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한국의 과학과 문명 19
김영식 지음 / 들녘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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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받아들인 것이 서양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가 아니라 처음에는 중국 그리고 나중에는 일본을 매개로 하는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서였다는 사실이 중요했는데, 이 같은 간접성은 일본의 식민통치 기간(1910~1945)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도 정도는 약했지만 얼마동안 계속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동화하는 정도와 수준을 크게 제약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0


 김영식은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은 서구 과학 문명의 수용 과정에서 드러나는 조선 후기 간접성과 주변성 등을 지적한다. 중국 중심의 중화(中華)주의와 유교적 신분 질서가 조선 시대 전반을 지배했기에 기준은 언제나 명(明)과 청(淸)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러한 저자의 관점에서는 조선 전기 세종 대에 이루어진 세계적 수준의 과학적 성과도 중국의 시스템 내에서의 응용에 불과하고, 조선 후기 서양 과학 문명의 수용도 중국의 뒤를 이은 것에 불과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동아시아 과학의 역사에서 중국의 지위는 거의 절대적이었다. 나카야마가 지적했듯이, 중국은 중요한 발전들이 거의 언제나 먼저 일어나고 이후 '주변'으로 그 발전이 확산되는 '중심'이었다. '중국=중심'의 지위는 과학 분야에서 특히 철저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183


 세종 대의 역법 관련 작업에 관해 살펴보면서 이 작업을 한양을 기준으로 조선의 독자적 역법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주적' 노력으로 보아온 그간의 견해와 달리, 이를 중국 수준의 역산 능력을 갖추겠다는 노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았다. 그런 면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정조(正祖) 시기인데 중국 역법의 틀 안에서 진행된 이 시기의 조선 역 확립과 역서 출판 과정은 조선의 과학이 지니는 독자성, 자주성의 성격과 한계를 보여준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190


 저자는 본문에서 조선시대 과학 전통의 한계와 오늘날 한국 과학계의 문제점을 연결짓는다. 실용에 치중하는 과학계 풍토, 근대 과학 도입 시기 일본에 대한 과다한 의존, 사안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과학자들의 자세 등 여러 문제점을 언급한다. 저자가 본문을 통해서 주장하는 내용은 이미 앞에서 여러 사례를 통해 뒷받침되기에 한편으로 수긍하면서 받아들이게 되면서도 다른 면에서는 의문을 품게 된다.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이 과연 문제점만 있는 것인가? 또는 지적한 문제가 한국 과학계만의 문제인가? 하는 물음.


 한국 근현대과학기술의 초기 단계에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과학기술이 순전히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만, 특히 경제적인 효용과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추구되는 것이라는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공리주의(功利主義)적인 과학 기술관이었다. 이 같은 과학기술관의 밑바탕에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 '도(道)'와 '기(器)'의 이분법이 깔려있다(p251)... 이 같은 생각에 따라 과학기술은 '도'가 아니라 '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과학과 기술은 한국 문화와 학문의 다른 영역들로부터 대체로 유리된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1


 저자는 한국 과학사에서 공리주의적인 성격이 강했음을 비판한다. '과학+기술'에서 '기술'이 강조되고 '과학'이 경시되어 보다 깊은 탐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동서양의 사상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신-인간-자연'을 각각 다른 존재로 보고 각각의 법칙을 규명하려 한 서양 문명과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동양 문명의 차이. 이러한 차이가 이른바 기초과학에서 취약성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이 또한 있는 그대로 '기술 중심의 한국 과학기술문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런지. 첨단 과학기술이라는 반도체에서도 '설계-소재-조립'등 분야가 세계적으로 분업화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면 우리가 잘 하는 분야인 기술에 더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다른 한 편으로, 과학자들이 정치적 사안에 무관심한 채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에서 사제집단으로 자리한 것을 우리나라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인계층 문제를 지적한 것은 다소 과도하게 다가온다.


 중인 계층 사람들이 나중에 한국이 서양 과학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자연스럽게 주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중요한 결과를 빚어냈다. '중인의식(中人意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계층 사람들 특유의 태도인, 자신들은 단지 그 주변인에 불과한 전체 사회와 국가에 대한 관심은 결여한 채 자신들의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에 치중하는 태도가 사라지지지 않고 현대 한국 과학기술계에서도 두드러진 특성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_ 김영식,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 , p255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기계의 신화>를 통해 근대 서구 사회에서 기술과 과학의 결합이 가져온 인간 소외의 비극과 함께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와 과학자라는 새로운 사제 계급의 문제를 지적한다. 멈포드가 지적한 이런 문제점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우리는 주변적이고 간접적인 한국 전통에서 인간소외와 환경 파괴를 비롯한 현대 과학 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 전통과학의 배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이러한 대안을 찾는 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인 듯하다...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보다 더 높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생각은 유가 사상의 중요한 한 흐름으로 지속되었다... 유가 사상의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자연현상은 대부분 지각(知覺) 가능한 규체적 성질들과 물리적 효과를 수반하며 따라서 ‘형이하(形而下)‘에 속하기 때문에 유학자들에 의해 빤한 것으로 간주되고 그것들이 지각되는 형태대로 받아들여졌다. 겉으로 드러난 경험적인 데이터를 넘어서는 더 깊은 탐구는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 P28

유학자들은 격물을 표방하며 과학기술의 주제들을 공부하고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 사물들의 개별적 ‘리‘들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 결코 격물 작업의 진짜 목적은 아니었다. 격물의 궁극적 목적은 여러 개별 ‘리‘들을 통해 하나의 ‘리‘, 즉 ‘천리(天理)‘에 도달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 P78

전문직 중인들은 품계와 승진 등에서의 명시적인 차별에 더해서 지배 계층인 양반들로부터 멸시당하고 사회 중대사의 결정에 아무런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양반사인들이 이들에 대해 지닌 편견이 뿌리 깊고 차별대우가 심했다. 전문직 중인들이 종사하는 전문 분야의 실무가 양반 지배계층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데다가, 서얼들의 잡과 진출이 두드러지면서 서얼에 대한 차별 의식도 전문직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P147

조선 유학자들은 중국의 서적을 통해 서양 과학지식을 접했을 뿐 아니라, 실제 서양 과학에 대한 정보를 얻고 서적들을 구하는 데서도 중국 학자들을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이처럼 중국을 통한 ‘간접적‘ 도입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 조선 유학자들이 서양 과학지식을 접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었음은 당연했고 그에 따라 그들의 서양 과학 이해의 수준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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