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예니가 우려했듯 빈곤을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1850년 11월 19일, 소호에 있는 비위생적이고 얼어붙은 누추한 집에서 둘째 아들 헨리 가이가 한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폐렴으로 죽고 말았다. 이 부부가 처음으로 잃은 자식이다. 이후 그 거리에서 마르크스는 다른 아이들도 잃게 된다.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260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에 대한 여러 평전이 있지만, 그의 삶을 바라봄에 있어 공통적인 것은 평생 마르크스 부부를 따라다닌 지독한 가난과 자식들의 죽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독일, 프랑스, 영국을 떠돌며 지냈던 이들에게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란 친구가 없었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
마르크스가 걱정한 대로 물질적 형편은 얼마 안 가 힘들어졌다. 10월, 마르크스가 집세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먹을 식량을 구할 돈도 곧 해산하게 될 아내의 병원비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상태였을 때 엥겔스가 나타났다. 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239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내 궁핍을 자네에게 쏟아붓는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날마다 아내는 자식들과 함께 무덤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비롯되는 말할 수 없는 굴욕감 때문에 뭐라고 책망할 수도 없네." 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371
평전에서 매해 출간되었던 그의 저술 다음 문단에는 거의 반복적으로 자녀들의 죽음 또는 손자/손녀들의 죽음과 그와 부인의 건강문제가 언급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부인이 돈을 얻기 위해 독일로 갔다는 이야기도 함께. 스스로 말하듯 '돈에 대해 책을 쓰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그를 괴롭힌 외적 불행을 안다면, 그가 <자본론>에서 소년/소녀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의 비참한 삶에 대해 많은 페이지를 할당했는지,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를 음울한 유령에 비유했는지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1863년 여름 내내 마르크스는 최악의 상태였다. 정다발증이 세균 감염으로 악회되어 죽을 뻔했고, 한 달 이상이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옹, 두통, 폐질환, 간질환 등이 점점 더 빈번하게 출현했다. 그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p382)... 1881년 11월, 예니의 병이 악화되었다. 간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마르크스 역시 너무 아파(늑막염이 겹친 복막염) 침대에 누워 지냈고, 아내 방으로 가기 위해 하루에 딱 한 번만 나왔다. 라파르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예니가 심하게 앓고 있었으므로 그는 학문 작업을 정상적으로 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는 아내의 고통 때문에 끔찍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수학에 몰두하는 방법으로만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예나는 파리에서 온 세 자식들과 두 사위, 그리고 마르크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12월 2일 죽음을 맞는다. 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583
영화 <친구>에서는 준석(유오성)이 상택(서태화)에게 자신이 일탈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이 처음 가출했을 때 주변에서 아무도 뭐라 말하지 않았다고. 만약, 그때 누군가 자신에게 뭐라 해서 잡아주었다면 지금처럼 비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크스와 독일 귀족 출신이었던 부인 예나가 자신들의 삶이 조금 나아졌다고 해서 사회 평등에 관한 확고한 그들의 신념을 접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와 같은 처지에 있었던 궁핍한 노동자들의 삶이 보다 살만한 것이었다면, 20 세기를 흔들었던 열렬한 지지를 얻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대 사상가의 삶 대신 조금은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이 마르크스에게 주어졌다면, 그가 자신의 펜을 누그러뜨려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컬럼리스트의 삶에 만족하며 살았을지도 모를일이다.
마르크스는 다시 강도 높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집필작업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이제 돈을 벌 수 있고, 일요일이면 아이들에게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에드가에게 쏟은 열정을 이제 세 살 된 엘레아노르에게 옮겼다. _ 자크 아탈리, <마르크스 평전>, p338
마르크스의 가난과 질병, 극심한 불행 속에서 태어난 공산주의의 성전 <자본론>. 많은 이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악(惡)으로 바라보며 그의 사상에 반대하여 반공(反共)을 외친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반공은 이데올로기 다툼이 아니라, 더는 마르크스와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마르크스의 삶을 알고난 후 <자본론>을 읽는다면, 이 책이 혁명서가 아니라 살고자 하는 처절한 외침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다...