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에 관한 최소한 한 가지 해석은, 정체성의 범주가 단일해질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바로 모든 정체성 안의 ‘차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젠더 트러블」은 최소한 두 가지 종류의 다른 도전과 마주해애 했다. 이제 나는 이런 문제들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 후속 작업에서는 그게 시작되기를 바란다._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p335
전작「젠더 트러블」에서 주디스 버틀러는 ‘성차‘를 양성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기를 거부하고, 젠더가 사회적 규범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안티고네의 주장」에서 헤겔, 라캉의 해석과는 또다른 궤를 통해 보다 실체화시켰다면, 「젠더 허물기」에서는 교황청과의 논쟁등을 통해 보다 정치철학적 면모를 보인다.
「젠더 허물기」에서 언급된 철학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개인적으로 미셸 푸코다. 그의 세계가 「말과 사물」에서 「성의 역사」로 이어졌다면, 버틀러는 「성의 역사」에서 드러난 문제를 「젠더 허물기」를 통해 정치적 해결점을 찾는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본문 중에 제시된 버틀러의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에피스테메(episteme)에서 보다 행동화된 주장으로 실체화되는 일련의 과정이 스스로 젠더의 규범화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느낌을 받는다...
누가 또 무엇이 실제이자 진실로 간주되는지의 문제는 분명 지식의 문제이다. 그러나 푸코가 밝히듯, 그것은 또한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리‘와 ‘실재‘를 갖고 있거나 보유한다는 것은 사회 세계에서 대단히 강력한 특권이자, 권력이 마치 자신은 존재론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방편이다... 지식과 권력은 결국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은 함께 세계에 대한 사유를 하기 위한 미묘하고 분명한 일단의 기준을 설정하는 일을 한다._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p3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