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파괴, 접속 2 - 정치와 세계의 지역 질서 케임브리지 세계사 16
존 로버트 맥닐.케네스 포메란츠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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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국가 체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정통성을 강화하려면 민족 정체성을 구현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민중의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는 사상이 확산되었다. 근대 국가(민족)의 개념은 군사 및 경제적 경쟁의 역학관계를 통해 확산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2>, p76


 기원 후 175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대상으로 국제 정치와 세계의 지역 질서를 다루는 <생산, 파괴, 접속 2>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확산하려는 '제국주의'라는 운동(運動)에 대한 '반(反)식민주의'라는 반작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동과 반작용의 충돌을 통해 빚어진 갈등이 세계대전이라는 현상으로 드러났다면, 그러한 현상 배후에 있는 다른 두 양태 - 파시즘과 공산주의 - 는 반작용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그렇다면, 근대화 이후 제국주의는 이전 제국과 무엇이 달랐는가? 본문에서 이는 '영향력의 크기와 파급'으로 설명된다.


 지난 300년간의 제국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제국 활동의 규모가 커지고, 그 속도가 빨라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가속화와 세계적 통합을 일반적으로 농업, 산업, 금융, 노동, 소비 문화, 통신, 관료제, 군사 조직, 신념, 그리고 물론 정치에서 일어난 여러 혁명의 결과로 설명하며, 이러한 혁명들이 세계를 근대로 이끌었다고 본다. _ <생산, 파괴, 접속 2>, p149


 중앙집권화된 국가 권력의 유지를 위해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민족국가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어 냈고, 상상된 공동체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여기에 결부시켰고,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은 제국주의를 통해 외부로 팽창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생산, 파괴, 접속 2>에서의 시작은 다음의 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의 이상형과 민족주의의 이상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_ <생산, 파괴, 접속 2>, p70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좌파적 반동이 공산주의였고, 우파적 반동이 파시즘이었다고 본다면, 결국 현대정치사는 제국주의와 이에 대한 반식민주의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사의 비극을 정리할 수 있겠다. 반식민주의의 대응이 결국 '서구에 대한 빠른 모방'이었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인류는 고유한 문명의 다양성 대신 강력한 '서구 근대 문명'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가 동일한 현대 사회의 문제(비극)를 공유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다.


 <생산, 파괴, 접속 2>에서 독자들은 저렴한 에너지원을 통해 만들어진 생산품들의 원료 공급처, 시장을 위해 다양한 이념들로 포장된 폭력의 양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식민 본국과 식민지의 관계에 한정되지 않았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일단 점령하고 보는 '선점적 식민지화'의 광기처럼, 생산된 힘은 맹목적인 파괴와 팽창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과거 전통과의 단절, 식민 사회의 변질 등 커다란 간극을 만들어냈음을 의미한다. '파괴를 위한 생산'. 2권의 주제어를 이렇게 잡을 수 있다면, 생산의 결과는 현대 사회의 동질화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국력의 강화와 경제의 산업화, 이 두 가지 변혁이 19세기 서구 세력의 세계적 확산을 가능케 한 원인이었다. 유럽 안팎을 막론하고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는 서유럽과 미국에서 자리 잡았던 이념적 및 제도적 혁신을 모방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 정치적 자각을 통해 정치, 군사적 힘을 강화하고 산업화를 통해 경제를 변화시켜 부와 권력을 동시에 창출하려 했던 노력. _ <생산, 파괴, 접속 2>, p181 

무너진 제국의 잔해로부터 민족국가가 등장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민족주의의 승리는 현실적으로 강렬한 트라우마로 이어졌고 더욱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국민주권과 민족자결을 기반으로 세계 정치 질서가 재편되면서 소수 민족의 지위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게 되었다... 민족의 서열이 갑자기 뒤바뀔 수 있다는 전망 혹은 경험은 격렬한 분노와 공포,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종종 집단 폭력, 인종 청소, 혹은 노골적인 학살의 끔찍한 패턴을 초래하기도 했다. - P89

"선점적 식민지화"라는 개념은 아프리카 쟁탈전이 왜 그렇게 격렬했는지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같은 이유로, 일단 식민지화를 성공한 뒤에는 점령한 영토에서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이지 않았다. 아프리카의 광대한 공간, 언어적/민족적 다양성, 그리고 깊이 뿌리박힌 친족 집단, 상업적/종교적 네트워크를 고려하면, 행정 관리보다는 정복이 훨씬 더 쉬운 일이었다. - 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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