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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순례 - 옛 그림과 글씨를 보는 눈 ㅣ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2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3년 11월
평점 :
<명작순례>에는 유홍준 (兪弘濬, 1949 ~ ) 교수가 우리 나라의 글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주로, 명작 名作이라 불리는 그림을 중심으로 작품이 지니는 의미, 시대적 상황, 작가에 얽힌 이야기등을 설명한 책은 전통화 傳統畵에 대한 우리의 부담감을 많이 덜어준다. 시대적으로 구성된 <명작순례> 속의 작품들을 따라 가면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이번 리뷰를 작성해 본다.
1. 그림과 글로 이루어진 우리 그림
[그림] <산수인물화첩> (출처 :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학림정 鶴林正 이경윤 李慶胤(1545 ~ 1611)의 <산수인물화첩 山水人物畵帖> 속 제시들을 보면 간이당 최립은 과연 선조 시대의 가장 뛰어난 문장가로 꼽힐 만했다는 감동을 준다. 그리고 이 화첩은 우리에게 옛 그림을 보는 눈은 그림의 됨됨이와 화가의 필치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내용까지 면밀히 읽어내야 그림의 참 가치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를 독화법 讀畵法, 즉 '그림 보기'가 아니라 '그림 읽기'라고 한다.'(p37)
저자는 우리 전통의 그림 속에서 글의 의미를 읽어내길 권한다. 전통화가 단순히 그림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글과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의미를 아는 것은 '그림 읽기'와 '글 읽기'로 나누어져야할 것 같다. 먼저, 그림 읽기부터 보자.
2. 그림 : 관념에서 현실로
[그림] <짚신 삼기> (출처 : https://www.culturecontent.com)
'공재 恭齋 윤두서 尹斗緖(1668 ~1715)는 해남으로 낙향한 후 그림 속에서도 현실을 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짚신 삼기>이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졸고 있는 선비를 짚신 삼는 농부로 대치시킨 것이다. 선비의 자리에 농부를 그렸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그러나 배경 처리는 여전히 관념적인 것을 보면 그는 여기서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현실을 집어넣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리얼리즘 realism의 획득이란 이처럼 어렵고 점진적인 것이었다... 이처럼 그림 속에 현실을 담아가던 공재는 결국 현실 자체를 그림으로 그리기에 이르렀다. 바로 <목각 깎기>, <나물 캐기>, <석공공석도 石工攻石圖> 등이다... 이처럼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속화 俗畵의 개막을 알리는 서막이었다.'(p52)
<명작 순례>에서는 많은 그림이 소개된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짚신 삼기>가 특히 인상에 남는다. 아직 미술작품의 기법이나 구도 등을 이해할 수준이 되지 않다보니, 그림의 여러 부분 중 작품의 '주제'에 먼저 관심이 가게 된다. 조선 초기 남종화 南宗畵 풍의 관념적 세계가 주로 그려졌다면, 조선 중기 이후 보다 현실적인 모습의 작품이 등장했다는 것을 책 속의 여러 작품과 설명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단원 檀園 김홍도 金弘道(1745 ~ 1806), 혜원 蕙園 신윤복 申潤福(1758 ~ 1814(?)) 등으로 대표되는 풍속화 風俗畵가 조선 후기에 활짝 꽃피웠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림의 주제와 시대상의 관계는 뗼 수 없이 밀접한 관계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시대의 관심이 '이상 理想'에서' 현실 現實'로 내려오고, 그림의 대상이 '신선 神仙'에서 '민중 民衆'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명작순례>에서 소개되는데, 이를 통해 시대의 중심이 일반대중으로 내려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조금 더 나아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조선말의 동학농민혁명 東學農民革命의 뿌리나 20세기 대중들의 시대의 전조 前兆 를 화풍 속에서 느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비약인것 같다.)
3. 글 : 문자 文字의 조형미 造形美
[그림] <천자문> (출처 : http://m.blog.daum.net/jeongdaepower/7717767)
'세간에 전하는 석봉 石峯 한호 韓濩(1543 ~ 1605)의 많은 서예 작품들은 한결같이 필획이 굳세고 형태가 아름다우며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어 글씨를 잘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감동한다.... 그 중에서도 서예사적으로 가장 큰 의의를 가지는 것은 <천자문 千字文>이다.'(p223)
그림의 글은 크게 문자 자체의 아름다움과 그 안의 의미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서예 書藝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초서(草書)의 아름다움을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명작순례>에 담긴 글 중 한석봉의 글을 보면 그 반듯함과 균형잡힌 모습 속에서 조형미를 느끼게 된다. 마치 반듯하게 자란 듯한 모범생의 이미지, 또는 모델 같은 모습 속에서 글자 외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4. 글 : 문자를 넘어서
[그림] <절유시> (출처 : 싱싱뉴스)
'홍랑 紅娘( ? ~ ?)의 절유시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씨가 참으로 단아하고 기품이 있다. 본래 한글 서예 작품은 드문 편이고 특히 임진왜란 이전 한글 글씨는 아주 귀해서 목판 인쇄본으로나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홍랑의 글씨는 그 어느 것과도 다르다. 필획 굵기에 변화가 없어 정중한 예서체 맛이 담겨 있다. 그래서 소박하면서도 애틋한 분위기가 살아난다.'(p219)
홍랑의 <절유시>를 볼 때 글자 자체만 본다면 누가 이것을 이별을 아쉬워하는 글이라 말할 수 있을까. 반듯하게 써내려간 글 속에 글쓴이의 평안한 마음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이 글의 내용은 이별의 아픔을 담고있다. 눈물이 쏟아지는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의연하게 자신의 마음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을 보면서 '홍랑은 연인 최경창을 과연 사랑했을까?'하는 물음이 떠오르게 된다. 그에 대한 답 또한 우리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경창 崔慶昌(1539 ~ 1583)의 사망 소식에 홍랑은 파주에 있는 묘소 앞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다른 남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몸을 씻거나 꾸미지도 않았고 자신의 얼굴에 칼자국을 내어 추악하게 만들었다. 숯을 삼켜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는 최경창의 묘 앞에서 살다 생을 마쳤다고 한다.'(p218)
잠시 생각해보니 나는 살아오면서 'n번'의 헤어짐과 'n+1'번의 만남을 통해 결혼에 다다른 것 같다. 그중 몇 번의 헤어짐은 마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눈물을 쏟아가며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는 그 사람을 잊고 다른 사랑을 이내 시작했던 내 자신의 모습. 세상 끝날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혀 이별을 했지만, 내가 사랑이라 불렸던 감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반면, 순간의 이별 앞에 초연하고, 죽음이 갈라 놓을 때도 의연하게 자신의 사랑을 증명했던 홍랑. 그녀의 <절연시>와 그녀의 삶을 읽으면서, 글씨에 담긴 사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5. 그림 밖으로
[그림] <기로세련계도> (출처 : 오마이뉴스)
'돌이켜보건대 단원 檀園 김홍도 金弘道(1745 ~ 1806)가 뛰어난 화가라고 해서 <기로세련계도 耆老世聯契圖>라는 불후의 명작이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개성 사람들의 주문이 없었다면 단원의 이 그림은 탄생하지 못했다. 이런 대작을 주문할 정도의 경제적, 문화적 풍요로움과 미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로써 볼 때 미술문화를 창출하는 것은 공급자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 임을 알수 있다. 공급자인 화가는 그러한 문화적 수요가 있어났을 때 자신의 기량을 십분 발휘하는 것으로 자기 몫을 다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는 소비자가 만든다.'(p111)
공재 윤두서의 그림 <짚신 삼기>에서처럼 그림에 '시대정신 時代精神'이 담겨있다면, 작품을 둘러싼 주변환경에 대한 이해 역시 작품 이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14 ~ 15세기 유럽의 르네상스 Renaissance 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 ~ 1519),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 ~ 1564) 등 소수의 천재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여러 시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음을 생각해본다면 시대에 대한 이해가 감상을 위한 필요 요소임은 당연하다 생각된다.
<명작순례>에는 조선시대의 그림들이 위와 같은 내용으로 설명된다. 어려운 설명 대신 평이한 내용으로 우리가 작품을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문화는 소비자가 만든다'면, 이 책은 초보자들이 문화를 만드는 좋은 길잡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