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쟁탈전
에밀 졸라 지음, 조성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2월
평점 :
그동안 사카르의 재산은 절정에 오른 듯했다. 그의 재산은 파리 전체에 거대한 환희의 불처럼 타올랐다. 개들이 짖는 소리, 채찍질 소리,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햇빛으로 가득 찬 숲속 한 구석에서 뜨거운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_ 《쟁탈전》 (에밀 졸라, [전자책 위치 93/226])
쟁탈전(La Curée). 제2제정기의 파리 대개조 사업은 근대화를 명분으로, 권력과 자본이 결탁한 투기장이며, 신흥 부르주아들의 욕망의 해방구였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아리스티드 루공은 '사카르'로 이름을 바꾸고 쟁탈전에 적극 참여한다.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한 부동산 감정액 조작과 수용을 통해 사카르는 매우 빠르게 부를 축적한다. 1권이 《루공가의 치부(致富) La Fortune des Rougon》였다면 2권은 '사카르의 치부'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성공을 거두지만, 《쟁탈전》이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는 사카르가 아닌 다른 주인공 르네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해된다. 《쟁탈전》은 사카르가 돈을 쟁탈하는 이야기이면서, 르네가 욕망을 쟁탈하려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이야기다. 사카르의 성공과 르네의 파멸이 교차하면서 제목의 의미가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렇다면, 르네는 어떻게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땅과 건물들은 교묘하게 계산된 명세서로 거의 2천만 프랑으로 평가되었으나 실제 그 가치는 이 금액의 4분의 1도 되지 않기 때문에, 수용이라는 요정의 금막대기가 마술을 부리지 않는다면 엄청난 파산 속에 가라앉을 수 있었다. _ 《쟁탈전》 (에밀 졸라, [전자책 위치 132/226])
유부남에게 강간당한 후 가문의 수치를 덮기 위해 막대한 지참금과 땅을 갖고 사카르와 계약 결혼을 한 르네. 남편에게 자신과 소유 재산 전체를 내주고 사카르의 성공에 휩쓸려 간다. 돈과 쾌락을 향한 사카르의 질주에 그녀 자신도 열광하며 적극 가담하고 사교계의 중심에 선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르네.
돈과 욕망이 들끓는 제2제정의 사회는 그녀의 상상력을 부추겼으며 당당하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엉뚱한 행동을 하도록 그녀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녀는 후회하면서도 더욱더 자신을 내던졌고 결국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정직성마저 완전히 죽여 버리게 되었다. 그녀는 항상 들떠 있었고, 항상 알고 싶으며 느끼고 싶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 속에서 앞으로 내달렸다. _ 《쟁탈전》 (에밀 졸라, [전자책 위치 82/226])
그렇지만, 그녀가 추구했던 가치들이 성취감이나 만족감 대신 공허함을 안겨다 주었을 때 그녀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새로운 자극을 끝없이 추구하며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다. 망망대해에서 갈증을 피하기 위해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가 이와 같을까. 르네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욕망을 마셨지만, 마실수록 갈증은 더 심해졌다. 반대로 사카르는 같은 욕망의 세계에서 끝까지 살아남는다. 적어도 사카르는 《쟁탈전》에서 '성공한 악인'으로 마무리된다.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풍경 앞에서, 한껏 유행 따라 멋을 낸 이 자연 앞에서, 르네는 차마 고백할 수 없는 욕망들이 올라오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떨며 다가오는 깊은 밤의 숲은 고대의 신들이 그들의 거대한 사랑, 간통, 근친상간을 숨기기에 이상적인 숲 속의 빈터처럼 신성하게 보였다. _ 《쟁탈전》 (에밀 졸라, [전자책 위치 12/226])
작품 안에서 인상 깊은 르네의 공간들이 있다. 의붓아들 막심과 함께 지나다닌 볼로뉴 숲, 막심과 사랑을 나누던 온실, 버려진 뒤 그녀만이 남은 방. 욕망을 바라보는 공간으로서 볼로뉴 숲, 욕망을 실현하는 온실, 욕망이 사라진 곳에서 자신과 대면하는 방이 그곳들이다.
수많은 마차들이 줄지어 지나가며 상류계급이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산책 장소인 숲을 바라보며, 르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르네는 자신의 욕망을 투명한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인위적인 숲'에서 실현했지만, 끝내 자신의 것으로 남기지 못한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다. 르네가 원한 것은 단순한 쾌락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대의 신들처럼 금기로부터 면제되어 인간에게 주어진 경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욕망은 태양 가까이 날아간 이카루스를 닮았다. 높이 올랐던 만큼, 그녀가 돌아온 곳은 홀로 남은 방이었다.
숲, 온실, 방. 이 세 공간을 통해 작가는 개조된 파리를 배경으로, 인공의 자연 속에서 증폭되는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공간적으로 엮어낸 것은 아닐까.
르네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 그녀가 더욱 자극적인 사랑을 필요로 하는 날 그를 끌고 가는 곳이 있었다. 그때에는 온실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들이 근친상간을 느끼는 곳이 바로 거기였다. _ 《쟁탈전》 (에밀 졸라, [전자책 위치 130/226])
신들처럼 쾌락에 대해 면죄받는 곳에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거짓된 상상임을 느끼자, 그녀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수치의 나라에서 살아왔던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내던졌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이끌면서 그 대가를 치렀다. _ 《쟁탈전》 (에밀 졸라, [전자책 위치 201/226])
《쟁탈전》에는 분명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가해자의 자리에 계약 결혼을 통해 르네의 재산을 이용한 사카르가 있고, 르네와의 관계를 이용하다 끝내 그녀를 저버리는 막심이 있다면, 그들에 의해 이용당한 르네는 피해자의 자리에 있다. 그렇지만, 가해자의 악행에 분노하면서도, 피해자의 불행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기에는 어떠한 주저함이 계속 막아선다. 르네가 욕망의 세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사실은 그녀가 처음부터 그 세계를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피해자로 출발한 그녀가 점차 그 욕망의 문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피해자와 공모자의 경계가 흐려진다.
《쟁탈전》의 욕망 구조는 현대 자본주의의 모습과도 결코 멀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르네의 욕망을 낯선 시대의 일탈로 밀어내지 못한다. 그녀의 불행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끝까지 자신을 내던진 그녀를 바라보며 주저하게 된다.
센 강을 가로지르는 두 다리인 베르시교와 오시테를리츠교는 센 강을 붙잡고 강물이 방 안까지 올라오지 못하게 해주는 멈춤 장치 같았다. _ 《쟁탈전》 (에밀 졸라, [전자책 위치 67/226])
도시에는 강물을 붙잡아 주는 다리가 있었지만, 르네에게는 욕망이 자신을 삼키기 전에 붙잡아 줄 방벽이 없었다. 그녀를 끝내 온전히 동정하지 못하게 막아서던 그 주저함, 그것이 독자인 나에게 주어진 방벽이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