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제학부터 도시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의 글을 써왔다. 나의 글은 복합적응체계(Complex Adaptive System) 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는 세상을 다양한 사건들이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흘러가는 곳으로 보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어떤 사건의 원인과 개별 행위자 사이의 관계가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복합적응체계의 예로는 생태계, 금융시장, 경제, 영어권, 도시, 기상 시스템, 관습법 체계, 그리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힌두교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 _ 산지브 산얄,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 p32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는 인도를 중심으로 인근 동남아시아사, 아라비아 해 인근, , 오세아니아 대륙과 북동아프리카 해안을 중심의 세계사를 서술한다. 저자 산지브 산얄 (Sanjeev Sanyal)은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에서 인도양(印度洋, Indian Ocean) 문화권을 연속성 관점에서 구분하고, 주요한 기준은 힌두교의 영향과 모계사회 여부다. 이런 관점에서 인도양을 바라보기에, 자연스럽게 책의 중심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사회가 주가 된다.  


 인도양 연안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몇 가지 연속성이 발견된다. 끊임없이 사람들의 이주부터 수백 년동안 구전된 전설에 이르기까지, 연속성의 사례는 다양하다... 연속성의 두 번째 주제는 모계사회다. 즉 인도양의 역사에서 모계 관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먼저 "모계(matrilineal)"는 개념적으로 "모권(matriarchal, 가모장제)'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모권사회는 관습적으로 여성이 통치자/지도자의 지위에 오르는 사회를 말한다. 이와는 달리 모계사회란, 계보가 어머니를 거쳐 여성 조상들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p35)... 인도 서해안을 제외하면 모든 모계사회가 동남아시아에 몰려 있다는 사실에 일단 주목해보자... 왜 어떤 사회는 모계 시스템을 선택하고 다른 사회는 그렇지 않은지를 비교해보면 자못 흥미롭다. 인도 남서부 해안 지역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관습은 아마도 원거리 해상 무역의 결과로 진화했던 것 같다._ 산지브 산얄,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 p32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에서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상호관계를 말하지만, 저자 자신이 인도인이어서 갖는 인도 중심주의라는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다. 책에서는 인도양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지만, 책 내용은 '인도를 갖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에 가깝다는 점에서 대국(大國)중심의 교양 역사서라 하겠다. 다만, 인도와 동남아시아사에 대한 역사책 자체가 드문 현실을 생각한다면 크게 흠이 될 정도는 아니라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에서 관심이 가는 부분은 '모계사회'라는 기준을 갖는 저자의 문화권 분류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탐라국(耽羅國)으로 알려져 한반도 여러 나라와 교류를 한 것으로 알려진 제주도. 내륙 지방과는 언어, 문화 면에서 차이가 있는 제주도 지역에서 생활을 영위하는 주체는 여자라는 점에서 모계 중심의 동남아 국가들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삼국유사 三國遺事>  속의 김 수로왕(首露王, 42 ~ 199)의 이야기 속의 부인 허황옥(許黃玉, 32 ~ 189) 이야기를 통해 동남아시아 문화권과의 연계성을 찾으려 한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갑자기 완하국(玩夏國) 함달왕(含達王)의 부인이 임신했는데, 달이 차자 알을 낳았다. 알이 화해서 사람이 되었으니, 이름은 탈해(脫解)였다. 그가 바닷길을 따라 (가야에) 왔는데, 키가 석자에다 머리 둘레가 한 자나 되었다. 그가 흔연히 대궐로 가서 왕에게 말했다.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러 왔소." "그렇다면, 술법으로써 겨뤄보는 것이 좋겠소." 왕이 "좋다"고 했다... 탈해가 마침내 엎드려 항복했다.(p209)... 건무 24년 무신(48) 7월 27일 , 왕이 왕후와 더불어 침전에 들자 (왕후가) 조용히 왕에게 말했다.  "저는 아유타국(阿蹂陁國)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인데, 나이는 16세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인 올해 5월에 바다에 떠서 멀리 증조를 찾고, 하늘로 가서 반도를 좇으며, 진수로써 외람되게도 왕을 모시고 용안을 가까이 하게 되었습니다." _ 일연, <삼국유사>, p212 


 <삼국유사> 속에서는 아유타국에서 온 허왕후 이야기와 함께 석탈해(昔脫解, BC 19 ~ AD 80)이야기도 나온다. 석탈해가 가야(伽倻)를 빼앗으려 했으나, 수로왕과의 술법 대결에서 패배한 후 떠나갔다는 이야기는 <삼국유사> 속의 다른 전승과도 연결된다. 비록 두 이야기가 내용 상 충돌하는 면이 있으나, 그가 왜(倭)의 동북쪽 천리되는 곳(캄차캬 반도 ?)에서 왔다는 이야기 속에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이 가야에서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를 고대 '초원의 길' 세력과 '바다의 길' 세력 간의 충돌로 보면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인도양의 역사 속에서 아직도 수수께끼인 고대사를 상상해 보는 것도 역사를 공부하는 재미가 아닐까 한다.


 탈해잇금(脫解齒叱今)은 남해왕 때 가락국 바다 가운데 배를 타고 와서 닿았다. 그나라 수로왕이 신하 및 백성들과 함께 북 치고 시끌벅적하게 맞이해 머물게 하려 했지만 배가 나는 듯이 달려서 계름 동쪽 하서지촌(下西知村) 아진포(阿珍浦)에 이르렀다... 배를 끌어내어 찾아가보았더니 어떤 배 위에 까치들이 모여 있었다. 배 안에 하나 궤가 있었는데 길이가 20자에다 너비는 13자쯤 되었다. 하늘을 향해 아뢴 뒤에 조금 있다 열어보니 단정한 사내아이가 있었고, 일곱 가지의 보물과 노비가 그 속에 가득 차 있었다. 이레 동안 대접하자 그가 말했다. "나는 본래 용성국(龍城國) 사람입니다." _ 일연, <삼국유사>, p93


 과거에 대한 상상은 이 정도로 하고,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동남아시아 역사를 마저 정리해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0-09-10 1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도 점점 모계사회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자 자매들 중심으로 많이 모여요.
사어머니보단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 가는 가족도 많고요. 우리 시댁도 그렇답니다.

겨울호랑이 2020-09-10 13:55   좋아요 1 | URL
친가보다 외가 친척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도 그렇습니다. 이는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자주 가다보니 더 깊은 유대감이 형성된 결과로 여겨집니다. 그런 면에서 페크님 말씀에 일리가 있다 생각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렇게 형성된 친밀감이 육아를 여성이 전담하는 사회분업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부계사회의 결과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듭니다...
 
기적에 관하여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8
데이비드 흄 지음, 이태하 옮김 / 책세상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기적은 자연 법칙의 위반이다. 확고하고 불변하는 경험은 자연의 법칙을 확립해왔으며, 따라서 모든 경험에 입각한 추론이 완벽한 것처럼 기적에 상반되는 증거 역시 그 성격상 완벽하다...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따라 일어난 것이라면 어떤 것도 기적이 될 수 없다. 건강해 보이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러한 종류의 죽음은 일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종종 목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면 그것은 어떤 시대에도 어떤 지역에서도 목격된 적이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기적이다. 따라서 모든 기적적인 사건에는 그것에 상반되는 일양(一樣)적인 경험이 있게 마련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사건은 기적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p19

점점 계몽됨에 따라 우리는 개국 역사에는 기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고, 기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들은 신비한 것을 향한 인류의 일상적인 성향에서 야기된 것이며, 이 같은 성향이 식견과 학식을 통해 종종 제어를 받기는 하지만 인간 본성에서 철저히 근절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p24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 ~ 1776)은 <기적에 관하여 Of Miracles> 에서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현상을 기적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자연 법칙의 위반이 종교의 토대가 될 수 없음을 비판한다. <기적에 관하여>에서 흄은 경험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사건보다 일상에서 발생할 가능성을 높은 사건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면서 종교란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신앙의 측면에서 다가가야함을 말한다.

흄의 기적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흄이 정의한 기적이 바로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기적, 즉 위반 기적이라는 점이다. 기적이란 종교를 지지하는 합리적인 토대이기보다는 오히려 신앙의 표현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흄의 기적에 대한 비판이 갖는 철학적 의의를 종교의 참된 토대는 이신론자들이 신뢰했던 경험과 이성이라는 인간의 자연적인 인식 능력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해제, p113

이 기적이 어떤 새로운 종교 체계와 연관될 경우,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부할 뿐 아니라 심지어 아무런 확인 없이도 거부할 만큼 거짓임이 명확한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에 모든 사람들이 속아왔다... 어떤 다른 사태에 관한 증언에서보다 종교적 기적에 관한 증언에서 진리의 위반이 좀더 흔한 일이기에 종교적 기적에 관한 증언의 권위는 훨씬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p35

이성만으로 기적의 진실성을 확증시키는 것은 역부족이다. 신앙에 의해 기적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 이해력의 모든 원리를 전복시키며 관습과 경험에 어긋나는 것을 믿게 만드는, 자신의 인격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어떤 기적을 의식한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p38

사실, <기적에 관하여>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신앙심이 깊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적이 생긴다면 우리 삶은 제대로 영위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거나 죽어서도 살아나고, 모든 병에서 낫고, 하는 일마다 잘 된다면 더이상 기적이 아닌 일상일 것이고, 기적으로 인해 우리 삶은 그보다 더 불안해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과연 신은 원할까?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렸을 때 기적을 바라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피하게 해달라는 바람. 여기에 더해 만약 기도를 이루어 준다면, 다른 무언가를 하겠다는 흥정까지. 인간이기에 당연하게 드는 마음이겠지만, 참된 기적은 그것을 넘어선 것이 아닐까.

큰 시련이 왔을 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다는 것. 완고했던 마음을 풀고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것 자체가 안정을 추구하는 생명의 본성을 거슬리는 위대한 기적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언제나 바라는 기적을 얻지는 못하지만, 기적 안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흄이 말한 신앙의 토대 위에 선 종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국 기적이란 신앙의 다른 이름이며 올바른 신앙이란 올바른 기적관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흄의 지적처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기적을 바라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문명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오직 요행을 바라는 위반 기적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토대를 붕괴시킬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기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참된 종교와 사교(邪敎)를 구별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며, 이러한 점에서 흄의 기적에 대한 소론은 참된 종교와 사교가 혼재하며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해제, 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엥겔스 평전-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트리스트럼 헌트 지음, 이광일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1월
32,000원 → 28,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0년 09월 07일에 저장

칼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이사야 벌린 지음, 안규남 옮김 / 미다스북스 / 2012년 3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2020년 09월 07일에 저장
구판절판
맑스 엥겔스 평전
하인리히 겜코브 지음, 김대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3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20년 09월 07일에 저장
절판
레드 예니- 카를 마르크스와 함께한 삶, 예니 마르크스 평전
하인츠 프레데릭 페터스 지음, 김보성 외 옮김, 이재유 감수 / 오월의봄 / 2015년 5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1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0년 09월 07일에 저장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르크스와 예니가 우려했듯 빈곤을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1850년 11월 19일, 소호에 있는 비위생적이고 얼어붙은 누추한 집에서 둘째 아들 헨리 가이가 한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폐렴으로 죽고 말았다. 이 부부가 처음으로 잃은 자식이다. 이후 그 거리에서 마르크스는 다른 아이들도 잃게 된다.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260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에 대한 여러 평전이 있지만, 그의 삶을 바라봄에 있어 공통적인 것은 평생 마르크스 부부를 따라다닌 지독한 가난과 자식들의 죽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독일, 프랑스, 영국을 떠돌며 지냈던 이들에게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란 친구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


 마르크스가 걱정한 대로 물질적 형편은 얼마 안 가 힘들어졌다. 10월, 마르크스가 집세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먹을 식량을 구할 돈도 곧 해산하게 될 아내의 병원비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상태였을 때 엥겔스가 나타났다. 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239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 궁핍을 자네에게 쏟아붓는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날마다 아내는 자식들과 함께 무덤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비롯되는 말할 수 없는 굴욕감 때문에 뭐라고 책망할 수도 없네." 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371


 평전에서 매해 출간되었던 그의 저술 다음 문단에는 거의 반복적으로 자녀들의 죽음 또는 손자/손녀들의 죽음과 그와 부인의 건강문제가 언급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부인이 돈을 얻기 위해 독일로 갔다는 이야기도 함께. 스스로 말하듯 '돈에 대해 책을 쓰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그를 괴롭힌 외적 불행을 안다면, 그가 <자본론>에서 소년/소녀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비참한 삶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당했는지,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를 음울한 유령에 비유했는지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1863년 여름 내내 마르크스는 최악의 상태였다. 정다발증이 세균 감염으로 악회되어 죽을 뻔했고, 한 달 이상이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옹, 두통, 폐질환, 간질환 등이 점점 더 빈번하게 출현했다. 그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p382)... 1881년 11월, 예니의 병이 악화되었다. 간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마르크스 역시 너무 아파(늑막염이 겹친 복막염) 침대에 누워 지냈고, 아내 방으로 가기 위해 하루에 딱 한 번만 나왔다. 라파르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예니가 심하게 앓고 있었으므로 그는 학문 작업을 정상적으로 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는 아내의 고통 때문에 끔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수학에 몰두하는 방법으로만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예나는 파리에서 온 세 자식들과 두 사위, 그리고 마르크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12월 2일 죽음을 맞는다. 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583

 

 영화 <친구>에서는 준석(유오성)이 상택(서태화)에게 자신이 일탈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처음 가출했을 때 주변에서 아무도 뭐라 말하지 않았다고. 만약, 그때 누군가 자신에게 뭐라 해서 잡아주었다면 지금처럼 비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크스와 독일 귀족 출신이었던 부인 예나가 자신들의 삶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사회 평등에 관한 확고한 그들의 신념을 접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궁핍한 노동자들의 삶이 보다 살만한 것이었다면, 20 세기를 흔들었던 열렬한 지지를 얻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대 사상가의 삶 대신 조금은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이 마르크스에게 주어졌다면, 그가 자신의 펜을 누그러뜨려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컬럼리스트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을지도 모를일이다.


 마르크스는 다시 강도 높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집필작업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이제 돈을 벌 수 있고, 일요일이면 아이들에게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에드가에게 쏟은 열정을 이제 세 살 된 엘레아노르에게 옮겼다. 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338


 마르크스의 가난과 질병, 극심한 불행 속에서 태어난 공산주의의 성전 <자본론>. 많은 이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악(惡)으로 바라보며 그의 사상에 반대하여 반공(反共)을 외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반공은 이데올로기 다툼이 아니라, 더는 마르크스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마르크스의 삶을 알고난 후 <자본론>을 읽는다면, 이 책이 혁명서가 아니라 살고자 하는 처절한 외침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덤 투즈(Adam Tooze)는 <붕괴 Crashed>를 통해 2000년대 초반 막대한 재정적자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해 경기부양을 한 미국 경제의 문제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문제로 확장되어 유로존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문제로 확산되는 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2008년 부시 대통령 집권 말기에 금융위기가 가속화하면서 미국의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더 커져갔다. 그 중차대한 순간에 공화당은 정당으로서의 지지도와 체제의 안정화라는 의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했다... 2008년에는 구제금융 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고 이 문제는 곧 유럽 대륙까지 확산한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결국 구제금융 문제와 경제위기를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 지도부가 어쨌든 힘을 합쳤고 미국을 하나로 뭉치게 해 연준과 재무부가 세계 경제의 안정화를 위해 노력할 기반을 마련해줄 수 있었다.(p849)... 2007년 이후 벌어진 금융위기의 규모는 민주적 정치와 자본주의식 통치에 대한 요구 사이의 관계를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긴장된 관계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이런 긴장 상태는 정당들의 계획과 일관성,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시험하며 동시에 정말로 필요한 존재들이가도 확인해준다.(p850)

더 나아가, 저자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 문제 역시 2007년의 금융 위기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저자는 금융위기가 가져온 그리스와 프랑스 좌파 정당의 소멸과 미국과 영국 우파 정당의 분열을 통해 경제위기 이후 정치질서의 변화를 설명하며, 우크라이나 위기를 통해 지정학적 위기를 입증한다. 이처럼 2010년 이후 세계 경제, 정치,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친 금융위기는 코로나 19로 인한 실물경제의 위기가 진행중인 현 시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과연 이번 위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 것인가...

2008년에 가장 위기에 몰린 나라는 한국이다. 지금의 한국을 일으켜 세운 유명한 수출전문 기업 집단, 즉 대우나 현대, 삼성 같은 ˝재벌˝들과 거대한 규모의 제철소, 조선소, 자동차 공장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만 유별나게 동유럽이나 러시아처럼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건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전 세계와 하나로 엮여 있었기 때문이다.(p370)... 아시아의 그 어떤 지역이나 국가도 2008년의 한국처럼 수출 불황과 환율 폭락, 그리고 유동성 위기가 종합적으로 덮친 곳은 없었다.(p37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딩 2020-09-07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1,2차 산업도 참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산업회되고 중국이 대량 생산을 해서 마치 퇴색된것처럼, 거기다 사대주의처럼 사차산업을 무형의 신처람 받들고 쫓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물’ 또한 고부가가치임을 선진나라에사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잡스가 말한 첫번째 성공 신드롬처럼, 성공한 기반을 잊고 새 것만 쫓으려하고, 거기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할 수 있는 기업 공개 시스템도 마련하지 못한 채 너무 먼곳만 부채질 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9-07 07:4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소규모 개방경제를 추구하며 동북아금융시장 허브를 설계하다 큰 위기를 맞게 된 것이 우리나라 금융위기 배경으로 생각됩니다. 이제는 특정 부문의 발전을 위한 불균형성장을 지양해야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초딩님 좋은 한 주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