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친척 어른 중 한 분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여수에서 3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3일장을 치르면서 고인을 애도하는 마음과 함께 오랫만에 친지들을 만나는 반가움도 느낀 자리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죽은 이의 중재로 살아있는 이들이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장례식임을 재삼 확인하게 됩니다.

이번 장례는 불교의식으로 진행된 장례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게는 조금은 특별한 자리였습니다. 가톨릭에서 진행되는 의식에 익숙한 제게 불교 의식은 생소했고,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빈소에서 ‘연도‘를 바치게 됩니다. 연도는 죽은 이에 대한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내용의 기도로 주로 신자들이 모여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블교에서는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독송하는데, 스님들과 불자분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생각에 가톨릭의 미사는 제사의 의미로 제사장인 사제(신부)의 주관으로 이루어지며, 사제의 참여는 미사와 성사로 한정된 반면, 수행의 종교인 불교에서는 스님과 불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는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는 기도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하게 됩니다. 죽은 이의 안식을 청하는 「연도」와 ‘아녹다라삼먁삼보리‘를 추구하는 「금강경」의 독송은 구원의 종교와 깨달음의 종교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여겨집니다.

동시에, 두 종교에 공통된 면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입관의식에서 「반야심경」의 구절을 외고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불교 의식에서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께 청하는 묵주기도(로사리오 기도)를 떠올려 봅니다. 성모 마리아와 관세음보살께 의지하는 마음은 아기가 무서운 일을 당했을 때 엄마의 치마 뒤로 숨는 마음과 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인자한 엄마에 대한 기대. 이것은 종교를 뛰어넘은 우리 모두의 같은 마음은 이닐까 생각해 봅니다...

3일동안 곁눈으로 불교의식을 지켜봤기에 제 생각은 거칠고 부족함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부족한 부분은 차차 다듬어가야할 부분이라 생각하면서 다음 과제로 넘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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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2-20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께서 장례를 치르면서 생각했을 수 많은 질문들과 의문이 이 글보다 훨씬 깊은 심연까지 였음을 압니다. 글 너머의 생각과 마음도 전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0-02-20 05:11   좋아요 1 | URL
죽음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을 임을 실감하게 장례에 참여할 때마다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 장례는 죽은 이의 의식이라기 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라는 필립 아리에스의 말이 계속 떠오르네요...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