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논술과 철학강의 1>은 역사를 중심으로 논술과 철학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책의 앞부분은 한국 현대사의 대강이 다루어지는데, 이 중에서 4.3 제주민중항쟁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내용을 옮겨본다. 


 1. 제주  4.3


[사진] 제주 4.3 (출처 : https://www.ytn.co.kr/_ln/0103_201804031304184899)


 저자는 본문에서 제주 4.3이 일어난 배경으로 육지와 고립되었지만,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지식인들의 비중이 높았던 제주만의 특징을 언급한다. 해방 이후 여운형(呂運亨, 1886 ~ 1947)의 주도하에 조직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활동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곳이 제주도였다.


 제주도는 지정학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덕분에 미군정의 지배가 직접적이질 못했고 인민위원회가 상대적으로 뿌리를 깊게 박아 1948년까지 섬을 장악하고 있었고... 제주도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일본 본토문명과 매우 긴밀한 연락관계를 유지했으며 상당한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이주하여 재일교포사회를 형성했다. 일제 시대를 통하여 농민들의 자립도가 비교적 높았으며, 분화된 직업구조가 본토의 문화와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으며 적색농민조합의 조기 형성은 해방 후 인민위원회의 성장에 이상적 환경을 제공했다.(p79)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이러한 환경에서 서북청년단이 제주도 내에 들어오면서 제주도민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고, 이후 초토화((焦土化; Scorched eart) 작전을 통해 제주도는 철저하게 파괴되기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제주에서의 유혈참극은 한국전쟁 종료 후인 1954년 9월까지도 계속되는데, 그 사이 기간 일어난 사건이 바로 여수,순천 사건이다.


 2. 여수, 순천 사건과 박정희


 이러한 제주도의 인민위원회를 뿌리뽑기 위해 전후 아시아에서 가장 잔인하고, 지속적이며, 철저한 소탕작전이 감행되었던 것이다. 그것의 직접 도화선이 된 것은 서북청년단의 학살만행이었다... 서북청년단의 이유없는 양민학살에 대항하여 제주도 인민들은 6년 6개월에 걸친 끈질긴 항쟁을 계속했다.(p80)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제주 4.3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명령을 받은 14연대는 항명(抗命)하게 되고, 이를 통해 군대 내 남로당(南勞黨) 조직이 있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군대 내 남로당 조직의 숙청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박정희(朴正熙, 1917 ~ 1979)'다. 


 여순항명사건이란 바로 제주도 민중항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여수 주둔 14연대의 반란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도 약 1만 명의 양민 희생자가 났고, 여수읍의 절반이 소실되었고 인근 지역의 수백 개의 마을이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p80)... 14연대의 반란은 남한의 군대 내에 엄청난 공산당 조직이 침투되었다는 사실이 청천백일 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국군 내에 거대한 숙군의 회오리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p81)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3. 이어지는 폭력과 5.18 민주화 운동


 박정희 소령은 전남 광주의 여순항명토벌사령부로 갔다가, 1948년 11월 11일 남로당 가입등의 죄목으로 군 수사당국에 체포되었다... 그의 구명 운동에 앞장 선 사람은 백선엽 육본 정보국장이었다... 박정희는 군조직 내 좌익세포들의 상세한 명단을 제공했다. 같은 조직의 동료들의 죽음의 대가로 그는 목숨을 건졌던 것이다.(p82)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박정희는 이 사건으로 사형에 처해질 뻔 했으나, 남로당 간부들의 명단을 제출하는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의 만주군(滿州軍) 출신 인맥이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여겨진다.


 박정희의 생애의 최후 일단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삶의 폭력성이다. 우적인 전향이 오직 이 땅의 경제도약을 위한 몸부림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경제발전이 그의 유신치세기간의 모든 폭력성을 정당화할 길은 없다.(p93)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저자는 박정희의 비극을 그의 '폭력성'에서 찾는다. 인간 박정희의 비극은 대통령이라는 그의 위치 때문에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 않았다. 10.26에 의해 그가 사망한 후에 그 폭력성은 후계자 '전두환'으로 이어졌고, '광주'에서 그 폭력은 잔악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5.18 광주민주항쟁은 그 기나긴 폭력의 역사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가장 악랄하며 가장 의도적이고 가장 조작적인 사건이었다. 그 폭력의 주체는 소위 박정희의 정군운동의 맥을 잇는다고 자부하는 신군부였으며, 신군부의 대표주자는 전두환이었다. 다시 말해서 박정희라는 역사적 개인의 모든 가치관의 역사적 화신이었던 것이다.(p94)<논술과 철학강의 1> 中


[사진] 5.18 민주화운동 (출처 : https://news.joins.com/article/22633539)


 한미연합사령관은 20사단의 작전통제권 이양을 요청하자,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Your request is approved). 미국의 허락없이는 움직일수 없는 20사단을 광주코뮨분쇄작전에 사용한 것은 미국의 한국이해의 전형적 한계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그것은 해방 후 인민위원회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미군정의 행동패턴과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다.(p97)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논술과 철학강의 1>에서는 위와 같이 제주 4.3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관계를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연결시킨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저자의 최근작인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 4.3과 여순민주항쟁>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논술과 철학강의 1>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 논술책이라는 한계로 더이상의 현대사를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의 짧은 요약본만으로도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을 잡기에는 무리없는 내용이라 여겨져 이를 정리해서 옮겨본다. 덧붙여, 저자의 입장이 너무 편향되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는 이들에게, 같은 책에 있는 북한 비판 내용도 함께 소개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나 도올이 생각하기에, 6.25 한국전쟁이 저지른 최악의 죄악은 독립을 향한 20세기의 찬란한 거족적 항일투쟁의 모든 가치를 무화(無化)시켰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에 있다.(p58)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그토록 피눈물나게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일본민족과 싸웠던 조선의용군과 광복군들이 관동군이 아닌, 바로 해방의 주체인 자신의 동포혈육을 찔러 죽여야만 했던 역사를 과연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있을 것인가? 김일성은 1953년 7월 28일 평양광장에서 "조선인민의 승리"를 선언했지만, 그것은 실질적으로 "조선인민 전체의 전면적 패배"였다.(p59)...1950년 6월 25일부터 전개된 역사에 대하여 김일성은 책임을 모면할 길이 없다. 그는 분명 성급했다.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정확한 판단능력을 결했다.(p61) <논술과 철학강의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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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5: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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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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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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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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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 바로 쓰기 2 우리 글 바로 쓰기 2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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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문일치‘는 어디까지나 ‘글‘이 ‘말‘을 따라가는 것이며, 우리 말은 어린이가 쓰는 말이 가장 우리 말다운 말이다.-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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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5: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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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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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16: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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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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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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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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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통령, 군인, 과학자로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반면 요즘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 1위가 연예인, bj, 크리에이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업화 시대‘에서 ‘대중 문화 시대‘로 바뀌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전 이웃분으로부터 딸아이 선물로「프리파라」책을 선물받았습니다. 저는 잘 몰랐지만, 이미 아이와 엄마에게는 유명한 캐릭터였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이돌이 세계 각지에서 라이브 공연을 통해 ‘좋아요‘를 모으고,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제게는 낯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1인 방송과 sns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접하면서 성장하는 아이에게는 그렇게 낯설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은 그 외에도 「페어리루」가 있는데, 이 책 역시 딸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보면 이제는 연예인이 대세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어렸을 때 나온 만화영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에서도 여주인공 린 민메이가 있었습니다만, 극중 가수로 나온 이 인물의 극중 비중이 크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많은 변화가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민메이는 최후의 결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만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외에도 요즘 아이들의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됨을 느끼게 됩니다. 선물을 보내주신 이웃님께 감사드리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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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08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에는 아이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가 많죠. 그렇다보니 아이돌 만화에 참여한 여성 성우가 아이돌 가수로 활동하는 일이 있어요. 아이돌 가수와 똑같이 팬들을 위한 공연도 하고요. 작년에 일본 만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일본 만화 시장에 대해서 조금씩 알게 되었는데요, 지금도 그렇고 일본 만화 시장은 신세계입니다... ㅎㅎㅎㅎ 그 곳의 문화가 낯설어 그런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있어요. ^^;;

겨울호랑이 2019-04-08 07:2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cyrus님 말씀을 들으니 일본 애니매이션 시장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네요. 애니메이션과 여기서 파생되는 다른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태인 2019-04-08 0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린 민메이 추억의 그 이름.작화가 굉장히 예뻤던 기억이 나네요...좀 옛날스러운 작화기는 했지만

겨울호랑이 2019-04-08 09:38   좋아요 1 | URL
^^:) 네 그렇습니다.SF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은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그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80년대 만화다보니 지금 보면 느낌이 예전만 못해도, 좋은 추억을 가져다 준 만화로 기억됩니다.^^:)

2019-04-11 16: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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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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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5: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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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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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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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0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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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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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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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데트 드 크레시의 이미지가 그의 모든 몽상을 흡수해서는, 그 몽상이 그녀의 추억과 더 이상 분리되지만 않는다면 그때 그녀의 육체적인 결함이나 그녀 육체가 다른 여인보다 스완의 취향에 더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육체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의 육체이므로 이제부터는 오로지 그 육체만이 그에게 기쁨과 고뇌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p29)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마르셀 프루스트(Valentin Louis Georges Eugene Marcel Proust, 1871 ~ 1922)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 Du Cote de chez Swann>는 2부 스완의 사랑과 3부 고장의 이름 -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속에서 우리는 음악으로 표현된 사교계의 명사인 스완과 화류계 여성인 오데트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아마도 우리가 듣는 음은 그 높이와 부피에 따라 우리 눈앞에 있는 다양한 차원의 표면을 감싸고 아라베스크 무늬를 그리며 우리에게 넓이, 미묘함, 안정감, 변화에 대한 감각을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음은 뒤이어 또는 동시에 나타나는 음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이들 감각이 우리 마음속에 충분히 형성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절들의 복사본을 만들어 그것들을 다음에 오는 악절들과 대조하고 구별하게 하도록 해 주지 않는다면, 그 '액체성'과 '뒤섞임'으로 계속 모티프들을 감쌀 것이고 그리하여 모티프들은 거의 식별할 수 없는 상태로 이따금 솟아오르다가 이내 가라앉고 사라지면서 그것이 주는 특별한 기쁨에 의해서만 지각될 뿐 묘사할 수도 기억할 수도 명명할 수도 없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된다.(p4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음악은 스완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교의 공간인 살롱에서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는 밀려드는 바닷가의 파도처럼 스완의 귓가를 밀려들고, 스완의 감정은 이로인해 요동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에서 음악은 감정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데, 이러한 음악의 기능을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의 <헤겔미학 Vorlesungen uber die Asthetik>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회화의) 예술작품들은 스스로 존재하는 객체로 머물며, 우리는 그것들을 관조하는 상태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음악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없어진다. 음악의 내용은 즉자적이며 주관적이고 또한 공간 속에서 지속되는 객관성으로 외화되지 않고 부단히 자유로이 진동함으로써 그 자체가 하나의 전달이 된다.... 따라서 음은 외적으로 외화되더라도 바로 그것이 외화되기 때문에 곧 다시 사라진다. 즉, 귀가 음을 포착하자마자 그 음은 다시 침묵하고 만다. 이때 생기는 인상은 곧 내면화된다. 음은 그 이념적인 주관성 속에서 포착되고 움직이는 가장 깊은 영혼 속에서만 여운을 남긴다.(p349) <헤겔미학 3> 中


 다른 예술 표현과 구분되는 음악(音樂)의 특징은 일회성의 예술 또는 순간 예술이라 하겠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을 저장할 수 있게된 지금은 또 달라졌지만, 헤겔이나 프루스트가 살던 시기의 음악은 연주되는 순간 휘발(揮發)성이 강한 예술이었다. 헤겔의 설명에 따르면 청자(聽者)에게 들리는 그 음은 바로 내면화되며, 이로서 음악은 청중의 감정에 보다 잘 접근하는 수단이 된다.  


 처음에 그는 악기에서 흘러 나오는 음의 물질적인 질감밖에 음미하지 못했다. 그러다 가느다랗고 끈질기고 조밀하며 곡을 끌어가는 바이올린의 가냘픈 선율 아래서, 갑자기 피아노의 거대한 물결이 출렁거리며 마치 달빛에 흘려 반음을 내린 연보랏빛 물결처럼, 다양한 형태로 분리되지 않은 채 잔잔하게 부딪치며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p45)... "사물이 밝아지는 것이 더 잘 보이도록 <월광> 소타나는 어둠 속에서 연주해야 합니다. 어떤 불빛도 없어야 합니다."(p17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작품 속에서 스완은 처음에 음악에 쉽게 동화되지 못했으나, 일단 음악이 마음으로 들어오자, 그는 음악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작품 속에서 스완과 오데트의 사랑은 음악을 매개로 표현되는데, 이는 스완의 오데트에 대한 사랑이 순간적이고 감정적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스완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오데트 자신이 아니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예술픔으로 우리를 향하게 하는 이 막연한 공감은 이제 이드로 딸의 관능적인 원형을 알게 되자 욕망이 되었고, 오데트의 육체가 처음에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욕망을 대신했다. 그는 보티첼리의 그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그림보다 더 아름답게 여겨지는 자신의 보티첼리를 생각했고, 또 제포라의 사진을 몸 가까이로 끌어당기며 마치 오데트를 품에 안은 것처럼 생각했다.(p7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그는 이드로 딸의 복제화를 마치 오데트의 사진인 양 자신의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그는 커다란 눈이며 불완전한 피부를 짐작케 하는 섬세한 얼굴이며, 피로한 뺨을 따라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그 멋진 웨이브를 찬미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까지 미학적인 방식으로 아름답다고 여겨 오던 것을 한 살아있는 여인에게 적용해 육체적인 장점으로 변형했고, 그리하여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존재와 결합된 것을 보고는 기뻐했다.(p7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그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출처 : en.wikipedia.org/wiki/The_Birth_of_Venus]


 스완이 사랑한 것은  현실의 오데트가 아닌 그가 이상(idea)으로 생각한 보티첼리 그림의 현현(顯現)으로서의 오데트였다. 스완은 오데트 보다 그녀의 복제화를 바라보기를 더 좋아했으며, 이를 소유했다는 사실에서 기쁨을 느꼈다. 이러한 스완의 사랑을 오데트에 대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스완의 철학은) 그들이 열망하는 대상을 객관화하는 대신, 흘러가 버린 세월로부터 어떤 습관이나 정열의 굳어 버린 잔재를 추출하여, 그 습관이나 정열을 그들 불변의 성격으로 간주하고는, 그들이 택하는 생활 방식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다른 무엇보다도 주의하는 철학이었다.(p16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이제까지 '내가 행복했던 시절' '내가 사랑받던 시절'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쓰면서도 별로 괴로워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지성이, 소위 과거의 본질이라고 부르면서도 실은 과거 그 어떤 것도 보존하지 않고 단지 요약된 부분만을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이 잃어버린 행복의 특별하고도 증발하기 쉬운 본질을 영원히 고정해 놓은 것들을 모두 되찾을 수 있었다.(p27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스완의 사랑은 오데트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상(像)에 대한 사랑이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깎여나가지 않는 것을 불변의 요소(elements)로 생각하고 이를 열망하는 스완의 모습에서 <헤겔미학> 속의 '회화(繪畵)'의 특성을 유추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고려할 점은 회화는 삼차원의 공간적 총체성을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이 축소가 완전히 이루어질 때 서로 곁에 서 있는 것 같은 불안(Unruhe-in-sich)이 일 수도 있다. 이처럼 시종일관 부정(否定)되어 가면서 생기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그에 반해서 회화는 공간적인 것은 아직 존재하게 놓아두고 단지 삼차원 가운데 한 차원만을 제거하여 평면으로 축소하여 이를 표현요소로 삼는다. 이처럼 삼차원이 평면으로 축소되는 것은 내면화 원리(Prinzip des Innerlich-werdens) 안에 이미 들어 있다. 이는 공간 속에서 외면성을 외적인 총체성으로 존속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제약함으로써만 표현해낼 수 있다.(p249) <헤겔미학 3> 中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차원 축소를 한 예술이 회화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시간의 차원에서 물질의 특성을 깎아내고, 현실에서 이상의 요소를 끌어내려한 스완의 사랑을 연결짓는 것이 그리 무리한 작업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그의 사랑은 육체적인 욕망의 영역 너머까지 확산되어 갔다. 그곳에서는 오데트라는 인간마저도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p209)... 그녀는 그녀라는 이삼인칭 대명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사랑이나 죽음과도 흡사하지만 막연한 닮음이라기보다는, 그 실재가 우리로부터 빠져나갈까 두려워 여러 번 되풀이해서 말하는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깊이 질문하게 하는 인격의 신비로움과도 같은 것이었다.(p2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2부 스완의 사랑에서는 스완의 사랑과 함께 스완의 철학적 물음도 접하게 된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의 방법론적 회의 전통을 따라 전기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의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와 동일한 결론 -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에 이른듯한 스완의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철학적 고민도 나눌 수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 앞에 존재하는 어떤 실제적인 물건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듯, 예컨대 램프에 불이 켜져 방 안 물건이 완전히 변모하여 어둠의 기억마저 방에서 빠져나간다해도 우리가 그 불빛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듯이, 그 개념들을 알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p27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난 내가 이미 아는 것밖에는 말하지 않소.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안다오.(p29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언표될 수 없는 대답에 대해서는 물음도 언표될 수 없다. 수수께끼는 존재하지 않는다.(6.5)... 의심이란 오직 물음이 존립하는 곳에서만 존립할 수 있고, 물음이란 대답이 존립할 수 있는 곳에서만 존립할 수 있으며, 또 이 대답이란 어떤 것이 말해질 수 있는 곳에서만 존립할 수 잇기 때문이다.(6.51)... 삶의 문제의 해결은 이 문제의 소멸에서 발견된다.(6.521)...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드러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6.522)...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7) (p117) <논리-철학 논고>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2> 3부는 고장의 이름 - 이름이다. 사실, 이 부분은 아직 정리가 미처 되지 않아 올리기 주저했으나 몇 가지 고민을 일단 던져보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3분에서는 '말-사물'의 관계와 '생명력'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이와 관련하여 먼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의 <말과 사물 Les Mots et les Choses>를 먼저 살펴보자.

 

 사물 자체가 언어처럼 수수께끼를 감추고 드러내기 때문에, 언어는 세계 속에 자리하고 세계의 일부분을 이룬다. 자연을 인식하기 위해 펼치고 한 자씩 더듬거리며 읽는 책이라는 주요한 은유는 언어를 세계 곁에, 가령 나무, 풀, 돌, 동물 사이에 존재하도록 속박하는 훨씬 더 심층적인 또 다른 전이(轉移 transfert)의 가시적 이면일 뿐이다.(p70) <말과 사물> 中


 그 장소들은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이름, 인명과도 같은 이름으로 지칭됨으로써 얼마나 많은 개별성을 획득했던가! 말은 사물에 대해  분명하고도 친숙한 이미지를 제시한다.(p34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말과 사물>에서 말은 사물을 명확하게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는 푸코의 주장을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다만, 아직까지 이름과 관련한 내용을 이후 쉽게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다음 편으로  일단 넘긴다.


 나무들은 계속해서 그 자체의 생명력만으로 살고 있어, 잎들이 이미 떨어지고 없어도 그 생명력은 나무줄기를 감싼 초록색 벨벳 나무껍질 위나, 포플러 나무 꼭대기 여기저기에 뿌려진 겨우살이의 구체(球體)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그려진 태양과 달처럼 동그란 -를 감싼 하얀 투명체 안에서 더욱 밝게 반짝였기 때문이다.(p40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3분에서는  사물(또는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된다. 이에 대해서 베르그손(Henri-Louis Bergson, 1859 ~ 1941)의 엘란 비탈(Elan Vital))이 연상되지만. 명확하게 내용상으로 연결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본문에서 인용하지는 않는다. 다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에서의 '나무'의 이미지가 <말과 사물>의 '지식의 체계화'와 '생명력' 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포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표시하고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16세기 말엽이나 그다음 세기의 초반 몇 년 사이에 출현하는 백과사전의 기획은 이로부터 유래하는데, 이는 알고 있는 것을 언어는 중립적 요소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 자체를 말의 연쇄와 그 공간적 배치로 재구성하려는 기획에 해당한다... 다수로 분기된 나무의 형태에 따라 지식을 공간화하기에 이르는 크리스토프 드 사비니에게서도 이러한 기획이 엿보이며...(p74) <말과 사물> 中


 나는 주변 사물들의 무감각과 고독, 그리고 폐허 한가운데에서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우리 우정의 생명력과 미래에 좀 더 많은 믿음을 품게 되었다.(p359)... 나는 이 새로운 기쁨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줄 몰랐다. 그 기쁨은 내가 사랑하는 소녀로부터 그 소녀에 지나지 않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질베르트에 대한 추억도 확고한 마음도 가지지 못한 '또 다른 나'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p367)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를 통해서 스완의 사랑은 음악을 통해 감각적으로 진행되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오데트가 아닌 자신의 이상형이었으며, 그런 스완의 사랑은 회화적인 면이 있음을 발견한다. 또한, '말-사물' 속에서 언어와 언어가 지칭하는 대상 사이의 관계, 그리고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다음 권으로 넘어가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게 된다...



PS.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 ~ 1827)의 <월광(月光, Moonlight) 소나타>가 울리는 가운데, 진행된 스완의 사랑이지만 그의 사랑은 <月亮代表我的心> 같은 감미로움은 없는 듯하다.


?問我愛?有多深,我愛?有幾分。

당신은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我的情也?,我的愛也?, 月亮代表我的心。

나의 마음도 진짜입니다. 나의 사랑도 진짜입니다.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


?問我愛?有多深,我愛?有幾分。

당신이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我的情不移,我的愛不變,月亮代表我的心。

나의 마음은 떠나지 않습니다. 나의 사랑은 떠나지 않습니다.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합니다.


輕輕的一個吻,已經打動我的心。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이미 내 마음은 열렸습니다.


深深的一段情,叫我思念到如今。

깊고 깊은 마음에, 날 지금까지 그리워하게 만들었습니다.


?問我愛?有多深,我愛?有幾分。

당신은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去想一想,?去看一看,月亮代表我的心。

저 달빛을 보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달이 내 마음을 보여줍니다.


輕輕的一個吻,已經打動我的心。

부드러운 입맞춤으로 이미 내 마음은 열렸습니다.


深深的一段情,叫我思念到如今。

깊고 깊은 마음에, 날 지금까지 그리워하게 만들었습니다.


?問我愛?有多深,我愛?有幾分。

당신은 나에게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습니다.


?去想一想,?去看一看,月亮代表我的心。

저 달빛을 보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달이 내 마음을 보여줍니다.


?去想一想,?去看一看,月亮代表我的心。

저 달빛을 보며 한 번 생각해보세요. 달이 내 마음을 보여줍니다. [가사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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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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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되는 순간 사라지는 피아노곡과 사랑. 스완의 에바 페론 오데트. 시각, 청각, 촉각으로 돌아보는 과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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