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지음, 최형익 옮김 / 비르투출판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 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_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p.10) 


루이 보나파르트, 훗날 나폴레옹 3세는 대통령이 되기 전 두 차례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추방과 종신형 선고를 받은 이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되고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날카롭게 분석한다. 루이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삼촌 나폴레옹 1세가 완성한 국가기구를 이어받아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에는 정치체제의 모순과 보통선거제라는 배경이 자리한다.


 국가의 시민적 통일성을 창출하기 위해 지역적, 영토적, 도시적, 지방적으로 분리된 권력을 타도하는 임무를 지닌 제1차 프랑스 혁명은 절대왕정이 착수한 중앙집권화와 함께 정부 부속기관과 그 인력의 확대를 한층 발전시켰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이 국가기구를 완성했다. _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p.138) 

 대통령의 상대편에 자리한 의회파를 구성한 두 세력은 서로 다른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정통왕조파가 전통적인 토지 지주의 이익을 대변한다면, 오를레앙파는 금융·산업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경제적 이해관계가 달랐다. 그러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왕정복고를 희망하는 속내를 가졌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졌기에 이들은 '공화정'이라는 체제에서 불안정한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보통선거제가 의회와 대통령 모두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주었다. 대통령과 의회가 모두 지지받는 체제에서 대통령과 의회는 서로 견제하는 관계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루이 보나파르트는 어떻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는가?


1850년 5월 31일의 선거법은 파리의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에 어떤 형태로든 참가하는 것을 봉쇄했다. 이 선거법은 모든 투쟁영역에서 파리의 프롤레타리아를 차단시켜 버렸다. 또한 그것은 노동자들을 2월 혁명 이전과 같은 하층 천민의 지위로 되돌려 놓았다. _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p.79) 


의회는 보통선거가 준 대중적 정당성을 스스로 잘라냈고, 대통령은 자신을 선출한 분할지 농민과 사조직으로 동원한 룸펜프롤레타리아라는 기반을 그대로 유지했다. 정치적 정당성을 스스로 약화시킨 의회와 대중적 지지를 내세워 권력을 확대해 나간 대통령의 대결. 처음에는 의회가 우위였으나 끝내 대통령에게 패했고, 이로써 루이 보나파르트는 자신의 정치적 희극을 완성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막강한 정적들을 제거하고 이제 그 스스로가 황제의 역할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나폴레옹의 가면을 쓴 자신을 진정한 나폴레옹이라고 상상하는 바로 그 때, 비로소 자신이 지닌 세계에 대한 고유한 개념의 희생자가 되며 세계사를 희극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희극을 세계사로 파악하는 심각한 어릿광대가 된다. _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칼 마르크스, p.86)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과 《자본론》(1867). 15년의 간격을 두고 쓰인 두 저작은 각각 정치적 모순과 경제적 모순을 대표한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과 위기 경향을 분석했다면, 《브뤼메르》에서는 의회의 분열과 루이 보나파르트라는 인물의 자기모순을 분석한다. 보나파르트는 스스로를 중간계급의 대변자로 자처하면서도 그 계급의 정치권력을 날마다 파괴함으로써만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이 모순은 보나파르트가 황제에 오른 뒤에도 계속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에게 제2제정은 처음부터 붕괴의 모순을 안고 출발한 체제였을까?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 부록으로 실린 논문을 통해 마르크스의 다른 저작  《공산당 선언》과의 접점을 발견한다. 사회주의라는 유령이 지배계급의 정치적 공포를 드러낸다면,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새로운 역사적 세력의 등장을 알린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등장한 두 유령은 계급적 지배질서가 변화의 가능성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부르주아지와 질서당이 자신을 국가권력의 정상에 도달하게 해준 공화정과 보통선거제를 '폐지'하고 의회독재라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이게 된 보다 근원적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유령이 도처에 만연해 있고, 언제 어디서 그 어떤 모습을 출몰할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다고 마르크스는 분석한다. _ 《계급투쟁과 보통선거제의 정치적 동학》 (최형익, p.178) 논문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_ 《공산당 선언》 (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정치적 모순을 안고 있는 계급과 인물들의 권력투쟁을 다룬 저작이다. 서로 다른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들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연합하고, 자신들의 지배를 지키려다 스스로 정치적 정당성의 기반을 허무는 과정은 역설적이다. 그 틈에서 권력을 쥔 루이 보나파르트 또한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지배를 유지하면서 그 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약화시킨다. 특정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면서도 그 계급의 정치적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 행정권력의 상대적 자율성. 이것이 마르크스가 파악한 보나파르티즘의 모습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는 정치적 입장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정치가 그 이해관계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은 아니며, 개인의 의지만으로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르크스가 첫머리에서 말했듯, 사람들은 스스로 고른 조건이 아니라 물려받은 조건 아래서 역사를 만든다. 그 조건 속에서 계급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갈등, 인물의 의지가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현실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역사란 같은 악보를 다시 연주하는 일이 아니라, 달라진 무대에서 악보와 달리 흘러가는 불협화음에 가깝지 않을까. 마르크스가 포착한 것은 어리석은 한 독재자의 출현이 아니라 그런 독재자를 만들어 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었다. 루이 보나파르트 이후에도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수많은 정치 지도자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들은 과연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시대를 달리하여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