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란 우리 믿음이 존재하는 세계로는 들어오지 못하며, 사실은 믿음을 낳게 한 적이 없지만 파괴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믿음을 끊임없이 거부할 수는 있어도, 믿음을 약화하지는 못한다.

한 여인이 나타났으면 하는 욕망이 자연의 매력에 뭔가 더 열광적인 것을 덧붙여 주었다면, 반대로 자연의 매력은 여인의 매력이라는 지나치게 한정된 매력을 더 풍부하게 해 주었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곧 여인의 아름다움이었고, 그녀의 입맞춤이 지평선의 영혼과 루생빌 마을의 영혼, 내가 그해 읽은 책들의 영혼을 내게 넘겨줄 것만 같았다. 내 상상력은 관능적인 것과 접촉하면서 힘을 얻었고, 관능적인 것은 내 상상력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어 내 욕망은 이제 끝이 없었다

완전한 악인의 악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이어서 그 자신과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미덕이나 고인에 대한 기억, 자식으로서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찬미하지 않는 이상 그것들을 모독하는 데서 오는 불경한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그들이 잠시 관능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도 사실은 잠시나마 그들의 소심하고도 다정한 영혼으로부터 탈출했다는 환상에 빠지려고, 악인의 껍질을 쓰고 공범자와 함께 쾌락의 비인간적인 세계로 들어가려고 한 것이다.

그 정신은 악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악덕이란 것이 그녀가 평소에 지켜야 하는 수많은 의무적인 예의범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정신이었다. 쾌락이라는 관념을 부여하고 쾌락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한 것은 악이 아니었다. 오히려 쾌락은 그녀에게 해로운 듯했다.

마치 어떤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원반처럼, 그 관념과 이미지를 일치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자주 꿈꾸어 왔던 게르망트 부인이 내 외부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가 보고 있는 지금, 내 상상력에는 더 큰 힘이 가해졌고, 이 상상력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과 접촉하는 순간 잠시 마비되었다가 곧 반응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두 종탑은 영원히 나무들이나 지붕, 향기, 소리에 합류해 버렸을 것이다. 그것들이 내게 주는 모호한 기쁨 덕분에 다른 것들과 구별되어 왔는데, 나는 그 기쁨 자체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전히 허구적인 그 고장은 아이들에게 나쁜 독서를 허락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미 상당히 슬픔에 기운 이 어린 친구에게는, 슬픔에 기우는 성향인 이 아이의 마음을 위해서도, 나는 그곳을 선택하거나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의 속내나 헛된 회한의 기후는 나처럼 미망에서 깨어난 늙은이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아직 기질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에게는 언제나 해롭습니다.

게르망트는 현실적이라기보다는 관념적인 것으로, 그 ‘길’의 종점과도 같은, 적도나 극지방, 혹은 동양처럼 일종의 추상적이고 지리적인 표현이었다. 따라서 메제글리즈로 가기 위해 ‘게르망트를 통해서 간다든가’ 그 반대로 하는 것은, 마치 서쪽으로 가기 위해 동쪽을 통한다고 하는 말만큼이나 아무 의미 없이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길 사이에 킬로미터가 나타내는 거리감 이상의 것을 두고 있었는데, 그 거리감은 내가 그 길들을 생각할 때 내 머릿속 두 부분 사이에 놓인 거리감 같은 것으로, 단지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분리하고 각각 다른 차원으로 집어넣는 그런 정신적인 거리감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그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 존재가 어떤 미지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미지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며, 사랑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불균형한 토요일의 반복은, 우리 고요한 삶이나 폐쇄적인 사회에서 일종의 민족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대화나 농담, 제멋대로 과장하는 이야기에 좋은 주제를 제공하는, 내적이고 지역적이고 거의 시민다운 작은 사건들 중 하나였다.

정력과 상상력의 결핍 탓에 쇄신의 원동력을 자신에게서 끌어낼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올 시간이나 초인종을 울릴 우편배달부가 설령 나쁜 소식일지언정 뭔가 새로운 것을, 어떤 감동이나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또는 한가한 하프 소리처럼 행복이 침묵하게 한 감수성이 설령 난폭한 손에 그 줄이 끊어질지언정, 다시 한 번 울려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법이다. 또는 욕망이나 고통에 방해받지 않고 전념할 권리를 아주 어렵게 획득한 의지는, 비록 아주 잔혹한 사건이라고 해도 그런 급박한 사건들의 손아귀에 고삐를 맡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황홀감에 사로잡힐 때는 특히 아스파라거스를 마주할 때였다. 아스파라거스는 짙은 군청색과 분홍빛이 감돌아, 꼭지 부분이 벼이삭처럼 보랏빛과 하늘빛으로 어우러져 아래로 내려갈수록 밭의 흙이 아직 묻어 있는 땅 색이 아닌 무지갯빛으로 아롱거리며 그 빛깔이 조금씩 연해져 간다. 이러한 천상의 빛깔은 어떤 감미로운 존재들이 즐겨 채소로 변신해서는,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살로 변장해, 해 뜰 무렵 여명의 색깔이나 짧은 무지갯빛 출현, 푸른빛 저녁이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그 귀중한 정수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

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태도에는 그 인간의 깊이 감추어진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있으며, 비록 그 태도가 예전에 그가 한 말과 연결되지 않는다 해도, 죄인 자신이 고백하지 않는 증언으로 그것을 확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감각의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고립되고 비일관적인 기억 앞에서 우리는 이 감각들이 혹시 환상의 희생물이 아닌지를 묻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자주 의문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소중해진 사물 속에서 우리는 영혼이 사물에 투사한 빛을 찾아내려고 애쓰지만, 우리 생각 속에서 몇몇 관념들과 연결되어 나타났던 사물의 매력이 자연 속에서는 상실된 듯 보여,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영혼의 모든 힘을 능숙한 솜씨나 찬란함으로 전환해, 우리 밖에 존재하고 있어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게까지 힘을 미치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당이 내게는 마을 나머지 부분과는 전혀 다른 그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성당은 말하자면 4차원 공간을 차지하는 건물로 4차원이란 바로 시간의 차원이다. 수세기에 걸쳐 이 기둥에서 저 기둥으로, 이 제단에서 저 제단으로, 단지 몇 미터의 거리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시대들을 통해 마침내 승리자가 된 내부를 펼쳐 보였다.

우리가 콩브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오랜 산책이라도 나갈 때면 좁았던 길이 갑자기 광대한 평원으로 탁 트이면서 여기저기 쪼개진 숲으로 막힌 지평선이 보였는데, 그 위로 생틸래르 종탑의 뾰족한 끝이 홀로 삐죽 나와 있었다. 종탑 끝이 얼마나 가늘고 얼마나 선명한 분홍빛이었는지, 오직 자연으로 이루어진 이 풍경, 이 화폭에 누군가가 예술의 작은 흔적, 단 하나의 인간적인 표시를 남겨 놓으려고 손톱으로 하늘에 줄을 그어 놓은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연극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일종의 정신적인 사랑으로, 부모님은 그때까지 내가 극장에 가는 걸 허락해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맛본다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아주 부정확하게 상상했는데, 관객들이 각각 보는 장면이 나머지 다른 관객들이 보는 많은 장면과 같은데도, 마치 저마다 입체경을 들여다보듯 자기만을 위한 무대를 바라본다고 믿었다.

상징화된 사상이란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상징이 단순한 상징으로서가 아닌 실제로 느끼거나 물질적으로 다루어진 하나의 현실로서 표현되어, 이것이 이 작품의 의미에 보다 정확하고 충실한 그 어떤 것을 부여하며, 작품의 교육적인 면에도 구체적이고 강렬한 그 무엇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밖에서 한 물체를 보아도, 그 물체를 보고 있는 의식이 나와 그 물체 사이에 놓이거나 그 물체를 가느다란 정신적인 가두리로 둘러싸고 있어, 나는 결코 직접적으로 그 질료에 가닿을 수 없었다. 그 질료는 말하자면 내가 물체와 접촉하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다.

우리가 실제 인물의 기쁨이나 불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모두 이런 기쁨이나 이런 불운에 대한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초기 소설가들의 독창성은, 우리의 감동을 자아내는 장치 중 이미지가 유일하게 본질적인 요소여서 단지 실제 인물을 제거하는 단순한 작업만으로도 결정적인 완성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데에 있다.

소설가의 독창적인 착상은 정신으로서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부분을 같은 양의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다시 말하면 우리 정신이 동화할 수 있는 부분으로 바꾸어 놓을 생각을 했다는 데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보게, 나의 소중한 벗이여. 도대체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자네도 보다시피 수많은 훌륭한 기사들이 땅에 쓰러져 있네! 그리운 프랑스, 그 아름다운 나라를 위해 슬퍼할 일일세.
이제 프랑스가 저런 기사들을 잃었으니 말일세!
아! 친애하는 폐하시여, 왜 여기 계시지 않는단 말입니까!
올리비에, 형제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나?
어떻게 하면 폐하께 소식을 전할 수 있겠나?"

올리비에가 말한다.
"그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일세.
그리고 자네 가문 전체를 욕보이는 걸세.
그 수치는 그분들이 살아 계신 내내 계속될 걸세!
내가 상아 나팔을 불라고 했을 때, 자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이제는 상아 나팔을 불겠다고 해도 내가 동의할 수 없네.
지금 상아 나팔을 부는 것은 용기 있는 자가 할 짓이 아니네.
자네의 두 팔은 이미 피로 물들었네!"

도망치려 하지만 헛된 일이다.
롤랑 경이 워낙 힘차게 그를 내려쳐 코를 보호하는 부분까지 그의 투구를 쪼개고,
코와 입과 앞니까지 베더니 알제산 갑옷과 함께 몸통을 반으로 가른 다음,
은으로 된 안장 머리 사이로 금칠한 안장은 물론말의 등뼈까지 깊숙이 베어버린다.
사람과 말 모두 살아날 길 없이 죽는다.
그러자 에스파냐인들 모두가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프랑스인들은 말한다. "우리 수호자의 공격은 훌륭하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