곡들을 하나로 묶어서 보면 그가 루터교 종말신학의 본질을 표현하며 이룩한 특별한 성취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영겁에 대한 아이디어다. 이 음악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호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이 만들어내는 확신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전통적인 종교나 정치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이것은 바흐 서재를 채우고 있던 17세기 루터 신학자들이 구상한 ‘영원한 미래‘라는 중심 교리다. - P400

여기에 실험적으로 사용되는 새롭고 오래된 음악적 테크닉은 바흐의 경우 성서적 사건에 생기를 주며, 헨델의 경우는 시편 텍스트 수면 바로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진정한 힘을 묘사한다. 두 작품 모두 작센의 젋은이들이 돌연변이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심오하고도 혁신적인 역할을 이어갈 것인지 시음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시점에서 헨델은 사랑, 분노, 충성과 권력에, 바흐는 삶과 죽음, 신과 영원성에 매달릴 것을 암시하며 장래 이 두 거인의 집착이 어떻게 갈라질 것인지 보여준다. - P133

무엇보다 바흐는 헨델처럼 상습적인 모방꾼은 아니었다. 헨델이야말로 자신의 상상력을 점화하기 위해서 다른 작곡가의 아이디어를 부싯돌로 사용하기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18세기 문학과 음악 관습상 표절은 널리 허용되긴 했지만, 헨델과 달리 바흐는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거친 조약돌을 가져다 쓸 필요가 없었다. 바흐의 방식은 늘 고전적이었다. 우선 모델이 될 만한 작품들을 공부하고, 그들을 베낀 뒤, 거기에 서문이나 주석을 추가해서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결합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다양한 테크닉과 스타일에 정통한 어휘를 일거에 습득했다. 이는 모든 것을 최대한 포괄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과정이었다.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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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농업혁명은 문명으로 가는 첫 단추라고 생각되지만, 알고 보면 거대한 사기였다는 주장도 있다. 우선 초기 농업으로 얻을 수 있는 작물의 양과 질이 모두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혈연관계가 아닌 이들과 조화롭게 사는 방법은 수많은 허구를 믿고 따르는 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 앞에서 머리를 숙여야 했고, 사제가 붉은 옷이 불경하다고 하면 입지 말아야 했고, 헝겊으로 가슴부터 무릎까지의 신체부위를 가리는 것이 예의라고 하면 따라야 했다.

농업혁명이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천문학의 탄생이다. 농사는 식물의 생활주기에 맞춰 진행된다. 농부는 하늘의 운행주기를 알아야 했다. 이는 태양, 달, 별들의 움직임과 관련된다. 이제 사제는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대신, 별의 움직임을 예측해야 했다. 훗날 천문학은 물리학의 탄생으로 이어져 인류를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이끌게 된다.

대중은 주기적으로 마음을 바꾸는 듯한 과학의 행태에 불만을 느낀다. 종종 사람들은 이를 과학의 결점으로 여긴다. 하지만 사실 바로 이런 부분이 과학의 강점이다. 새롭고 더 나은 증거의 등장으로 과학 공동체는 진실에 가까운 더 정확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반대자들은 우리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받아들이면 과학과 이성, 진실이 모두 파괴되어 결국 혹독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보면 포스트모던은 17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모더니즘 시대 이후를 일컫는다. 계몽적 가치를 제외하고는 모더니즘 이후의 시대를 정의할 마땅한 용어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계몽적 가치를 섣불리 받아들이길 거부한 사람들을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부르게 된 것이다.

트럼프가 하고 싶은 말은 정체성 정치론자들이 사회가 특권층 위주로 짜여진다고 지적하면서 주장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트럼프의 속내는 언론이 자신들이 가진 편견을 진실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메타서사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다.4

정치적, 문화적 메타서사에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면서 사회적 분열은 계속적으로 촉진되고 있다. 사회의 결집 또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서사에 대한 합의가 사라지면 우리의 위대한 사회는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기 직전의 시기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절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도의 유용성은 예측 능력과 설명 능력에서 기인한다. 즉, 우리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지도를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 지도를 그것이 나타내는 지형(궁극적인 실재)과 혼동하거나 더 새롭고 더 정확한 지도는 불가능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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