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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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나의 얼굴은 점점 내 방에 걸린 아버지의 영정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당신과 나 사이에 놓여 있던 세월의 간격은 물론 불편했던 여러 과정들을 일시에 제거하면서 나를 바로 아버지의 그 자리에 옮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잃음으로써 나는 아무 완충 없이 죽음과 직접 연관 지어졌다. 그러니까 내 얼굴 모습이 영정 속의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것은 그다음의 죽음은 내 차례라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죽음이 궁극적으로 나를 자연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8/542


 나이 오십 줄에 들어 머리털이 헤실헤실 벗어지고 있는 지금, 나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 흉측한 흉터가 다시 드러남을 본다. 그와 함께 그 옛날 땜통 시절의 소심증도 되살아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로 흉터를 가려보려고 자꾸만 머리에 손이 올라간다. 그렇다. 어릴 적 흉터가 늙어서 다시 드러나고 그 흉터를 통해서 잊혔던 그 시절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43/542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현기영(玄基榮, 1941~ )의 자전소설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저자. 아버지의 죽음 후 다음 순서는 자신임을 직감하며,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죽음의 길. 그렇지만,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인간이라는 한 개체의 소멸만을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묻혔던 공동체의 기억의 소생으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이제는 오십 살의 장년이 된 소년. 그가 바라봤던 제주 4.3의 모습이 작품 속에서 그려진다.


 죽음이 곧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죽음이 인간 개체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죽어서도 내 마음속에 뚜렷이 살아 있는 아버지 모습이 그것을 증거한다.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내 의식에 자주 출몰하고 있는데 마치 당신이 내 마음속으로 이사해와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나의 얼굴 모습도 점점 아버지와 닮은 꼴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식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다. 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 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542


 어쨌거나, 이제 죽음의 계절은 끝이 났다. 죽음을 뚫고 솟구치는 생명의 부활, 엄청난 수의 인명 파괴에 맞먹는 종족 번식의 대공사가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 생명의 푸른 불씨를 일궈내어 마침내 초토의 검은 땅을 푸르게 덮어야 했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436/542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그려진 제주4.3사건은 철없는 아이의 눈에 비춰진 의미없는 끔찍한 기억이다. 죽음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소년의 눈에 학살은 잔혹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나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다. 아무 뜻도 없이 그냥 재미로 벌레를 죽이는 어린애가 어찌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겠는가.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39/542


 3.1사건 이후 일년 동안, 육지부에서 파견된 경찰과 서청이 자행한 무자비한 탄압이 마침내 "앉아서 죽느니 일어나서 싸우자"라는 절망적 항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3의 봉기는 곧바로 5.10선거 보이콧으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사태의 전개는 어린 나에게는 단지 풍문일 따름 별로 실감이 없었다.(p61)...  그리하여 한라산과 해변 사이 주우산간 지대의 백삼십여개의 마을들이 불에 타 사라졌다. 불바다와 함께 대살육극이 시작되었으니, 주민들 절반은 산으로 달아나 폭도라는 누명 아래 사살의 대상이 되고 절반은 명령에 따라 해변으로 소개했으나, 그중의 많은 부로(父老), 아녀자들의 폭도 가족이라고 처형당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마소도 닥치는 대로 학살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물정을 잘 모르는 읍내 아이였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68/542


 잿더미가 되버린 마을터의 참혹한 현실들이 수풀에 덮히듯, 제주 4.3의 아픈 기억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에 덮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소년에게 넘어야 할 벽이었고 장애물이었으며, 떠나야 할 변경이었다. 아픔의 기억은 잔흔처럼 남겨졌지만, 이 역시도 극복의 대상이었기에 무시당하며 무의식의 내면으로 소리없이 유폐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움막의 어둠을 밝히던 접시부의 조그만 불방울과 지예의 머루알같이 빛나던 그 눈망울, 그리고 검은 재와 숯더미 속에 푸르게 솟아난 어린 오동나무는 훗날 생명의 강한 상징으로서 나의 심중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렇다. 아이는 무조건 자라나야 한다. 무조건 자라는 것이 아이의 의무이므로, 아이는 결코 과거에 붙들리지 않는다. 그래서4.3의 유복자들은 막무가내로 자라나서 4.3의 저 검은 폐허를 푸른 풀로 덮게 되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2/542


 물론 그 가혹한 시절은 어린 내 가슴에도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죽음의 어두운 이미지와 우울증을 심어놓은 게 사실이다. 그 우울증의 결과로 나는 오랫동안 말을 더듬었는데 그 흔적은 아직도 내 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자신의 성장에 해로운 것은 본능적으로 피해가게 마련이다. 슬픔, 외로움이야말로 성장에 유해한 물질이 아닌가. 몸 가벼운 만큼이나 마음 또한 가벼워 울다가도 금방 웃을 줄 아는 것이 아이들이니, 어떠한 슬픔에도 기쁨의 양지를 향하여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4/542


 그러한 영육의 불화, 분리는 자연의 한 부속물이었던 내가 거기서 떨어져나옴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자연은 야만, 무지, 변경과 같은 말이었고, 내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미래는 가난 때문에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 있었다. 변경을 벗어난다는 것은 가난한 소년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꿈이었다. 고교 공부도 어려운 처지에, 과연 대학 공부를 하기 위해 저 수평선을 넘을 수 있을까? 나를 키운 모태인 바다가 도리어 비상하려는 나의 발목을 잡는 질곡이라는 뼈아픈 자각, 그랬다, 수평선은 내 목에 걸린 올가미였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6/542


 그리고, 이런 아픔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자리를 찾게 된다. 소년이 극복하고자 했던 변경이 사실은 세상의 중심이고, 자신이 되돌아가야할 원초적 생명임을 깨달으면서 건조한 사건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한 개인의 죽음이 불러낸 집단의 기억. 이것이 아버지 죽음이 가져온 진정한 의미다.


 허리까지 잠기는 풀밭을 이리저리 거니노라면 내 영혼에 예리하게 침투하는 야초의 독한 향내...... 거기에서 나는 내 존재에 대한 강렬한 의식과 함께 내 죽음 자체에도 관대해진다. 내 아버지, 내 조상들이 묻힌 곳, 그 초원은 모든 섬사람들이 태어났다가 죽어서 다시 돌아가는 어미의 자궁인 것이다. 그러나 피맺힌 한으로 해서 조금도 관대해질 수 없는 무자, 기축년의 그 주검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들도 거기로 돌아가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삭일 수 없는 여한은 어찌할 것인가.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94/542


 이처럼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는 소년의 눈에 비친 제주 4.3사건을 그린다. 때문에, 사건의 잔혹함이나 긴박감 등을 작품에서 느끼기 어렵지만, 대신 사건이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와 함께 하나의 사건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 그 사건은 먼저 우리 안에 온전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교훈을 독자들은 전달받는다. 이런 면에서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순이 삼촌>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그러한 아침에 의해 격려받고, 그러한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아침 빛으로부터 병든 자는 삶의 의욕을 얻고, 절망한 자는 용기를 얻고, 그리고 용기 있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더 밝고 더 아름다운 아침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결심을 하는 순간도 그러한 아침의 햇빛 속에서일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252/542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9/542 



자연의 일부였으므로 부끄럼 없고 죄 없이 무구한 시절, 그리하여 나에게 그 시절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세월은 모두 거짓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섬 땅에서 정작, 내가 태어나 그 탯줄을 묻은 함박이굴 마을은 지금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메타포를 통해서 세상 보는 일에 익숙한 글쟁이여서 그런지, 1948년 토벌대의 방화로 소진된 이래 그 부락은 오직 검은 재의 폐허로만 내 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_ p14/542

한창 자라나는 어린 나에게 한달 넘게 계속되는 결식은 참기 어려운 괴로움이었다. 처음에 어머니는 아침밥을 반쯤 남겼다가 점심에 먹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오히려 허기만 더 자극할 뿐이어서 아예 점심을 굶어버렸다. 한사발의 밥이 제대로 배 속에 들어가야 한때나마 그 무서운 허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무서운 허기, 정말 그랬다. 허기는 본능적인 공포, 살이 조금씩 깎여들어간다는 두려움을 예리하게 일깨워주곤 했다. 굶주림의 그 생생한 감각은 나의 성장하는 정신에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남겨, 지금도 나는 공복상태가 두려워 어쩌다 한끼라도 때를 놓치면 사뭇 안절부절못하는 버릇이 있다. _ p166/542

그러나 죽음의 시절은 이제 일단락 났다. 그해 여름, 보리 풍작과 함께 그보다 더 큰 기쁨이 날아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휴전 소식이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 것이다. 모든 전선에서 총성이 멎고 휴전선이 획정되었다는 소식이었는데, 과연 그것을 입증하듯이 도두봉의 기총 사격도 그쳤다. _ p350/542

누구나 사춘기 열병을 앓게 마련이지만, 고교 시절의 나는 아무래도 남보다 더 갈등이 심했던가보다. 영과 육의 불화. 영혼도 육체도 제각기 뭔가를 몹시 갈구하건만, 영혼이 바라는 바를 육체가 따르지 못하고, 육체의 요구를 영혼이 들어주지 못했다. 무구하던 영혼이 격정과 불만으로 들끓던 그 악바리 소년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_ p536/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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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07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 4월 3일은 제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의미깊고 좋았어요. 어린 아이가 이념이 무엇인지 어찌 알았겠어요 동네 사람들이 도망가고 죽는 끔찍한 현장을 목도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을테구요. 그 당시 이념 뿐 아니라 가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있었을텐데 참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ㅠ 이제 4.3하면 현기영님이 저는 가장 먼저 떠올라요^^

겨울호랑이 2022-04-07 16:33   좋아요 1 | URL
^^:) 그러셨군요. 거리의화가님께 더 의미있는 4.3이었겠습니다. 마치 롤스가 ‘정의‘라는 한 주제에 천착한 것처럼, 현기영 작가는 4.3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 작가라 생각되기에, 저 역시 4.3과 현기영 작가를 떨어뜨려 생각할 수가 없네요. 거리의화가님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그레이스 2022-04-07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기영씨도 너무 마음 아픈 소설가예요.
글을 너무 잘 쓰는데, 과거의 사건에 매여 있어서,,,
이책의 글들은 소름돋게 좋은데 너무 가슴아팠던 기억이 나요

겨울호랑이 2022-04-07 23:20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의 말씀처럼 4.3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이 여러 작품에 투영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같은 불행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