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 존재가 어떤 미지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미지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며, 사랑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불균형한 토요일의 반복은, 우리 고요한 삶이나 폐쇄적인 사회에서 일종의 민족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대화나 농담, 제멋대로 과장하는 이야기에 좋은 주제를 제공하는, 내적이고 지역적이고 거의 시민다운 작은 사건들 중 하나였다.

정력과 상상력의 결핍 탓에 쇄신의 원동력을 자신에게서 끌어낼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올 시간이나 초인종을 울릴 우편배달부가 설령 나쁜 소식일지언정 뭔가 새로운 것을, 어떤 감동이나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또는 한가한 하프 소리처럼 행복이 침묵하게 한 감수성이 설령 난폭한 손에 그 줄이 끊어질지언정, 다시 한 번 울려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법이다. 또는 욕망이나 고통에 방해받지 않고 전념할 권리를 아주 어렵게 획득한 의지는, 비록 아주 잔혹한 사건이라고 해도 그런 급박한 사건들의 손아귀에 고삐를 맡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황홀감에 사로잡힐 때는 특히 아스파라거스를 마주할 때였다. 아스파라거스는 짙은 군청색과 분홍빛이 감돌아, 꼭지 부분이 벼이삭처럼 보랏빛과 하늘빛으로 어우러져 아래로 내려갈수록 밭의 흙이 아직 묻어 있는 땅 색이 아닌 무지갯빛으로 아롱거리며 그 빛깔이 조금씩 연해져 간다. 이러한 천상의 빛깔은 어떤 감미로운 존재들이 즐겨 채소로 변신해서는,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살로 변장해, 해 뜰 무렵 여명의 색깔이나 짧은 무지갯빛 출현, 푸른빛 저녁이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그 귀중한 정수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

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태도에는 그 인간의 깊이 감추어진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있으며, 비록 그 태도가 예전에 그가 한 말과 연결되지 않는다 해도, 죄인 자신이 고백하지 않는 증언으로 그것을 확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감각의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고립되고 비일관적인 기억 앞에서 우리는 이 감각들이 혹시 환상의 희생물이 아닌지를 묻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자주 의문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소중해진 사물 속에서 우리는 영혼이 사물에 투사한 빛을 찾아내려고 애쓰지만, 우리 생각 속에서 몇몇 관념들과 연결되어 나타났던 사물의 매력이 자연 속에서는 상실된 듯 보여,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영혼의 모든 힘을 능숙한 솜씨나 찬란함으로 전환해, 우리 밖에 존재하고 있어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게까지 힘을 미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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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이 내게는 마을 나머지 부분과는 전혀 다른 그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성당은 말하자면 4차원 공간을 차지하는 건물로 4차원이란 바로 시간의 차원이다. 수세기에 걸쳐 이 기둥에서 저 기둥으로, 이 제단에서 저 제단으로, 단지 몇 미터의 거리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시대들을 통해 마침내 승리자가 된 내부를 펼쳐 보였다.

우리가 콩브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오랜 산책이라도 나갈 때면 좁았던 길이 갑자기 광대한 평원으로 탁 트이면서 여기저기 쪼개진 숲으로 막힌 지평선이 보였는데, 그 위로 생틸래르 종탑의 뾰족한 끝이 홀로 삐죽 나와 있었다. 종탑 끝이 얼마나 가늘고 얼마나 선명한 분홍빛이었는지, 오직 자연으로 이루어진 이 풍경, 이 화폭에 누군가가 예술의 작은 흔적, 단 하나의 인간적인 표시를 남겨 놓으려고 손톱으로 하늘에 줄을 그어 놓은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연극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일종의 정신적인 사랑으로, 부모님은 그때까지 내가 극장에 가는 걸 허락해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맛본다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아주 부정확하게 상상했는데, 관객들이 각각 보는 장면이 나머지 다른 관객들이 보는 많은 장면과 같은데도, 마치 저마다 입체경을 들여다보듯 자기만을 위한 무대를 바라본다고 믿었다.

상징화된 사상이란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상징이 단순한 상징으로서가 아닌 실제로 느끼거나 물질적으로 다루어진 하나의 현실로서 표현되어, 이것이 이 작품의 의미에 보다 정확하고 충실한 그 어떤 것을 부여하며, 작품의 교육적인 면에도 구체적이고 강렬한 그 무엇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밖에서 한 물체를 보아도, 그 물체를 보고 있는 의식이 나와 그 물체 사이에 놓이거나 그 물체를 가느다란 정신적인 가두리로 둘러싸고 있어, 나는 결코 직접적으로 그 질료에 가닿을 수 없었다. 그 질료는 말하자면 내가 물체와 접촉하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다.

우리가 실제 인물의 기쁨이나 불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모두 이런 기쁨이나 이런 불운에 대한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초기 소설가들의 독창성은, 우리의 감동을 자아내는 장치 중 이미지가 유일하게 본질적인 요소여서 단지 실제 인물을 제거하는 단순한 작업만으로도 결정적인 완성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데에 있다.

소설가의 독창적인 착상은 정신으로서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부분을 같은 양의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다시 말하면 우리 정신이 동화할 수 있는 부분으로 바꾸어 놓을 생각을 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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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나의 소중한 벗이여. 도대체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자네도 보다시피 수많은 훌륭한 기사들이 땅에 쓰러져 있네! 그리운 프랑스, 그 아름다운 나라를 위해 슬퍼할 일일세.
이제 프랑스가 저런 기사들을 잃었으니 말일세!
아! 친애하는 폐하시여, 왜 여기 계시지 않는단 말입니까!
올리비에, 형제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나?
어떻게 하면 폐하께 소식을 전할 수 있겠나?"

올리비에가 말한다.
"그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일세.
그리고 자네 가문 전체를 욕보이는 걸세.
그 수치는 그분들이 살아 계신 내내 계속될 걸세!
내가 상아 나팔을 불라고 했을 때, 자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이제는 상아 나팔을 불겠다고 해도 내가 동의할 수 없네.
지금 상아 나팔을 부는 것은 용기 있는 자가 할 짓이 아니네.
자네의 두 팔은 이미 피로 물들었네!"

도망치려 하지만 헛된 일이다.
롤랑 경이 워낙 힘차게 그를 내려쳐 코를 보호하는 부분까지 그의 투구를 쪼개고,
코와 입과 앞니까지 베더니 알제산 갑옷과 함께 몸통을 반으로 가른 다음,
은으로 된 안장 머리 사이로 금칠한 안장은 물론말의 등뼈까지 깊숙이 베어버린다.
사람과 말 모두 살아날 길 없이 죽는다.
그러자 에스파냐인들 모두가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프랑스인들은 말한다. "우리 수호자의 공격은 훌륭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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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우리 삶이란 것이, 동일한 시대의 초상화들이 걸린 모습이 마치 가족처럼 보이는, 같은 색조를 띠는 미술관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 한가로움이 넘쳐흘렀고, 언제나 커다란 마로니에와 산딸기 바구니, 그리고 쑥의 새싹 향기가 풍겨 나왔다.

이 두 분은 고상한 것을 동경했기 때문에, 비록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일이라 할지라도 소위 잡담이라고 불리거나, 보다 일반적으로는 미적이나 도덕적인 대상에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사교 생활에 직간접으로 연결된 듯이 보이는 것 일체에 대한 그들의 초연한 사고는, 식사 때 대화가 두 분 노처녀께서 좋아하는 화제로 가지 못하고 경박한 어조나 단지 세속적인 어조를 띠기만 해도, 그들의 청각이 일시적으로 불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청각 기관을 쉬게 함으로써, 진정한 기능 수축의 시작을 감내하게 할 정도였다

사진사가 제아무리 예술품이나 자연의 재현에서 제외되고 위대한 화가로 대체된다고 해도, 그 화가의 해석을 재생할 때는 마음대로 찍을 권리를 가지는 법이다. 이런 통속성의 도래에 직면한 할머니는 그걸 피해 보려고 애쓰셨다

이 콩브레의 거리들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일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 깊숙한 곳에,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세계와는 너무도 다른 빛깔로 채색되어 있어 광장에서 그 거리들을 내려다보던 성당처럼, 내게는 사실 마술 환등기에 비친 모습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벽난로 불은 밀가루 반죽을 구울 때처럼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를 풍겼으며, 이 냄새 탓에 방 안 공기는 완전히 엉겨 있었다. 그리하여 그 냄새는 아침의 화창하고도 습기 찬 신선함이 이미 반죽하고 ‘발효해 놓은’ 냄새들을 여러 겹으로 포개 놓고 노랗게 구워 주름지게 하고 부풀어 오르게 하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손에는 만져지는 시골 과자인 거대한 ‘쇼송’
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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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

즉, 그는 노라를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상황을 은폐하고 표면상으로만 온전한 가정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거짓 행복’은 그 당시의 사회가 개인에게서 요구하는 겉모습이며, 개인의 명예와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는 표면상으로 그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보수적인 사회를 대표하는 작은 사회(micro-society)인 가정은 노라에게 남성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만, 한 집단의 관점에 따라 만들어진 관습을 사회 규범의 이름으로 다른 집단에게 강요하는 사회 통념은 이 작품에서 무효 판정을 받는다. 발표된 지 130년이 되어 가는 『인형의 집』의 시사성은 이 작품이 무조건 관습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 사회, 생각이 다른 집단을 주류의 규범에 따라 판단하는 현실에 회의를 제기하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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