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귀요미가 집에 온 지 벌써 2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고양이를 키운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차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녀석 덕분에 시행착오도 많았고, 정신없게 지낸 시간들이었습니다. 고양이는 배변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화장실만 만들어 놓았다가, 다음 날 집 안 곳곳이 지뢰밭으로 변해, 현관 근처로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보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눈물어린 호소가 먹혔는지 같은 일이 발생하지는 않더군요.) . 아직 3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라 호기심도 강해 도무지 '얌체볼'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녀석을 보자면 몇 년 전 연의가 기어다닐 때로 강제 추억 소환 당하게 됩니다.
얼마 전 이웃분으로부터 고양이 육아서를 선물받았습니다. 처음 들일 때 준비부터 노령묘가 될 때가지 준비해야할 것들이 친절하게 설명된 책이었는데, 덕분에 많이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책으로 생긴 여러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중 귀요미에게는 사냥놀이 장난감이 만들어진 것이 가장 좋은 변화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고양이의 사냥 본능을 자극하는 장난감이 좋다는 말에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볼이 '고양이 샌드백'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진 상으로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표정이라 여기시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이 사진은 목욕 직후의 표정이라는 점을 감안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녀석의 표정은 다음의 사진에 담겨있습니다.
좋은 책을 보내 주셔서, 고양이 귀요미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이웃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이대로 끝내기에는 그래도 '서재'이니 아쉬움이 남기에,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두 가지 생각을 적어봅니다.
장자가 혜자와 더불어 호수 濠水 가 봇둑 위를 거닐고 있었다.
장자가 말하였다. "피라미가 나와 유유히 헤엄치고 있군. 물고기는 즐거울 거야."
혜자가 말하였다. "자네는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즐거운 것을 아는가?"
장자가 말하였다.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가?"
혜자가 말하였다. "나는 자네가 아니라서 본시 자네를 알지 못하네. 자네도 본시 물고기가 아니니 자네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야."
장자가 말하였다. "얘기를 그 근본으로 되돌려 보세. 자네가 내가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는가고 물었던 것은, 이미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네. 그래서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것이지. 나는 호수가에서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고 있었던 것이네."
莊子與惠子遊於濠梁之上(장자여혜자유어호량지상)
莊子曰(장자왈) 儵魚出遊從容(숙어출유종용)
是魚之樂也(시어지락야)
惠子曰(혜자왈)
子非魚(자비어) 安知魚之樂(안지어지락)
莊子曰(장자왈) 子非我(자비아)
安知我不知魚之樂(안지아부지어지락)
惠子曰(혜자왈) 我非子(아비자) 固不知子矣(고부지자의)
子固非魚也(자고비어야)
子之不知魚之樂(자지부지어지락) 全矣(전의)
莊子曰(장자왈) 請循其本(청순기본)
子曰(자왈) 汝安知魚樂(여안지어락) 云者(운자)
旣已知吾知之而問我(기이지오지지이문아)
我知之濠上也(아지지호상야) <장자 壯子> 외편 外篇 16 가을 물 秋水 (p420) 中
옮긴이 김학주(金學主) 교수는 해설에서 '혜자는 내가 물고기가 되어 보지 않고서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주장하는 반면, 장자는 원리란 모든 것에 적용되는 것이므로 자기로부터 미루어 남에 관한 것도 알 수 있다'고 해설합니다. 저도, 그리고 책의 저자도 고양이가 아니니 고양이의 즐거움과 슬픔 그리고 다른 감정(感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저의 처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로 맞춰 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삶의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또, <수의사와 함께하는 달콤살벌 고양이 수업> 중에는 고양이 양치질, 마사지 이야기도 나와 살짝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에게 해줄 것이 정말 많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제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고양이 운동을 시켜줘야 하는 것만큼 연의와 잘 놀아주고 있는지, 고양이 마사지를 시켜주는 것 이상으로 하루종일 고생한 아내, 부모님 어깨를 주물러 준 적은 얼마나 자주였는지...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라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주위 사람에 대한 관심을 고양이 이상으로 가져가야할 것이라는 반성(反省)도 하게 됩니다. 고양이 귀요미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하는 일요일 오전입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하루 되세요.
PS. 이 글을 다 쓴 지금도 무릎에서 잠든 귀요미를 보니, 제가 이 녀석을 고3 때 만났으면 엉덩이를 책상에서 뗄 수 없었을 것이고, 공부도 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물론, 책상 앞에 앉는다고 다 공부하지는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