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굴이나 홍합이 혹시라도 고통을 느낀다면 이들을 먹을 경우 많은 수의 생물에게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다. 굴이나 홍합 등을 먹지 않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제 나는 그들을 먹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채식이다.(p302) <동물 해방> 中
핵심은 인간 아닌 동물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이 먹기 위해 살생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도덕적으로 고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인간 아닌 동물들이 자신들이 행하는 바에 대해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거나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면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먹기 위해 살생을 하는 문제에 대해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p379) <동물 해방> 中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을 통해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은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육식(肉食)과 채식(菜食) 중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다른 동물들을 생각해서 채식을 할 것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채식을 한다는 것은 음식문화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이러한 음식문화의 변화를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 또는 윤리의 문제로만 넘길 수 있을까? 이번 페이퍼는 이러한 물음으로부터 출발해 본다.
단백질에 대해 알아야 할 두 번째 사항은 고기가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고기가 비싸다는 정도라는 점이다.(p312)... 서로 다른 종의 식물성 단백질을 동시에 먹을 경우 동물성 단백질과 완전히 같은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단백질 상보효과(protein complementarity) - <동물 해방> 中
피터 싱어는 위와 같은 내용을 통해 단백질 제공원이 동물인가 식물인가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1927 ~ 2001)의 관점은 이와 다르다. 인간 수명이 길어진 것이 육식(肉食)에 의한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다 높게 보고, 육식 선호의 문화사(文化史)를 인류의 합리적 결정의 결과물로 판단하고 있다.
동물성식품이 필수적인 단백질과 미네랄, 비타민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수명이 길어진 것이 완전히 다른 요인들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경솔한 일이 되지 않을까? 동물성식품에 몸에 해롭다고 생각되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긴 하지만 동물성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가져온 유리한 결과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여 그 영양가를 더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p52)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영양과다보다는 영양부족이 더 일차적인 문제인 제3세계에서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고기와 생선, 닭고기류, 그리고 낙농제품의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유량을 낮추지 않아도 동물성식품이 식물성식품에 비해 영양학적으로 확실히 유용하다. 따라서 더욱 많은 고기와 생선, 닭고기, 우유에 대한 계속되는 세계의 열망은 인간의 생리와 두 가지 식품의 영양학적 구성과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완전히 합리적인 선호를 보여주는 것이다.(p52)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마빈 해리스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g : Riddles of Food and Culture>를 통해 서로 다른 자연환경이 다양한 음식문화를 만들었으며 서로 다른 체질(體質)을 형성했음을 보이고 있다. 가령 서유럽에서 개를 먹지 않은 이유는 개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먹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중국인들은 우유를 먹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젖당못견딤증(lactose intolerance 선천적으로 젖당 lactose 을 분해하는 효소 부족 증상)이 많은 체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해리스에 의하면 전통 음식은 영양분을 공급할 최적의 공급원이 식재료로 활용되고 이로 인한 서로 다른 문명권간 체질 차이도 설명할 수 있다. 해리스에게 서로 다른 환경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서유럽인들은 개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애완동물이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개가 육식동물로서 비효율적인 고기 공급원이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다. 서유럽인들은 다른 동물성 식품 공급원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개는 그 고기와 송장보다 훨씬 가치있는 많은 서비스를 살아서 제공한다.(p212)... 중부 멕시코에는 폴리네시아처럼 사냥할 만한 큰 육지동물이 실제로 거의 없었다. 멕시코인들은 사냥하기 위해서 개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다른 북미 원주민들처럼 가축이라고는 개와 칠면조뿐이었기 때문에 오직 고기를 위해서만 개를 필요로 했다.(p220)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중국인들은 그들이 락토우즈 과민이기 때문에 우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유를 무시했기 때문에 락토우즈 과민이 되었다... 이는 극동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의 환경이나 생활방식으로 인해 칼슘이나 혹은 다른 영양소를 얻기 위해 우유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다는 것을 의미한다.(p177)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이러한 다른 환경으로부터 초래된 문화적 차이, 신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피터 싱어는 우리에게는 다양한 선택(選澤)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윤리(倫理)의 기준으로 육식을 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택권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라고 볼 수 있을까?
식량이 풍부한데도 굶주림이 존재하는 것은 제3세계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50년대 이래로 식량생산 증가분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 가장 굶주린 나라들조차도 당장 국민들에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양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다. 굶주림이 만연한 나라들에서는 농업 관련 상품의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훨씬 많다. 서구국가들이 주로 식량을 수입하는데, 이들의 수입량은 1992년 전세계 수입식량 총액의 71.2%를 차지한다.(p25) <굶주리는 세계> 中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역설적으로 굶주림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육식과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위 선진국(先進國)이라고 하는 몇몇 나라의 국민에 한정된 권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에 곡물/채소로 전환된 수요는 별다른 문제 없이 충족될 수 있을 것인가? 1990년대 녹색 혁명이 가져온 효과를 보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비료, 농약, 관개시설, 기계를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 제3세계 국가에서는 녹색혁명으로 발생한 이익이 모두 그 나라를 빠져나간다.(p132)... 제3세계 국가의 농업이 점차 얼마 되지도 않는 외환으로 수입물을 구매하는 데 의존하게 되면서, 농촌의 빈곤은 환율 변동, 달러 보유고, 인플레이션에 더욱 큰 영향을 받게 됐다... 녹색혁명은 앞으로도 농민들과 국가 전체를 소수의 기업 공급자들에게 더욱 의존하도록 만들 것이 분명하다.(p133) <굶주리는 세계> 中
비록 현재 생산되고 있는 많은 곡물이 가축 사료로 사용되기에 육식이 줄면 필요 곡물량도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필요곡물량이 한순간 급감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많은 곡물회사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곡물을 비롯한 식량생산량을 증대시킬 것이고 여기에 많은 자원이 몰릴 것이다. 그렇다면, 채식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불균형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육식이나 채식을 어느 일방의 기준을 적용해서 선(善)과 악(惡)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피터 싱어가 지적한대로 현재 공장제 사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분명 개선되어야겠지만, 경제적/문화적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고 흑백논리를 통해 '육식은 나쁜 것'이라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모든 문제는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사진] 태국과 한국의 자연환경과 음식(by 겨울호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