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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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무덤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의미한다. 성전의 죽음, 이스라엘의 종료, 율법의 종언, 기존의 모든 권력체계가 사멸된 폐허를 의미한다. 그렇지만 폐허야말로 모든 소생의 근원이다.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하는 충만성이다. 빈 무덤은 갈릴리의 소생을 의미했다. 예수는 갈릴리로 갔다. 이 빈 무덤에서는 예수를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빈 무덤의 "빔"이야말로 모든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다. _ 김용옥,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p604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의 끝은 '죽음'이다. '부활'을 위한 과정으로서의 죽음이 아닌 죽음 자체로의 완성. 부활을 위한 '수난-죽음'은 예언의 실현을 위해 지나가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가는 길에 피어나는 여러 기적 사화들도 여행길을 장식하기 위한 배경에 머무르고, 복음서의 예수는 메시아의 비밀을 감추기 위한 함구령으로 드러내는 것을 막아낸다. 모든 것은 예언이 실현될 때까지 숨겨져야 한다.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는 이런 관점을 거부한다. 복음서의 질서 대신 일화, 로기온 (말씀)자료 안에서 매 순간 완성을 발견한다. 힘없고 약한 자들을 위한 마음과 자신들의 오랜 바람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이 느꼈던 구체적 삶에서의 기쁨. 저자는 죽음과 부활, 원죄의 사멸이라는 거대한 메시아의 사명 이전에 2000년 전 민중들의 삶과 애환에서 그 가치를 발견한다.


 하나님에게 절대복종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비운다는 것이며 나의 이기적 이상을 전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특정한 인간에 대한 감정의 유로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한 사소한 개별적인 사랑을 포섭하는 인간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결국 무아 無我이며, 나의 십자가인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예수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_ 김용옥,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p549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구별하지 않는다. 이는 전통적인 이분법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 이웃을 통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사례를 통한 법칙의 이해이며, 역사적 예수를 통한 복음서 예수의 이해라는 점에서 통(通)한다. 서구의 이분법 대신 노자(老子)의 '빔(虛)'를 통한 복음서의 이해. 이러한 관점이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를 관통하는 큰 흐름이라 여겨진다...


 서구인들은 시/공을 가리지 않고 관념이 사실을 지배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 이후 플라톤을 거쳐 모두 연역적 사고에 배어있는 하나의 편벽증세이다. 말씀(로고스)은 언어이며 관념이며 연역의 대전제이며 근원이며 본질이며 실체이며 불변의 개념이다. 본질과 현상이라는 이원론으로 어떻게 이 세계에 침투하겠다는 것인가? _ 김용옥,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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