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입문자를 위한 구조주의 해설서이다. 수박 겉핥기 정도. 겉도 다 핥는 건 아니고 혀만 살짝 닿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지만 표지의 무시무시한 4인방의 이름과 구조주의라는 난해한 개념을 얇은 분량에 담아 읽기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먼저, 구조주의의 땅고르기에 큰 역할을 한, 사고의 전환, 관점의 전환을 가져온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가 간략하게 언급되고, 구조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인 언어학자 소쉬르의 언어학 개념에 대해, 그리고, 구조주의 4대장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의 핵심적 관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읽을 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되는 듯하지만(라캉은 그마저도 안 된다) 책을 덮으면, 아니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앞의 내용은 머리 속에서 사라진다. 그저 몇 명의 이름과 몇 권의 책 제목만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에 대해 생각한다. 무지는 저자의 말 대로 단순이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음, 모르고 싶음의 성실한 축적의 결과다. 세상의 이치에 호기심이 없고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는 무지한 사람이다. 계속 무지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The Giver]의 구조화된 Sameness 사회 속에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를 자각하는 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다. 느리지만, 금세 잊어버리지만, 그 끈을 놓지 않아야겠다.

푸코의 ‘표준화', 레비스트로스의 증여의 관점에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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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4-25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도서관 책으로 읽었는데, 담에 꼭! 다시 하고 메모해 두었던 책입니다. 우치다 다쓰루도 제 컬럭션에 들어 있는 작가구요.
구조와 sameness에 대한 이야기 또 해 주세요~~~ 관심이 많아요, 제가^^

햇살과함께 2026-04-25 11:54   좋아요 2 | URL
저도 이 작가 책 더 읽어보고 싶어요! 제가 말해드리고 싶지만 말이 안나오는 ㅠㅠ 공부해서 머리에 구조를 좀 채워야겠어요 ㅠㅠ

서곡 2026-04-25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해서 머리에 구조를 좀 채워야겠어요 ㅠㅠ˝ 눈물과 미소가 동시에 나옵니다 ㄷㄷㄷ 응원해요!!! 햇살님 남은 이 달 잘 보내시길요~~~

햇살과함께 2026-04-25 20:49   좋아요 1 | URL
서곡님 응원 감사합니다^^ 어려워요 어려워~ 울고 있습니다 ㅎㅎ
 
The Giver Movie Tie-In Edition: A Newbery Award Winner (Paperback)
Lois Lowry / Houghton Mifflin Harcourt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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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이런 장르를 잘 읽지 않는 내가 배경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가뜩이나 영어로 읽는 것이니) 영화가 있나 찾아보니 마침 티빙에 있어서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다. 영화 먼저 보길 잘했다. 어떤 설정인지 파악이 되니 영어로도 잘 읽혔다. 다행히 영어도 무척 쉽다. 문장도 간결하고 어려운 단어도 많지 않다. 책 판형도 무척 작고 가벼워서 휴대하기도 좋으나 글자가 너무 작아 노안의 눈으로 오래 읽기 힘들다.


Sameness. 모든 것이 획일화된 사회, Feeing이 없는 사회, 미움도 없지만 사랑도 없고, 슬픔도 없지만 기쁨도 없고, 괴로움도 없지만 즐거움도 없고, 불행도 없지만 행복도 없는 사회. 전쟁도 없지만 축제도 없고, 배고픔도 없지만 음식 선택권도 없고, 추위도 없지만 눈도 없고, 더위도 없지만 햇살도 없고, Color도 없고, Music도 없고, Animal도 없다. 이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통제가능한 상태로 안전하게 굴러가는 것이 목적인 사회.


유일하게 이 모든 과거의 것을 Memory로 가지고 있는 Giver와 그의 기억을 계승해야 하는 임무를 배정 받은 Receiver 조너스.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혼자 눈뜬 자로 살아가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을 알지만 말할 수 없고, 이해 받을 수 없고, 혼자서만 끌어안고 살아야 외로운 역할이다알지 못하던 때에는 최고의 사회였지만, 알게 되면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사회가 된다. 우리가 찾는 것은 거짓된 평화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고 불안정한 세상(특히, 트럼프와 함께 사는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라도 한 번 쯤은 이런 사회를 꿈꾸지 않을까.


흥미롭게 잘 읽었다. 로이스 로리 작가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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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4-23 1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짓된 평화를 거부하지만, 저는 자꾸 그 sameness에 끌리더라구요. 불평등에 대한 반감도 여전하구요. 그래도 조너스의 선택이 옳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저도 로이스 로리를 좋아해요^^

햇살과함께 2026-04-23 23:25   좋아요 1 | URL
저도 모른다면 sameness의 안정감에 취해서 잘 살 것 같아요. 조너스의 부모님처럼요. 연결된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26-04-23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번역본으로 오래전에 읽어 잘 기억나지 않는데, 단발머리 님도 햇살과함께 님도 좋다하시니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이번엔 영어로 도전해봐야겠어요.

햇살과함께 2026-04-23 23:27   좋아요 1 | URL
영어가 Housemaid 수준?이라 쉽게 읽으실 거에요^^
 

Finally he steeled himself to read the final rule again. Hehad been trained since earliest childhood, since his earliest learning of language, never to lie. It was an integral part of thelearning of precise speech. Once, when he had been a Four, hehad said, just prior to the midday meal at school, "I‘m starving."
Immediately he had been taken aside for a brief privatelesson in language precision. He was not starving, it was pointedout. He was hungry. No one in the community was starving, had ever been starving, would ever be starving. To say "starv-ing" was to speak a lie. An unintentioned lie, of course. Butthe reason for precision of language was to ensure that unin-tentional lies were never uttered. Did he understand that? theyasked him. And he had.
He had never, within his memory, been tempted to lie. Asher did not lie. Lily did not lie. His parents did not lie. Noone did. Unless .. - P89

Jonas reached the opposite side of the river, stopped briefly, and looked back. The community where his entire life had been lived lay behind him now, sleeping. At dawn, the orderly, disciplined life he had always known would continue again, without him. The life where nothing was ever unexpected. Orinconvenient. Or unusual. The life without color, pain, or past.
He pushed firmly again at the pedal with his foot andcontinued riding along the road. It was not safe to spend timelooking back. He thought of the rules he had broken so far:enough that if he were caught, now, he would be condemned.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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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소쉬르의 직계인 프라하학파의로만 야콥슨과의 만남을 통해서 학술적인 방법을 단련한 문화인류학자입니다. 그는 야콥슨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친족구조를 음운론의 이론 모델로 해석하는 대담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친족의 기본구조』나 『슬픈 열대』를 저술하는 등인류학의 현지조사를 통해 학문적 업적을 쌓아 올린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장 폴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5년 동안 프랑스사상계에 군림해온 실존주의에 실질적인 사망선고를 내리게 됩니다. - P153

레비스트로스가 비난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주체는 주어진 상황의결단을 통해서 자기형성을 한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상황 속에서 주체는 늘 ‘정치적으로옳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정치적 올바름‘은 마르크스주의적인역사 인식을 전제해야 한다는 단계에 이르러 구조주의는 실존주의와 결별하게 됩니다. - P159

이 일반적인 호혜 형식이 밝혀지지 않고 있었던 것은 각각의 그룹이직접적으로 상대편과 주고받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줄 상대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며 얻은 자에게 돌려주는 것도 아니다. A는 B에게 주고 다른 C로부터 받는다는 식으로 전체는 하나의 방향으로만기능하는 호혜의 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구조인류학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적 견해는 우리를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끕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보 - P179

편적인 가치관이 아닙니다. 사회집단마다 ‘감정‘이나 ‘가치관은놀라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그것들이 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방식은 단 한 가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지요. 인간이 타자와 공생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집단에 적용되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사회는 동일한 상태로 계속 있을 수가 없다‘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타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두 가지 규칙입니다. - P180

중요한 것은 이 형태가 ‘자아‘가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를 결정하기에 앞서서 사전에 허구의 계열 속에 ‘자아‘의 심급을 정한다는것이다. 이 자아는 결코 개인에 의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이런 말을 해도 좋다면 주체의 미래와 오직 점근선적漸近線的으로만합류할 수 있다. 변증법적인 종합에 의해 주체가 언젠가 ‘나‘로서 자기 고유의 실체와의 불일치를 훌륭하게 해소한다고 해도. (중략) ‘나‘와 그 상 사이에는 몇 가지 조응照應관계가 있는 까닭에 ‘나‘는 심적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자기를 깔보는 유령이나 ‘꼭두각시‘에 자기투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기능을 형성하는 것으로서의 거울 단계에서

인간은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가정하는 것에 의해 ‘나‘를 형성한다는 ‘외상‘을 깔고 인생을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나‘의기원은 ‘내가 될 수 없는 것‘에 의해 담보되어 있고 ‘나‘의 원점은 ‘나의 내부‘에 없습니다. 이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매우 위험합 - P189

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외부에 있는 것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매달려야만 간신히 자기동일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거울 단계를 통과하는 방법에 의해 인간은 ‘나‘의 탄생과 동시에 일종의 광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 P190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억압을 해제하고 증후 형식을 위한 여러 조건을 제거하며 병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어떤형태로 해결할 수 있는 정상적인 갈등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입문』에서

프로이트는 그것이야말로 정신분석의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그 본질적인 몸짓인 ‘다른 것을 드러내는‘, ‘번역하는‘, ‘이전하는‘, ‘대체하는‘ 것은 독일어 übertragen이라는 동사로 모두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일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위버트라하는 일 입니다.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억압된 기억을 되살려내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병의 원인이 되는 갈등 - P198

이 해결된다면 무엇을 생각해내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정신분석의 사명은 ‘진상의 규명‘이 아니라 ‘증의 관해解 (정신분열증의 증상이 없어지는 것옮긴이)‘ 이기 때문입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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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제도가 생성된 순간의 현장, 즉 역사적인 가치판단이 개입해서 그것을 더럽히기 전의 ‘가공 전 상태‘를 훗날 롤랑 바르트는 ‘영도(degré zéro)‘라는 학술 용어로 부르게 됩니다. 구조주의란 한마디로 다양한 인간적 여러 제도(언어, 문학, 신화, 친족, 무의식 등에서의 ‘영도의 탐구‘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지금. 여기 ·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진화해온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로부터 ‘지금‘을 향해 곧바로 흘러왔고, 세계의 중심은 ‘여기‘ 이며, 세계를 살고 경험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재판부는다름 아닌 ‘나‘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여기 • 나’를 역사의 진화에서 최고 도달점, 필연적인귀착점으로 간주하는 생각을 푸코는 ‘인간의humanisme‘ 라고부릅니다(자이중심주의의 일종입니다).
인간주의란 다른 말로 바꾸면 ‘지금여기. 나 주의가 됩니다. 푸코는 ‘지금, 여기 • 나’를 근원적인 사고의 원점으로 간주하고 거기에 편안하게 앉아서 그 시각으로 삼라만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판단하는 지의 자세를 ‘인간주의‘라고 부른 것입니다. - P87

푸코의 기본적인 생각은 지와 권력이근대사회에서 인간의 ‘표준화‘라는 방향을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표준화는 다양한 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것이 ‘신체‘ 에 대한 표준화의 압력입니다.
우리는 신체라는 것을 생리적·물리적인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서고금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기능을 하고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지각이나 신체 조직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생각합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신체 또한 ‘의미에 의해 엮여있다는 점에서 일개 사회제도에 불과합니다. - P100

신체를 표적으로 하는 정치기술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단지 신체의 지배만은 아닙니다. 신체의 지배를 통해서 정신을 지배하는것이 이 정치기술의 최종 목적입니다. 이 기술의 요체는 강제 지배가 아닙니다. 통제되고 있는 사람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의지를 토대로, 자기의 내발적인 욕망에의해 순종적인 ‘신민‘이 되어 권력의 그물코 속에 자기를 등록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이 신민을 조종하려고 할 때 권력은 반드시 ‘신체‘를표적으로 합니다. 모든 정치권력은 갑자기 인간의 ‘정신‘과 마주하고 의식 과정을 주무를 수가 없습니다. ‘장수를 쓰지 말고 말을쏘라‘ 또는 ‘정신을 통제하지 말고 먼저 신체를 통제하라‘ 와 같은것들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신체는 권력의 대상 및 표적으로서 발견되었다. 신체에 대한 조작되고, 형성되고, 훈련되고, 복종되고, 호응되고, 능력이 부여되든가 또는 힘이 다양하게 되는 그러한 대규모의 관심이 주어진 여러 특징이쉽게 발견되었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 P113

푸코가 ‘권력 비판‘의 이론을 세웠다는 식으로 결론을 짓는 것역시 그가 진정으로 원한 일이 아닙니다. 푸코가 지적한 것은 모든지의 영위가 그것이 세계의 성립이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정보를정리해서 ‘축적‘ 하려고 하는 욕망에 의해 구동되는 한 반드시 ‘권력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적혀 있는 푸코의학술적 이론도, 그리고 이 책을 포함해서) 푸코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기술되거나 소개되는 모든 저술 또한 숙명적으로 ‘권력‘ 적으로기능하게 됩니다.
현재 푸코의 저작은 전 세계의 사회과학 · 인문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며 이를 ‘공부하는 것은 제도권 내에서 거의의무처럼 되어 있습니다. 대학원생들은 푸코의 용어를 구사하고푸코의 도식에 의거해 생각하며 추론하는 것을 거의 강제적으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지‘를 낳는 ‘표준화의 압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스스로 이 역설을 예지하고 푸코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제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의 ‘의심‘ 까지도, 제도적인지‘로 의심받는 그 제도에 속한다는 불쾌함. 이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권력에 대한 반역‘을 활기차게 노래하고 있는 우둔한 학자나 지식인에 대한 모멸감. 이러한 불쾌한 일들에 조종당하 - P121

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자기언급이 푸코가 보여준 비평의핵심입니다(‘대중을 증오하는‘ 것도 니체로부터 푸코가 계승한 지적 자질의 하나입니다).
여기에 있는 이 ‘나‘는 도대체 어떤 역사를 경유하여 형성된것일까? 그것을 묻는 것이 푸코가 주장한 비판의 구조이지만, 사실그것은 자기의 눈으로 자기의 뒤통수를 보고 싶다‘ 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희망입니다. 그러나 이 불가능한 희망에 가진 재산을 모두 건 미셸 푸코의 작업은 그 무모함 때문에라도 앞으로 오랫동안 칭송받을 것입니다. - P122

이상에서 본 것처럼 기호라는 것은 어느 사회집단이 인위적으로 약속한 ‘표시와 의미의 결합‘ 입니다. 기호는 ‘표시‘와 ‘의미‘가
‘하나‘가 되어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생깁니다. 또한 ‘표시‘와 ‘의미‘ 사이에는 어떠한 자연적. 내재적 관계도 없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순전히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의 기능적 관계뿐입니다.
일례로 장기를 두려고 하는데 졸이 하나 없는 경우, 자, 이걸로 졸을 대신하지 뭐‘ 라고 말하고 귤껍질을 잘라서 장기판에 놓는다고 했을 때 장기를 두는 사람이 그 ‘약속‘에 합의를 하면 장기는계속 진행됩니다. 그러나 ‘귤껍질‘과 ‘졸‘ 사이에는 그 어떠한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결합이 없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기호‘의 본질입니다.
소쉬르는 ‘귤껍질‘과 같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표시‘를 ‘의미하는 것signifiant(시니피앙)‘으로, ‘장기의 졸의 작용‘을 ‘의미되는 것signifié(시니피에)‘ 이라고 불렀습니다. - P127

여기서 바르트가 경고하고 있는 것은 특히 ‘어떤 집단 고유의에크리튀르‘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넓은 범위를 지닌 어법이 지닌 위험성입니다.
‘징후가 없는 언어 사용‘이 바로 ‘패권을 쥔 어법 입니다. 그어법은 그 사회의 ‘객관적인 언어 사용‘ 입니다. 즉 어떤 주관적인의견이나 개인적인 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용을 말합니다. 바르트는 이처럼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어법이 포함한 ‘예단‘과 ‘편견‘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가치중립적인 어법 속에 그 사회집단 전원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다는 바르트의 생각을 보다교묘하게 활용한 것이 페미니즘 비평의 언어론입니다.
페미니즘 비평 이론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자연적인어법‘이란 ‘남성중심주의‘ 적인 어법입니다. 그것은 온갖 기호 조 - P134

작을 통해서 끊임없이 남성의 우월성과 위신을 말하고, 정치권력•과 사회적·문화적 자원을 오직 남성에게 귀속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언어 사용‘ 입니다. 따라서 남자든 여자든 ‘자연적인 어법‘으로말할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패권을 쥔 성 이데올로기‘를 되풀이해서 승인하고 찬미하게 됩니다. - P135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이처럼 ‘얽힌‘ 구조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비평의 기본원리로 제시한 것이 바르트가 텍스트 이론가로서 남긴 가장 큰 업적입니다.
텍스트와 독자는 사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매우 충격이 강한 책의 경우 마지막까지 읽은 다음 성이 - P136

차지 않아 다시 읽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읽으면서 첫번째 읽을 때 알아채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읽을 때 놓친 의미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책을한번 끝까지 읽은 덕분에 우리의 견해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즉 그 책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는 ‘읽을 수 있는 주체‘로 우리를 형성한 것은 텍스트를 읽는 경험 그 자체였던것입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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