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From Ideologies to Public Philosophies>에서 폴 슈메이커 (Paul Schumaker)는 다양한 정치사상을 12가지로 구분하여 존재론, 인간론, 사회론, 인식론 등의 철학적 가정과 정치 공동체, 시민권, 사회구조, 권력의 보유자, 정부의 권위, 정의, 변화 등 정치적 원리에 대해 살펴본다. 4가지 철학적 가정과 7가지의 정치적 원리를 더해 11가지 주제에 대해 12개 사상의 입장을 제시되기에 도합 132개의 항목으로 구분된다. 때문에, 페이지 수는 많지만 내용의 깊이는 깊지 않아 이 책은 방대한 양의 입문서(入門書)라 볼 수 있다. 단적으로 '정치사상의 애니어그램(Enneagram)'이라고 느껴지는 책이다.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은 19세기의 주요 정치 이념인 고전적 자유주의, 전통적 보수주의, 아나키즘, 마르크스 주의가 제시되는데, 이들은 20세기 이후 다른 사상들의 원류(原流)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고전적 자유주의와 전통적 보수주의는 우리에게 프랑스 혁명을 둘러싼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과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 1797)의 논쟁으로 특히 주목을 받는다. 이들의 논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페인의 <인권 Rights of Man>과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의 리뷰에서 살펴볼 예정이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들의 논쟁과 관련하여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폴 슈메이커에 의하면 전통적 보수주의는 종교(宗敎 religion)에 기원을 둔다. 특히 기독교 신(神)의 절대성에 의존한 사상으로, 절대선이며 완전한 신의 질서가 사회에서 구현되는 것을 우선에 두는 사상이다. 때문에, 전통적 보수주의에서는 강력한 종교(교회)제도와 정치제도의 권위, 사회 안정 추구를 강조한다.


 전통적 보수주의자 Conservatism들은 이성과 과학만으로는 신, 영혼, 도덕의식, 정치 공동체의 여러 미묘한 측면과 같은 문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궁극적 실재(존재)나 인간 본성 그리고 사회 등의 문제에 대해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제시한 이른바 과학적 구성 방식보다 전통적 이해 방식이 나라를 다스리는 좀 더 훌륭한 방법이라고 보았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를 공익을 위한 방향으로 인도하려면 강력한 정치/종교적 권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가장 일반론적으로 말해, 전통과 사회 관습을 존중하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p104)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中


 이에 반해, 고전적 자유주의는 이성(理性 reason)에 기반한 정치사상으로 권위보다는 민주 자본주의를 강조하는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그 결과 전통적인 교회 등의 전통적 권위보다 추상적인 개념인 자유, 평등, 형제애 등의 이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고전적 자유주의 classical Liberalism는 '정치의 과학'을 개척하려 했던 계몽주의의 산물이었다. 당시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전통이나 종교적 신앙에 기댄 채 정치사상을 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p97)... 고전적 자유주의자는 신이 존재한다거나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신이 이 세상을 완전히 좌지우지한다고는 보지 않았다.(p97)... 자유주의 사상은 17세기부터 19세기 사이에 그 당시 유럽이 직면한 여러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되었다. 특히 사업가와 상인, 정치적 권리와 자유의 옹호자, 계몽주의 지성인들이 진보적이고 과학적이며 산업화된 유럽 사회를 지향했다.(p97)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中


 페인과 버크의 논쟁은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1790년 버크의 비판 이후 1791년과 1792년 페인의 두 차례 반박으로 진행되었다. 보수주의자인 버크는 신의 뜻에 따라 영국의 입헌군주제는 잘 작동하는데 반해, 프랑스 혁명과 이들이 추구하는 (국민회의의) 민주정이 잘못된 정체임을 비판한다. 이에 반해, 페인은 세습군주제야 말로 자연의 법칙에 들어맞지 않은 제도이며, 프랑스 혁명은 공화정을 추구하는 자연법칙에 맞는 사건임을 말하며 버크의 주장에 반박한다. 이들의 대립의 단면을 살펴보자.


 이들의 대립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버크는 헌법(constitution)이 종교의 기반 위에 만들어진 것이며, 종교는 신의 권위를 대변하는 것이니만큼 이 권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왕/귀족/성직자에 의한 지배를 거부하는 프랑스 혁명은 말 그대로 하늘의 뜻(天命)에 거역하는 사건이다. 역성혁명(易姓革命) 불가. 버크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해본다.


  우리 헌법 전체가 종교와 신앙심의 후원 아래 만들어졌으며, 그 재가를 얻어 확실해졌다. 그 전체가 우리 국민성의 단순성에서 연유했으며, 우리의 분별력에서 보이는 일종의 태생적인 담백함과 솔직함에서 연유했다. 오랫동안 그러한 성격이 우리 사이에서 연속해서 권위를 얻은 인물들의 특성이 되어왔다. 우리는 종교가 문명 사회 civil society의 기반이며 모든 선과 모든 안락의 근원임을 알고 있다.(p162)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中


 이에 반해, 페인의 입장은 다르다. 과거 사건의 결과 만들어진 제도와 정체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다른 시대에 맞는 제도를 선책할 권리가 각자에게 있다는 것을 페인은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반 위에서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을 극복한 프랑스 혁명은 이성의 승리로 추앙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페인은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후손을 영원히 구속하고 제약할 수 있거나, 세계를 누가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를 영원히 주관할 수 있는 권리와 권력을 갖는 의회나 인간이나 세대는 지금껏 어느 나라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런 존재는 있을 수 없다.(p94)... 세상의 상황은 계속해서 변하고, 인간의 생각도 변한다. 그리고 국가는 산 자를 위한 것이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오직 산 자 만이 그 안에서 권리를 가진다.(p99) <인권> 中


 이들의 의견은 이외에도 곳곳에서 부딪히지만, 최근(2019년) 우리의 경우, 사법부와 관련된 내용이 정치현안으로 뜨겁기에 이에 해당하는 내용을 추려본다. 먼저 보수주의자 버크의 사법부에 대한 의견을 살펴보자. 버크는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행정권인 왕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갖춰야 함을 말한다. 이를 위해 비록 사법부의 세습제가 일정 부분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전통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고등법원의 구조는 하나의 근본적인 탁월성을 지녔는데, 독립성이 그것이다. 그 기관에서 가장 불신되는 사안인 관직매매도 독립성에 기여했는데, 그 직책은 종신제였다. 실상 세습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국왕이 임명하지만, 거의 국왕 권한 밖에 있다고 여겨졌다. 고등법원들은 자의적 변혁에 저항하는 구조를 지녀 항구적 정치조직을 구성했다... 국가에서 최고권력은 사법권을 가능한 한 그 권력에 의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형태든 그와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최고 권력은 사법부에 대해, 자신의 권력에 의해서 침해되지 않을 보증을 제공해야 한다. 사법부를 마치 국가 외부에 있는 것처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p323)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中


 그렇지만, 페인의 입장은 명확하다. 세습제는 자연 법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습제가 전통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수용할 것인가? 세습제는 인민을 개, 돼지와 같이 재산으로 간주하는 개념이기에 철폐해야 할 것으로 페인은 해석한다.


 모든 세습적 국가는 그 본질이 전제에 있다. 세습 왕관, 세습 왕위, 또는 그 밖의 어떤 허황된 이름으로 불려지든, 인류를 세습할 수 있는 재산으로 간주한다는 것 외의 다른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국가를 세습한다는 것은 마치 가축을 세습하는 것처럼 인민을 세습하는 것이다.(p250)... 만일 미덕과 지혜가 변함없이 세습적 계승의 특성이 되는 것이 자연법칙이 되고 하늘의 명령으로 등록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세습제에 대한 반대도 없어지리라. 그러나 자연은 세습제를 용납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우롱하는 듯 작용한다.(p251) <상식, 인권> 中


 이외에도 많으 논의가 두 권의 책에서 이루어지지만, 페이퍼에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어 여기에서 그친다. 조금 들어간 내용은 각각의 리뷰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우리나라 사법기관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오늘날 사법개혁이 요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 역시 세습제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 대표적 사법기관인 사법부와 검찰은 선출되지 않는 권력임에도 견제없이 자신들의 권한을 행사해오고 있다.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보이지 않는 권력을 유지하고, 교체없이 그 권력을 자신의 후계자들에게 물려준다는 점에서 세습권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습권력의 문제점은 오늘날 사법부의 문제로 고스란히 나타나 사법개혁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현실문제를 우리는 각자의 정치사상의 기반 위에서 바라본다. 사회가 과거보다 복잡해지면서 보다 다양한 사상 기반이 등장했고, 이 사안을 보는 우리의 입장도 단순하지는 않지만, 사법개혁과 관련하여 큰 틀에서는 페인과 버크의 입장 중 어느 한 편에 속하리라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페인과 버크의 논쟁을 지금 다시 살펴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이들의 논쟁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의 재생산 문제에서, 즉 사회통합과 체계통합 사이의 협정 문제에서, 다른 모든 사회들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회에 해당하는 이 근본문제를 논리적으로 서로 배제하는 두 가지 해결방식을 동시에 취하는 식으로, 즉 생산의 분화 내지 사유화를 통하여 그리고 동시에 생산의 사회화 내지 정치화를 통하여 처리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두 전략은 서로를 방해하고 마비시킨다... 노동, 생산, 분배 영역의 정치적 중립화는 강화되면서 동시에 철회된다... 두 명령은 특히 정치적 공론장에서 서로 충돌한다.(p533) <의사소통행위이론 2> 中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 ~ )는 <의사소통행위이론 Theories des kommunikativen Handelns>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해소될 수 없는 긴장관계가 공론장(public sphere)에서 충돌함을 말하고 있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은 공론장에서 사회적 합의(social consensus)를 도출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만약, 자신이 보수주의자라면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할 것이다. 만약, 자신이 자유주의자라면 자신이 바꾸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 토론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슈마커가 말한 '다원적 공공 정치철학'을 도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도달해야하는 사법 개혁 뿐 아니라 정치를 바라보는 공동체 의식이라 생각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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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14: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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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께


 저는 지금 라틴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열심히 했지만 시험을 치를 때까지 더욱 열심히 할 거에요. 그리고 시험이 끝나도 라틴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을 거에요... 시험이 끝나면 제대로 된 편지를 쓰겠습니다. 저는 오늘밤 라틴어 공부와 긴박한 싸움을 벌여야 하거든요.  몹시 서두르고 있는 주디 애벗 올림(p64) <키다리 아저씨> 中



 아내의 서재에서 진 웹스터(Alice Jane Chandler Webster, 1876 ~ 1916)의 <키다리 아저씨 Daddy-Long-Legs>를 발견하고 오랫만에 펼쳐들었다. 어린 시절 세계문학전집에서 처음 접했던 <키다리 아저씨>는 <소공녀 A Little Princess>와 함께 인상깊었던 소설로 기억된다. 다만, 두 작품에 차이가 있다면 <키다리 아저씨>가 고아에서 부자의 후원을 받아 신분상승한 구조라면, <소공녀>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신분이 수직 하락한 주인공이 마지막에 다시 극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회복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희망을 작품 속에서 발견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제,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읽은 <키다리 아저씨>는 예전과는 달리 새로운 느낌을 전해주었다. 어빙 고프먼 (Erving Goffman, 1922 ~ 1982)의 <상호작용 의례 Interaction Ritual: Essays in Face-to-Face Behavior>은 사회구성원간 상호작용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그 중에서 '존대'에 대한 항목을 찾아보자.


 존대의례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존중의 감정은 일종의 호감과 소속감이다... 대체로  존대는 정중한 태도로 경의를 표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존대를 하는 사람은 실제 마음보다 더 상대를 높이 평가하는 양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가 유리하게 받아들일 여지를 주고 격식을 차려 자신이 상대를 낮춰보는 내심을 감추기도 한다.(p69)... 존대 행동은 존중하는 마음과 더불어 일종의 약속을 포함한다. 곧 이어질 활동에서 상대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하겠다는 고백이나 서약을 압축한 표현이다.(p70) <상호작용의례> 中


 <키다리 아저씨>에서 주디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쓴 초창기에는 후원을 받아 열심히 공부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려는 마음이 잘 나타난다. 비록 밝고 명랑한 주디지만, 낯선 아저씨의 존재는 고맙지만 어려운 상대였으리라. 그렇지만, 작품 후반으로 가면서 아저씨와의 관계는 점차 친밀하게 바뀌면서, 개인적인 고민까지 나누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고프먼이 말한 '친숙한 관계'로의 발전일 것이다.


 아저씨께 

 저한테 어려운 문제가 생겼어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아저씨의 충고가 필요해요. 아저씨를 찾아뵈면 안 될까요? 편지를 쓰는 것보다는 직접 말씀드리는 편이 훨썬 나을 것 같아요. 아저씨의 비서가 편지를 뜯어볼지도 모르니까요. 주디 올림(p254) <키다리 아저씨> 中


 행위자가 상대의 일상 영역에 예사롭게 드나들고 상대의 사생활을 침범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사이라면 친숙한 관계라고 말한다. 행위자가 상대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면 어색한 관계 또는 정중한 관계라고 말한다. 두 개인 사이의 품행을 규정하는 규칙은 친숙한 관계인지 정중한 관계인지에 따라 대칭적일 수도 있고 비대칭적일 수도 있다... 신분이 대등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칭적이고 친밀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리라 예상할 수 있다.(p73) <상호작용의례> 中


 그리고, 친밀감의 표현은 작품에서 마지막 편지에서 극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스포일러라고 하면 스포일러겠지만, '고마운 후원자'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이 마지막 편지는 작품 전체에서 가장 극(劇)적이자, 절정인 장편으로  다시 읽어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사랑하는 저비, 당신이 너무 그리워요. 

 하지만 이것은 행복한 그리움이에요. 곧 함께 지내게 될 테니까요.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의 것이에요. 제가 드디어 누군가의 사람이 되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정말로 행복해요.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에요. 언제까지나 당신의 주디(p268) <키다리 아저씨> 中


 오랫만에 다시 읽은 <키다리 아저씨>. 이제는 신데렐라 이야기와 같은 낭만적인 서사에서 주는 감동은 예전만 못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은 미묘한 표현을 통해 어린 시절의 감동이 깨어남을 볼 때, 고전은 고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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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0-14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프먼의 상호작용의례 관점에서 사회생활과 의사소통을 지켜보면 재미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걸 키다리 아저씨의 서신교환에도 적용해보시다니, 재미있습니다. 어릴 때 정말 좋아하던 책.

겨울호랑이 2019-10-14 10:32   좋아요 2 | URL
반유행열반인님 말씀처럼 고프먼은 구성원간 상호작용을 의미있게 분석했음을 느낍니다. 주로, 미국사회 중심의 분석이라 모든 부분이 우리 사회와 맞지는 않지만, 사람 사는 곳이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많은 공감을 하게 됩니다. 반유행열반인님 부족한 제 글을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2019-10-14 09: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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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4 1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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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8 13: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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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9 0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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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를 구분하는 라캉의 "방법론적 구분"은 분화의 이론(혹은 단지 그 역사적 효과)이다. 이제 상징계는 물질성과 기술성을 지니고 있는 언어기호를 포괄한다. 다시 말해, 언어기호는 철자와 숫자로서 유한한 집합을 형성하며, 철학적으로 꿈꾸어왔던 의미의 무한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상상계는 유아의 본래 신체보다 더 완전한 운동성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신체의 거울상에서 생겨난다. 왜냐하면 실재계 속에서는 모든 것이 호흡 곤란, 추위, 현기증과 더불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상계는 영화의 요람기에 탐구되어온 바로 그 광학적 환영을 실행한다... 마지막으로 실재계로부터는 라캉이 전제했던 것 말고는 아무것도 드러날 수 없다. 즉, 아무것도 없다. 실재계는 상상계의 거울로도 상징계의 격자로도 포착할 수 없는 잔여물 또는 폐기물이다. 현대 정신분석학의 이러한 방법론적 구분은 매체의 기술적 구분에 명백하게 일치한다. 모든 이론은 각자의 역사적 선험성을 가진다.(p38)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프리드리히 키틀러 (Friedrich Kittler, 1943 ~ 2011) <축음기, 영화, 타자기 Grammophon, Film, Typewriter>는 20세기 아날로그 기술 매체들인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라캉(Jacques-Marie-Emile Lacan, 1901 ~ 1981)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로 대응시켜 이들을 해석한다. 따라서,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기 전 라캉의 용어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순서라 여겨지며, 이번 페이퍼에서는 브루스 핑크(Bruce Fink)의 <라캉의 주체 The Lacanian Subject: Between Language and Jouissance> 를 통해 내용을 비교해보고, 21세기 매체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욕망은 담화를 통해서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온다. 무의식은 다른 사람들의 말, 다른 사람들의 대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목표, 열망,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p35) <라캉의 주체> 中


 언어로서의 타자는 대부분의 아이들에 의해 동화된다. 타자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소망들을 불손하고도 부적절하게 변형하는 음험한 불청객 침입자로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우리의 욕망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면서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엇이기도 하다.(p29)... 우리 자신과의 혹은 다른 사람과의 일상적 대화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 말하는 저 담화가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반영하는 것과는 생각보다 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았다. 실로 그것은 언어로서의 이 다른 현존에 의해 침투되어 있는 것이다. 라캉은 이를 분명한 용어로 표현한다. 자기는 타자이다. 자아는 타자이다.(p31) <라캉의 주체> 中


  라캉에 따르면 우리의 무의식은 다른 사람(타자)들의 생각들이 흘러들어와 수용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타자의 생각은 언어에 의해 전해지는데, 이때  우리는 우리의 언어가 아닌 타자의 언어로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그런 면에서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談論)이며, 자아와 타자는 다르지 않다. 자아와 타자를 맺어주는 언어. 그렇다면 언어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라캉은 언어의 기능을 상징계와 실재와의 관계에서 찾는다.


  라캉의 실재에는 지대들도, 하위구분들도, 국부화된 높낮이도, 혹은 틈새와 충만도 없다. 실재는 갈라짐 없고 분화되지 않은 일종의 직물이며, 모든 곳이 충만한 그런 방식으로 짜여 있다. 실재가 별도의 지대들로, 구분되는 지형들로, 대비되는 구조들로 나뉘는 것은 상징적 질서의 결과인데, 상징적  질서는 실재의 매끄러운 겉면을 자르고 들어가서 구분들과 틈새들과 구별가능한 존재자들을 만들어내며 실재를 안장安葬시킨다. 실재를 폐기하면서 상징적 질서는 '현실"을 창조한다.(p62) <라캉의 주체> 中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은 그것의 현실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실존하지 않는다. 라캉의 용어법에서 실존 existence은 언어의 산물이다. 따라서 실재는 언어를 앞서므로, 실존하지 않는다.(p63)... 라캉적 관점에서 볼 때 정신분석의 전제는, 언제나 상징계가 - 실재계를 암호화하고, 그로써 그것을 변형하거나 환원하는 가운데 - 실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식적으로 그려보자면, 상징계는 실재 위에 덧쓰기를 하고 실재를 지움으로써 실재를 빗금친다.(p65) <라캉의 주체> 中


 라캉에 의한면 '말할 수 없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언어 이전에 사태(事態)는 없는 것이다. 실재는 어린아이가 주위의 환경(타자)으로부터 언어를 배울 때 형성되는 것이며, 외부의 암호화된 언어와 의미를 받아들여 해석함으로써 비로소 실존한다. 이러한 외부는 상상계와 상징계로 구분되며, 이들은 거칠게 표현해서 상상계는 우리가 유사함을 느끼는 세계인 반면, 상징적 관계는 암호화된, 보다 추상적인 세계라 할 수 있다.


 "상상적" 관계는 환영적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자아들간의 관계인데, 그 안에서는 모든 것이 단 하나의 대립 - 동일한과 상이한의 대립-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상상적 관계는 당신이 다양한 이유로 당신 자신 같다고 간주하는 다른 사람들을 내포한다.(p160)... 우리가 우리 자신 같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일반적으로 타자에 대해서, 우리가 타자와 맺는 것과 유사한 관계에 있다.(p162)... 상징적 관계는 언어, 지식, 법, 경력, 학계, 권위, 도덕 이상 등등으로서의 타자에 대한 관계이다, 타자에 의해 지칭된 대상들과의 관계이다.(p164) <라캉의 주체> 中


 그럼, <축음기, 영화, 타자기>안에서 라캉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가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살펴보자. 저자 카틀러는 암호화된다는 면에서 '타자기'를 상징계에, 유사함을 저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영화'를 상상계에 마지막으로 '축음기'를 실재계에 배치한다. 


 타자기는 처음으로, 자판이라는 계산되고 정돈된 저장고에서 선택된 문자를 제공한다. 손글씨의 흐름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자간과 행간에 의해 분리되고 구분된 요소들이 서로 나란히 등장한다. 따라서 상징계는 인쇄 활자의 지위를 가진다... 영화는 움직이는 도플갱어를 최초로 저장할 수 있었고, 다른 영장류와는 달리 인간은 그 안에서 자신의 신체를 인지(혹은 오인)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상상계는 영화의 지위를 갖는다... 축음기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모든 기호의 질서와 단어의 의미들 이전에 후두에서 내지르는 모든 소음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실재계는 축음기의 지위를 갖는다.(p39)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여기에서 우리는 추가적으로 상징계와 실재계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재은 외부로부터 암호화된 언어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기는 점점 작아지고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밀려나게 된 '잔여물'들은 무의식으로 밀려나 의식의 다른 원인이 된다. 언어를 통한 상징계와 실재계의 교류를 통해 인간은 성장한다.


 우리는 될 수 없으며, 단순한 잔존물이나 찌꺼기에 해당한다. 매 단계에서 적어도 실재가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상징화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저 "최초의", "본래적" 실재는 점점 더 적게 남겨지게 된다. 그리하여 상징계와 나란히 존속하는 잔여물은 언제나 존재한다.(p66)... 중첩되는 상징 적용의 단순화된 모델에서 우리는 1 다음에 곧바로 3이 올 수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1 바로 다음에 오는 위치에서 우리는 3을 일종의 잔여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회로에서 사용 하나의 수는 배제되거나 옆으로 밀려나게 된다... 라캉은 이 배제된 수나 상징들을 그 과정의 카푸트 모르툼(caput mortuum)이라고 부른다.(p67)... 카푸트 모르툼은 사슬이 포함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슬의 타자이다... 사슬 바깥에 필연적으로 남게 되는 그 무엇은 내부에 있는 것의 원인이다. 내부가 있기라도 하려면, 구조적으로 말해서 무언가가 밖으로 밀려나야 한다.(p68) <라캉의 주체> 中


 여기서 매체들이 위치하게 된 세계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축음기와 영상기록기는 각각 청각, 청각+시각적으로 '시간'을 저장하는 매체다. 둘 다 시간을 저장하는 매체지만, 영화는 보다 종합적으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상상계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이에 반해, '타자기'는 언어(문자)를 통해 정보를 암호화한다는 면에서 '상징계'의 자리에 놓인다.


 축음기 Phonograph와 영상기록기 Kinematograph에 이르러 비로소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은 청각적인 것에서는 소음의 주파수 혼합체로, 광학적인 것에서는 연속되는 단일 이미지들의 운동으로 저장되었다. 모든 예술은 시간에서 그 한계를 갖는다.(p17)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레코드판의 홈이 끔찍한 폐기물들, 즉 육체의 실재를 저장하는 동안에, 극영화는 한 세기 동안 문학이라고 불렸던 모든 환상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을 넘겨받는다... 이때부터 신낭만주의 작가들은 사랑을 쉽게 성취할 수 있었다.(p284)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문자는 자신이 권력을 획득했다는 사실만을 저장한다. 문자는 자신을 만들어낸 신의 저장 독점권을 찬미한다. 이 신은 문자를 이해하는 독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기호의 제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책들은 이집트의 <사자 死者의 서>와 같은  죽은 이들의 책이라 하겠다. 책은 모든 감각들이, 그 감각의 저편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망자의 제국과 같다.(p24)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이와 같은 이유로 20세기 영상 매체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라캉의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에 대응하여 논리를 풀어가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 후 <축음기, 영화, 타자기>를 읽는다면, 더 좋은 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외에도 라캉 이론의 여러 부분이 책 본문에 담겨있는데, 예를 들면 상징계의 불완전성을 설명하는 라캉의 이론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 ~ 1954)의 에니그마(Enigma) 암호 체계 해독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내용이 좋은 예라 여겨진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미테이션 게임 Alan Turing: The Enigma>을 참고하면 좋겠다. 괴델의 불가능성 정리에 대해서는 일전에 정리한 페이퍼 주소를 알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모든 기표들의 집합이라고 가정된 집합은 결코 완전해질 수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원히 집합 바깥에 남아 있는, 집합의 바로 그 이름이 언제나 있는 것이다... 그 집합은 그 자신을 자기 자신의 원소 가운데 하나로 포함한다. 이는 역설적 결과이다.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말이다. 이 논증은 대수의 불완전성에 과한 괴델의 정리와 연결할 수 있는데, 이 정리는 모든 공리적 체계들로 일반화할 수 있다.(p72) <라캉의 주체> 中


애니그마는 실용적으로는 장점이지만 이론적으로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애니그마의 암호가 자기 반전反轉적 그룹을 지니고 있었다. 같은 기계에서 암호화와 그 암호에 대한 해독이 이루어지려면, 철자 조합들이 서로 교환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고사령부 OKW가 O를 K로 암호화했다면, 역으로 K는 O의 암호여야 한는 것이다. 이로부터 두번째로 "어떤 철자도 자기 자신을 통해서는 암호화될 수 없다는 특성"이 도출된다. 다시 말해 OKW도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튜링은 이 작지만 중요한 비밀을 폭로하는 함축을 순차적인 분석에 적용하여 해법의 개연성을 조정할 수 있었다.(p451) <축음기, 영화, 타자기> 中


 괴델의 증명과 관련 페이퍼  : https://blog.aladin.co.kr/winter_tiger/10195327


 키틀러가 <축음기, 영화, 타자기> 안에서 20세기 매체를 통해 분석을 수행했다면, 21세기에는 어떤 방향으로 정보 기술 매체들이 발전할 것인가? 1985년에 씌여진 <축음기, 영화, 타자기>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는다. 대신 키틀러의 다른 저작 <광학적 미디어 : 1999년 베를린 강의>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실재는 외부로부터 타자의 언어를 받아들임으로써 존재할 수 있다는 라캉의 이론을 생각해본다면, 암호화된 상징계가 실재계이전에 존재해야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 면에서, 암호화 또는 압축은 현실 존재에 선행되는 작업일 것이며 컴퓨터는 이전의 그 어느 매체보다 혁명적으로 이러한 압축을 수행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환이 그것이다.

 

 모든 압축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n-1 차원이 기표가 n차원을 은폐하고 숨기고 왜곡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신神의 살과 피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것도 그 때문이고, 성상파괴를 주장하는 종교개혁자들이 교회에 그려진 이미지에 맞서 싸웠던 것도 그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근대의 자연과학과 기술이 텍스트 기반의 현실 개념에 맞서 전쟁을 벌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플루서는 이 마지막 전쟁에서 일차원적 텍스트가 영차원의 숫자나 비트로 대체됐다고 보고, 이제는 차원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은폐될 위험도 없음을 강조한다 이런 관점에서 컴퓨터는 모든 차원을 영차원으로 완전히 압축하는 기술이다.(p346) <광학적 미디어 : 1999년 베를린 강의> 中


 그리고, 그 결과 21세기 우리는 빛의 속도로 전송되고, 저장되는 시대에 살게 된다는 것이 키틀러의 예언이다. 이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더이상 고전 역학의 시대가 아닌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의 시대를 살게 된다는 것을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고전 역학과 전혀 다른 가정에서 출발하는 양자 역학과 의미와 과거와 전혀 다른 패러다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비춰볼 때, 물리학적으로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양자혁명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디지털 이미지 처리 방식은 관습적 예술과는 달리 이미지를 본뜨려 하지 않기 때문에 실재계에 호응한다. 데이터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실리콘 칩과 데이터를 전송하는 금/구리선으로 이뤄진 현재의 시스템이 광학적 회로와 광섬유 케이블로 이뤄진 새로운 시스템으로 대체된다면, 디지털 이미지의 계산 속도도 더 빨라지겠지만 만델브로트가 발견한 자기 유사성의 수학적 구조도 더 강력해질 것이다... 이제 광학적 미디어가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수립될 것이다. 그러므로 광학적 미디어에 관한 내 강의도 그 시스템에 관한 예언으로 마무리하겠다. 그것은 빛을 빛으로 전송할 뿐만 아니라 빛으로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이 될 것이다... 정보로서의 빛 또는 빛으로서의 정보의 최대 전송 속도는 광자 에너지를 플랑크 상수로 나눈 몫의 제곱근에 경험적 계수를 곱한 값과 같을 것이다.(p349) <광학적 미디어 : 1999년 베를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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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9-10-16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벤야민이 기술 매체로 사진, 영화에서 그친 게 아쉽듯 키틀러도 21세기 매체로까지 진전되지 못하고 아날로그 기술 매체 분석에서 그친 게 아쉬운 지점입니다. 시기적으로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지금처럼 디지털화가 빠른 시대에서는 더욱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하잖아요.
휴대폰 하나로도 쓰나미를 일으키기 충분하니까요.
역사 이해는 늘 사후적이니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매체의 저변을 더 쪼개어서 분석 제시해주는 건 멋지더군요👍 비싸서 벼르고만 있었는데 얼른 사서 읽었으면 좋았을 걸 싶더군요.

겨울호랑이 2019-10-16 00:33   좋아요 1 | URL
저 또한 마찬가지로 매체 안의 속성을 라캉의 심리학에 대응해서 분석한 부분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매체가 당대 사람들의 요구 또는 욕구의 산물임을 통찰한 키틀러의 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AglmA님 말씀처럼 21세기에는 다양한 매체가 스마트폰으로 수렴해가는 현상을 키틀러는 어떻게 분석했을지 궁금해 집니다. 그의 후기작을 통해 유추한다면, 스마트폰 등의 매체와 빛을 연결시켜서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가 그 안에 어떤 방식으로 담겼는지 또는 수렴해갔는지를 설명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만. 그건 본인만이 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