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우리집 앞마당에는 웅장한 여러해살이 식물 화단이있었는데, 거기에는 치자나무와 히비스커스, 흰 협죽도와 플럼바고, 원추리와 향나무가 가득했다. 뒷마당의 수영장 너머에는 아보카도나무와 자카란다나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부겐빌레아와 란타나 꽃송이들, 극락조화, 붓꽃, 멕시칸 부시세이지, 재스민이 있었다. 내가 이 많은 꽃 이름을 아는건 그것들을 어머니와 함께 심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골분, 알팔파, 닭똥, 이탄 따위로 된 이상한 혼합물을 흙에 섞을 때 나는 옆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부엌에 앉아 과제를 채점하는 동안, 어머니는 내게 어디에 서야 하고 무엇에 물을주어야 하는지 부드럽게 일러주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정원가꾸는 일을 무척 중시했으며 특히 새로운 식물을 심을 때는더욱 그랬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창밖을 내다보며 우리를격려하는 말이나 가끔은 어머니에게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듯한 이상한 말을 외치기도 했는데, 그러면 어머니는 대개눈을 굴리거나 때로는 피식 웃어넘기곤 했다. - P14

그 편지는 삼 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작은 편지 묶음에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프루스트에 집착적으로 몰두했지만 내가 아는 한 그 작가를 주제로 글을 쓴 적도 없었고 수업에서그의 작품을 다룬 적도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개인적 집착이었고, 하워드 호크스와 더글러스 서크의 영화에 대한 개인적 집착과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는 항상 『스완네 집 쪽으로』가 자비로 출판되었다-모든 경비가 프루스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사실을즐겨 이야기했다. 마치 그것이 프루스트가 자신의 천재성이 - P76

나 중요성을 굳게 믿었다는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또 아버지는 프루스트가 오랜 세월 알프레도라는 이탈리아인 운전기사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나중에 아버지의 일기를 읽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어린시절에 아버지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어린 내가볼 때 프루스트에 대한 아버지의 집착은 순전히 학구적인 것이었다. 아버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지금까지 창작된 단 하나의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이라고 자주 말했다. 그리고 이 일곱 권의 책은 평생에 걸쳐 여러 번 다시 읽을 수있으며 각기 다른 나이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감상할 수있다고 했다. - P77

종신 교수직을 받지 못할 거라는 영영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사실을 알기 며칠 전에 쓴 일기에서 아버지는 슬픔에관한 프루스트의 글을 인용했다. 긴 구절이었지만 아버지가밑줄을 그은 한 문장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 스스로가 불러온 눈물을 견디기란 종종 힘든 법이다." 뒤에서 그는다른 문장도 인용했다. "우리는 고통을 온전히 경험해야만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프루스트의 인용구 사이에는 여러 모호한 단상들이 끼어들었는데, 대부분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했지만 그것을 읽을 당시에는-그때는그 일기가 쓰인 시점으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뒤였다- - P239

아버지는 서재 책상 앞 벽에 프루스트의 다음 구절을 적은작은 쪽지를 우리에게 남겼다.

진정한 낙원은 우리가 잃어버린 낙원이다.

나는 언제나 이 구절을 어머니와 나에게 남긴 사과라고, 자신이 우리를 저버렸음을 인정하는 글이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것을 완전히 다른 의미로 남겼을 가능성도 있다. - P423

나는 그녀의 말대로 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믿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점진적인 과정이었고, 다만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글쓰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글쓰기가 가장 유용했을 것이다. - P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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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호 : 로봇 인문 잡지 한편 20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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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업무를 위해서만 최소한으로 쓰고 개인적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 late adopter인데 언젠가 반려인간이나 반려동식물이 아닌 반려로봇과 함께 하는 삶을 준비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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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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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성 DJ는 단번에 읽었다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매일 퇴근 후 한 두 챕터씩 느리게 읽었다. 이랑 작가처럼 예술가가 될 수 없었지만 미치기 일보직전에도 미치지 않고 살 수 있게 해준 내 어머니에게, 그 단단함에, 그 무감함에 감사한다. 모든 미칠 수 밖에 없는, 그럼에도 미치지 않은 또는 미친 모녀들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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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정희진의 공부>에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책 『이것도 제 삶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섭식장애를 갖고 있는 (이 책과 영화의 주인공) 채영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이 여전히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채영씨가 나에게 조언한 것은PTSD로 남아 있는 그 기억들을 떠올리고 그 기억이몸의 어디로 나타나는지 증상이나 통증 혹은 자세로)느끼고 인지하는 것을 먼저 해보라는 것이었다. - P143

나는 자신의 약함을 아는 인간을 좋아한다. 약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인간이 좋다. 살아나가는 두려움을 아는 인간이 좋다. 살아갈 방법을 무언가에 의탁하지 않고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려는 인간이 좋다. 자신의 방법을 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좋다. 더 탁월한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 노력 - P205

하는 인간이 좋다. 말과 글이 좋다. 말과 글을 좋아하는 인간이 좋다. 겪지 않은 이야기로 끝없이 상상할 수있는 인간이 좋다.

나는 인간으로, 현재 존재하는 인간들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이다음을 살아갈 인간들을 상상하면서.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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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한

사람을 닮은 사람을 대신하는 기계는 언제나 많은예술가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그중에서 로봇과 사회의관계에 관해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이다. 이 영화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인공지능이 결국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활동하면서이를 저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비결정성 인공지능(Non-deterministic AI)과 에이전틱 인공지능(agentic AI)이다.
비결정성 인공지능은 같은 입력에도 서로 다른 출력을 내놓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인공지능은 확률을 기반으로 동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난수가 발생하기때문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모델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알기 매우 어려운 블랙박스이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며때로는 인공지능 환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영화에서 보듯 하나의 질문에 대해 전혀 엉뚱하고 위험 - P35

한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 현재의 인공지능이다.
에이전틱 인공지능에는 인공지능 모델, 특히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나온 결과를 시스템과 연결해 각종 명령을 실행하고 결과를 받아 수정하는 기능이 있다. 현재는 주로 클로드 코드나 제미나이 코드, 코덱스처럼언어모델을 이용한 코딩 도구에서 많이 사용한다. 이도구를 이용하면 언어모델이 만든 코드를 실행하고, 오류 코드를 받아 스스로 그 부분을 수정해서 코드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간편하게 코딩 작업이 가능하다. 아직 컴퓨터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영화에서 인공지능 울트론이 몸을 얻었던 것처럼 물리적인 능력을얻어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치지 않는다. - P36

전자영

비슷한 시기에 자기이론(autotheory)은 일인칭 주체가전면에 등장해 "작가가 직접 겪은 것을 정직하게 혹은 ‘진정성 있게‘ 재현하려고 하는 문학적 논픽션에 대한급진적인 접근 방식[91을 기치로 내건다. 이때 진정성이란 개인의 경험과 허구적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사사로운 것과 감정적인 것을 읽고 쓰는 행위에 복구시키려는 시도로 읽힌다.
자기이론은 신체에서 발생하는 경험과 개인의 피부에 새겨진 기억을 재료로 삼기 때문에 직접적이다. 그리고 이를 여러 방법론을 거쳐 비판적으로 사후 성찰해 지식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자기 인식적이다. 이렇게얻어진 지식이 삶과 예술의 작동 방식에 일정한 형태를부여하여 무언가를 설명하는 틀을 갖춘 이론이 된다.
왜 하필 ‘이론‘일까? ‘자기‘와 ‘이론‘이 나란히 쓰이게 된 것은 서구 지성사의 흐름에서 이해해야 한다. 철학은 외부 세계와 구별되어 사고할 수 있는 주체를 필 - P93

요로 한다. 사고와 행동이 그 자신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에 이 주체는 하나의 단일체다. 그러나 이론에서는주체 대신 사상이 더 중요하다. 작가 대신 텍스트가 서로를 인용하고 보완한다. 이후 이론은 높은 이론과 낮은 이론으로 갈라진다. 낮은 이론은 주체가 경험하는주관적 특수성과 지역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에서 사유한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여기에 피식민 경험을 추가한다. - P94

강민욱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때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는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새로운 존재를 경제적 관점에서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에 있다. 인공지능은 자본일까 아니면 노동일까.
지금까지는 자본을 인간이 만들어 낸 생산 수단으로, 노동은 인간의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활동으로이해해 왔다. 인공지능은 이 두 범주를 동시에 가로지른다. 인간이 설계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자본에 가깝지만,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며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는 노동의 속성을 지닌다. 만약 인공지능이수행한 판단과 생산을 하나의 노동으로 본다면, 그 대가는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 반대로 이를 자본으로 본다면, 그 수익이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는 것은정당한가. - P115

이 질문은 단순한 분류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어떤 지위를 갖는가에 따라 소득이 분배되는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보상을 정당화할 것인가. 그리고 인정과 평가를 생산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으로 이동할 때 그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술은 이미 선택의 조건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경제는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생산하는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생산의 주체로 인정할 것인가를묻는 문제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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