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먼 시계공 ㅣ 사이언스 클래식 3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8월
평점 :
'풀밭을 걸어가다가 "돌" 하나가 발에 채였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 돌이 어떻게 거기에 있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그것은 항상 거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답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 아니라 "시계"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그 장소에 있게 되었는지 대답해야 한다면, 앞에서 했던 것 같은 대답, 즉 잘은 모르겠지만 그 시계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는 대답은 거의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p26)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 ~ 1805)는 저서 <자연 신학 : 자연의 모습으로부터 수집한 신의 속성 및 존재의 증거>를 위와 같이 시작면서 지적 설계(知的設計, Intelligent design)를 주장한다.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에 맞게 설계했다. '(p27)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의 <눈먼 시계공>은 페일리의 '시계공'의 주장을 반박한 도킨스의 책이다. 만일, 책 읽을 시간이 10초 밖에 없다면 이 책의 내용은 다음 한 문장을 읽고 넘어가도 좋다.
'모든 자연 현상을 창조한 유일한 "시계공"은 맹목적인 물리학적 힘이다.'(p28)
추가적으로 1분의 여유가 있다면 다음 문단을 마저 읽으면 보다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다윈이 발견했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인 과정인 자연선택은 확실히 어떤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생물의 형태와 그들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며, 거기에는 미리 계획한 의도 따위는 들어있지 않다.... 만약 자연선택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 한다면, 그것은 "눈먼"시계공이다.'(p28)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눈먼 시계공'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여기까지 읽었으니, 추가적으로 5분의 시간을 마저 투자해서 <눈먼 시계공>의 기본적인 생각부터 시작해보자.
'<눈먼 시계공>의 기본 생각은 우리가 생명이나 우주의 다른 것을 이해하려고 할 때, 어떤 설계자를 가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p246)
설계자 대신 <눈먼 시계공>에서는 '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생명체가 출현했고, 이들 생명체가 '존재, 생존, 번식'을 통해 '누적적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지구의 나이를 대략 45억년으로 가정할 때 이 시간은 수소와 물, 이산화탄소가 결합되어 생명이 출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선택(選擇, choice)'의 결과로 '진화(進化, evolution)'가 이루어졌다(누적적 자연선택)는 것이 저자의 핵심적 주장이다.
'다윈은 생존과 존재를 위한 투쟁(생존 경쟁)을 가장 강조했지만 존재와 생존이 하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 목적은 바로 번식이었다... 자연선택은 번식에 성공적인 동물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며, 생존이란 번식을 하기 위한 투쟁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p327)
저자가 말하는 '번식'이라는 부분은 그의 전작 <이기적 유전자>과 연결된 부분이다.
잠시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과 연결시켜 보자. '번식'의 목적은 RNA의 자기 복제 능력의 결과물인 DNA 암호의 생존이다. 그리고, DNA 암호의 생존을 위해 DNA 복제자들은 개체의 생존 기계인 '뇌'를 진화시켰고, '뇌'는 '문화적 전통'과 '언어'를 통해서 기존 DNA복제자들과는 다른 '밈(meme)'을 만들어냈다...<이기적 유전자>에서는 '번식'의 동인(動因)으로 '유전자의 생존'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반면, <눈먼 시계공>에서는 '번식'의 결과(結果)인 '누적적 자연 선택'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누적적 자연선택'은 1%라도 높은 생존 확률을 보장하는 쪽으로 발전된다.
'5퍼센트라도 보는 편이 전혀 보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 따라서 완전히 눈먼 것보다는 1퍼센트라도 보이는 쪽이 낫다. 5퍼센트보다는 6퍼센트가 낫고, 6퍼센트보다는 7퍼센트가 낫다.'(p142)
<이기적 유전자>에서 '게임이론(game theory)'을 통해 전략적인 유전자의 '선택'을 설명한다면, <눈먼 시계공>에서 '군비 확장 경쟁'을 통해 개체들의 '생존'과 유전자들의 '진화'를 설명하고 있다.
'군비 확장 경쟁'은 개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 시간 척도에서 진행된다. 그것은 한쪽의 계통(예를 들면 포식자)이 진화시킨 장비의 개선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로 다른 한쪽의 계통(예를 들면 피식자)이 살아남기 위해 장비를 개선시키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p291)
개체의 생존(生存)은 유전자의 생존으로도 이어지게 되며, 무한히 많은 반복수 속에서 이루어진 '누적적 자연선택'에서 '진화'가 발생한 것이라는 것이 <눈먼 시계공>에서 설명된 도킨스의 진화론 내용이다. 여기서, '선택(選擇, choice)'의 문제를 살펴보자.
장 폴 샤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 1905~1980)의 유명한 말 "Life is C(hoice) between B(irth) and D(eath)" 와는 약각 다르지만, 선택의 결과는 생(生)과 사(死)를 가르게 된다. 그리고, 죽은 개체와 유전자는 소멸된다. 이처럼 유전자/개체들의 선택 결과가 유전자의 생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추억의 '숫자 야구 게임'을 통해서 잘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그림] 숫자 야구 게임(출처 : http://m.blog.naver.com/variousartist/220430312249)
숫자 야구 게임 시 우리가 부르는 숫자를 통해 생존 여부를 판단하고, 맞지 않는 수가 있다면 탈락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지하게 된다. 반복되는 게임을 통해 우리는 정답으로 접근해 갈 수 있다. 다만, '숫자 야구 게임'과 '진화의 선택'과는 작은 차이가 있다. 숫자 야구는 '한정된 시간' 동안 '1~9까지의 한정된 수'를 가지고 하는 진화게임이라는 것이다. 이를 '생명체의 진화'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한정된 시간의 선택된 숫자' 대신 '오랜 기간의 무작위 수'의 발생으로 대치하면 될 듯하다. 마치 아래 동영상처럼 굵은 체 위를 빠져 나간 종(種)만 생존한다고 가정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모습으로, 리처드 도킨스는 '시계공'을 대신하여 '자연선택'을 내세웠다고 이해된다.
[동영상] 굵은 체(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tyauNmIODco)
<눈먼 시계공>의 전체 내용은 <지상 최대의 쇼>와 상당 부분 겹친다.
다만, <눈먼 시계공>의 차별화된 내용이 있다면 닐스 엘드리지(Niles Eldredge)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 ~ 2002)가 1972년 주장한 '단속 평형 이론(斷續平衡理論,punctuated equilibrium)' 비판일 것이다. <지상 최대의 쇼>가 많은 예시와 사진, 그림 등이 제시되어 있어 흥미있게 읽히는 반면, <눈먼 시계공>은 같은 내용을 보다 학술적으로 정리했다는 느낌이 들고, <눈먼 시계공>의 학술적 성격은 '단속 평형 이론'비판에서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치도록 한다.
'미국의 고생물학자 닐스 엘드리지와 스티븐 제이 굴드는 1972년에 처음 단속평형설을 발표했는데, 이후 그들의 이론은 종래의 이론과는 전혀 다른 제안인 것처럼 주장되어 왔다. 그들은 실제 화석 기록이 우리 생각처럼 불완전하지 않을 것임을 주장했다... 그들은 계통 진화가 진화적인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긴 '정체'기를 거치며 끊어졌다 이어진다(斷續)고 주장했다. 어떤 의미에서 진화는 갑작스러운 폭발의 형태로 이루어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p373)... 이러한 도약론자의 진화 이론을 모두 폐기시킬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하나는 통계학자이자 생물학자인 R.A. 피셔가 지적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큰 폭의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상(像)의 질이 향상될 가능성이 극히 작지만, 현미경 제작자나 사용자가 의도한 최소의 조정폭보다 미세한 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개선될 확률은 거의 정확하게 2분의 1임은 거의 확실하다."(p377)'
PS. 요즘은 스크린 야구를 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숫자야구 하는 법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게임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한 글을 옮겨본다.
1. 우리편(나)이 0~9까지 임의의 네자리 수를 정한다.
2. 상대편(맞추는 사람)이 임의의 네자리 수를 부른다.
3. 우리편(나)이 상대편(맞추는 사람)이 부른 네자리 수를 듣고 스트라이크(S), 볼(B)의 개수를 알려준다.
1) 스트라이크(S)는 상대편이 부르는 네자리 수 중에서 우리편의 같은 자리에 수까지 같은 경우이다.
2) 볼(B)은 상대편이 부르는 네자리 수 중에서 우리편의 수가 같은 경우이다.
3) 스트라이크가 볼보다 상위단계이므로 상대편이 부른 수 중에 같은 자리에 수까지 같은 경우가 1개일 때, 1S1B이 아닌 1S라고 친다.
4) 아웃(O)은 1볼(B)도 없는 경우이다.
4. 4스트라이크(4S, 임의의 숫자 네자리 수를 맞춘 경우)일 때 게임이 끝난다.
(출처 : http://m.blog.naver.com/variousartist/220430312249)
PS2. '연속-단속'의 문제는 생물학에서 '진화(evloution)'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천체 물리학에서 우주 생성론이론으로 '빅뱅이론(Big Bang)'과 '정상우주론(正常宇宙論, Steady State theory) 역시 다른 형태의 '단속-연속' 라 생각된다. 불교(佛敎)에서 말하는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도 같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