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마지막 날. 이번 달을 돌아보면 유난히 '성(性)' 관련 이슈가 뜨거웠던 한 달이었다. 월초에 고(故)박원순 서울시장의 자살과 성추행 고소건으로 전국민에게 충격을 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월말에 외교관과 군인에 의한 성범죄가 문제가 된 것을 보면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대한민국을 뒤흔들만큼 크게 보도된 것에 반하여, 후자는 거의 언론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차이는 있다. 그렇지만, 보도 내용을 들여다 보면 가볍게 넘길 사안들이 아니다.
1. 성범죄 외교관 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iplomacy/955549.html
2. 정보사 군인 기사 : https://newstapa.org/article/bzBVH
사태의 위중함을 놓고 본다면, 외교관의 범죄는 뉴질랜드와의 외교문제로까지 악화될 우려가 있는 중대 사안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외교부의 대처는 평온하기만 하다. 해당 외교관은 문제가 되자 뉴질랜드에서 벗어나 현재 필리핀 총영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 외교부의 성인지감수성에 대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보사 군인의 경우는 자신이 보호해야할 대상인 북한이탈주민을 성폭행한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결코 가벼운 건이 아니다. 과거 성폭행을 당한 여성을 경찰서에서 성폭행한 전례를 떠올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가볍지 않은 사안이다. 이번 사안을 통해 패트리샤 힐 콜린스(Patricia Hill Collins, 1948 ~ )의 <흑인페미니즘 사상 Black Feminist Thought>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는 비판사회이론으로서 흑인페미니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초국가적, 탈식민지 맥락에서, 카리브 해, 아프리카 지역에서 흑인 주도의 국민국가나 아시아에서 새로이 형성된 국민국가의 여성들은 종족, 시민권, 종교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와 씨름하는 중이다. 유럽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나라 출신의 여성들이 유럽의 국민국가에 이주함에 따라 유럽은 점차 다문화적인 사회가 되고 있지만, 이 여성이주민들은 새로운 형태의 종속을 경험하고 있다.(Yuval-Davis 1997). 이러한 다양한 집단의 여성이 표현하는 사회이론은 그들만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사회이론은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종족, 민족, 종교가 서로 복잡하게 맞물려 작동하는 여러 억압의 내부에서 여성들 자신의 체험에 언어와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즉 미국 흑인여성의 비판사회이론 역시 이와 유사한 권력관계를 반영한다._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페미니즘 사상>,p35
저자는 과거 식민지 주민들의 유럽 이주가 불러온 여러 문제들 중 특히 여성들이 겪는 위와 같은 어려움속에서 미국 내 흑인 여성의 문제를 함께 발견한다. '흑인' 이라는 억압받는 계급 내에서도, 더 억압받는 계층인 흑인 여성의 문제를 다룬 이 책의 내용은 2017년 현재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3만명을 넘어선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남북화해의 시대를 채 맞기도 전에 발생한 이 사건은 재발방지를 위해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론보도나 진상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거의 듣기 힘들다. 진실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쩌면 이렇게 선택적인 것인가?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철저하게 조사되어야 하고, 법에 따라 엄중하게 판결되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마치 실내조명처럼 선택적으로 사안이 보도되고, 여론몰이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리고, 우리의 판단이 언론이라는 조명에 따라 좌우되는 것 또한 경계한다. 조명계획이 아닌 여론조작은 누구의 삶을 쾌적하고 매력적으로 하는 것인가...
조명계획이란 조명 기구를 이용해 빛과 그림자를 조절하여 공간을 더욱 쾌적하고 매력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다_ 안자이 테쓰, <공간을 쉽게 바꾸는 조명>, p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