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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 천상의 음악
존 엘리엇 가디너 지음, 노승림 옮김 / 오픈하우스 / 2020년 12월
평점 :
이 책의 목표 중 하나는 칸타타, 모테트, 오라토리오 및 미사곡과 수난곡을 통해서 바흐가 자신의 폭넓은 세계관뿐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과 선호하는 기질(하필 그 가사를 선택한 이유로 들 수 있는)을 얼마나 명확하게 드러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17/518
존 엘리엇 가디너 (John Eliot Gardiner, 1943 ~ )는 <바흐 : 천상의 음악 Bach: Music in the Castle of Heaven>를 통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휘자인 저자가 바라본 바흐의 생애와 작품들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본문에서 저자는 칸타타와 수난곡에 음악에 담긴 서사와 곡의 감상포인트 등 자칫 놓치기 쉬운 핵심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곡이 연주되는 단조로운 시간 속에서 청각만으로 작곡가가 만든 세계를 시각적으로 떠올린다는 것은 일반인들에게 분명 쉽지 않은 부분이다. 그렇지만, 해당 곡과 함께 작가의 해설을 들으면 어렴풋하게나마 마치 샌드아트(Sand Art)처럼 바흐의 의도가 스쳐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여전히 뚜렷하진 않지만...)
<요한 수난곡>에서 즐길 수 있었던 생생한 장면 묘사와 거침없는 극적 추진력이 감소되는 대신 이 <마태 수난곡>에서는 정교하게 의인화된 다양한 '음성들' 드라마 자체(바흐가 주로 대화를 통해서만 진행시키는)에 개입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아리아도 부르는 우화적인 요소들과, 생산적인 긴장 상태에서 연속적이면서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이 모든 시간 변화를 유지하는 방식을 즐길 수 있다. 이 같은 통일된 페이스는 <마태 수난곡>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성취 중 하나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45/518
작가는 바흐의 음악세계를 소개하면서 결론적으로 바흐의 음악세계를 '변용(變容)'으로 표현한다. 저자 뿐 아니라 바흐의 곡을 가장 독창적으로 잘 소화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 ~ 1982) 역시 다양한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주제의식을 바흐음악의 특성으로 꼽는 것을 보면 바흐의 음악특성은 '변화(變化)' 또는 '음악표현의 다양성'이라 생각된다. 이처럼 바흐 음악의 대가(大家)들이 말하는 음악표현의 다양성은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최종적으로 분석하면, 그 어느 것도 바흐 음악이 지닌 압도적인 변용의 힘을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할 수 없다. 그의 칸타타가 기독교인과 비신도에게 똑같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힘 때문이다. 우리가 이 음악에 담긴 생각과 감정을 다른 경우보다 훨씬 솔직하고 명료하며 깊이 있게 표현한다면, 이 음악은 커다란 위안을 안겨준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84/518
글렌 굴드가 말했듯 '그 어떤 작곡가보다도 바흐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위법의 전제조건은 선율적 정체성을 선험적으로 구상하는 능력으로, 이 정체성은 일부 전적으로 새롭지만 완전히 조화로운 윤곽을 가지고 있어서, 순서를 뒤바꾸거나 도치시키거나, 역행하거나, 혹은 리듬적으로 변형이 되었을 때, 그럼에도 여전히 오리지널 주제와 함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80/518
저자는 바흐 음악에 담긴 변용안에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 ~ 1564)의 정신과 음악론을 발견한다. 루터에 따르면 <성경> 텍스트에 담긴 이성(logos)과 음악이 표현하는 열정(passion)은 인간에게 내려진 신의 두 선물이다. 바흐는 이러한 루터의 교리에 따라 교회 칸타타를 교회 전례력에 맞춰 로고스를 담고, 다양한 기악과 성악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열정을 그의 곡에 담아냈다. 글렌 굴드가 말한 다양한 변화 속의 오리지널한 주제는 바로 곡에 담긴 로고스이며, 이것은 수학적이며 절제된 열정으로 음악이 재현되는 순간 청중과 연주자에 의해 매번 다르게 변주될 것이다.
루터가 정의하였듯이 음악의 구체적 의무는 성경 텍스트를 표현하고 거기에 감동을 더하는 것이었다. 음표는 언어에 생명을 부여한다(Die Noten Machen den Text lebendig).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강력한 두 가지 선물인 언어와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분의 힘을 구축하며, 텍스트가 주로 지성(뿐만 아니라 열정)에 호소하는 반면 음악은 주로 열정(뿐 아니라 지력)에 말을 건다. 루터는 음악이 없다면 사람은 돌덩어리와 다름없지만, 음악이 있다면 악마를 물리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126/518
의도적으로 절제된 표현들 속에는 음악 기호가 암시하는 해석상의 문제들이 가득 차 있다. 이것들은 악보에 직접 적어 넣을 수 없는 내용이다. 그 음악이 곧 터지기 일보직전의 화성적 잠재력으로 치장되어 있음을, 이러한 표현들의 본질적 뼈대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잠재력으로 인해 청중은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즉 어떤 화음이 숨어 있는지 몰라서 애태우게 된다. 바흐의 화성적 움직임을 파악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주자와 청중 양쪽 모두가 참여해서 그러한 창조적 행위를 완성시킬 필요가 있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199/518
물론, 모든 음악이 재현되는 순간마다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바흐의 음악이 보다 특별하다면, 로고스의 패션의 결합, 언어와 음악의 결합이 다른 음악작품들 보다 섬세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의 예술을 통한 영원한 작품 세계의 구현, 바흐 작품 목록(BWV; Bach Werke Verzeichnis)으로 이름지어진 개별 곡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전례력과 시간의 순환을 통한 영원한 신의 시간을 만들어낸 바흐의 세계. 그것은 작품 내에서는 대위법(對位法)을 통해 자연스러운 질서로서 표현되면서 청중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존 엘리엇 가디너는 <바흐 : 천상의 음악>을 통해 독자들에게 바흐 음악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면서도,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정신과 전반적인 특성을 분명하게 각인시켜 준다. 같은 시기를 살았던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 ~ 1759)과는 또 다른 면에서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바흐의 음악세계를 알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면서 리뷰를 갈무리한다...
바흐의 음악은 내러티브와 해설, 성서 연대기와 신학적으로 형상화된 시적 텍스트가 서로 맞물려 있었으며, 이처럼 정교하게 음악적 깊이를 따라 잡을 수 있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05/518
무언(無言)의 음악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언어'가 모든 면에서 우세했던 시대에는 볼 수 없는 획기적이고도 새로운 전략이었다. 이것은 바흐가 기악 '언어' 안에 더욱 정확한 로고스(logos)가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직감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내재된 기악 언어는 성서나 종교적 언어와 관련된 음악만큼 강력하게 신을 찬미하고 신의 세계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135/518
언어 그 자체를 표현하는 언어를 흔히 '메타언어'라고 한다. 바흐의 음악 중 사실상 가사에 순응하는 소위 '타협'의 영역과, 가사에 직접적으로 상충하는 '충돌'의 영역 사이에는, 유사한 맥락에서 발터 베냐민이 언급한 '소리와 대본의 이분법'과 비슷한 중간 지대가 존재한다. 이 중간 지대에서는 가사를 동등한 입장에서 논하고, 확장하고, 사색할 수 있으며, 그에 동의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다... 시에 대해 음악은 물감을 한 겹 더 덧칠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즉,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들의 물리적 실재를 더 두껍게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음악은 메타포에 상응한다. 음악은 말의 흐름과 암송된 시의 흐름에 제동을 걸고, 서로 다르게 구성된 리듬과 템포 속에 시를 배치한다. 작곡가 자신이 읽어내려가는 언어에 청중이 함께 참여한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_ 존 엘리엇 가디너, <바흐 : 천상의 음악> , p372/518
지금까지 보아왔듯 바흐는 음악과 언어를 함께 사용하며 기념비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이는 음악이나 언어를 따로따로 다루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음악이 때때로 글이나 말로 표현된 언어를 능가하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한 음악의 힘은 의식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서 사람들의 편견과 유해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원죄와 구원, 악이나 회개에 대한 깨우침을 위해 여전히 그의 칸타타와 모테트에 의지할 수 있다. 사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세상의 모든 추잡함과 공포보다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금언에 더 집중하게 된다. - P400
바흐 성악곡들을 하나로 묶어서 보면 그가 루터교 종말신학의 본질을 표현하며 이룩한 특별한 성취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영겁에 대한 아이디어다. 이 음악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호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이 만들어내는 확신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전통적인 종교나 정치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이것은 바흐 서재를 채우고 있던 17세기 루터 신학자들이 구상한 ‘영원한 미래‘라는 중심 교리다. - P400
여기에 실험적으로 사용되는 새롭고 오래된 음악적 테크닉은 바흐의 경우 성서적 사건에 생기를 주며, 헨델의 경우는 시편 텍스트 수면 바로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진정한 힘을 묘사한다. 두 작품 모두 작센의 젋은이들이 돌연변이 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심오하고도 혁신적인 역할을 이어갈 것인지 시음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시점에서 헨델은 사랑, 분노, 충성과 권력에, 바흐는 삶과 죽음, 신과 영원성에 매달릴 것을 암시하며 장래 이 두 거인의 집착이 어떻게 갈라질 것인지 보여준다. - P133
무엇보다 바흐는 헨델처럼 상습적인 모방꾼은 아니었다. 헨델이야말로 자신의 상상력을 점화하기 위해서 다른 작곡가의 아이디어를 부싯돌로 사용하기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18세기 문학과 음악 관습상 표절은 널리 허용되긴 했지만, 헨델과 달리 바흐는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거친 조약돌을 가져다 쓸 필요가 없었다. 바흐의 방식은 늘 고전적이었다. 우선 모델이 될 만한 작품들을 공부하고, 그들을 베낀 뒤, 거기에 서문이나 주석을 추가해서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결합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다양한 테크닉과 스타일에 정통한 어휘를 일거에 습득했다. 이는 모든 것을 최대한 포괄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과정이었다.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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