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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세계사 ㅣ 히스토리아 문디 5
윌리엄 맥닐 지음, 신미원 옮김, 이내주 감수 / 이산 / 2005년 9월
평점 :
이 책의 주제인 '전쟁의 상업화'와 그에 뒤따르게 마련인 '전쟁의 산업화'가 더욱 중요한 의미에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00년 이후의 일이다. 그 변용은 처음에는 완만하게 이루어졌고, 최근 1~2세기 동안 걷잡을 수 없이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_<전쟁의 세계사>, p44
전쟁의 상업화와 전쟁의 산업화.

<전쟁의 세계사>를 통해 저자는 전쟁이 인류사에 미친 영향이 특히 상업화와 산업화를 통해 더 커졌음을 밝힌다. 서기 1000년 이전 유목-농경 민족 사이의 전쟁이 대부분 무역에서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기에, 전쟁의 성격은 보다 유리한 조건의 확보를 위한 수단의 성격이 강했다. 이에 반해, 12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변화는 전쟁의 성격을 수단에서 상품으로 변모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전쟁의 세계사>는 이런 상품으로서 '전쟁'에 초점을 맞춘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전장에 말을 탄 기사에 대항할 수 있는 보병군이 등장하면서 변화는 시작되었다. 14세기에는 도시 민병대가 고용된 직업군인으로 대체되었고, 15세기 전반에는 이탈리아에서 도시국가들이 대두하면서 시민 주도의 상비군 경영 패턴이 급속하게 발달해갔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그 후 알프스 이북의 유럽 국가들에서 훨씬 넓은 영토를 배경으로 재현되었다. 그리하여 17세기 중반에 이르면 프랑스, 네덜란드 공화국, 영국 같은 나라는 예전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군사 경영과 유사한 패턴을 이룩했고, 국가의 세수와 육해군의 지출 사이에 어느 정도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었다. _<전쟁의 세계사>, p193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도시에 고용된 용병제도가 30년 전쟁을 거치며 그 규모를 확대되었고, 전쟁이라는 상품이 '용병대장 단위의 가내수공업'에서 '국가 단위의 매뉴팩처'로 변모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자본을 통한 상비군 유지, 과학을 이용한 보급 및 운송 혁신, 중앙집권적 관료제 등 근대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반복적인 군사 훈련(Drill)을 통해 병사들을 규격화하고, 개인의 영웅심보다 집단의 규율을 앞세워 전쟁 수행 능력을 극대화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종교적 헌신 못지않게 병사들을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게 만든 강력한 기제가 되었다.
1840~1880년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가 잠시 행사했던 세계지배는 정말 특별한 성격을 가졌다. 기계로 제조된 값싼 물품, 기계를 기초로 한 저비용의 군사적 우위는 둘 다 해외로 수출될 수 있었고 실제로 수출되었다. 그리하여 세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무수한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단일한 전체로 통합되었다. _<전쟁의 세계사>, p348
<전쟁의 세계사>는 저자의 전작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제시된 '거시 기생(Macro-parasitism)'의 개념을 심화시킨 책으로도 읽힌다. 과거의 전쟁이 단순히 약탈을 통한 기생이었다면, 근대의 전쟁은 거대한 산업 구조와 결합하여 국가 간의 수탈을 합리화하고 체계화한 고도화된 기생 방식임을 보여준다. <전쟁의 세계사>를 통해 독자들은 자본, 국가, 관료제, 과학, 민족주의 등의 이데올로기 등 여러 요소들이 전쟁이라는 현상을 통해 '전쟁 기계'라는 터미네이터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터미네이터의 폭주를 막기 위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 이는 저자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어려운 과제다.
행정명령에 의한 복지후생을 통해 각 교전국은 자국의 노동력에 가능한 한 최선의 노동조건을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복지후생의 반대쪽에는 독일의 '노예노동' 캠프나 수백만의 유대인과 나치 정권의 적이 굶주리고 학살당한 수용소가 있었다. 이것은 극도의 비인간성이 전쟁 노력의 다른 측면을 경영하는 데 사용된 것과 똑같은 방법을 통해 관료화되고 효율화된 모습이었다. _<전쟁의 세계사>, p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