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키가하라 전투(Battle of Sekigahara, 1600)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가 죽은 후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다이묘(大名)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는 곧 야심을 드러냈다. 1585년 정부를 관리할 5명의 부교(五奉行) 중 한 사람으로 임명되었던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1563~1600)는 곧 이에야스의 야심을 눈치채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무단 혼인을 금지한 히데요시의 법을 어기고 도요토미 가문의 가신들과 사돈을 맺어 무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이에 미쓰나리는 이에야스가 법을 어겼다고 고발하여 죄를 추궁했고, 그 결과 다이묘들이 양분되어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됐다... 1600년 10월 21일 미쓰나리의 서군과 이에야스의 동군은 미노노쿠니(美濃國)의 세키가하라에 집결했다. 10만 명에 이르는 잡다한 구성의 서군은 내분으로 분열했고 훈련을 잘 받고 단련된 8만명의 동군에 적수가 되지 못했다. 동군은 그날이 다 갈 무렵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고 3만 명이 넘는 서군을 살해했다. 미쓰나리는 체포되어 처형됐다. 이 전투는 일본 역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투의 하나로 꼽힌다. 그 뒤 264년 동안 일본을 통치하게 될 에도 바쿠후(江戶幕府)가 탄생하는 무대였기 때문이다. _ 조지 차일즈 콘, <세계 전쟁사 사전>, p506/1247
개인적으로 이번 대선의 전후 관계를 보면서 세키가하라 전투를 떠올리게 된다. 한편으로 한일전(韓日戰)으로도 인식되는 이번 선거에서 일본전국시대 전쟁을 소환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기에 애써 무시했지만, '안철수-윤석열 단일화'라는 사건은 다시 세키가하라를 떠올리게 한다. 야마오카 소하치(山岡?八, 1907~1978)은 <도쿠가야 이에야스>에서 세키가하라 전투의 결정적 순간으로 마쓰오산에 주둔한 고바야가와 히데아키(小早川秀秋秀詮, 1582~1602)의 참전으로 묘사한다.
[그림] 세키가하라 포진도(출처 : https://senjp.com/sekigahara/)
아들 히데타다(德川秀忠, 1581~1632)가 결전 직전에도 합류하지 못해 미쓰나리의 서군에 비해 열세에 놓였고, 포진 위치도 좋지 않은 상황의 도쿠가와군은 고바야가와군의 내응을 약속받았지만, 그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도쿠가와는 고바야가와군을 향해 독촉의 사격을 가했고, 이후 고바야가와군이 서군진영으로 돌입하면서 전황은 결정된다. 전투에서 결정적인 5분이 대승과 대패를 가르는 것은 세키가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안철수-윤석열의 단일화는 도쿠가와의 총탄처럼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고, 이제 유권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어디로 갈 것인가.
이 싸움에서 또 하나 승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고바야가와 히데아키 역시 마쓰오산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군사력과 마쓰오산의 전략적 위치로 보아, 만일 그가 동군으로 돌아서게 된다면 서군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야스는 본진에서 계속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고바야가와가 결심을 하는 시각을 재고 있었다. 이 한 순간이 혼전의 균형을 어떻게 깨뜨리느냐는 갈림길인 것이다. 앞을 못보는 오다니 요시쓰구도 온 신경을 고바야가와의 반응 여하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이 총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것은 고바야가와 히데아키 자신이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으나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기회주의적인 중립이 벽에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고바야가와는 비로소 정말 그렇게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드디어 고바야가와군의 총포대가 산 아래의 오다니군을 향해 발포를 시작했다. 동서 양군의 세력 균형이 결정적으로 깨어지는 순간이었다._ 야마오카 소하치, <도쿠가와 이에야스 22> 中
오전6시. 사전투표를 하고 돌아왔다. 지난 2010년과 2014년에 이재명을 성남시장으로, 2018년에는 경기도지사로, 2022년에는 대통령으로 투표한 투표소의 모습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새벽에 투표하는 이들이 주로 나이드신 어르신이었던 예전과는 다르게 20대 청년들의 발랄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령대로 그들의 지지성향을 가늠하는 것이 섣부른 판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 과거와 오늘의 투표장 모습의 차이임을 확인한다. 이런 변화가 지난 시간의 변화임을 생각해본다면, 87년 체제의 틀과 이러한 틀안에서 형성된 현재 정치구도가 얼마나 민의(民意)를 반영하지 못하는가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유기체의 성장은 반복되는 세포분열로 일어난다. 이때의 세포분열은 체세포분열잉라 불린다. 체세포분열은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의 엄청난 개수를 생각할 때 사람들이 흔히 추측하듯이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수정란은 두 개의 '딸세포'로 분열하고, 다음 단계에서 4개의 딸세포, 이어서 8, 16, 32, 64....개의 딸세포가 생겨난다... _ 에르반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 p45
성장을 위한 분열이 허락되지 않는 정치. 구체제의 틀은 우리에게 통합을 강요하고, 성장을 방해한다. 이제는 그 틀을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지난 체제의 한계를 딛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과거 서양의 68의 모습과도 같이 갈등과 분열로 표현되겠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사회의 성장 과정으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는 선거를 통해 새롭게 선출된 권력이 만들어낼 구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며칠 사이에 급변하는 선거국면에서 두서없는 여러 생각들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