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인식은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주고, 객관성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높여준다. 가슴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어리석은 짓과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과 사고에 미치는 악영향을 겨우 한 세대 만에 극복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중세 사회의 붕괴로 생겨난 인간의 불안이라는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중세 사회에는 많은 위험이 존재했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다고 느꼈다. 수백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인간은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물질적 부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인간은 세계 곳곳에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했고, 최근에는 전체주의의 새로운 책동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내가 분석하여 보여주려는 것은 근대인이 아직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불안한 인간은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자유의 인간적 측면과 권위주의를 분석하려면 일반적인 문제, 즉 심리적 요인들이 사회 과정에 적극적인 영향력으로 참여하여 맡고 있는 역할을 고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사회 과정에서 심리적ㆍ경제적ㆍ이념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 책에 제시된 분석은 프로이트의 관점과는 대조적이다. 심리학의 주요 문제는 이런저런 본능적 욕구 자체를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개인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것이냐가 문제라는 가정,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고정적인 게 아니라는 가정이 이 책에 제시된 분석의 기본 바탕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고정 불변의 요소들이 있는데, 생리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 고립과 정신적 고독을 피해야 할 필요성이 그것이다. 개인은 어떤 사회 특유의 생산과 분배 체제에 뿌리를 둔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문화에 역동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행동과 감정을 유발하는 강력한 충동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개인은 이 충동들을 의식할 수도 있고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욕구들은 강력하고, 일단 생겨나면 충족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강력한 영향력이 되어, 이번에는 반대로 사회 과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자신의 활동을 통해 자기 밖에 있는 세계를 경험한다. 교육 과정은 개체화 과정을 촉진한다. 이 과정은 수많은 좌절과 금지를 수반하고, 어머니는 아이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 아이의 소망과 상충하는 목적을 가진 적대적이고 위험한 사람으로 역할이 바뀐다. 교육 과정의 일부이긴 하지만 결코 전부는 아닌 이 적대감은 ‘나’와 ‘너’의 구별을 더 분명히 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인간과 자유의 근본적인 관계를 특히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되는 장면을 묘사한 성서의 신화다.

이 신화는 인류 역사의 시작과 선택 행동을 동일시하지만, 인간이 자유를 얻고 나서 맨 처음 한 이 행동의 죄와 그로 말미암은 고통을 강조한다. 남자와 여자는 에덴동산에서 서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도 조화롭게 살고 있다.

신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강제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 인간 이전 단계의 무의식적 존재에서 벗어나 인간의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의 명령에 거역하고 죄를 짓는 것은 긍정적인 인간적 측면에서 보면 최초의 자유 행동, 즉 최초의 ‘인간적인’ 행동이다. 신화에서 인간이 지은 죄는 형식적 측면에서는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자유 행동으로 신의 명령에 거역한 불복종 행위는 ‘이성’의 시작이다.

하지만 인간의 개체화 과정 전체가 의존하고 있는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상황이 방금 말한 의미에서 개성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때까지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던 기본적인 관계를 단절당하면, 이 불균형 때문에 자유는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자유는 의심과 동일해지고, 의미와 방향을 잃은 삶과 동일해진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나 세계와의 관계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더라도 불안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면, 자유에서 벗어나 그 관계 속으로 도피하거나 복종으로 도피하려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본질적 특징들을 그 뿌리에서 분석하면,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 체제나 성격과 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조 자체가 근대 사회 체제의 특수성을 이해하기에 더 좋은 시각을 제공해주고, 근대 사회 체제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 구조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그리고 이 성격 변화가 낳은 새로운 정신은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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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시켜서 정탐을 해보니 그러한 것이 모두 없었으니, 나는 이로써 멀리까지 말을 몰아 깊숙이 들어가면 큰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소. 군사들이 이미 서로 접전하게 되면 우리의 기세는 바야흐로 예리하였으며 저들의 기세는 바야흐로 꺾여 있어서 만약 이 기회를 타고 신속히 그들을 치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디게 한다면 이기고 지는 것은 알 수 없었소. 이는 내가 빠르게 싸워서 승리한 까닭이며 피로해있고 편안하게 있는 것으로 대처하는 보통의 이론을 가지고 하였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오."

석경당이 심히 탄복하였다.

유(幽, 북경시)·계(?, 천진시 계현)·영(瀛, 하북성 하간시)·막(莫, 하북성 임구시 북쪽 막주진)·탁(?, 하북성 탁주시)·단(檀, 북경시 밀운현)·순(順, 북경시 순의현)·신(新, 하북성 탁록현)·규(?, 하북성 회래현)·유(儒, 북경시 연경현)·무(武, 하북성 선화현)·운(雲, 산서성 대동시)·응(應, 산서성 응현)·환(?, 산서성 삭주시)·삭(朔, 산서성 삭주시)·울(蔚, 하북성 울현) 16주(州)를 잘라서 거란에 주고 이어서 매년 비단 30만 필을 보내주기로 허락하였다.

황제는 거란과 더불어 우호관계를 맺었으나 그들이 다시 영무(靈武, 영하성 영무현)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계사일(9일)에 다시 장희숭을 삭방절도사로 삼았다.

송제구(宋齊丘)가 이덕성(李德誠)의 아들인 이건훈(李建勳)에게 말하였다. "존공(尊公)은 태조의 원훈(元勳)인데 오늘 땅을 쓰는군요."

이에 오의 궁중(宮中)에서 괴이한 일이 많이 일어나자, 오주가 말하였다. "오의 운명이 그 끝에 왔구나!"

좌우에서 말하였다. "이는 마침내 하늘의 뜻이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고려의 왕건(王建)이 군사를 부려서 신라(新羅)와 백제(百濟)를 쳐서 깨뜨리니, 이에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그에게 귀부하게 되어 2경(京), 6부(府), 9절도(節度), 120군(郡)이 있었다.

무릇 제왕(帝王)이 천하를 통어하는 데는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주상께서는 영공(令公, 석경당)에게 큰 믿음을 잃었으며 가까이하거나 귀한 사람들도 또 스스로 보전할 수 없는데 하물며 소외되고 비천한 사람이겠습니까? 그가 멸망하는 것은 발돋움하고 서서 기다릴 정도이니, 어찌 강함이 있겠습니까?" 석경당이 기뻐하며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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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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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나의 얼굴은 점점 내 방에 걸린 아버지의 영정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당신과 나 사이에 놓여 있던 세월의 간격은 물론 불편했던 여러 과정들을 일시에 제거하면서 나를 바로 아버지의 그 자리에 옮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잃음으로써 나는 아무 완충 없이 죽음과 직접 연관 지어졌다. 그러니까 내 얼굴 모습이 영정 속의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것은 그다음의 죽음은 내 차례라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죽음이 궁극적으로 나를 자연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8/542


 나이 오십 줄에 들어 머리털이 헤실헤실 벗어지고 있는 지금, 나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 흉측한 흉터가 다시 드러남을 본다. 그와 함께 그 옛날 땜통 시절의 소심증도 되살아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로 흉터를 가려보려고 자꾸만 머리에 손이 올라간다. 그렇다. 어릴 적 흉터가 늙어서 다시 드러나고 그 흉터를 통해서 잊혔던 그 시절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43/542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현기영(玄基榮, 1941~ )의 자전소설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저자. 아버지의 죽음 후 다음 순서는 자신임을 직감하며,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죽음의 길. 그렇지만,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인간이라는 한 개체의 소멸만을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묻혔던 공동체의 기억의 소생으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이제는 오십 살의 장년이 된 소년. 그가 바라봤던 제주 4.3의 모습이 작품 속에서 그려진다.


 죽음이 곧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죽음이 인간 개체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죽어서도 내 마음속에 뚜렷이 살아 있는 아버지 모습이 그것을 증거한다.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내 의식에 자주 출몰하고 있는데 마치 당신이 내 마음속으로 이사해와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나의 얼굴 모습도 점점 아버지와 닮은 꼴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식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다. 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 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542


 어쨌거나, 이제 죽음의 계절은 끝이 났다. 죽음을 뚫고 솟구치는 생명의 부활, 엄청난 수의 인명 파괴에 맞먹는 종족 번식의 대공사가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 생명의 푸른 불씨를 일궈내어 마침내 초토의 검은 땅을 푸르게 덮어야 했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436/542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그려진 제주4.3사건은 철없는 아이의 눈에 비춰진 의미없는 끔찍한 기억이다. 죽음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소년의 눈에 학살은 잔혹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나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다. 아무 뜻도 없이 그냥 재미로 벌레를 죽이는 어린애가 어찌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겠는가.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39/542


 3.1사건 이후 일년 동안, 육지부에서 파견된 경찰과 서청이 자행한 무자비한 탄압이 마침내 "앉아서 죽느니 일어나서 싸우자"라는 절망적 항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3의 봉기는 곧바로 5.10선거 보이콧으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사태의 전개는 어린 나에게는 단지 풍문일 따름 별로 실감이 없었다.(p61)...  그리하여 한라산과 해변 사이 주우산간 지대의 백삼십여개의 마을들이 불에 타 사라졌다. 불바다와 함께 대살육극이 시작되었으니, 주민들 절반은 산으로 달아나 폭도라는 누명 아래 사살의 대상이 되고 절반은 명령에 따라 해변으로 소개했으나, 그중의 많은 부로(父老), 아녀자들의 폭도 가족이라고 처형당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마소도 닥치는 대로 학살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물정을 잘 모르는 읍내 아이였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68/542


 잿더미가 되버린 마을터의 참혹한 현실들이 수풀에 덮히듯, 제주 4.3의 아픈 기억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에 덮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소년에게 넘어야 할 벽이었고 장애물이었으며, 떠나야 할 변경이었다. 아픔의 기억은 잔흔처럼 남겨졌지만, 이 역시도 극복의 대상이었기에 무시당하며 무의식의 내면으로 소리없이 유폐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움막의 어둠을 밝히던 접시부의 조그만 불방울과 지예의 머루알같이 빛나던 그 눈망울, 그리고 검은 재와 숯더미 속에 푸르게 솟아난 어린 오동나무는 훗날 생명의 강한 상징으로서 나의 심중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렇다. 아이는 무조건 자라나야 한다. 무조건 자라는 것이 아이의 의무이므로, 아이는 결코 과거에 붙들리지 않는다. 그래서4.3의 유복자들은 막무가내로 자라나서 4.3의 저 검은 폐허를 푸른 풀로 덮게 되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2/542


 물론 그 가혹한 시절은 어린 내 가슴에도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죽음의 어두운 이미지와 우울증을 심어놓은 게 사실이다. 그 우울증의 결과로 나는 오랫동안 말을 더듬었는데 그 흔적은 아직도 내 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자신의 성장에 해로운 것은 본능적으로 피해가게 마련이다. 슬픔, 외로움이야말로 성장에 유해한 물질이 아닌가. 몸 가벼운 만큼이나 마음 또한 가벼워 울다가도 금방 웃을 줄 아는 것이 아이들이니, 어떠한 슬픔에도 기쁨의 양지를 향하여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4/542


 그러한 영육의 불화, 분리는 자연의 한 부속물이었던 내가 거기서 떨어져나옴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자연은 야만, 무지, 변경과 같은 말이었고, 내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미래는 가난 때문에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 있었다. 변경을 벗어난다는 것은 가난한 소년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꿈이었다. 고교 공부도 어려운 처지에, 과연 대학 공부를 하기 위해 저 수평선을 넘을 수 있을까? 나를 키운 모태인 바다가 도리어 비상하려는 나의 발목을 잡는 질곡이라는 뼈아픈 자각, 그랬다, 수평선은 내 목에 걸린 올가미였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6/542


 그리고, 이런 아픔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자리를 찾게 된다. 소년이 극복하고자 했던 변경이 사실은 세상의 중심이고, 자신이 되돌아가야할 원초적 생명임을 깨달으면서 건조한 사건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한 개인의 죽음이 불러낸 집단의 기억. 이것이 아버지 죽음이 가져온 진정한 의미다.


 허리까지 잠기는 풀밭을 이리저리 거니노라면 내 영혼에 예리하게 침투하는 야초의 독한 향내...... 거기에서 나는 내 존재에 대한 강렬한 의식과 함께 내 죽음 자체에도 관대해진다. 내 아버지, 내 조상들이 묻힌 곳, 그 초원은 모든 섬사람들이 태어났다가 죽어서 다시 돌아가는 어미의 자궁인 것이다. 그러나 피맺힌 한으로 해서 조금도 관대해질 수 없는 무자, 기축년의 그 주검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들도 거기로 돌아가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삭일 수 없는 여한은 어찌할 것인가.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94/542


 이처럼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는 소년의 눈에 비친 제주 4.3사건을 그린다. 때문에, 사건의 잔혹함이나 긴박감 등을 작품에서 느끼기 어렵지만, 대신 사건이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와 함께 하나의 사건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 그 사건은 먼저 우리 안에 온전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교훈을 독자들은 전달받는다. 이런 면에서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순이 삼촌>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그러한 아침에 의해 격려받고, 그러한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아침 빛으로부터 병든 자는 삶의 의욕을 얻고, 절망한 자는 용기를 얻고, 그리고 용기 있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더 밝고 더 아름다운 아침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결심을 하는 순간도 그러한 아침의 햇빛 속에서일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252/542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9/542 



자연의 일부였으므로 부끄럼 없고 죄 없이 무구한 시절, 그리하여 나에게 그 시절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세월은 모두 거짓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섬 땅에서 정작, 내가 태어나 그 탯줄을 묻은 함박이굴 마을은 지금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메타포를 통해서 세상 보는 일에 익숙한 글쟁이여서 그런지, 1948년 토벌대의 방화로 소진된 이래 그 부락은 오직 검은 재의 폐허로만 내 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_ p14/542

한창 자라나는 어린 나에게 한달 넘게 계속되는 결식은 참기 어려운 괴로움이었다. 처음에 어머니는 아침밥을 반쯤 남겼다가 점심에 먹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오히려 허기만 더 자극할 뿐이어서 아예 점심을 굶어버렸다. 한사발의 밥이 제대로 배 속에 들어가야 한때나마 그 무서운 허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무서운 허기, 정말 그랬다. 허기는 본능적인 공포, 살이 조금씩 깎여들어간다는 두려움을 예리하게 일깨워주곤 했다. 굶주림의 그 생생한 감각은 나의 성장하는 정신에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남겨, 지금도 나는 공복상태가 두려워 어쩌다 한끼라도 때를 놓치면 사뭇 안절부절못하는 버릇이 있다. _ p166/542

그러나 죽음의 시절은 이제 일단락 났다. 그해 여름, 보리 풍작과 함께 그보다 더 큰 기쁨이 날아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휴전 소식이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 것이다. 모든 전선에서 총성이 멎고 휴전선이 획정되었다는 소식이었는데, 과연 그것을 입증하듯이 도두봉의 기총 사격도 그쳤다. _ p350/542

누구나 사춘기 열병을 앓게 마련이지만, 고교 시절의 나는 아무래도 남보다 더 갈등이 심했던가보다. 영과 육의 불화. 영혼도 육체도 제각기 뭔가를 몹시 갈구하건만, 영혼이 바라는 바를 육체가 따르지 못하고, 육체의 요구를 영혼이 들어주지 못했다. 무구하던 영혼이 격정과 불만으로 들끓던 그 악바리 소년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_ p536/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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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07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 4월 3일은 제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의미깊고 좋았어요. 어린 아이가 이념이 무엇인지 어찌 알았겠어요 동네 사람들이 도망가고 죽는 끔찍한 현장을 목도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을테구요. 그 당시 이념 뿐 아니라 가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있었을텐데 참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ㅠ 이제 4.3하면 현기영님이 저는 가장 먼저 떠올라요^^

겨울호랑이 2022-04-07 16:33   좋아요 1 | URL
^^:) 그러셨군요. 거리의화가님께 더 의미있는 4.3이었겠습니다. 마치 롤스가 ‘정의‘라는 한 주제에 천착한 것처럼, 현기영 작가는 4.3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 작가라 생각되기에, 저 역시 4.3과 현기영 작가를 떨어뜨려 생각할 수가 없네요. 거리의화가님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그레이스 2022-04-07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기영씨도 너무 마음 아픈 소설가예요.
글을 너무 잘 쓰는데, 과거의 사건에 매여 있어서,,,
이책의 글들은 소름돋게 좋은데 너무 가슴아팠던 기억이 나요

겨울호랑이 2022-04-07 23:20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의 말씀처럼 4.3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이 여러 작품에 투영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같은 불행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겠지요...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손광헌은 미세한 것을 보고 간할 수 있었고, 고종회는 좋은 의견을 듣고 고칠 수 있었으며, 양진은 공로를 이루고 물러날 수 있었으니, 예로부터 국가를 가진 사람이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무릇 어찌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무너뜨리며 몸을 죽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비록 무궁한 재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끝내는 교만한 사졸들의 마음을 채울 수 없으니,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위급하고 곤란한 속에서 손을 잡고 천하를 얻었습니다. 무릇 나라의 존망(存亡)은 오로지 후한 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역시 법도(法度)를 닦고 기강(紀綱)을 세우는 데에 있습니다.

황제가 학사(學士) 마윤손(馬胤孫)에게 말하였다.

"짐은 새로 천하에 다가갔으니 의당 언로(言路)를 열어야 할 것이며, 만약 조정의 인사들이 말한 것으로 죄를 짓는다면 누가 감히 말할 사람이겠는가! 경이 짐을 위하여 조서를 짓고 짐의 뜻을 선포하도록 하시오."

마침내 조서를 내려서 말하였는데, 그 대략이다.
"옛날에 위징(魏徵)은 황보덕참(皇甫德參)에게 상을 내리라고 요청하였는데, 지금 유도 등은 사재덕을 물리치라고 요청하고 있으니, 일은 같은데 말은 다르니 어찌 그것이 차이가 크단 말인가! 사대덕의 마음이 가슴에 품은 것을 기울여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어찌 책망할 만하겠는가?"

가만히 앞의 왕조를 보면 상원(上元, 당 숙종의 연호) 이래로 연영전(延英殿)을 설치하고 혹은 재상이 주문을 올려 논의하려고 하는 것이 있거나 천자가 자문하려고 하는 것이 있으면 옆에는 시위를 없앴으니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라건대 이 옛날에 있었던 일을 회복시키고, 오직 추요(樞要)의 신하들만이 옆에서 시중들도록 허락하십시오.

노왕이 성에 올라 울면서 밖에 있는 군사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관례를 올리지 않은 나이에서부터 돌아가신 황제를 좇아 백번 싸워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온 몸이 쇠붙이에 상처를 입으면서 오늘의 사직을 세웠는데, 너희들이 나를 좇았으니 눈으로 그 일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 조정에서는 참소하는 신하들을 신임하고 골육(骨肉)을 시기하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죽임을 당하겠는가?"
이어서 통곡하였다. 듣던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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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과거란 잊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오륙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저승차사라고 손가락질하며 흉물스럽게 여기던 까마귀들도 본래의 평범한 새로 돌아가 있었고, 까마귀 날갯빛처럼 불길했던 검은 경찰 제복도, 시체를 쪼는 까마귀 부리 같던 제모의 에나멜 차양도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것이 밀고자의 운명이었다.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헌신짝처럼 가차 없이 버림을 받는 것, 그동안 수고했으니 이 현관문턱에서 구두나 고치면서 먹고살아라,가 전부였다.

그러나 죽음의 시절은 이제 일단락 났다. 그해 여름, 보리 풍작과 함께 그보다 더 큰 기쁨이 날아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휴전 소식이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 것이다. 모든 전선에서 총성이 멎고 휴전선이 획정되었다는 소식이었는데, 과연 그것을 입증하듯이 도두봉의 기총 사격도 그쳤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생활의 암담함을 일시에 걷어내준 것이 6학년 2학기 때 찾아온 휴전이었다. 휴전은 고달픈 삶의 한 세월을 과거지사로 돌려버리는 새로운 전기였다. 모든 것이 바쁘고 활기차게 흥청거렸는데,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여서,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바쁘게 돌아갔다. 수업 내용이 충실해졌고 아이들도 비로소 면학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선생도 학생도 모두 수업에 열심이었다. 이제, 지식은 미심쩍은 것이 아닌, 출세의 확실한 수단으로 부각되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중1 시절은 완충기였던 것 같다. 그 시기는 여러 면에서 초등학교 6학년의 연장이나 다름없었다. 아직도 나는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그것의 한 분자였고, 또래집단에서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그 구성원이었다. 그런데도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속에서 변화가 이뤄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예컨대 계절은 한창 여름인데, 백중이 지나면 귀뚜라미 울음과 함께 물이 차지면서 여름 속에 가을이 배태되듯이, 어린이의 무구한 몸과 정신 속에서 이차성징과 함께 폭풍의 징후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쇠퇴와 맹아가 동시에 이뤄지는 이행기. 이제 그 어린이는 늙어버렸다. 그 무구한 혼과 육체는 소멸하고 그 대신에 무자비한 수컷이 눈을 뜨고 있었던 것이다. 병아리도 닭도 아닌, 어중간한 중성의 상태, 말하자면 멋대가리 없게 생긴 중병아리가 그때의 내 모습이었을 것이다.

밑창이 터져 저승과 통한다는 용연의 그 푸른 심연에서도 저승 물이 아닌, 싱싱한 현실의 생수가 솟았다. 무진장의 생수가 거기에서 끊임없이 용솟음쳐올랐는데, 그래서 물빛이 더욱 푸르렀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밑 지하에서 솟구치는 생수의 양이 얼마나 엄청난지 썰물 때면 알 수 있었다. 썰물에 바닷물이 빠져나가 수위가 반쯤 줄어들면, 해수보다 생수가 훨씬 양이 많아져서, 그 넓은 용연 전체가 시리도록 물이 차가워지고, 물빛도 한결 푸르게 맑아지곤 했다. 정드르의 여러 동네 사람들이 길어다 먹는 샘물 통은 서편 물가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물도 역시 밀물이면 바닷물 속에 잠겼다가 썰물이면 드러나는, 해수 속의 생수였다.

그렇다. 해수 속의 생수, 그것이야말로 용연이 보여준 최고의 압권이었다.

그리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용연의 신비로운 푸른빛은 이제 나의 내면으로 옮아와 하나의 상징, 하나의 생활지표로 바뀌어 자리 잡고 있다. 용이 잠자고 있는 그 심연의 파란 물빛이 문득 의식의 표면에 떠오를 때마다, 나는 삭막함을 뚫고 희열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회색의 도시 공간 속에서 싱싱한 샘물이 솟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처녀·총각들의 혼사도 그해에 많이 이루어졌던 것 같다. 칠년 동안 거의 끊기다시피 했던 혼사들이 그해에 부쩍 성행하게 된 것은 전쟁이 끝나 많은 젊은이들이 귀향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군대 갔던 사촌 형이 무사귀환하여 결혼식을 올린 것도 그해였다.

어쨌거나, 이제 죽음의 계절은 끝이 났다. 죽음을 뚫고 솟구치는 생명의 부활, 엄청난 수의 인명 파괴에 맞먹는 종족 번식의 대공사가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 생명의 푸른 불씨를 일궈내어 마침내 초토의 검은 땅을 푸르게 덮어야 했다.

책 읽기는 우울한 나의 침묵에 잘 어울렸다. 나는 말을 잘 안하는 대신에 그 침묵을 책 읽기로 채웠다. 책을 읽고 나면, 좋은 말 상대를 만나 한참 다변스럽게 얘기를 주고받은 것 같은 흐뭇함이 느껴졌다. 책들은 나에게 까닭없는 슬픔, 이른바 ‘고독’이란 걸 가르쳐주기도 했다. 슬퍼할 일도 없는데 공연히 허무해져서 눈물을 글썽거릴 때가 종종 있었고, 그런 눈물일수록 감미롭게 느껴졌다. 나의 미래는 그다지 행복할 것 같지가 않았다. 나의 우울이 그렇게 만들 것만 같았다. 가난한 글쟁이, 막연하지만 그것이 나의 미래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꼭 문학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한 영육의 불화·분리는 자연의 한 부속물이었던 내가 거기서 떨어져나옴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자연은 야만·무지·변경과 같은 말이었고, 내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미래는 가난 때문에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 있었다. 변경을 벗어난다는 것은 가난한 소년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꿈이었다. 고교 공부도 어려운 처지에, 과연 대학 공부를 하기 위해 저 수평선을 넘을 수 있을까? 나를 키운 모태인 바다가 도리어 비상하려는 나의 발목을 잡는 질곡이라는 뼈아픈 자각, 그랬다, 수평선은 내 목에 걸린 올가미였다.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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